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68)

눈이 빨개서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연재의 살갗에 손가락 끝을 댔다. 아찔할 만큼 매끄러운 감각이 전율을 일으켰다.

숨을 훅, 들이마신 현조는 태어나 가장 많이 긴장했다. 저릿저릿한 감각이 몸서리치도록 전신을 휘감았다.

“고작 손가락 하나에 갈 것 같은데.”

말을 내뱉으며 제 중심을 쳐다보는 현조의 시선을 따라 연재도 그곳을 쳐다봤다. 드로어즈를 뚫고 나올 것처럼 거대한 그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밤새 만졌으면, 내가 어땠을 것 같아요? 그 후로 오랫동안.”

현조의 손끝이 이번엔 꼿꼿하게 긴장한 연재의 가슴에 닿았다. 탱글탱글하게 여물어 터질 것 같은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살짝 비틀자 연재의 입술에서 곧바로 신음이 터졌다.

“아흣. 그건 잘, 흐읏.”

“읏.”

기둥의 음영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드로어즈 끝이 살짝 젖어 들었다. 선명하게 색이 진해진 것과 동시에 현조의 입에서도 참기 힘든 신음이 터졌다.

“매일 밤, 혼자서,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뜨거운 입술이 유두에 닿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뜨거운 혀가 무자비하게 희롱하고, 강렬하게 빨아들였다.

“아으읏. 하앙. 응.”

연재는 시트를 붙잡은 손을 비틀어 가며 신음을 토했다. 자극이 너무 강해서 도망치고 싶은 욕구마저 들었다. 머리를 강하게 저어가며 그가 주는 자극을 견디느라 헐떡였다.

아랫배가 뜨겁고 입구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에 허리를 비틀었다.

“아, 아앙. 제발, 그, 그만. 흣.”

한 손으로 가슴을 쥐고, 입술로 빨아들이기를 멈추지 않던 현조의 다른 손이 그곳을 향해 내려갔다.

이미 젖은 그곳은 손가락을 집어넣자 압박해 왔다.

“아앗! 안 돼!”

연재는 안쪽에서 뜨거운 무엇이 쏟아지는 느낌에 소리쳤다. 순식간에 탈력감이 몰려왔다. 쌕쌕 밭은 숨을 몰아쉬는데 현조가 제 손가락을 입에 넣고 핥았다.

“이제 준비는 끝난 것 같은데.”

그가 답답하게 가두고 있던 드로어즈를 미련 없이 벗어 던졌다. 튕기듯이 밖으로 고개를 내민 그것은 제가 들어갈 곳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

같은 침대에서 잠들고, 아침을 맞이했다. 정확하게는 새벽이지만, 연재는 현조의 품에 안겨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잠든 얼굴도 아름다웠다.

“부끄러워야 하나.”

놀란 연재가 재빨리 눈을 감았다. 그러자 이번엔 현조가 눈을 뜨고 연재를 쳐다봤다. 감고 있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면서 현조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눈을 뜨게 하려면.”

촉, 촉, 낯간지러운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눈두덩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과 함께. 연재는 항복하고 눈을 뜨고 말았다.

“잘 잤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려 해도 목이 잠겨서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밤새, 숨 가쁘게 신음하느라 목이 마르다 못해 쉬어버린 탓이다. 큼큼, 몇 번이나 목을 가다듬고 나서야 겨우 목소리를 쥐어짤 수 있었다.

“왜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어요?”

간신히, 쥐어짠 목소리가 탁하게 뱉어졌다.

“기다렸는데.”

이젠 막 치고 들어오는구나, 서연재. 솔직한 거야 원래 그랬으니까. 마음을 인정하고 나니 이젠 말 그대로 직구로 날아왔다.

“연재 씨에게 전화할 시간은 없더군요.”

대체 얼마나 바빴기에.

“정욱이에게 하느라.”

그럼 그렇지. 밀린 거구나. 일에, 친구에.

“그래도 내가 비서인데…….”

공적이든 사적이든 이젠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 아주 작은 항변이었다.

“다음엔 그럴 일 없을 겁니다.”

일없이 일을 만들어 정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재에게 걸기엔 화가 덜 풀렸고, 그렇다고 머릿속에 드는 생각들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정욱이었다.

‘점심은 먹었지?’

별것도 아닌 걸 마지막에 덧붙였다. 그러면 정욱은 어이없단 투로 대답해 줬다.

‘지금 저녁이야.’

‘아, 그럼 저녁엔 뭐 하는데?’

‘현조야.’

‘말해.’

‘나도 바빠. 물론 오늘 저녁은 도하 가게에 가 볼 생각이고. 그리고 너, 벌써 3일째 같은 말 하는 건 알고 있지?’

‘네가 기억력이 지나치게 좋은 거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류현조, 별짓 다 했네.”

연재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현조가 미소를 머금고 입술을 내렸다.

***

불이다. 한 번 불이 붙기 시작하자 불길이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장소를 망각할 만큼.

“회사에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아니 무슨 비상구에서 몰래 키스하자는 건지. 연재는 볼을 붉힌 채 어찌할 줄 몰랐다.

“사각지댑니다.”

“사각지대요?”

“아무도 못 보는 장소. CCTV도 못 보는 곳.”

아, 그렇구나. 여기라면 안심하고 막, 이런 거 저런 거 다 해도 되겠구나. 는 무슨! 이 남자 순 일만 잘하는 게 아니었어.

“한 번만 해 보죠.”

“여기서요?”

“진짜 사각지대가 맞는지.”

“그런 건 영상실에 가면.”

“그럼 확인할 때 지우도록 하죠. 일단, 해 보고 난 후에.”

현조가 재빨리 연재의 입술을 빼앗듯이 훔쳤다.

스킨십이란 신기했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힘들었고, 머릿속은 온통 ‘조금만 더’를 외쳐 댔다.

오죽하면 스킨십에 후퇴는 없다는 말이 있을까.

현조의 손이 어느새 연재의 등허리를 쓸어 올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헤집기 시작했다. 농밀함이 더해진 입맞춤은 더욱 집요해졌고, 숨이 차올라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비상구를 울리는 거친 숨결과 타액이 빨리는 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현조가 연재의 스커트를 밀어 올리며 가랑이 사이에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아래가 문질러지자 연재는 자신도 모르게 자지러질 것처럼 신음하고 말았다.

“하으음.”

촙, 촙, 입술에 남아 있는 타액을 닦아내듯 현조가 제 입술을 붙였다 뗄 때마다 에코처럼 공명음이 울렸다. 연재는 예민한 청각 때문에 그 소리는 더욱 자극적으로 들렸다.

“그, 그만 하세요.”

“입술 뗐는데, 더 해 달라는 뜻인가?”

“아니, 아래요.”

속옷이 젖은 것 같은 느낌에 미치겠는데 여전히 현조는 허벅지를 그곳에 문질러 댔다. 이러다 바지에 흔적이라도 남길 것 같아서 조마조마했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닙니다.”

그제야 알았다는 듯 밀착했던 몸을 떨어뜨리자 연재도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거듭했다.

사람들이 일탈을 즐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들이 볼까 봐 심장이 뛰다 못해 쪼그라들 것 같은데 이게 또 등줄기가 짜릿할 만큼 긴장돼서 같은 스킨십도 자극이 배가됐다.

“이, 이제 이런 거 하지 말아요. 우리.”

“나는 알 것 같은데.”

“…….”

“사람들이 왜 멀쩡한 호텔 놔두고 여기서 이러는지.”

펑,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저 남자의 서슴없는 말에 곤혹스러운 것은 언제나 제 몫이었다.

“심장병 걸릴 것 같아요.”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어서 미칠 것 같았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심장이 뛰는데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것 치고는 적극적이던데.”

“그, 그거야! 당신이니까…….”

심장이 팍, 하고 토마토처럼 터질 것 같은 쾌감. 그 자극이 주는 아찔한 기분. 그로 인해 터질 것 같은 그곳은 차마 말하지 않겠다.

“전무님, 괜찮으세요?”

연재가 걱정하듯 물어 왔다. 방금까지 심장병 걸릴 것 같다고 투덜대던 연재는 온데간데없고 입가를 씰룩거리는 연재가 애써 웃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전무님 귀가 너무 빨개요.”

“연재 씨 눈이 빨개서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먼저 돌아선 현조의 뒷모습을 보면서 연재는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

“왜 거기서 나오는 거지?”

정욱이었다. 비상구 문을 열자마자 마주쳤다. 예상치 못한 마주침에 당황한 현조가 멈칫했다.

“운동 삼아.”

변명이라고 뱉은 말이 형편없어 시선을 슬쩍 피했다. 직원 식당 쪽에서 몇몇이 걸어오고 있었다.

“무슨 운동을 하십니까?”

직원들이 다가오자 예의를 갖춘 정욱이 말을 높였다.

“하체? 운동?”

“관절 나가십니다.”

“권 실장이 걱정해 줄 정도로 약하지 않아요. 내 관절.”

현조가 정욱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승강기 쪽으로 유유히 멀어졌다. 막 비상구 앞을 지나가자 뒤에서 또 한 번 비상구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무시했을 소리가 유난히 뒤통수를 잡아챘다.

“서 비서 점심 먹었어요?”

“네, 과장님. 먹었습니다.”

오가는 대화가 돌아볼 필요도 없게 했다. 정욱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다시 걷기 시작한 정욱은 꽉 말아 쥔 주먹을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오후에 마실 커피를 내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들고 있던 휴대전화만 책상에 내려놓고 탕비실로 가려 했다. 그런데 먼저 와 있던 현조가 집무실에서 나왔다.

“사장실 갑니다.”

현조가 들고 있던 파일을 흔들면서 말했다. 오전에 연재가 정리해서 넘겨준 오이시상사 계약 재협상 자료였다. 수출 문제가 대두되면서 김선화 사장과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 연달아 발생했다.

“다녀오세요.”

가볍게 손을 흔들며 문을 빠져나왔다. 웃고 있던 현조의 얼굴에 미소가 지워지고 한없이 진지해졌다. 복도를 걷는 현조의 구두 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마침내 복도 끝에 있는 사장실로 들어서자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무님, 오셨습니까.”

“사장님 안에 계시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집무실로 향하는 지영을 지켜보다 현조가 이내 집무실 맞은편 실장실을 쳐다봤다. 유리 벽 너머로 빈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정욱은 점심 이후로 내내 외근 중인 모양이었다.

“전무님.”

비서가 문을 반쯤 연 채로 현조를 불렀다. 고개를 까닥인 현조가 문으로 다가가자 비서가 뒤로 물러나며 손잡이를 놓았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책상에 앉아 있던 선화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 앉으렴.”

임원이 되고 두 번째 찾아온 사장실이었다. 팀장이었던 시절은 사장실에 직접 올라올 일은 없었다. 아니, 올라올 필요가 없었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선화의 ‘명령’이었으니까. 어떤 곳에서건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라 했었다. 그리고 현조는 그 말을 지켰다.

‘우리가 마주칠 필요는 없잖니. 너는 네 일만 열심히 하면 되고, 나는 그런 네게 합당한 대가만 금전으로 치르면 되겠지. 그렇게 살자꾸나. 남은 평생.’

그 말을 지키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팀장이란 직급은 다방면으로 활용도가 높은 탓에 애쓰지 않아도 선화를 피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렇게 암묵적으로 서로를 피했다.

하지만 임원이 되고 나서는 이렇듯 필수적으로 마주쳐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다만 시간이 흐른 탓에 서로 감정적으로 무뎌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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