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02/256)

  

12화.

“둘 다 그만!”

유진은 자신의 허리를 감싼 그의 팔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그녀의 말을 무시한 리한의 팔에 더 센 힘이 들어갔다. 유진은 그의 등에 완벽히 가려져 상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버둥거리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리한! 어차피 못 이겨요! 수사국 직원이란 말이에요! 마력을 몸으로 쓰는 애들이라 어차피 스타람 사람이 이길 수 없어요!”

속사포처럼 쏟아 낸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유진은 상대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수사국의 제복은 알아보았던 것이다.

“행정국의 유진 유니트, 리한 카드민의 담당자입니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공무집행 방해로 징계 사안입니다.”

“공무집행 방해는 우리 쪽에서 걸고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당장 비키세요.”

남자의 공격이 멈추고,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유진이 힘을 뺀 리한의 팔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와 리한의 앞에 섰다. 리한은 자신의 앞에 선 작은 여자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쪽 팔에 조금만 힘을 줘도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 꼬마 같은 여자가, 마치 자신을 지키겠다는 제스처로 그를 뒤에 두고 당당히 서 있었다.

“갑자기 공격을 한 의도가 뭐죠? 제게는 특별 관리 대상자의 신변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유진은 똑 부러지는 말투로 말했다. 수사국의 제복을 입고 있지만 전혀 얼굴을 모르는 남자였다. 그녀가 모든 수사국 직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기도 했고, 아니면 변장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다만 산하기관의 제복은 마법이 걸려 있어 아무나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었기 때문에 수사국에서 나온 것은 확실했다.

“심문을 위한 사전 작업입니다.”

“입국 시 심문이 끝났다고 들었는데요. 카이든 루스에게 직접 심문 결과를 인계받았습니다.”

“그건 입국을 위한 심문이고.”

수사국 남자의 무뚝뚝한 말이 이어졌다.

“리한 카드민, 지금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직업은 가수인데, 체술 수준이 대단히 높군요. 그리고…….”

유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실제로, 아무리 마법 공격을 섞지 않았다지만 수사국 직원을 대상으로 이 정도 호각을 다퉜다는 것은 상당히 대단한 경지라는 뜻이었다. 수사국 직원이 마법을 쓰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의 실력을 보기 위한 맞춤형 기습이었고, 그는 유진을 지켜 가면서 반사적으로 자신의 체술을 보여 준 셈이었다.

“……미행까지 눈치챘죠? 마력이 없는 것이 확실한 당신이 이 정도 무술 경지라면 타고난 것도 있어야 하지만 분명히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것이 당연합니다.”

“…….”

“왜 아메탄에 온 겁니까? 이유가 뭐죠?”

“그때 대답했는데요.”

리한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공화정이 싫고, 왕정이나 제정이 좋습니다. 정치적 이유의 망명입니다.”

유진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원칙적으로 수사국의 심문은 행정국의 일 처리보다 항상 우선순위에 있었다. 행정국에서 수사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 이런 것에서 기인했다. 행정국은 행정국만의 체계가 있는데, 수사국에서는 그 체계를 쉽게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사국에서 조사하는 일들 모두가 왕에게 보고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한 독립성을 가진 기관이라 삶에 방해가 되지 말라는 왕명을 댈 수도 없었다.

“그걸 누가 믿지? 제국의 공화주의자들에게 필독서라는 책도 썼으면서.”

수사국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유진 유니트,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 주셨으면 합니다. 체술 실력이 확인된 이상 심문이 불가피합니다.”

“심문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신변 보호의 의무가 있습니다. 마법으로 인한 상해가 의심되는 수사국 심문에 동석하겠습니다.”

유진이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게다가 담당자로서 당연히 관련된 모든 사항을 알아야 합니다. 어차피 전례에 따라 심문 결과는 보고서 형태로 제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제가 자리를 비킬 이유가 없습니다.”

수사국의 남자는 유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물론 그도 행정국의 직원을 속으로 욕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행정국 직원들은 쓸데없이 문서에 집착하고 큰 그림을 보지 못 한다며 뒤에서 짜증내는 것이 수사국 직원들이었으니까. 그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유진 유니트, 본인이 아메탄 왕국의 산하기관 직원임을 잊지 마십시오. 리한 카드민의 안전보다는 국가의 이익이 우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행정국의 강령에 의해 판단할 뿐입니다.”

빈틈없이 받아치는 유진의 뒷모습을 리한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유진은 침을 꼴깍 삼켰다. 리한은 모르겠지만 거대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둘러싸고 방음 마법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녀가 한때 리한의 방에 쳤던 방음 마법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하고 정교했다. 수사국 직원들만 쓸 수 있다는 여러 가지 비기 중 하나가 분명했다. 남자가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당신이 지금 스타람의 선거에서 크게 승리해 총통이 된 아카날의 오른팔이었던 걸 우리가 모를 줄 알아? 아무리 교역이 끊겼어도 우리에게 그 정도 정보는 있어. 선거에서 이긴 대가도 크게 받았다고 들었는데 이제 와서 다 버리고 아메탄에 왔다는 건…… 그것도 몰래 온 것도 아니고, 대륙을 건너 온갖 요란을 다 떨면서 제국도 아닌 우리나라에 왔다는 건…….”

리한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유진은 아카날이라는 사람도 잘 모르고, 스타람의 선거라든가 총통이라든가 하는 어휘도 낯설었지만 리한이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고 수사국 남자의 말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타람이 제국 반란군의 뒤에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지. 무슨 의도로 여기 왔지?”

유진의 눈이 커졌다. 제국에서 황제의 횡포에 반발하는 반란군이 꽤나 골칫거리라고 들었는데 그 뒤에 스타람 섬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있어도 수사국 직원이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봐서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은 아닌 듯했다. 아마 노엘 정도의 정보력을 가졌다면 공공연히 알고 있을 것이 뻔했다. 유진은 새삼 행정국에만 있는 자신이 뭘 아냐며, 리한은 위험한 사람이라고 소리치던 노엘이 생각났다.

“모두 사실이다. 처음 입국할 때도 밝혔지만…….”

남자가 반말로 다그치자 리한도 반말로 대답했다. 마력 하나 없는 그에게서 또다시 오만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유진은 뒤에 있는 그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무대를 장악했던 인간 고유의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권력 옆에 있었더니 공화정에 신물이 났을 뿐.”

“아카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가. 혹시 제국과의 전쟁을 반대하는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넘길 정보가 있는가.”

“다 입국할 때 대답했다. 이전 심문 기록이나 읽어 보고 와.”

“그렇다면 이 정도의 체술이 가능한 이유가 뭐지?”

“공화정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평화롭지 않아. 나는 아카날을 지지했고, 반대편 정당으로부터 많은 위협을 받았고, 그래서 익힌 것뿐이지.”

“……네가 국경을 넘어왔을 때, 제국의 2황자 이단의 신변이 모호해졌다. 알고 있겠지만 제국의 2황자는 반란군의 숨은 세력이고.”

유진은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제국의 2황자가 반란군의 뒷배경이라니 또 이건 무슨 말인가. 자신이 아는 건 또 얼마나 적은 범위인지. 제국의 황제가 포악하여 반란군이 일어났다, 그래서 제국이 혼란스럽다, 이 정도만 알고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메탄 왕국은 제국에 충성을 다하고 있는 약소국이지만 어쨌든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생각했고, 황제의 마력이 워낙에 세니 반란군도 결국엔 진압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반란군의 뒤에 황제의 아들까지 있다고?

“몰랐다.”

리한이 짧게 말했다.

“분명 몰랐다고 대답했다. 만일…….”

수사국의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경고했다.

“조사 결과 두 사건에 관련이 있는 경우 마법을 사용한 심문을 해도 되겠는가?”

“마법?”

“신체적인 고통이 따를 수 있다.”

리한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내가 관련이 있다고 인정한다면.”

“다음, 6개월 전부터 아메탄 왕국 지하 경제에서 거대한 자본 이동이 있었다. 스타람 물건들의 밀수와 관련되어 있는데, 대다수가 들키더라도 처벌 단계가 낮은 타르안의 물품들에 섞여 들어왔다는 제보가 있었지.”

유진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리한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는 바 없다.”

리한의 짧은 대답이 수사국 남자를 만족시킬 리 없었다. 결국엔 모른다, 아는 것이 없다 등으로 일관된 진술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불신의 눈으로 리한을 한참 쏘아보다가, 짜증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추가적인 정보가 확인되면 또 필요할 시에 추가 심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만일 진술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 * *

수사국의 남자가 사라지고,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유진은 자신의 방 옷장에 가득 쌓여 있는 타르안의 밀수품들이 걱정되어 속이 시끄러웠다. 타르안의 팬은 전 대륙에 걸쳐 그 수가 적다고 할 수 없었으니, LP나 포스터, 공연 사진 등의 밀수 역시 흔하게 이루어졌다. 다른 밀수품들에 비해 위험한 것도 아니고, 상권을 위협하는 것도 아니므로 나라 차원에서도 쉽게 눈감아 주는 품목이라고 노엘이 말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역이용해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보통 일은 아니었다.

“……유진?”

“어?”

유진이 손톱을 깨물며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누군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이었던 카이든과 리젠이었다. 카이든과 리한은 맨 처음 심문에서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어색하게 목례했다. 유진이 리젠에게 당황한 듯 물었다.

“신혼여행 간 거 아니야? 웬 도서관?”

“아.”

리젠은 구불거리는 갈색 머리를 뒤로 넘기며 생긋 웃었다.

“떠나기 전에 추억이 있었던 곳을 한 번씩 돌아보기로 했거든. 음…… 저기 체력단련실하고, 강의실을 돌아서 마지막으로 도서관에 온 거야. 이제 막 학교를 벗어나려던 참이었는데…… 넌?”

“나도.”

유진은 무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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