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아아……. 아파, 아파.”
리젠이 침대 시트를 움켜쥐며 중얼거렸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붉은 꽃이 크게 피어날 만큼 그의 입술은 그녀의 목에서 한참을 머물렀고, 그의 손은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쓸었다. 큰 두 손이 점차 내려와 그녀의 허리를 감쌌고, 그의 입술은 더 내려와 그녀의 가슴골에 경건하게 입을 맞추었다. 교복 치마를 내리는 그의 손길에 리젠이 그의 머리를 감쌌다. 그가 상체를 탈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따뜻하고 단단한 그의 살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살과 살이 마주 닿는 느낌이 너무 좋아 그녀는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누군가와 맨살을 대고 체온을 느끼는 것이 처음이라 배가 간질간질했다.
“아아…….”
그의 입술이 그녀의 유두를 머금고, 한참을 혀로 동그랗게 감싸다 부드럽게 빨기 시작했다. 그녀의 허리가 살짝 튕겨져 오르며 교복 치마가 무릎까지 내려왔다. 그의 한 손이 부드럽게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들어왔다.
‘꿈이잖아, 꿈이잖아…….’
리젠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난 항상 이성적으로만 살았다고…… 꿈에서는 그냥 나 자신을 놔 버려도 되는 거잖아…….’
그의 손가락이 허벅지 부근에서 작은 원을 그렸다. 그녀는 속옷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기분이…….”
리젠이 중얼거렸다.
“기분이?”
카이든이 입술에 그녀의 유두를 물고 반문했다. 그의 입술이 움직여 또 다른 자극으로 간지러웠다.
“……이상해.”
그가 훅 올라와 그녀의 눈에 입 맞췄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골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아!”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각이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더한 느낌이 있을 것 같아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카, 카이든…….”
“너도, 너도 원한다고 말해 줘.”
그의 눈이 탁해져 있었다.
“리젠 하카트…… 너도 원한다고.”
그의 손이 그녀의 작은 돌기를 매만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허리가 살짝 튕겨 올라갔다. 느낌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찌릿했다. 그녀가 참지 못하고 그의 머리를 세게 끌어안았다.
“카이든 루스…… 너…….”
[따르르르릉! 기상! 기상!]
리젠은 번쩍 눈을 떴다.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저분하고, 책이 바닥에 멋대로 흩어져 있는 걸 보니 자신의 방이 분명했다. 그녀는 알람시계를 누르며 생생하게 느껴지는 입술의 감촉 때문에 한쪽 손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재빨리 거울로 오른쪽 목을 확인했지만 역시 거짓말처럼 하얗고 매끈했다.
“꿈이었으니까…… 그래, 꿈이었으니까.”
그녀는 숨을 가다듬다가, 엎드려서 베개에 머리를 쾅 박았다.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 매일 밤 카이든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혈기 왕성한 남자와 단둘이 밀폐된 장소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 꿈속에서 이성을 잃은 채 벌어지는 셈이었다.
“왜…… 왜 하루로 안 끝나는 거야……. 뭐야, 고모…… 이거 뭐냐고.”
리젠이 끙끙거리다가, 갑자기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에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실내화도 꿰어 신지 않고 맨발로 황급히 다락방에 올라갔다. 계단을 오를 때 살짝 균형을 잃고 삐끗할 정도로 그녀의 발걸음이 급했다.
“그때…… 그때 분명히…….”
그녀는 다락방에서 다시 르엘라의 노트를 펼쳤다.
“나비잠꽃 100g, 틸다 뿌리 200g, 나그다의 진흙 한 줌, 라타의 발톱 50g, 계약자의 머리카락 한 올…….”
리젠의 다급한 손이 재료들을 아무렇게나 둔 테이블을 향했다. 그녀는 정리 정돈에는 항상 젬병이었기 때문에, 맨 처음 시약을 만들 때 골라 둔 재료 그대로 테이블에 남아 있었다. 하나하나 확인하던 그녀의 가슴이 툭 떨어졌다.
“니, 니그다의 진흙?”
나그다의 진흙인 줄 알고 넣었던 재료 앞에 야속하게 ‘니그다의 진흙’이 붙어 있었다. 명찰이 너무 낡아 지저분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나그다’가 아니라 ‘니그다’였다. 명찰에 흙들이 말라붙어 있는데다가 르엘라가 워낙에 악필이었기 때문에 대충 보면 ‘나그다’라고 읽을 법했다. 어쩐지, 나그다의 진흙은 구하기 몹시 어려운 재료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 어떡해…….”
약초학 우수생인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나라도 재료가 잘못되거나 양을 잘못 넣으면 아예 다른 증상이 나타나거나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났다. 지금 그녀가 나그다의 진흙 대신 니그다의 진흙을 넣어서, 일회성이라는 제한이 사라진 듯했다.
“안 돼……. 어떡하면 좋아…….”
그녀는 머리가 핑 돌아 다락방에 주저앉았다. 해독약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대로 평생 매일 밤 카이든의 꿈속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고모, 난…… 어떻게 해야 해…….”
르엘라가 미치기 전, 이런저런 약초를 보여 주며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리젠, 모든 약은 해독제와 함께 만들어야 해. 약제학은 인위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연스러운 상태로 되돌리는 것까지 완성으로 친단다. 나는 약이라면 생각한 그대로 거의 다 만들 수 있어. 다만 해독제를 만들지 못해서 상용화를 시킬 수 없을 뿐이야. 그만큼 해독제를 만드는 것이 약을 제조하는 것만큼 힘들어.’
이런 대단한 노트가 노트로만 남아 있는 이유가 있었다. 르엘라는 엄청난 약들을 만들어 낼 아이디어가 너무나 풍부했지만 해독제까지 다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독제가 없는 약들만 적어 놓은 노트임에 틀림없었다.
르엘라도 못한걸, 그것도 내가 멋대로 바꿔 버린 잘못된 시약의 해독제를 어떻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리젠은 밀려오는 절망감에 머리를 감싸 안았다.
리젠이 저녁에 체력단련실으로 온 것은 단 하루뿐이었다. 카이든은 샌드백을 치며 자신이 은근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에 운동하니까 좋다며 중얼거리는 것을 분명히 들었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오지 않는다. 그는 몸에 힘이 다 빠질 정도로 움직이고 나서 털썩 벽에 주저앉았다. 3일 연속 리젠의 꿈을 꾸었다.
종종 어린 시절의 꿈을 꾸었다. 가장 많이 꾸는 꿈은 부모님 묘지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수도 아메니티에 오던 날이다. 그저께도 그때의 꿈을 꾸었는데, 이상하게 리젠이 나타났다. 꿈이어서 17살의 그도 리젠을 알아보았다. 리젠은 진심으로 그를 위로해 주고 토닥여 주었다.
아무도 열일곱의 카이든을 위로해 주지 않았다. 루스 영지는 한순간에 주인을 잃었고, 형은 열아홉의 나이에 영지를 떠맡게 되었다. 모두들 정신없는 나날들이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는 열일곱의 소년을 위로할 정신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꿈에서 리젠이 나타나 그를 안아 주다니. 그 위로가 왠지 벅차서 그는 그녀의 이마에 깊게 입 맞추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젯밤에도 또 그녀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욕구불만인가 하였다. 여자를 안는 꿈은 자연스럽게 가끔씩 꾸어 왔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구체적인 대상이 생생하게 자꾸만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다.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애라고 생각했던 리젠은 어젯밤 꿈에서는 거의 말이 없었다.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니 리젠이 자꾸 눈에 보였다. 그녀는 밝고 명랑했지만 친구가 많지는 않았고, 모든 수업에 열심히 집중했으며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심지어 답이 없는 짝사랑까지 열심히 하는 여자애였다. 그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조금 이르게 체력단련실에서 빠져나왔다. 그의 걸음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미 늦은 밤, 도서관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학생들 중 구불구불하게 늘어진 갈색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보였다.
“카, 카이든?”
카이든이 아무 자리에나 앉는데, 여학생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도서관에는 웬일이야?”
그녀의 속삭임에 카이든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보통 도서관에는 잘 오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대충 듣는 것만으로도 성적은 잘 나왔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에 의아해하는 여학생 뒤로 다른 여학생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냥.”
그는 대충 대답하고 고개를 숙여 책을 꺼냈다. 여학생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물러나다가 키득대기 시작했다. 공부도 잘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무예가 뛰어난 그는 얼굴까지 남자답게 잘생겼기 때문에 여학생들에게서 항상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5년 동안 한 번도 여자에게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그런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일 동안 꿈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한 여자아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가 갸웃하며 늘씬하게 뻗은 팔이 작은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흰색 교복 블라우스가 살짝 말려 올라가는 것을 보며 카이든은 얼굴을 한 번 쓸었다. 그녀의 옆에 책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모두가 다 약초학 책들이었다.
‘시험 범위가 아닌 책들인데…….’
시험 범위를 훌쩍 벗어난 심화 책들이었다. 고모가 그렇게 약제국에서 탁월한 연구원이었다는데 그 핏줄을 이어받았는지 그녀는 약초학에서 우수함을 보였다. 물론 카이든은 가장 못하는 과목이 약초학이었는데, 외울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카이든이 도서관에 온지도 모르고, 그녀는 열심히 서고에서 잔뜩 가져온 약초학 책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었지만, 꿈이 연결되는 시약을 언급한 문구조차 못 찾았다. 대다수의 서적이 모두 모여 있는 왕립마법대학 도서관에 없다면 다른 서고에 가 볼 필요조차 없었다. 종합 시험 준비도 미루고 하루 종일 책을 찾아봤지만 보람이 없었다. 도서관이 마감 시간이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뭐야,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그녀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에는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열 명 내외였는데 오늘은 서른 명이 넘게 있었다. 게다가 거의 다 여자였다. 그녀의 무심한 눈이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닿았다. 카이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