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래? 알았어. 행정국에서 보관할게.”
스타람의 사람이 망명을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스타람 사람들은 마력을 아예 운용하지 못하며 따라서 마법을 쓰지 못해 대륙에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꽤나 불편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마력을 가지지 못한 대륙의 사람이 스타람 섬으로 망명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어도, 그 반대가 극히 드문 이유였다. 게다가 제국도 아닌, 제국에 공물을 바치는 처지의 약소국인 아메탄 왕국에 망명한 것은 봉쇄령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처음 리한이 국경을 넘어왔을 때 수사국에서 그를 가장 먼저 데려갔다. 이런저런 조사 끝에 행정국에 넘겼다는 것은 그에게서 딱히 수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고서를 챙기고 일어나려는 유진에게 카이든이 대뜸 말했다.
“유진, 사적으로 줄 것이 있는데 잠시 밖에서 걸을까?”
“뭐?”
유진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유진과 카이든은 전혀 친한 사이가 아니었고, 다만 성적 상위권으로 서로의 존재만 의식하고 있어 데면데면했다. 카이든도 유진도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이성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줄 것’과 ‘함께 밖에서 걷다’라는 말이 모두 어색했다. 경악에 가까운 유진의 표정에 별로 놀라지도 않고 카이든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유진은 어쩔 수 없이 발을 질질 끌며 그를 따라 행정국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행정국 앞 정원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범한 소음 속에서 다소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한 카이든이 팔짱을 끼고 따라오고 있는 유진에게 조용히 말했다.
“리한을 너희 하숙집에 데려갔다며?”
“수사국 무섭네.”
유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보력이 대단하구나. 착하게 살아야겠어. 아직 과장님께도 보고하지 않았는데. 괜히 수사국 사람들이 바쁜 게 아니네.”
유진의 가벼운 말투에도 카이든의 굳은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가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부탁이 있어.”
“흠.”
“특이 사항이나 네가 보기에 수상한 점이 있으면 꼭 수사국에 보고해 줘. 아무래도 이상한 점이 많으니까.”
“……예를 들어?”
“…….”
“수사국의 고급 정보는 줄 수 없지만, 나는 아는 걸 다 말해 달라?”
유진이 살짝 빈정대는 말투로 말하자, 카이든이 한숨을 쉬었다. 그가 말을 고르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지. 스타람 섬에서 유명한 그룹 가수였다며? 노래 부르고 공연하고, 춤추는 그런 사람? 아메탄에는 그룹으로 공연을 하는 팀은 없지만…….”
“뭐, 그렇지.”
“그런데 몸이 노래 부르는 사람의 몸이 아니야.”
카이든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유진이 무표정하게 눈을 깜빡였다.
“……무인의 몸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군인. 가끔가끔 나오는 단어들도…….”
“보면 아냐?”
“어. 보면 알아.”
유진의 무뚝뚝한 반문에 카이든은 단호하게 말했다.
“스타람 섬에서 오로지 수영으로 작은 섬을 지나 대륙까지 건너온 남자야. 보통 사람은 힘들어. 특히나 스타람 태생은 마법도 못 쓰니…… 공연만 하는 음유 시인이라고 보기엔 미심쩍은 면이 많아.”
“우리나라의 음유 시인이랑…… 스타람의 아이돌은 원래 좀 다른 개념이야. 춤도 추고 그러니까 몸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아, 무도회에서 빙빙 도는 그런 거 말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유진이 팔짱을 끼고 발로 땅을 툭툭 치며 대답했다.
“우리 하숙집 할머니가…… 스타람을 연구했던 학자라서…… 그냥 주워들었어.”
“그렇더군. 스타람의 전기공학을 연구하던 사람이었지, 아마?”
“역시 수사국 무섭네.”
유진의 말투에 살짝 빈정거림이 들어간 것은, 행정국과 수사국은 예로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뒷배경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였다. 카이든도 내색은 안 하지만 행정국 직원들이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서 문서로 참견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수사국은 걸핏하면 원칙에도 안 맞는 일을 해내서 뒤처리가 곤란하게 만든다고 여기고 있었다.
“여하튼 특이한 사항이 관찰되면 말해 줘. 부탁할게.”
카이든이 무뚝뚝하게 말하자 유진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부탁이라면, 안 들어줘도 되는 거지?”
“…….”
“뭐가 특이한 사항이고, 뭐가 특이하지 않은 사항인지 나는 판단 못 해. 그런 주관이 개입된 일 같은 건 안 하고 싶어.”
“유진.”
왕립마법학교 동기라면 누구나 유진의 체술이 형편없다는 것을 모두 알았다. 육체적 능력은 어떤 종류의 편견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유진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유진이 상당히 유순한 성격일 것이라고 판단하곤 했다. 거기엔 몹시 작은 체격과, 동글동글한 얼굴에 어린아이같이 귀염상인 유진의 외모도 한몫을 했다.
동그랗고 순진해 보이는 초록색 눈동자와 길게 늘어진 은발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 같기도 했다. 그리고 절대 앞에 나서지 않는 성격, 주목받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대다수가 유진의 진짜 성격을 잘 알지 못 했다.
“우리는 어떤 역사적인 흐름 앞에 서 있어. 우리가 그러고 싶지 않아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르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아메탄 왕국이 그 거대한 흐름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면 이상한 사건들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어. 이건 단순히 네 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이라는 게 내 인생보다 중요해?”
유진을 잘 몰랐던 것은 카이든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그녀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그럭저럭 성적이 좋고,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고, 그냥 안정적이고 수동적인 일을 좋아하는 여자애라고 생각했는데 유진은 생각보다 자신의 자아가 굉장히 센 사람이었다. 단순히 부탁만 하려던 카이든은 유진의 단호한 반응에 살짝 당황했다.
“나도 알아. 마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제국의 반란은 쉽게 진압될 것 같지 않고, 스타람은 마법 없이도 거대한 문명을 이뤘고. 이 모든 것이 변화를 일으킬 때가 있겠지. 그 때가 지금일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게 내 인생보다 중요해?”
유진은 순간, ‘내 인생은 내 인생이지.’라고 말했던 얄미운 어떤 목소리가 생각났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내가 무언가 이상한 걸 발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정말 이상한 걸까? 내 주관이 개입되어 더 이상한 방향,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그게 싫어. 끊임없이 모든 상황에서 생각해야 하잖아. 이건 이상한가,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이건 의미가 있는 행동인가, 이건 의미가 없는 행동인가. 그런 건 똑똑하고 감이 좋은 수사국 사람들이나 해야지.”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라…….”
“차라리 리한 카드민이 삼시 세끼 뭐 먹었는지 기록하라고 하면 하겠어. 아무 생각 없이 하면 되는 일이고, 끝이 있는 업무니까. 물론 초과 근무 수당을 챙겨 준다는 조건하에 말이야. 하지만 내 눈에 이상한 사안이 보이면 말해 달라는 건 못해. 그건 내 일상을 침투하는 일이야.”
“유진, 아메탄이 흔들리면 네 인생이 침투당할 수도 있어.”
“미안하지만 내겐 일상이 인생이라.”
유진은 억지 미소도 보여 주지 않은 채,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원래 유진이 웃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대다수의 사람에게 무표정의 담담한 얼굴만 보여 주었다.
“부탁 같은 거 하지 말고, 차라리 공증서나 공문을 보내. 관련, 사안, 기간, 금액, 참조문서 등 행정국 문서 서식에 맞춰서. 그럼 그대로 해 줄게. 대화 끝났지? 이제 들어가 볼게.”
“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행정국 직원들이 그러면 그렇지.’ 같은 푸념을 속으로 했을 것이다. 유진이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카이든이 체념했다는 한숨을 한 번 쉬고, 가방에서 작은 카드를 하나 꺼냈다.
“이건 사적으로 줄 것.”
“응?”
“……청첩장이야.”
유진은 꽃무늬가 그려져 있는 카드 하나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신부와 신랑의 이름을 확인한 그녀가 놀란 눈으로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물었다.
“약제국의 리젠 하카트? 우리 동기였던 애, 맞아?”
“……어. 그렇게 됐어. 아는 사람이 꽤 많은데, 넌 몰랐나 보네.”
“남의 사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따로 만나는 동기도 없고. 여하튼 축하해. 난 너희 둘이 사이가 별로 안 좋은 줄 알았는데…….”
“뭐, 사람 일 모르는 거지. 이번 주 토요일이야. 올 수 있으면 와 줘.”
유진은 다시 평정을 찾은 얼굴로,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결재는 오후가 다 되어서야 났다. 어제 유진이 작성한 보고서는 유명인이 망명한 경우 주거와 생활보조금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에 대한 것이었는데, 주거의 경우 국가의 관리를 위해 지정한 하숙집 몇 곳에서 지내야 하고 최소의 생활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과장, 차장, 부장을 거쳐 국장의 결재까지 난 뒤, 그녀의 직속 상사인 키탄은 한숨을 쉬며 그녀를 불렀다.
“여기 이 조항 있잖아.”
“……네.”
“최소한의 생활비 지원…… 이게 조금 형평성에 어긋난 것 같다는 국장님의 말씀이 계셨어. 일단 특별 관리 대상의 기준을 좀 더 정확히 잡아야 해. 그냥 외국인에게는 우리가 생활비를 1년이나 지원해 주지는 않잖아. 어떤 외국인이 망명할 때 특별 관리 대상인지, 그리고 생활비를 지급해야 할 명분은 뭔지 추가해서 조항을 만들어 와.”
“…….”
유진은 입술을 깨물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어투로 그녀가 어쩔 수 없이 물었다.
“참조할…… 문서나 전례는요?”
“……완전히 연관되는 건 없어. 네 재량이야.”
“아…….”
유진이 완연하게 난색을 표하자, 키탄이 미안하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
“물론, 행정국에서 이런 일은 상당히 예외라는 건 알아. 해 보지 않은 일이라 더 힘들겠지. 그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고……. 네가 첫날, 행정국 입사 동기를 물었을 때 절차대로만 하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 것도, 누가 해도 결과가 똑같은 일을 하고 싶다고 한 것도, 물론 다 기억하고 있지만…….”
“…….”
“그래도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는 없어.”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