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망령
남자가 정신을 차린 것은 곧 동이 터 오를 무렵의 새벽이었다. 그는 온몸의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상태에서 눈을 흐리게 깜빡이며 뒤척이고 있었다. 연약한 등잔의 불빛이 눈꺼풀을 어루만졌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침실에는 특별히 등을 두지 않는다는 것과, 이런 부드럽고 정성껏 향을 배게 한 침구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당혹으로 낯빛이 물드는 그 순간에, 가느다란 손이 머리에 와 닿았다.
“좀 더 자 둬요.”
리비아였다.
그녀는 침대맡 베개로 등허리를 받쳐 앉은 채 종잇장을 들여다보다 말고 남자를 어르고 있었다. 그는 순간 얼이 빠졌다가, 그녀가 걸친 것이 앞섶 헐렁한 가운 한 장뿐이라는 것을 깨닫고서야 잠들기 전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떠올리고 얼굴을 붉혔다.
“부, 윽…….”
“저런, 목이 쉬었군요. 생각보다 심한걸.”
그녀는 깊은 염려 따윈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투로 속삭이며 요한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해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다정이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얌전히 그녀의 손을 느꼈다.
늘 갖고 싶던 것이었다. 이제 와서 반추하면 부끄러울 뿐이지만, 자신을 충분히 압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틀어잡혀 한 조각 자비처럼 내려오는 다정을 맛보며 환희하고 싶었다. 뜻대로 되지도, 오랜 세월 동안 한 자락 맛본 적도 없는 그것에 골이 나 있는 대로 골을 부렸다. 어렸던 리비아에게.
어른의 자존심도 뭣도 없는 비참한 짓거리였지만 그 모든 것을 잃은 다음에야 주어지다니.
아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비아 모브레이는 언제나 많은 구혼자에게, 숭배자들에게, 연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이런 식으로나마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가문의 안주인과 가문의 고문이라는 역할을 영영 벗어날 일 따윈 생기지도 않았겠지.
요한은 눈을 느리게 슴벅이다가 마력을 움직여 쉬어 빠진 목을 회복시켰다. 새삼스러운 감흥이 몰려왔다. 모든 것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짓눌려 순응하는 상황의 달콤함을.
그는 의식적으로 더는 잡스러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다 무심코 떠오른 것을 입을 담았다.
“정녕 혈족들이 조르주를 죽인 겁니까?”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였지만 리비아는 놀란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이 말을 기다린 것처럼 손에 쥐고 있던 서류들을 협탁 위에 올려 두며 요한의 머리카락을 제 손가락에 비비 꼬아 댈 뿐이었다.
“그걸 이제야 안 건가요?”
“…….”
“도대체 그들을 얼마나 믿은 건지……. 요한, 당신이 내게 대적할 마음이 사라졌음을 알아요. 그러니 바르게 말하건대, 당신이 생각한 바가 맞아요.”
그녀는 벌건 실타래에 묶여 피가 통하지 않아 혈색이 가라앉은 제 손끝을 바라보며 제법 즐거운 티를 냈다.
“당신은 지나치게 모브레이에 집착하죠. 긴 세월 살아오며 애착을 둔 것이라곤 이 가문과 마법밖에 없을 테니까. 마법은 늘 당신과 함께하고,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 신경을 특별히 쓸 일조차 없었을 테지만 모브레이는 아니었을 거예요. 늘 분쟁하고, 갈라지고, 사라지고, 흩어지고, 당신이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아도 어디선가 달려든 비수에 꿰여 절명해 버리곤 했겠죠. 마치 덜떨어진 한량이 되어 버린 자식에게 마음을 쓰고야 마는 부모처럼 애가 닳아 견딜 수 없었겠지만.”
“나는.”
“끝까지 들어요, 당신이 그렇게 썩은 가지마저 눈감아 온 세월이 기른 그것들이 조르주를 먹어 치운 거예요.”
남자의 눈이 크게 홉뜨였다. 리비아는 어떤 가여운 미물에게 가르침을 주듯 나긋나긋하고 천천히, 지리멸렬한 사실을 입 밖에 냈다.
“조르주가 분란의 씨앗인 나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일도, 그가 기어코 죽은 일도, 이제 와 나의 상속권이나 유산 분배에 대해 목청을 돋우는 일도, 전부 당신이 눈감아 준 파렴치한의 새끼들이 만들어 낸 일이에요.”
그의 낯빛이 흡사 석고처럼 허옇게 질렸다. 직시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으리라. 자신에게는 얼마든지 ‘사고뭉치’ 수준에 머물러 주었던 놈들이었으니 조금만 고개를 틀면 모를 수 있는 일들이었다. 리비아 모브레이의 편에 서기 전까지는.
* * *
그녀의 친정이자 근본이었던 뤼드베리가는 분가 중에서 가장 입지가 있는 편에 속했다. 압도적이지는 않아도 언제든 충분한 위협을 줄 수 있는 흔들림 없는 무력을 가진 변경백, 중앙 정치에도 많은 연줄을 가지고 있는 로덴바흐령의 백작들은 대를 이어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를 불려 왔다. 바로 저주스러운 혼인 장사.
물론 그들은 뤼드베리의 딸들이 가지는 혼인에 대한 반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백작은 단 한 번도 잃어 본 적이 없다. 그저 있으나 마나 한 집안의 예쁘장한 계집들을 여기저기에 흩어 두는 것만으로 수많은 패물과 세간의 인정, 안정적인 지위, 아리따운 처첩들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바깥 사람들이야 물론 친정의 입지가 있으니 시집을 가서도 평탄하지 않겠느냐는 말 따위를 지껄이겠지만 속사정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자신의 지배욕과 그 추접스러운 정욕을 소화하기 위해 처를 마음껏 ‘남자답게’ 휘두르고, 망가지면 팽개치고, 아름다운 여자라면 그것이 남편이 있든 없든, 나이가 어리든 많든 간에 마음대로 취했다. 뤼드베리와 거래한 자들은 암암리에 서로를 돕고 적극적으로 눈감아 주었다. 뤼드베리가 그러하게 두면, 그들도 자신들을 핍박지 않는다.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거래였다.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 본 적이 없는 자들이 날을 두려워할 일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리비아는 자신을 어여삐 여기면서도 그 어떤 의사도 들어 주지 않는 부친 아래서 자라며 형언키 힘든 혐오감들을 속에 담아 왔다.
그녀에게는 늘 온기 있는 것들이 주어진 적이 없었다. 차갑고 단단한 구두, 무겁게 온몸을 짓누르는 드레스들, 어린아이의 무른 살갗에는 흉기에 불과한 귀금속과 엄격한 교사의 감시하는 듯한 눈총, 매서운 고함과 얕은 실망이 뒤섞인 경멸, 회초리, 네가 참는 것이 능사라며 울던 어머니와 으레 그렇게들 자란다고 연민 섞인 투로 지껄이던 유모.
특별히 불행한 나날은 아니었다. 말마따나 제 주변의 자매들은 다 그렇게 살았다. 그녀가 본보기로 삼은 여자들도, 그녀를 본보기로 삼은 여자들도, 하나같이 예의범절과 교양 속에 서로의 불행을 베껴 갔다.
다만 그녀의 인간성을 에던 것은 질투였다. 으레 그렇듯 불행한 여자들과는 달리, 능력도 노력도 없는 남자들은 어렵잖게 모든 것을 얻었다. 그 여자들이 살을 먹이고 뼈를 깎아 얻어 낸 영광은 모조리 그들의 몫이었다. 내가 저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대체 왜? 단순히 알량한 그 남근 하나를 가지고 난 것만으로 제 머리끝에 서려고 드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소녀는 비상한 재능과 그에 걸맞은 노력으로 일찌감치 또래는커녕, 성인이 된 남자들과 겨룰 수 있었다. 하다못해 그들이 그렇게나 잘났다고 노래를 부르는 그 힘이나 체력마저도 자신이 우월하지 않은가. 그녀는 태생적으로 수컷들의 우월론을 이해하지 못했다.
유전으로 물려받은 리비아의 비인간적인 힘을 알게 된 순간, 부친은 그녀에게 정숙하지 못한 재주를 뽐낼 생각일랑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 바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무가인 뤼드베리에서 힘을 폄하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작 본인마저 그 무식한 힘으로 공훈을 세우지 않았는가? 그는 이따금 기분이 좋을 때면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사내놈이었더라면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영광을 안기었을 텐데, 하고 안타까워하곤 했다. 그녀는 그 순간순간 치미는 구역질을 삼키기 위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매양 ‘왜 나는 안 돼요?’ 하고 치기 어린 반항을 하기에는 그녀는 지나치게 똑똑했고, 주변의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울화는 조금 더 궤가 다른 것이었다. 충분히 그 ‘사회적’이라는 이름을 단 규제를 무시할 수 있는 가문의 힘과 뒷배가 있음에도 어째서 부친은 저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스물이었다.
그녀는 자부하던 자신의 성숙함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했다. 로덴바흐 백작과의 독대에서 충격적인 명령을 들은 까닭이었다.
“……조르주 공과의 혼약이요.”
“그래, 어차피 그것, 흠잡을 만한 정통성을 정정할 다른 방도도 없으니 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게다. 고리타분한 혈손 간의 혼약이라고 비웃기에는 너 이상으로 뛰어난 신붓감도 없으니 모든 것이 아귀가 맞지 않니.”
“…….”
“리비아.”
부친은 그녀와 꼭 닮은 눈매 아래 금색 눈을 광기로 빛내며 두꺼운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틀어쥐었다.
“내게 모브레이를 가져다주렴.”
그 말을 들은 순간 벼락처럼 깨달았다. 그는 애쓰지 않은 것도, 못한 것도 아니라 충분히 다른 방향으로 힘쓰고 있었다. 뤼드베리의 영광 속에 지당 자신의 역할이 있으리라고 여긴 소녀는 얼마나 어리석었나. 피가 섞인 딸들을 팔아 치우던 것을 조금의 수치로도 여기지 못하는 후안무치의 장자가 제 딸에게만큼은 조금이나마 다르리라고 믿은 것이 얼마나 아둔한 착각이었는지, 고인 것들이 응축된 그가 어찌 염치가 있으리라 믿었는지.
그녀는 분가 중 가장 열렬하게 조르주의 정통성을 흠잡던 아버지를 기억했다. 귀족적이기 짝이 없는 그 욕망 덕에 지위를 견고히 하노라고 배웠으므로 수치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사라는 자가, 콧대 높은 사내놈이 제 손으로 하기에 꺼려지는 싸움을 위해 어린 딸을 앞세울 줄은 몰랐다. 저 커다란 몸집과 강력한 힘은 대체 무엇을 위해 길렀단 말인가? 부친이 가진 만큼 탐욕적인 삶을 살라던 가훈에 누구보다 충실한 줄은 일찍이 알았으나.
말문이 막혔다. 눈앞이 핑 도는 막막함과 절절한 분노 속에, 리비아는 그러마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 외에 그 무엇도 선택할 수 없었음이 지금껏 사무쳤다.
* * *
“해서, 순순히 결혼했죠. 무엇이든 하기 위해서는 백작의 슬하에서 독립해야 했으니까. 조르주는 내가 손대지 않아도 분가의 작당 속에 언제가 됐든 천수를 누리고 가진 못할 테니 가장 적합하다고 여겼어요.”
“…….”
요한은 고개를 떨군 채 희미하게 떨고 있었다. 여자는 그의 턱을 그러쥐고 얼굴을 들게끔 했다. 그날의 부친과 꼭 닮은 광기 어린 눈으로 정처 없는 혼란한 그의 눈과 시선을 얽으며 속삭였다.
“이런 내게 엮이게 된 당신을 동정해요, 요한.”
그의 입매가 파르르 떨리며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리비아는 짧게 웃음을 흘리며 툭 하고 그의 턱을 놓았다.
“일찍이 말했죠, 날 거꾸러뜨려 보라고. 그리하면 모브레이도 끝장날 테지만. 기억하나요?”
“……이런……, 뜻이었습니까?”
“내가 사라지면 더 이상 참지 않을 테니까요. 로덴바흐 백은 그저 내가 물어다 줄 것을 기다리기 때문에 얌전히 있을 뿐이에요.”
“……날 비난하지 않는 겁니까?”
“설마, 이제 와서 그런 비생산적인 일에 매달릴 이유는 없죠. 다만, 당신에게 일어난 이 비극적인 배신들이 어느 정도는 당신의 외면 탓이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랍니다.”
요한 구르디예프는 이를 악물었다. 속이 뒤틀리는 것처럼 언짢은 심사를 해소할 길이 없었으므로 다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았다. 영민한 머리로 모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분열하는 모브레이가 파멸하는 날, 손 뻗치지 않을 무뢰배가 있을 리 만무할 테니까. 그것이 황실이 되든, 다른 가문들이 되든, 결국 그의 손에 남은 것은 최악과 차악뿐이었다. 그는 한참을 씨근거리다 결국, 조용히 돌아눕는 편을 택했다. 한순간 달콤했던 몸뚱이가 원망스러운 순간이었다.
* * *
익숙한 한기가 찾아왔다. 불안함에 가까운 어떤 직감적인 것이었다. 홀로 남았음을 깨닫게 하는 그것.
요한은 불현듯 눈을 떴다. 천개를 굳이 걷지 않아도 해가 중천임을 알기란 어렵지 않았다. 남자는 잠깐 숨을 멈추었다가, 타인의 숨소리조차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호흡하며 모로 누웠던 몸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천으로 갑갑하게 닫혀 있는 사위에서 도피하듯 눈을 감은 그는 제 몸뚱이가 희미하게 젖어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교합을 앞두고 얼쩡거릴 때처럼 땀이 밴 살갗이 촉촉했다. 무엇보다 샅이 뻐근했다. 이불에 스치우는 것을 모를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던지라 결국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킨 그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엉덩이에 체중이 실리자마자 회음이, 정확히는 좀 더 안쪽에 자리한 성감대가 달콤하게 아려 온 탓이었다. 마치 조금 전까지 들쑤셔지기라도 한 양 감각이 과민하게 열려 있었다. 부어오르기라도 했는지 설핏 배기는 듯한 감각마저 섞여서, 기분이 진창에 처박히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온몸은 마치 불에 데기라도 한 듯 덩굴에 빨리고 감겼던 자리마다 발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흰 살갗 위를 난잡하게 가로지르는 선들을 불쾌하게 보던 그는 꺼떡거리며 선액을 질질 흘리고 있는 제 성기를 신경질적으로 노려보았다. 간밤의 여운이 아직까지 남았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기실, 리비아와 엮이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성적으론 거의 불구에 가까운 삶을 살았다. 외양과 비슷한 나이였을 무렵에도 자위는커녕 몽정도 드물었다. 이따금 수음하게 될 때는 호문클루스에 대한 실험 따위를 하며 인간의 정이 필요할 때뿐이었다. 그러니 제 몸이 이제 와 감각이 열려 주인을 기다리는 안달 난 개새끼마냥 열이 올라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제가 일어나기 전까지 리비아가 자신을 희롱하다가 해소시키지도 않고 놓아두고 가 버렸다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는 이불을 끌어다 대충 다리 사이의 미끈거린 액체들을 닦아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스럽게도 요한은 온몸을 두들겨 맞기라도 한 양 욱신대는 고통과 팔다리의 근육통에 절뚝거리느라 이불에 묻어난 액체가 제 것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기이한 색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남자는 그 누구의 시중을 받지도, 알리지도 않은 채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던 제 옷 대신 미리 준비되어 있던 익숙지 못한 옷가지를 꿰어 입고 저택 내에서 유일하게 리비아를 피할 수 있는 제 공방으로 도망치듯 이동했다.
리비아가 준비해 둔 옷은 천이 좀 도톰하긴 해도 한 장뿐인 키톤이었다. 간밤에 자신을 첩이라고 지껄였던 말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려는 것인지, 조롱의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라시니 놈이 입고 있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디자인이라 심기가 단단히 뒤틀렸다. 무엇보다도 평소 겹겹이 옷을 껴입는 편이었던 그로서는 헐벗고 선 것처럼 지나치게 외설적인 감각이 들었다. 온 사지가 훤히 드러나는 거로도 모자라 넓게 트여 있는 소매나 다리 사이로 바람이 파고들 때마다 수치심이 왈칵 고개를 들었다. 무엇보다 한 겹뿐인 탓에 뾰족하게 도드라진 유두도, 여전히 가라앉을 줄을 모르는 성기도 가려지기는커녕 존재감을 여실히 강조하듯 툭 불거져 티가 났다.
그는 익숙지 않게 팔랑거리는 천에 첨단이 쓸릴 때마다 흠칫거리며 마른세수를 했다. 하룻밤을 비운 공방은 유지 마법이 걸린 만큼 평소와 다를 바 없었으나 묘하게 낯선 기분이 들었다. 꽉 차 있던 것을 빼 버린 듯한 기분. 간밤 내내 리비아와 함께 있었던 탓에 그녀의 기척에 익숙해진 탓일 테다.
“하아…….”
그는 자신의 한심한 꼴에 위장이 우그러드는 감각을 만끽하며 침대에 몸을 뉘었다. 여전히 온몸이 덥고 홧홧하게 열기가 감도는 것을 보노라면 필시 지난밤 무리를 한 탓에 몸살이라도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 마물로 앞뒤 구멍을 범해지고, 아플 정도로 살집이 도드라지게 꽉 틀어잡힌 채 젖을 빨렸다. 그리고 리비아와 이어져…… 그녀의 추삽질로 절정에 이르렀다. 격정적인 허리 놀림에 따라 그녀의 머리칼과 가슴이 출렁거릴 때마다 그 끔찍하게 외설적인 광경과 폭력적인 쾌락, 짓뭉개지는 듯한 황홀과 희열에 들떠 처참하게 울부짖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지난밤을 회상한 것만으로도 아랫배에 바짝 힘이 들어갈 정도로 애가 닳았다. 여전히 죽을 기색이 보이지 않는 성기가 아리긴 했지만 손을 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 모든 형벌이 그녀의 허락 없이 사정했던 한순간의 실수에서 태어난 것이다 보니 묘한 거부감이 일었던 까닭이다. 자리에 있지도 않은 그녀임을 알아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다시금 벌을 줄 것만 같았다.
괜스레 바짝 마른 입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쓴 남자는 마른침을 삼키며 희미하게 먼지와 종이 따위의 해묵은 냄새가 나는 차가운 이불을 끌어다 몸을 감추듯 둘러 덮고 잠을 청했다.
* * *
익숙지 않은 무리를 했던 탓에 쌓인 피로는 금세 그에게 잠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열기를 잊기에 충분한 잠은 아니었다. 요한은 거의 삼십 분에 한 번씩 잠을 깼다가, 어젯밤의 꿈을 꾸다가, 잠결에 시트에 좆을 치대다 잠을 깨길 반복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만큼 비이성적인 일이었다. 발정이라도 온 마냥 감각과 신체가 모조리 하반신에 신경이 쏠려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하니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여섯 번째로 잠에서 깨며 신경질적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꿈으로 오르가즘을 느끼면서도 사정은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이제 슬슬 한참 동안 피가 몰려 있던 성기가 아려 오고 있었다.
요한은 달콤하게 뭉그러진 듯한 숨을 헐떡이면서 베갯잇에 관자놀이를 비볐다. 마냥 짜증스러웠다. 몸을 짓뭉개 열고, 완연한 패배감을 뼛속 깊이 새겨 넣은 직후 달콤한 밀어 대신 새벽녘에 그런 끔찍스러운 이야기를 지껄인 것도 열이 받다 못해 돌아 버릴 지경이건만, 제 수컷을 다루는 양 안하무인으로 손아귀에 쥐고 흔들더니 인사조차 없이 방을 비웠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여자에게 유린당한 감각을 잊지 못해 눈을 뜬 뒤로도 이렇게 비정상적인 꼴로 예민하게 어기적거리고나 있지 않은가. 마치 임이 오시길 기다리며 허벅지라도 꼬집는 안사람처럼.
그는 평생 동안, 물론 지금도 여전히 얕잡아 보고 있는 모자란 놈들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이 상황이 대단한 불만이었다. 그야말로 미친 새끼라고밖엔 말할 수 없는 제 뇌리엔 온통 그녀의 하얀 손과 녹색 눈뿐이다.
불현듯 시야에, 미슐레 호엔베르크와 대거리를 했던 책상이 눈에 띄었다. 요한은 무의식적으로 그놈이 쥐어 멍 자국을 남겼던 제 허벅다리를 더듬었다. 형언할 수 없는 부정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정인을 두고 무뢰한에게 살갗을 내어 준 것처럼.
떠오르는 생각 그 무엇 하나도 성에 차는 것이 없다. 모조리 스스로가 멍청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 미쳐 돌아가는 저택에 잠식당한 것처럼 리비아 모브레이와 열락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타도해 마땅한 비이성이건만 대적할 맘이 들지 않았다. 그런 개념에서 홀로 유리된 것처럼 뿌옇다.
요한은 낯익은 천장을 보고 누운 채 습관적으로 제 몸뚱이 위에 편히 손을 늘어뜨렸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낯설게 배가 부풀어 있었다. 꿈과 감각의 잔재로 인한 착각인가 싶어 손끝에 힘을 주어 빠듯하게 문질러 봐도 착각은커녕 또렷하게 현실임을 인지할 수밖에 없을 만큼 오돌토돌하게 부푼 배가 있다. 일순 벼락처럼 깨달았다. 희롱당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은, 마물과의 교접 중에 일어난 것들도 수습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제 손으로 만들었는데 그 최후를 모를까. 그는 모든 피가 차갑게 식은 채 더듬더듬 사타구니 쪽으로 손을 내렸다. 여전히 뻣뻣하게 발기한 성기가 품은 열기를 깨닫자 더 이상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별다른 의도 없이 가뿐히 전립선을 스치듯 뭉개고 지나가는 감각에 허리를 떨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알, 마물의 알이 뱃속에서 부푼 것이다. 요한은 한없이 혼란해졌다. 뱃속에 그 잡스러운 미물의 알이 있다. 정을 뱄다. 요한 구르디예프가, 무언가의, 새끼를.
아니, 아니다, 고작해야 부화하지도 못한 알이 아닌가? 아무리 부풀어 보았자 본체의 점액을 꾸준히 공급받지 못하면 새끼가 든 알이라기보다는 그저 그것의 열매에 지나지 않은 덩어리일 뿐이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을 다독이면서도 여전히 식지 않는 몸뚱이를 원망했다. 좀 더 근본적으로, 리비아를 원망했다.
자신과 샅을 접붙이고 그 흉물스러운 것으로 자신과 이어졌다. 마물 따위는 그저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그였으나 어쩐지 간음한 것처럼 배알이 뒤틀렸다. 게다가 이 또한 그녀의 탓이 아닌가? 그 여자가 함께 꿰인 마물로 제 구멍을 겁탈하며 한계까지 마물을 키워 준 탓이니까.
자잘한 것들을 떠나 실루엣만 살핀다면 마치 그녀의 정을 밴 것만 같은 이 상황에 흥분하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이런 걸 역겨워하지 않는단 말인가? 대체 왜? 이래서는 그녀가 들먹였던 대로 짓밟히길 기대하며 서성댄 저질스러운 이상 성욕자가 아닌가. 스멀스멀 안와에 눈물이 고였다. 갑갑했다. 분이 나 그런 건지, 해소되지 못한 성감 탓인지, 아니면 해결할 방법 따위를 강구하기에 너무도 까마득한 뱃속의 알이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요한이 뻣뻣하게 굳은 몸을 달싹일 때, 예고 없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 요한?
아, 정말이지. 그는 목 놓아 울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째서 그녀는 이럴 때만 귀신같이 자신을 찾아오고야 마는 건지. 그는 파르르 떨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답이 돌아오지 않는 방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 고요하더니, 결국 허락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슐레 호엔베르크와 함께.
“홀로 두어 미안하다는 말을……, 하러 왔는데 말이에요.”
리비아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가, 그의 낯이 발갛게 달아올라 눈물을 머금고 파들파들 일그러진 것을 보고는 천천히 가늘어지며 호선을 그렸다. 미슐레 호엔베르크의 무감한 눈이 제게 꽂힌다. 평정을 가장한 푸른 눈 속 가득한 질시, 경멸, 이해 같은 감정들이 날것 그대로 와 닿았다. 그는 사무치게 수치스러웠다.
“당신이라면 모를까, 내 허락도 없이 저것을 공방에 들이지 마십시오.”
“미셸은 내 호위인 것을요. 신경 쓰이나요? 셋이 한 공간에 있는 게 처음은 아니잖아요?”
“지금과 그게 같습니까?”
요한은 저도 모르게 원망하는 투로 일갈했다가, 그녀가 다가와 제 침대에 걸터앉자 입을 다물었다. 리비아는 어젯밤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다정하고 우아한 손길로, 천천히 이불을 그러쥐고 시선을 맞추었다. 마치 허락을 구하는 것처럼.
그 자상한 시늉에 말문이 막힌 그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자, 그녀는 아주 천천히 이불을 걷어 냈다. 그리고 땀과 점액 따위로 젖어 한층 더 몸에 바짝 들러붙은 습한 천과, 그것이 흐트러지고 말려 올라가 멍과 발간 자국을 두른 채 드러난 몸뚱이, 맨몸보다 야살스럽게 도드라지는 부푼 부분들이 훤히 드러났다. 여즉 오후였다. 뜨뜻한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미슐레와 리비아의 시선이 제 몸뚱이를 샅샅이 살피는 감각이 살갗에 사무쳤다. 그녀의 유열 어린 시선과, 남자의 건조한 눈을 견디지 못한 요한이 한 손으로는 이불을 쥐고 다른 쪽 손을 들어 팔뚝으로 제 낯짝을 가리며 거부했다.
“보지 마십시오. 이런, 꼴을, 남에게 보이게 하다니. 당신은 정말…….”
“내게 지고야 만 당신의 잘못이죠. 어쩔 수 없으니 익숙해지도록 해요. 앞으로 적어도 지금 별채에 있는 셋은 쭉 서로의 치부를 보게 될 테니까.”
“날, 그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내게 명령하지 말아요, 나의 요한.”
“제발.”
그는 이윽고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수치심에 무너진 얼굴로 이불을 당기는 손에 힘을 주었다.
“리비아.”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름을 부른 것에 대한 불쾌감인지 그의 절박성에 대한 가늠인지는 명확히 하기 어려웠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언짢음은 없었다. 요한은 입술이 허옇게 질릴 정도로 꾹 깨문 채 애써 아랫도리를 가리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리비아는 이불을 양보해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그저 태연하게 그를 내려다볼 뿐.
“흐윽…….”
절로 잇새에서 울음이 샜다. 아무리 그가 위세 등등한 사내라고 해도 이런 꼴을 하고 제삼자의 눈에 모든 것을 드러낸 채 멀쩡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상대가 리비아 모브레이가 아니었더라면 진작 머리통을 터뜨려 죽였을 일이다. 혹은 그 자신이 혀를 깨물고 자진하거나.
남자는 차라리 제가 남의 시선 따윈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는 둔한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런 끔찍스러운 모멸감은 느끼지 않았어도 됐을 테니.
리비아는 그의 괴로움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태연자약하게 하복부 언저리에 손끝을 댔다. 상념에 젖어 있던 요한이 화들짝 놀라 몸을 떠는 것을 어르면서 천천히 배 위에 손 전체를 얹고 살살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한계 아닌가요?”
“……아, 알고…….”
“그럼요, 어젯밤에도 깨웠는데 일어나질 못하더군요. 그래서 당신이 깨어나면 말해 주려고 했더니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지 뭐예요. 일정이 없었더라면 좀 더 일찍 와서 말해 주려고 했는데 시간이 꼬여 버리고야 말았어요. 많이 무서웠나요?”
요한은 쉽사리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어물거렸다. 그녀의 손이 아랫배를 훑을 때마다 등허리가 살짝 뜰 정도로 오싹오싹한 감각이 훅 치달았다. 귀두 끝에 맺혀 있던 선액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킨 그는 벌겋게 달아오른 고개를 돌리다 미슐레 호엔베르크와 눈을 맞닥뜨렸다. 찬물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양 서늘하게 가라앉는 간담. 그러나 동시에 비위가 상한 듯한, 속이 쓰린 듯한 그 일그러진 눈매를 발견한 순간 희끗한 웃음이 비어졌다. 정확히 무엇인지 짚어 낼 수 없는 그것에 정신이 팔려 있던 무렵 리비아의 손이 옷자락을 들치고 그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렇게나 안달이 나선…….”
“으응……!”
“질척질척해요, 요한.”
“아, 흣……, 마, 만지지…….”
“갈 것 같아서?”
“…….”
끼익, 하고 짧은 소음과 함께 그녀가 침대 위로 완전히 올라와 자신을 찍어 누르듯 자세를 잡았다. 요한은 이전과 달리 거북하기보다도 아랫도리에 힘이 바짝 들어갈 정도로 흥분된다는 것을 자각하며 뻣뻣한 몸뚱이를 그녀가 먹어 치우도록 그저 두었다.
“질펀하네요.”
“흣……!”
그녀의 가느다란 손끝이 한창 독이 올라 있던 구멍에 닿았다. 온 신경이 집중된 채로 천천히 파고드는 단단한 손끝의 서늘함에 넋이 팔렸다. 앙다물린 채 한참을 오물대기만 하던 곳을 비집어 파고드는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등허리가 자꾸만 들썩대는 것을 억누르려 애쓰던 그는 리비아가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 넣는 순간 가늘게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뒤챘다. 단숨에 열이 오르는 몸, 한여름 정오의 정원을 노닐어도 땀 한 방울 흘릴 일 없는 마법사인 그에게는 더위란 곧 정사의 전유물이었다. 덥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제 몸뚱이를 직시하게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까.
리비아는 비스듬히 세운 그의 무릎에 뺨을 기댄 채 빙그레 웃었다.
“새벽녘부터 쭈욱 품고 계셨을 테니 이리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조금 오싹오싹한걸…….”
“……즐거워 보이십니다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어 언짢은 투정을 뱉자 그녀의 입매가 좀 더 짙은 호선을 그린다.
“그럼요,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응……!”
“자아, 요한, 느껴지나요? 당신의 구멍이 벌어진 게.”
“아, 아흐…….”
“이게 마물의 알을 밴 구멍이 주는 감각이에요. 당신이 아무리 오래 살았단들 이런 건 처음 겪지 않나요? 지긋이 즐겨요.”
그녀는 나긋나긋하게 속살대며 그의 구멍 속에 든 제 손가락을 가위질하듯 움직였다. 점액으로 절어 있던 구멍이 벌어졌다 다물리며 쿨쩍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낼 때마다 요한의 턱이 파르라니 떨렸다. 리비아는 그의 표정을 핥듯이 바라보며 미슐레의 시선을 즐겼다. 천천히 손가락을 밀어 넣어 뱃속에서 그의 마력을 빨아먹으며 부풀어 오른 동그마한 알에 닿자, 요한을 괴롭히듯 손끝으로 그것을 갉작거렸다.
“아, 아!”
“느껴지죠? 이게 당신이 품은 거예요.”
“그, 긁지, 마, 움……, 움직이, 움직, 아……!”
그는 생경한 감각에 거의 비명처럼 흐느끼며 고개를 내저었다. 경직된 몸과, 불긋하게 달아오른 몸뚱이, 온통 흰 천 위로 나부끼는 그의 붉은 머리카락, 리비아는 제 손끝에 채여 조금쯤 바깥으로 딸려 나온 알을 쿡 찔러 안으로 도로 밀어 넣었다.
“하으……!”
“계속 품고 있을 건가요? 나야 색다른 걸 즐기게 될 테니 아무려면 좋지만……, 요한. 당신은 아닐 텐데요? 이대로 두다간 알이 아니라 마물을 낳아야 할 텐데.”
“흐윽, 흐……, 싫어…….”
“마물보단 알이 낫죠? 그 덩굴이 당신 뱃속에서부터 싹 터 안쪽을 들쑤시며 자의로 기어 나와 성기에 엉겨 정을 짜내는 것보다야.”
정녕 그리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리비아의 입에서 나오자 설득력이 대단했다. 요한은 덜컥 그녀의 말에 휩쓸려 상상했다. 자신의 요도 안쪽까지 파고들어 착정하던 마물의 그악스러운 교배를, 오싹 몸이 달아오르며 구멍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알이 뒤엉키며 내벽을 자극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그녀의 손가락도 느꼈을 테지. 요한은 수치심에 몸부림치면서도 허리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런 건 무섭다. 기분 좋은 것과 별개로 생리적인 거부감이 대단했다. 지금처럼 알이라면 그저 그녀의 질 나쁜 희롱에 도구가 더해졌을 뿐이라고만 여길 수도 있겠지만, 제 뱃속에서 그런 게 움튼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남자는 결국 팔뚝을 들어 제 얼굴을 가리며 입을 열었다.
“두, 둘 다……, 싫습니다.”
“둘? 마물과 알이 싫다는 건가요?”
요한의 고개가 위아래로 주억주억 흔들렸다. 리비아는 그의 무릎을 핥아 올리며 여전히 그의 구멍 속에 파묻힌 제 손가락으로 내벽을 휘저었다.
“이건?”
시야가 차단되니 다른 감각들이 예민하게 끓어올랐다. 이를테면 쾌락이라던가, 제삼자의 증오스러운 눈빛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훨씬 더 날것 그대로 다가왔다. 요한은 마치 제 눈앞에 있는 듯 느껴지는 미슐레 호엔베르크의 경직된 낯짝에 침을 뱉고 싶다는 기분에 홀린 듯 입을 열었다.
“당신이라면……, 좋습니다.”
“어머.”
“리비아, 당신이라면……, 괜찮아요.”
리비아라는 이름 석 자가 불리자 곧장 기세등등한 살기가 자욱하게 방 안을 메웠다. 리비아 역시 모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등 제지하지 않았다. 마치 미슐레가 이 방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넘긴 그녀는 요한의 치맛자락을 위로 들춰 볼록한 하복부를 드러내게 했다. 그 부른 배 위에 입술을 묻고서 더운 숨을 흘리고는 요한의 내벽 속 유독 도드라지는 오돌토돌한 부분을 강하게 긁어내렸다.
“아……!”
벼락처럼 교성이 터져 나왔다. 내내 달아 있던 몸뚱이가 전립선의 자극을 견딜 리 만무하였으므로. 그러나 정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마치 여전히 무언가로 막힌 것처럼. 비이성 속에 지나치게 깊이 때려 박힌 간밤의 경험 탓이리라. 리비아는 흡족한 기분으로 그의 배와 사타구니 근방을 진득하게 핥아 주며 속삭였다.
“기뻐요, 나의 요한.”
“응, 흣……, 아, 앙, 리비, 리비아……, 아, 안……, 돼……!”
수치심도 모르고 파렴치하게 허공에 꺼떡꺼떡 흔들리던 그의 검붉은 귀두가 거리낌 없이 삼켜졌다. 여자의 입 안으로.
눈을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제 민감한 살갗에 닿아 오는 숨결로 직감한 요한이 안 되노라고 울었지만 리비아는 멈추지 않았다. 미끌미끌하게 젖은 그것을 입 안에 품은 채 부드럽게 혀를 굴려 그의 체액을 핥았다. 요한의 온몸이 쾌락에 경직된 채 벌벌 떨렸다. 그는 숨을 제대로 내쉬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두 다리를 활짝 벌린 채 그사이에 리비아를 품을 뿐이었다.
“으, 하아, 아, 리비……, 리비아, 제발…….”
끈적한 소리가 여과 없이 사내들의 귓전을 때렸다. 뻐끔대는 구멍을 벌리고 쑤시며 찔꺽대는 것과 자꾸만 질질 흘려 대는 절조 없는 좆대가리를 거칠게 빨아 올리는 소리가 뒤엉켰다. 요한은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 짐승처럼 흐느끼다가 귀두를 지나 기둥까지 그녀의 입 속에 들어차자 발뒤꿈치로 시트를 긁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안 돼, 안, 안 돼, 애……, 제발, 응, 이거, 아, 아응, 힉……!”
휘몰아치는 쾌락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타성적인 거부의 말을 뇌까리며 음탕하게 바르작거리는 것뿐이었다. 리비아는 거칠어진 제삼자의 숨소리를 알아채곤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흥분보다도 앞선 질투, 맹렬한 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뜯어말리기는커녕 신음 하나 내지 않는 우직한 충성. 미슐레는 다시금 그녀를 기쁘게 했다. 충실한 쓰임대로.
요한은 고개를 뒤로 꺾으며 헐떡헐떡 울었다. 동시에 자유로운 팔다리로 그녀를 밀어 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스스로가 희열에 젖어 있음을 깨달았다. 미슐레 호엔베르크, 결코 자신에게 공손하지 못한 그 망종을, 물리적인 고통보다도 훨씬 압도적으로 모욕하고 벌주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리비아 모브레이의 총애가 곧 최고의 복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남자는 엉성하게 벌어진 제 팔뚝 너머로 발치에 선 사내를 보았다. 그놈은 줄곧 주인의 뒷모습에 두었던 눈을 녹슨 나사못처럼 삐걱대며 돌려 자신을 마주했다. 그 꼴이 얼마나 우습고 짜릿한지.
“아, 리비아……!”
그녀에게 몸을 바친 채 이름을 부르자 목에 벌컥 핏대가 솟는 것이 또렷이 보였다. 우스운 꼴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주인을 신성히 여긴다. 거울이나 다름없는 이 악마 같은 여자는 기꺼이 그의 감정에 부응해 주겠지. 다만 결코 그 밑바닥에 깔린 무저갱을 드러내지는 않으리라. 그저 매혹적인 주인을 모시는 그는 자신과 같은 깊숙한 진실을 깨칠 일이 없을 테다. 이토록 폭력적이고, 그녀가 신이 나 달려드는 경험 따윈……, 못 하겠지.
우그러졌던 요한의 입술에 눈을 빼앗긴 미슐레는 보고야 말았다. 그가 형편없이 열에 달뜬 채 우는 중에도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꼴을, 자신을 조롱하는 모습을.
그러나 미슐레와 달리 요한은 오래간 그에게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앞뒤로 주어지는 쾌락에 몸부림치며 힘껏 힘을 주었다 풀길 반복한 탓에 알들을 바짝 조여 밀어 내게 된 탓이었다.
미끌미끌하고 다소 물렁한 감각이 아래로 내려온다, 체내에 고여 있던 점액이 울컥 구멍 밖으로 흘러나오는 순간 리비아가 양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뿌듯하게 움켜쥐고 주무르며 목 안쪽까지 그의 성기를 삼켰다.
“나, 와, 아, 아으……, 응, 빠, 빨지, 마, 마십…….”
그는 기어코 다리를 오므려 그녀의 몸뚱이에 엉겨들었다. 마치 자발적으로 그녀를 제 다리 사이에 끌어들인 채 묶어 두는 것처럼 그의 흰 다리가 여자의 검은 옷자락들을 구기며 바짝 들러붙었다. 그녀는 아프거나 버겁지도 않은지 태연하게 그의 몸부림을 받아 주며 엉덩이를 살짝 아플 정도로 꽉 틀어쥐고, 벌렸다. 회음부가 다시금 찬 공기에 놓이는 감각. 그녀의 입술이 기둥을 더듬으며 점차 아래로 내려온다. 아.
“히익……!”
미끌미끌한 것에 섞여 울컥 아래로 쏠렸던 것이 힘껏 죄어든 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빠져나왔다. 그 완만한 곡선이 전립선을 짓눌러 훑음을 느끼며 허리를 튕긴 요한이 온몸을 비틀며 베갯잇을 쥐었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괴악한 쾌감이었다. 무언가가 제 뱃속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겪을 줄은.
그러나 한번 둑이 터지자 그동안 잠잠했던 것이 착각인 것처럼 와르르 연달았다. 뒤를 이어 울컥울컥 두어 개의 알이 더 쏟아져 나오고, 그 쾌락에 파정 없이 절정에 올라 버둥거리면 리비아가 제 배를 손으로 눌러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못 박는다. 고개를 뒤로 물리는 것과 동시에 입술로 성기를 조여 무는 움직임이 자연스러웠다. 한순간도 그를 가만 놓아두지 않는 쾌락 속에 짓눌리는 자극을 받은 알이 다시금 왈칵왈칵 득달같이 구멍을 비집고 뱃속을 진탕 휘저으며 쏟아져 나온다. 절정과, 과민한 쾌락과, 날것 그대로 때려 박히는 사실을 뒤늦게 꾸역꾸역 이해하는 뇌 내, 다시금 절정.
요한은 진정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갈라진 듯한 목소리, 평소 그의 목소리를 알면 알수록 충격적일 정도로 미끈한 교성이 울음과 뒤엉켜 동시다발적으로 뭉그러졌다. 날카로운 동시에 매가리 없는 울음이었다. 이미 그의 다리 사이로는 예닐곱 개의 알이 굴러다녔다. 뿌연 점막을 두른 연둣빛의 무언가들. 리비아는 몇 번 고개를 내렸다 물리길 반복하며 그의 성기를 자극하다가, 이윽고 입 밖으로 끄집어낸 뒤 기둥을 움켜쥐었다.
“옳지.”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살을 섞어 본 요한에게도, 미슐레에게도 낯설 정도로 무던하고 색정적이었다. 마치 껍질을 벗어 둔 듯 날것 그대로의 리비아의 자취이리라. 요한은 그녀의 칭찬에 눅진눅진하게 녹아난 입을 헤벌린 채 울음을 삼켰다. 토해 낸 것을 아쉽게 여기기라도 하는 양 연신 달싹대는 입구에 무자비하게 손가락을 욱여넣은 그녀는 요한의 귀두 끄트머리를 혀로 후비며 웃었다.
“하나 남았어요.”
“흣, 후비지……, 마, 말아요…….”
“당신이 싸지 못하고 울고 있으니 배려해 준 거예요.”
리비아는 그의 구멍 속에서 손장난을 치며 하나 남은 알을 손가락으로 감고 기둥을 천천히 위아래로 훑어 주었다.
“허락, 하지, 않았……, 아, 흑……!”
“아하……, 귀엽게 구는군요.”
“으, 응, 꺼내, 줘……, 힘……, 안, 들어……, 가……, 앗……!”
그녀는 마지막 한 덩어리를 단숨에 끄집어내며 요한의 헤벌어진 입술을 집어삼켰다. 뭉근하게 풀어진 혓바닥을 강하게 빨아 올리며 몸뚱이로 그의 몸을 덮자 반쯤 눈을 까뒤집듯 경련하며 드디어 요한이 참아 왔던 탁액을 힘껏 싸질렀다. 그녀의 손아귀에 감싸여 그 부드러운 치마폭을 뒤집어쓴 채 검은 천을 힘껏 얼룩지게 했다.
“응, 으…….”
그는 간헐적으로 몸을 떨 뿐 어찌 더는 바르작대지도 못했다. 그저 입을 벌린 채 그녀에게 자신을 바치고 있을 뿐.
그 완전히 풀어진 작태에 회가 동한 리비아가 그의 입 안을 거칠게 헤집으며 제 치맛자락을 들췄다. 그녀의 맨살이 그의 젖은 샅에 닿았다. 부드러운 살집에 눌리는 무게감에 절조 없이 곧추선 성기가 그녀의 치마 아래에서 꺼떡거렸다.
“응, 하아……, 빨아요.”
“우, 응…….”
리비아는 웃음을 거두고 욕정으로 굳은 얼굴로 녹아내린 요한을 내려다보며 제 혀를 내밀었다. 요한은 순순히 그녀의 혀를 물고 서툴게 애무하며 치마 속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다리 사이의 열감과, 속옷을 찢어발기는 소리에 몸서리쳤다. 그녀가 자신을 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남자는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던 두 팔을 들어 리비아의 허리 언저리를 더듬었다. 매달리고 싶었다. 거칠게 쥐어짜이며 삼켜지는 쾌락은 이보다도 훨씬 효과적으로 자신의 머리를 천치처럼 뭉개 버릴 테니까.
요한은 황홀하게 풀린 표정을 지은 채 포식자의 품에 안겼다.
마치 젖줄에 고개를 묻은 어린 짐승처럼 어설프고 가파른 애무였다. 요한은 그녀의 혀를 얽고, 빨고, 이따금 실수로 깨물 때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티가 여실한 낯으로 제 이가 짓누르고 간 자리를 몇 번이고 고쳐 핥아 댔다. 미끄럽고 뜨거운 점막이 탄성 있게 귀두 끄트머리에 스칠 때면 파르르 몸을 떨면서 멈추었다가, 그 순간마다 그녀의 서늘한 눈빛에 깜짝 놀라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결국 남자가 고개를 들고 그녀의 입술과 제 입술을 맞대었다. 그제야 리비아는 그의 입술을 고쳐 물며 허리를 내렸다.
“흑……!”
쭙 하고 무언가를 빠는 듯한 소리가 났다. 젖은 채 앙다물려 있던 곳이 갈라지며 제 몸집보다 커다란 타인의 살덩이를 집어삼켰다. 깊숙이, 천천히 밀려 들어가며 그 오돌토돌한 질벽을, 그 무엇으로도 형언키 힘든 감촉을 새기듯 선연하게 훑어 들어가는 순간순간의 쾌락에 헛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그 틈을 타 요한의 머리채를 한 움큼 틀어쥐고 고개를 뒤로 젖히게 만든 리비아가 거칠게 그의 입 안을 쑤석이며 좌우로 뭉개듯 완전히 앉았다. 긴 치마로 가려져 있어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습한 소리만 들어도 충분히 모든 것을 선연하게 상상해 낼 수 있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의 눈가가 벌겋게 열이 올라 그들의 접붙은 하체를 노려보았다. 핏발 선 눈은 기괴했고, 그는 딱 그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시더라도 참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는 오갈 곳 없는 울분을 턱이 덜덜 떨리도록 이를 악물어 삭였다. 자신은 그녀의 그 어떤 의미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개에 불과하다. 알고 있다. 주제만큼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니 지금껏 남겨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적어도, 집안에 속해 있던 것 중 취한 것은 저뿐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으면 따끔거리던 통증을 참을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제 눈앞에, 그것도 얼마 전까지 자신과 그녀를 떼어 놓고, 그녀를 업신여기고, 하물며 해치기까지 하려고 들었던 수컷을 들여 취하기 전까지는.
미슐레는 진정 주인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수용하는 것만이 올바른 수족의 자세라는 것을 몇 번이고 되뇌어도 이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다. 이따금 흉곽 속에서 따끔대며 돌아다니는 모래 알갱이 같던 통증이 이제는 들불처럼 일어나 온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심장이 한껏 빠듯하게 조여들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왜 하필이면 구르디예프 경이란 말인가?
자신은 손 닿는 곳에 언제나 있어 만만하였다고 쳐도,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제게 없는 이상적인 낭창한 맛이 있었다고 쳐도, 도저히 요한 구르디예프는 납득할 수 있는 구석이 없다.
포식을 시작한 양 찔꺽거리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용하기에 적합할 만큼 만족스러운 고급품이 아닌 탓에 침대 끽끽거리는 요란한 소음까지 섞여 있었다.
그 소리들이 마치 때와 장소를 가릴 겨를조차 없이 불붙은 젊은 연인들처럼 보여서,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속절없이 거무튀튀한 감정이 들끓는 대로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위협받던 것마저 여상스레 여기실 만큼 담대한 그릇인 줄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대귀족으로서 산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위해 우아하게 도사리고 있을 소리 없는 죽음을 벗 삼는다는 것과도 상통함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그 원수와 아무런 방어책 없이 붙어먹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지 않은가. 무수히 많은 사람이 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녀 역시 충분히 알 수밖에 없을 것인데도 거리끼지 않는 것이 너무도 버거웠다. 마치,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취할 만큼 가치 있는 수컷이라는 반증인 것만 같아서.
자신과는 다르게, 그것이 좀 더 귀한 것인 양 느껴져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행동에 이래라저래라 하며 말을 얹지 않았는가? 심지어 지시하고, 거부까지 하고, 그리고 부득불 쏟아지는 그녀의 총애 아래 저속하게 사지를 흐느적거리며 자신을 조롱했다. 모르지 않으실 텐데도, 그를 벌하기는커녕 귀애하시는 것이.
“……으.”
잇새로 소리가 새었다. 못 견디게 욕지기가 욱 치밀었다. 감히 이런 반감을 품는 자신의 시건방진 불충에 속이 뒤집히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아, 흣…….”
완전히 달아올라 예민하게 곤두선 감각을 저릿하게 후비는 쾌락, 리비아는 만족스러운 부피감을 느끼며 나직하게 신음을 흘렸다. 굼실거리지도 못할 만큼 진이 빠져 버린 요한의 혀를 놓아주고 허리를 곧추세운 리비아는 살짝 허리를 띄웠다가 짓찧기를 반복했다. 순간순간마다 녹이라도 슨 듯 삐걱대며 출렁이는 침대의 탄성을 받아 무게감 있게 찧어 내릴 때마다 요한이 ‘아, 아!’ 하고 날카롭게 신음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그의 머리칼에 시선을 둔 채 둥글리듯 허리를 완만하게 돌리자 반사적으로 허리를 튕기며 안쪽으로 파고들기 위해 버둥대는 것을 만족스럽게 받아 주었다. 리비아는 등 뒤로 쏟아지는 뜨겁고 끈적한 시선에 전율하며 힘이 들어간 손끝으로 제 가슴팍을 더듬었다. 조금 더, 조금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일순 차지했다.
“미셸.”
꾹 잠겨 관능적인 목소리로 충실한 개를 불러들였다.
“이리 와요.”
“……부인.”
“뒤에서, 안아요.”
미슐레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녀의 발언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만큼 혼란해했다. 뒤에서 안으라니, 무엇을? 그녀를? 정사를 일컫는 것인지 단순한 포옹을 말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미 침대 위에는 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녀의 말에 놀란 것은 저뿐만이 아니었다. 요한 역시 사정없이 흔들리다 눈을 홉뜨고 경악에 차 그녀의 어깨와, 그 너머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녹색 눈을 마주한 순간 음습하고도 저속한 욕구가 고개를 짓쳐 들었다. 그녀의 품속에서 자신을 조롱하듯 감히 눈알을 굴렸던 구르디예프를 기억한다. 미슐레는 입매를 단단히 굳혔다가, 의식적으로 힘을 빼며 대답했다.
“예.”
남자의 녹빛 눈에 경악과 분노가 담겼다. 정녕 미쳐 버렸냐는 비난의 기색을 읽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미슐레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부추기듯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녀의 등 뒤로 다가갔다.
홀로 땅을 딛고 선, 유독 덩치가 커다란 남자는 마치 포식자처럼 요한을 그림자로 짓눌렀다. 그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으며 조심히 침대 위로 기어올라 요한의 다리 사이이자 리비아의 등 뒤에 무릎으로 선 채 한없이 부드러운 손길로 주인을 끌어안았다.
“응, 아…….”
리비아는 이 경악과 분노로 가득 찬, 질시의 정사에 한없이 흥분했다. 얼마 전까지 순결하던 사내들이 흐드러진 여체를 사이에 두고 추하게 일그러지고 있는 꼬락서니 그 어디에서 그들의 새하얀 자존심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그녀는 제 가슴 위로 부드럽게 얹힌 남자의 커다랗고 단단한 손 위로 제 손을 겹쳐 살집을 짓눌렀다. 좀 더 날카롭고 강한 압박을 원했다. 가슴을 빠듯하게 그러쥐고 유실을 으깨듯 문지를 때 주어지는 쾌락이 필요했다. 리비아는 미슐레의 품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젖혔다. 순간, 미슐레의 음습하게 그늘진 청안이 그녀에게로 쏠리고, 그 눈빛 사이에 암시된 유혹적인 명령을 읽어 냈다.
좀 더 강하게,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요한 구르디예프는 할 수 없는 봉사를 해도 좋다는 의중 말이다.
그는 욱, 하고 희미하게 무언가 북받치는 소리를 내더니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옷감이 이지러지고, 말랑한 살집이 눌리는 것이 선연하게 드러났다.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그녀의 귀 뒤와 목덜미 사이 언저리에 입술을 깊게 묻으며 단단한 손으로 양쪽 가슴을 틀어쥔 채 압박하듯 주무르다가 다소 조급하게 그녀의 드레스를 벗겨 냈다. 마치 요한에게 과시하듯 리비아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빼곡한 단추들을 반쯤 잡아 뜯듯 풀어 내린 뒤 부드럽게 튀어나온 맨살을 받쳐 쥐고 단단하게 곧추선 유두를 꼬집듯이 강하게 쥐고 문질렀다.
“응……!”
그녀의 입에서 이제껏 나온 적 없던 날카로운 비음이 터져 나왔다. 두 남자는 동시에 그녀를 망연히 바라보며 놀랐다가, 먼저 정신을 차린 미슐레가 치맛자락을 말아 쥐고 확 걷어 접합부를 드러내며 클리토리스를 문질렀다. 리비아는 만족스럽게 몸을 떨면서 미슐레의 등에 기대 나른한 미소를 걸친 낯으로 요한을 내려다보았다. 그 얼굴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남자는 불쾌감을 조성하는 다른 남자의 시선 따위에 쓸 신경조차 잃었다. 무언가 절박하고, 신경질적인 충동에 휩싸여 그녀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손끝에 바짝 힘을 주어 고쳐 쥐곤 거칠게 허리를 추어올렸다.
“흣……!”
두 남자는 자신과 단둘이 접붙을 때엔 내지 않던 소리를 내며 만족스러워하는 그녀의 태도에 혼란해졌다. 저와는 사실 불만족스러운 정사를 나누었고, 그녀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저 남자와는 만족스러웠던 것인가 하고.
공통된 혼란을 띤 두 남자의 시선이 엉켰다. 그들은 동시에 눈을 치뜨고 리비아의 몸뚱이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요한은 스스로 허리를 놀리며 또다시 혹독한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그 공포에 통제당하는 감각에 짜릿해하면서도 이전처럼 그것을 즐기기보다도 자신의 불안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으로 리비아의 이름을 연신 불렀다.
“아, 리비아, 으, 리비, 아!”
미슐레는 그녀의 존함을 감히 불러 대는 시건방진 만행에 눈썹을 험히 치켜세우며 입으로는 그녀의 목덜미를, 한 손으로는 가슴과, 남은 손으로는 클리토리스를 애무했다. 그의 행동은 몹시 자연스러웠다. 응당 해야 하는 일을 숙달된 손으로 해치우는 것처럼 거리낌이라고는 전혀 없고, 무엇보다 그녀의 감도 따윌 외고 있기라도 한 건지 눈으로 보이기엔 상당히 살을 짓누르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그녀가 언짢아하지는 않을 정도의 힘을 주어 가며 살갗을 바삐 훑는 꼴이 눈꼴셨다. 고작해야 기사 나부랭이인 주제에 은혜도 처지도 모른 채 을러 대려 하는 꼴이 역해서, 요한은 떨리는 손을 옮겨 그녀의 엉덩이를 틀어쥐었다.
그 순간 빠듯하게 조여 오는 질벽의 감촉에 몸서리친 그는 리비아의 몸에 드러나는 반응을 기민한 눈으로 살폈다. 적당한 압박감, 그저 조심스러운 것보다는 좀 더 몰아붙이는 쪽을 선호하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제가 주제넘은 짓을 하는 거라면, 혹 그녀가 벌을 가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번에도 자신은 연이은 체벌을 받을 것이었다. 신경이 망가질지도 모를 만큼 강렬하고 추잡한 쾌락에 시달리겠지.
울컥 사정감이 몰려와 잠깐 허릿짓을 늦추자 그의 삽입보다 제 손으로 절정을 바치려는 듯 미슐레의 손이 재게 움직였다. 요한은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그에게 답잖은 협박에 가까운 훈계질을 하러 왔을 때처럼 시건방진 눈을 내리깐 채 보란 듯이 그녀의 흰 목덜미며 뺨을 비볐다. 그녀에게 어리광 부릴 자격을 허락받은 애견이라도 된 것마냥.
정사의 열락보다는 열렬한 증오가 앞서 사위를 메웠다. 그들은 평생 이해하지 못했던 치정 싸움을 원치 않게 이해했다. 단순히 몸만 몇 번 섞은 사이에도 이렇듯 불같은 진노가 솟구치는데 만약 리비아가 자신의 배우자였다면, 연인이나 약혼자였다면,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리비아 모브레이가 ‘리비아’가 아니었다면, 쉽게 말해 지금처럼 카리스마나 위압적이지 않은 존재였다면 순순히 굴하고 있었을 것 같지 않았다. 당장 칼부림을 내더라도 어떻게든 한쪽을 죽이고, 겁에 질리거나 피를 뒤집어쓴 그녀를 끌어안고 탐했을 테지.
그들은 리비아가 아니면 사랑은커녕 육욕조차 느끼지 못했을 망종들이면서도 얄팍한 인내심이 버거워 돼먹지 못한 생각들을 서슴지 않고 속으로 부풀렸다. 서로를 노려보면서, 녹색 눈과 청색 눈 속에 담긴 그녀의 머리카락이나 몸뚱이 한 조각을 열렬히 질투했다. 차마 소유라고도 하기 어려운 욕망들을 담아서.
리비아 역시 이 뒤엉킨 감정들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충분히 자신이 의도한 대로 굴러가고 있었으므로 요한과 미슐레의 격정 어린 몸짓에 두세 번 절정에 이른 뒤에야 팔뚝 언저리에 걸려 있던 드레스를 마저 벗어 내며 미슐레의 뺨과 제 허벅지 위로 올라앉은 요한의 손등을 짚었다.
“마치……, 내가, 아니라, 당신들이……, 교접하는 것, 응……, 같군요. 열렬하기가 아주……, 늦된 연인처럼…….”
“그런.”
경악과 탄식 언저리의 끔찍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리비아는 짧게 웃음을 흘리며 만족스러운 절정으로 인해 부드럽게 늘어진 팔다리를 굳이 일으키지 않고 미슐레의 긴장한 상체에 등을 기댄 채 속삭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절정을 맞은 것도, 요한이 파정한 것도 모르고 서로 눈만 들여다보고 있었겠나요.”
그녀의 충격적인 이죽거림을 들은 직후부터 멈춰 있던 남자들이 홀린 듯 그녀의 다리 사이를 보았다가 허여멀건한 탁액이 희미하게 비어져 있음을 깨닫자 한쪽은 당혹으로, 한쪽은 경멸로 낯짝을 일그러뜨렸다. 그녀는 흔들리던 동안 늘어지고야 만 몇 개의 얇은 핀들을 머리카락에서 떼어 내 아무렇게나 던지며 몸을 일으켰다. 불그죽죽한 살덩이가 그녀의 뱃속에서 미끄럽게 젖어 빠져나왔다. 염치도 모른 채 여전히 뻣뻣한 그것을 부드럽게 손으로 훑어 준 리비아가 구겨진 치맛자락을 들쳐 품에 모아 안으며 하체를 여실히 드러냈다. 온갖 악의와 질시로 난잡하던 공기가 경이로울 정도의 정욕으로 잦아들었다. 온통 리비아 모브레이에게 압도당한 그들은 다시금 양순하게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여자는 느릿하게 요한의 몸 위로 제 몸을 기울였다. 치맛자락을 사이에 두고 상체를 완전히 밀착한 채, 무릎을 꿇고 엉덩이만 치든 모양새였다.
“부인…….”
미슐레는 응당 그녀의 가장 자극적인 자세의 수혜자였다. 풍만하고 부드러운 엉덩이와, 그 사이로 드러난 불그스름한 회음부, 타인의 다리를 사이에 두기 위해 벌린 다리 탓에 평소 닫혀 있는 도톰한 둔덕이 벌어져 미끌미끌한 점막과 뻐끔대는 구멍을 훤히 드러냈다. 다른 남자의 씨물이 허옇게 늘어져 뚝뚝 흐르는 것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농익은 열매가 툭 벌어져 속을 드러낸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된 남자는 흥분하면서도 괴로워했다. 요한이 파정을 하고, 그녀가 절정을 맞을 동안 오롯이 홀로 인내한 것이 미슐레였던 까닭에 슬슬 한계가 임박한 상황이기도 했다.
“미셸.”
“……예.”
그의 목소리에서는 애써 억누른 듯한 기색과, 차마 지우지 못한 흥분과 기대가 묻어났다. 들썩이는 두툼한 폐부,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히 귀에 잡힐 만큼 또렷한 숨소리 탓에 정녕 발정한 개처럼 여겨졌다. 리비아는 마른 입술을 핥아 축이며 요한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댄 채 등 뒤에 선 미슐레를 일별하며 달콤하게 미소했다.
“생각보다 잘해 주었어요. 이제……, 먹이를 주죠.”
미슐레 호엔베르크의 입술이 얕게 벌어졌다가 악다물린 잇새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날름거리던 혓바닥이 드러났다. 남자는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선액으로 진득하게 젖은 제 성기를 조심스럽게 그녀의 질구에 가져다 댔다. 가시지 않은 흥분으로 바쁘게 벌름거리던 구멍이 선단에 와 닿는 감각에 앓는 소리를 누른 미슐레의 목덜미에 핏대가 흉흉하게 돋았다. 리비아는 여전히 웃음을 걸친 채 고개를 돌려 눈앞에 일어나는 상황을 이성으로 좇지 못하고 그저 홀린 듯 눈을 홉뜬 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요한과 눈을 지긋하게 맞추며 짙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넣어도 좋아요.”
허락이 떨어진 직후 두툼한 성기가 자비 없이 그녀의 구멍을 꿰뚫고 힘껏 안쪽으로 밀려들었다. 조금 전까지 요한의 것을 물고 있느라 풀어진 구멍으로도 받아 내기에 빠듯한 감각, 압도적인 체격에서 오는 무게감이 그녀의 등 뒤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아, 흐…….”
다시금 리비아의 입에서 달콤한 신음이 비어졌다. 두 남자는 서로를 안중에서 까맣게 지운 뒤 처음 듣는 그녀의 목소리에 한없이 흥분하고야 말았다. 미슐레는 이를 악물고 샅을 욱여 뭉개며 요한 따위는 개의치도 않는 듯 그의 몸이 제 품에 덩달아 갇히건 말건 신경조차 쓰지 않고 편한 곳에 손을 짚었다. 리비아는 앞뒤로 단단한 나체를 두고, 만족스러울 만큼의 무게감을 받으며 기분 좋은 곳에 꼭 닿는 성기를 의식적으로 조여 물며 달짝지근한 한숨을 흘렸다. 배부른 포식자의 숨. 그 날것 그대로의 표정을 가장 이성적인 상태로 맞닥뜨린 요한은 조금 전까지 얼러졌던 주제에 염치도 없이 좆을 세웠다. 그녀의 드레스 더미에 묻혀 제 배 쪽으로 바싹 올라붙은 것을 두 사람분의 체중으로 눌리면서,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얕게 허리를 퉁기기 시작한 직후부터는 쓸리고 문질리는 것까지 얻은 탓에 끔찍하게 황홀하고 자존심 상하는 쾌락에 녹아나기 시작했다.
리비아는 그런 요한을 바라보며 팔을 뻗어 그의 머리를 감싸 쥐듯 손을 댄 채 목을 빼 그의 턱끝과 벌어진 채 얕게 뻐끔대는 입술을 핥았다.
“아으응…….”
미슐레가 고양잇과 짐승처럼 우아하게 뻗은 그녀의 몸을 땀이 밴 거친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훑어 어루만지며 살짝 뺐던 성기를 깊게 욱여넣자 여과 없는 비음을 터뜨린 리비아가 나른하게 눈을 깜빡이며 재촉하듯 엉덩이를 흔들었다. 남자는 더운 숨을 터뜨리며 깊숙이 욱여넣은 채로 엉덩이만 슬쩍 물렸다가 다시 힘껏 체중을 실어 뭉개 넣길 반복했다. 리비아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다각도로 꾹꾹 다지듯이.
리비아는 아무런 부끄러움도 거리낌도 없이 느끼는 대로 곧잘 신음을 터뜨렸다.
“응, 읏, 흐윽…….”
주어지는 당연한 봉사를 받는 것에 무어 거리낄 것이 있겠는가? 딱 그 정도의 태도로 단단하게 배기는 뭉친 옷감으로 클리토리스를 압박하기 좋게끔 자세를 잡았다. 그 뭉근한 허리 놀림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린 것은 요한이었다. 그는 새삼스럽게 남의 부덕한 장면을 엿보고야 만 것처럼 얼굴을 벌겋게 붉힌 채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기어코 리비아의 쓰다듬는 손길에 붙들려 눈을 마주하고서 재차 사로잡혔다. 그들은 마치 처음으로 의식적인 수음에 손을 댄 소녀들처럼 느긋하고 탐색적으로 쾌락을 맛보았다. 물론, 리비아는 활짝 열린 구멍으로 우악스럽다 못해 위압적일 정도로 커다란 수캐의 좆을 씹고 있었지만 적어도 요한에게는 그리 보였으니 아무래도 좋으리라.
미슐레는 그녀의 곧은 등과 어깨를 바라보다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입술을 묻었다. 쾌락을 삼키느라 파르르 떨리는 살갗 위로 입술을 연신 내리며 숨을 삼켰다. 한없이 무력한 기분에 몸서리치면서도 그녀가 주는 쾌락을 견디지 못하고 헐떡이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부인, 저를 봐 주십시오. 제가, 적어도 저들보다는.
차마 육성으로 뱉을 수 없는 저열한 애원으로 더럽혀진 머릿속을 비우려는 듯 미슐레의 허릿짓이 점점 더 격렬해졌다.
“응, 하아, 미셸…….”
“예, 부인, 여기, 있습니다.”
그는 이마를 그녀의 등에 기댄 채 허리를 뒤로 물려 성기를 빼냈다가 반동으로 훅 처박아 넣었다. 리비아의 엉덩이에 그의 샅이 거침없이 부딪치며 젖은 살들이 철썩대며 붙어먹는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두 남자의 몸뚱이 사이에 단단히 갇힌 채 유연하게 허리를 돌리면서 벌겋게 달아오른 요한의 턱끝에 입을 맞췄다.
“흣…….”
불규칙적이고 만족스럽지 못한 애무였다. 그저 짓눌려서 흔들릴 뿐, 압박감이 주는 쾌락은 절정을 줄 수 없었다. 요한은 마치 고문이라도 당하는 양 앓는 소리를 내다가, 리비아의 입술을 갈구하며 혀를 내밀었다. 마치 뱀처럼 입 밖에 낸 혀를 날름거리며 서로의 살덩이를 애무하는 광경은 오싹할 정도로 색정적이었다. 미슐레는 눅눅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들의 접문을 바라보았다. 울대와 폐부가 터질 듯 부푸는 감각이 들끓었다. 부인, 제발. 저를 보아 주십시오. 저야말로 당신의 개이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더 잘할 자신이 있는데, 왜.
“왜…….”
그르렁거리듯 목을 울려 뱉은 짧은 탄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리비아는 팔을 뻗어 요한을 끌어안고 젖은 입술을 서로 문지르며 비집어 겹치고 혀를 얽으며 허리를 휘었다. 조금도 그들의 속이 문드러지는 것 따위는 개의치 않는 작태로 만족스러운 정사라는 생각을 하면서 배 속을 채우는 살덩이를 힘껏 조여 물고서.
탈력에 가까운 절정이 찾아왔다. 셋은 동시에 몸을 경직시키며 파르르 떨었다.
* * *
난잡한 교미가 끝난 뒤, 미슐레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묵묵하게 고개를 숙인 채 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리비아에게 허락을 구하곤 자리를 비웠다.
“…….”
그 심상찮은 기색에 불편해진 것은 요한뿐이었다. 리비아는 태연하게 엉망진창으로 구겨져 체액으로 더럽혀진 옷가지를 모조리 벗어 바닥에 밀쳐 둔 뒤 요한을 품에 당겨 안고 그를 지긋하게 희롱할 뿐이었다. 그는 얌전하게 그녀의 품에 늘어져 자신의 등 뒤를 점한 그녀의 다리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불러 세우지 않아도 됩니까?”
“걱정되나요?”
“순전한 껄끄러움입니다.”
“나는 그보다 당신이 내게 화를 낼 줄 알았는데요.”
리비아의 짤막한 지적에 퍼뜩 고개를 든 요한이 습관적으로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제가 화를 낸다고 해서 듣기는 하십니까? 아니면 그것을 빌미로 또 무언가 하시려고요?”
“어머, 요한.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몇 번을 연이어 붙어먹을 정도로 정욕에 미쳐 있지는 않답니다. 그저 순전한 의문이었어요. 그다지 미셸을 걱정해 줄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녀는 요한의 허벅지에 남은 멍 자국을 흘긋 일별하며 매끄러운 적발에 입술을 묻었다.
“신경 쓰지 말아요, 무릇 기사란 주인의 수족인 법. 정사에 내 손을 좀 놀렸기로서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 있겠어요?”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대단한 위악이나 심술조차 없이 담백하게 진심을 입에 담았다. 그래, 그렇지.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그녀의 수족에 불과하다. 그와 자신은 다르다.
“귀여운 나의 요한, 이제 일 얘기를 좀 해 볼까요.”
“……뭡니까?”
“로덴바흐 백작이 당신을 꽤나 들볶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부정은……, 않겠습니다. 현재 진행형으로 사뭇 짜증스럽게 연락을 해 대고 있으니.”
“날 보자는 거겠죠?”
“예.”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바르게 앉았다. 리비아는 무릎을 세워 팔을 얹어 턱을 괴면서 눈을 빛냈다.
“그를 불러들이세요.”
“어째서 그를 허용하십니까? 어차피 당신께 해악밖에 되지 않을 텐데요.”
그녀는 잠깐 웃음을 흘렸다. 그의 낯에 넘실거리는 적대감이 뉘를 향한 것인지 분간키 어려웠던 까닭이다. 과연 내게 해가 되기에 그를 싫어할까? 마법을 이용하면 감춰 두었던 것들을 쉽사리 끄집어낼 수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요한은 적어도, 그가 꽤 능동적인 가담자, 혹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영영 모른 체할 수는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그에게는 나름의 쓰임새가 있답니다.”
리비아의 여상스러운 말투 속에는 희미한 즐거움이 묻어났다. 제 친부를 남인 양 건조하게 들먹이면서도 격정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요한은 그저 그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다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차피 무엇을 꾸미든 자신은 휘둘릴 수밖에 없을 테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그악스러운 성미를 돋우지 않도록 지시에 따르며 모쪼록 큰 소란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