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182/256)

  

23화.

“좋은 기회야.”

그가 턱을 괴고 말했다.

“공화정이 싫다는 사람이, 다른 곳도 아닌 아메탄에 망명한 건 좋은 신호야. 공화정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을, 이상적인 정치 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겠지. 이런저런 행사에 부르려고 해. 한 번이라도 그 공연을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을걸.”

“다니엘.”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리한 카드민, 남자 맞지? 네가 이렇게 흥분해서 누군가를 칭찬하는 건 리젠 이후 처음이야.”

“여자였으면 어떻게 해서든 왕비로 맞으려고 했을 거야. 그 정도라니까. 생긴 것도 솔직히…….”

아셰는 눈을 크게 떴다. 다니엘은 절대 과장이 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놀란 얼굴을 보고 다니엘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

“……우린 비교할 수조차 없이 잘생겼어. 한 번 웃는데 식장의 여자들이 다 반하더군. 리젠이 그렇게 표정 관리 안 되는 것도 처음 봤어. 거의 정신 못 차리던데.”

“카이든을 옆에 두고?”

“그런데 네가 그 공연을 봤으면…… 이해가 갔을 거야. 카이든도 뭐라고 못할걸.”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쓸쓸히 웃었다. 그 모든 것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게 사실 조금 서러웠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친구 리젠도, 멋있게 차려입었을 동기 카이든도 보고 싶었다. 주례를 맡았다는 수사국장 루카스의 차림새조차 궁금했다. 궁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씁쓸해했을 다니엘의 어깨라도 두드려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표정에 스쳐 지나간 서운함을 눈치챈 다니엘이 그녀의 손을 잡아 주며 말했다.

“아셰.”

“응?”

“곧 네 생일이잖아.”

“……어.”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촐하게 생일 파티를 열자. 그때 리한 카드민을 부를게. 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라고 할게.”

아셰는 너무 놀라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생일 파티라니, 그런 건 생각조차 한 적 없었다. 아니, 자신의 친오라비를 죽여 감금되어 있는 왕녀에게 생일 파티라니 가당키나 한가. 물론 예전 같았으면 생일 연회를 열었겠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러고 싶어서 이미 행정국에 이야기도 해 놨어. 각종 행사에 지원 바란다고. 마침 담당자가 유진 유니트더라고. 기억나? 우리 대학 동기. 편하게 요구할 수 있었지.”

“어…… 고마워, 고마운데…… 정말 그래도 될까?”

“나, 리젠, 카이든, 그리고 네 시녀들, 원한다면 네 어머니까지…… 정말 작게만 부르자. 그리고 네게 리한 카드민이라는 남자를 보여 주고 싶어서 그래. 태어났다면 꼭 한 번은 봐도 괜찮을 공연이었어.”

그녀는 왠지 울컥해져서, 거세게 눈을 비비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젠의 결혼식에서 그가 그녀를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한 아셰를 위해서 생일 파티에 그 가수를 초대할 생각까지 한 다니엘이 고마워서 왠지 가슴 깊은 곳이 찡해졌다.

“……아셰.”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니엘이 말했다.

“넌 내게 남은 단 하나의 동갑내기 여동생이야. 물론 피를 나눈 사람으로는 루벤도 있지만, 너와는 달라. 너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해.”

그는 조각같이 생긴 얼굴로 싱긋 웃었다.

“이 정도는 해 주고 싶어.”

“다니엘…….”

아셰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숙였다. 예전에, 윌리엄을 죽였다고 고백할 때조차 그녀는 울지 않았다.

“……나는 네게 친형을 빼앗았는데……. 그리고 너무나 무거운 왕관을 씌웠는데…….”

“나도 사람인데, 그 사실은 잊지 않아.”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윌리엄만큼 너도 내게 소중했어. 그것도 사실이야.”

그가 이미 민감해진 그녀의 안에 깊숙이 들어와 이곳저곳을 자극하고 있었다. 아셰는 숨을 몰아쉬다가, 그가 손가락으로 음핵까지 거세게 문지르기 시작하자 결국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 이단…… 너, 너무 좋아. 그만해…… 아…….”

그의 남성은 그녀가 반응하는 곳에서 거세게 움직이고 있었고, 음핵에서 함께 올라오는 쾌감 때문에 그녀는 아찔한 기분이 들어 눈물이 고일 지경이었다. 그녀가 한 차례 몰려온 파도에 숨을 헐떡이자 그가 그녀에게 살짝 입 맞추고 물었다.

“위에서 해 볼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단은 빙글 돌아 그녀를 조심스럽게 자신의 위에 앉혔다. 아셰가 수줍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는 그녀의 실크 잠옷을 내려서 상체를 나신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어차피 탈의를 거부해 봤자 그가 결국엔 뜻대로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워도 참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줄 땐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이단은 생각보다 자신의 고집이 있는 성격이었다. 말하기 싫은 것은 절대 말하지 않았고, 잠자리에서도 부드럽게 그녀를 이끌었지만 그녀의 부끄러움은 배려해 주지 않았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둥그렇고 풍만한 가슴이 흔들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인상을 썼다.

“아…… 너무 조여, 아셰, 하지 마, 그만.”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른 것도, 또 그만하라고 한 것도 처음이었다. 아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허리를 더 깊숙하게 움직였다.

“그만. 못 참겠어. 너무 좋아.”

“너, 좋다고 말했어.”

그녀가 그의 손가락을 핥으며 웃자, 이단이 그대로 허리를 빠르게 쳐서 올렸다. 질 안쪽 깊숙하게 느껴지는 쾌감에 그녀가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그가 그녀를 위에 앉힌 채로 몸을 일으켜 세워 허리를 계속 움직이자, 그들의 몸이 포개지며 체온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래쪽에서 쉴 새 없이 느껴지는 진동에 아셰가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그, 그만. 아…… 아아……. 아읏…….”

“먼저 도발한 건 너야, 이 여우야.”

그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유두를 살짝 꼬집으며 귀를 핥았다. 그녀가 녹초가 되어 표정이 변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끝을 냈다. 그러나 그 역시 쾌감이 컸는지 한동안 그녀를 안고 숨을 몰아쉬었다.

“……큰일이다.”

“응?”

“여우한테 홀려서.”

“넌 왜 자꾸 나한테 여우, 여우 하니? 우리 엄마도 아니면서.”

그가 그녀의 코를 입술로 한 번 물고 나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여우니까 나를 홀렸겠지.”

“내가…… 잘해?”

그녀가 뿌듯한 듯이 웃었다.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 잘해. 매일 아침에 눈 뜨면 생각날 정도로 잘해. 모든 시간을 밤만 기다리면서 사는 기분이 들 정도로 너무 잘해.”

“……진짜? 내가 이런 데에 재능이 있었나?”

“그런 것 같아.”

그가 나른하게 속삭였다.

“물이 많아 부드럽고, 자세를 바꿀 때마다 네 깊은 곳이 바로 반응하는데다가, 가끔은 꽉 물고 안 놔줄 때가 있어……. 그럼 나도 사정하지 않고는 못 배기지.”

“부끄러워, 그만해.”

아셰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가슴을 가볍게 쳤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네 피부는 말랑하고 부드러운데다가 좋은 냄새가 나서 안고 있으면 계속 하고 싶고. 네 신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진짜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생각보다 너무 자세한 설명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린 그녀의 볼을 그가 가볍게 두드렸다.

“다른 놈한테 확인할 생각하지 마. 네가 갇혀 있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없으니까.”

“너도 갇혀 있잖아.”

그녀는 몸을 굴려 그의 옆에 누웠다. 항상 그들은 정사가 끝나면 아셰의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루 종일 갇혀 있으니까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런 걸 거야. 마치 내가 갇혀 있으면서 달콤한 것들이 더 좋아진 것과 마찬가지지. 내가 특별하게 잘하는 건 아닐 거야. 그냥 네가 너무 심심한 것뿐이고, 자극이라고는 나밖에 없어서 그래.”

아셰의 담담하면서도 냉정한 말에 이단은 고개를 저었다.

“나 안 심심해. 나름 바쁜걸.”

“네가 뭘 하면서 바빠? 3왕자궁에 갇혀서.”

“아메탄 왕궁의 마력 설계를 보는 것만 해도 굉장히 바빠.”

그가 그녀의 살결을 매만지면서 말했다.

“굉장히 촘촘하면서도…… 오래되어 균열이 생긴 곳도 있어. 마력 자체가 줄어들어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마법들도 있고. 너희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르지. 아메탄 왕궁에서 아메니티의 모든 마력을 관리하는 줄도 몰랐는걸.”

“아메니티가 모든 지역에서 살기 좋고 융성하게 번창한 건 다 이것 때문이야. 이브나 왕비는 정녕 천재가 맞나 보군. 하나하나 풀어 가는 재미가 있어.”

“너무 건드리지는 마. 네가 건드려도 우리는 다시 복구할 수 없으니까.”

“어차피 난 영원히 바꾸지도 못해. 첫날 걸었던 방음 마법도 시간이 지나니 풀렸잖아.”

이단은 태연하게 말했다. 아셰는 이젠 익숙해진 그의 몸에 남은 흉터들에게 하나하나 입 맞추며 말했다.

“분명히 오늘 너무 좋다고 했어, 너.”

“더 이상 내 몸에 입술을 대면…… 이야기해 주기 전에 한 번 더 할 거야.”

“해 주긴 해 줄 건가 보네.”

아셰는 씩 웃으며 그의 팔을 베고 허리에 손을 감았다. 그는 그녀의 가슴을 매만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국의 반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했고. 이제 스타람에 대해서 얘기해 볼게.”

“응.”

“스타람은 예전에 말했듯이 제국에 대한 반감이 몹시 컸어. 마력을 빼앗아 그 긴 고난의 시간을 겪게 한 것과, 봉쇄령을 내려 한동안 무역을 힘들게 했던 것들에 대한 복수를 언제나 하고 싶어 했지. 스타람은 말했지만 섬 국가인데다가 평지가 드물어 곡식이 늘 부족해. 기술이 발달해서 이제야 먹고살 만해지나 싶었더니 봉쇄령이 내린 셈이지.”

이단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좋아서 아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이제 이런 시간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단이 애초에 보호 요청을 했던 한 달은 이제 열흘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아셰와 이단은 시간이 없다는 듯 거의 매일 몸을 섞었고, 아셰는 그 시간들 속에서 이제 리젠이나 시녀들이 말했던 ‘남자와 몸을 섞는 쾌락’을 알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좋고, 신음이 비어져 나올 만큼 온몸이 꼬이고, 문득 가만히 있어도 다리 사이에서 그 감촉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한 것.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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