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56)

16화.

“……마법일 확률이 높아.”

“그래?”

“내가 선택 과목이 마법이잖아. 마법으로 만들 수 있는 불꽃은 미약하지만 옮겨 붙으면 잘 꺼지지 않아. 이 정도의 큰 성이 왕비님도 오시는데 화재 대비를 이렇게 못했을 리 없어. 그런데 문제는…… 마법이 만드는 미약한 불꽃이 어떻게 이 성을 다 삼키냐는 거지. 그만한 마력이 있으려면 우리나라의 마법사 절반은 데려와야 될걸.”

“맞아.”

그가 벌떡 일어나서 답답하다는 듯이 창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래서 조사가 미궁으로 빠졌고, 그 당시 제펠탄 왕이 수사국에 더 이상 수사를 하지 말라는 명령까지 내렸어. 수사 진행 중이면 왕비 자리를 계속 공석으로 비워 둬야 하니까. 하지만 수사국의 비밀 조사 기록에, 왕비가 되고 싶던 테스티가 끊임없이 제펠탄을 압박했다는 왕비궁 시녀의 증언이 있어.”

리젠은 앉고 있던 의자를 빙빙 돌리다가, 팔짱을 끼고 유리창 밖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카이든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암담함이 느껴졌다.

“이 유리창에서 내려다보면…….”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쪽에 테스티의 왕비궁이 보여. 테스티가 그 화재의 배후에 있다는 건 왕궁의 누구나가 의심하는 사실이야. 그녀는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받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어. 믿겨져? 무고한 사람을 백 명 넘게 죽인 여자가 한 나라의 왕비라는 사실이…….”

그녀는 천천히 걸어서 카이젠의 옆에 섰다. 저 멀리 테스티의 화려한 왕비궁이 보였다. 카이젠이 실험복만 걸친 그녀를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그의 단단한 등이 느껴졌다.

“그래서 속이 답답할 때, 아무리 뒤져도 뭔가가 막힌 것 같을 때 난 여기에 서서 창밖을 내려다보곤 해.”

“그렇구나.”

“그리고 재미있는 건…… 오른쪽 끝을 보면 약제국이 보여.”

“어? 정말이네?”

리젠이 유리창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흥미롭게 말했다. 숲길을 따라 외진 곳에 건설된 동그란 약제국 건물이 있었다. 약제국의 위치는 다른 직속 기관과는 다르게 왕궁과 가까운 정원에 붙어 있었는데, 약제국 전체에 걸린 해독제 방지 마법과 관련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륙의 마력은 점차 사라진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왕궁이 처음으로 지어지던 2,000여 년 전에는 강력하고 다채로운 고대 마법이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왕궁 전체에 시약 효과 방지 마법을 걸었는데, 그 마법이 점차 줄어들어 최초의 마법 발현지인 지금의 약제국 건물에서만 해독제에 한해서 유효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런 마법을 걸 수도 없고 방법도 모른다.

마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으니 마법의 힘도 정말 고대에 비해 약해졌다. 옛날엔 전쟁의 무기로도 쓰였다던 화염 마법의 경우, 대련 시에 성별을 고려한 선택 과목으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약해졌다. 농담으로 화염 마법을 쓰느니 토치를 들고 다니겠다는 말도 공공연히 있을 정도였다.

“왕비궁을 보고 다시 분노하고…….”

그녀의 목 뒤로 카이든의 입술이 느껴졌다. 매번 꿈속에서 꽤나 많이 겪는 일인데 적응되지 않아 그녀의 솜털이 비쭉 섰다.

“약제국 건물을 보고 기운을 내곤 해…….”

그가 리젠이 꽁꽁 여민 실험복을 풀곤 그녀의 몸에 자신을 밀착시키며 유리창에 그녀의 알몸을 눌렀다. 리젠은 두 가슴에 느껴지는 차가운 유리의 감촉에 팔짝 뛸 정도로 놀랐다. 몸의 앞은 단단하고 차가운 유리에 막혀 눌리고 있는데, 등 뒤로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그가 리젠의 손을 자신의 중심에 가져갔다. 이미 크게 팽창되어 있었다.

“저기, 약제국에서는 어떤 바보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분명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을 테니까.”

“카이든, 이것 좀 놔줘…….”

“너는 수사국도 포기하고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그는 그녀의 손을 말아 쥐고 자신의 바지 버클을 끌렀다. 리젠은 꼭 자신이 그의 바지 버클을 푼 것 같아 민망한 기분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도 네 말이, 실패하더라도 아쉬움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네 말이 내게 언제나 자극이 되거든.”

그녀는 등 뒤로 느껴지는 그의 크고 뜨거운 중심을 살살 쓰다듬었다. 본능과도 가까운 행위였다. 리젠은 남녀의 몸이 갖고 있는 본능에 순간적으로 놀랄 때가 많았다. 한번 불이 붙기 시작하면 이성도 감정도 모두 뒤로 물러나 버린다. 그리고 그 후에는 몸이 원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카이든의 고개가 그녀의 어깨로 툭 떨어졌다.

“아…… 바보야.”

그가 이로 그녀의 어깨를 꽉 물었다.

“네가 그러면 참기 더 힘들어.”

그의 밀어붙이는 힘 때문에 그녀의 몸이 더욱 더 유리창에 밀착했다. 아무리 꿈이지만 이럴 땐 정말 부끄럽다. 밖의 누군가가 유리창에 눌린 그녀의 나신이라도 보면 어떡하나. 반대로 그러한 아슬아슬한 상황이 더 자극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의 직장인 약제국이 내려다보이는 유리창에서 이런 낯 뜨거운 상황이라니. 그녀는 복수라도 하듯 그의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남성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으음…….”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과 유리창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가 참지 못하고 한숨을 쉬자 그녀의 입김이 유리창에 하얗게 번졌다. 등 뒤로 카이든의 제복 셔츠가 닿아서 사각거렸다. 발밑에 흰 실험복이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었다.

“……바보야.”

리젠은 그가 손을 밑으로 내리며 더 몸을 밀착하자,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유리창을 짚었다. 그 반동으로 그녀는 살짝 엎드린 것처럼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그의 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한 손이 그녀의 젖은 은밀한 곳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다니엘이 왜 좋아?”

“아아…… 뭐?”

그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여성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귀를 잘근잘근 물면서 속삭였다.

“다니엘하고도…… 이렇게 하고 싶어?”

“무, 무슨 소리야? 이 변태 자식!”

“다니엘 볼 때마다…… 너도 상상해? 이런 걸?”

“미쳤어?”

“……그러지 마.”

그의 혀가 그녀의 귀 뒤를 핥았다.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여 그녀를 절정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이런 건 나랑만 해. 이런 건 나만 생각해.”

“아!”

짧은 쾌락을 느낀 그녀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의 팔이 그녀의 힘이 빠진 몸을 붙들었다. 그리고 유리창에 다시 그녀의 몸을 고정시킨 뒤,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해도 돼?”

“……어?”

“너…… 가져도 돼?”

분명 안 되는데, 그녀는 카이든을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안 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그러지 말라는 말을 못하는 건지, 그녀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 나서는 카이든이 먼저 깼는지 의식이 희미해졌다.

[따르르릉! 기상! 기상!]

“아…… 뭐야.”

그녀가 눈을 뜨지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유리창에 몸을 대고 있던 꿈의 영향인지 어느새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카이든, 이 변태 자식. 무의식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카이든의 낮은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사할 땐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하고…….”

이상하게 화가 난 그녀가 이불을 차면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아악! 짜증나!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다음 날 아침, 다니엘은 수사국에 직접 행차하여 수사국장이 준비해 준 차를 마시며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윌리엄 형님의 죽음에 저는 의아한 점이 정말 많습니다. 그 누구도 그날 밤 그렇게 돌아가시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수사국에서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하는 기본적인 가정이겠지만, 이 일련의 사건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글쎄요.”

이미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몸 하나는 젊은이 못지않게 단단한 수사국장 루카스는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수사국에서 가장 지양하는 것이 범인을 정해 놓고 수사하는 겁니다. 물론 유력한 용의자 선에 올릴 수는 있으나 선입견이 생기면 진실을 바로 보기 힘들지요. 사실 왕궁 직속 기관의 기본 윤리이지만, 수사국에서는 더더군다나 중요하죠.”

“그럼 제 의견을 말씀드리죠. 이것 또한 수사국에서 사용할 정보가 될 테니.”

다니엘의 금발 머리가 햇빛에 비쳐서 반짝거렸다. 감정을 담지 않은 푸른 눈이 부드럽게 휘었다. 그는 원래 수수한 복장을 즐겨 입었으나 ‘의심의 기간’을 선포한 이후 굉장히 화려하고 장식적인 옷을 입고 다녔다. 왕위에서 한참 먼 셋째 왕자로, 전혀 권위적이지 않던 그는 단번에 왕위의 유력 후계자가 되었다. 

“저는 배후에 왕비 마마와 루벤 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십니까.”

루카스는 예상했다는 듯이 조용히 차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국에 정식으로 의뢰하겠습니다. ‘최종 재판’에 증거로 제출할 수 있는, 윌리엄 시해 사건에 대해 조사서 및 의견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수사 직원은 카이든 루스로 지정하겠습니다.”

“친한 대학 동기에게 자율권을 주시고 싶으신 모양이군요.”

“아…… 저와 카이든의 관계를 아셨습니까?”

“수사국에서는 숨기고 싶은 정보까지 알아냅니다.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아 하시는 정보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카이든을 많이……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건 뭐,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므로. 전념하겠습니다.”

다니엘은 부드럽게 웃으며 일어났다.

“부디 최선을 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상심이 크시지요.”

루카스가 국장실의 문을 열며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수사국에서 왕자님의 편을 들어드린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가치판단은 귀족원들의 몫이죠. 그러나 수사국은 항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것은 확실히 믿으셔도 좋습니다.”

“아.”

다니엘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나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카이든을 보고 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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