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힘 빼, 다리에.”
그가 그녀의 다리 사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셰는 그의 손에 그녀의 애액이 흥건하게 묻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서 부끄러웠다. 그가 부드럽게 그녀의 허리를 잡은 뒤 낮게 말했다.
“아플 거야.”
그녀가 다소 두려운 눈으로 이단을 바라보았다. 이단의 눈은 이미 초점이 풀려 있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권을 주는 것이란 점만은 눈치챌 수 있었다. 아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와 동시에 난생처음 느껴 보는 통증이 아릿하게 아래에서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으읏!”
“미안……. 근데…….”
그가 어느새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고, 귀에 속삭이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조금만 더…….”
“아, 아파!”
아셰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지만 이단은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귀에 입 맞춘 뒤 더 몸을 밀어붙였다. 그의 남성이 밀고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한 번도 이런 통증을 느껴 보지 못한 질의 근육들이 모두 놀라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그녀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이단은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이 들어온 뒤 잠시 멈춰 있었다.
“그, 그만…… 아파, 아픈 것 같아.”
“안 돼.”
그녀가 항의하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단은 낮게 말했다.
“……이제 내가 못 참을 것 같아. 하지만 네가 너무 아파하니 오늘은 최대한…… 빨리 끝낼게.”
그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허리를 잡고, 이단이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왕복운동을 하더니, 점차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빨라졌다. 처음 느껴 보는 이물감이 당황스러웠지만, 맞닿아 있는 체온과 적나라하게 안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이 마냥 싫지만은 않아서 아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 눈물이 고여 뿌옇게 변한 시야 속에서 이단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가 허리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며 그녀의 입술을 다시 삼켰을 때, 그녀를 안는 힘이 얼마나 거세던지 그녀는 온몸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머리가 멍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이단은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금발 머리를 쓸어 주고 있었다. 아까의 욕망이 가득하던, 초점이 흐릿하던 눈빛이 사라진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의 목소리에 걱정이 배어 있었다.
“많이 아파?”
“……괜찮아. 점점 나아지고 있어.”
아릿한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아셰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안겨 있는 남자의 몸이 상당히 탄탄하다는 것을 이제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좁은 침대에 함께 누워 있던 이단은 그녀의 푸른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넌…… 처음이 아니지?”
아셰의 말에, 이단이 슬쩍 웃었다.
“난 황궁에서 22년을 살았어. 황궁은 아메탄 왕궁과 분위기가 달라. 향내가 진동하고, 마약이 바닥에 굴러다니며, 궁녀들은 여기저기서 치마를 들어 올리고, 연회라도 열리면 모두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독한 술을 마시고 난교를 하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국의 번영 역사는 천 년이 넘어. 마력은 인류 문명의 원천이니 권태가 올 만큼 권력을 오래 누린 셈이지. 미래가 없는 사람은 1차원적인 쾌락에 몰두하기 마련이야.”
그가 그녀의 눈에 살짝 입 맞추며 말했다.
“너처럼.”
“그래서…….”
아셰는 그를 슬쩍 밀어내며 웃었다.
“처음은 아니지?”
“나는 황제의 목에 칼을 들이대기까지 했어. 그 궁의 시녀 하나를 완전히 내 편으로 만들기 전에는 힘든 일이었고……. 설마 황제의 직속 시녀가 돈이나 패물로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이단이 그녀의 허리에 슬쩍 손을 올렸다. 그가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다시 부풀어 있는 그의 하체를 느낀 아셰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더 하고 싶은데 참는 건 네가 처음이야.”
“왜…… 참아?”
“네가 아플 테니까. 적어도 오늘 밤은 참을 거야.”
그녀는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뒤로 보이는 창가에 밤이 깊게 내려 앉아 있었다.
“정말로 참지 못한 것도 네가 처음이야.”
“응?”
“더…… 기분 좋게 해 주고 싶었는데, 못 참겠더라고. 그렇게 빨리 삽입할 생각도 없었고, 네가 싫다고 하면 당연히 멈출 생각이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
그가 자세를 고쳐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아셰는 옆으로 누워 그를 바라보면서 싱긋 웃었다. 소년 시절보다 체구는 훨씬 더 커졌고, 목소리도 더 낮아졌으며 얼굴의 선도 굵어졌다.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고 있지만, 황족 특유의 오만함과 위압감도 여전했다.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욕망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가 참지 못하고 허리를 빠르게 움직일 때, 분명 그녀에 대한 소유욕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감정을 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원래 내가 좋아야 하는 건데, 너만 좋아 버렸네. 찻값은 다른 걸로 내.”
“그래야 하나.”
이단은 딱히 반박하지 않고 나른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뭘 해 줄까.”
“……이야기를 해 주는 건 어때?”
아셰는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쓰다듬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네 이야기를 해 줘. 제국의 이야기, 황족의 이야기, 반란 이야기, 스타람의 이야기, 전쟁의 이야기, 이 모든 시대의 이야기. 이 좁은 궁에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
“……네 오라비가 시킨 건 아니지? 뭐라도 캐 보라고.”
그녀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다니엘은 이 상황을 알면 널 죽일지도 몰라. 진심이야.”
이단은 그녀의 코에 한 번 입을 맞추고, 그대로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싼 뒤 그녀의 가슴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그가 장난스럽게 유두를 핥으며 간질이기 시작해서, 그녀는 꺄르르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부드러운 장난이 계속되다가, 이단이 그녀의 가슴 둔덕에 얼굴을 묻고 나른하게 물었다.
“그래, 뭐가 궁금해?”
“난 아까, 마력이 그렇게 움직이는 건 처음 봤어. 황족들은 다 그렇게 마력을 아무렇게나 다룰 수 있는 거야? 그럼 마력을 없앨 수도 있어? 아주 옛날에, 제국의 황제가 스타람의 모든 마력을 없앤 것처럼?”
그녀의 질문이 속사포처럼 쏟아지자, 이단은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다시 올라와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 주고 천천히 말을 시작했다.
“보통 우리가 마력을 공기에 비유하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활에 꼭 필요한 힘. 어떻게 사용할 수는 있지만 통제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 힘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피가 우리 황족의 혈관에는 흐르는데, 직계 존속만 가능해. 이건 건국신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아셰도 아는 내용이었지만 잠자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과 가무잡잡한 피부, 마치 핏빛 같은 머리카락과 깊은 눈매, 쭉 뻗은 날카로운 턱 선과 넓은 어깨가 달빛에 희미하게 보였다.
“현 황제가 죽으면, 내 형님과 그 아들들에게만 힘이 유지되고 우리 형제들은 모두 그 힘을 잃게 되는 셈이지. 그러나 자식이 그 부모를 살해하면 아예 그 힘이 사라진다고 전해져.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황자들은 무조건 황제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지. 최초의 신들이 전쟁을 할 때, 마력의 신 엔리히가 승리했고 그의 핏줄을 이어받은 게 우리 엔리히 황족이라고 전해지는 건 알고 있지?”
“응. 나머지 신들은 패하여 가장 황폐하고 어두운 한스팀의 사막으로 쫓겨났다고.”
어릴 때 많이 듣던 신화였다. 이제 신 같은 것에 대해서는 수도원의 사람들 빼고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아메탄은 그 흔한 건국신화조차 없는 국가였다. 아메탄은 제국의 승인을 받은 제후 국가였고 차후 왕국으로 승격되었을 뿐이었다. 아메탄의 왕족은 모두 아셰와 같이 평범한 인간이었다.
“당연히 황제는 마력의 모든 흐름을 다 알 수 있고, 자유자재로 유동할 수가 있어. 예전에 마력이 풍부했을 때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가능했다고 해. 기록에 남아 있듯이, 산을 움직이거나 거대한 건물을 올리고, 몇 날 며칠 동안 눈이 내리게 할 수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 그래도 그만한 힘을 유일하게 가진 탓에 제국은 언제나 대륙의 주인이었어.”
“……그렇지.”
“대다수의 국가들이 아메탄처럼 우리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딱 하나, 역사에서 기록할 만한 반란은 그나마 스타람 섬의 반란이었는데, 분노한 황제는 스타람 섬에 있는 모든 마력을 빼앗아 버렸어. 마력이 없으면 마법에 기반한 인간의 문명은 모두 무용지물이 돼. 스타람 섬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풀 한 포기까지 마력을 머금지 못해. 여전히 스타람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마력을 느끼지 못하고, 마법 아이템을 하나도 못 쓸 거야.”
“나도 들었어. 2왕자 루벤이 스타람과 거의 사랑에 빠져 있거든. 예전에 한 번 여행을 갔다가, 전기인가 뭔가에 흠뻑 빠져서…… 우리도 스타람의 손을 잡고 전기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귀족들에게 천하다는 말만 들었어.”
그녀가 조곤조곤 말했다. 10년 전, 전기 기술이 생각보다 융성하자 황제는 대륙 전체에 스타람 섬에 대한 봉쇄령을 내렸다. 스타람과의 교역이 끊긴 그 이후 아셰는 스타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게 되었다.
“여하튼 스타람이 모든 마력을 빼앗기고, 그 이후 제국에 반항하는 국가는 없었는데…… 마력이 줄어들기 시작한 거지. 예전 같았으면 반란이 일어난 곳에 황제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지도에서 사라졌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한 번 크게 산사태를 일으키면 마력이 모일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해. 혁명군이 계속해서 살아남는 이유이기도 하고.”
“마력이 모인다고?”
“다 썼으니 모여야지. 내가 마력은 공기와 비슷하다고 했잖아. 한 지역에서 고갈되면 다른 곳에서 천천히 움직여서 자연스럽게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해.”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