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불합리한 열락
특별한 것 없이 사흘은 금세 지나갔다. 요한이 자잘하게나마 사사건건 시비를 걸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몹시 고요했던 것만이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지 사람을 보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공작저에 다다랐다.
“격조하였습니다, 잊지 않아 주셔서 기쁜 마음을 받아 주세요. 부인.”
그는 별저에 발을 들이며 리비아를 보자마자 화사하게 웃는 낯으로 예를 갖췄다. 자연스럽게 반쯤 뒤로 넘긴 금발과 새하얀 얼굴은 정말이지 아름답고 태연해서 그 누구도 그녀의 손에 희롱당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리비아는 그의 태연함에 짧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까딱였다.
“잘 지낸 것 같아 다행이에요, 라시니.”
그녀는 짧은 인사를 마친 뒤 먼저 응접실 방향으로 몸을 틀어 걸었다. 미슐레와 요한, 라시니가 따라붙었다.
네 명은 말없이 그저 의뭉스럽게 침묵하면서 응접실로 들어섰다. 요한은 남몰래 응접실을 통상적인 공간과 유리시켰다. 시간도 소리도 동떨어진 방은 여전히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아무도 알 수 없도록.
리비아가 상석에 앉자, 그다음에 요한이 앉고, 미슐레는 그녀의 등 뒤에 앉았다. 라시니가 눈치껏 말석에 앉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약속대로 랭골드령은 오늘부터 당신의 영지예요. ……요한.”
“서명하도록.”
요한은 리비아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누가 보더라도 내키지 않아서 미치고 돌겠다는 듯한 떫은 얼굴로 양피지와 깃펜 하나를 라시니 앞에 소환했다. 나풀나풀 부드럽게 그의 앞에 내려앉은 양피지에는 정말로 랭골드령의 소유권을 라시니 몬테필트로에게 이전한다는 내용과 간략한 영지에 속한 사유 재산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었다. 마지막 줄에 유려한 필체로 리비아 마르셸 모브레이라고 서명된 부분을 손끝으로 어루만지던 라시니가 일순 탐욕을 띠며 말 그대로 해치우듯 자신의 자리에 서명했다.
마지막 이름자를 써넣자마자 파르스름하게 빛을 발하던 양피지는 제멋대로 도르륵 말려 벌건 밀랍 인장으로 입을 닫고 자리에 놓였다.
“그날의 대금은 치렀고……, 이제 남은 이야기를 해 볼까요.”
라시니는 광적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들고 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신에 가까운 행운을 주는 여자가 상석에서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난 당신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어요. 특히 그 너른 발 같은 것을.”
그녀의 발언은 노골적으로 동석한 미슐레와 요한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라시니 역시 그들을 흘긋 바라보고는 단정하게 자세와 표정을 가다듬으며 품속에 양피지를 밀어 넣었다.
“그러시군요.”
“그렇지만 당신이 내게 바른말을 해 줄지는 모르겠어요. 서운해 말아요, 이런 자리에 있다 보면 당연한 것이니까.”
“부인, 당신이 저의 진심을 어찌해야 믿어 주실까요?”
“내가 믿는 건 인간의 욕망뿐이에요, 당신이 무얼 걸건 나보다 강한 조건을 내거는 사람이 나온다면 쉽사리 변절하겠죠, 욕망이란 으레 그런 것이니까.”
리비아는 차분하게 다리를 꼬았다. 그것만으로도 명백히 포식자로 돌아선 듯한 위압감이 방 안을 메웠다.
“그러니 내게 반항할 수 없도록 그 어떤 경험으로도 잊을 수 없는 공포와 수치를 새길 생각이에요.”
“……그렇군요.”
남자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발언에 낯짝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욕망에 자존심을 팔았다고 해도 리비아 모브레이가 자행한 희롱은 대단한 수위였다. 남이 발견했더라면 그대로 사회적 지위나 이름 따위는 아무리 가져도 조롱으로 돌변할 만한. 그러나 그 일로도 모자란다면 도대체 그녀는 무슨 짓을 제게 하려는 것일까? 상상할 수는 없었지만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 남자는 꽤 깊이 고심했다. 고통이라면 어지간해선 참을 자신이 있지만 여자는 똑똑하게 두렵고도 수치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와중에도 아랫도리가 지끈지끈 저렸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녀는 상황을 장악하고 욕망을 휘두르는 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제가 그녀의 놀음에 부합하는 성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밤새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인정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제게 꽂힌 세 쌍의 시선을 견디며 매끄럽게 웃어 보였다.
“그 말씀이신즉슨, 저를 사 주시겠다는 것이겠지요?”
“정오의 광장에서 허공에 수캐처럼 허리를 흔들 수도 있다는데, 한 번쯤은 흥미로운 소재에 재물을 낭비해 보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도리니까요.”
“부인께서 즐거이 탕진하실 수 있도록 힘내겠습니다.”
“그래요, 모쪼록 망가지지 말고 날 즐겁게 해 줘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멀찍이서 희미한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금쯤 눅눅하지만 젖은 것은 아닌, 땀이 밴 인간의 살갗 같은 것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괴이한 소리. 라시니는 본능적으로 경직된 자신의 몸뚱이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려 노력하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의 불안이 기우이길 바랐지만 유감스럽게도 소리는 점점 커지기만 했다.
흘긋 바닥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 혹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소음에 겁을 먹고 호들갑이라도 떠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일까?
그녀의 곁에서 여전히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다는 심중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적발 녹안의 남자가 누구인지는 그 역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제국 사람 중 그 누가 요한 구르디예프를 모를 수 있겠는가? 당대 최고의 신비술사이자 대현자인 그를.
아무리 리비아라고 해도 가문의 중진인 그의 앞에서 그날과 같은 남사스러운 짓거리는 하지 못할 것이다. 라시니가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긴장을 다스리던 그 찰나에.
“윽!”
무언가가 자신의 목을 휘감고 대각선 위쪽으로 비스듬하게 낚아채는 것에 딸려 올라가 엉거주춤하게 반쯤 일어선 채 제 목덜미를 붙잡았다. 인간이나 밧줄 같은 익숙한 감촉은 아니었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그것이 뻗쳐 온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헛숨을 들이켜고야 말았다. 담쟁이넝쿨처럼 길쭉하고 가느다란, 빽빽한 것들이 응접실 문 쪽의 천장에서부터 말 그대로 새순마냥 뚫고 나와 자신의 목을 움킨 것이었다.
“부, 인……!”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가 허공으로 딸려 올라갔다. 라시니의 발뒤꿈치에 거칠게 챈 소파가 크게 덜컹거렸다.
“이게, 무, 큭……!”
먹잇감을 낚아채자마자 신이 났는지 득달같이 솟구친 것들이 그의 손발목과 허리를 마저 휘감았다. 허공에 반쯤 뜬 채로 대롱대롱 매달린 라시니는 하얗게 질려 인상을 찡그린 채 리비아를 내려다보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끔찍함이 그의 이성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리비아는, 마치 그 덩굴처럼 진득한 녹색 눈을 가진 여자는 턱을 괸 채 빙그레 웃어 보일 뿐이었다. 응접실은 덩굴과 라시니를 빼고는 그 어떤 소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내가 말했지 않나요, 망가지지 말고 즐겁게 해 달라고.”
여자의 눈매가 휘어진다.
“공개 처형도 아무렇지 않다면 인세 바깥의 힘을 휘두르는 수밖에.”
* * *
라시니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성과 본능이 앞장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상대는 기사와 구르디예프 경을 거느린 대귀족이고, 자신은 그녀의 눈에 어떻게든 들어야 하는 처지에, 심지어 이 정체불명의 그악스러운 덩굴의 제어권도 가진 상대가 아닌가.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것은 그녀였다.
덩굴은 남자를 우악스럽게 쥔 것과는 별개로 죽을 만큼 다루지는 않았다. 정말 단순히 붙들어 두는 것만이 목적인 듯한 기계적인 고정에 몸에서 힘을 빼니 짐승이 새끼를 어르듯 부드럽게 뒷덜미를 어루만졌다.
그대로 옷깃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슴팍으로 치닫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묘하게 습윤한 감촉의 차갑고 가느다란 것이 그의 유륜을 둥글게 휘감았다. 그러고는 빨판처럼 완전히 들러붙어 쭈욱 빨아들이듯 늘였다.
“흣……!”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명백히 인간이 아닌 것의 감촉, 심지어 양쪽 유륜을 빈틈없이 휘감은 그것은 천천히 젖어 들기까지 했다. 라시니는 섬뜩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과거에 이따금 질 나쁜 남성 귀족들이 노예나 애첩을 길들일 적에 쓴다던 애완용 마물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이 짐승의 모습일지, 식물의 모습일지, 혹은 다른 이형일지는 마물의 부화 단계에서 주어진 마력의 속성에 따라 다르다는 말을 들었으니 아마 자신이 상상한 것이 옳으리라.
“우, 윽…….”
덩굴은 빈틈이 없었다. 옷소매와 바짓단으로도 파고들며 여기저기를 휘감기 시작했다. 허벅지나 겨드랑이 같은 여린 살에 차가운 것이 닿자 몸이 파르르 떨렸으나 지성 없는 마물은 오히려 반색하듯 촘촘히 여린 살에 들러붙었다.
그저 엉긴 것뿐이라면 괜찮았을지 모르겠지만 살갗에 닿은 면에서 축축하게 무언가 즙이 비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끔찍했다. 심지어 몸부림을 쳐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빨판처럼 완전히 접착된 그것들은 다닥다닥 돋은 돌기로 아주 천천히 핥듯 살갗을 간지럽혔다. 엄청나게 기다란 혓바닥에 사로잡혀 유린당하는 것만 같은 감촉. 라시니는 하체를 둘러 감은 덩굴이 두 다리를 양쪽으로 잡아당겨 허공에 사타구니를 훤히 드러내듯 쩍 벌린 채 고정하자 진저리를 쳤으나 허벅지를 여러 바퀴 두르며 파고든 그것이 속옷 사이로 미끄러지자 얼어붙은 채 저도 모르게 힉, 하고 질색을 했다.
“아……!”
오돌토돌한 돌기가 촘촘하게 돋은 축축한 덩굴이 고환과 성기 뿌리 부분을 한 바퀴씩 휘감았다. 끔찍할 정도로 선연한 감촉이 척추를 간지럽히듯 뇌리에 꾹꾹 박혀 든다. 남자는 다리를 벌린 채 그것이 아주 천천히 자신의 성기를 문지르며 발기시켜 부푼 기둥에 촘촘하게 감겨드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리비아는 그런 남자를 즐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을 보는 눈이라기보다는 좀 더 냉혹한,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가 언제쯤 시드는지 바라보는 짐승의 눈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요한은 요청에 따라 필요를 검토한 뒤 마땅히 반박할 만한 사유가 떠오르지 않아 스스로 집행한 일을 경멸하듯 바라보다 리비아의 무기질적인 눈에 사로잡힌 참이었다.
그는 리비아의 저런 눈을 언제고 끔찍이 여겼다. 마치 처음부터 타인의 머리통 위에 올라앉은 양 교만한 저 눈. 아름답기만 한 유리알.
가문을 들먹이며 자신을 휘두르지만 않았더라도 함께 행동할 일 없는 여자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이리라.
여자는 여전히 기운 좋게 퍼득거리는 라시니의 옷가지가 점차 점액에 녹아 색 입은 빗물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을 따라 눈을 굴렸다. 그녀는 몹시 즐거웠다. 한 번쯤 써 보고 싶었던 것을 끄집어낸 것도, 그것이 요한이 키운 것이라는 것도, 발정하고 있는 수컷을 셋이나 동시에 거느리고 있는 것도 즐거웠다.
“아흐, 읏……!”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한없이 무력하고도 상스럽게 사로잡혀 젖어 들고 있었다. 자신의 옷가지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완전히 발기한 성기를 한 치의 틈도 없이 촘촘하게 둘러싼 촉수가 즙으로 기둥을 충분히 적신 뒤, 마치 여성의 질처럼 훑어 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오돌토돌하고 빡빡한 것이 시험적으로 이리저리 성기를 주무르며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쭙쭙거리는 듣기 민망한 점액질 늘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저 질색뿐이던 감각에 희미한 열감이 스미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것이 정말로 두려웠다.
“부인, 이건…… 힉!”
성기를 감싼 돌기 중 하나가 길게 자라나 요도를 꿰뚫었다. 남자는 온몸을 뒤채며 바르르 떨었다. 안으로, 천천히, 파고드는 그 감각. 결코 무언가가 들어올 일 없는 구멍에.
전율이 멈추지 않는다. 파고든 그것이 아주 미세하게 구멍을 벌렸다. 통증보다 먼저 차가운 점액이 스멀스멀 그 안을 메우듯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그제야 리비아가 망가지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 이유를 깨달았다.
원색적인 거부감이 자아내는 공포는 온몸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남자는 자신의 감각이 천천히 이지와 유리되는 것을 느끼며 흐느꼈다. 그날 밤과 같은 경험이 다시금 엄습했다.
“우, 흑…….”
뺨과 귓바퀴를 더듬던 덩굴이 기어이 진득한 액을 처발랐다. 영역 표시를 하는 짐승처럼 배려라고는 없는 꼬락서니였다.
이미 약이 주는 쾌락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남자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것을 상대로도 초장부터 자극당한 유두에서 또렷하게 쾌락을 느끼기 시작하지 않았는가. 이후로 귀 역시 가슴처럼 성감에 민감해지리라고 생각하니 흥분인지 무서움인지 모를 것으로 몸이 파르르 떨렸다.
숨을 한 번 내뱉을 때마다 세 쌍의 시선이 또렷하게 자신에게 향해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런 꼴을, 세 명이나 보고 있다. 하나는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원흉이지만 나머지 둘은 감흥이 없는 듯, 혹은 일말의 경멸을 실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동정일지도 모르지만 별다른 쓸모는 없다. 어차피 자신은 이런 꼴로 리비아가 만족할 때까지 범해져야 함을 피차 모르지 않았다.
육안으로는 유의미하게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작게 벌어진 요도로 점액이 역류해 들어왔다. 주삿바늘을 꽂았을 때처럼 또렷하게 액체가 몸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느껴진다. 바짝 입술이 말랐다. 이건 저를 어찌 만들지 기대와 두려움이 동시에 부풀었다.
속사정이야 어떻건 간에, 여전히 그의 성기는 보란 듯이 촉수에 휘감겨 추삽질을 당하고 있었다. 허리가 절로 들썩거려 마치 허공에 좆질을 하는 것처럼 수치스러운 몰골이 되었지만 라시니는 리비아를 바라보며 입술을 핥을 따름이었다. 자신이 먼저 당신이 원하신다면 하겠다고 했으니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공포는 욕망 앞에 희석되기 마련이며, 자신은 유복한 영지를 방금 막 이양받은 참이었다. 허황된 망상임을 알면서도 몇 번이고 꿈에 그리던 것들을 실현할 일만 남은.
그러니 자비로운 귀부인의 눈요깃감이 되는 것이 무어 대수일까. 남자는 자신의 입술을 더듬는 덩굴의 끄트머리를 순순히 입을 벌려 받았다. 또렷하게 그녀와 시선이 엉킨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그녀에게 아양을 부리듯 덩굴을 향해 혓바닥을 내밀었다. 새빨간 혓바닥 위로 가느다란 덩굴이 기어들어 엉킨다.
색정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남자는 자신에게 덮쳐들듯 사방을 에워싸는 덩굴들을 도발하듯 턱끝을 살짝 치들고 체액을 갈구해 파고든 덩굴들에게 입 안을 내주었다. 그들은 마치 열정적인 연인처럼, 혹은 사흘 만에 빵 조각을 만난 걸인처럼 게걸스럽게 달려들어 그의 혓바닥을 휘감고, 당기고, 그 끔찍할 정도로 촘촘한 돌기로 입 안의 점막을 문지르다가 달라붙어 빨면서 입 안 깊숙이 이곳저곳을 애무했다.
“우, 읍…….”
목구멍 안쪽은 쓸 일이 없었으므로, 지당 그 언저리까지 덩굴이 넘보자 그의 입에서는 컥컥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체액을 빤 탓에 덩치가 점차 불어나기 시작한 그것들을 상대로는 입조차 다물기가 어려웠다. 그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아름다운 금발이 줄기 위로 흐드러졌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뭇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자신의 몸뚱이를 팔아 바람을 이루려는 망종이 아니라 차라리 어떤 숭고한 의지를 위해 몸을 던진 제물 따위로 보이게 할 만큼 선한 아름다움의 소유자다. 섬세함, 우아함, 화사함 같은 것들. 미슐레 호엔베르크와는 정반대의.
그는 겁탈당하고 있는 성기가 리비아에게 잘 보이도록 두 다리를 활짝 벌려진 걸 빼면 덩굴에 휘감겨 하얀 나신이 일부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신 철벅대는 그 점액 튀기는 특유의 소리와 욱욱대는 신음, 이따금 교성이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새된 소리들을 아낌없이 흘렸기 때문에 흥분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남자는 리비아의 여흥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뚱이를 마물의 교미 상대로 내던졌다.
리비아는 그런 그의 성의를 만끽하며 나른하게 한숨을 내쉬고는 꼬았던 다리를 풀었다.
“미셸.”
그녀의 목소리에 희미한 흥분이 어려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재깍 그녀의 무릎 앞에 부복했다.
“으으응……!”
쯔읍 하는 소리가 나며 남자의 입 안을 애무하던 촉수가, 그래. 더 이상 덩굴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덩치를 불린 촉수가 떨어져 나갔다. 덕분에 눈물과 타액, 점액 따위로 엉망진창으로 유린당한 채 젖어 있는 라시니의 흥분 어린 낯짝이 드러나자 리비아가 탄식 같은 숨을 뱉으며 무릎을 벌렸다.
“부인, 체면을…….”
요한이 그녀에게 힐난을 채 마치기도 전에, 미슐레가 그녀의 치맛자락 속으로 몸을 구겨 넣고 봉사를 시작했다. 남자는 처음 보는 광경에 얼어붙어 눈을 홉뜬 채 그 꼴을 바라보며 굳었다.
미슐레는 익숙하게 리비아의 둔덕을 두 손으로 붙들어 벌린 채 클리토리스를 강하게 빨아 올렸다. 그녀의 허리가 유연하게 휘며 다리가 들리는 것을 느끼면서 컴컴한 치마 속에서 그녀의 체향과 국부의 달아오른 공기를 양껏 들이켜며 개처럼 주둥이를 놀렸다.
이제는 양쪽에서 빠는 소리가 자못 경쟁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미슐레 역시 주인의 취향을, 그 과정의 흥분을 지켜보며 애가 닳았던지 평소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빨아 댔다. 클리토리스를 빨아 올리며 이로 할퀴듯 갉작이는 잔망에 리비아가 소파에 몸을 완전히 뉘듯 기대며 다리를 떨었다.
“응, 하…….”
“아, 아……!”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온 순간 라시니 역시 젖을 자극하던 덩굴 중 하나가 입으로 옮겨 가고, 그의 입을 한참이나 범하며 덩치를 불린 것이 대신 그 자리를 채우자 허리를 뒤틀며 애달픈 신음을 터뜨렸다. 그는 진심으로 마물이 주는 쾌락에 기꺼이 순응하고 있었다. 미슐레는 이 미친 상황 속에서도 그녀에게 봉사하고 있고, 이 난장판을 만든 여자는 드레스 위로 자신의 가슴을 콱 틀어쥔 채 남은 한 손으로 미슐레의 머리통을 옷 위로 짓누르듯 쓰다듬고 있었다. 짐승들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은 오롯이 요한뿐이었다.
“…….”
리비아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접어 웃었다. 약이라도 올리는 양 밉살맞았지만 열락에 달뜬 절세 미녀가 걸친 미소는 그 뜻이 어찌하든 사내의 아래를 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저도 모르게 혀를 깨물며 어깨를 들먹였다.
그 순간, 그녀는 저돌적인 개의 애무로 인해 이른 절정에 이르렀다. 요한은 맨정신으로, 부옇게 흐려지지 않은 눈으로, 처음으로 리비아 모브레이가 절정에 달하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또렷하게 자신을 꿰뚫듯 바라보는 눈이 몽롱하게 흐려지면서 입술이 벌어지고, 억누른 신음이 희미하게 비어지며 다리를 한껏 오므린다. 마치 제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수컷을 짓뭉개 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자비가 없는 다리는 한없이 아름답다.
남자는 그저 맥없이 샅을 잔뜩 부풀린 채 그녀의 오르가즘을 함께해야 했다. 철저한 방관자로서. 그 입술과 낯짝에 홀려 여자가 입술을 벙긋거려 ‘하고 싶은가요?’ 하고 묻는 꼴을 순순히 알아듣고서도 당장에 이해하지 못해 넋을 뺀 채.
정말이지 끔찍하면서도 기묘한 경험이다. 지극히 경멸해 마지않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열이 올랐다. 수치심과 흥분이, 무색의 희열이 그의 숨통을 틀어쥐었다. 턱에 단단하게 힘이 들어가고, 울대는 오르내리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굳었다. 그런 남자의 혓바닥이 얼마나 민감하고 귀엽게 구는지 똑똑히 아는 유일한 사람, 리비아 모브레이가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벌리더니 야살스럽게 허공을 애무하기라도 하듯이 혀를 날름거렸다. 요한의 얼굴이 빈틈없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명백하게 그날 밤, 자신의 첫 입맞춤을 앗아 갔던 그것과 동일한 짓거리였다. 말없이도 치욕을 들먹일 수 있는 여자가 리비아다.
“…….”
그런데도 이 상황을 박차고 나설 수가 없다는 것이 위장을 뒤틀리게 했다. 요한은 이를 억세게 물면서 그녀를 힘껏 노려보았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그것뿐이었으므로.
노려보는 것만으로 그녀를 제지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리비아는 그가 노려보는 것을 알면서도 미슐레의 머리통을 톡톡 두드리곤 다리를 벌벌 떨며 신음을 터뜨리는 라시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덧 덩굴이라고 부르기엔 심히 민망할 정도로 두꺼워진 촉수들에 둘러싸여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처음 거부감을 느꼈던 일이라곤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열성적으로 제 성기를 삼킨 촉수에 좆을 쳐올리고 있었다. 밑동을 죄여 사정조차 하지 못하는 몸이면서도 당장 눈앞의 쾌락을 좇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리비아는 그런 수컷을 바라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미슐레의 억척스러운 혀가 예민하게 달아오른 클리토리스를 뭉개듯 핥아 댔기 때문이다. 저릿저릿하게 차오르는 쾌감. 그녀는 얼핏 저 촉수를 썼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요한의 눈앞에서 그의 성질을 닮아 버린 마물과 통정하는 꼴을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가학이리라. 남자 역시 의식적으로나마 저 민망한 꼴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을 보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성질이란 결국 주인을 닮는 법. 장미를 닮은 요한 구르디예프에게서 빚어진 마물은 화원을 감추기에 적격인 덩굴이었다.
그러니 저것에 다리를 벌리고, 그저 분함에 몸을 떨며 부푼 샅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굳어 선 남자와 눈을 맞춘 채 그를 눈으로 범하며 쾌락을 추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하아아……!”
생각이 깊어질 무렵, 라시니의 입에서 비명을 닮은 신음이 새되게 울렸다. 돌기가 돋은 촉수 끄트머리가 그의 뒷구멍을 문지르며 버텼던 까닭이다. 리비아는 요한을 괴롭힐 생각을 잠깐 접어 두고 미슐레에게 그만, 하고 명령한 뒤 그 꼴을 바라보았다. 치맛자락 밖으로 기어 나온 미슐레와, 계속 리비아를 노려만 보던 요한도 반사적으로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점액과 땀으로 질척하게 젖은 회음부를 가로지르는 우악스러운 덩굴이 차근차근 그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안달이 난 것처럼 살에 닿지 않은 부위에도 울렁거리며 돌기가 돋아 진득한 액을 늘어뜨렸다.
리비아는 라시니가 이제껏 느껴 왔던 쾌락과는 전혀 다른, 훨씬 무력하고 강제적인 쾌락 앞에 생리적인 눈물을 흘리며 발버둥을 치면서 파과당하는 꼴을 지켜보며 자신의 애액으로 입을 더럽힌 미슐레의 머리를 마치 품에 보듬어 안듯 쓰다듬었다.
“잘 봐 둬요.”
누구에게 건네는 말인지 모를 모호한 그녀의 말.
“당신도 곧 저리될 테니까.”
그녀는 열망과 희열이 섞인 얼굴로 곁에 있는 남자들이 아니라 라시니의 흐트러진 모습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물론, 마물이 아니라 내게 당하는 거겠지만.”
오싹 소름이 돋는다. 요한은 질린 낯을 하고 리비아에게 고개를 홱 돌렸지만 여전히 낯짝의 열기도 사타구니의 부피도 가라앉히질 못했다. 미슐레는 그저 양순한 개답게 그녀의 무릎에 뺨을 기대듯 입을 맞추며 대꾸했다.
“예, 부인.”
요한은 정녕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미친 계집이 올라앉더니 집구석이 광란의 진창이 되어 간다. 가장 끔찍한 지점은 자신 역시 그 말에 허리를 들썩거리고야 말았다는 지점이었다. 입 안이 바싹바싹 마르고 괜히 수치스러웠다.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목줄기가 뻣뻣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남자는 리비아 모브레이가 자신을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겁탈했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끔찍한 수치와,
“읏…….”
두려울 정도의 황홀경이었다.
그는 기어이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역겨움일까? 아니면 애달픔일까. 어느 쪽인지 요한 스스로는 분간할 재간이 없었다. 남자는 모브레이와 아무 연관 없는 외부인을 귀한 주인께 해를 입히지 않을 만큼 온순하게 조교하는 일인 만큼 이것이 금방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얼른 일을 끝내고 잠시라도 좋으니 그녀가 없는 제 공방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절박하게 문가를 바라보는 요한의 뒷덜미를 핥듯이 바라본 리비아는 욱, 하고 욕지기를 닮은 소리를 흘리며 거칠게 뒤를 유린당하는 라시니의 사지가 가냘프게 허공에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한숨을 흘렸다. 늘 말해 왔던 대로, 인간은 지나칠 정도로 쾌락에 약하다. 특히 어리숙하기 짝이 없는 수컷 놈들은 더더욱.
라시니의 수모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는 가지 못한 채로 몇 번이고 몸을 떨다가, 뒤늦게 그녀에게 빌어도 봤지만 허락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관성적인 애원이었을 뿐이다. 지나칠 정도로 느끼고 있다는 교성의 일환.
리비아는 남자가 거의 맥을 추지 못하게 될 때까지 그 꼴을 가만 바라만 보다가, 이따금 회가 동하면 미슐레에게 자신을 애무하게 했다. 그는 번번이 거리낌도 없이 리비아의 치맛자락을 들치고 바닥을 기듯 들어가 그녀에게 봉사했다. 요한은 그 낯 뜨겁다 못해 천박한 꼴을 보고 거품을 물 기세로 대노했지만 차마 무어라 입을 열질 못했다. 그녀의 손에 꺾인 기억이 있어 저도 모르게 멈칫거리게 되었던 까닭에 자칫 제게 불씨가 튈까 겁을 낸 것이다.
결국 날이 깊도록 이어졌던 조교는 새벽녘이 되어 날짜가 바뀌고서야 끝이 났다. 요한은 마법을 사용한 것과는 전혀 별개의 사유로 초주검이 된 낯짝을 하곤 마물을 진절머리를 내며 태워 없앴다. 미슐레가 제때 남자를 받아 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떨어져 어디 한 곳 성치 못하게 부러지기라도 했을 것이었다.
요한이 어그러뜨렸던 공간을 바로잡자 리비아는 종을 울렸다.
“부르셨습니까, 부인.”
재깍 쉐리와 다른 시녀들이 들이닥쳤다.
“저자를 씻기고 방을 마련해 넣어 두도록, 뒷정리도 좀 하고……, 씻을 테니 쉐리, 당신은 지시를 마치고 올라오도록 해요.”
리비아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재깍 쉐리가 시녀들을 지휘했다. 미슐레 역시 기절해 축 늘어진 사내를 그녀들이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겠다는 판단하에 리비아에게 눈짓으로 허락을 구하고 그 틈바구니에 섞여 빠져나갔다. 여자는 그들이 죄 밀물처럼 나가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매무새를 간단히 가다듬었다.
“꼭 저리해야만 합니까?”
요한은 그새 피라도 한 대접 뽑힌 것처럼 창백한 낯짝을 하고 있었다. 리비아는 그의 얼굴을 감흥 없이 바라보다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미 했잖아요?”
“제 말은,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지 않냐는 겁니다.”
“요한, 당신이 말하는 방법은 지나치게 사족이 달려요. 정석적인 고문을 한다면 그가 왜 외부의 위협을 두고 내게 매달리겠어요? 별반 다를 바가 없을 텐데. 적어도 괴롭지만 좋은 것, 누구보다 탐나는 것, 그러면서도 목숨에 지장은 없어야 내게 안기지 않겠어요?”
“정말이지……, 저속하기 짝이 없군요. 차라리 그에게서 직접 정보를 추출하면 되잖습니까?”
요한은 잠자코 듣다 히스테릭하게 쏘아붙였다. 언성을 높이려고 작정했다기보다는 반사적인 짜증에 가까웠을 모양새. 리비아는 눈을 설핏 가늘게 떴다가 어렵잖게 넘어가 주었다. 이제 어를 때가 가까웠다. 남자는 지나치게 이런 방면에 심약했으므로 그녀가 자비를 베푸는 셈이었다.
“보아서 알겠지만 그는 아름다워요. 충분히 가지고 놀고 싶을 만큼 말이에요.”
“기껏해야 저 낯짝뿐이지 않습니까. 조금쯤 멍청해져도 가지고 노는 데엔 지장이 없으실 텐데요.”
남자는 자신의 마법이 그의 남사스러운 짓거리에 방해된단 식으로 이야기되는 것 자체를 못 견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귀부인들의 정갈하고 우아한 사교도 그의 눈에는 한없이 미욱하고 불필요한 가식적인 사치에 불과한데, 저런 남자가 밑바닥에서 기어오르기 위해 차용한 수단이 얼마나 더러워 보이겠는가? 리비아는 등잔보다 훤하고 연약한 그의 심성을 불 보듯 뻔히 읽어 낼 수 있었지만 그를 짓뭉개기보다는 조곤조곤 설명으로 풀어내 주었다. 스스로 말했듯 요한의 마법적 능력은 다른 사람을 구해 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므로.
“많은 귀부인이 그를 겁박하고 유혹했을 거예요. 지금까지 쭉,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부로 전락하지도 애첩으로 남지도 않고 향상심을 가지고 내 발치까지 기어올 수 있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노력과 능력이에요. 생각해 봐요, 요한. 당신이라면 내가 내건 포상 하나에 눈이 멀어 저런 짓을 견딜 수 있겠어요?”
“…….”
“그런 거예요. 당신이 하지 못하니 라시니를 구해서라도 즐기는 것이고.”
리비아가 느릿하게 걸음을 디뎠다. 요한은 그녀의 기나긴 설명에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는지 입을 굳게 다문 채 다가오는 여자를 따라 고개를 움직여 눈을 맞출 뿐이었다.
“나는.”
그녀가 요한의 두 어깨를 쥐고 낯짝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여자에게서는 여전히 향수 냄새가 난다.
“당신을 일찌감치 나달거리게 할 마음도, 다른 어떤 여자에게도 함부로 굴릴 마음도 없어요, 요한.”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저 다문 채로,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지독하리만치 짙은 녹색 눈에 사로잡혔다.
녹색은 질투의 색. 그 돼먹잖은 미신 이야기가 어찌 이리도 선연하게 떠오르는지, 리비아의 눈은 또렷하게 독점욕과 가학심을 띠고 요한의 면면을 핥듯이 진득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데.”
그녀는 뚫어져라 가냘픈 그의 녹안을 들여다보았다. 연둣빛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맑고 투명한 색. 기껏해야 그의 질투는 딱 그 정도인 것이다. 잠깐이라도 빛이 들면 흩어지고야 말 기복 높은 얄팍함.
리비아가 그의 입술에 가볍게 제 입을 맞댔다가 떨어졌다. 가족 사이에나 하는 친밀한 인사처럼.
“그러니 그를 너무 못 견뎌 하지 말아요, 당신을 대신해 기꺼이 더럽혀지고 있던 셈이니까. 볕이 너무 뜨겁다고 애꿎은 양산을 망가뜨리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에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리비아는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이지러진 공간 속에서 일어났던 일인 탓에 되돌린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응접실에 홀로 남은 요한만이 방황하는 눈으로 조금 전까지 있었던 난장을 회상하며 눈을 떨었다. 오롯이 조야한 그만이 남아서.
* * *
그 뒤로 남자는 두 번 군말을 꺼내지 않았다. 네가 대신 하겠느냐는 협박이 먹힌 건지, 널 다른 년들 손아귀에 굴리지 않겠다는 집착이 먹힌 건지는 그가 고해하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었지만 요한 구르디예프는 그 이후로 그녀가 무언가를 시키면 인상을 구길지언정 얌전히 따랐다. 리비아는 그가 조르주의 죽음을 조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감으며 그에 대한 값을 요구하듯 순응이 어디까지일지를 철저하게 가늠하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시켜 먹었다. 요한이 그 가늠하는 눈초리를 알아차릴 것 같을 때마다.
“요한.”
“시키실 일이 없으시면 그만 찾으셨으면 합니다만.”
“키스해 주겠어요?”
“…….”
이런 식으로 남자를 자극하면, 명석하다 소문난 머리를 굴리던 것도 까맣게 잊고 벌건 낯으로 앙칼지게 쏘아본 뒤 도망치듯 나가 버렸으므로 모든 것이 그녀의 뜻대로 굴러갔다.
그동안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미약에 절은 채 시녀들의 감시하에 생활했다. 몸이 달아 제정신이 아니면서도 시녀들이 엄중한 태도로 ‘안 됩니다.’ 하고 일갈하면 허리를 들썩거릴지언정 수음하지 않았다. 돌아 버릴 것 같은 열락이 그의 머리통을 진탕 녹여 먹고 있었지만 뼛속 깊이 새긴 탐욕이 가까스로 남자를 제어했다.
공작 부인의 눈에 들어야만 한다는 집착적인 인내. 그것이 빛을 본 것은 며칠 뒤의 일이었다.
리비아는 요한이 퍽 맘에 찰 만큼 잠잠해지자 시간을 더 들여 괜히 뒤틀리거나 토라질 때까지 미루지 않고 남자의 심문을 함께하자고 말했다. 그의 말에 거짓이 있는지 마법으로 판별해 달라고 덧붙이면서.
물론 그 말이 미슐레의 좆을 희롱하며 가진 티 테이블 앞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더라면 요한도 굳이 집어넣은 반박을 수고롭게 부득불 끄집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제 힘이 필요하신 겁니까, 아니면 이번에도 저를 희롱하기 위함입니까?”
“‘이번에도’? 마치 내가 이전에도 당신을 희롱한 적이 있다는 양 말하는군요.”
“어물쩍 눙칠 셈이십니까, 부인?”
남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지만 꾹꾹 눌러 담아 어떻게든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꼴이 가상했다. 그도 드디어 제가 아락바락 어떻게든 덤벼들수록 리비아가 더 골을 낸다는 점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다만, 리비아는 그런다고 해서 그를 괴롭히지 않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까지는 깨닫지 못한 눈치였다. 괴롭히고 싶다면 기어코 화를 내도록 긁으면 될 일이다.
여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성기만을 끄집어낸 채 마치 그것까지 티타임의 일부인 양 얇은 레이스 장갑을 낀 손아귀로 희롱당하고 있는 미슐레를 흘깃 보았다. 그는 부끄러워 보였지만 언짢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요구에 부끄러움 없이 임할 수 없는 자신이 민망한 것마냥. 라시니의 꼬락서니를 보았으니 나름대로 본받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리비아는 그의 흉흉하게 달아오른 좆대를 마치 펜대라도 되는 양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매만지며 요한에게 대답했다.
“그건 아니에요. 단순히 그게 희롱이었다는 걸 당신이 알아차린 게 용해서 말이죠.”
“한번 이겨 먹으시더니 아주 저를 천치로 보시는 모양입니다?”
“허면 그 전까지는 아니었던 모양이죠? 매번 모욕이라고 길길이 뛰더니.”
“말장난이 취미이신 줄은 몰랐습니다만.”
“사교라는 것이 늘상 그러니까요. 취미라기보다는 버릇에 가깝겠죠.”
그녀는 요한의 목줄기에 기어이 핏대가 서는 것을 보고서야 한참 동안 곁에 세워 둔 채 고문처럼 희롱만을 일삼았던 미슐레의 성기를 해방시켜 줄 맘을 먹었다.
“미셸.”
“예, 부인.”
그의 대답 끝이 살풋 떨렸다. 다른 것이 아니라, 감각이 과해 어떻게든 평이한 어조를 꾸미려다 실패한 것이었다.
“상을 주죠.”
“상이라니, 저는 마땅한…… 소임……, 을…….”
미슐레는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리비아가 아주 태연하게, 그의 귀두 끄트머리에 입을 맞췄던 까닭이다. 두 남자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비아는 혀를 내밀어 보란 듯이 그의 둥근 귀두를 둥글려 핥고는 제 입 안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아……!”
엄연히 질과는 다른 감촉이었다. 똑같이 축축하고 미끌미끌하지만 훨씬 딱딱하고 오돌토돌한 입천장에 예민해진 귀두가 쓸리자 척추를 지지듯 강렬한 쾌감이 찾아왔다. 무엇보다도 귀부인의 얼굴이 자신의 아랫도리에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경애하는 주인의 낯인 것을 상기하면 황송하여 죽어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일이었다. 그녀는 아주 유연하게 이를 숨기고 그의 성기를 물었다. 그리고 입 안에 채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기둥은 한참 동안 그것을 만지작거리던 왼손으로 쓸어 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뒤로 물렸다가 도로 삼키기를 반복해 주었다. 명백한, 추삽질이다.
리비아는 그의 성기를 빨면서도 수치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말마따나 포상을 줄 셈이고, 당장 빠르고 간편하게, 치장이 최소한으로 상하는 방식이 구음이었을 뿐이라는 것처럼. 심지어는 손으로 그의 성기를 희롱하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오연한 낯이기까지 했다.
미슐레는 그것이 못내 황홀하여 이를 악문 채 뒷짐을 진 등 뒤로 제 주먹을 할퀴었다. 열이 바짝 올라 낯빛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 부인, 이건…….”
“미, 미친…….”
미슐레는 이런 모습을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황송한 만큼 요한이 덩달아 보고 있다는 것이 못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는 요 여드레간 너무나 많은 모습을 보았다. 대개는 그처럼 뻣뻣한 작자가 감히 볼 수도 없는 부인의 사생활이었다.
기실 자신이 그녀에게 하는 봉사야 보건 말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건 단순히 리비아가 미슐레를 ‘사용’했을 뿐이므로.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수고롭게 품을 들이는 것은 명백히 정사의 일부였다. 다른 수컷이 보는 것도 내키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잠시나마 그녀를 위협했던, 앞으로 다시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요한 구르디예프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자신은 오롯이 리비아 모브레이의 뜻에 따르는 번견이자 변변찮은 수컷에 불과했다. 그녀가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을 쾌락에 몸부림치게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면 그에 응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첩도 무엇도 아닌 자신이 싫다 도리질 칠 자격이란 없는 셈이다.
리비아는 그들이 대경하건 말건 오른손까지 보태 미슐레의 기둥과 고환을 주물러 애무하면서 입에 품은 성기를 힘껏 빨아 올렸다. 말캉한 점막과 혓바닥, 꺼끌거리는 입천장의 감촉이 한순간에 몰아치며 힘껏 압박하는 와중 그녀의 손장난까지 이어지자 오래간 달아올라 있었던 남자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그녀의 입 안에 파정하고야 말았다.
“아, 아아…….”
미슐레는 쾌락과 동시에 엄청난 죄악감에 몸서리쳤다. 감히 그녀의 허락조차 없이 입 안을 더럽혔다. 허락 없이 사정하지 말라는 지시는 이미 이전에 받은 것이었는데도. 여러 가지 까마득함이 일제히 몰려들었으나, 리비아가 조용히 고개를 뒤로 물리고, 손을 거두고, 그에게 고갯짓하여 바닥에 무릎 꿇릴 때까지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감히 변명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옳으리라.
리비아는 미슐레의 턱을 움켜쥐고 키스했다. 그가 싸지른 정을 하나도 남김없이 먹이겠다는 것처럼, 입 안에 담긴 것을 넘겨주고도 제 혀를 놀려 타액에 섞인 것까지도 흘려 넣어 주었다. 미슐레는 얌전히 무릎을 벌려 샅을 드러낸 채 꿇어앉아 그녀가 혀를 얽으며 넘겨주는 비린 액체를 겸허히 삼켰다.
요한은 그들의 모든 행각에 얼이 나갔다. 거의 경악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저렇게까지 양순한 것도 기함할 노릇이었지만 리비아는 거의 지당한 일을 하는 것처럼 일체의 거리낌도 없었다. 내켰다, 했다, 나왔다, 처리한다. 마치 담뱃불을 재떨이에 지져 끄듯 자연스러웠다.
“하아…….”
내막을 지켜본 탓에 괜스레 뿌옇게 보이는 은사가 그들 입술 사이에 늘어지는 것까지 숨죽이고 지켜본 요한은 조금 전까지 했던 소리나 생각을 죄다 까먹은 채 아플 정도로 발기한 성기의 달콤한 둔통에 사로잡혀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당부한 것을 잊지 말도록 해요. 오늘은 첫 구음이었으니 용서하겠지만 다음엔 벌을 줄 테니까.”
“예, 부인. 수고롭게 벌하실 일이 생기지 않도록 깊이 새기겠습니다.”
“좋아요, 미셸. 난 지금부터 라시니를 심문하러 가야 하니, 당신은 다른 직무를 수행하며 대기하도록 해요.”
그녀는 손에 두르고 있던 레이스 장갑을 벗었다. 겉모습으로는 멀끔했지만 국부의 냄새가 밴 그것을 손수 미슐레의 옷깃 안으로 밀어 넣고 톡톡 가슴팍을 두드려 주기까지 했다.
“이건 가지고.”
* * *
요한은 차마 여자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미적미적 시선을 돌리며 그녀를 따라 라시니가 있을 옆방으로 향했다. 바로 코앞에서 그런 꼴을 본 것도 기가 차는데, 스스로가 그런 꼴을 보고 발기해 버렸다는 사실이 못내 수치스러웠다. 치렁치렁하고 품 넓은 법복을 걸치지 않았더라면 바깥으로 다 태가 났을 테지. 리비아라면 분명 자신에게 ‘섰군요, 이런 식으로 지켜보는 걸 좋아하나요?’ 같은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껄이며 서슴없이 희롱해 댔을 것이다.
남자는 스스로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리비아에게 능욕당하며 굴욕적인 취급을 받는 망상을 이어 갔다. 리비아는 생각에 잠긴 듯한 얼굴로 입술을 자꾸만 질근거리며 숨 쉬는 것이 드문 요한의 꼬락서니를 흘긋 보고는 그가 순조롭게 애가 닳아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부인.”
방의 주인, 라시니는 창가 앞에 앉아 있었다. 마치 요양을 온 환자나 풍경을 가늠하는 화가처럼 고즈넉하게 안락의자에 앉아 창가에서 비산하는 햇볕을 내리쬐고 있는 그는 그 아름다운 금발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화사하고 아름답게 빛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마땅히 이리하면 어여쁘리라는 것처럼 고개를 살풋 기울이고 여상스레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의 달아오른 뺨과 꽉 잠긴 탓에 늘 매끄럽고 다정다감한 투를 꾸며 내던 목소리가 어그러졌다는 것과, 가쁜 호흡으로 가슴팍이 바삐 오르내리며 고작 한 장 걸쳤을 뿐인 얇은 튜닉 자락을 잘게 흔드는 모습을 본다면 쉬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결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사실, 리비아가 방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재깍 일어나 예를 취하지 못한 시점에서 능히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요한은 문간에 서서 방 안을 가득 메운 달콤한 향기에 인상을 찡그렸다. 과일에 가까운 달짝지근한 향 끝에 꽃처럼 화사하고 진득한 뉘앙스가 늘어지는 냄새. 그는 새삼스럽게 방 안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마물에게 겁탈당한 뒤 그 체액을 품은 채 며칠간 방치당한 몸임을 떠올렸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눈에 보이는 날것 그대로 그녀를 위해 예비 된 먹이로서 리비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이 비인도적이고 배덕한 광경을 만드는 데에 스스로가 일조했음을 돌이키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를 악문 채 꼴사나운 소리를 내지 않도록 자신을 다잡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리비아는 그런 요한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라시니에게 다가가 가냘픈 애첩을 어르듯 다정하고 섬세하게 그의 뺨을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라시니.”
“아닙……니다, 부인. 다망하신 것을 모르지 않는 것을요.”
그는 파르라니 떨리던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다잡고 빙그레 미소 지었으나 그 뺨이 평소보다 훨씬 뜨겁고 촉촉하다는 것을 감출 생각일랑 전혀 없는 듯 리비아의 손끝에 살짝 고개를 기울여 치댔다.
“이렇게나 곱게 입고 얌전히 방을 지키고 있다니, 꽤나 만족스럽군요.”
“부인께서 원하셨으니까요.”
“달짝지근한 향이 나요.”
“맘에 차지 않으신가요?”
그들은 드문드문 단어를 제멋대로 빼먹은 채 둘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누가 듣더라도 애첩과 권력자의 대화라서 사뭇 낯설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리비아 모브레이는 늘 자신이 원했으므로 그곳에 있는 것을 취했다는 뉘앙스였지,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애완용으로 들여 어여뻐한 적이 없었다. 요한은 엉키듯 갑작스레 언짢아진 심사를 감추지 않고 그들을 가만히 노려보다 걸음을 옮겨 빛 한 점 들지 않는 방구석에 우두커니 섰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그녀의 어깨 너머로 어둑어둑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요한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기가 죽거나 수치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유두가 옷 위로 티가 날 만큼 바짝 곤두선 것을 일러바치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뺨에 닿아 있던 리비아의 손을 가슴팍으로 이끌었다.
“부인을 위해서 이렇게 몸을 덥히고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표정이 영 좋지 않던 남자의 어깨가 흠칫 떨리며 눈빛이 난폭하게 일그러지는 꼴을 보았다. 저열한 희열과 가학심이, 동시에 오랫동안 묵혀 둔 성감이 고개를 들었다.
“네? 부인…….”
그는 자신의 바람과 정욕을 해소하기 위해 알랑거리는 것만으로도 저보다 훨씬 유명하고 강력한 수컷의 자존심을 짓뭉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비열한 가학심에서 기인한 흥분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해서, 리비아가 매끄러운 튜닉 위로 한껏 부푼 제 젖을 움켜쥐자마자 흠칫 몸을 떨며 선액을 질질 흘려 댔다.
“빨렸던 붓기는 빠졌을 줄 알았는데.”
“아……, 흣, 그대로 부푼 모양, 입니다……, 앗……, 부인, 이런 가슴은…… 싫으신지요?”
“아뇨, 창부의 몸뚱이는 오롯이 아름다움과 색정을 위해서만 발달한 점이 기이하게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그저 감회가 새로웠을 뿐이에요. 이렇게 음란한 몸뚱이를 한 당신이 다른 부인들의 앞에서 옷을 벗으면서 말간 액을 질질 쌀 거라고 생각하면…….”
“힉……!”
남자가 허리를 휘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손톱을 세워 유두를 꼬집어 당기는 손길만으로도 갈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절정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정을 싸지르지 않고도 반쯤 애달픈 허리를 비틀면서 어수룩한 오르가즘에 취하는 것은 요 며칠 사이 익숙해진 일이었다. 그는 벌어진 입 밖으로 가쁜 숨을 터뜨리면서도 뻣뻣해진 혀에 달콤함이 맴돈다고 생각하며 눈을 내리깔고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언짢으실까요?”
“아뇨, 회가 동해서요.”
“흐읏……!”
리비아는 그의 도발에 응하듯 자애로운 미소로 그를 내려다보면서 유두 정중앙을 손끝으로 후벼 댔다. 라시니는 조금 전까지 그 애처롭고 가냘팠던 천사의 외양을 했던 남자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음탕한 태를 뽐내며 경직된 팔다리를 떨었다. 시선을 바로잡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며 혼곤하게 허공을 더듬는 청록색 눈알이 아름답다. 여자는 고개를 숙여 그의 눈가에 입 맞춰 주며 쇄골을 문지르다 그대로 튜닉 안에 손을 밀어 넣었다.
남자의 가슴은 이전부터 그랬듯 탄탄한 근육질로 만질 것 있는 그대로였지만 유륜과 젖꼭지가 부풀어 누가 보더라도 단단히 길든 태가 났다. 리비아는 그의 이마와 콧등에 입을 맞춰 주며 두 손을 모조리 튜닉 속에 넣은 채 그의 젖을 주물렀다.
“아, 하아……앙, 부인…….”
“당신이 이제껏 안아 왔을 그 어떤 부인들보다 달콤하게 우는군요.”
“흑, 아……!”
“마음에 들어요.”
리비아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가슴을 만지면서 튜닉을 옆으로 젖혀 헐거운 어깨 매듭을 풀어 버렸다. 단단하고 너른 어깨에서 미끄러져 팔뚝을 타고 천이 흘러내리자 그의 야살스럽게 농익은 젖가슴이 드러났다. 여자는 보란 듯이 입맛을 다시며 탱탱하게 부푼 라시니의 유륜을 손바닥의 볼록한 부분으로 뭉개듯 문질렀다.
“모름지기 수컷이란 양순하고 달짝지근하게 울며 커다란 좆이나 꺼떡이면서 아양을 떠는 게 제일이니까.”
여자의 말본새는 노골적으로 남자를 찍어 누르는 투였으나 며칠간 미약에 절여진 채 지옥 같은 인고의 시간을 보낸 라시니는 모욕은커녕 게걸스럽게 그녀의 말에 동조할 뿐이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작해야 성욕 하날 이기지 못해 이렇듯 제정신이 아닌 스스로가 새삼스럽게 수치스러울 일이 있겠는가. 자존심을 팔아 그녀가 이 지리멸렬한 쾌락을 해방해 주기만 한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였다.
남자는 그녀에게 속살을 희롱당하면서 어여쁘게 눈을 내리깐 채 속살거렸다.
“허면 부인, 이쪽도…….”
곱아든 채 팔걸이를 움켜쥐고 있던 그의 손이 무릎 언저리에서 트여 있던 튜닉 자락을 다리 옆으로 헤쳤다.
아름답게 물결치는 하얀 천 너머로 드러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울퉁불퉁한 돌기들이 도드라지는 흉하고 커다란 좆이 꺼떡거리며 젖은 기둥을 드러냈다. 리비아 외의 낯선 시선이 성기에 닿는 것이 느껴지자 남자는 혀를 내어 제 입술을 핥으면서도 처연한 표정을 꾸민 채 제 좆을 과시했다.
“부인께서 예뻐해 주시기를 기다리며 단 한 번도 매만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살짝 가쁜 숨이 섞인 목소리로 속살대며 리비아의 풍만한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이토록 오래간 참아 본 적은 처음이에요, 부인. 그러니까…….”
그녀의 체향이 후각을 사로잡는다. 강렬한 경험과 함께 각인된 향에 애가 바짝 닳았다.
“지금 취하신다면 이전보다 훨씬…… 파렴치한 모습으로 놀아나 드릴 수 있을 텐데요.”
발칙한 말본새였으나 리비아는 그저 소리 죽여 웃으며 넘겼다. 라시니 몬테필트로의 맛은 배알도 없는 양 한없이 납죽 엎드렸다가도 한 번씩 이리 앙칼지게 꼬리를 치는 것이었으니까.
리비아 모브레이는 제 품에 고개를 기대는 남자의 머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마치 위로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나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찔러 넣고, 남은 손으로는 목뒤에서부터 등으로 넘어가며 도드라지는 동그마한 뼈 위를 둥글리듯 문질렀다. 자연히 달아오른 몸뚱이가 그녀의 손길에 반응해 더운 숨을 훅훅 내뱉었다. 더운 숨이 천 너머로 파고들어 가슴 위에서 흩어지는 감각에 제 유두가 빳빳하게 곤두서는 것을 느낀 리비아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부인…….”
라시니는 뜨뜻하게 열이 오른손 끝으로 리비아의 등허리를 어루만졌다. 옴폭 파인 척추 선을 애무하듯 훑는 손끝마다 절절함이 묻어났다. 지금 리비아 모브레이를 유혹하는 데에 실패한다면 이다음엔 며칠쯤 방치될지 몰랐으므로.
기실 그가 필사적으로 인내하고 있을 뿐 몸뚱이는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닐 것이었다. 리비아는 답지 않게 사뭇 다정한 척을 하며 라시니의 견갑골 언저리를 쓸어내렸다.
“리지.”
“……네, 부인.”
다정한 목소리로 낯선 애칭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자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기분이 나쁘진 않은 듯했다. 허면 자연히 포상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일종의 각인에 가까운 흥분이 라시니를 사로잡았다. 리비아는 느릿느릿 그에게서 떨어지며 정욕으로 물든 낯을 하고 어르듯 속삭였다.
“해 봐요.”
무엇을 해 보라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시선이 흘깃 사선으로 구르는 것만으로도 눈치를 챈 라시니가 비뚠 가학심으로 바짝 달아오른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끝에 입 맞추었다.
“원하신다면.”
그녀가 옆으로 물러나자 달콤하게 한숨을 뱉은 라시니가 여전히 굳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선 요한과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얼마든지요, 부인.”
눈이 마주친 순간 마법사의 눈매가 왈칵 일그러졌으나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그것이 두렵기는커녕 마냥 즐거워 입매를 끌어 올렸다. 요한 구르디예프가 자각하고 있지 못한 제 눈에 희미한 질투가 어려 있음을 어렵잖게 간파한 탓이었다.
라시니는 두 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무릎을 벌렸다. 사타구니를 보는 사람 앞에 그저 훤히 드러내기만 했는데도 전에 없는 흥분이 그를 에워쌌다. 과시욕의 일그러진 발로일까. 자신의 괴상망측한 취향을 고찰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를 애무하듯 제 손가락을 질척하게 핥아 적신 뒤 선액이 줄줄 흘러내린 기둥을 젖은 흔적을 따라 손을 미끄러뜨리며 훑다 꾹 움켜쥔 채 천천히 흔들기 시작하자 뭉근하게 열이 올랐다. 며칠간 이런 몸뚱이로 수음조차 하지 못한 채 금욕당한 탓인지 잡념 따위가 끼어들 틈이라곤 없는 상태로 손을 흔들자 숨이 절로 뻣뻣하게 끊어진다.
“하, 으…….”
시선과 열락에 온 신경이 쏠렸다. 처음 그녀에게 희롱당했던 복도를 떠올린다. 자신의 파멸과는 별개로, 그날 만약 그 하녀들이 기어코 자신의 절정을 목도했다면 어땠을지 그 기분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가 올곧게 자신을 경멸하겠지. 뒤에서만 떠들던 말들이 기어코 양지로 흘러들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헐뜯으면서도 탐욕스러운 눈들이 소문으로 퍼진 자신을 그리며 진득하게 탐할 것이다. 라시니는 자신의 일그러진 욕망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난 과거를 비웃었다. 생각보다 자신이 훨씬 더 저속한 남자임을 이제야 알아 버린 그는 달뜬 눈으로 붉은 머리의 마법사를 훑어보았다.
결국 당신도 이리될 텐데.
남자는 입매를 뒤틀었다. 향락에 잔뼈 굵은 자신도 녹아내리는 데에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저 마법사가 저는 아닌 양 목에 뻣뻣하게 힘을 주고 버티는 것은 오로지 리비아 모브레이가 그러기를 허용했기 때문임을 오직 그만이 모를 것이다.
그 순간 라시니는 깨달았다. 여자가 굳이 저자를 끌고 제게 온 이유를. 요한 구르디예프가 자신의 더러운 욕망에 애가 닳아 무릎 꿇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읏…….”
오싹 소름이 돋았다. 놀랍도록 배덕적인 여자의 지배욕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동시에 자신이 어떡하면 그녀에게 예쁨 받을 수 있을지도 얼추 감을 잡았다. 짐작컨대 가여운 마법사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어코 이 더러운 욕망에 이기지 못하고 무릎 꿇게 될 테지.
요한은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별다른 요구 사항이 포함되지도 않은 말 몇 마디를 나누자마자 생전 처음 보는 것에 가까운 사람 앞에서까지 다리를 벌린 채 자위를 하는 저 남자의 머리통을 진심으로 뜯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애당초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요한 구르디예프가 가장 이해할 수 없고 경멸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출세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존심도 몸뚱이도 팔아 치우고, 신념이나 의리 따위는 얼마든지 진창에 처박을 수 있는 배알 없는 것들. 거기에 더해 스스로 저런 상스러운 짓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괴했다. 그러나 늘 그랬듯, 아름다운 것이 기괴하게 망가지는 것은 놀랍도록 시선을 끄는 힘이 있었다. 남자는 눈을 감지도, 돌리지도, 하다못해 화를 내지도 못한 채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멍하게 관망해야 했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남자였다. 마치 악마의 꾐에 넘어간 순진한 어린양처럼 왼편에 새카만 여자를 두고, 그 앞에서 옷이라기보다 그 가련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소품처럼 몸 위에 흐트러진 흰 천을 두르고 젖은 얼굴과 손으로 흉측한 성기를 꺼떡이며 흔드는 모습은 현실감이 없었다. 어떤 취향 나쁜 작자가 그려 둔 모독적인 성화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진득하고 시큼한 냄새와 헐떡이는 소리가 여지없이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었다. 눈앞이 어지럽다.
“아, 아으, 부인…… 하……!”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결코 손을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자기만족을 위한 짓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꾀는 것에 가까운 행위였다. 리비아는 그를 굽어보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었다.
“왜 그러죠?”
“절, 이렇게, 그저…… 두실, 건가요?”
“글쎄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남자의 하얀 이마에 입 맞추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남자의 눈매가 파르르 떨린다. 서로 느끼는 감정은 상반되어 있겠지만.
“이렇게 농익은, 저를…… 읏…….”
“내게 먹히고 싶은가요?”
리비아가 흰 손끝을 들어 그의 요도를 꾹 짓눌렀다. 남자의 입이 벌어진 모양 그대로 파르라니 떨리며 밭은 숨을 터뜨렸다. 그것만으로도 사정 없이 절정에 이른 탓이다. 그는 결국 리비아의 품에 고개를 기대며 절박하고 달콤한 목소리로 애걸하기 시작했다.
“며칠이나 절 기다리게 하셨지 않습니까…….”
“포기해도 됐을 텐데요.”
“그럴 수야 없지요, 저는 아쉬운 입장이니…….”
그는 몽롱해진 벽안으로 그녀의 날렵한 턱선을 바라보았다. 당장에라도 저 흰 얼굴에 입술을 치대며 성기를 들이밀고 싶었다. 탄력적인 다리에, 배에, 사타구니에 축축하게 젖은 제 성기를 입술 삼아 애무하고 싶다. 수컷과의 정사에서 기인한 음습한 냄새를 두른 귀부인은 무엇보다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거느릴 텐데.
라시니는 옷 위로 리비아의 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허락은 없었지만 더 이상 앞뒤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 선을 마구잡이로 더듬듯 입술로 훑어 물며 더운 숨을 불어 넣었다.
“부인께서 취하지 않으시면 그 누가 저를 가진단 말입니까?”
“…….”
리비아는 말없이 그의 혼탁해진 눈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 시선을 똑바르게 받아 내며 유륜이 있을 부분을 이를 세워 깨물었다. 옷가지 덕에 아프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자극은 될 것이다.
“부인…….”
왼손으로 여전히 제 성기를 훑으며 오른팔로는 리비아의 허리를 감아 안고 칭얼거리기 시작한 남자에게 따가운 시선이 내리꽂혔다. 관람자의 뜨거운 시선은 그를 주춤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좀 더 어리석게 행위를 과시하도록 부추겼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리비아의 체향을 탐하듯 얼굴을 그녀의 품에 꾹 파묻은 채 헐떡거렸다.
“갈 것 같아요…….”
진실한 애원이었다. 리비아가 드디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옷을 벗어야겠군요.”
“제가……, 돕겠습니다.”
에두른 허락이 떨어지자 남자는 튕기듯 일어나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며 곧장 드레스에 손을 댔다. 리비아는 옷을 벗기기 쉽도록 고개를 빼 든 채 자리에 서서 요한을 웃는 낯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입매가 단단히 굳는 것이 보인다.
남자를 다른 여자의 손에 굴리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자신이 다른 남자를 품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아니하였음을 시사하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심플한 실내용 드레스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능숙하고 게걸스러운 남자의 손에 누가 보더라도 은밀한 유희를 위해 걸친 듯한 검은 레이스 속옷으로 감싸인 여자의 풍만한 육신이 드러났다. 흰 천을 늘어뜨린 남자와 그녀가 붙어 서자 대단히 대조적이었다.
라시니는 얇고 섬세한 레이스 천으로만 감싸인 그녀의 가슴에 군침을 흘리며 당장 손으로 받쳐 쥐고 유륜을 물어 삼켰다.
“하, 으…… 부인…….”
“응……, 리지, 급하게 굴지 말아요…….”
“너무하십니다.”
그가 진심 섞인 우는소리를 터뜨리며 리비아의 가슴을 빨아 댔다. 쭙쭙거리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방 안을 메우며 공기를 덥혔다. 남자는 단순히 입에 문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바닷물이라도 삼킨 양 점점 더 몸이 달아 저도 모르게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리지.”
“부인…….”
송곳니로 그녀의 살갗과 자신의 살갗이 맞닿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레이스를 물어 당기며 라시니가 그녀의 드러난 몸뚱이에 제 좆을 아무렇게나 치대기 시작했다. 부드럽지만 탄력적인 허벅지에 문질러졌다가, 선액을 처바르며 습한 허벅지 사이로 파고들었다가, 자궁 탓에 남자와는 다르게 희미한 곡선을 그리는 아랫배에 문지르는 식이었다. 애달픈 몸짓에 두서없이 성기가 그녀의 몸뚱이에 비벼졌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진다. 짓뭉개듯 비집어 연 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득달같이 혀를 얽어 대며 시선을 마주했다. 눈을 마주하자 서로가 자신의 욕망을 인정도 인지도 하지 못한 무지한 남자를 괴롭히며 가학적인 흥분에 달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괴로울 정도로 홧홧한 열락 속에서 라시니가 미소 지으며 그녀의 음부를 더듬었다.
“젖어 계십니다…….”
“당신이 그토록 음탕했던 것을요.”
“제게 욕정을 느껴 주신 건가요?”
그가 짓무른 꽃처럼 웃으며 제 타액으로 번들번들해진 리비아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통증보다는 지분거리는 감각이 강한 그의 애무를 받아 주며 다리를 좀 더 벌리고 서자 얇은 천 위로 습기를 머금은 둔덕을 꾹꾹 눌러 가며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손길이 닿았다. 라시니는 확실히, 미셸이나 요한과는 달리 능숙한 맛이 있었다. 언제든 준비된 애완견.
그녀는 남자의 어깨에 팔을 둘러 끌어안으며 앓는 소리를 흘렸다.
“으응…….”
“넣게…… 해 주세요, 부인.”
라시니가 리비아의 사타구니에 제 성기를 밀어 넣고 치대기 시작했다. 양쪽 허벅지와 습기 머금은 둔덕에 갇혀 황홀한 감각을 맛보기 시작한 남자의 얼굴에 탐욕이 어렸다. 타인의 시선 앞에 욕망에 솔직한 자신을 과시하려던 욕심도 드문드문 흐트러졌다. 남자는 제 품에 꽉 맞닿은 말랑한 가슴의 감촉에 침을 삼키며 그녀의 팬티를 벗기고자 만지작거렸지만 마땅치 않자 어쩔 도리 없이 둔덕 옆으로 젖히는 것으로 만족했다. 방해받지 않고 두 샅이 맞닿자 금세 질펀하게 젖어 있던 살집이 비집어 열리며 찐득한 액을 흘렸다. 남자는 제 것이 아닌 체액으로 성기를 적시며 그녀의 귓가와 머리칼에 입술을 부볐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무엇이든 편히 말씀하세요.”
그는 조급하게 대꾸하며 그녀의 벌름거리는 질구를 툭툭 건드리며 허락을 기다렸다. 무엇이든, 정말 무엇이든 좋았다. 당장 이 구멍에 좆을 욱일 수만 있다면 무언들 말하지 못할까.
“리플리 후작 부인은 무얼 하고 있죠?”
몹시 포괄적인 물음이었으나 라시니는 자신이 받을 법한 질문들의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이야말로 늘상 그의 몸값을 올리는 중한 협상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가슴을 들썩이다 속삭이듯 대꾸했다.
“궁내의 정보들을 파는 것 같더군요, 그런 식으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조작한 정보를 흘려 사전에 계획한 일을 이루거나 이득을 취하는 듯했습니다. 종종 후작 부인의 거짓 정보를 믿고 움직였던 이들이 항의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하나뿐인 고명딸의 가장 아끼는 애완견이 되었던 덕에 훨씬 내밀한 부분들을 의심받지 않고 관찰할 수 있었다. 그는 조각난 정황들을 취합한 점을 속삭였다. 확실하지는 않았으나 틀릴 확률도 거의 없는 예측. 리비아는 짧게 웃음을 흘렸다. 과연 단시간에 러스킨 백작 부인을 당혹케 할 만한 화력의 일들이다. 그중 무엇이 그리 러스킨을 조급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이만하면 족했다.
라시니가 다시 한번 부인, 하고 보채자 그녀도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벌름거리는 질구를 지분거리던 그 자세 그대로 잠깐의 텀도 두지 않고 단숨에 허리를 짓쳐 올렸다.
“흑……!”
흉한 성기였다. 우둘투둘한 혹들이 바짝 달아오른 질벽을 할퀴며 단숨에 뱃속을 메우는 그 쾌감에 리비아가 신음을 터뜨렸다. 남자의 척추 선 언저리에 손톱을 세우며 좁은 틈을 꾸역꾸역 비집고 파고드는 커다란 부피감에 몸을 가늘게 떨었다. 식욕을 닮은 욕심에 침이 고인다. 누워서 샅을 섞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기 여의치 않은 자세인 탓에 질 속이 훨씬 좁은 기분이었다.
라시니는 빈혈처럼 눈앞이 까맣게 명멸하는 듯한 쾌락을 느끼며 그녀의 뱃속에 파정했다. 견딜 만한 여지라고는 조금도 주지 않는 무자비한 쾌락이었다.
리비아의 질벽은 이전보다 훨씬 홧홧하게 달아오른 민감한 수컷의 성기를 우악스럽게 조여 물며 정을 쥐어짰다.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는 뜨뜻한 점액질의 감촉을 느끼며 그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입술을 맞댔다. 물기 어린 접문에 흥분한 라시니가 시든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는 성기를 좀 더 깊이 욱여넣기 위해 리비아를 벽과 제 품 사이에 가둔 채 사타구니를 자꾸만 치댔다. 수차례에 걸쳐 미진하게 조금씩 더 깊이를 더해, 기어코 그녀의 부드러운 둔덕에 남자의 까슬까슬한 음모가 맞닿았다.
“으, 흑…….”
깊은 뱃속을 울퉁불퉁하게 짓누르는 부피,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자세 탓에 조금의 자비도 없이 피어오르는 쾌감에 달콤하게 신음한 리비아가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한숨을 내쉬며 남자를 할퀴었다. 라시니는 그녀의 손속에 기꺼이 제 흰 피부를 바치고는 느릿하게 허리를 물렸다가 치대며 속살댔다.
“부인…… 너무……, 조이지, 마십시오…….”
“이미, 가 버린…… 주제에, 바라는 것이…… 많군요.”
“안 될까요?”
그는 달아 빠진 낯으로 조금쯤 짓궂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귓바퀴를 핥아 올렸다. 몸짓 하나하나에 그녀를 향한 아양이 묻어났다.
“젖은 소리…….”
흐으, 하고 뒤이은 신음에 리비아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자 훤히 드러난 목덜미에 순흔을 남기며 지분대던 남자가 좀 더 속도를 높여 재게 허리를 쳐올렸다. 찌걱거리는 것보다 좀 더 젖은, 마치 무언가를 빠는 듯한 점막의 우는 소리가 감출 수도 없을 만큼 크게 울렸다. 서로가 그 소리에 흥분해 아랫배에 바짝 힘을 주었다. 질벽의 압박이 심해지자 절로 허리가 벌벌 떨린 라시니가 애교를 부리듯 이마를 부볐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얌전히 그녀의 자비를 포기한 채 추삽질을 시작했다. 제 정액과 그녀의 애액이 기둥을 타고 흘러내려 고환을 적시고, 그 살덩이마저 그녀에게 치대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힘껏 허리를 추어올려 둔덕을 쳐 댄다. 그 요란한 소리에 억누른 신음들이 파고들었다.
“부인, 아, 너무…….”
라시니는 완전히 풀린 눈으로 두서없는 소리를 흐느끼며 홀린 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두 손으로 벽을 짚은 채 발정 난 수캐처럼 체면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쾌락만을 좇아 재게 샅을 쳐 대는 남자에게서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가냘픈 아름다움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기껏해야 진창에 나뒹구는 창부처럼 진득한 야살스러움이나 묻어날까. 그는 참아 왔던 흥분의 둑이 터지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해갈되지 못한 성감에 쫓기듯 그녀의 질 속에 더 파고들 수도 없을 만큼 뿌리까지 바짝 좆을 욱여넣은 주제에 어떻게든 더 깊이 파고들고 싶어 했다. 맞붙은 사타구니 사이로 차마 삼켜지지 못한 정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남자는 추삽질을 하면서도 마치 선액을 흘리는 것처럼 탁액을 싸질러 댔다.
“응, 하……, 리지, 읏!”
“네, 부인, 네에…….”
그는 차라리 미동이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로 유순하게 대꾸하며 그와 상반된 난폭한 추삽질을 이어 갔다. 쾌락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꼴에서 그간의 능란함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맹목적으로, 벽을 짚었던 손을 내려 리비아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주무르며 이따금 쥐어 벌리곤 제 것을 삼키고 있는 질구를 손끝으로 덧그리며 자극할 뿐이었다.
“하아, 하…….”
그녀의 입에서 숨찬 소리에 가까운 희미한 신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남자는 어깨와 뺨에 아무렇게나 입을 맞추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녀의 광대뼈에 희미한 열이 올랐다. 바짝 조여드는 질벽에 성기를 진득하게 뭉개며 리비아의 절정을 예감한 남자는 좀 더 빠르게 허리를 추어올렸다. 쩍쩍 들러붙어 살을 치는 소리 사이로, 제삼자의 헛숨이 섞여 들었다. 리비아는 절정을 앞두고 혼곤한 시선으로 허공을 더듬다 요한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아래를 가린 것이 의미 없을 만큼 흥분한 채 제 입을 틀어막고 새빨간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라시니가 아니라, 그를 취하고 있는 제게 오롯이 박혀 있는 시선은 배신감과 흥분, 울분과 애원과 분노 따위로 혼란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저런 눈을 하고 여즉 제게 굴종하길 원하는 자신의 욕심을 모르는 남자가 가엾고도 사랑스러웠다. 리비아는 의식적으로 라시니의 좆을 조여 물며 요한을 향해 입을 벌렸다.
“아……!”
입을 엉성하게 가린 힘 빠진 손가락 사이로 요한의 입술이 벌어진 것을 발견한 순간 날카로운 절정이 그녀를 헤집었다. 반쯤 물러났던 성기가 뱃속을 콱 쥐어 갈기듯 파고들어 온몸을 파르르 떨리게 했다. 리비아는 라시니와 함께 서로에게 절박하리만치 바짝 엉겨 붙어 경직된 몸을 벌벌 떨며 체액으로 샅을 더럽혔다. 끔찍할 정도의 황홀함이 그녀의 척수를 달구었다.
허공을 사이에 두고 정욕에 홀린 요한과 입을 맞춘 것만으로도 저릿저릿한 쾌락이 피어올랐다. 리비아는 사뭇 날카로운 손아귀로 라시니의 등을 끌어안고는 몸을 조금 굽힌 채 떨었다. 요한의 두 눈이 숫제 울음기가 느껴질 정도로 붉게 달아올라 있음을 핥듯이 바라보며 입술을 핥자 그 꼴에 정신이 든 건지, 아니면 오히려 소스라친 건지 모를 요한이 입을 달싹거리다 주춤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허락도 없이 전력으로 내달렸다.
조심성 없는 구둣발 소리와 함께 매섭게 열렸다 쾅 소리와 함께 닫힌 문 탓에 깜짝 놀란 라시니가 여전히 몽롱한 기운이 여실한 얼굴로 문가를 바라보았다가 알 만하다는 듯이 모호한 미소를 걸치며 여자의 가슴팍에 뺨을 비볐다.
“도망쳐 버리셨군요.”
“생각보단 오래 버텼으니 되었어요.”
“쫓지 않으십니까?”
“아직은…….”
리비아는 흐트러진 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뒤 라시니의 입술에 자신의 젖을 물렸다. 교태보다는 오만이 묻어나는 행동에 기꺼이 따른 남자가 그녀의 유륜을 이 끝으로 살살 깨물고 빨며 후희에 걸맞게 부드럽게 애무했다.
“때가 아니니까요.”
등 뒤의 벽이 미적지근했다. 그녀는 라시니의 머리카락을 엄지와 검지로 집고 손끝으로 비비며 미소 지었다.
“허면 부인, 저로 하여금 무료함을 달래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그도 나쁘지 않겠죠.”
라시니는 나긋나긋하게 웃으며 교합했던 성기를 끄집어내고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져 뒤를 돌게 했다. 리비아 역시 자연스레 벽을 짚고 서서, 다리를 어깨보다 좀 더 넓게 벌린 채 낮게 웃었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뒤엉킨 체액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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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금 by Jira
요한은 정말로, 자신을 이해하지도 제어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왜 갑자기 자리를 뛰쳐나오고야 만 것인지도 몰랐다. 분명 책잡힐 것이다. 좀 더 의연하게 굴지 못한 것에 대한 자학과 힐난과 두려움 같은 것들이 명백하게 자신의 뒤꿈치를 붙들고 늘어지는데도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이 어지러웠다. 까마득한 열감, 열띤 모래사막에 맨몸으로 던져진 듯한 괴로움이었다.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는 시야를 다잡기는커녕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가누지도 못한 채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고야 말았다. 아직도 코끝을 맴도는 듯한 희미한 정사의 냄새가 끈덕졌다. 남자는 제 무릎을 짚으며 몸을 지탱했다. 눈앞에 리비아 모브레이의 살결이 있었다. 창백하기 짝이 없는 그 흰 피부가.
까만 옷가지가 흘러내린 그녀의 몸뚱이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그는 여태껏 그녀의 완전한 나신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여자는 초상을 치르기 전에도 늘 목을 보이지 않았다. 손발목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떤 때에도 그야말로 완벽하기 짝이 없는 치장을 두르고, 우아하고 잘록한 등허리를 과시하듯 반듯하게 존재했다.
남자는 문득, 그 무렵의 그녀가 어떤 색을 걸쳤는지 떠올리지 못하는 자신을 깨달았다.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흑백으로만 존재한 듯, 그녀의 옷차림과 특정한 액세서리의 생김은 엊그제 본 듯 선명하게 떠올랐지만 그 색만큼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 속의 리비아는 늘 그 짙은 녹색 눈으로 자신을 깔아 보고 있었다. 그 사실에 다다르자 돌이킬 수 없이 무수한 여자의 눈이 떠올랐다.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한 온기라곤 띠지 않던, 들추어 본 다음에는 결코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기이한 욕구들을 머금은 눈.
요한은 단내 섞인 숨을 뱉으며 타인의 것처럼 감각이 아득하게 멀어진 손을 들어 더듬더듬 자신의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가라앉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달아올라 설핏 닿은 것만으로도 선뜩하리만치 또렷하게 성감이 피어올랐다. 코끝이 시큰해지며 안와가 천천히 젖어 든다. 그는 이제 자신이 무엇 때문에 우는지도 모를 만큼 혼란한 채로 리비아만을 생각했다. 그 풍만한 가슴과, 남자의 몸뚱이로 완전히 가려지던 날렵한 몸을, 그 너머로 산 사람의 것처럼 여기기 어려울 만큼 유혹적으로 너울거리던 손가락과 달뜬 목소리를.
움칠 몸이 떨렸다. 지금이라면 돌이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비이성적인 생각임을 알아차리기엔 그는 너무나도 절박했다. 달아오른 성욕에 휘감긴 짐승으로서의 한계인지도 모르지.
남자는 입술을 벌벌 떨며 등 뒤를 돌아보았다. 문밖으로 나오자마자 고꾸라진 탓에 그는 고작해야 문에서 몇 걸음도 채 멀어지지 못한 채였다. 여전히 갈퀴처럼 발을 휘감은 감각들이 달게 어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등이 떠밀리기라도 한 것처럼 바닥을 짚었다가, 여전히 떨리는 몸뚱이를 힘겹게 옮겨 문가로 다가갔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어떤 감정도 생각도 없이. 바닥을 기는 것마저 어쩐지 달게 느껴졌다. 혀뿌리 근처에서 어른거리는 기이한 열기.
그는 문가에 다가가 이마를 기댔다. 무기물의 서늘함이 피부에 닿자 도저히 열 수 없다는 무력감이 들었다.
아……!
리비아의 신음이 들렸다. 애당초 몇몇 문을 제외하고는 별저의 방음은 그리 좋지 않았다. 워낙 오래된 건물이기도 했거니와, 그래야만 하는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인 까닭이다. 요한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였다. 희미하게 질척거리는 소리가 난다. 목소리를 낮춰 대화하는지 기척만 느껴질 뿐 엿듣기가 어려웠다. 남자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싶은 마음으로 다가가다 결국 제 몸뚱이로 문을 슬그머니 열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녀는 벽을 짚은 채, 다리 사이에 그 남자를 두고 신음하고 있었다.
“앗, 흐윽…….”
남자는 애인이라기보다는 개에 가까운 꼬락서니로 열성적으로 그녀의 아랫도리를 빨아 댔다. 게걸스럽게 점막을 괴롭히는 소리가 났다. 그들은 쾌락에만 초점을 맞춘 듯 일말의 수치도 없었다. 그저 위아래로 걷히고 끌어 내려져 허리 언저리에만 옷을 걸친 리비아도, 튜닉이라고는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헝클어진 천을 두른 남자도 그저 자연스러운 일인 양 접붙어 먹고 있었다.
요한은 판도라의 기분을 십분 이해하고야 말았다. 소스라칠 정도로 당혹스럽고도 눅진한 절망감에 파묻히는 감각을 달리 무엇에 빗댈까.
가장 끔찍한 점은, 다시금 그 충격적인 광경을 목도하고도 여전히 자신이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요한은 저도 모르게 애달픈 허리를 들썩이며 그들의 정사에 몰입했다. 머리로는 그녀의 천박한 행실을 규탄해야 한다고, 당장에 저들을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마저도 흥분을 부추길 뿐이었다. 어찌해야 할는지 앎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좀도둑처럼 숨어 엿보고 있는 자신이 징그러울 정도로 한심한데도, 그 따끔거리는 모멸감에 어쩔 도리 없이 허리를 떨고야 마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심문 따윈 까맣게 잊은 듯했다, 물론 요한의 존재마저도.
리비아는 이따금 신음 속에 짧은 웃음을 섞어 터뜨렸다. 다리 사이에서 부대끼는 라시니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운 듯했다. 라시니는 교태를 부리며 그녀의 부드러운 허벅지 안쪽에 입을 맞추고, 강하게 빨아 올린 뒤 달아 빠진 목소리로 속살거렸다.
“너무하십니다, 부인. 관계에 집중해 주세요.”
“저런, 개가 투정도 부릴 줄을 아는군요.”
“본시 같은 짐승들을 합사시키는 것은 퍽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고들 하더군요.”
“이런……, 흣.”
남자는 분에 넘치는 쾌락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처럼 그녀의 허벅지며 오금 근처에 얼굴을 비비다가 질구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밀어 넣고 천천히 왕복하며 그녀의 애액을 부추겼다. 찔꺽거리는 소리가 스스럼없이 울리는데도 그녀는 하등 신경 쓰지 않고 제 가슴을 꾹 움켜쥐었다가 유두를 만지며 나른하게 한숨을 내쉰다.
“이제 정은 다 긁어낸 듯싶습니다만……, 아직 안 될까요?”
“글쎄……, 어떻게 할까요.”
“짓궂으신 분.”
손가락이 둘로 늘어났다. 남자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뒤에 버티고 서서 안쪽을 넓히듯 들쑤셔 대면서 리비아의 곧은 목과 어깨에 입술을 지분거렸다. 쾌락에 겨워 입질을 하는 탓에 그녀의 흰 피부 위로 울긋불긋한 자국들이 희미하게 남았다. 그러고는 흘긋 눈을 돌려 문틈 사이의 녹색 눈을 바라보며 과시하듯 입꼬리를 올렸다.
요한은 들켰다는 것보다도, 그의 방종한 태도에 분노했다. 머리끝까지 열이 치밀어 올랐으나 차마 박차고 들어갈 자신이 없어 이를 악물자 라시니는 남자와 눈을 맞춘 채 나긋나긋하게 손가락을 빼내고 체액에 젖은 손으로 그녀의 몸뚱이를 어루만졌다. 목과 어깨를 훑다 곡선을 그리며 그녀의 젖가슴을 문지르며 복부를 더듬고, 이윽고 훤히 벌어진 둔덕 사이의 점막을 만지며 자신의 성기 기둥을 그녀의 회음부에 바짝 끼우고 체중을 실어 꾹 눌렀다.
“구르디예프 경이 없어 그러십니까?”
“이런, 질투인가요?”
“그럼요. 절 이렇게 달아오르게 하시고는 어찌 관객이 없다 해서 이리도 매정하게 구시는지.”
“보이는 걸 즐기는 건 나보다도 당신이지 않나요, 리지?”
리비아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속삭이며 천천히 허리를 놀려 그의 성기를 괴롭혔다. 슬쩍 미끄러졌다가 부드러운 엉덩이에 짓눌리며 헛숨을 터뜨리는 남자를 여유롭게 가지고 놀던 그녀는 자못 선심 쓰는 태도로 그의 귀두를 천천히 받아 주었다.
“아, 부인…….”
애처로운 목소리로 그가 얼마나 떨고 있는지 느껴졌다. 리비아는 소리 죽여 웃으며 제 골반께에 머물러 있는 그의 손을 쥐고 가슴으로 이끌었다. 그 조용한 허락. 요한은 그녀가 순종하는 사내를 어떻게 다루고 잡아먹는지를 지켜보며 충격에 휩싸였다. 저토록 다정할 수 있다는 게 낯설다 못해 기이하게까지 여겨졌다.
어느새 벽색 눈도 요한에게서 멀어지고, 성기를 틈 하나 없이 접붙인 남녀는 요란하게 살 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응, 하아……, 리지…….”
“부인, 아, 부인…….”
아무리 멀끔한 척을 했어도 최음 효과에 절어 있는 남자로서는 잡아먹듯 쥐어짜는 그녀의 조임에 몸서리치며 거칠게 허리를 치다 커다란 젖을 움켜쥐고 목덜미와 등에 얼굴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애걸하는 태도로 리비아의 몸뚱이를 핥아 댔다. 커다란 사탕을 핥으면서도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처럼.
아무리 그가 리비아를 탐하더라도 결코 정사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저 속절없이 휘둘리며 그녀를 놓치지 않기 위해 힘쓸 뿐이었다.
라시니는 그녀의 몸에 바짝 제 몸을 갖다 붙인 채 흐느끼듯 신음했다. 이따금 리비아의 발뒤꿈치가 들릴 만큼 험하게 추삽질을 해 대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리비아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조금쯤 더 달아올라 그의 우둘투둘한 성기가 민감한 안쪽을 강하게 짓뭉개다 긁으며 빠져나가는 순간마다 눈을 깜빡이며 더운 숨을 터뜨렸다. 생리적인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가 마르길 반복했다. 늘 사람의 시선 속에 살아온 그녀는 문 너머에서 제게 꽂히는 시선을 또렷하게 인지했다. 보이는 것으로 흥분이 이는 것은 드물었지만 지금이라면 아주 기꺼웠다. 날 봐, 요한. 결코 당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요한 구르디예프는 들리지도 않은 그녀의 꾐에 홀린 듯 남자의 몸뚱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몸뚱이를 상상했다. 그날 보았던 속살을 스스로 되새기며 두 쌍의 다리에 눈을 맞추고 정사를 나누는 소음에 섞여 든 리비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찾아온 절정에 축축하게 젖어 버린 샅을 처리할 방도조차 모른 채, 요한은 그저 벌겋게 눈이 달아오르도록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남자는 창백하게 질린 낯으로 딱딱하고 오래된 나무 의자에 초조하게 걸터앉아 제 입을 손으로 가린 채 이따금 움찔거릴 뿐이었다. 식은땀이 축축하게 배어난 손바닥과 바싹바싹 말라 가는 입술이 상반된 불쾌함을 선사했다. 흐트러진 붉은 머리카락 사이 벌겋게 충혈된 눈이 흉측할 지경이었다.
요한 바이뎀 구르디예프는 마치 갓 박제된 가냘픈 나비라도 되는 양 애처로웠다.
마법사란 무릇 인내와 집착의 직업이었다. 언젠가 유의미한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약도 선례도 없는 일을 일부러 찾아내서라도 기한도 없이 들이파는 것을 일생의 숙업으로서 받아들여야 하고, 그사이 스스로에게든, 연구로든, 혹은 타인에게든 죽을 각오를 매시 매초 해야 하는, 피아노 줄 위를 기어 다니는 것과 같은 강파르고 척박한 삶.
그런 것을 거진 삼백 년 가까이 해 온 남자에게 있어 인내란 것이 얼마나 쉬웠겠는가? 타성적인 짜증이 조금쯤 찾아오더라도 그것은 날숨 한 번에 흩어질 작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평생을 천시하다 못해 경멸해 왔던 천박한 육욕에 져 이곳저곳에 몸과 정을 흘리고 다니던 남자에게 비웃음을 사고, 그들의 상스러운 유희에 장난감처럼 쓰이기나 하고 있질 않은가. 하물며 그저 농락당한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울진대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였지 않나. 자신이 이렇게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더라도 그 순간 속절없이 흥분했던 사실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환멸했다.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걷어찼다. 잠깐 크게 흔들린 상판 위에 놓여 있던 몇 장의 종이들이 흔들려 어지럽혀졌다. 조르주와 대면한 방계 혈족들이 손수 주었던 선물에 대한 경위나, 사임했던 두 명의 주치의들에 대한 정보들, 처방됐던 약재에 관한 정보가 수록돼 있었다. 콕 집어 누구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무수한 혈족들이 그에게 독을 먹여 온 정황이었다. 자신이 어려서부터 지켜봐 오고 믿었던 것들이 이런 기만적인 행위를 한 것을 차마 믿을 수 없었고,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것을 앞에 두고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혼란해하다니. 그로서는 무엇이라도 좋으니 원망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자괴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가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기괴한 혐오감만이 남았다.
― 구르디예프 경.
얕은 노크와 함께 들린 것은 귀에 익은 시종의 목소리였다. 요한은 반사적으로 날이 섰던 신경을 의식적으로 누그러뜨리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온 시종을 보며 까슬까슬한 입을 열었다.
“말해.”
“이른 시간 대단히 실례하게 되었습니다. 공작 부인께서 전언을 남기셨기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부인께서?”
“예, 아뢸까요.”
남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표했던 일은 끝마쳤어요. 당신이 부재중이기에 내 독단으로 처리하였음을 양해해 주길 바랍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석찬을 함께 들고 싶네요. 그때 당신의 고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되도록 빨리 인편으로 답을 전해 주었으면 해요, 마땅치 않다면 일정을 조율하지요.’라고…….”
“…….”
요한은 신경질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가 제 눈썹 뼈 언저리를 손아귀로 슬슬 문지르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석찬을 조금 늦게 들어도 괜찮으시다면 그리하겠다고 전해 다오.”
“예, 말씀 전하겠습니다. 이만 물러가 볼 테니 쉬십시오.”
“잠깐.”
“예?”
그는 입술을 질근거리며 바닥을 구둣발로 두드리다 짜증 섞인 목소리를 억눌러 물었다.
“일은 언제 끝났다 하시던?”
“전해 듣기로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셨습니다.”
“…….”
“구르디예프 경?”
“아니, 되었다. 가도록.”
“예, 쉬십시오.”
시종은 놀랍도록 깍듯하게 그에게 예를 지켜 인사하고는 조용히 공방을 빠져나갔다. 애당초 까탈스러운 요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쓴 전령이니 오죽하겠냐마는 그는 일련의 굴욕들에 저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었는지 그 건조하고 단정한 태도가 사뭇 낯설게 느껴졌다.
공작 부인의 냉랭하고 음습한 눈을 떠올린다. 자연스레 어젯밤 그 남첩을 다룰 때의 사뿐하고 미지근한 시선 또한 떠올랐다. 자신을 대할 때와 그놈을 대할 때의 태도 차이에는 너무나 깊은 골이 있었다. 단순히 사람을 달리 대할 뿐이라기에는 미슐레 호엔베르크를 대할 때도 그 알량한 자비가 어려 있었다.
기실 라시니 몬테필트로를 아직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상태인 까닭에 서열을 확고히 하기 위해 다소 험히 다루기는 했지만 그녀는 소녀 적부터 제 곁의 것들에게 무한히 자애로운 주인이었다. 가지지 않을 것은 차라리 숨통을 확실히 끊는 인간이었으므로 굳이 곁에 두고 사사롭게 괴롭히는 성격 나쁜 꼴 따윈 보인 적이 없었다.
섬뜩할 정도로 또렷하게 이 가는 소리가 울렸다.
그래, 나를 제외하고는.
요한은 자신이 느끼던 불쾌감을 드디어 깨달았다. 질투라고 명명하기에는 하찮지만 이름을 붙이지 않기에는 대단히 불쾌한 그 기분을 무어라 이르면 되겠는가. 그는 처음부터 쭉, 자신을 뱀처럼 눅눅하고 질척하게 바라봤던 그 소녀를 잊지 못했다. 부정적인 쪽으로.
일종의 공포일 것이다. 그날 밤, 리비아에게 겁탈당하던 순간부터 해가 뜰 때까지 눅진하게 안와에 고인 것처럼 맴돌던 귀기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자신을 사랑한다며 입을 놀리던 수많은 사람과도, 존경이나 시기를 떠들던 사람들과도 다른, 범주 바깥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감정.
그러나 그 천한 것에게도 자애가 주어짐에도 어째서 자신에게만큼은 그리도 냉엄하고 혹독하단 말인가? 길들인다는 명목으로 인덕을 거두고 그런 짓까지 하는 것을 보아 하면, 그놈은 적잖이 동기나 출신부터가 불온할 것이다. 그런데 왜?
불온하여도 그는 되고 자신은 불가한 그 기준을 이해하질 못하겠다. 그 불쾌한 균열이 끌처럼 뇌리를 쩍쩍 두들겨 가르는 것만 같다.
두서없이 다시금 그들이 접붙던 광경이 떠오른다. 하얀 피부가 서로 녹아내리듯 단단히 엉겨서 금수마냥 끙끙 울던 꼴이.
리비아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자신을 잡아먹던 그 순간처럼 무시무시한 낯짝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슐레 호엔베르크를 다리 사이에 욱여넣고 봉사를 받을 때도, 라시니 몬테필트로와 마주 본 채 의자에서 그를 품으며 자신을 눈과 입술로 희롱할 때도 그녀의 낯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저 숨 가쁜 듯 설핏 어린 붉은 기와 조금쯤 떨리는 목소리 정도. 그러나 뒤를 돌았던 그녀의 목소리는 그런 것과는 다른 흥분이 어려 있었다. 지당 표정도 달랐겠지.
남자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 살을 대하는 것 같지 않을 정도로 억척스러운 입질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언어로 뇌 내에서 정형화하는 것만으로도 굴욕감에 치가 떨리는 하나의 가설을 기어코 끄집어내고야 말았다.
내가 그놈들처럼 나긋나긋하게 굴지 않아서 그리 나를 경멸하는가.
깔보고, 조롱하고, 망가뜨리고, 짓눌러 뜯어먹은 까닭이 그것인가. 내가 양순하지 않아서?
입 밖에 뱉지도 누군가에게 전하지도 않은 생각이니 돌아올 답이 없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남자가 상처를 받기엔 충분한 일이었다. 그 역시 자신이 이리도 비이성적으로 휘둘리는 이유를 짚어 내지 못했다. 그저 열락에 달떠 헛소리를 지껄이고야 마는 것처럼 뒤엉킨 감정이 흥청거리는 것에 머리채를 잡혀 끌려다닐 뿐이다.
그러나 다정한 적 없던 것은 그녀였다. 단 한 순간도. 처음 스치듯 소개를 나누었던 그 순간부터 찰나조차 자신에게 다정하게 굴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부드럽게 응해 주었더라면 자신도 기세를 누그러뜨렸을지 모르는데도. 그것이 못내 억울했다. 저는 그리할 생각이 없는 주제에 자신의 뻣뻣함을 못마땅해하는 못돼 먹은 성질머리. 그것을 알면서도 휘둘리고 있는 자신이 한없이 싫어진다. 애당초 그는 그것들처럼 유순한 법도, 나긋나긋한 법도 배운 적이 없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포웰의 제일가는 방벽인 자신이 그런 식으로 번번이 굽실거렸다면 이 집안이 과연 남아났겠느냔 말이다. 그 아귀 떼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쳐 내고 뒤탈 없이 처리하는 데에 얼마나 정신적인 품이 드는지 그녀는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유용함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득을 보는 것이 리비아 모브레이뿐이니, 응당 그녀 역시 자신에게 가장 살갑게 굴어야 하지 않은가. 포상이 있다면 가장 먼저 제게 있어야 하고, 치하 역시 가장 진실하게 받을 자격이 그에게는 있었다.
뜻 모를 자괴감이 남자를 틀어쥐고 사정없이 쥐어짠다.
그는 그런데도 리비아가 자신을 다룰 때 묘하게 맥이 풀리는 듯한 안온함을 느꼈던 것도, 아무런 약이나 사전 조치 없이도 그렇게나 황홀경에 벌벌 떨었던 것도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감정을 정의하지 않으니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무엇인지 모르니 대응할 수 없다. 예민한 자존심을 조금만 접어 두었더라도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휘둘리지는 않을 테지만, 남자는 현실적인 선택보다도 침대 위에서 마주했던 끔찍하게 위압적인 녹색 눈만을 떠올렸다. 가히 악마적인 시선 속 또렷하던 집착. 자신을 꺾는 데에 대한 집착인지, 다른 것으로 기인한 집착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욕구는 명확한 뿌리가 있다. 다른 것들에게는 보인 적 없는 눈이니 그 집착만은 오롯이 제 것이리라. 그 냉혈한의 눈빛을 뒤흔들 만큼 강렬한 무언가가 제게만 허락된 것이라고 생각하니 속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래, 한철뿐인 그것들과 다르게 그녀가 모브레이인 이상 평생 요한 구르디예프를 짊어져야만 한다. 포웰과 구르디예프는 한 몸이나 다름없으니.
자연히 자신이 가장 유의미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그는 초조하게 바닥을 두드리던 발을 서서히 땅에 붙이고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훑어 내리는 통에 지문으로 더럽혀진 단안경을 인지할 정도의 여유를 되찾았다.
안경을 벗은 그가 식은땀으로 눅눅해진 머리칼 사이로 눈을 치떴다. 리비아 모브레이가 아무렇게나 가지고 놀 수 있는 그것들과 자신은 다르고, 저는 쉽사리 무릎 꿇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되새기면서.
* * *
요한은 마음을 다잡자마자 몰골부터 다듬기 시작했다. 식은땀과 체액으로 찝찝했던 몸뚱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히 씻고, 손발톱을 공들여 다듬었다. 아무리 그녀가 자신을 도발해도 아무렇지 않노라고 온몸으로 주장하고 싶은 양 평소와 똑같이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꾸몄다. 우선 몸뚱이라도 그리 다듬어지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 얄팍한 안정이 저열한 승리감 덕분인 것은 중요치 않았다. 조르주 모브레이가 죽은 뒤 공작저엔 저열하지 못한 것들이란 남아나질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느덧 해가 완연했다. 이른 점심시간쯤 되었을 테지. 요한은 손짓 한 번으로 젖었던 머리카락을 매끄럽게 말리고 익숙한 품새로 단정히 묶었다. 배가 주리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라도 욱여넣어야 책상물림을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으므로 적당한 요깃거리라도 내오라 이를 셈으로 설렁줄을 향해 발을 떼는 순간, 인상이 확 일그러지는 본능적인 거부감 덩어리가 느릿느릿 제 쪽으로 기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제게 올 일이 무엇인지는 가늠하지 못했으나 어차피 공적인 일일 테다. 남자는 방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서 문간을 노려보고 있었다.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가까워지다 뚝 멎는 그 순간. 대단히 절도 있는 노크 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 구르디예프 경, 호엔베르크입니다.
“……들지.”
단순한 전령에게 건네던 말투보다도 훨씬 냉랭하고 날 선 투로 짜증스레 허락한 그의 눈가가 일그러진다. 이 본능적인 거부감은 쌍방이 비슷한 무게로 느낄 텐데도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불쾌감 한 점 없이 무뚝뚝하고 단정한 꼴로 묵례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용건.”
“여쭐 것이 있어 찾아뵀습니다.”
“일정 문제인가? 부인께서 조율하고자 하시는 시간으로 하시라 전해.”
“부인의 일이 아닙니다. 지극히 사적 용무입니다.”
“‘사적’?”
“예.”
날이 이리도 화창한데도 여전히 문가에 발을 붙이고 선 탓에 온전히 그늘 속에 선 남자는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피로감이 만연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엄연히 따지자면 은인이나 상사의 중간 즈음에 선 상대이므로 그에게 이토록 시건방진 낯을 한 것은 처음이었으나 피차 그런 것을 들먹이기에는 감정이 좋질 못했다.
“우리가 사적으로 말을 섞을 사이나 되었나? 호엔베르크. 물러나지 그래. 내가 네 장단에 맞출 이유도 없을뿐더러 시간도 의지도 없다.”
“당신은.”
제 말을 재깍 듣지 않는 미슐레에게 울컥 짜증이 일어 눈썹을 홱 치켜세운 요한이 그 주둥이를 노려봄에도 불구하고 미슐레는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어째서 부인께 복종하지 않습니까?”
“하.”
한순간에 방 안의 분위기가 살벌하게 가라앉았다. 서로 상충하는 기운 탓에 그저 일반적인 사람처럼 눈을 부라리는 것이 고작이었으나 그 기세만 해도 사람 두엇은 쉬이 때려죽일 것만 같다.
“꼭, 내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군?”
요한은 마디마디 힘을 꾹꾹 주어 발음하며 이죽거렸다. 그러나 미슐레는 진심으로 아둔한 것을 보듯 희미하게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그의 꼴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남자의 목에 핏대가 섰다.
“나가라, 호엔베르크. 공작 부인의 침노 노릇이라도 잠깐 하더니 대가리가 성치 못하게 돌아 버렸군.”
“머리가 성치 못한 것은 당신입니다.”
남자가 걸음을 뗐다. 요한은 전에 없던 반응에 당혹했으나, 몸에 밴 대로 호신용 단검을 빼 들었다. 마석을 박아 넣은 진귀한 칼이 두렵지도 않은지 첫걸음과 같은 속도로 그에게 다가선 미슐레가 덧붙였다.
“온 저택이, 나아가 온 세상이 그분의 뜻대로입니다. 어째서 부질없는 반항을 합니까?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이 그분께 반발할수록 저택 내 기강이 해이해짐을 모른단 말입니까?”
“전과 같이 공적 영역에서는 충분히 부인의 뜻을 따르고 있다만? 내게 너처럼 그녀의 사타구니에 고개를 처박고 구멍이나 빨며 아양을 떨란 말인가?”
예리한 칼끝이 정확히 미슐레의 목젖 앞에 와 닿았다. 요한은 곧게 뻗은 팔에 잔뜩 힘을 준 듯 손마디 하나까지 희게 도드라져 얕게 떨리고 있었다. 모욕감을 참는 것이리라.
미슐레는 한순간에 잔뜩 피로해졌다. 리비아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수용할 것이고, 물론 지금도 그러고는 있지만 납득과 이해는 전혀 별개의 영역이었다. 그에게는 저런 식으로 악을 쓰는 꼴을 어째서 귀엽게 보시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욕망과 바람을 뜻대로 이루어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면 굳이 찾아오지도 않았으리라.
남자는 몸을 반걸음쯤 뒤로 물린 다음, 상대가 반응하기도 전에 즉시 자세를 낮추고 한 손으로 요한의 칼 쥔 손목 안쪽을 움켜쥐고 바깥쪽으로 돌려 비틀며 오른손을 뻗어 그의 목을 틀어쥐었다.
“커흑…….”
제아무리 그가 대단한 마법사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늘상 예의라도 차려 대하던 환경에서 자란 한계가 있었다. 상식 밖의, 남자의 말을 빌리자면 ‘경우 없는’ 일에는 도통 반응이 기민하지 못한 것이다.
번견은 대단히 피로한 낯으로 그를 쉽사리 제압한 채 천천히 아귀힘을 보탰다.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통증 탓에 힘이 빠진 손에서 칼이 떨어져 바닥을 날카롭게 두드리며 나동그라졌다. 미슐레는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느릿느릿 속삭였다.
“당신의 그 비싼 배를 깔게 만들기는 쉽습니다. 그분께서도 익히 알고 계실 것인데 어찌 당신이 여즉 목에 힘을 줄 수 있는지 모릅니까? 부인의 자비이지 않습니까.”
“놔, 라……! 망할, 개…….”
요한이 그의 발목을 걷어찼으나 미슐레는 유감스럽게도 정확히 보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발에 실린 힘 정도로 틈을 보일 만큼 허술한 사내가 아니었다. 오히려 발길질하느라 흐트러진 사이 체중을 실어 그를 뒤로 몰아붙여 번잡스러운 책상에 반쯤 처박았다.
“욱…….”
모자란 숨과 고통 속에 맥이 풀린 요한의 몸뚱이가 뒤로 헤딱 넘어가며 반사적으로 손을 짚어 본의 아니게 책상에 반쯤 걸터앉은 꼴이 되었다. 온갖 자료와 서적이, 특히 힘들게 캐 온 증좌들이 그의 몸에 부딪혀 구겨지고 밀려났으나 그것에 신경 쓸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분과의 밤으로도 부족합니까? 그저 손길만으로도 응당 고개를 조아리고 싶어지지 않단 말입니까? 어째서?”
미슐레는 물음을 뱉으며 스스로 설득되고 있기라도 한지 점점 격앙된 투로 뇌까렸다. 거의 자문에 가까운, 상대의 답 따위는 기다리지도 않는 일방적인 물음이 끝나자마자 그는 당장에 요한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밀어 넣고 목줄기를 놓아주었다.
“쿨럭, 컥, 케헥……!”
“그 살결을 목전에 두고도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미친, 컥, 미친놈이, 손 안 떼!”
두툼하고 단단한 손이 라시니와 부인의 관계를 관음한 것만으로 흘린 탁액으로 젖었던 사타구니와 허벅다리 안쪽을 가늠하듯 훑었다. 사심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그저 하자나 결격 따위를 확인하고자 하는 접촉이었다. 요한은 그 접촉에 대한 불쾌감 이전에, 치부를 들킨 듯한, 어제의 제 추태를 보고 이러는가 싶은 지레짐작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기침이 가라앉기도 전에 악을 썼다. 알량한 승리감 따윈 그의 별다른 의도 없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조차 균열을 보였다. 자신이 여즉 번듯한 것이 리비아 모브레이의 온정이라는 말에 분노가 들끓었다. 동시에 끔찍한 무력감과 모욕감이 욕지기처럼 거부감 가득한 형태로 치밀어 오른다.
따지자면 리비아에게도 족쇄로 억압을 강제당한 적이 있지만 그때엔 느끼지 못한 생리적인 거부감 탓에 소름이 싸하게 등골을 달렸다. 그들은 상대를 향한 완전한 경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물음에 답해 주십시오, 구르디예프 경.”
“답할 의무도 없거니와, 이딴 짓을 하고도 그런 소릴 지껄여!”
요한은 칼을 쥐었던 손으로 미슐레의 뺨을 후려갈겼다. 단순히 쳤다고 말하기에는 무시무시한 타격음이었다.
미슐레는 설핏 돌아간 고개를 바로 고치지 않고 소리 없이 한숨을 쉬며 요한의 몸뚱이를 막고 선 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꼴이 마치 어쩔 도리 없을 만큼 심술궂은 일곱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시달리고 있는 어른의 모양새라 남자는 목에 핏대를 세운 채 고래고래 역정을 냈다.
“부인께서 날 깔아 보니 네놈도 그럴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줄 아나 보지! 내 작정하고 네놈을 치워 없애려 하면 못할 것 없다는 걸 그 둔한 머리통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거냐? 아니면 공작 부인께서 네놈과 몸을 좀 섞었기로서니 네놈을 대단히 애틋하게 여겨 달리 다뤄 주실 것 같던? 그 여자가?”
“적어도 저를 필요로 하심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이토록 건방진 한은.
굳이 발음하지 않아도 또렷하게 들러붙는 뒷말이 있다. 단단히 빈정이 상한 요한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 여잔 귀족이야! 대귀족 포웰 공작 부인이란 말이다! 네놈의 자질이 쓸 만하다고 해서 두 번째, 세 번째 미슐레 호엔베르크를 준비하지 못할 성싶던?”
미슐레의 눈에 드디어 이채가 돌았다. 광기에 가까운 살심이었다.
요한은 상대방에게 자신과 똑같은 상처를 주었다는 것에 전율하며 들끓는 머리에서 튀어나온 갖가지 막말을 쏟아부으며 그의 뺨을 갈겼던 손으로 머리채를 움켜쥐고 제게 바짝 당겨 으르렁거렸다.
“네놈을 만든 게 누군지 잊지 마라, 미슐레 호엔베르크. 넌 충분히 대체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니까. 혹여 어려울 것이라고 자위하진 말도록.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지? 네놈과 달리 난 앞으로도 포웰에서 살아갈 몸이 아니냐? 없는 형질이라도 내 작정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 두려워하기나 하는 게 어때. 웃전에게 함부로 밉보이고도 모가지에 뻣뻣하게 힘을 주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망종 새끼!”
이마를 맞댄 채 서로를 노려보는 두 남자의 눈은 가히 광기에 젖어 있었다.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주제에 욕망에 휩싸인 채로도 난 여전히 멀쩡하다고, 이전과 다를 바 없다고 도피하기 바쁜 주제에 자존심은 등등한 동족이 맞붙었으니 지당한 일이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하악에 힘을 주며 그의 허벅지 위에 올려 두었던 제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구태여 막지 않았다. 요한 역시 상당한 통증이 따를 텐데도 굳이 신음을 내지 않았다. 그저 이를 악문 채 시건방진 조합품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왜 부인의 발치에 배를 깔지 않느냐고 물었나? 내 답해 주지. 나는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네놈이나, 그 남창 새끼완 다르게 변변찮은 몸뚱이로 하룻밤의 열락 따위를 팔아 환심을 사지 않아도, 그녀의 심기를 거슬러도, 설령 내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도! 포웰의 제일가는 상징과 다름없는 날 저버릴 순 없을 테니까 말이야. 알겠나? 다시 한번 말해 주지. 그 여잔 귀족이야. 태생부터 지금까지 쭈욱 남의 머리통 위에 올라앉아 한적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칼날 위에서도 아름답게 춤출 수 있게 태어나 제 역할을 모자람 없이 수행하며 살아왔다. 이제 와서 남들에게 업신여겨지는 삶을 견딜 수 있을 것 같나? 한번 맛본 대귀족 가문 안주인으로서의 권위와 힘을 버릴 수 있을까?”
“그분께서는…….”
“그래, 네놈 따위가 줄 수 없는 그 압도적으로 평탄한 권력을 위해서라면 개 따윈 몇 마리를 도살하든 눈 하나 깜짝 않을 분이시지!”
요한의 허벅지 위에 놓았던 손으로 책상 가장자리를 짚으며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선 미슐레가 음울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고 해서 남의 입으로 듣는 날것 그대로의 사실이 아프지 않을 리는 없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에게 있어서 리비아는 단순히 경애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성립시키고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어떤 것이기도 했다. 주인보다도 한층 더 존엄한 위치.
허기진 듯 밑바닥이 꺼진 푸른 눈을 마주 보자 저열한 승리감이 되살아난다. 요한은 한층 더 가까워진 남자를 여전히 노려보면서도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알았으면 그만 꺼져라, 오전부터 번잡스레 굴지 말고.”
그러나 미슐레는 물러나지 않았다. 열패감은 단순히 그에게 원래 목적을 상기시켜 주었을 뿐이었다. 남자는 건조한 손으로 요한의 아랫배 언저리를 꾹 짓눌렀다.
“상기하십시오, 구르디예프 경. 당신은 결국…….”
문득, 조금쯤 우스워졌다. 그의 말이 옳다. 이런 식으로 명령받지도 않은 과잉 충성 따위를 잘 해낼 수 있는 능란한 재주 따위는 제게 없고, 이것이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할 만한 행동인지도 따지기 어려웠다. 그저 그것이 그를 두렵게 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그분의 시선이 제게서 걷힐까 봐.
“부인께 굴종하게 되실 겁니다.”
그는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제 머리채를 여즉 쥔 요한의 손을 어렵잖게 떨쳐 낸 뒤 공방 밖으로 사라졌다. 남자는 닫힌 방문을 바라보다 뒤늦게 이를 갈았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해서 남의 입을 빌어 날것 그대로의 사실을 지적당하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 만무함은 그에게도 유효한 말이었으므로.
* * *
고작해야 한나절은 빠르게 흘러갔다. 요한은 내키지 않는 얼굴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법복으로 몸을 둘둘 말고 별저의 식당으로 향했다. 이따금 시녀들이 제 쪽을 흘긋거리기는 했지만 안내를 맡은 이 외엔 별달리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저 처음 들이닥쳤을 때처럼 무뢰한을 보는 눈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그의 수발을 염두에 둔 듯한 미적지근함이 있었다. 마치 그녀의 애인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로서는 별저에 좋은 감정이 없었으므로 그다지 기꺼운 것 없는 만찬이었으나 별다른 장소에 대한 귀띔 없이 전령을 물렸으니 수용해야만 했다. 시녀를 물리고 손수 거대한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서자 상석에 앉은 리비아가 여상스럽게 미소 지으며 알은체를 했다.
“이리 와 앉아요, 요한.”
권해도 꼭 바로 제 옆자릴 권하는군.
속으로 마땅찮아 하면서도 요한은 순순히 그녀가 지시한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괜히 까마득하게 먼 자리에 앉아 목청을 돋우고 싶지도 않았고, 거절하면 괜한 심술이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자리에 앉자 세팅은 한순간이었다. 맑게 끓인 수프를 위시하여 갖가지 만찬이 차려졌으나 속이 편칠 않으니 입맛이 돌 리 만무했다. 애당초 식도락에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입이 워낙 짧은 그로서는 이리 풍성한 식탁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 먹기 편한 샌드위치나 카나페 같은 것들이 좋았다.
그러나 리비아는 달리 신경 쓰는 기색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남자는 입을 다문 그 순간만큼은 남들이 칭송하는 대로 교본다운 우아하고 아름다운 행색을 한 그녀를 설핏 가증스러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프로 입술을 축이는 시늉 정도는 하면서 눈가를 찌푸렸다.
“왜 그러나요, 요한? 영 식사를 들지 못하는 눈치인데.”
리비아는 디저트가 차려질 무렵에야 거의 줄지도 않은 채 엉망진창으로 다져지기만 한 농어 요리가 담긴 요한의 접시를 흘긋 일별하며 물었다.
“제 식사보다는 일에 관해 논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경 쓰이는 모양이군요.”
“애당초 부인과 화기애애하게 음식을 즐길 만한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당신은 사람을 상대로 식사를 하면서 즐거워하지 않으실 텐데요?”
그녀가 상냥한 어조로 그를 비꼬며 시녀들에게 눈짓하자 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일사불란하게 사라졌다. 리비아는 차분하게 묻은 것도 없는 입가를 냅킨으로 톡톡 두드려 정리하며 말문을 열었다.
“당신도 들었겠지만 답 자체는 금방 뱉더군요. 약에 절어 방치됐으니 버틸 여력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이후로 두 번 교접하고, 둑이 터진 그의 성기를 움킨 채 넣지도 흔들지도 가지도 못하게 하니 금방 애걸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그다지 참을성이나 자존심이 있는 부류의 인간은 아니라서, 젖을 빨며 애달플 정도로만 아랫도리를 만져 주니 금방 초조해하더군요. 제정신이라곤 전혀 없는 것 같기에 이것저것 들쑤셨지만 놀랍도록 거짓을 뱉는 전조가 없지 뭔가요.”
“……그렇습니까.”
“그는 지금의 생활만 쭉 영위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맹세했어요. 돈도 지위도 얻었으니 평탄함만 보장받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하면서.”
“진심이겠지요, 변절한 그자가 우리의 손아귀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지는 황실로 이어지는 인선뿐일 텐데, 황실은 그의 후일을 굳이 보장해 줄 이유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휘하의 귀족들도 아무렇게나 베어 죽이는 그 광왕이 무엇이 아쉬워 배경도 입지도 없는 배신자를 먹여 키우겠습니까. 다행히도 그 정도 머리를 굴릴 지능은 있는 모양입니다.”
요한은 그녀의 쓸데없이 나직하고 농밀한 목소리로 사족이 가득한 간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달아오른 제 아랫도리를 원망하며 애써 신경을 쓰지 않고 이성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리비아는 먹지도 않을 셔벗을 스푼으로 휘저으며 구태여 꺼내지 않아도 될 말들을 연이어 속살댔다. 라시니가 어찌 울었는지, 애원할 때는 어찌하는지, 몸뚱이의 어떤 부분이 특별히 예쁜지. 순전히 그날 밤을 어찌 보냈는지에 대한 것 외에는 그 어떤 정보값도 없는.
남자는 그런 이야기를 자신이 반사적으로 귀담아들으며 몸뚱이를 긴장시켰다는 것에 못내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자꾸만 귀를 기울였다. 어깨도 다리도 표정 하나까지도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그런데도 리비아의 입이 멈추질 않자, 그는 불만을 꾹 억누른 목소리로 뇌까렸다.
“필요한 이야기입니까?”
“음? 물론이죠, 당신이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럴 리 있습니까, 쓸데없는 판단과 사족입니다.”
“사족은……, 이런 걸 논하는 말이 아니던가요?”
리비아의 구두코가 바짝 긴장한 요한의 안쪽 종아리를 툭 건드렸다. 남자는 움칠 몸을 떨며 애써 다듬은 표정을 반쯤 허문 채 짜증스레 그녀를 노려보았다.
“무슨 소릴 하고 싶으신 겁니까? 제 의견을 구하고 싶으시다던 분께서.”
“귀족의 말본새를 원문 그대로 받아들일 만큼 순진한 사람이었나요? 나쁘지는 않지만 내가 정말 일만 할 셈이었다면 당신을 왜 굳이 식사 자리로 끌어냈겠어요?”
쉽게 말해 요한 구르디예프의 용도는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 둘 다란 이야기였다. 마치 언제고 그녀를 위해 안배된 도구인 것처럼.
남자의 얼굴이 치욕으로 벌겋게 물들고, 금방에라도 일어날 듯 팔걸이를 움켜쥐었으나 의자가 끌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녀의 구둣발이 점차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옷 위로 발끝을, 그것도 구두를 놀릴 뿐인데도 등허리가 오싹오싹 떨렸다. 입술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간다. 여자는 꾹 깨물어 벌건 색이 도드라지는 요한의 입술을 핥듯이 바라보며 오금 근처까지 오른발 끝에 힘을 실어 남자의 다리를 열었다. 긴장한 것과 달리 힘을 주어 버틸 생각은 못 했는지 순순히 다리가 벌어졌다. 그녀는 그 안쪽으로 파고드는 내밀한 속살 사이의 사정을 모조리 알고 있다는 것처럼 은근한 눈으로 그를 훑었다.
“싫은가요? 라시니와의 정사를 그렇게 치열하게 시기하기에 나는 영락없이 당신이 날 원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기라니, 대단히 허튼소리를 하십니다.”
요한의 턱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울대 한번 오르내리지 못한 채 바싹 굳어 애써 입을 연 그는 얕게 시선을 흘려 그녀의 의자 등받이에 눈을 두었다.
“그 충격적인 꼴을 보고 놀랐을 뿐입니다.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랬을 텐데요.”
아랫도리가 꽉 조여 아렸다. 당장에라도 바지춤을 풀어 내리지 않으면 어제처럼 손도 대지 않고 파정할지도 모른다는 상스러운 불안감이 엄습했다. 요한은 제 처지와 감각이 원망스러워 입술을 고쳐 물며 조금쯤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 눈이 들키지 않길 기도했다. 리비아 모브레이의 시선이 뺨 위를 기어 다님을 알면서도 그저 무력하게.
“글쎄요, 그건 당신 생각이죠.”
“……그런 꼴을 다른 이에게도 보여 주곤 하십니까?”
“이따금요. 미셸은 보자마자 당장에 꼬리를 치던데.”
여자는 속을 알 수 없는 모호하고도 여상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요한을 가만 바라보았다. 딱딱한 구둣발이 멀어지고, 태연하게 자세를 가다듬은 그녀는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요한은 리비아를 곁눈질하다 이를 악물었다. 늘, 늘, 늘! 언제나 휘둘리고 망가지는 것은 저뿐이다. 저 여자는 그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제 길만 생각할 뿐 자신이 무엇을 스치고 지나갔는지 따위는 고려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저 교만함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왜 입을 다물죠? 마저 이야기해도 좋아요.”
“무슨 말을 하란 말씀이십니까?”
“그건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요? 대단히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보이던데.”
“없…….”
조금쯤 목이 멨다.
요한은 그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 그저 저속한 여자의 심술 하나에 이렇게 울음이 비어지는 제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없습니다. 부르셨으니 왔을 뿐이지요, 용건이 끝나셨다면 먼저 일어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인.”
그는 멍울진 울분을 꾸역꾸역 삼키며 눈에 힘을 주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물론 요한 스스로도 예상했듯 그녀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다만 권태롭게 가라앉은 얼굴로 스푼을 내려놓았을 뿐이었다.
“그래요. 정 원한다면 가 봐도 좋아요. 다만 이 시간부로 내가 당신을 사적으로 부를 일은 없다는 것도 알아 두면 좋겠군요.”
“…….”
“왜 그러죠? 돌아가고 싶은 게 아니었나요?”
리비아 모브레이는 빙그레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손을 깍지 껴 늘어뜨렸다. 요한은 다시 한번 분을 삼켰다.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차마 그녀의 눈을 마주 볼 용기도 없었다. 그것들과 같은 취급을 하는 것은 못내 역겨워 짜증이 나면서도 이후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어떤 끔찍한 선고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한번 뱉은 말을 무를 위인이 아님을 안다. 정말 이후로는 아무런 추파도 던지지 않겠지. 다만 며칠 새 그가 끌려다녔듯, 그 자리는 다른 놈이 메울 것이다. 이전의 무수한 애인들이 그랬듯. 어쩌면 이번엔 그 라시니라는 놈이 차지할지도 모르지. 그는 요한 구르디예프가 할 수 없는 일에 능숙한 사람이었으니까.
그 꼴만은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얕잡듯 깔보던 그 벽안을 떠올린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욕구였지만 모른 체할 수 없을 만큼 열렬했다. 남자는 그것이 자존심일 것이라고, 그런 것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마치 남들 눈에는 자신이 꼬리를 말고 도망간 것처럼 여겨질 것으로 생각했다.
남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던 리비아는 그저 즐거웠다. 요한이 어지간한 숙맥인 건 이미 충분히 알았지만 제 감정조차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그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운 몰골이라는 것도.
사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그에게 말문을 틔워 주는 것조차 생각이 없었다. 그저 언제쯤 뭉개져 빌빌거릴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라시니와의 정사에서 요한이 그토록 귀엽게 굴지 않았더라면 진실로 그리했으리라.
그러나 요한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상당히 회가 동하고야 말았다. 기력이 쇠하기라도 했다면 그에게 조금이나마 더 시간을 주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리비아 모브레이는 대단히 정력적인 인간이었다.
“요한.”
“…….”
“말하지 않으면 내가 알 방법은 없어요.”
“……왜…….”
남자는 기어코 억눌렀던 원망을 터뜨렸다.
“왜 하필 납니까?”
말미에 울음기가 묻어났다. 불긋해진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광경은 다시 보아도 아름다웠다. 리비아는 그 가냘프고 히스테릭한 얼굴 때문이라고 답해 주려다가 그의 말을 잠자코 들어 주었다.
“충분히 많지 않습니까? 부인,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남자는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당장만 해도 호엔베르크와 그놈이 있고, 고용인들도 당신이 원한다면 기꺼이 옷을 벗겠지요. 리비아 모브레이가 원한다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취할 수 있을 텐데…….”
“당신은 아니니까요.”
그녀는 등받이에 기댔던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며 요한과 눈을 다정스레 맞추고 속살거렸다.
“요한 구르디예프는 그런 방식으론 얻을 수 없으니까.”
“…….”
남자는 말문이 막힌 채 더듬더듬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파르르 떨며 설핏 몸을 뒤로 물렸다. 천천히 열기가 낯짝에 번지는 것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녀의 눈에 사로잡혔다. 음습한 감정은 여전히 동공 삼아 깃들어 있었으나 그 눈매를 휘며 다정스레 굴자 그것만으로 공포가 달콤함으로 뒤바뀌었다. 요한은 하얗게 표백된 머리로 얼어붙어 리비아 모브레이가 자신을 현혹하는 것에 넋을 뺐다.
“요한, 난 지금 당신을 가지고 싶은 거예요. 그저 아무 좆이나 밟고 싶은 거였다면 당신 말마따나 아무래도 좋지만……, 나 외에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을 요한 구르디예프를 가지고 싶은 거랍니다.”
그의 표정이 기어코 일그러지고 얄팍한 눈물 한 방울이 굴러떨어졌다. 그는 한없이 괴로웠다. 뇌가 사근사근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다른 것들이 그녀의 손짓 한 번에 미쳐서 펄쩍거릴 때마다 그것을 한심한 체했던 그조차도 리비아 모브레이가 유혹하자 속절없이 휘둘렸다. 그녀는 가히 악마적인 주인이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말했듯,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제 뱃가죽 따윈 바닥에 엎어뜨릴 수 있는 인간이다.
리비아는 공포와, 설렘과, 저속한 희열 따위로 아무렇게나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핥듯이 바라보며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에, 정확히는 식탁에 걸터앉아 남자의 뺨을 그러쥔 채 얼굴을 가까이 했다. 숨과 숨이 섞이고, 어쩌면 속눈썹이 맞부딪힐 수도 있을 만큼 가까이에서 자상하게 눈물 냄새가 나는 그의 눈두덩이에 입을 맞췄다.
“그러니 요한, 싫지 않다면 내게 안겨 줘요.”
“…….”
“으응?”
이 순간만큼은 그녀가 저질렀던 일들도, 주었던 모멸감들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저 이토록 달콤하고 나긋나긋한 귀부인의 품에 안길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래도.
요한은 눈을 질끈 감으며 더운 숨을 터뜨리고는 천천히 거꾸러지듯 그녀의 가슴팍에 뺨을 기댔다.
“다른 놈들을 들이지 마십시오.”
“부끄러운가요?”
“싫은 겁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요, 나의 요한.”
“이대로 당신을 뿌리친다면, 부인.”
그의 눈물이 리비아의 앞섶을 적셨다. 더운 숨과 함께 느릿느릿, 차마 예상되는 끔찍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은 것처럼 망설인 물음을 덧붙였다.
“두 번 다시 나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으시겠지요.”
리비아는 그의 머리를 상냥하게 제 품에 끌어안으며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고 대꾸했다.
“그럼요.”
그가 가장 원하지 않았을 대답을 내뱉으면서.
“하…….”
요한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한숨처럼 터져 나온 소리를 막지 않고 그저 한참을 웃다가, 떨리는 손으로 리비아의 등허리를 짚었다. 안았다기에는 미묘한 접촉.
“그렇겠죠. 망할…….”
“싫다면 강제하지 않을 거예요.”
요한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며 요란하게 바닥 끌리는 소리를 내더니 그녀의 허리에 남은 한쪽 팔도 덧대 안았다.
“부인의 방에서 하고 싶습니다.”
입매가 일그러졌다.
“다른 놈들이 그랬듯이.”
리비아는 그의 머리를 놓아주며 마치 춤을 추듯 그의 팔에 몸을 기대 고개를 들었다. 요한은 여전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지나치게 화가 나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것처럼, 슬퍼 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분루라기에는 지나치게 무지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엉켰겠지만.
“당신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군요, 요한.”
여자는 그것이 못내 즐거웠다.
“내 침대는 당신 외엔 뒹군 수컷이 없답니다.”
경악으로 홉뜨는 맑은 녹색 눈을 한 번쯤 핥아 보아도 좋겠지.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척 미소 지으며 그는 결코 거짓인 줄 모를 말들을 무책임하게 그에게 속삭였다.
“그러니 방으로 갈까요. 나의 요한.”
* * *
방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걸음을 뗄 필요조차 없었다. 상대가 요한 구르디예프인 만큼 그들은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공간을 접어 건너와 숨소리 하나 없이 오롯이 단둘뿐인 방에 놓였다.
요한은 자신을 등진 채 창 쪽을 바라보고 선 리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묘한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자리를 박차기에는 그보다 더한 승리감과 설렘이 엉켜 발목을 붙들었다. 여자는 태연하게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홀로 치장을 내리면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한 가지 당신에게 귀띔해 둘 말이 있어요.”
“……이제 와서 뭡니까.”
“나는 성격이 나빠서, 상대방을 망가뜨리지 않고는 즐길 수 없는 인간이랍니다. 반대로 말하면 당신이 무얼 하건, 설령 날 겁탈하더라도 그것이 모두 내 손아귀에 놓인 일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당신을 받아들일 거예요.”
“마치 지금은 제가 부인께 놀아나지 않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후후, 당신이 내 뜻에 따라 움직였으니 살을 섞고 싶어진 거란 말을 하는 거예요.”
그녀의 발치에 툭 소리와 함께 드레스가 떨어져 내렸다. 달빛 아래 흰 속치마와 속옷밖에 걸치지 않은 리비아가 머리카락을 틀어 올렸던 핀을 뽑자 그 위로 긴 머리칼이 굽이치며 늘어져 숄처럼 몸을 감쌌다.
“당신은 그저 내 뜻에 따르면 돼요. 내게 놀아남을 불쾌하게 여겨도 좋아요. 다만 박차고 나가지만 말아요. 그러면 난 얼마든지 당신을 예뻐할 테니까. 여태껏 당신이 그래 왔듯 ‘우리’는 영원히 함께일 거예요.”
다만 그것이 리비아와 요한은 아닐 것이다. 포웰과 구르디예프일 뿐.
고개를 뒤로 돌려 요한이 여전히 제자리에 붙박여 있음을 확인한 리비아가 뒷말을 삼킨 채 눈을 휘어 웃었다.
“이리 와요, 요한.”
“……영원.”
그는 처음 듣는 단어를 발음하듯 묘하게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뇌까리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비아는 그를 바라보면서 느릿하게 팔을 늘어뜨렸다. 마치 그가 자신을 끌어안길 바라는 것처럼.
요한은 그녀가 말했던 뜻에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말로 뱉지는 않지만 충분히 상상할 여지를 두는 그 행동에 장단을 맞추는 것, 리비아 본인이 말했듯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팔을 둘러 가냘픈 허리를 끌어안았다. 적당히 탄력적이지만 남자들에 비하면 한없이 부드럽고 연약한 살집이 그의 품 안에 있었다. 달콤하고 우아한 향수 향기가 품속에 번지며 그 물결치는 머리칼 끄트머리가 제 손등을 간지럽히는 순간, 모든 반항심이 녹아내렸다. 여전히 머리가 온갖 생각을 하고 있어도 한없이 유순하게 늘어진 몸뚱이를 주체할 수는 없었다. 그녀 역시 이 모든 것을 예상했으리라. 저와 단둘이 남으면 감히 그가 어떤 생각을 하건 말건 반드시 무용해질 테니 아무래도 좋으리라고.
요한의 굳은 손을 겹쳐 잡은 가느다란 손이 살짝 서늘했다. 그녀는 남자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댄 채 나긋나긋하게 속삭였다. 연인 간의 밀어처럼 대단히 은밀하게 번지는 숨소리에 귀를 기울인 뒤에야 의미를 인지했다.
“제대로 팔을 감지 않으면 바짝 다가선 것뿐이지 않나요.”
남자의 두 손이 그녀의 납작한 배에 얹혔다가, 각각 위아래로 천천히 미끄러졌다. 요한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창틀에 눈을 두고 있었다. 손끝으로 그녀의 몸뚱이에 아로새겨진 얕은 굴곡을 하나하나 헤아릴 수 있을 지경이었다.
“읏…….”
그리고 그 손이 가슴에, 둔덕에 닿자 신음을 흘린 것은 리비아가 아니라 그였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 둥그렇고 말랑한 살집이 손가락 가장자리에 닿은 것만으로도 민망했다. 벌겋게 물든 얼굴을 푹 숙이자 리비아가 고개를 뒤로 젖혀 그의 턱선에 입을 맞췄다.
“당신은 수줍어해도 괜찮아요.”
이번엔 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어도, 울음을 터뜨려도, 지시를 따르지 못해도.”
천천히 입술이 옮겨 와 그의 입가에서 멈췄다. 약간의 틈이 있었다. 그녀는 마치 요한을 이끌듯 여지를 남긴 채 말을 이었다.
“그저 내 품에서 흐드러지기만 하면, 기꺼이 허락하죠.”
한없이 자비로운 유혹이었다.
요한은 손을 벌벌 떨다가, 조심스레 그녀의 가슴을 받치듯 흉곽 언저리에 팔을 둘러 꼭 끌어안으며 서투르게 입술을 내렸다. 살짝 가장자리로 빗겨났다가, 더듬으며 천천히 입술을 겹쳤다. 그저 그뿐인 접촉에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린 리비아가 그의 굳은 입술을 핥으며 뒤돌아 요한의 허리에 단단히 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 그에 비해 훨씬 가냘픈 팔이었지만 대단한 힘이었다.
그녀는 요한의 아랫입술을 깨물어 당겼다가 제 입술을 벌어진 틈 사이에 문질러 비집으면서 그의 엉덩이를 꾹 움켜쥐었다. 당장 희롱당한 청년답게 허리를 바짝 긴장시키고 몸을 튕긴 요한이 울음 섞인 숨을 터뜨렸다.
“읍…….”
자상한 키스였다. 그를 어르고 달래듯 부드럽고 나긋한. 요한은 마치 초야의 신부라도 된 양 그녀에게 차근차근 입 안을 범해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리비아가 돌아서며 허공에 어색하게 굳은 그의 손은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끄트머리가 곱아들 뿐이었으며, 남자의 눈매는 그녀의 손아귀가 제 작은 엉덩이를 압박하듯 꾹꾹 움켜쥐고 주무를 때마다 형편없이 흔들렸다. 그의 낯짝에 남은 것이라곤 수치와 희미한 흥분과 뾰족한 자존심뿐이었다. 리비아는 나지막한 웃음을 흘리며 예고 없이 그의 혀를 강하게 빨아 당기며 질척한 소리가 그의 귀를 메우도록 상스럽게 키스했다.
“으, 흐…….”
응, 으, 하고 입 안에서 신음이 흩어진다. 요한은 그녀에게 고개를 푹 숙인 채 힘 풀린 혀를 빨리고, 씹히고, 얽혔다. 팽팽하게 부푼 샅이 아린 것은 이제 달게까지 느껴졌다. 익숙한 그녀의 시선이 제 낯을 훑는 것을 느끼며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눈을 질끈 감은 채 흠칫대는 것뿐이었다. 잠깐이라도 눈을 뜨면 곧장 저를 집어삼킬 듯한 그 눈과 맞닥뜨릴 것만 같아서.
“요한.”
“…….”
“요한?”
“왜…… 자꾸, 부르십니까.”
꽤나 언짢은 듯한 대답이었지만 습기를 머금은 채 파르라니 떨리는 탓에 그저 앙탈에 불과한 말본새가 우스웠다. 리비아는 헐벗은 자신보다 더욱 수치스러워하는 요한의 얼굴을 핥듯이 바라보며 스커트를 들치는 무뢰한처럼 차근차근 그의 옷자락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겹겹이 두른 옷가지가 헤쳐지며 사부작거릴 때마다 흠칫거리는 꼴에 욕정이 인다.
“날 봐야죠. 원하던 것 아니었나요?”
“알, 알아서 하겠습니다.”
“쳐다보지도 못하면서.”
리비아는 짧게 웃음을 흘리며 땀이 배어나 습하게 젖은 그의 등줄기를 천천히 손끝으로 어루만졌다.
“흣…….”
자잘한 근육들 사이사이로 팬 선을 진득하게 매만지자 그의 숨이 눈에 띄게 불규칙적으로 달아올랐다. 첫 관계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정중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치 순결을 약탈당하기라도 하는 양 벌벌 떨었다. 적개심이라는 가장 큰 방비를 내린 탓이리라.
리비아는 그의 태도를 충분히 음미하면서 옷을 한 꺼풀씩 벗겨 내기 시작했다.
“부인, 제가……, 제가 벗겠습니다.”
“저런, 내 즐거움을 앗지 말아요. 요한. 당신의 이 하늘하늘한 옷자락을 볼 때마다 당신을 덮치지 않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면 그런 산통 깨는 소린 못 할 거예요.”
“대체 어디에서…….”
“이렇게 꽁꽁 싸맨 것을 까뒤집으면 훌쩍훌쩍 울면서 새된 교성을 터뜨리는 수컷이 된다는 걸 알아 버렸잖아요.”
쪽 소리를 내며 그의 턱끝에 가볍게 입 맞추자 경악에 차 눈을 부릅뜬 요한이 입매를 우글우글 일그러뜨렸다. 비명과 울음을, 차마 싫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뒤엉켜 혼란한 낯. 리비아는 마지막으로 남은 그의 셔츠 단추를 톡톡 끌러 앞섶을 풀어 헤쳐 그 상반신을 드러냈다. 그녀와 엇비슷할 정도로 창백하게 흰 피부와 도드라진 곳마다 분홍빛이 도는 무구한 몸뚱이였다. 그러나 그 순진한 생김과 반대로 빳빳하게 곤두서 이미 자신이 어떻게 취급될지 알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유두가 외설스러웠다. 리비아는 그의 가슴에 달짝지근한 한숨을 흘리며 아랫가슴에 입술을 묻은 채 지긋이 훑어 올렸다.
“아, 흐…….”
그러나 유두에 입술을 문지를 뿐 결코 삼키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예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얕은 애무. 요한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앞쪽으로 바짝 내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자세를 바르게 가다듬었다.
“이번엔 싫다고 하지 않는군요.”
“……꼭 그렇게 들먹거리셔야 합니까?”
“나의 즐거움인 것을 어쩌겠어요. 양해해 줘요.”
리비아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속살대며 그의 바지춤에 손을 댔다. 벌써 팽팽하게 부푼 샅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는 속옷과 싸잡아 하의를 쭉 끌어 내린 뒤 드러난 그의 성기를 만족스레 바라보았다. 혈관이 똑똑히 두드러진 채 끄트머리가 조금 휘어 있는 길쭉한 성기는 그저 선액을 머금고 배꼽 언저리에 올라붙어 꺼떡거리는 것만으로도 회가 동하게 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제 입술을 핥으면서 그와 바짝 몸을 붙이고 섰다.
요한은 제 성기를 단단히 짓누른 그녀의 납작한 복부의 감촉에 몸서리를 쳤다. 낯설 정도로 부드러운 리비아의 배와 제 배 사이에 지긋하게 눌린 성기가 수치도 모르고 액을 왈칵왈칵 쏟았다.
“봐요. 요한, 대략 이쯤……, 일 거예요.”
“…….”
남자는 대번에 그녀가 말하는 것을 이해했다. 딱딱하게 얼어붙어 덜덜 떨리는 눈으로 그녀의 복부를 훑었다. 헤프게 액을 흘리는 길쭉한 좆이 그녀의 하복부를 오롯이 꿰고 있는 광경이 가리키는 바가 명확했다. 그는 벌게진 얼굴로 그렁그렁하게 고이기 시작한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그녀의 복부에서 눈을 돌리질 못했다. 리비아 모브레이는 얇은 속치마뿐이고, 충분히 육감적인 실루엣이 비친다. 그저 외적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였다. 곧 이런 그녀에게 유린당하는 것이다. 저 스스로의 의지로. 한낱 육욕에 져서.
그 까마득한 수치심 사이에서 희열이 번졌다. 남자는 그런 감정을 가진 저 자신에게 진저리를 쳤으나 도리 없는 일이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도망칠 길은 없다. 이미 뇌리에 꽂혀 버린, 자신이 리비아 모브레이 아래 짓눌려 겁탈당할 그 순간을 기대했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솔직한 반응이네요.”
“읏…….”
“무릎을 꿇어요, 요한.”
리비아는 퍽 자애로운 낯으로 미소 지으며 그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노골적으로 애인들을 다룰 때와 꼭 같은, 그래. 그 남창 놈을 달랠 적에도 이렇게 굴었었다.
요한은 자신이 어영부영 휘말린 일로 인해 자신이 가문의 고문이 아니라 그녀의 수컷 중 하나로 격하당했음을 깨달았다. 리비아 모브레이는 늘 이런 식으로 제 입으로 말하지 않고 먼저 깨닫도록 만들고는 굴복할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다.
남자는 굴욕으로 입술을 깨물면서도 저릿저릿하게 달아오르는 자신의 아랫도리에 애가 타 천천히 바닥에 널브러진 제 옷가지 위에 무릎을 꿇었다. 내다 버린 존엄을 무릎으로 지르밟는 순간 기어코 눈물이 흘렀다. 절정의 순간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처럼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호오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내리는 것.
“내 앞에 꿇을 땐 다리를 벌리고 앉도록 해요. 그래야……, 옳지, 훤히 보이니까.”
그녀는 요한의 턱을 손아귀에 쥐고 손끝으로 뺨을 살살 문질러 어르며 발끝으로 그의 무릎 안쪽을 툭툭 건드려 어설프게나마 자세를 고치도록 가르쳐 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종아리를 스쳤을 뿐이던 여자의 구두보다 제 무릎의 높이가 낮아진 것에 남자의 허리가 오싹거렸다. 무엇보다 그 무기질적인 발끝의 감촉이 너무나도 달콤해서.
“드디어 올바른 낯짝이 되었군요.”
“……흉합니까?”
남자가 눅눅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뇨, 사랑스러워요. 올바른 위치를 찾은 희열과 그동안 견고하게 쌓아 왔던 자존심이 상충하는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그 눈물 젖은 얼굴이 정말이지……, 달아오르게 하거든요.”
리비아의 입술이 가학적으로 비틀렸다. 요한은 여전히 아름다운 웃음이었지만 명백한 조롱과 희열이 묻어나는 얼굴을 멍하게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몰랐겠지만, 요한. 별저로 쳐들어왔던 그때부터 당신 얼굴은 꽤나 우스웠답니다. 순전한 분노 외의 것이 섞여서 말이에요. 마치 기다리던 소식이 찾아든 것처럼 설레어 들떠 보였거든요.”
“그런 적…….”
“이런 꼴로 없다고 말할 셈인가요?”
짧게 웃음을 터뜨린 그녀가 그의 머리채를 우악스레 틀어쥐고 고개를 바짝 치들게 했다.
“요한, 요한, 요한……. 나의 요한. 당신은 정말이지 사람을 싫어해요. 나약한 것도, 그악스러운 것도, 필사적인 것도, 천부적인 것도. 전부 싫어하면서도 속세를 떠나지는 않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필요 없이 만인이 떠받들어 주는 삶 속에 살았으니 깨달을 기회가 없었을 것을 참작해 말해 주겠어요. 당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쭉 기다려 온 거예요. 그러잖고서야 왜 성가셔 하면서도 인간들을 접하며 살았겠나요.”
“…….”
“당신은 기다린 거예요. 그 까다로운 기준을 전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충족하면서 당신을 경애하지 않아 망설이지 않고 요한 구르디예프를 짓뭉개 처박아 줄 수 있을 만한 냉혈한을.”
눈물 젖은 남자의 낯이 황망해졌다. 반박은커녕 수치스러워하는 것조차 잊은 듯이.
리비아 모브레이가 그 귀여운 낯짝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말을 끝맺었다.
“그저 저보다 뛰어난 사람에게 압도당하는 쾌락을 원해서.”
말이 끝나고, 그녀의 손이 머리통에서 떨어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개를 내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천천히 정물이 살아나는 것처럼 붉은 기가 스미고, 경련과, 휘몰아치는 온갖 감정들에 휘말렸다. 법열을 얻은 수도자처럼 속절없이.
리비아는 짧게 웃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내게도 그랬지 않나요? 그렇게나 진저리 나게 싫어하면서 굳이 돕고, 굳이 얼굴을 보이고 곁에서 얼쩡거리면서. 겁탈당한 이후 아무리 핑계를 댔다지만 정녕 원치 않았더라면 당신이야말로 날 강제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잖아요? 뇌를 좀 주물러서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던가, 허수아비 같은 놈과 결혼시킨다던가, 뭐 그런 흔한 것들 말이에요. 당신이 줄곧 해 온 대로.”
얇은 천 위로 그녀의 유두가 빳빳하게 곤두섰다. 리비아는 옷 위로 자신의 달아오른 몸뚱이를 느리게 애무하며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얼마든지 내가 만든 판 따윈 깰 힘이 있으면서도 일견 합리적인 모양새를 만들어 주니 스스로 틀에 맞춰 몸을 우그러뜨리는 걸 보면서 내가 얼마나 달아올랐을지 짐작이 되나요?”
“……처음부터…….”
대답 대신 그저 적막한 미소가 돌아왔다. 낭창하고 부드럽게 휜 눈매에 반쯤 가려진 그 짙은 녹안이 불길하게 번들거렸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당신의 상스러운 기질 따윈.”
남자의 손이 벌벌 떨렸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처음은 분명 자신이 말한 처음과는 다를 것이다. 세월을 거슬러, 그녀가 여즉 어린 소녀일 적에 처음 맞닥뜨렸던 순간을 떠올렸다. 희게 질리는 얼굴을 보며 그녀의 미소가 짙어지는 것만으로도 제 예상이 맞음을 알았다.
요한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다리를 우악스레 쥐었다. 어쩌면 제 명줄처럼, 아니면 원수의 멱처럼. 자신이 욕망에 젖어 스스로 합리화를 하며 굴종했다는 말이 아프게 뇌리를 들쑤셨다. 그러므로 이대로 남자가 리비아 모브레이를 해하려 든다 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농락한 여자다. 마침 미슐레 호엔베르크도 없으니 적기라면 이보다 더한 순간은 없으리라.
그러나 요한 구르디예프는 눈물 젖은 입술을 떨며 그녀의 무릎에 입 맞추었다. 옷자락에 입을 맞춘 건지, 무릎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지탱할 것이 필요한 듯 고개를 처박았을 따름이므로.
그녀는 자비롭게 요한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를 달래 주었다.
“슬퍼하지 말아요, 요한. 그토록 오래간 기다린 바람이 이루어졌는데 어찌 그러고만 있는 거죠?”
“……부인.”
“이리 와요.”
리비아는 요한의 어깻죽지를 톡톡 두드리고는 몸을 물려 침대로 향했다. 요한은 휘청거리며 거의 기듯이 뒤따랐다.
“옳지.”
남자는 마치 침대를 도살장마냥 바라보며 섰다. 그녀가 자신을 향해 발을 느릿하게 들어 올리자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의 헛손질을 거쳐 벗겨 낸 뒤 그저 망연하게 서서 바닥에 나뒹구는 구두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침대 위로 기어올랐다. 그러나 완전히 오르기도 전에 갑작스레 팔뚝을 쥐어 잡혀 그녀에게 홱 끌려갔다.
“잠……!”
무시무시한 힘이다. 요한은 경악에 차 반사적으로 그녀를 만류하다가, 오연하게 자신을 깔아 보며 입술을 삼키는 리비아 탓에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네발짐승처럼 매트리스를 짚은 채 목을 빼 들고 그녀의 혀를 받아 냈다.
“응, 우읍…….”
전에 없이 거친 키스였다. 여자의 눈이 그가 줄곧 두려워했던 거뭇거뭇한 욕망으로 젖어 있었다. 지배와 소유욕으로 들뜬…….
“흣……!”
리비아는 그의 머리채를 쥐어 당겨 고개를 비틀도록 만들었다. 그는 마치 인형처럼 그녀의 손짓에 딸려 가 고개를 꺾고, 더 크게 벌어진 입술로 그녀의 혀를 받아들이고, 타액을 삼키며 전율했다. 구속구로 묶였을 때보다도 훨씬 노골적인,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이 그를 에워쌌다. 숨이 벅차오르고 허리가 벌벌 떨리는 만큼 성감이 치솟았다. 금방에라도 파정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쾌감 속에서 남자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입술 밖으로 혀를 내민 채 진탕 얽어 대며 그 꼴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동시에, 리비아에게도 보였다. 모조리 벗겨진 데에서 오는 수치와 해방감이 그를 망가뜨렸다. 요한은 비실비실 입꼬리가 오르는 줄도 모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녀의 키스를 받았다.
“후, 읏……, 아…….”
기분 좋아.
오롯이 그 생각밖에 들질 않았다. 요한은 멍하게 시트에 제 귀두 끄트머리를 치대며 리비아를 향해 기었다. 발정이 나 상스럽게 교태를 떠는 듯한 몸짓임을 자각할 여유조차 없는 듯했다. 마치 각인처럼 이 순간의 모든 행위가 앞으로의 그를 좌우하리라. 처음으로 현자라는 껍데기를 깨뜨린 여자가 새겨 주는 대로. 그것이 못내 리비아를 전율케 했다.
그러나 흡족한 것과 별개로 그에게 몸가짐을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한 번쯤 바로잡아야 할 일이었다. 리비아는 요한의 혀끝을 살짝 깨물고 놔 준 다음 그의 어깻죽지를 만지며 얼렀다.
“이러면 못 써요, 요한.”
“그런…….”
“내 허락을 받아야죠, 미리 경고하건대 내 허락 없이 방지하게 굴면 벌을 받게 될 거예요.”
요한은 벌이라는 말에 파르르 떨면서 잠깐 텀을 두더니 얕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치욕과 동시에 음습한 쾌락이 그의 몸을 달구고, 갖가지 불온한 망상이 넘실거렸다. 그녀가 수컷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지는 일찌감치 아는 바가 있었다. 아무리 거구의 사내라도 굴욕적으로 휘어잡아 무릎 꿇리고, 전라가 된 맨몸뚱이를 촉수에 던지고, 목줄을 채우고, 어쩌면 제 순결을 앗았던 날 지껄인 것처럼 식솔들의 앞에서 자신을 겁탈할지도 몰랐다. 어떤 것이든 그녀는 멈추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을 망가뜨리겠지.
리비아는 그가 자신의 성벽을 처음으로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집요하게 요한을 관찰하면서 제 가슴팍을 톡톡 두드렸다. 달아오른 유실이 얇은 천에 쓸리며 따끔거린 까닭에 축축한 수컷의 주둥이로 달랠 요량이었다.
“자, 요한. 이리 온.”
“읏…….”
남자는 무언가를 참는 듯한 희미한 신음을 내면서 얼마 남지 않은 짧은 거리를 마저 기어와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굴욕적인 취급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바짝 달아오른 그의 숨이 헉헉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 너머의 살갗 위에서 바스러진다.
리비아는 다리를 벌려 개처럼 엎드린 요한이 제게 바짝 붙기 편하도록 자세를 고치고 그의 머리카락에 입술을 묻었다.
“빨아 줘요.”
대답조차 없었다. 그는 리비아의 가슴골에 얼굴을 처박고 제 욕구를 참기 위해 헐떡이던 모습 그대로 그녀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크게 입을 벌리고 부드러운 가슴을 한입 가득 깨물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가 얼마나 달아올랐는지는 충분히 유추할 만했다. 남자는 제 자세에 대한 아무런 자각도 없는지 손을 쓸 생각조차 않고 그저 입과 얼굴로만 그녀의 가슴을 애무했다. 꾹꾹 치대며 체향을 한껏 들이켜는 도중 단안경이 벗겨져 침대 위를 굴렀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한참 전부터 옷 위로 뾰족하게 도드라져 있던 그녀의 첨단을 유륜째 집어삼켰다.
“읏…….”
우악스러웠다. 라시니 같은 요령도 없는 데다가 미슐레처럼 인내에 기반한 정중함조차 없다. 그는 말 그대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요한은 처음으로 성에 눈뜬 어린 사춘기 소년처럼 그저 앞에 놓인 것을 게걸스럽게 욱여넣고 몸을 떨었다.
리비아는 그가 힘껏 빨아 올리는 탓에 유륜은 물론이요, 입 안에 딸려 들어간 살갗도 저릿저릿하게 자극당해 허리를 얕게 들썩였다. 자발적으로 저를 원하는 요한과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과했다.
그녀는 애무받는 자신보다도 훨씬 흥분한 듯 연신 억눌린 신음을 내며 혀와 입술로 힘껏 가슴을 빨았다가 입 안에 가득 채우고 싶은지 고쳐 무는 것을 반복하는 요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다리 사이에 와 닿는 타인의 열기에 애액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개처럼 엎드린 요한의 성기가 지금 어디쯤에서 흔들리고 있을지, 속치마 한 겹뿐인 제 다리 사이와 얼마나 가까운지를 떠올리자 열이 끓었다. 지금 당장 집어삼키고 싶었다.
그는 리비아가 얼마나 달짝지근한 인내심을 발휘하든지 간에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그녀의 품에 안긴 감각에 전율하며 체중을 실어 그녀에게 제 몸뚱이를 밀착시켰다. 그 탓에 조금씩 여자가 뒤로 밀려나고, 자세가 흐트러지며 자연히 치맛자락이 걷혀 올라간다.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파르르 떨며 가슴에 묻었던 고개를 슬그머니 들어 올렸다.
“으, 아…….”
그의 눈앞에 놓인 것은 지나친 외설이었다. 흥분으로 살짝 달아올라 혈색이 덧입혀진 얼굴, 타액으로 범벅이 되어 살갗에 완전히 들러붙은 얇은 가슴팍의 천과, 엉망으로 일그러진 치맛자락, 그 사이로 드러난 희고 부드러운 곡선의 허벅다리, 그 안쪽의 매끈한 둔덕 같은 것들.
남자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치솟은 욕구를 한참 동안 억누르고 나서야 더운 숨을 뱉었다. 리비아는 열렬한 시선이 제 다리 사이에 꽂힌 것을 즐기듯 웃음을 흘리며 바로 등 뒤에 받쳐진 푹신한 베개에 팔을 걸치고 반쯤 드러누워 그를 내려다보았다.
“부인…….”
그에게는 처음이었다. 리비아 모브레이의 몸뚱이가.
물론 라시니와 관계하던 때에 그녀의 몸을 볼 기회는 있었지만 오롯이 제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만류하지 않는 리비아의 눈치를 살피면서 치맛자락을 배 쪽으로 완전히 걷었다.
“아…….”
그녀는 전혀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벌렸다. 허벅지 안쪽과 음모 한 올 없는 매끈한 둔덕, 그 사이로 비치는 붉은 점막에 숨이 막혔다. 요한은 자신이 이 다리 사이에 삼켜졌던 사실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점점 숨이 가빠졌다. 진정하려고 애썼던 것이 무색하리만치 흥분해 입 안에 침이 잔뜩 고일 지경이었다. 그녀의 둔덕은 일찌감치 땀이라고는 볼 수 없는 미끈미끈한 액체로 번들거렸다. 요한은 경이로운 것이 홀린 것처럼 천천히 자세를 낮춰 떨리는 엄지로 그녀의 한쪽 둔덕을 지그시 누른 채 옆으로 천천히 벌렸다.
“아, 으…….”
뻐끔거리는 구멍에서 애액이 울컥울컥 흘러내리고 있었다. 낯선 생김새에 놀라기는커녕 외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흥분한 나머지 그는 결국 리비아의 허락을 구하기도 전에 냅다 달려들었다.
“흑……!”
재빠르게 접붙인 좆대가리로 헛발질을 하며 발기한 클리토리스를 세게 추어올리면서도 삽입의 쾌락을 갈구하며 게걸스럽게 점막 사이를 찔러 대다, 미끄러져 구멍을 옳게 찾자마자 안달 난 티를 내며 파고들었다. 미슐레에 비해 덜할 뿐 평균보다는 훨씬 두꺼운 귀두가 좁은 구멍을 한껏 벌리는 감각이 등골을 때렸다. 휘어 있는 모양 탓에 내벽 안의 감도 높은 곳들을 단번에 할퀴며 깊숙이 처박힌 성기에 리비아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요한은 제 어깨에 둘러져 있던 손끝이 아프게 살갗을 짓누르는 감각에 흥분해 좀 더 바짝 몸을 밀어붙였다.
“아흣……, 요, 한…….”
평소와 달리 이미 몸이 달아 있었던 탓에 리비아의 목소리가 홱 떨렸다. 요한은 쾌락으로 달짝지근하게 허물어진 그녀의 부드러운 눈매와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표정에 홀려 무릎걸음으로 좀 더 바짝 다가가려다가, 아예 무릎을 꿇고 그녀를 제 허벅지 위에 태웠다. 리비아가 몇 개를 덧대 받친 베개와 그의 허벅지 사이에 갇힌 꼴이었다. 체위 자체가 노골적으로 라시니 몬테필트로와 했던 모습을 흉내 내고 있었다.
리비아는 그 얄팍한 질투와 열등감이 우스웠다. 해서 남자가 좀 더 깊게 결합하려 꾹꾹 체중을 실을 때마다 응, 흣, 하고 짤막한 신음을 흘리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질투, 하지……, 말아요.”
“……그런 게……, 아닙, 니다만…….”
그는 이미 반쯤 가 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평소 신경질적으로 날이 서 있던 얼굴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려 발갛게 달뜬 눈가와 살짝 부은 입술 탓에 몹시 색정적이었다. 남자는 아릿한 제 입술을 혀를 내어 핥으며 그녀가 가르쳤던 것을 어기지 않기 위해 느릿느릿 다리를 벌려 앉도록 자세를 고친 뒤 리비아의 골반 언저리를 움켜쥐고 제 쪽으로 당겨 한 치의 틈도 없이 완전히 성기를 접붙였다.
“아……!”
“그런 망종으로……, 더럽혀지셨으니, 꼼꼼히……, 아……!”
으르렁거리듯 감출 생각조차 않은 질투를 드러내며 말하던 그는 채 말을 마치지도 못하고 신음하며 상체를 웅크려야 했다. 리비아가 뱃속의 좆을 힘껏 죄며 그의 유두를 꼬집어 비틀었기 때문이다.
“하, 아……, 응! 힉……, 부, 부인……!”
“건방 떨지 말아요.”
리비아의 낯에서 웃음기가 싹 걷히고 냉랭한 위엄이 어렸다.
“당신은 내게 순종해야 하는 입장이지, 내 행실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답니다. 이 알량한 좆대가릴 괴롭혀지고 싶어서 순순히 옷을 벗겨 내리는 손길에 몸을 맡긴 순간부터 요한, 당신은.”
“흐응……!”
꼬집어 당겼던 유두를 놓아주고 손가락의 볼록한 부분으로 뭉개듯 어루만져 주며 말을 맺는다.
“가문의 고문이기 이전에 일개 첩실 나부랭이에 불과하니까.”
“첩, 실……, 이라, 니…….”
한순간에 기가 확 꺾이는 그 희열에 허리를 벌벌 떨면서도 황망하게 뇌까리는 꼴에 기분이 풀린 리비아가 그의 턱을 움켜쥐고 부드럽게 키스하며 속삭였다.
“허면? 홀로 남은 포웰의 주인을 상대로 헐벗은 몸뚱이를 내던져 놓고도 멀끔히 정결한 양 묶이지 않고 새침 떨며 살 셈이었나요?”
“하, 아……!”
“지금도 보세요, 내 다리 사이에 파고들어 앙앙거리고 있잖아요. 이런 방종한 짓을 품어 주었는데 마땅히 곁을 지킬 생각조차 않다니…….”
리비아가 뭉근하게 허리를 돌리기 시작하자 요한의 말문이 틀어막혔다. 그는 회피할 수 없을 만큼 진득하고 확실하게 제 온몸에 꽂히는 쾌락에 몸부림치지 않기 위해 베갯잇을 움켜쥐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리비아의 우악스런 손아귀에 턱을 쥐어 잡힌 채라 그녀가 짧게 뒤채듯 그의 고개를 흔들며 답을 독촉하자 도리 없이 고개를 꺼떡꺼떡 휘둘려야 했다.
“대답.”
“거기……, 까, 지인…….”
요한은 공격적인 쾌락에 막막한 기분까지 섞이자 울음기가 치밀어 올라 흐느끼듯 대답했다. 그녀가 저를 깎아내리려 짓뭉개 밟는 소리를 지껄일 때마다 눈가가 시큰시큰했다. 마치 약에 취하기라도 한 양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이 붕 뜨고 머리와 척추가, 또한 성기가 따끔할 정도로 저릿저릿 울렸다. 그녀의 무례한 손길이 닿을 때마다 자신이 겁탈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감히 달려든 주제에 엄히 일갈하는 것에 허리를 떨며 납죽 엎드리는 것이 수치스러웠지만 자의로 사로잡힌 몸으로서는 항변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힘. 그녀의 완력은 힘쓰는 일에 꽤 몸이 익은 저마저도 움츠러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지금껏 눈치조차 채지 못해 왔던 것에 경악할 만큼. 그리고 이 엄청난 힘으로 옴짝달싹 못 하게 붙들려 착정당하는 쾌락이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부인, 멈추지……, 흑!”
“허락도 없이 삽입하고, 감히 행실에 대한 책임도 생각지 않고 몸뚱이를 함부로 놀리다니…….”
리비아는 경멸하는 듯한 눈으로 짧게 혀를 찼다.
“정숙지 못하군요.”
요한은 벼락같이 내리꽂히는 쾌락에 멍청하게 아, 아아, 하고 달싹거리다 결국 그녀의 뱃속에 정을 싸지르고야 말았다. 불가항력의 생리 현상이다. 이런 눈빛을, 이런 취급을 받아 버리고도 씨물을 질질 흘리지 않을 수컷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는 여전히 턱을 움켜쥔 리비아의 손 탓에 몸뚱이를 비틀면서도 몽롱하게 풀린 채 반쯤 감긴 눈과, 떨리는 속눈썹, 범람하는 눈물, 멍청하고 녹진하게 벌어진 입술이 파들거리는 꼴까지 똑똑히 그녀의 눈앞에 드러낸 채 절정을 맞았다.
“보지, 마, 아……앗…….”
그녀가 보고 있었다. 열렬하게.
한 올 한 올 살피듯 노골적인 눈으로 자신의 치태를 바라보았다.
그 따가운 시선과 아랫도리에서 치받는 쾌락에 진저리를 치듯 몸을 떨며 요한이 울음을 터뜨렸다.
“보지, 마십, 마십시오. 부인, 흐윽, 제발, 제바, 알…….”
그는 말과 달리 가장 깊은 곳에 처박히고도 만족하지 못한 듯 게걸스럽게 그녀의 음부에 제 샅을 뭉갰다. 애써 좀 더 깊이 처박혀 힘껏 쥐어짜이는 쾌락에 몸서리치며 꾸역꾸역 사정했다. 이전의 관계 때도, 관음하며 사정하고야 말았을 때와도 비교되지 않을 만한 양이었다. 그는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자존심과 체면이 그녀의 발아래 처박혀 짓뭉개지는 이 감각에 취해 애처로울 만큼 낭창하게 허리를 휘며 후희에 젖어 꿈틀거렸다. 그저 황홀했다. 모든 것이 송두리째 유린당하는 압도적인 쾌락이. 개화되듯 흐드러지는 제 감각들이.
“흐응…….”
리비아는 그런 요한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녹진녹진하게 풀린 입 안이 저항감 없이 그녀의 혀를 받아들이고 힘 풀린 혀를 내어놓았다. 쯥 하고 빨아들이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요한의 혀뿌리가 얼얼할 만큼 제멋대로 그를 농락하며 턱을 놓아준 그녀가 나른하게 한숨을 쉬었다. 요한은 불안한지 멍한 눈을 애써 깜빡이며 정신을 차렸다.
“경고한 바 있으니 이제 벌을 받아 볼까요.”
“부인……?”
“장담컨대, 요한.”
여자가 눈매를 휘며 해사하게 미소 지었다.
“곧 풀린 혀로 울부짖으며 내게 사죄하게 될 거예요.”
요한은 바로 뜨기엔 지나치게 늘어지는 눈꺼풀을 어렵사리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며 그녀의 표정을 살피려고 노력했지만 그보다도 제 몸뚱이가 뒤로 넘어가는 것이 빨랐다. 남자는 등 뒤에 닿는 서늘한 시트의 감촉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제 성기가 뽑혀 나오는 감각에 나직하게 신음했다.
“여즉 꼿꼿하군요.”
리비아가 그의 성기를 흘긋 깔아 보고는 툭툭 손끝으로 귀두를 튕기며 무심하게 뇌까렸다. 남자는 그 직설적인 희롱에 얼굴을 붉혔다가 그녀가 제 가슴팍과 배에 입술을 묻고 강하게 빨아들이는 탓에 손등으로 입을 틀어막아야만 했다.
창백한 피부에 불그스름한 순흔이 남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요한의 피부는 하얀 만큼 민감하고 연약했다. 세게 틀어쥔다면 필시 손자국이 남으리라. 그리 생각한 순간 그의 허벅다리에 불그죽죽하게 남은 멍 자국을 발견한 리비아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이게 뭐죠?”
“아.”
그녀가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묻자 요한 역시 잊고 있던 것을 뒤늦게 떠올린 듯 아차 싶은 기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와의 신경전에서 자국이 났으리라는 데에 생각이 닿자 설명하기엔 대단히 괴상한 상황임을 자각하고 안절부절못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낯짝을 들여다보며 리비아가 천천히 그 자국을 가늠하듯 제 손을 대어 보았다. 짓누른 듯한 자국이었다. 요한의 성격상 타인에게 몸을 내어 줄 위인은 아니었으나 기다렸던 먹이에 타인의 잇자국이 남아 있다니 불쾌함을 감출 수 없는 노릇이다. 리비아는 살풋 미간을 좁히며 한숨처럼 가볍게 그의 허벅지에 입을 맞췄다.
“하상…….”
그리고 집요한 애무와 입질이 이어진다. 요한은 뭉근하게 앓는 소리를 내며 얌전히 굴었다. 자주색으로 멍든 그 자국 위로 차근차근 순흔을 덧씌우면서 남자의 반대쪽 무릎 역시 손으로 살살 둥글려 가며 어루만졌다. 그는 크게 질책할 줄로만 알았던 리비아가 마냥 다정스레 굴자 긴장이 풀린 것인지 민망함으로 몸을 경직시킨 채 순순히 애무를 받았다. 다소 아프고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만하면 대단히 인내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한참을 그의 몸뚱이에 자국을 남기고 맛을 보며 탐닉하던 리비아가 만족스러워진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흰 이불 위로 흐트러진 나신과 붉은 머리칼, 잔뜩 달아올라 빳빳한 유두와 성기를 가리기 위해 비튼 몸뚱이, 그 위를 가로지르는 붉은 흔적들. 상했던 속을 가라앉히기엔 충분한 광경이었다. 그녀는 혀를 내어 제 입술을 핥은 뒤 그의 아랫배를 부드럽게 토닥였다.
“잠깐 기다려요.”
“……왜…….”
“가져올 게 있거든요.”
요한은 꽉 잠긴 제 목소리가 민망했는지 금세 입을 다물고 얌전히 눈을 돌렸다. 훤히 드러난 그녀의 몸뚱이는 지나치게 외설적이어서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침대 위를 기며 살갗을 핥게 될 것만 같았다. 남자는 저속한 자신의 밑바닥에 치를 떨면서도 그녀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며 귀를 기울였다.
바닥을 딛는 소리, 거치적거리는 천 조각들을 마저 벗어 내리는 소리, 서랍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사이에 어떤 유리가 달각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침대 위로 돌아온 리비아의 긴 머리카락이 그의 살갗을 간지럽혔다. 마치 뱀처럼 서늘하고 매끄러운 감촉이 닿자 바짝 신경이 곤두섰다.
리비아는 그의 무릎을 톡톡 두드리다 안쪽에 설핏 입을 맞추고는 가져온 어떤 유리병을 요한의 배 위에 올려 두었다.
“이게 뭘까요, 나의 요한?”
“……그, 건…….”
그의 눈이 홉뜨였다. 자신이 샘플로 가져다주었던 예의 마물이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를 길들이는 데에 썼던, 제 손으로 키운 그 마물.
리비아는 하얗게 질려 가는 요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당신의 마력을 먹고 자란 것이 이토록 외설적이고 음침한 외양을 가진 걸 보고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지 당신은 모르겠죠. 언젠가 이걸로 당신을 범해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이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어요.”
“말씀하셨던……, 벌입니까?”
“싫은가요?”
요한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자는 나른하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며 병을 집어 들고 요한과 시선을 얽은 채 병 속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그것을 향해 입을 맞췄다.
“허락 없이 내 배 속을 채웠으니 당신도 같은 것으로 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어요?”
짧게 웃음소리가 번진다. 요한은 그녀의 입술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밀어처럼 달짝지근하게 속삭이는 말에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만 같다.
“부디 받아들여 줘요, 나의 요한.”
나의 요한.
그 부름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어쩌면 전율일지도 모르지. 남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멈췄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녀와 눈을 맞춘 채 다리를 벌렸다. 표본실에 늘어져 있을 개구리처럼 무릎을 세운 채 활짝 다리를 벌린 제 몰골이 얼마나 상스러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렸으나 직설적인 욕망과 기대감으로 반들거리는 리비아의 눈을 마주한 이상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기세가 한풀 꺾였던 그의 성기가 빳빳하게 일어나 질펀한 액을 흘리며 허공에서 꺼떡꺼떡 흔들렸다. 리비아는 크게 숨을 들이켠 뒤 마물이 든 병과 함께 챙겼던 손가락만 한 병의 뚜껑을 열었다.
“당신의 처녀를 마물에게 주기는 아까우니 내가 먼저 맛보게 해 줘요. 자, 힘을 빼고…… 옳지…….”
그녀는 요한의 허리 밑에 베개를 하나 받쳐 주고는 살짝 들린 탓에 훤히 드러난 회음부를 제 손가락으로 꾹 눌러 옆으로 젖혀 벌렸다.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다는 걸 증명하듯 바짝 조여 있는 틈 없는 분홍빛 주름을 핥듯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목 긴 병의 입구를 그의 구멍에 쑤셔 넣었다.
“읏…….”
“차가워도 너무 조이지 말아요, 깨질지도 모르니까.”
“뭘……, 넣으시는, 겁니까?”
“뒤를 길들일 때 쓰는 포션이에요. 세정과 윤활유를 겸하는 물건이죠.”
“……호엔베르크의 몫으로 구비해 두셨던 겁니까?”
“글쎄요?”
의뭉스레 대꾸한 뒤 병 속의 액체가 모조리 안쪽으로 흘러들자 조심스레 병을 끄집어낸 리비아가 두 손으로 그의 회음부를 붙잡고 양쪽으로 당겨 구멍에 힘을 주지 못하도록 벌렸다. 아무리 액체라고는 해도 무언가가 들어올 일 없는 곳이 채워지는 감각이 낯설어 바짝 굳어 있던 요한이 입술을 사리물었다. 그는 오갈 데 없는 손으로 시트를 문지르다가 리비아가 제 사타구니 안쪽의 연한 살을 길게 핥아 올리자 파르르 몸을 떨었다.
“부인……! 더, 더럽, 더럽습니다. 어딜 핥으시는……!”
“내 것의 속살을 맛보는 게 어때서요? 다리 오므리지 말아요.”
“부인, 제발…….”
“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녀는 태연하게 요한의 고환을 주무르며 손끝으로 주름을 꾹 눌렀다.
“좀 더 보고 싶으니 다리, 활짝 벌려요.”
“아, 아으…….”
요한의 입매가 와글와글 일그러졌다. 울음이 가득 차오른 얼굴로 리비아를 올려다보던 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사타구니를 좀 더 치들며 다리를 벌렸다. 상스러운 자세를 취한 것만으로도 아릴 만큼 달짝지근한 쾌락이 척추를 짓누른다. 요한은 절로 가빠진 숨을 헐떡이며 그녀의 동그마한 손끝이 제 구멍 안으로 천천히 파고드는 감각을 선연하게 맛보았다. 천천히 다물린 입구를 헤치며 파고든다. 얇고 단단한 것이 한 마디쯤 들어왔을까. 희미하게 젖은 소리가 났다. 그 얄팍한 액체가 스민 것만으로도 마치 무언가를 품기 위한 구멍이 된 양 질퍽한 소리가 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으나 손가락이 마치 안쪽을 다지듯 사방을 꾹꾹 짓누르는 모양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질겁하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힉…….”
“겁먹지 말아요,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힘을 푸는 거예요.”
“아파, 아픕니다, 부인…….”
“괜찮아요. 내게 처음을 주는 감각이에요.”
“흐윽…….”
살짝 들린 허리가 파르르 떨렸다. 식은땀으로 차게 가라앉았던 몸이 차근차근 들뜨는 감각. 리비아의 손가락이 점점 깊이 안으로 들어섰다.
“흐으…….”
“좁네요…….”
“마, 말하지……, 아!”
“다 들어갔어요.”
요한은 제 팔뚝으로 얼굴을 가린 채 도리질 쳤다. 리비아의 손샅이 제 회음부에 맞닿은 것이 느껴졌지만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그러나 리비아는 그의 현실 도피를 허락할 맘이 없는 듯 남은 손으로 하복부를 어루만지며 천천히 뱃속 깊은 곳에서 손가락을 꾸물거렸다.
“여기에, 당신이 날 받았어요. 요한.”
“아, 아니, 아니야…….”
“자, 하나 더 받아 줘요.”
“싫……, 어……, 엇.”
또 다른 손끝이 구멍 안으로 파고든다. 요한이 고개를 뒤채며 온몸을 벌벌 떨었다. 아프진 않았지만 선뜩할 정도로 또렷한 이물감이 역류하듯 안으로 파고드는 것은 공포의 영역에 가까웠다. 온몸의 감각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기민하게 곤두서 온통 구멍 쪽으로 쏠린 것마저 두려웠다. 그러나 리비아는 봐주지 않고 그의 아랫배를 살살 둥글려 어루만지며 검지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자아……, 두 개예요.”
“흐, 흐으, 아……, 우, 움직이지……!”
“움직이지 않으면 길들일 수 없는걸요.”
짧게 웃음을 터뜨린 리비아가 보란 듯이 천천히 검지와 중지로 그의 구멍 안을 벌렸다.
“시, 싫어, 싫……, 부인……!”
“쉬……, 괜찮아요, 장해요. 나의 요한. 곧장 두 개나 받아들여 주다니 기뻐요.”
아무리 벌이라지만 지나치게 치욕스러웠다. 요한은 한껏 가빠진 숨을 더는 통제하지 못한 채 훌쩍였다. 울음이 끓는데도 손가락을 빼 주지 않는 리비아가 미웠고,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일을 저지른 자신도 미웠다. 자꾸만 부드럽게 훑어 대는 손바닥의 감촉 탓에 온통 하복부로 신경이 쏠려 그 이물감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마저 너무나도 미웠지만 뿌리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우는 동안 그녀가 천천히 구멍 속에서 손가락을 가위질하듯 벌렸다 오므릴 때마다 쩍쩍 젖은 점막이 움직거리는 소리가 울려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버, 벌리지……, 벌리지, 마, 말아요……, 부인, 아……!”
“쉬이, 요한. 너무 싫어하지 말아요. 기뻐해야죠, 오랫동안 간직해 온 순결을 앞뒤 모두 정인에게 바친 기쁜 초야의 순간이잖아요?”
“그, 래도, 너무…….”
“아픈가요?”
“…….”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입을 다물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낯선 감각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아프다고 여길 만한 구석은 없었으므로 그녀의 물음에 긍정하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리비아는 고지식한 그의 반응에 웃음을 감추지 않으며 아주 느릿하게 두 손가락으로 안쪽을 더듬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안을 짓누르는 이물감에 사타구니가 바짝 긴장했지만 이완 효과가 있는 윤활제 덕분인지 그렇게 버겁지는 않았다. 그녀는 느긋하게 안쪽 깊숙이에서부터 더듬으면서 손가락을 빼낸 뒤 설핏 벌어져 우물거리는 구멍에 손가락 셋을 뭉쳐 댔다.
“세 개예요.”
“못, 못 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번졌다. 그러나 리비아는 단호하게 손끝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아흑……!”
“자아, 요한, 이제 기분 좋게 해 줄게요.”
“이런, 이런 걸로, 기분, 좋을 리……, 없잖, 습니까……!”
“라시니가 그리 기뻐하는 걸 눈앞에서 봤으면서 그런 소릴 하는군요.”
“그자는 음탕하기 짝이 없는 남창이잖습니까, 아!”
“너무 그렇게 질색하지 말아요, 당신도 곧 그리될 텐데.”
“으흐, 윽……!”
세 개째가 되자 과연 요한이 버거워하며 몸을 들썩거렸다. 이물질을 밀어 내려는 듯 바짝 힘이 들어간 내벽이 그녀의 손가락을 힘껏 죄며 저지했지만 잠깐 멈추었던 리비아가 그의 좆을 험하게 움켜쥐며 손가락을 말 그대로 쑤셔 박았다.
“힉……!”
요한의 허리가 퉁겨 올랐다. 리비아는 손아귀로 꽉 움켜쥔 그의 성기를 위아래로 크게 두어 번 흔들어 주고는 보란 듯이 손샅까지 틀어박힌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우악스레 구멍을 추어올렸다.
“자, 세 개예요.”
“아, 욱……! 흐윽……!”
요한은 통증과 이물감과 쾌락이 뒤엉켜 추잡해진 감각을 삼키지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벽이 경련하기는 했지만 이미 틀어박힌 뒤 죄어 봤자 앙탈밖에 더 될까. 리비아는 태연하게 그의 구멍 안을 자비 없이 휘젓기 시작했다.
“힉, 자, 잠, 부인, 부인! 윽!”
“고작 세 개로 배가 불러 투정을 부리다니, 정말이지 귀여운 짓이긴 하지만 지금은 벌을 받는 시간인걸요. 괘씸한 짓이에요. 요한.”
“멈춰, 천, 천천히, 제발……!”
찌걱찌걱 추잡스러운 소리가 울렸다. 몸서리를 치며 시트를 두드리던 요한이 결국 눈을 뜨고 제 다리 사이를 직시했다. 좆을 움켜쥔 하얀 손과, 제 다리 사이를 점한 흰 팔뚝을, 사라진 손이 어디에 있겠는가.
“흐윽……!”
정말로 제 뱃속에 그녀의 손이 있는 것이다. 추잡스러운 소리를 내며 그녀의 손을 삼킨 구멍이 제 아랫도리에 달려 있다니 눈앞이 아득했다. 처음 같은 거부감조차 잦아들어 묘한 열감까지 느껴지는 내벽의 감각이 타인의 것처럼 낯설었다. 그는 힉, 힉, 하고 숨을 들이켜다 날숨을 토하며 울었다. 벌렸던 다리가 허물어져 아무렇게나 흐트러졌으나 리비아가 완전히 제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탓에 오므릴 수도 없었다.
“아, 응……!”
손가락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가 다시 한번 처박힌다. 요한은 고개를 헤딱 뒤로 젖히며 벌벌 떨었다. 뭔가, 이상한, 압도적인 감각이 배를 쥐어 갈긴 듯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참 만에야 제 배가 흥건히 젖었음을 깨달은 그가 더듬더듬 배 위를 훑었다. 끈적한 탁액이 가슴까지 늘어지며 밤꽃 냄새를 풍겼다. 사고가 인지를 쫓지 못하자 리비아가 자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전립선이에요.”
“으……, 하…….”
“앞으로 가는 감각과는 전혀 다르죠?”
“갔……, 다고……?”
황망한 목소리였으나 명백하게 달뜬 기색이 어려 있었다. 리비아는 좆을 움켜쥔 채 위쪽으로 쥐어짜듯 추어올려 남은 정액을 짜냈다. 제 정액으로 몸뚱이를 더럽힌 채 믿기지 않는 듯 멍하게 눈을 깜빡이기만 하는 요한을 보며 입맛을 다신 여자는 베게 하나를 더 보태 받친 뒤 손가락을 빼냈다.
“이것 봐요, 요한.”
“아…….”
“미끌미끌하죠.”
물론 그의 안에 부어 넣은 윤활제 탓이었지만 구태여 말하지 않으면 충분히 외설적인 모양새로 젖은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인 리비아는 뒤로 밀어 두었던 병을 끌어와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자, 지금부터가 벌이에요.”
“다, 끄, 끝난 게…….”
“이걸로 끝날 리 없지 않나요? 분명히 나는 ‘곧 풀린 혀로 울부짖으며 내게 사죄하게 될 거예요’라고 했을 텐데.”
“아, 아아…….”
“아직 혀가 풀리려면 먼 것 같아 다행이에요, 나의 요한.”
경쾌하게 마개가 뽑히는 소리가 울렸다. 리비아는 벌름거리는 그의 구멍에 병 입구를 쑤셔 박으며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새끼를 밴 듯한 경험을 해 보는 건 지난 여러 애인들을 포함해서도 당신이 확실하게 처음이니 기뻐하도록 해요.”
“싫, 싫어, 부인, 아, 아으, 극, 봐줘, 제발, 리비아……!”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요한이 더듬더듬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뜨겁고 습한 구멍을 찾은 마물이 무기질적인 병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은 한순간이었으니까.
“아그으윽……! 리비, 리, 리비아, 아, 아아아……!”
요한이 온몸을 발작하듯 떨며 몸부림을 치는 통에 유리병이 떨어져 나와 시트를 굴렀지만 이미 그의 구멍에 반쯤 몸을 걸쳤던 마물을 떨쳐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것은 아주 게걸스럽게 그의 구멍 안으로 파고들다 떨어져 나가지 않게끔 몸을 지탱하기 위해 덩굴을 뻗어 그의 살갗에 찰싹 들러붙었다. 연한 사타구니와 회음부 살갗을 힘껏 빨면서 들러붙은 채 막 첫 경험을 마친 모체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고 힘껏 기지개를 켜며 전립선을 짓뭉갰다.
“……!”
기세 좋게 뿜어져 나온 탁액이 요란하게 허공을 적셨다. 후드득 떨어진 정액을 뒤집어쓴 채 요한이 반쯤 눈을 까뒤집은 것 같은 얼굴로 과격한 절정을 맞은 얼굴에서는 평소의 냉정한 면은 찾을 수조차 없이 상스러웠다. 그야말로 초야에 짐승으로서의 쾌락을 깨쳐 환희에 젖은 신부에게 걸맞은 얼굴이었다.
리비아는 짙은 미소를 드리운 채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뱀처럼 그의 몸 위를 기어 제 몸으로 덮어 누른 채 경련하는 입술에 혀를 밀어 넣었다. 기특하게 절규의 순간에 정인의 이름을 부르짖던 것을 치하하기 위해서.
감촉이 손가락보다 훨씬 가느다랗고 부드러운 대신 딱 그만큼 우악스럽기 짝이 없는 확장이었다. 마물은 말 그대로 자신의 둥지를 틀기 위해 요한의 내벽을 아무렇게나 밀치고 짓이기며 안쪽으로 전진했다. 쉽지 않은 진입이었으므로 자연히 잔뜩 진액을 뿜어 미끄럽게 살을 적시면서 좀 더 만만한 방향을 찾아 사방으로 덩굴을 뻗어 넓혀 댔다. 여러 가닥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쳐 대는 감각이 아주 또렷하게 느껴지자 요한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으나 리비아의 몸뚱이에 짓눌린 채라 여의치 않았다.
“우윽, 흑, 우……, 아, 앗!”
그는 혀를 내민 모양새로 리비아에게 잔뜩 위쪽 구멍을 희롱당하면서도 그녀가 양 뺨을 붙잡고 엄지손가락을 입 안으로 욱여넣어 둔 탓에 고개를 돌리거나 입을 닫지도 못했다. 위아래로 우악스러운 것들이 제멋대로 밀고 들이닥쳐 눈앞이 까맣게 점멸했다.
“히, 응, 시러, 싫……!”
무언가가 또 긁혔다. 제 뱃속에 이런 이질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산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또렷한 감각이었다. 그저 안쪽으로 기어들어 가기 위해서 몸부림치던 덩굴이 스치고 지난 것뿐인데도 허리가 절로 튀어 올랐다. 남자는 다리를 사정없이 버둥거리면서 여자의 등허리를 움켜쥐었다. 손톱 탓에 벌겋게 달아오르는 흰 등짝은 곧 피를 머금을 것이었지만 그에겐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끅끅 울음 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후덥지근해진 타액이 식도를 유린하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땀에 젖은 몸뚱이가 미끄러워 허리에 받쳐 두었던 베개가 옆으로 무너져서는 몸부림에 채여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촉수도 여자도 떨어지지 않고 남자를 적극적으로 능욕했다.
부드러운 살갗에 제 성기가 짓눌린 채 뱀처럼 꾸물대며 들러붙는 여체 탓에 훨씬 더 강력한 압박이 가해졌다. 두 명의 배 사이에서 무언가가 줄줄 흘러넘쳤다. 남자는 자신이 사정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이 허리를 들썩댔다. 아이 주먹만 한 병에 들어 있었던 샘플인 만큼 덩치가 크진 않았던 것이 점점 불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그것에 먹히고 있었다. 쾌락과 함께 이질적인 것에 대한 공포가 그의 뇌를 좀먹는 것처럼 요한은 그저 아이처럼 울부짖으며 리비아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히이, 부, 부인, 부인! 아, 안으로……, 드, 드, 들어……, 와, 앗……!”
“저런, 요한…….”
쪽 소리를 내며 줄곧 물고 빨던 그의 혀에서 입술을 떼어 낸 리비아가 야살스럽게 미소 지으며 그의 목에 팔을 둘러 꽉 끌어안았다. 가슴이 밀착되며 요한의 곤두선 첨단이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에 묻힌 채 이리저리 이지러졌다. 남자는 놓여난 입으로 싫어엇! 하고 울부짖으며 리비아의 등을 할퀴다가, 허공을 긁다가, 시트를 두드리길 반복했다.
“나도 당신의 안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만 선객이 있잖아요, 참아야죠?”
“싫, 엇, 이거, 싫어……!”
“떼쓰면 안 돼요, 벌이니까. 자아, 정히 싫다면 낳는 건 어때요? 배에 힘을 주고 밀어 내 봐요. 저게 떨어져 나가 버리면 어쩔 수 없죠. 나약한 거론 벌이 되지 않으니 다시 내 손으로 당신을 만질 수밖에.”
“응, 흐으, 으, 싫, 어…….”
“자아, 힘내요. 나의 요한. 어서.”
리비아는 짧게 웃음을 흘리며 허리를 뭉근하게 돌려 깔아뭉갠 요한의 좆과 그의 배를 자극했다. 남자는 무언가가 들어 있는 배 위로 무게가 더해지자 울음에 먹힌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착실하게 아래에 힘을 주었다.
이물감이 선명한 만큼 그것을 밀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것이 밀려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저항이 심해진 것을 깨달은 그것이 입구 근처까지 밀려나다가 발악하듯 온 덩굴 표면에 미세하고 빼곡한 침을 두르더니 말 그대로 내벽에 ‘박아’ 가며 다시 진입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아으, 아아, 아……!”
요한의 온몸이 발작적으로 뒤흔들렸다. 힘들어진 만큼 진액은 더 분비되고, 덩굴의 침에 찔린 상처 사이사이로 액이 스민다. 남자는 뜨거운 것에 덴 듯 화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찌릿한 통증과 달아오르는 신경으로 뱃속을 점하는 무뢰한의 움직임을 과할 정도로 느끼며 연이어 사정했다. 민감한 전립선을 몇 번이고 찌르고, 할퀴고, 액을 밀어 넣으며 기어들어 오는 덩굴은 이전보다 한층 더 자비가 없었다. 그는 말 그대로 무력하게 몸을 열고 보이지 않는 것에 범해지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무력함, 고통, 공포, 괴로움, 쾌락, 그 모든 감정이 날것 그대로 비치는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눈물과 타액으로 범벅이 된 채 아으으, 아으으,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녹진녹진해진 입을 제대로 다물지도 놀리지도 못하는, 무력함에서 기인하는 아름다움과 음탕함을 두른 초야의 신부. 리비아 모브레이는 희열에 몸을 떨며 제 배로 그의 성기를 밀어 올리듯 훑으며 사정을 도왔다.
“자아, 요한. 더 싸도 괜찮아요. 그간 많이 참았잖아요? 인내를 만회할 만큼 울부짖도록 해요.”
“리비, 아, 흑, 리, 리비, 흣……!”
“어쩌려고 자꾸 날 부르는 거예요, 아직 모자란가요?”
“아니, 아, 아냐, 절대……, 제발, 그러지, 으응……!”
혀를 내어 제 입술을 핥은 리비아가 한숨과 함께 천천히 그의 몸뚱이 위로 기어올랐다. 그녀가 무언가를 하려는 것만큼은 기민하게 알아차린 요한이 눈물이 고여 제대로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도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민감해진 귀두가 질척하고 미끄러운 무언가에 닿자 헛숨을 들이켜며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저 절박하게 여자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리비, 아…….”
여자는 나른하게 미소 지으며 간헐적으로 허리를 들썩일 뿐 최대한 얌전하게 얼어붙어 자신을 올려다보는 신부의 뺨을 어루만졌다.
“네, 나의 요한.”
그러고는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올려 그의 귀두를 제 입구에 맞춘 뒤 곧장 쳐 내리듯 집어삼켰다.
귀를 찢을 듯 쇳소리 섞인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리비아 모브레이는 그저 안달 난 구멍을 메우는 빠듯하고 만족스러운 성기를 자비 없이 조여 물며 몸을 일으켜 허리를 좌우로 뭉개 뿌리까지 남자의 좆을 삼켰다. 요한은 숫제 멱이 반쯤 따인 짐승마냥 울부짖으며 억억거렸다. 그저 삽입만으로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허리를 뭉개던 남자다. 점액이 밴 탓에 민감해진 구멍 속을 두들기는 쾌락과 동시에 주어진 삽입의 쾌감을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말 그대로 망가진 모습으로 의미 없는 손을 허우적거리다 리비아의 허벅다리를 긁어 댔다.
온통 비린내가 났다. 기어코 피가 터진 그녀의 등에서도, 접붙은 성기에서도, 남자가 ‘받아 낸’ 벌에서도 죄다 젖은 냄새가 났다.
여자는 소변마냥 멈추지도 않고 세차게 안쪽을 두들기며 싸질러지는 정액을 부추기듯 천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옳지, 옳지…….”
제게 뻗쳐 온 그의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부드럽게 받아 깍지 껴 잡은 채, 그것을 고삐마냥 쥐어흔들며 허릿짓에 힘을 실었다.
풍만한 젖가슴이 허공에서 거리낌 없이 출렁대며 흔들렸다. 뭇 사내들이 꿈에 그릴 만한 광경이었다. 젖가슴을 드러낸 채 사내를 짐승 삼아 타고 허리를 흔드는 미인이라니.
그러나 그녀의 짐승은 나약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어서, 기뻐하기는커녕 그저 제 눈물에 숨이 막혀 헐떡거리며 벌벌 떨어 댔다. 리비아 모브레이는 자비롭게도 그의 추한 몰골을 피하지 않고 감상하며 서로가 만족할 수 있도록 정성껏 허리를 돌렸다. 남자는 똬리를 틀기에 만족스러울 만큼 깊이 들어간 채 몸집을 서서히 불리는 덩굴에 전립선을 짓눌리는 찰나, 그녀의 포르치오까지 닿은 성기가 압박당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까무러쳤다.
리비아는 그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고 고개를 젖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떨쳐 낸 뒤 제 절정을 좇아 허리를 찧어 댔다. 잔뜩 달아오른 몸으로 절정을 맞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코앞에 어른거리는 오르가즘에 애가 닳은 여자가 제멋대로 그의 두 손을 꾹 잡고 제 쪽으로 당겼다. 축 늘어진 남자의 상반신이 무거울 텐데도 그녀의 완력엔 미치지 못한 듯 고개가 뒤로 늘어진 채 미동이 없는 요한이 리비아의 품으로 고꾸라졌다.
그녀는 땀과 제 냄새가 잔뜩 밴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등허리에 단단히 팔을 둘러 안은 채 그의 귀두가 포르치오를 짓뭉갤 수 있게끔 엉덩이를 쳐 내렸다.
“하…….”
탄성처럼 터진 첫음절 뒤로는 그저 침묵이었다. 그녀는 두 팔로 남자를 우악스레 조이며 몸을 떨었다. 만족스러울 만큼 긴 절정이었다. 접붙은 아랫도리 사이로 질펀하게 뒤섞인 체액이 꾸역꾸역 새어 나왔다. 여자는 얕게 허리를 놀려 불쾌하기는커녕 달아오른 몸으로 오히려 포상 같은 질척한 감각을 만끽하며 그의 목덜미를 세게 깨물었다.
“윽!”
멈춤 없는 덩굴 탓에 완전히 정신을 잃지도 못한 요한이 통증 탓에 퍼뜩 깨어났다. 리비아는 혼란한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남자의 어깨를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요한은 얼떨결에 등 뒤로 손을 짚은 채 그녀를 직시했다. 땀으로 젖은 온몸이 매끄럽게 빛을 발하는 요부가 달빛을 등진 채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다리 사이로는 방금 전까지 살을 붙이고 있던 수컷에게서 잔뜩 짜낸 씨물을 흘리면서.
남자는 멀거니 그녀와, 그녀의 복부와, 다리 사이를 번갈아 보다가, 그 희뿌연 점액이 뚝뚝 떨어지는 제 다리를 보았다. 그러고는 꼿꼿하게 곤두선 성기에 닿은 시선을 괴상한 감각에 따라 복부로 옮겼다. 평생을 보아 온 몸이었다.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제 몸뚱이에 있던 적 없는 희미한 윤곽이 더해져 있었다. 울퉁불퉁하게 부푼 하복부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는 천천히 몸을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뻣뻣한 고개가 두어 번 흔들리나 싶더니 절박하게 눈앞의 여자를 보았다가, 후희를 만끽하는 그녀의 부드러운 낯에서 굶주림을 읽은 직후 발광하듯 몸을 뒤집었다.
“아, 아으으, 아아…….”
싫어, 싫어. 풀린 혀로 처음 말을 배운 것처럼 어눌하게 울부짖으면서 침대 위를 긴다. 안정됐던 자세가 바뀌고 몸뚱이를 뒤틀자 자연히 안쪽에 자리 잡은 마물이 배기며 온갖 자극을 가했다. 남자는 한없이 너르게만 보이는 침대 위를 얼마 기지도 못하고 푹푹 꺾이는 팔 탓에 시트 위에 안면을 처박고 몸서리를 쳤다.
리비아는 비천하게 등을 돌리고 제 다리 사이에서 필사적으로 기어 도망치는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제 의지로 배곯은 짐승마냥 달려들어 좆대가리를 욱여 대던 꼴을 떠올리면 배로 우스운 몰골이었다.
여자는 요한의 도망을 막지 않았다. 그녀에겐 그저 겅중겅중 디디면 몇 걸음도 채 되지 않을 넓이였으므로 조급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애써 베푼 자비가 무색하게도 그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했다. 발끝을 그녀의 다리 사이에 걸친 채 제 배를 감싸 쥐고 몸을 둥글게 웅크린 채 연신 이어지는 절정에 움찔거릴 뿐. 더 이상 기지 않았다.
그 가련한 꼴에 다시금 아래가 달아오른다. 리비아는 무언가를 고민하며 천천히 무릎을 꿇어앉은 채 그의 흰 다리를 어루만졌다. 여즉 모자라다.
그녀는 찰나의 고민 뒤 그의 발목을 붙잡고 어렵잖게 제 쪽으로 쭉 끌어당겼다. 요한은 타의에 의해 몸이 그렇게나 가뿐하게 끌려가는 것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시트에 몸뚱이가 문질러지는 감각에 앓는 소리를 내며 흐느꼈다.
그녀는 엎드린 남자의 허벅다리를 제 무릎 위에 올리고 하체를 바짝 맞붙였다. 허옇고 단단한 둔덕 사이로 꿈틀거리는 끔찍한 녹색 다발을 바라보던 그녀는 그것을 조금 꼬집듯 쥐고 쭉 끌어냈다.
“히이익!”
쩌업 하고 들러붙어 있던 점막에서 딸려 나오며 추잡한 소리가 났다. 요한은 팔다리를 볼품없이 휘청이며 자지러졌지만 그녀는 자비 없이 끄집어낸 그것을 그의 앞쪽으로 돌렸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려고 꿈틀거리던 덩굴이 정액으로 미끌미끌한 살갗을 따라 그의 고환을 움켰다. 그러고는 천천히 위로 기어올라 뿌리를 한 바퀴 휘감고, 기둥으로 기어오르며 쩍쩍 들러붙었다. 그러고는 귀두 바로 아랫부분을 휘감은 뒤 기어코 요도 안으로 기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요한은 시트를 깨물며 몸부림쳤으나 리비아는 결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탐스러운 둔부를 두 손으로 꽉 쥐고 느릿느릿 주무르며 희롱했을 뿐이었다.
“자아, 힘을 빼는 게 나을 거예요. 괜히 그러다 다칠지도 모르잖아요?”
“욱, 우…….”
“이런 내밀한 곳을 해괴한 방식으로 다친 걸 스스로 거울이라도 보면서 치료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요.”
그녀는 덩굴로 꽉 조여 묶인 그의 성기를 부드럽게 손바닥으로 한번 훑어 내리며 협박했다. 요한은 우느라 등줄기를 파르르 떨며 침묵했다. 무서운 동시에 징그러울 정도로 강제적인 쾌락이 하반신을 점하고 신경까지 들쑤시듯 몸을 달궜다. 이 끔찍한 무력함이, 굴욕이, 수치가 황홀하기 그지없어서 죄악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망측한 짓거리에서 쾌락을 갈구하는 게 정상일까? 그는 이미 자신이 망가진 게 아닌지 의심했다.
“부, 인…….”
남자는 떨리는 몸뚱이를 꿈틀거리며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다. 리비아는 태연하게 그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후려치며 등허리를 짓눌렀다.
“힉!”
“얌전히 굴어요. 나의 요한, 벌이라고 했잖아요?”
“그래도……, 흐응, 이런…….”
“두려워 말아요. 어차피 당신은 이런 식으로 다뤄지지 않으면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몸뚱이가 아닌가요?”
짧게 웃음을 흘린 그녀는 덩굴로 가득한 그의 밀부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느릿느릿 휘저으며 속살댔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얌전하군요. 시제품이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라시니는 다른 사람의 사심이 섞인 취급을 당한 걸까요.”
“아으으…….”
“아무래도 좋지만.”
덩굴은 습기를 따라 게걸스럽게 뻗어 나갔다. 액으로 더럽혀진 그의 복부를 가로질러, 엎드린 탓에 살이 아래로 처져 살집이 도드라진 가슴을 가장자리에서부터 둥글게 휘감아 조인 뒤 가닥가닥 뻗쳐 유두까지 여러 가닥이 덮쳐들어 빨아 댔다. 요한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만큼의 신경을 할애하지도 못한 채 꿈틀거렸다. 허벅지 안쪽이 아렸다. 몇 번짼지 모를 낯선 절정에 허덕이면서 위아래로 틀어막혀 사정하지 못하는 성기의 괴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시트에 좆을 치대는 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그것들은 요한에게만 엉겨 있지 않았다. 지당 가까이 있던 리비아의 음부 역시 탐했다. 가장 정을 많이 품은 그녀의 구멍 속으로 천천히 뻗치는 감각은 퍽 이질적이었다. 과연 마물을 제 몸에 직접 사용하는 것은 처음인 리비아의 살갗에 살짝 소름이 돋았으나 그녀는 제 음부를 두 손으로 벌린 채 순순히 안쪽으로 파고드는 덩굴을 받아들였다.
“아……!”
퍽 자극적인 감각이었다. 부피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뿜어내는 진액이 점막에 닿자 감각이 곧장 달아올랐던 까닭이다. 그녀는 앓는 소리를 내며 그의 둔부에 제 샅을 바짝 가져다 댔다. 흡족한 먹잇감이 가까이 다가오자 신이 난 마물이 요한의 뱃속에서 아무렇게나 꿈틀거리며 그녀의 구멍으로 옮겨 붙었다. 안쪽에 고여 있던 정액을 빨아 먹으며 급속도로 덩치를 불리는 그것들에 허리를 휘며 앓는 소리를 흘리던 리비아의 손아귀가 단단히 요한의 엉덩이를 쥐었다. 그는 밭은 숨을 터뜨리며 애써 팔을 세워 몸뚱이를 지탱하고는 제 다리 사이를 보았다. 리비아의 흰 허벅지와 제 구멍 바깥으로도 뻗친 덩굴이 기괴했다.
“부, 부인, 덩굴이……, 떨어, 떨어지십시오. 왜……!”
“얌전히……, 굴어요.”
그녀의 질 속 가득 덩굴이 들어찼다. 리비아는 그 감각에 익숙해지기 위해 두어 번 숨을 고르고는 요한의 등에 바짝 몸을 붙였다. 교미하는 짐승들과 꼭 같은 모양새였다.
“괜찮지 않나요? 이게 있다면 당신을 ‘내가’ 범할 수 있는걸요.”
“무슨…….”
“응? 요한…….”
리비아는 덩굴 위로 그의 가슴을 주무르며 어깻죽지에 쪽쪽 입을 맞췄다.
“당신은 그저 얌전히 구멍을 벌리고 날 받아들이면 족해요.”
여자는 태연하게 마물을 자위 도구 삼아 천천히 허리를 추어올렸다. 요한은 곧장 욱, 하고 괴로운 듯 신음했으나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순종하지 않은 탓에 이 꼴이 났다. 무섭다는 이유로 발버둥이라도 쳤다간 더 험한 꼴이 날 테지. 실존하는 두려운 경험은 그의 합리화를 어렵지 않게 만들었다.
리비아는 그의 몸뚱이에 바짝 밀착한 채 점점 재게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항인 줄 알고 거칠게 움직이던 마물도 그녀가 이렇게 들썩거릴수록 숙주인 요한이 정액을 빨리 토해 낸다는 것을 알았는지 얌전히 어울렸다. 결과적으로, 요한은 파정하지 못해 해결되지 못한 욕구로 괴로워하면서 마물에게 액을 빨리는 꼴이 되었다.
“아, 아, 윽! 흣!”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땀과 뒤엉켜 온통 짠 내가 났다. 그는 헤벌어진 입술 밖으로 혀를 늘어뜨린 채 개처럼 헉헉대며 간신히 팔과 무릎에 힘을 주고 버텨 냈다. 한 번 리비아가 치받을 때마다 뱃속이 울렁거릴 만큼 온몸에 반동이 퍼지고, 하나로 단단히 뭉친 덩굴 덩어리가 뱃속을 진탕 휘저으며 그 낯선 절정을 몇 번이고 강제했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는 강제적인 쾌락이라니, 그는 쇳소리 섞인 교성을 지르며 손끝으로 시트를 할퀴어 댔다. 그는 생리적인 쾌감에 울부짖으며 울고, 침을 흘리고, 애걸했다.
“그만, 그만……! 응, 부인, 제발……, 아, 아응, 읏! 뱃속이, 흣, 망가져요, 망가지니까, 제발……!”
반쯤 풀어진 혀를 필사적으로 놀려 빌었다. 그는 자신이 리비아에게 범해지고 있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한 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잘못해쓰니까, 제바, 알……, 앞으론, 안, 안 그럴, 테니, 까, 아아……!”
울음 섞인 숨을 토해 내는 그의 성기를 움켜쥔 리비아가 등줄기에 입을 맞추며 내려오다 상체를 일으켰다. 요한은 괴로워하는 입과는 달리 상스럽기 짝이 없을 만큼 열정적으로 허리를 흔들며 그녀의 장단에 맞추고 있었다. 아무래도 천성일 테지. 그녀는 그의 엉덩이를 힘껏 후려갈기며 은근하게 속삭였다.
“이렇게나 환장하고 달려드는 주제에, 우는소리라니, 당치도 않군요.”
“하앙, 읏, 자, 잘못, 잘못……, 흐으응!”
우악스러운 손으로 둔부를 쥐어 벌린 리비아는 주름이 팽팽할 정도로 활짝 벌어진 그의 구멍이 게걸스럽게 덩어리진 덩굴을 씹어 대는 꼴을 바라보았다. 다물려 있던 살집이 드러난 것을 알았는지 요한이 하체를 뭉그적거렸지만 그녀가 세게 허리를 추어올리자 곧장 경직되어 자지러졌다.
“당신이 라시니를 싫어할 만도 했군요, 이렇게나 탐이 나는 걸 눈앞에서 홀로 처먹고 있는 꼴을 봤으니.”
“아닙, 니다, 아니에요, 히윽! 그런, 게에……!”
리비아는 힘으로 그의 요도에 박혀 있던 덩굴을 한 번에 쭉 뽑아내며 허리를 뭉개 힘껏 처박아 내렸다.
“아, 아……!”
그 순간, 애써 버티던 요한의 몸뚱이가 무너져 내리며 참았던 정액이 시트 위로 한껏 쏟아져 내렸다. 그는 제가 더럽힌 이부자리에 늘어져 사지를 경련할 뿐, 더 이상 앙알거리지도 못한 채 힉, 힉, 하고 숨을 들이켜고만 있었다. 리비아는 아래를 접붙인 채 후희를 잠깐 만끽하다가, 덩굴이 그의 사타구니에 도로 기어들어 가려 움찔대는 꼴을 보곤 제 다리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마물의 핵을 움켜쥐고 터뜨려 죽였다.
핵을 잃고 움직임이 멎은 덩굴을 뽑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므로, 리비아는 진정 사용이 끝난 자위 도구를 팽개치듯 가뿐하게 덩어리를 뽑아내 침대 아래로 던졌다. 그러나 요한의 안을 채우던 것은 숨이 꺼지기 전 번식 욕구에 불이 붙기라도 한 것인지 기괴하게 부풀어 오르다가 뷰룻거리는 소리를 내며 숙주의 배 속에 무언가를 요란하게 토해 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그녀가 제 다리 사이를 닦아 내다 그 꼴을 지켜보았다. 요한은 완전히 까무러친 듯 고요했다.
마물은 반항 없는 그를 모체로 삼으려 작정했는지 힘 빠진 구멍 속에 잔뜩 알을 심었다. 얼마 가지 않아 산란이 끝나고, 움직임이 멎은 촉수가 축 늘어지자 그것을 쭉 잡아당겨 뺀 여자는 뻐끔거리며 진액을 뚝뚝 흘리는 그의 구멍 입구를 손끝으로 덧그렸다. 이렇게나 벌어져 있는데도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꽤나 점성 좋은 액으로 구멍을 막은 것이겠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예상치 못한 여흥이 생겼을 뿐. 그녀는 기절한 요한의 몸뚱이를 뒤집은 뒤 어깨를 흔들었다.
“요한, 요한.”
“…….”
“일어나는 게 좋을걸요, 요한. 험한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그러나 과격하게 시달린 그가 이렇게나 금방 일어날 수 있을 리가 만무했으므로 리비아의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그녀는 몇 번 더 그를 깨우려 시도하다 얼마 가지 않아 포기했다. 어차피 알을 품은 것이 저도 아니고 요한이었으므로 그리 급박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축축하게 젖은 요한의 뺨을 길게 핥아 올리다 눈가에 키스하고는 그를 제 품에 끌어안고 누웠다. 실로 흡족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