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그의 검지가 그녀의 여성을 세게 누르다가, 부드럽게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녀의 몸을 확실히 알아챈 그는 이제 더 이상 처음처럼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서툴지도 않았다. 왜 이렇게 잘하냐는 그녀의 짜증 섞인 말투에 ‘난 원래 뭐든 잘해’라며 얄밉게 대꾸하기도 했다.
그녀가 몸을 떨며 허리를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가 불쑥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 확 들어오는 충만함에 그녀가 순간 숨을 삼켰다. 마차가 덜컹이는 것보다 더 격렬하게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한쪽 팔은 잔뜩 힘이 들어가 의자 한편을 잡은 채로, 한쪽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은 채였다.
“아…….”
카이든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리젠…….”
등을 보여 주기 싫어하던 리젠 때문에, 처음으로 하는 자세였다. 그녀는 더욱 더 깊게 들어오는 그의 남성을 느끼며 숨을 몰아쉬었다. 신음 소리가 자꾸 나와서 참느라고 더 이를 악물다가, 결국 참지 못해 끙끙거리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카이든도 마찬가지인지, 그녀를 더 꽉 끌어안으며 그녀의 등에 계속 입을 맞췄다.
점차 그녀가 절정에 올라가는 것을 눈치챘는지, 그가 홀연히 몸을 빼냈다. 허전함에 숨을 내쉴 틈도 없이 그가 그녀의 몸을 돌려서 허리를 잡고 그와 몸을 포개도록 앉혔다. 그가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고, 한 손으로는 다시 다리 사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그녀의 귀를 물었다.
“말해 줘.”
“……어?”
“얼른.”
“진짜, 너…….”
그의 손가락이 점차 그녀의 질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녀의 다리를 꽉 붙잡은 채로 그가 재촉하듯 말했다. 이미 그들은 루스에서의 첫날밤 이후 누가 그랬냐는 듯이 손님방을 그대로 비운 채 함께 지냈고, 누가 왕년의 모범생 아니랄까 봐 서로의 몸을 충분히 이해하며 기억하고 있었다.
“얼른.”
그가 그녀의 스웨터를 더 밀어 올리며 약 올리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올 듯 말 듯 한 쾌락이 그녀의 귓가까지 올라오는 듯했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신음 소리를 삼켰다.
“……너 정말…….”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귓불을 간지럽혔다.
“……넣어 줘.”
그녀의 속삭임이 들리자마자 그가 양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들어, 그 자세 그대로 삽입을 시도했다. 마차가 순간 또 덜컹거려, 리젠이 한 번 튕겨 올라가면서 피스톤 운동이 시작되자 카이든이 그녀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
“……아…… 리젠…….”
움직임이 격렬해지면서, 그들의 허리가 빠르게 움직이면서 리젠은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을 쥐고 세게 몰아가는 하체와는 대비되게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가 다시 빠르게 한 번 쳐올리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마차의 문손잡이를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카이든이 놓치지 않고 그 각도 그대로 피스톤 운동을 계속하는 바람에, 그녀의 볼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쾌락 때문에 몸을 떠는 것을 확인한 그가 허리를 더 세게 움직였다.
“나도…….”
그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의 눈이 풀려 그녀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못 참겠어…….”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밀착된 그의 남성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가 사정 후에도 몇 번 움직이다가, 그녀를 꽉 끌어안고 한참을 헐떡거렸다. 정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몸이 축 늘어졌다. 그녀가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잡아 그의 몸에 기대게 한 뒤, 그가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울었네.”
리젠은 대답할 기운도 없어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눈물을 닦아 주고, 또다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녀를 꽉 끌어안은 그의 팔에 기대어, 그녀가 숨을 가다듬었다. 리젠은 물론 정사 그 자체도 좋았지만, 그 이후 서로 나른한 상태로 끌어안은 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았다. 카이든은 항상 그녀를 안아 주며 따뜻하게 토닥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몰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서.”
“너무 좋았나 봐.”
카이든은 자신이 대답하고 나서도 웃긴지 키득대다가 티슈를 꺼내 그녀의 밑에서 흐르고 있던 애액과 정액을 닦아 주었다. 여전히 그녀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리젠은 몸에 힘을 뺀 채 담요를 덮어 주는 그에게 기대어 있다가 문득 말했다.
“카이든.”
“왜?”
“나랑 어디 좀 같이 가 줄 수 있어?”
“당연하지.”
그가 전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난 리젠 하카트의 베갯머리송사는 무조건 다 들어줄 거야.”
그녀는 잠시 그의 체온을 느끼며 작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전혀 처음 보는 나무, 이름 모를 작은 호수, 특이한 빛깔을 가진 새들이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의 삶은 사실 거의 다 아메니티에서 이루어졌고, 앞만 보고 달렸던 학창 시절 이후에도 하루하루가 급박하게 돌아갔다.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거의 휴식조차 하지 않았던 퇴근 이후의 삶, 르엘라가 연관된 것을 알고 나서 미친 듯이 단서를 추적해 갔던 의심의 기간, 그리고 정말 별별 일 다 겪었던 최종 재판까지. 다시 아메니티로 돌아가면, 그녀에게는 또 다른 여유가 있는 삶이, 정말로 그녀를 되돌아볼 수 있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도저히 나, 혼자서는 못 갈 것 같았던 곳이 있어.”
그리고 그 새로운 삶에는, 그녀의 아주 깊은 곳에 있는 슬픔까지 다독여 줄 수 있는 남자가 늘 함께할 테니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고모가 죽고 나서는 더더욱 못 갔어. 또다시 거절당하고, 혼자 돌아오는 길이 너무 슬플까 봐. 정말로 세상에 나 혼자일 것 같아서.”
카이든이 그녀의 손을 단단히 잡아 주었다.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빠를 보러 가고 싶어. 열 살 때 이후로 처음이지만. 지금은 내 얼굴이라도 봐 주려나? 한 번도 나한테 찾아오지 않은 걸 봐서…… 아마 평생 보고 싶지 않아 하실 수는 있지만…… 나는 그래도 내 뿌리를 한 번은 확인해 보고 싶거든.”
“……가자.”
그가 그녀의 이마에 입 맞추며 말했다.
“같이 가자.”
자신의 품을 파고드는 리젠을 꽉 안고, 그는 세상 어디든 함께 가 줄 듯했다.
“또다시 거절당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이렇게 널 꼭 안고서…….”
리젠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은 채로 울먹이던 열 살배기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내가 더 유명한 사람이 되면, 내가 정말 잘 자란 사람이 되면, 내가 정말 사랑받을 만한 아이가 되면 아버지가 다시 나를 찾을지도 몰라. 울고 생떼 부리고 짜증내면 고모도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몰라. 그때부터 울음은 삼키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으며, 공부와 성적에 매달렸었다.
“괜찮다고, 이 세상에 와 줘서 너무 고맙다고, 내가 너를 만난 건 모든 신께 기도해야 할 기적이라고 끊임없이 말해 줄 거야. 그러니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널 영원히 사랑한다고.”
그 낯선 땅에서도,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던 사람. 혼자였던 것도 모르는 채로 혼자 웅크리고 있었던 그 어느 날, 다가와 손을 잡아 주고 자신에게 기대라고 말해 주었던 남자. 지치고 힘들 때마다 곁에 있어 주어서 결국엔 그를 찾아 먼 길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연인.
“사랑해, 카이든.”
리젠은 진심을 담아 그를 꽉 끌어안았다. 나른하게 잠이 쏟아졌다. 카이든 역시 졸린지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그에게 기댄 그녀가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 함께 체온을 나누고 있으니,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해도 좋았다.
에필로그
카이든은 아무 표정 없이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었다. 다니엘은 그가 원래 말이 없어 침묵 상태를 만든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의 침묵은 더욱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가 검은색 제복을 입고 한 달 정직 기간 이후 훨씬 더 좋아진 얼굴로, 최종 재판 이후 수사 일지를 종료한다는 결재를 받으러 온 것이다.
‘말했잖아. 벌써 며칠째야? 리젠은 내가 데리고 있을게.’
그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가 떠올라 다니엘은 턱을 괴고 시선을 돌렸다.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절대 안정이 필요해.’
‘그럼 한 번만 얼굴이라도…….’
그때 카이든의 표정은 복잡하면서도 간절해 보였다. 그에게서 다니엘이 처음 보는 고통스러운 눈빛이었다. 몇 번의 부탁을 다니엘은 계속해서 거절했다.
‘징계를 받은 직원이, 어떻게 궁 깊숙한 곳에 들어온다는 거지?’
‘너 정말…… 얼굴조차 한 번도…… 리젠, 괜찮긴 한 거야?’
‘계속 여기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 이제 찾아오지 마. 적절히 회복되면 알아서 보내 줄 테니까.’
‘나를 절대 안 들여보낼 생각이구나.’
‘그래.’
다니엘의 단호한 말에 카이든은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었다.
‘……부모님 묘지에 좀 갔다 올게. 내게도 어차피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말은 전해 줄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그는 뒤를 돌아서 떠났다. 그 이후 처음 보는 자리였다. 카이든에게 묻고 싶은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왕이 된 그에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제 곁에 있었다. 많은 귀족들이 그의 편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열심히 일했고 또 나름대로의 우정을 쌓았지만, 어린 시절 왕위 계승권에서 아예 밀려나 있었던 그의 곁에 늘 있었던 카이든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결재 부탁드립니다. 새로운 내용은 없습니다, 전하.”
카이든이 느긋하게 말하자, 다니엘이 한숨을 쉬었다.
“시위하는 거야? 왜 존댓말이야?”
“왕자님과, 대관식을 치른 왕의 무게는 엄연히 다릅니다.”
그가 살짝 웃었다.
“전하께 반말을 쓰는 것은 아무리 지기지우라고 해도 안 될 말씀이지요.”
“……카이든.”
다니엘은 뭔가 쓸쓸한 마음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카이든의 표정에 아무런 원망이나 사심이 들어 있지 않아서 더 대화가 어려웠다. 카이든은 잠시 정적을 지키다가, 천천히 말했다.
“그때, 궁에 저를 들여보내시지 않은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니 괘념치 마십시오.”
“이해한다고?”
“징계 중인 사람을 궁에 들이는 것은 당연히 원칙에 위배되고…….”
다니엘이 머물고 있는 궁은 예전에 왕자 시절 찾아갔던 궁보다 훨씬 더 크고 화려했다. 그리고 다니엘의 머리 위에는 번쩍거리는 왕관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장식이 많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왕의 옷은 실 하나하나가 번쩍이는 느낌이어서 살짝 위압감을 줄 정도였다. 루스에 있느라 대관식도 보지 못한 카이든은 그의 변화가 새로울 법도 한데, 그를 대하는 것이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또,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
“리젠이 그동안 정말 감사했다고, 너무 바빠서 인사드리러 못 오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전해 달라더군요.”
“바쁘다고?”
“네.”
리젠의 이름이 나왔을 뿐인데 카이든의 표정이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수사국에 임시지만, 특별 파견되었습니다. 마력증폭약의 제조법이 좀 퍼져서, 불법 약물 관리가 더 필요해졌거든요. 시약 지식이 있는 직원이 필요해서, 루카스 국장님이 직접 요청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최종 재판 때 리젠의 활약을 보시고 감명 받으신 듯합니다.”
수사국에서 배웠던 여러 가지 기술들을 보며 정신을 놓을 정도로 부러워하던 리젠의 표정이 생생했다. 결국엔 그 재능이 아깝다며 루카스가 특별 지원 요청을 했고, 리젠은 물론 수사국에 들어가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르엘라의 잘못을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며 단번에 승낙했다. 아마 지금 리젠은 카이든 만큼은 아니어도 기본적인 훈련을 받으며 힘들어하면서도 내심 좋아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전하.”
딱딱한 보고식 내용과는 다르게, 그가 부드럽게 웃었다. 사실 그는 다니엘에게 뭐라고 할 처지가 되지 못했다. 어떻게든 직접 보고 인사를 해야 된다는 리젠을 억지로 말린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리젠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냥 둘이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는 다니엘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리젠이 지금 자신의 곁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너그러운 생각이었겠지만.
“진심으로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잊었습니다. 우리는 예전에 얘기한 대로 서로 최선을 다했고, 그녀는 선택을 한 거니까요.”
“……뭐, 그렇지.”
다니엘이 머쓱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래도 리젠은 그가 처음으로 마음에 품었던 여자기도 했다. 속이 쓰리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온통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가 단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찾아오니 반가운 마음도 컸다. 시녀가 다가와 다음 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한 나라를 책임지시는 자리인데 바쁘시고, 힘드실 테고, 또 외로우실 테지요.”
카이든이 조금 안쓰럽다는 얼굴로 화려한 옷 속의 왕을 바라보았다.
“이젠 저희 둘이 더 밝혀야 할 것은 없겠지만…….”
“…….”
“학창시절 동기가 필요하실 때면 부르십시오. 그냥 오겠습니다.”
다니엘이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짚었다. 그가 너무 미안해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카이든이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