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183/256)

  

24화.

“그러던 와중에 제국에 반란군이 일어난 거야. 그것도 스타람에서 나온 ‘나의 공화주의’라는 책을 기반으로. 그러니 얼마나 반갑겠어. 여기엔 사실 두 가지 설이 있어. 첫 번째는 기회를 노리던 스타람 총통 아카날이, 운 좋게 일이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스타람의 지원을 약속했다는 설 하나, 그리고…….”

그녀는 반란군의 뒤에 스타람이 있다는 회의 내용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아카날은 제국에 복수를 하고 싶어 했고, 일부러 ‘나의 공화주의’라는 책을 유통시켜 때를 기다린 후 준비되어 있던 사병을 투입했다는 설 하나. 진실은 잘 모르겠어. 당연히 대외적으로는 첫 번째 설이지.”

“그렇다면 넌 두 번째라고 생각하고 있나 보구나.”

아셰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단은 피식 웃고, ‘역시 여우’라고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물론 스타람에는 공화주의자들이 많고, 리한 카드민의 ‘나의 공화주의’라는 책을 읽고…….”

“잠깐만.”

그녀가 그의 가슴에 손을 대며 미간을 찌푸렸다.

“리한 카드민?”

“어.”

“나의 공화주의…… 저자라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어. 타르안의 리한 카드민 말하는 것 맞지? 리한 카드민은 얼마 전에 아메탄에 망명했다고. 그때 너도 함께 넘어왔잖아. 그렇게 역사적인 책을 쓴 사람이 대체 왜 아메탄에 넘어와? 그것도 공화정을 전면으로 부인하면서.”

“그건…… 알 수 없지. 우리가 짐작하는 건 그가 아카날과 멀어졌을 것이라는 추측뿐이야.”

“…….”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의 말이 모두 맞다면, 아카날을 지지하고 이 자리까지 올라서서 스타람의 공화정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제국의 반란군을 결집하게 한 사상서를 쓴 사람이 아메탄에 그 모든 것을 부인하고 망명했다는 뜻이었다. 신념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까지 죽이려던 사람이 그녀의 앞에 있는데, 정작 그 신념을 체계화한 사람이 왕정 국가인 아메탄에 와 있다고?

“황제의 아들도 혁명군이 되는 판에, 공화주의자가 왕정 국가로 망명하는 게 뭐가 그리 이상하지? 한결같은 인간이라는 건 없어.”

아셰의 뚱한 표정을 보고 그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목동자리든, 학자자리든, 다 인간이 이름 붙인 것이고 별은 그냥 별이라고 했잖아. 그저 존재하는 것 이외에 인간에게 정해진 목적이란 없어.”

“하지만 너도 공화주의자잖아.”

“아니다 싶으면 돌아설 수도 있겠지.”

아셰는 이 남자가, 자신이 목숨까지 걸었던 그 ‘신념’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며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말을 잃었다. 그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어쨌든, 아카날 총통은 혁명군에게 스타람의 지원을 약속했어. 모든 전쟁에는 돈이 필요하고, 자본과 군대를 지원한다는 건 우리에게 상당한 도움이 되는 일이지. 게다가 스타람 군대는 제국과 완전히 달라……. 기존의 전쟁과 다를 거야.”

“그…… 누르면 사람을 죽인다는, 총 같은 무기가 있어서?”

“직접 봐야 알겠지만, 뭐 그렇지. 마력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이미 마력이 없는 상태를 극복해 낸 사람들은 마치 선구자 같으니까.”

‘선구자’라는 단어에 아셰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런 평가는 처음이었다. 항상 스타람의 문화를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했던 루벤을 늘 괴짜로 취급했다. 마력을 전혀 쓰지 않는 미개한 스타람의 문화는 천박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메탄의 풍토였다. 좋은 것, 기준이 되는 것, 훌륭한 것은 제국의 문화이고 제국에게 버림받은 스타람의 것은 모두 관심 가질 필요도 없다고 배웠는데…….

“그런데 말이야.”

아셰는 의아하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네 말처럼, 아니다 싶으면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신념 때문에 외국의 내란에 그토록 많은 지원을 하는 게 과연 합리적일까? 복수, 신념, 이런 추상적인 것들 때문에 바다를 건너 자본과 군대를 투입한다고…… 게다가 공화국에서? 난 잘 모르겠는데.”

“역시 영리하군. 칭찬해 줘야겠어.”

그가 즐겁다는 듯이 그녀의 가슴골에 입을 맞췄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양손으로 그녀의 보드라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스타람은 작은 섬이야. 이룰 수 있는 번영에 한계가 있지. 그들은 마력이 사라지는 시대에 본격적으로 패권을 잡고 싶어 해. 전기는 그들만이 가진 기술이고, 대륙 전체의 문명이 바뀐다면 스타람이 벌어들일 돈은 상상을 초월하지. 물론 아카날이 내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전쟁은 스타람에게 ‘시장의 확장’을 뜻한다고 생각해.”

“으…… 아, 하지 마.”

그의 손가락이 그대로 그녀의 여성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가 그녀의 질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여러 번의 정사로 그는 그녀가 민감한 부분을 알아챘다. 아셰의 허벅지 안쪽이 움찔하자 씩 웃어 보였다. 그가 손바닥으로 그녀의 여성을 꾹 누르며 쓸었다. 그의 혀가 그녀의 부푼 유두를 살짝 핥았다.

“물론 지금은 너무 커다란 전쟁이라 돈이 부족하지. 스타람 측에서도 내분이 일어날 만큼 자본이 많이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기면, 그래서 제국이 무너지고 스타람의 전기 기술이 더 이상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지 않으면…… 스타람은 대륙에 전기 기술을 팔 수 있을 테고 순식간에 패권의 주인이 되겠지.”

“아…… 그만……. 나 얘기 더 듣고 싶단 말이야. 아…….”

그가 입을 맞추며 내려와 그녀의 음핵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예전에, 신의 시대가 사라졌듯이…… 마법과 황제의 시대도 사라질 거야. 기술과 자본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가 오겠지. 그 불안함이 황족들을 더 미치게 하고 있으니 폭정과 반란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거고. 마력이 고갈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엔리히 황조의 시대는 서서히, 아주 지저분하게 끝나고 있는 거야.”

그 날 이야기의 끝이었다. 아셰는 그의 머리를 붙잡고 신음을 흘리면서도 머릿속에 떠도는 의문을 정리할 수 없어 답답했다.

그녀의 생일 파티는 다니엘의 말처럼 아셰의 궁 정원에서 아주 조촐하게 이루어졌다. 그녀의 의사에 따라 다니엘, 리젠,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카이든만 함께 하는 사교 모임 정도의 규모였다. 짧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리젠은 흥분해서 몇 번이고 카이든이 없을 때 속삭였다.

“진짜…… 내 생애 또 한 번 이 공연을 보게 되다니 영광이에요.”

“그 정도야?”

“네. 정말 잘생기고, 노래도 잘 하고, 림프도 기가 막히게 쳐요.”

“옛날에 나 따라서 무도회도 가 봤잖아. 악사들은 그때도 많이 봤을 텐데.”

“차원이 다르다니까요.”

리젠이 열심히 속삭이다가, 카이든이 다가오자 새침하게 시치미를 떼고 생일 선물을 건넸다. 이국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다기 세트와 처음 보는 찻잎이었다.

“이건 제가 밀수꾼들을 추적하다가 압수한 우르란 꽃잎이에요. 아메탄에서는 수입을 금하고 있는 스타람 섬의 식물인데…… 거의 다 폐기 처분 하기는 했지만 약제국에서 샘플로 쓰기 위해 조금 남겨 두었거든요. 한 줌 정도는 가져올 수 있었어요. 별다른 효과는 없지만 차 색깔이 예쁘게 우려진대요.”

아셰는 우르란이라는 말린 분홍색 꽃잎을 신기하게 보았다.

“왜 수입을 금하고 있는데? 효과도 없으니 위험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스타람의 것이니까요. 제국에서 내린 봉쇄령 이후 스타람의 물건은 쓰면 안 돼요. 요즈음에 스타람 섬 밀수가 워낙에 기승을 부리다 보니 스타람 풀도 많이 들어오네요. 아무래도 생태가 완전히 다르니까.”

리젠은 약제국에서 수사국과 협업하여 약초의 밀수 추적도 담당하고 있었다. 아셰는 평소 같았으면 스타람 섬에 대해 관심도 없었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멍하니 반문했다.

“스타람 섬 밀수……가 늘었어? 그 마력도 없는 땅에서, 왜?”

“어차피 요즈음 마법 쓰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어요. 그렇게 치면 매력적인 물건들이 많죠.”

“수사국에서 그렇게 관리를 하는데도 밀수가 늘어?”

“밀수는 말입니다.”

수사국에 근무하고 있는 카이든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마력의 힘이 대단했던 고대 제국에서도 없애지 못했어요. 게다가 스타람에서는 밀수를 장려하고 있죠.”

“……스타람은 우리 물건을 밀수하지 않으니까? 어차피 마력을 못 쓰는 사람들이니 우리 쪽 물건들이 모두 무용지물이겠네.”

카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셰는 레몬 케이크를 먹으며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싶어져 입을 다물었다.

“이건 내 생일 선물이야.”

다니엘이 화려한 공작새가 장식되어 있는 머리핀을 건네며 말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머리핀을 꽂아 보이며 환히 웃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그래도 왕족의 생일인데 연회 한번 없이 지나가기가 아쉬워서.”

그 때, 시녀들의 안내를 받아 푸른 머리와 푸른 눈동자를 가진 훤칠한 남자가 작은 궁의 정원으로 들어왔다. 초록색 림프를 든 청년은 긴 눈꼬리를 휘어 보이며 웃었는데, 아셰는 먹고 있던 레몬 케이크를 즉시 내려놓았다.

“안녕하세요, 리한 카드민입니다.”

그가 담백하게 자신의 소개를 했지만, 아셰는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 이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대륙의 온갖 연회를 꽤나 많이 가 보았지만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꽤 잘생겼다고 생각한 카이든이나,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다니엘도 그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현실감이 없는 외모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왕녀님의 생신을 맞아 부족하나마 축하 공연을 해 드리고 싶어 왔습니다.”

정원에 마련된 높은 의자에 앉아 그가 림프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햇살에 빛나는 푸른 머리카락, 희고 고운 피부와 날카로운 턱 선은 마치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현실감 없이 길쭉하고 선이 고운 팔다리의 움직임조차 색기를 머금고 있었다.

“왕녀님.”

옆에 있던 리젠이 속삭였다.

“예전에 저희가 대학 다닐 때, 타르안 팬들이 조금 있었던 것 기억나세요? 밀수품 돌려 보고, 사진 돌려 보던.”

“어…… 기억나. 왜 스타람 사람을 좋아하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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