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아셰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며 다시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면 본능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당연히 성적인 욕망이 섞여 있는 눈이겠지만, 가끔 그것보다 더 깊은 감정이 섞여 있는 듯했다.
“이…… 이걸 나한테 줘도 돼?”
“갖고 싶다며.”
“어?”
“만일 결혼을 한다면. 지금 당장은 봄의 좋은 날씨와 푸릇한 들꽃 냄새를 안겨 줄 순 없지만, 내 어머니의 유품은 줄 수 있지.”
예전에 그런 소리를 한 것 같아 아셰는 깜짝 놀랐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그런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생일 선물로 이렇게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가 다소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가 낮게 말을 이었다.
“4년 반이라고.”
“…….”
“그 안에 내란을 끝내고 내가 임시 총독 자리에 앉으면.”
그녀는 세차게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이 달빛에 반사되어 번득이며 빛났다.
“네 오라비에게 너를 달라고 하지.”
너무 놀라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는 것일까. 그녀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내 아비가 네 다른 오라비에게 너를 달라고 한 것처럼.”
“이, 이단?”
“너는 왕의 명을 따른다고 했으니 네 오라비가 가라고 해야 내 곁에 올 테니까.”
아셰는 숨을 몰아쉬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결혼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4년 반 이후 다니엘의 명에 따라 죽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미래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결혼? 그것도 제국의 황자이면서 반란군의 수장인 이 남자와? 리한 카드민을 보고 차라리 공화국에 공화주의자라며 망명을 해 볼까 하는 생각은 잠시 가볍게 했어도, 그와 결혼을 하는 건 정말……. 그녀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리는 것을 본 그가 말을 이었다.
“너를 존중해.”
그는 가만히 말했다.
“네가 지금 당장 나를 따라 떠나지 않겠다는 결정을 받아들여, 강제로 데려가지는 않겠어. 네가 내게 아메탄에 투항하여 혁명군을 모두 버리고 너와 함께 살자고 한다면, 그 말을 들을 수 없듯이.”
그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걸까. 그녀는 현실감이 없어 입술만을 달싹였다.
“조금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네 마음에 거리끼는 일 없이 널 내 옆에 둘 수 있는 건 이 방법뿐이겠지.”
“왜? 나는…….”
“사랑을 먼저 입에 올린 건 너야. 그렇다면 내가 사랑을 대답할 때 책임을 져야지.”
아직도 그의 입술은 그녀의 손에 닿아 있었고, 그래서 그는 살짝 그녀를 올려다보는 각도였는데 마치 짐승이 사냥감을 보는 것처럼 뚫어져라 바라보는 표정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스타람의 총통은 그 기한이 5년이야. 나도 5년 이상 통령 자리에 앉아 있을 생각은 없어. 그러므로 큰 권력을 가졌다 할 수 없고.”
그가 천천히 일어나서 그녀의 손을 이끌어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반항하지 않고 그대로 그에게 몸을 맡기는 아셰의 옷을 천천히 벗기며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평생 결혼도 할 생각이 없었어. 첩실을 둘 리 없으니 네가 영원한 나의 정실일 테고.”
그가 천천히 그녀의 옷을 모두 벗기고,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들의 정사는 거의 급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완전한 나신으로 맞닿은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다. 아셰가 부끄러움에 두 가슴을 가릴 동안, 그가 자신의 옷을 벗었다. 그의 상처와 단단한 근육이 번들거리며 빛났다.
“학업뿐만이 아닌 모든 자유를 허락할 텐데, 네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하게 해 줄 텐데.”
완전한 나신으로 두 몸이 얽혔다. 그가 손을 뻗자, 천장에 위치한 마법구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부끄러움에 그녀가 이불을 찾았지만 그의 손이 저지했다.
“네 세 가지 조건을 나는 모두 만족하는데 왜 그런 표정이지?”
그녀가 맨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결혼상대로 꼽았던 세 가지 조건이었다.
‘너무 큰 권력이 없을 것, 첩실을 두지 않는 정실 자리일 것, 학업에 대한 자유가 있을 것.’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그가 신기하여 그녀는 감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의 가슴을 입에 물고 세게 빨다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여성이 젖었음을 확인하고 게슴츠레 눈을 떠 말을 이었다.
“충분히 어리고 잘생겨서 네 신체가 동하기까지 하는데.”
그녀는 몸을 움직여 그의 위에 앉은 뒤, 고개를 숙여 코를 마주하고 속삭였다.
“그러는 너는?”
그가 두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유린하며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대화는 넘치도록 통하고, 오히려 내가 휘둘리는 것 같아 불안할 지경이지. 내가 자제해서 그렇지 온 밤이 새도록 너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녀의 입술에서 신음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그가 흡족하다는 듯이 웃었다.
“집안이 고상한 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고. 네 오라비가 내게 야망을 요구하며 귀찮게 황금을 바라지는 않을 테니.”
“으…… 아……. 아앗…….”
그가 그녀의 몸 중에서 민감한 곳을 찾아 살살 건드리며 속삭였다. 더 세게, 더 강하게 자극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쾌락이 올 것 같은 바로 그 시점에서 아쉽게 손을 멈췄다. 아셰가 신음을 흘리며 그에게 더 밀착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내 신체도 충분히 동하고, ……사실은 불안할 정도로 아름다워.”
그는 환한 빛 아래의 나신을 바라보며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이미 달뜬 그녀가 그대로 그의 달아오른 남성을 자신의 안으로 천천히 집어넣었다. 그가 허리를 빠르게 튕겨 올리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어져 나오는 신음 소리를 참지 못하고 그의 두 손을 꽉 쥐었다. 진동에 흔들리는 가슴을 그가 탐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이단. 예전에, 다시 만나면 말해 주겠다고 한 것이 있어. 아, 아…….”
짜릿하게 퍼져 오는 쾌감을 참으며 그녀가 간신히 말했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똑같이 만족하는 여자 둘이 있다면, 어떤 여자를 선택할 거야?”
그녀가 달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성과 계산이 아닌 본능과 진심이 원하는 것, 그러니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그 조건. 그 앞에서는 언제나 마음이 약해져 정신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그 마지막 조건.”
“그건…….”
그가 상체를 일으켜, 몸을 포개고 속삭였다. 천천히 움직이는 그의 몸짓에 아셰의 눈빛도 점차 탁해졌다. 쾌락이 차곡차곡 몸 안에 쌓이는 느낌이었다. 그가 침대를 두 손으로 짚으니 팔의 근육이 선명하게 섰다.
“다음에 너와 함께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 말해 줄게. 왜냐하면 난…….”
“아, 아읏…… 하…….”
아셰의 뺨에 입을 맞추며 그가 허리를 깊게 움직였다.
“네 밤뿐만이 아닌 낮도 함께하고 싶거든.”
“이단…….”
“네 궁의 닫힌 천장이 아니라, 푸른 하늘과 넓은 잔디를 함께 보고 싶어.”
그의 속삭임은 마치 꿈결 같아서, 아셰는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제국은 넓고, 아름다운 곳이 많아. 네게 모두 보여 줄게. 통령 자리에서 물러나면 네가 좋아하는 달콤한 것들을 내가 직접 만들어 줄 수도 있을 거야.”
“아…….”
“널 미치도록 사랑해. 4년 반 안에, 내가 청혼을 하면 기쁘게 받아 줘.”
그가 빠르게 허리를 움직이며, 손으로 그녀의 민감한 부분을 세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귓속을 간질이는 숨결과 아래쪽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쾌감에 그의 어깨에 이를 박고 숨을 참았다. 어질어질하고 숨이 막힐 것 같은 거대한 파도가 밀려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번개를 맞은 것처럼 짜릿한 기분이었다. 그녀가 거세게 그의 어깨를 깨물자 그가 더 깊이 들어왔다.
“아…… 아……. 너무, 너무 좋아…….”
그녀가 그에게 매달리며 달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가 그녀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그녀를 눕힌 채 세게 움직였다.
“……좋아?”
그가 몽롱한 눈으로 물었지만, 그녀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의 움직임 이후 둘 다 절정을 느끼고 나서 녹초가 되어 쓰러졌다. 그들의 나신이 땀으로 젖었고, 끈적한 공기가 감돌았다. 그가 숨을 몰아쉬다가 낮게 중얼거렸다.
“기분이 좋다는 말은 아니었지? 청혼이 좋다는 얘기였지?”
아셰는 힘없이 웃었다. 그녀는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으나,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현실적으로…….”
그녀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감금되어 있는 아메탄의 왕녀를 네가 아내로 맞이한다고 하면, 네 밑의 사람들이 얼마나 반대할 것이며…… 다니엘은 무슨 명분을 들어 범죄자인 나를 보내겠니?”
“네 오라비는 무슨 명분을 들어 나를 보호했을까.”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힘을 가지게 되었을 때 후환이 두려워서겠지.”
“…….”
“거절하면 후환이 두렵게 만들면 돼. 그게 내 사람이든, 네 사람이든. 그것이 권력의 힘이고, 적어도 내가 초대 통령이 되었을 땐 그만큼의 권위는 있을 거야. 없다면 만들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마. 청혼서를 보내고 그대로 아메탄 인구만큼의 군대를 끌고 올 수도 있어.”
아셰는 힘겹게 눈을 뜨고 가까스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남자는 그 누구보다도 황제를 닮아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공화주의자라는 사람이, 권위에 기대어 자신을 데려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긴, 공화정이 세습을 막는 것이지 권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는가.
“스타람에서 아카날 총통의 권력은 절대적이지.”
그가 안심하라는 듯이 그녀의 등을 쓸었다.
“네 오라비는 제국에 이미 지원군과 전쟁 자금을 보냈고, 앞으로도 요구가 있을 때마다 보내겠지. 전쟁에는 돈이 많이 들고, 황궁의 국고로는 결국 감당하지 못해서 주변 국가에 도움을 청할 거야. 아메탄 왕국은 국력은 약하지만 산하기관의 여러 가지 연구 때문에 굉장히 부유한 나라지. 특히나 아메니티에 사는 사람들의 부는 내가 깜짝 놀랄 정도였어.”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