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113/256)

  

23화.

“아마 전기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꾸는 걸 텐데…… 이게 코드고…… 아, 수사국 직원 분이라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전기공학을 공부했던 학자인지라.”

“……아시는 물건입니까?”

“아뇨. 교류가 끊기고 나서 스타람 물건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

“그럼 이게 어떻게 하면 작동하는지 아십니까?”

“전기가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제가 잘 모릅니다. 스타람의 기술이어서요. 10년 전 물건이라면 잘 알 텐데…….”

직원이 체스트에게 관심을 끊고 리한에게 다시 물었다.

“특이 사항 없습니까?”

“없는데요? 그냥 다리미인데.”

“왜 이런 물건이 밀수품 목록에 있는지 짐작 가시는 바 없습니까? 다른 기능이라든가…….”

“뭐, 전기가 통하면 공격 무기는 될 수 있겠죠. 뜨거우니까.”

리한의 대답에 직원이 한숨을 쉬며 다리미를 받아 들었다. 체스트가 머뭇거리다가 겨우 용기를 낸다는 듯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예?”

“특이 사항 없는 물건이면, 제가 가지고 있으면 안 될까요? 그냥 개인적인 연구 용도로…….”

“밀수품이라 불가합니다. 게다가 어떤 장치가 숨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한숨을 쉬는 체스트를 뒤로하고, 직원이 이만 떠나겠다는 듯이 리한에게 목례를 했다.

“앞으로도, 스타람 물건에 대한 협조 부탁드립니다. 사안이 급해 미리 연락하지 못하고 온 점 죄송합니다.”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요.”

리한은 여유 있게 웃었다. 어쨌든 수사국 덕분에 유진의 비밀을 알게 된 뒤에 꽤 유쾌했으니, 이 정도는 도와줄 수 있었다.

* * *

수사국장, 루카스는 과장인 와일스의 보고를 받고 점점 더 미궁에 빠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쥐새끼 같은 놈, 또 빠져나갔어?”

“이번에는 확실히 추적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경로가 들킨 걸 눈치챈 모양입니다.”

“대체 어떻게 얽혀 있는지 알 수가 없군. 하지만 리한 카드민이 이 놀이패 중 하나라는 건 확실해.”

루카스가 담배를 비벼 끄며 중얼거렸다.

“느낌이 안 좋아. 제국에서도 눈치챘을 것 같군. 그래서 부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어. 제국에서도 확인해 보고 싶은 것 아닐까?”

“만일…… 이번 일이 들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상상하고 싶지 않아. 당장 선전 포고 감이야. 문제는 우리가 일단 사태 파악이 완벽하게 안 된다는 점이야. 일단 정확히 알아야 대처를 할 텐데 말이야.”

침울한 침묵이 루카스와 와일스 둘뿐인 수사국 회의실에 내려앉았다. 수사국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책임자, 루카스는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지금 대화하는 사안은 수사국 내에서도 몇 명 모르는 사실이었다.

“정리를 한번 해 볼까…….”

“리한 카드민이 몇만 명의 팬을 끌고 국경을 넘을 때…… 제 2황자인 이단이 함께 넘어왔습니다. 황제 암살에 실패한 뒤 급히 도피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비밀리에 루벤 왕자님께 몸을 의탁해 다니엘 전하와 독대하게 되었고…….”

“후…….”

“다니엘 전하는 한 달여간의 보호 요청을 비밀리에 받아들이셨으며…… 이단 황자는 약속대로라면 곧 정비된 반란군에 합류해서 떠나겠죠. 이미 반란군은 이단 황자를 구심점으로 공화정을 내세웠고요. 그가 떠나고 반란군에 합류하면 아마 임시 총독으로 임명될 겁니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루카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와일스가 천 번도 했던 질문을 다시 되뇌었다.

“전하는 왜…… 공화주의자의 편을 들었을까요?”

“제국이 지는 해라는 판단을 하셨겠지. 반란군이 승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거야. 대놓고 지지하지는 않지만, 몰래 균형을 잡으려고 하신 것 같아. 어떻게 보면 현명한 처신이지만…… 문제는…… 스타람 놈들은 대륙 전체를 먹으려는 놈들이야. 우리를 가만히 둘 리가 없지.”

“이단 황자를 그대로 제국에 넘기기엔 반란군의 기세가 등등하니 어쩔 수 없으셨겠지요. 일단은 시간을 벌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패를 선택해도 손해를 보는 것은…… 약소국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요.”

“……위험해. 아무래도 위험해…… 일단 파악이 잘 안 되는 것이 위험해. 갑자기 지하 세계에서 화폐가 급격히 움직이질 않나, 스타람 물건들이 대량으로 밀수되지를 않나…… ‘킹’에 대해서는 아직 아는 것이 없고…….”

루카스가 거칠한 수염을 손으로 쓸었다.

“한 가지는 확실해. 리한 카드민은 이 패 중에 하나야. 그 하숙집에서 나온 물건들 중 이상한 건 없었다고?”

“예…… 그냥 단순히 개인 수집품으로 보였습니다. 유진 유니트가 중학생 때부터 타르안의 팬이었던 것도 사실인 듯하고요. 대학생 때는 팬픽인가 하는 2차 창작물을 동기들 사이에서 돌려보기도 했다는군요.”

“그게 다일 리가 없어. 분명히 뭔가가 더 있어. 이 경로를 보면…… 그런데 이 와중에 유진 유니트와 리한 카드민을 제국에 보낸다…… 위험해. 리한 카드민이 제국에서 어떤 짓을 할 줄 알고. 황제 앞에서 이단 황자를 아메탄 왕국에 보내는데 일조했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기만 하면 바로 선전포고 들어올 거야.”

“리한 카드민이 들어온 이후 브라만거리 내의 현금 흐름이 확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리한 카드민이 5년 전에 쓴 책을 입수했는데…… 그냥 이놈은 뼛속까지 공화주의자입니다. 제국의 반란군들에게는 거의 필독서라고 하더군요. 사람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이 자신의 철학을 바꿀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수사국 직원 하나를 위장한 채 동행시켜. 제국으로 가는 길에, 전투에 휘말리면 어떻게든 비밀리에 리한 카드민을 암살한다. 외교적 문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전하께는 보고하지 말고, 수사국 독단 결정으로 해. 문제가 생기면 내가 책임질 테니.”

여기서 책임은 처형까지 각오한 말이었다. 그 말의 무게를 아는 와일스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 * *

“……그렇게 됐어요.”

유진은 퀭한 얼굴로 리한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황제가 반란군을 진압하러 가는데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 황제가 리한의 공연을 친히 보고 싶어하므로 그 지원군에 껴서 제국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 당연히 유진이 동행한다는 이야기까지 끝나자 리한이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상관없어. 실제로 제국 땅을 건너오기도 했고.”

“…….”

“네가 문제지.”

“제가 왜요?”

“너 전투를 본 적 있어?”

“…….”

“무서울 텐데.”

“리한은요?”

“전투를 해 본 적도 있지.”

리한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둘 다 어쨌든 이미 결정 난 사안이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진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제 폐하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못해.”

리한이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찬양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노래를 불러? 희대의 폭군이라는 평가가 대륙 내에 자자한데.”

“그럼 어쩌려고요?”

“제국의 국가 정도는 불러 줄 수 있지. 하지만 내가 직접 노래를 쓰지는 못해. 죽으면 죽었지 그런 건 안 해.”

생각보다 리한이 몹시 단호해서 유진은 살짝 놀랐다. 하긴, 공연을 하라고 했지 황제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라고는 안 했으니 어떻게 하면 잘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정 마음에 걸리면 군가라도 몇 곡 부르면 되니까…… 유진이 일정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말을 다시 꺼낼 때였다. 거칠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리한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체, 체스트? 노엘! 무슨 짓이야!”

유진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후드를 뒤집어쓴 노엘이 하얗게 질린 체스트의 뒤에서 그녀의 목에 칼을 대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었어. 알겠지만, 내가 수배 중이라.”

노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길게 못 있어. 유진, 제국에 간다는 게 사실이야?”

“어……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어? 그렇게 됐다고?”

유진의 얼떨떨한 목소리에 노엘이 어이없다는 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가 손에 든 칼이 부들부들 떨리자 체스트가 눈을 질끈 감았다. 60이 넘은 노인에게는 가혹하다고 생각하며 유진이 그만두라고 화를 내려는데, 노엘이 재빠르게 속삭였다.

“거긴 내란 중이야. 까딱하다가는 전투에 휘말려. 가지 마. 거기서는 공격 마법도 못 써. 넌 칼 한번도 휘두르지 못하는데…….”

“그 말 하러 온 거야?”

유진이 천천히 말했다.

“지금 나보고, 제국에 가지 말라는 말 한마디를 하려고, 체스트 목에 칼까지 겨누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온 거야?”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이건 일이야. 명령이고, 당연히 가야 돼. 내가 가고 싶다, 가고 싶지 않다를 결정할 사안이 아냐. 노엘, 그리고 나는 지금 신고의 의무가…….”

“다 저 자식 때문이지?”

노엘이 유진의 뒤에 있던 리한을 쏘아보며 말했다.

“저 자식을 담당하는 바람에, 그런 위험한 곳까지 가야 되는 거잖아.”

리한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지만 이미 사태 파악을 완료한 이후였다. 저 처음 보는 갈색 머리의 남자가 노엘 하이트라는 사람이고, 유진과 체스트가 한 번 말한 적 있는 잡화점을 하고 있다던 유진의 오랜 친구라는 것도 기억해 냈다. 무엇보다, 유진이 타르안의 밀수품들을 잔뜩 구매한 밀수업자라고도 했다.

“걱정하지 마.”

리한이 여유롭게 받아쳤다.

“뭐?”

“내 한 몸과 유진 정도는 지킬 수 있어.”

“마법도 못 쓰는 게…….”

“어차피 공격 마법은 제국 땅에서 아무도 못 쓴다면서. 아메탄보다 안전해.”

리한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노엘이 더 쏘아붙이려는데, 리한이 부드럽게 덧붙였다.

“믿어도 돼.”

“내가 널 어떻게 믿고…….”

“난 유진 유니트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

정말로 담백한 말투였기 때문에 유진은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난 내 담당자를 참 좋아해. 그러니 어떻게든 지킬 거야.”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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