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1-2
“어떻습니까? 연재 씨 생각은.”
현조의 말에 연재의 손이 멈췄다. 타이를 매주던 손이 멈춘 채 움직일 생각을 않자 현조가 난감하게 연재를 내려다봤다.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 연재의 턱 끝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엔 말로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아니면 내가 미처 배려하지 못한 문제라도 있나?”
있으면 어서 말해 보라는 듯 그의 눈이 재촉했다.
여태 비밀로 유지했던 결혼을 오늘 공식적으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선화가 머물다 간 며칠 동안 충분히 합의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닥치니 걱정 아닌 걱정이 생겼다.
“문제라기보다는……. 속였으니까요.”
그동안 비서팀을 숱하게 속였던 사실이 바늘이 되어 마구 찔러 왔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원치 않았던 거짓말을 했고, 4년 가까이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의 면상에 대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처음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깨끗하게 없던 일이 될 거라고 자만했었다.
헤어짐이 당연했던 그때와 지금의 사정은 너무도 달랐으니까. 사정이 달라졌다고 한들, 거짓말을 했던 사실이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확실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두렵긴 합니다.”
“…….”
“두렵긴 하지만, 당당해지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이고.”
“맞아요.”
“여차하면 내 뒤로 숨어요. 돌이 날아오면 내가 맞을 테니까.”
현조가 연재의 이마에 쪽, 하고 입술을 찍었다.
그렇게 멋진 말을 하면서 뽀뽀라니, 연재는 순간 현조의 타이를 손으로 콱 움켜쥐었다.
“용기를 주세요.”
“어떻게?”
그리고 살짝 잡아당겼다.
“이렇게요.”
입술이 부딪혔고, 입맞춤은 키스로 바뀌었다.
입술이 떨어지고, 얼굴이 상기된 연재가 살며시 웃으며 다시 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현조가 그런 연재의 턱 끝을 손가락으로 받쳐 올렸다.
그리고 다시 입술을 가볍게 꾹, 눌렀다가 뗐다. 눈을 반으로 접고, 입술 끝은 끌어올려 미소를 만들었다.
“용기는 충전됐습니까?”
“넘칠 만큼요.”
빈틈없이 조여진 타이를 바라보며 현조가 웃으며 물었다.
“너무 꽉 조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럼 다시.”
“푸는 건 내가 더 잘합니다.”
현조가 제 아랫입술을 혀로 쓱 핥으며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눈짓으로 제 아래를 가리켰다.
“키스 때문에 그렇게 되신……?”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달아오르면 짐승이 되는 겁니까?”
“그게…….”
“입기 전에 할 걸 그랬습니다.”
불룩 튀어나온 가랑이 사이를 본 연재가 타이를 놓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턱 끝을 붙잡고 있던 현조가 다른 손으로 연재의 목덜미를 감싸더니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입술이 단박에 부딪치고 혀가 얼얼하게 얽혀들었다.
분명 현조의 목을 갑갑하게 만들었는데, 대신 숨이 차는 쪽은 연재였다.
마침내 떨어진 입술 사이로 밭은 숨을 내쉬는 연재의 볼이 붉었다.
“타이는 나중에 다시 매는 걸로.”
“시, 시간이.”
“노력하죠, 되도록 빨리 끝내도록.”
타이를 잡아 풀어내려는 현조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던 연재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리 와요, 연재 씨.”
타이를 느슨하게 잡아 내리며 현조가 웃었다.
“출근해야 해요. 저 먼저 가겠습니다.”
“어차피 오늘부터 내 비서로 복귀하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연재가 입술을 깨물었다. 괜히 도망쳤다. 어차피 잡힐 텐데.
류현조를 건드려서 끝까지 승리했던 적은 손으로 꼽았다. 늘 밀리는 쪽이면서 괜한 오기를 부린 대가가 이렇게 돌아왔다.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뒷걸음질 쳤다.
“아얏!”
벽에 부딪히고서야 더는 물러날 곳이 없음을 깨달았다.
현조가 웃으며 두 팔을 벽에 집었다. 꼼짝없이 현조의 품에 갇힌 형국이었다.
“어떻게 잡아먹을까? 아침이니까 간단하게 입으로 해치울까? 아니면 제대로 전부 빨아먹을까? 그것도 아니면.”
노골적으로 말하는 현조의 입을 연재가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더 듣고 있기 벅찼다.
각방이 아닌 같은 방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후로 현조는 시도 때도 없이 덤볐다. 잡아먹힌다는 말을 저절로 실감할 정도였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빠짐없이 입술을 찍어 눌렀고, 목덜미는 집요할 만큼 지분거렸다.
어디 그뿐이던가. 그곳은 왜 그리고 집요하게 빨아 대는지 하룻밤 사이 몇 번이나 절정에 도달하고 나면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인간 녹초 제조기이자, 꿀잠 제조기였다.
“안 돼요. 절대!”
입술을 부딪치려 하는 현조를 피해 재빨리 주저앉았다.
“자세가 매우 바람직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연재는 순간 눈앞에 있는 불쑥 솟은 그것이 시야에 들어오고 말았다.
이건 아니야! 밀치려고 손을 내저었다.
“손은 더 자극적이군요.”
이건 또 뭐야! 단단한 것이 손바닥에 착 감겼다.
“읏. 여기서 멈추면 나더러 죽으란 겁니다.”
현조가 신음을 터트리자 그의 것이 불끈, 치솟았다.
‘망했다.’
한 치 앞의 상황이 그린 듯이 눈앞에 펼쳐졌다. 집요하게 물고 빨고 핥는 짐승 같은 남자의 무서운 정력이 살아났으니, 녹는 것은 언제나 제 몫이었다.
사탕도 그 정도 빨고 핥으면 진즉에 녹아 없어졌다.
“오늘은 특별히 오후에 출근하도록 하죠.”
“안 됩니다!”
연재가 벌떡 일어섰다.
“난 그대로도 괜찮았는데, 그럼 다시 키스부터.”
부드럽게 입술이 다시 맞물렸다. 달콤하게 얽히는 혀가 황홀했고, 감은 눈꺼풀 안에서 폭죽이 터졌다. 키스 한 번으로 절정을 맛보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비틀어 달게 받아들이고, 다시 또 비틀어 한 번 더 받아들였다. 떨어지는 입술이 아쉬워 감은 눈을 천천히 뜨자 코앞에 있는 현조의 눈동자에서 꿀이 흘렀다.
그렇게 바라보면 녹아내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어.
“걱정하는 일 생기지 않을 겁니다.”
“…….”
“누구라도 부러울 만큼 행복한 신부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줄 테니까.”
현조의 달콤한 목소리가 마침내 귀를 녹였다. 연재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나란히 승강기를 탔고, 승강기가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1층 로비에 도착한 승강기의 문이 열렸다.
“어, 어…….”
연재는 순간 말을 잃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넋을 잃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놀란 채 입만 벙긋거리는 연재의 등을 현조가 가볍게 감싸 안고 승강기에서 내렸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환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주위는 온통 꽃 천지였고, 승강기 앞에서부터 로비 입구까지 레드카펫이 깔려 있었다.
연재는 눈물을 글썽이며 현조를 바라봤다. 그러자 현조 역시 연재와 눈을 맞추다 곧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리를 빛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여러분들께서 이젠 다 알고 계신 것처럼, 제 아내를 소개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현조는 선화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어떤 식으로 결혼 사실을 알릴지 고민하다 선화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의 진심이잖니. 네가 얼마나 진심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을까?’
현조는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지난밤 진심을 담아 사내 게시판에 장문의 공고를 띄웠다.
직원들은 현조의 진심에 감동했고, 한 직원이 의견을 냈다. 그렇게 이벤트 업체를 섭외해 로비를 꾸몄다.
“저는 지난 3월, 비밀리에 제 아내인 서연재 씨와 결혼했습니다. 누구도 모르게 결혼했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혼해야 했던 그 당시의 저를 받아 준 제 아내에게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을 금치 못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현조는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려 연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연재의 눈을 바라보다 다시금 말을 이어갔다.
“그때의 저는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지금에야 용기를 냈고, 제 아내를 붙잡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다짐하겠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되도록 제 아내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사방에서 축복처럼 꽃잎이 날아들었다. 주머니에 감추고 있던 꽃잎을 사람들이 일제히 던진 것이었다.
와- 하는 탄성과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뽀뽀해! 키스해!”
이어지는 함성에 연재의 볼이 붉어졌다.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고, 그런 사람들을 향해 현조가 윙크를 날리며 연재의 허리를 단박에 끌어안더니 입술을 맞댔다.
사람들의 시야를 차단하듯 현조가 방향을 틀어 연재를 제 몸으로 감췄고, 뜨거운 키스가 이어졌다.
“전무님, 박력이 끝내주십니다!”
구경하던 남자 직원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에 힘입어 현조의 키스는 끝날 줄 몰랐다.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키스였다.
키스가 끝나자 현조가 연재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들이 장미꽃잎을 폭죽처럼 카펫 위로 흩뿌렸다.
“두 분, 이제 꽃길만 걸으세요!”
금나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녀를 끝까지 믿어 준 연재에게 고마웠던 나리는 자신의 결백이 밝혀진 후, 가장 먼저 연재에게 달려와 고맙다고 했었다.
“행복하세요!”
나리가 뿌리기 시작하자 그것을 신호로 받아들인 직원들도 일제히 붉은 장미꽃잎을 카펫에 뿌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현조의 손을 잡은 연재가 아름답게 새겨진 꽃길을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햇살은 따스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축가처럼 곳곳에 울렸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