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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10/10)

Epilogue

로덴바흐 숙청 사건은 특별히 요란하지도 않게 지나갔다. 워낙에 황제의 손에 죽어나는 귀족들이 많았던지라 그저 짧은 감탄, 무엇보다도 새 포웰 공작에 관한 이야기에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들은 죄 묻혀 버렸다.

리비아 마르셸 모브레이, 포웰 공작, 선대의 부인, 아버지를 죽인 자, 그리고 황제의 총희.

마지막은 대단히 불명예스러운 이야기였다. 황제께 그 몸으로 하여금 송사를 흘리지 않았겠느냐는 그런 이야기. 남편의 상을 치른 이후로도 그렇게 많은 남자를 품었으니 폐하의 성은을 입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그럴싸한 동시에 저잣거리에나 나돌 법한 저속한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 해서 구태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입들이 바빠졌지만 정작 소문의 주인공인 그 둘은 집무실에서 수많은 업무와 대치하고 있을 뿐이다. 원체 앞뒤도 순서도 없이 닥치는 대로 숙청해 버리니 이리저리 마비된 채로 방치된 일들이 상당했던 것이다.

리비아는 정식으로 공작위에 봉한다는 서간을 받은 바로 다음 날 입궁하여 이 많은 일을 일방적으로 해치우고 있었다.

아무리 드레스가 아니라 가벼운 비숍 슬리브 셔츠와 바지를 걸쳤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몇 시간째 움직이지도 않고 반듯하게 앉은 리비아를, 에피알테스는 괴물이라도 보듯 괴이쩍게 바라보았다.

“공은 지치지도 않나?”

“몇 시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일세, 그리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아서 업무를 보는데 왜 멀쩡하냔 말이야. 짐은 아주 죽겠어.”

“허면 다음부터는 확충할 인원을 추려 둔 뒤에나 목을 치시면 되겠군요.”

리비아는 국법에 명시된, 혼인하여 출가한 자식을 외인으로서 취급하는 사족을 삭제하자는 취지의 청원을 훑어보며 대꾸했다. 그녀가 황제의 변죽을 출가외인이라는 핑계로 피해 간 것이 여간 열이 받았던 모양이었다. 아주 원로원이 기를 쓰고 아득바득 이를 공익적 사안으로 보고 추진하여야 한다고 성화였다. 그녀는 별다른 사감 없이 보좌관을 통해 황제에게 그 서류들을 넘겼다. 그는 흘긋 윗말만 훑어보고는 대충 옥쇄를 쿵쿵 내리찍어 다시 보좌관에게 돌려주었다.

“폐하.”

“응, 잘 보았느니.”

조금도 안 읽었군.

해당 조항이 폐지되면 여성 후계자의 작위 승계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본의 아니게 선행을 한 꼴이 되었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일 뿐이다.

리비아가 곧장 다음 안건을 검토하기 시작하자 지루해진 황제가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그대의 낯은 두껍군. 처음부터 알기는 했지만 짐의 총희가 어쩌니 베갯머리송사가 저쩌니 하는 와중에 제 몫도 아닌 일을 하러 오고 말이야.”

“저 역시 제국의 일원일진대 어찌 이것과 무관하겠습니까? 그 말들 역시 일정 부분 사실이니 신경 쓸 이유도 없지요.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리 잡은 뒤에 몰아서 보복하려고 그러지?”

“물론입니다.”

팔락 종잇장 넘기는 소리가 났다. 황제는 그녀의 눈이 비인간적인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대, 어찌 공작이 되려 하였어?”

녹색 눈이 데구르르 굴러 그를 응시한다. 에피알테스는 아예 늘어지듯 고쳐 앉고 있었다.

“그렇잖은가. 굳이? 물론 응당 자네의 것이기는 해. 혈통적으로도 가깝고, 나름대로 정통성도 있고, 유언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굳이? 짐은 그것이 아직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물론 짐이 속인들을 이해한 적이란 원래부터 그다지 없었지만서도.”

“이유라면야 여럿 있습니다만, 가장 중한 이유는 그저 그것이 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대가 혼인하지 않는 한 어차피 포웰은 자네 것이잖아.”

“아뇨, 싸우지 않았다면 저 역시 죽거나 재가에 들었을 겁니다. 로덴바흐의 방식은 그런 것이니까요.”

“그래서 백작을 죽였나?”

“예.”

“재가가 그리 싫어?”

그는 그다지 특별한 감흥 없이 순수한 흥미로 물었다. 물론 리비아는 답하지 않았다. 이미 답한 질문이었고, 이해하지 못하는 놈을 붙들고 가르칠 만큼 필요성이 있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흡혈귀라 일컬어졌던 백작 부인이 있다. 수백 년 전의 이야기이고, 그녀가 사실은 모함을 당했다는 것 또한 익히 알려진 바였다. 왕위 계승권을 가졌고, 대단한 재산과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꼭 그만한 가문의 안주인이 된 과부. 그녀를 죽인 것은 사촌 오라비이자 왕인 이였다. 사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죽으면 죄 제 것이 되니까.

홀로 남은 여인들의 삶이란 이 시대에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하건만 걸머쥐기만 하면 되는 자신의 자리를 어찌 놓아 주겠는가. 그렇다고 그저 자신의 반려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하루아침에 공작이 되어 자신을 옭아맬 이를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지도 않았으니 그녀에게 애당초 다른 선택지는 없는 셈이었다.

에피알테스는 그런 판을 벌여서까지 공작씩이나 된 독랄한 이가 버티고 있으니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자리를 뜰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긁어서 재미를 보겠다는 것처럼 여전히 그녀의 일을 방해하려 들었다.

“허면 그건?”

“그것이라 하심은?”

“자네 남성 편력 말이야. 일 끝나고 나니 바로 입 닦고 짐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소문이 영 과장 같더란 말이지.”

자색 눈이 샐쭉 휘어진다.

“경험적으로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리비아는 드디어 쥐었던 서류를 놓고 다 식어 빠진 잔을 들어 입을 축인 뒤 미소 지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리 없이 잔을 내려놓은 여자가 희미하게 즐거워했다.

“그저 제 발로 나아와 바치기에 삼켰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재미있었으니까요. 이럭저럭 즐기기도 했고…….”

물론 요한이라는 큰 먹이를 낚기 위한 도발에 불과했으나 황제가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그의 변덕을 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판단되면 냅다 폭로할 것이 뻔했으니까. 그러므로 그녀는 그저 웃어넘겼다.

“무엇보다 저들끼리 알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정하지 않습니까. 제 발로 기어들어 오는 것을 즐기고, 물릴 때가 되면 바뀌는 노리개를 어찌 마다할까요. 폐하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아, 물론 알지. 아는데……, 허면 그들의 행방에 대해 그대는 아는 것이 없다?”

이것을 빌미 삼아 약점이라도 하나 지워 줄 셈이었던 그로서는 김빠지는 결과였다. 리비아는 그의 일말의 기대마저 철저히 부수듯 퍽 자애롭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예, 신은 진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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