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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210/256)

  

51화.

그녀는 잠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단과 눈물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황한 그녀가 깜짝 놀라 손가락으로 그의 눈을 쓸었다.

“왜, 왜 울어?”

“안 울어! 정말…… 그럴 거면서 대체 왜 뜸을 들여?”

그가 민망했는지 그대로 그녀의 가슴을 꽉 쥐어서, 그녀는 아픔에 얼굴을 찌푸렸다.

“날 불안하게 하지 마…….” 

그가 그녀의 음핵 위를 엄지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중얼거렸다. 아셰의 숨이 달뜨는 것을 느낀 그가 그녀의 가슴을 핥았다. 머리가 아찔해지며 허리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밑에서 끈적한 애액이 흐르기 시작했다.

“날 거부하지 마.”

아래에서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쾌감 때문에 그녀는 허벅지에 힘을 주며 신음 소리를 흘렸다.

“……제발.”

그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그대로 자신의 남성을 밀고 들어왔다. 그녀의 몸은 별다른 반항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그의 움직임에 맞추어 배가 흔들렸다. 그의 움직임이 점차 더 거칠어지자 온몸에 짜릿한 감각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가…….’

그녀는 그를 끌어안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그녀의 몸을 너무 잘 알았고, 그녀의 몸은 아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달뜬 그의 체온과 마주하며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반드시…… 복수해 줄게.’

바다의 검은 물이 그녀의 시야에 어지럽게 일렁거렸다.

‘짓지도 못한 네 이름 대신 그의 이름을 내 입술로 불러, 네 숨을 끊은 그의 숨을 직접 끊고, 저승에서 아무 죄 없는 네게 사죄하도록 할 테니.’

“다시 말해 줘.”

그는 연달아 아셰를 거칠게 가졌다. 한 번 시작된 정사에 녹초가 된 그녀의 몸을 돌려 다시 한 번 뒤에서 밀고 들어왔다. 아셰가 고개를 저어 보았지만 그는 그녀에게서 ‘남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던 듯했다. 그 단어를 괜히 내뱉었다고 아셰는 속으로 후회했다. 분명히 상관없다고 했는데 오히려 더 의식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애액과 정액이 흐르고 비릿한 향이 온몸을 감쌌다. 그의 손이 닿은 곳마다 민감해진 살결이 욱신거렸다.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게 끌어안은 채로 그가 낮게 속삭였다. 아셰는 가늘게 눈을 뜨며 말했다.

“사랑해.”

“또.”

“기다릴게.”

“또.”

“너와 결혼할 거야.”

몇 번이고 말하라고 시켰던 말들을 반복하자, 그는 흡족한 듯이 부푼 그녀의 입술에 한 번 더 입을 맞추었다. 그는 그녀와 일대일로 주고받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았고, 그래서 그녀에게 약속을 시킨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기다리고 결혼할 거라고. 정작 그녀는 그에게 딱히 그 약속을 확인할 생각이 없었는데 그는 계속해서 그녀의 입에서 약속의 내용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이토록 독재적인 면모가 가득한 이 사람이 대체 어떻게 공화정의 총독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 여전히 궁금했다.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네 이야기를 해 줘. 넌 어떻게 지내?”

“……또 시작이군.”

그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코를 살짝 물었다. 그는 그녀에게 조곤조곤 현재의 정세와 군대의 규모, 앞으로의 전술까지 설명해 주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아셰에게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네 오라비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해.”

이단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내 거짓말을 믿고 나를 받아 줬는데, 나는 마력을 빼앗고 도주했으니.”

“널 죽이고 싶다고 펄펄 뛰긴 했지만,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 덕분에 기술국이라는 걸 세웠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거든. 지지율이 올라 기뻐하고 있어. 내가 좀 띄워 주기도 했고.”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머리에 짜 맞추며, 그의 품에 안겨 말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만만치 않다, 이거지? 객관적으로.”

“그럼. 상대는 제국의 황제야. 천 년 동안의 권력에는 이유가 있지.”

이단은 그녀의 가슴골을 따라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아까의 분노는 조금 가라앉았는지 그의 손길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당연히 쉽지 않아. 거대한 혁명군, 스타람의 새로운 병기, 황제의 마력을 읽을 수 있는 나, 압도적인 정보력, 이 넷 중 하나만 없어도 가능성은 희박할걸. 황제는 대륙 각지에서 지원군과 물자를 얻고 있어.”

“……정보력?”

“황제가 가지지 못한 것이지. 황제는 정보가 전쟁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전혀 몰라. 아마 마력만 믿고 전략을 짤 생각을 하지 못해서 그래. 하지만 나는 아메탄에서 수사국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어. 대륙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거의 다 알더군.”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표정 관리를 하려고 애썼다.

“나도 흉내를 좀 내 봤지. 사브르라고, 내 오른팔인데…… 스타람에서도 그런 일을 해 본 경험이 있더라고. 어쩐지 사단장 자리를 부담스러워하더군. 어쨌든, 수사국처럼 정확하고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어영부영 황제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아.”

“그럼…… 내 소식도 들어?”

“가끔 사브르가 전해 주지. 네 결혼 소식을 듣고 당장에 그 영지를 지도상에서 없애고 널 데리러 가려고 했지만 사브르가 말렸어. 그곳이 네게 더 안전하다나.”

아셰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의 팔을 쓸었다. 역시 사브르는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었고, 이단이 자신의 일에 날뛰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그가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사브르……라는 사람을 믿어?”

“일단은. 혁명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그 사람은 내가 아니라 공화정에 충성하는 사람이지. 내가 공화정부의 총독인 이상 혁명군을 승리로 이끄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야?”

“말했잖아. 정보원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야. 제국인들은 아예 그렇게 정보원을 다룬다는 생각조차 못해. 역설적이게도, 사브르는 스타람의 총통 아카날과 이미 척을 진 사이기 때문에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기도 해. 돌아갈 곳이 없거든.”

“그 사람이…… 없으면…….”

“황제에 비해 압도적인 정보력이 없다면, 우린 몹시 어려운 싸움을 하게 되겠지. 사단 하나 정도는 될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야. 적어도 전쟁에서는 말이지.”

“어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네.”

아셰가 그녀의 다리로 그의 몸을 얽으며 속삭였다.

“나보다 더 좋아?”

“확실히 전쟁에는, 너보다 훨씬 더 필요한 사람이긴 해. 넌 나의 유일한 약점이지. 사브르는 그걸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어.”

“……그래?”

그녀가 조용히 웃었다. 그는 그녀의 귀를 핥으며 말했다.

“나는 다른 것이 두려워.”

그의 손이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훑었다.

“뭐가?”

“네가 나를 잊을까 봐.”

“너는 날 안 잊고?”

“난 나를 잘 알아. 너를 잊지 못해. 사랑한다니까.”

그가 그녀를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았다.

“네가 그 평온한 곳이 좋아서, 나를 잊고, 나의 청혼을 거절할까 봐. 이제 네가 나를 거절하면, 협박할 사람도 없어. 네가 미망인이 되면 너의 보호자는 전혀 없으니까. 차라리 네 오라비에게 너를 달라고 압박할 계획을 세우던 그때가 더 안심은 됐지.”

“이단.”

그녀는 그의 몸에 올라타며 싱긋 웃었다. 아셰의 나신이 그리는 아름다운 곡선이 달빛에 빛나서, 이단은 잠시 말을 잃었다. 그들이 너무나 잘 아는 별 여덟 개를 뒤에 두고, 그녀는 달콤하게 속삭였다.

“혁명이 성공하면 나를 데리고 가. 즉시, 네 곁에 둬.”

그의 손을 천천히 가져가, 단단한 엄지를 보란 듯이 핥으며 그녀가 희게 웃었다.

“네 가장 가까운 곳에 나를 두고 절대로 떠나지 마.”

너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 내 아이를 죽인 너의 오른팔과도 가까워지겠지. 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이단은 자신의 아이가 그녀의 몸속에 자라고 있는 줄도 몰랐다. 복수를 한다면 그녀의 손으로, 반드시 그 남자의 눈을 바라보면서 직접 할 것이다. 그를 필요로 하는 이단에게 맡겨 딜레마에 빠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 남자가 이단에게 필요하다고 하니 잠시 살려 두는 것이다. 결국 그 남자는 아셰의 손에 죽을 것이다. 그녀의 눈에 결심이 섰다.

“뭘 숨기고 있군.”

그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속일 사람을 속여. 나는 너와 같은 유년기를 보냈어. 달콤한 말이지만, 궁에 있을 때처럼 나를 바라보는 네 표정이 맑지 않아. 하지만…….”

그가 그녀의 턱을 잡고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래도 네가 내 곁에 있다면 상관없어. 뭘 숨기고 싶다면 그대로 두지. 다만 내가 청혼할 때, 반드시 내 곁으로 와야 할 거야. 약속을 지켜. 그거면 돼.”

“……이단.”

그녀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말해 주면 안 될까.”

“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두 명의 여자가 있을 때, 너는 어떤 여자를…….”

이단이 큭큭 하고 웃었다. 그가 그녀를 안고 기분 좋다는 듯이 갑판을 굴렀다. 마치 광기가 어린 것 같은 웃음에 그녀는 그를 한 대 세게 때려야 했다.

“잠시나마 너의 그 네 번째 조건이 너무 궁금해 미칠 때가 있었어. 생각해 보면 난 그때부터 너를 좋아했나 봐.”

그의 말에 아셰가 미간을 찡그렸다.

“난 단숨에 말해 줬잖아!”

“네가 그것이 궁금하다면, 날 좋아하는 건 확실하겠지.”

“그래서, 뭔데? 더 이상 어떻게 더 내 마음을 표현하는데?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

그가 그녀의 눈에 입 맞추며 웃었다.

“계속 궁금해 하라고, 그러면서 계속 내 생각을 하라고, 다음에 만나면 가르쳐 주지.”

“웃기지 마!”

그녀가 억울하다는 듯이 그의 등을 주먹으로 쳤다.

“다음에 만나면 가르쳐 준다는 말이 벌써 세 번째야. 내가 또 믿을 것 같아? 내가 죽기 전에는 들을 수 있는 거야?”

“나는…… 너무 불안해.”

그가 낮게 말했다.

“네가 나를 잊을까 봐, 그것이 너무 불안해. 너를 가진 한 달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나는 네가 사랑이 전부가 아닌 여자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거든. 너를 미치도록 사랑하지만 믿을 수는 없어.”

그는 그녀의 검지에 자리한 반지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너를 옭아맬 수 있는 호기심이라면 하나라도 더 붙잡고 싶군.”

“…….”

“또다시 밤이야.”

그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너와 푸른 하늘 밑에서 햇살을 받아 보고 싶어.”

그 말에 너무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아셰는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단, 반드시 혁명을 성공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얼른 나를 데려가. 내가 무언가를 숨긴다면 너의 갈 길을 방해하기 때문이야. 네가 진정 나를 원한다면 반드시 빠르게 이겨.”

이번에는 그녀의 진심을 느꼈는지, 그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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