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압도적인 마법의 힘으로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마력의 신 엔리히는 황량한 사막인 한스팀으로 쫓겨 간 다른 신들을 끝까지 추적하는 대신 그를 도와준 인간 군대의 수장 유라 시아글과 사랑에 빠져 대륙 중앙에 한참을 머물렀다. 엔리히는 신으로서 인간들에게 자신의 힘인 마력을 축복으로 선물하고 마법을 가르쳐 주었으나, 결국엔 유라의 곁을 떠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인간의 유한한 삶을 선택했다. 무성이었던 그는 유라와 교합할 수 있는 인간 남성으로 현신하기 직전 유라에게 물었다.
“내가 인간으로 변해 너와 교합하여 일가를 이룰 것이다. 혹여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내가 신으로 남아 있을 때 고하라. 나는 아직 인간을 이해할 수 없어 그들의 바람을 알 수 없다.”
피를 하도 많이 뒤집어쓰는 바람에 검붉은 머리카락을 길게 휘날렸다고 전해지는 여전사 유라 시아글은 그녀의 신에게 대답했다.
“인간은 후계에 대한 본능적인 욕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핏줄이 이 대륙의 주인이 되어 당신의 힘으로 유일한 제국을 통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살펴 주십시오.”
“나의 피를 받은 자들은 마력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 이 대륙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있는가.”
그리하여 엔리히 황조가 이어지고, 신 엔리히가 점령한 대륙 땅에서 유일한 ‘제국’을 이끌게 되었다.
“인간은 특별한 힘에 대한 경외심이 있습니다. 당신의 피를 받은 혈족들은 대를 이어 늘어나니 이를 막기 위해 근친이 횡행할 것입니다. 이를 살펴 주십시오.”
“그렇다면 황제의 자리에 앉은 이와 그의 자식, 단 두 세대만 유지하도록 하겠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있는가.”
그리하여 엔리히 황족은 황제에 앉은 이와 그들의 자식들에게만 특별한 힘이 주어지게 되었다.
“인간의 잔혹함은 핏줄에도 드리우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자식이 장성하여 부모를 죽일 수 있으니 이를 살펴 주십시오.”
“그렇다면 황제의 마력을 가장 크게 하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면 이어지던 모든 핏줄의 힘을 끊도록 하겠다.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있는가.”
그리하여 황제는 유일무이하게 엄청난 마법의 힘을 갖게 되었고, 그 자식들은 황제보다는 약한 힘을 지닌 채로 아버지인 황제를 살해하면 제국의 역사까지 끊어질 수 있다는 위험 부담을 안게 되었다. 그제야 유라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신에게 안겼다.
“이제는 당신만을 원합니다.”
그녀의 신은 그녀의 검붉은 머리카락을 쓸며 속삭였다.
“내가 인간으로 현신하면 마력의 공급이 멈추고, 언젠가는 인간의 땅에 마법의 힘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가.”
“인간은 한낱 수십여 년을 살 뿐입니다. 천 년 동안 인간의 문명이 유지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녀의 신은 그녀의 검은 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내가 지금 인간으로 현신하면 대륙을 모두 차지하지 못한다. 제국의 국경을 벗어나면 황제는 마력을 추적할 수 없다. 그래도 괜찮은가.”
“인간은 자신보다 못한 존재가 꼭 필요한 법, 국력을 과시할 약소국들은 제국의 역사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후 엔리히는 검은 피부를 가진 인간 남자로 현신하여 유라와 결혼하고 슬하에 자식을 두어 엔리히 황조를 세우게 되었다. 그가 유라와 결혼한 지역을 수도로 정한 뒤 엔리히라고 이름 짓고, 넓은 땅은 그의 유일함을 기리도록 이름이 없는 ‘제국’이라고 칭했다.
그렇게 제국은 강력한 마법의 힘을 가지고 천 년 동안 대륙을 재패하게 된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나라들은 모두 어마어마한 마법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섬이라는 이유로 끝까지 저항한 스타람은 황제의 손짓 한 번에 모든 마력을 빼앗긴 채 원시 문명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사람에게도 각자 타고난 마력이 있고, 황제는 그 어떤 사람의 마력이라도 추적할 수 있었으나 제국의 국경 밖은 추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동질성을 유지하고 신의 영역을 기리기 위해 그 오랜 시간 동안 제국의 국경은 변한 적이 없었다.
『제국의 건국신화』 중 발췌, 이단 아르마스 엔리히 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