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180/256)

  

21화.

“아파?”

“괜찮아.”

그녀가 속삭였다. 그녀는 비로소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눈빛은 완전히 초점을 잃은 채였다. 그녀의 얼굴 양옆으로 자리한 팔의 근육들이 모두 긴장해 있었다. 그가 신음 소리를 내며 더 세게 움직였다. 아팠지만, 그가 어제보다 더 깊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저절로 그의 리듬에 맞춰 허리가 움직였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녀를 누르고 있는 체온이 좋아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프면 얘기해.”

“……응.”

그가 자세를 바꿔 상체를 일으켰다. 그녀의 허리를 잡고 그가 더 세게 움직였다. 아까 시녀들이 말한 ‘자세를 다양하게’라는 말이 이런 거구나. 그녀는 침대 시트를 잡고 신음을 흘리다가, 묘하게 머리가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프면서도 좋다는 게 이런 뜻인가.

“……아, 아읏…….”

“여기가 좋아?”

그녀가 미묘하게 몸을 비트는 것을 느낀 그가 바로 반응했다. 그녀의 숨이 순간 멈출 정도로 자극이 있었던 곳에 정확히 왕복하며 이단의 눈이 뿌듯한 웃음을 머금었다. 아셰의 허리가 들썩일 정도로 반응이 왔던 것이다.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몸을 떨기 시작하자 움직임이 더 거칠어졌다. 그가 한 번씩 몸을 밀어붙일 때마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적나라한 소리가 났다. 숨이 점점 더 가빠질 무렵 그가 숨을 몰아쉬더니 그대로 그녀 위에 무너졌다.

“하아, 하아…….”

이단의 헐떡거리는 소리가 그녀의 귀 속에 울렸다. 다리 사이에 온갖 액들이 흥건했다. 그가 그녀의 몸을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그의 셔츠는 이미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한동안 그들은 그렇게 꼭 끌어안고 서로의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적을 깬 것은 이단이었다.

“어제보다…… 괜찮았어?”

“어. 훨씬 안 아팠어.”

그녀가 어색하게 말했다.

“너는…… 좋았어?”

그가 얕은 한숨을 쉬며 그녀를 풀어 주었다. 그녀의 머리에 팔베개를 해 주고, 옆으로 누운 그가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너무 좋아서…… 큰일이야.”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는 살짝 웃었다.

“참는다고 참는데도 왜 이렇게 좋을까.”

“뭘 참는데?”

“……많은 것을.”

“그렇게 참는 것 같지도 않던데.”

그녀가 키득키득 웃으며 아프지 않게 그의 단단한 가슴을 쳤다.

“방음 마법도 못 쳤으면서 뭘 참았다고 난리야?”

“참았어.”

이단은 어조의 변화 없이, 그녀의 몸을 천천히 쓸었다. 아셰는 그 짧은 말 속에서, 그가 ‘뭘 참았는지는 알려 주지 않겠다’라는 의도를 파악했다. 더 이상 묻지 않은 채로, 그녀는 그의 품에 더 밀착하여 안기며 눈웃음을 쳤다.

“네가 봐도, 오늘 밤에도 나보다 네가 더 좋았던 것 같지?”

“어쩔 수 없어, 여우같은 왕녀님.”

그가 귀엽다는 듯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몸을 섞으면 원래 유대감이 생기는 것인지,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따뜻했다.

“아직 너도, 나도 서로의 몸을 잘 몰라. 더 많이 해 봐야 알지.”

“그으래?”

“그래도 넌 애액이 정말 많고, 몸이 민감하여 잘 느끼는 편이니…… 분명히 더 좋아질 거야.”

아셰는 자신도 모르게, 누구와 비교하여 자신이 잘 느끼는 편이라고 판단하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질문을 좋아하지 않을 것은 뻔했기에, 대신 그의 목덜미에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헤헤 웃었다.

“그래서…….”

이단이 그녀의 긴 금발 머리를 쓸며 물었다.

“오늘 밤은 뭐가 궁금해?”

“스타람 이야기를 해 줘.”

그녀가 냉큼 말했다.

“봉쇄령이 내린 지 10년이야. 대체 그 마력도 없는 척박한 땅이 어떻게 반란군에게 뒷배가 되어 줄 정도로 성장했는지 궁금해.”

“혁명군이라니까.”

그가 그녀의 말을 정정하며 아프지 않게 그녀의 팔을 꼬집었다. 그녀의 부드럽고 말랑한 살결이 좋은지 그의 손이 그녀의 몸 곳곳을 훑었다.

“스타람 섬은 대륙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지. 제국과 접경을 맞댄 다른 국가보다 당연히 제국에 대한 충성심이 약할 수밖에 없어. 지형이 험하여 예전부터 스타람 섬은 왕의 권위가 약하고 각 지역의 영주들이 사병을 키우며 독립적으로 살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제국에 바쳐야 하는 공물에도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제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어. 그리고 마력을 모조리 뺏기고 말았는데, 지금까지도 스타람 섬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마력을 전혀 운용하지 못해. 느끼지도 못한다고 하지.”

“마법 아이템도 하나도 못 쓴다며. 그럼 요리는 어떻게 하고, 추운 날 몸은 어떻게 덥히고, 밤에 책은 어떻게 읽어? 건물은 어떻게 짓고, 사람의 몸은 어떻게 치료를 하는데? 그래서 선생님들은 스타람 섬이 아주 미개하고, 원시적이라고 하셨어.”

“처음엔 그랬지. 원시인처럼 밤에는 횃불을 들고, 요리를 할 땐 부싯돌로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는군. 그렇지만 그렇게 100년, 스타람은 마력이 들지 않는, 전기라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내. 나는 잘 모르지만, 번개가 치는 것과 원리가 똑같다고 하더군. 물론 마법처럼 편리하거나 일정하지는 않다는데…… 마법이 없어도 마법에 준하는 여러 가지 기술을 개발해 냈대. 제국보다 훨씬 더 잘살고, 더 풍요롭다는데 그건 뭐 들리는 풍문일 뿐이지.”

“……아메탄에는 그런 말이 전혀 돌지 않는데.”

“제국에서 트집을 잡아 10년 전에 봉쇄령을 내렸잖아. 그 10년 동안 놀랍도록 발전했다는군. 나도 보지 않아 잘 몰라. 오히려 이런 건 우리들보다 밀수꾼들이 더 잘 알지도 모르고. 하지만 스타람의 가장 대단한 혁신은 공화정이야. 아메탄의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셰는 눈을 반짝이며 몸을 뒤척이고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궁의 높은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스타람 섬은 작고, 왕권이 약하며 각 지역 영주들의 입김이 세다고 했지. 몇 년 전 왕이 후사 없이 죽은 뒤, 영주 중 하나였던 아카날은 어디 있는지 모를 왕의 방계 후손을 찾는 대신 자신들이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자고 주장했어. 그 주장에, 스타람 섬의 아이돌인지 뭔지 하는 유명한 가수들이 지지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고 해. 공화정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아이돌 그룹의 리더였던 한 남자가 책을 쓰는데 그게 바로 ‘나의 공화주의’라는 책이야.”

아셰는 이야기의 범위가 넓어지자 마른침을 삼키며 집중했다. 제국에서 봉쇄령을 내린 후 스타람의 현대사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대학에서도 스타람에 관련된 학문은 전혀 배우지 못했다.

“세습을 통한 지도자의 선출은 공정하지 못하다, 세습이 아닌 가장 훌륭한 자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지. ‘나의 공화주의’에서는 지도자의 선출 기준 예시로 투표를 들었지만 굳이 투표가 아니어도 돼. 그 가수의 인기에 힘입어 ‘나의 공화주의’라는 책은 스타람 섬에서 거의 필독서가 되었고, 그들이 지지하고 공화정을 제안한 아카날은 총통에 오르게 되었어. 그래서 지금 스타람의 지도자는 아카날이지.”

아셰는 가만히 누워서 생각했다. 세습이 아닌 가장 훌륭한 자가 지도자가 된다는 건 얼핏 보면 매력적인 문장이지만, 대체 누가 그 훌륭한 자를 결정한단 말인가. 오히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셰나 다니엘처럼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훌륭한 교육을 받은 뒤 서로 경쟁하는 것이 경제적인 일 아닐까. 그녀의 얼굴에 어린 의문을 보고 그가 살짝 웃었다.

“그래서 스타람은 최초로, 스타람 왕국이 아닌 스타람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아주 독특한 곳이 되었어. 마력이 자꾸만 사라지는 이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은 이제 아이템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불도 잘 피우지 못해. 하지만 오히려 스타람의 힘은 더욱더 커지고 있지. 스타람에는 게다가…… 누르기만 하면 사람을 죽이는 무기도 있다더군. 총이라고 했던가. 나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단의 이어지는 말에 아셰는 한 번 몸을 떨고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생각보다 자신이 모르는 내용이 많아 흥미롭기도 했지만 조금 무섭기도 했다. 이렇게 국제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스타람의 전기와 총은 그녀가 알지 못하는 세계였고, 어쨌든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아마 다니엘은 수사국 사람들을 통해 이 정도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왜 그렇게 결정 하나하나를 무서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아셰는 그의 품속에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공화정은 불합리해. 다들 훌륭한 지도자가 아닌 자신의 이익이 되는 사람을 고르겠지. 그 균형을 잡는 것이 현명한 왕족 아닐까? 역사적으로 우리 아메탄 왕국에서는 카를 왕이 모든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산하기관의 윤리를 제대로 설립해서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어. 그게 투표로 가능해?”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파고드는 그녀가 귀엽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춘 이단이 그녀의 종알거리는 속삭임을 계속해서 듣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브나 왕비는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에 아메탄의 모든 체계를 다시 세웠어. 그리고…… 이미 죽었지만, 내 약초학 선생님이었던 르엘라는 아메니티의 모든 사람을 합친 것보다 더 똑똑했어. 물론 아메탄 왕국은 여러 가지 사안에서 다수결로 결정하지만, 다수가 항상 옳지는 않아.”

다니엘도 루벤과의 마지막 왕위쟁탈전에서 다수결로 왕위에 올랐고, 그녀가 안겨 있는 이단 역시 회의에서 다수결로 아메탄 왕궁에 머물러도 좋다고 결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셰는 그런 건 정말 정답을 모르는 특수 상황에서나 결정하는 최악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단은 그녀의 귀에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그 얘기는 다음에 이어서 할까. 왜냐하면…….”

그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부푼 남성에 가져다 댔다.

“난 오늘은 한 번 더 할 거야.”

“아, 아플 것 같은데…….”

“그래도…….”

그는 그녀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하며 상냥하게 속삭였다. 다정한 눈빛과 어조와는 다르게 그는 그녀의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또 할 거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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