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을 겨누는 자
남자는 얼마간 차가운 풀밭 위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저택은 몹시 적막했으며, 저 멀리 떨어져 빛나고 있는 별저만이 마치 다른 세상인 양 시끌벅적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이 꼴로는 누구의 눈에 띄든 그다지 좋은 꼴은 보지 못하리란 사실을 상기하며 조용히 어둠을 더듬어 제게 배정된 손님방으로 돌아왔다.
“후…….”
그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애매한 위치를 싫어했다.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사촌 형제들은 제 맘에 들지 않을 때면 ‘평민 주제에!’ 하고 언성을 높였고, 걸핏하면 언제고 모독죄로 널 아무렇게나 다룰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자신의 대단한 아량을 자랑했다. 아버지는 늘상 똑같은 가문에 똑같은 부모 아래 태어났지만 차남이라는 이유로 귀족이 아니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평을 십수 년간 읊으며 살았다. 선남작이 적당히 재산을 분배해 준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일이다.
해서 라시니는 사촌의 집에 찾아온 또래 손님들이 사촌보다 자신을 더 찾는 이유가 이 멀끔한 얼굴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부터 어떤 일이건 했다. 어린 소녀들의 비위를 맞춰 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다른 귀족 소년들처럼 그녀들을 깔보지 않고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되는 손쉬운 일이었다.
남자는 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살짝 터진 입술과 식은땀이 맺힌 창백한 뺨, 흐트러진 금색 머리칼, 그 아래 반짝이는 청록색 눈동자. 험한 꼴을 보건 아니건 간에 자신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계획대로 공작 부인 역시 꾀어내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리비아 모브레이는 위험하다. 결코, 그 눈은 단순한 욕정을 품은 눈이 아니었다. 무어라 형언하기 복잡한 감상이 우글우글 들끓었다. 여자의 눈은 차라리 포식자에 가까웠다. 이것을 어디부터 삼키면 좋을까 고민하는 눈치였던 그 서늘한 시선을 떠올리면 지금도 설핏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도망칠 수 없었다, 후작 영애에게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미운털이 박힌 이상 공작 부인의 비호를 얻지 못하면 그는 끝장이었으므로.
라시니는 자신의 몸이 설핏 더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하의와 겉옷을 벗어 두고 침대에 몸을 묻었다. 경련을 일으켰던 팔다리가 여즉 저렸다.
* * *
물론 남자는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얕은 잠에 얽매인 채 자세를 얕게 바꿔 가며 힘들어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엎드려 누운 채 앓는 소리를 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유두가 어느샌가 단단하게 뭉쳐 셔츠에 스칠 때마다 욱신거렸고, 샅이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 없이 한껏 부풀어 올라 선액으로 속옷을 적시고 있었다.
“……아.”
그는 몹시 당황스러워하며 벌떡 일어났다가, 만찬 이후 공작 부인과 있었던 일을 어렵사리 떠올렸다. 그녀가 말했던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것’이 이것을 위한 조항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동시에 조금쯤 우스웠다. 미약이라면 처음이 아니다. 미약은 기본적으로 내성이 생기기 쉬운 약이었으므로 한두 발 정도만 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 뻔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혀를 차며 웃고는 속옷을 끌어 내렸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표면이 우둘투둘한 성기가 튀어나왔다. 섬세하고 화사해 일견 꽃처럼 보이는 외양과는 지나치게 동떨어져 있는 흉한 생김새의 성기였다.
남자는 자신의 기둥을 움켜쥐고 느리게 흔들기 시작했다. 달아오른 몸은 별도의 망상이나 전희 없이도 충분히 성감을 느끼고 있었다.
라시니는 문득 공작 부인을 떠올렸다. 그녀 역시 자신의 몸을 원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드레스를 벗기지 않고 그녀의 아래에 자신의 좆대가리를 욱여넣는 상상이 뒤를 따랐다. 그 창백하고 고압적인 얼굴이 쾌락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생각만 해도 척추에 전율이 흘렀다.
“흐……, 읏…….”
꽉 잠긴 목소리가 뜨문뜨문 잇새로 흘러나왔다. 남자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열정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흔들었다. 그녀의 가슴은 옷 위로도 대단한 부피였으니 벗겨 둔 채 힘껏 추삽질하면 엉망으로 흔들리며 색스러운 꼴로 흐트러질 테지.
그는 고개를 조금 뒤로 젖히고 허릿심으로 좆을 치댔다. 그녀의 섬세하고 풍만한 여체를 유린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갈 것 같다. 차근차근 절정감이 차오른다. 남자의 흉곽이 한껏 부풀었다. 절정을 앞에 두고 한껏 가빠진 숨과 허릿짓, 저릿저릿한 쾌감이 한껏 치달은 순간.
“하……?”
이상을 깨달았다. 사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감았던 눈을 뜨고 자신의 성기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절정에 이를 듯 선액이 울컥울컥 비어지는 귀두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손을 재게 놀려도 쾌락을 느낄 뿐 사정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손을 느리게 놀려도 성감이 가라앉질 않았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그제야 식은땀이 죽 흘러내리는 것을 깨달았다. 쾌락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손을 떼도 그랬다. 절정 직전의 붕 뜬 성감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왜…….”
그는 제 손아귀로 귀두를 굴리며 살짝 아플 정도로 꾹꾹 성기를 주물렀으나 절정 직전의 쾌락 위로 자극이 덧씌워질 뿐 사정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 위로 자극이 한 꺼풀 더 얹혀 허리가 절로 들썩거리기만 했다.
남자는 온갖 짓을 했다. 늘상 성욕에 져 이성적으로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인간들을 경멸해 온 주제에 막상 닥치니 그런 것들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손을 대면 댈수록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달아오른 가슴은 건드리기만 해도 아렸고, 성기는 이제 선액으로 뒤덮여 마치 향유라도 뒤집어쓴 듯 미끈거렸다. 그는 정신을 반쯤 놓고 시트에 제 좆을 치대다가 체력을 다 쏟은 뒤에야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욕실로 비척비척 걸어가 욕조에 몸을 담갔다.
입욕제조차 없이 그저 찬물에 몸을 담그고 입술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 머리끝마저 담갔다가 고개를 수면 위로 내밀기를 반복했지만 이렇다 할 소득은 없었다. 성기는 여전히 시들 줄을 몰랐고, 자신은 절정에 이르지 못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욕조 밖으로 나와서도 차마 몸을 닦지도 못하고 수건을 노려보다가 자신의 머리칼만 손으로 꾹꾹 눌러 물기를 짠 뒤 샤워 가운을 걸쳤다. 가슴이 쓸려 자극이 될까 봐 여미지도 못한 채 침대까지 와서, 시트나 이불에 연신 쓸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지 고민하다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엎어져 잠들었다. 온몸의 신경은 여전히 곤두서 삐죽거렸다.
* * *
리비아는 한 사람이 모자란 조찬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식사했다. 이블린은 어젯밤 상한 속이 여전한지 기죽은 얼굴로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빵을 새 모이처럼 조금씩 뜯어 입에 넣는 둥 마는 둥 하며 깨작거리고 있었다.
“입맛이 없는 건가요, 영애?”
얼마나 신경 쓰이게 굴었으면 저리도 직설적으로 물어볼까. 리플리 영애는 화들짝 놀라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녀의 어미가 보았다면 아주 통탄할 노릇이었다. 생떼를 써서 굳이 적진에 놀러 가더니 공작 부인에게 이렇다 할 평가도 얻지 못하고 약점이나 잔뜩 보이고 오다니.
여즉 소녀의 눈가가 불긋한 것을 보아하니 밤새 운 것이 분명했다. 부기를 빼느라 시녀가 진땀깨나 뺐을 테지. 리비아는 긴 머리카락을 하나로 느슨히 땋아 내린 채 가벼운 실내용 드레스와 숄만 걸치고도 편안한 차림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블린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한 와중에도 리비아를 흘끔흘끔 바라보며 그 완전함에 감탄했다. 과연 모든 귀부인의 교본이라 일컬어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고 보니 부인, 오후에 별도로 일정이 있으신가요?”
“아뇨, 달리 없답니다. 어찌 그러시나요?”
“영애께서 꽃에 관한 관심이 지대하시더군요. 얼마 있지 않아 다과회를 여신다 들었는데, 선배 된 입장에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면 어떨까 해서요. 과한 참견이었을까요?”
이블린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한 이야기를 기억해 주었다는 것이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릴리아는 소녀의 반응을 보곤 곧장 청산유수로 리비아의 말을 받았다.
“저야 그럴 수 있다면 기쁘지요. 영애께서는 괜찮으실까요?”
“전 좋아요, 감사할 따름이지요! 저어, 공작 부인께서는…….”
“오랜만에 집 밖을 벗어났더니 긴장이 풀렸지 뭔가요. 저는 휴식할 생각이랍니다. 함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영애.”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너무 과욕을 부렸어요. 마음을 써 백작 부인께 부탁까지 해 주셨는데도.”
소녀는 허둥지둥 반쯤 소리치듯 말했다. 그녀는 늘 리비아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리곤 했다. 의례적인 빈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리비아는 빙그레 웃으며 냅킨으로 입술을 닦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날게요, 아. 사과의 의미라기엔 약소하지만 마담 누아레에 기별을 넣어 두었어요. 영애가 방문한다면 몸소 모시겠노라 공언하였으니 이후 방문할 예정이 생기신다면 기쁠 거예요.”
“마담 누아레……!”
이블린의 뺨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웬만하면 예약 하나 잡기도 힘들기로 유명한 마담 누아레의 숍을, 그것도 누아레 본인에게 옷을 맞추려면 천운이 필요하다는 그것을 어찌 저리 손쉽게 해낼까. 새삼스럽게 포웰 공작가의 위명을 실감하면서도 설레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는 어느덧 간밤에 자신에게 수치심을 주었던 액세서리 따위는 까맣게 잊은 채 열정적으로 아침 식사를 해치우기 시작했다.
* * *
리비아는 그길로 몸을 돌렸다. 남자가 조찬에 나오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제정신이 아닐 테니까. 당장 어젯밤 후작 영애에게 그런 짓을 하고도 식사 자리에 동석하기는 그 두꺼운 철면피로도 여간 어려운 일이었을 테다. 심지어는 몸뚱이마저 그 모양 그 꼴이 아닌가?
여자가 모퉁이를 돌자, 예상대로 시녀 한 명이 종종거리며 지나가다 조용히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마저 걸음을 옮겨 사라졌다. 요깃거리가 담긴 쟁반이 어느 방문 앞에 놓여 있다. 그녀는 그 방으로 다가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나예요.”
안이 잠깐 소란했다. 발을 잘못 딛기라도 했는지 살짝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다가 화급하게 문이 열렸다.
“부인?”
고통에 가까운 열락에 시달린 탓에 발갛게 달아오른 뺨과 잔뜩 헝클어진 채 땀으로 젖어 면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수습하지도 못한 라시니 몬테필트로가 나와 당황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가, 애써 예쁘게 웃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준비되지 못한 모습으로 뵙게 되어…….”
“아뇨, 제대로 준비된 것 같군요.”
그녀는 강박적으로 꽁꽁 싸맨 가운 위로 또렷하게 성기의 윤곽을 드러낸 사타구니 언저리를 바라보며 까딱 턱짓했다.
“나와요.”
“……예?”
“두 번 말해야 할까요?”
“아, 아닙니다.”
라시니는 침착하게 입술을 사리물고 복도를 둘러보더니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조심스럽게 방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문 뒤에 숨지 못하고 완전히 드러난 그는 연신 몸을 떨고 있었다. 진정되지 못한 사람처럼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남자는 누가 보더라도 색스러웠다. 애써 평정을 가장한 미소가 설핏 일그러지는 순간마다 가학심이 요동쳤다. 리비아는 그를 꽤 염려하는 척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보며 이야기했다.
“꽤나 상태가 나빠 보이는군요, 몸이 좋지 않기라도 한 건가요?”
“……아닙니다. 조금 잠을 설쳐 그럴 뿐이니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부인.”
“저런, 수음도 제대로 못 하는 덜 여문 사내였나요?”
그녀는 몹시 여상스럽게 그를 매도했다. 지나치게 자연스러워 듣고도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움칠 몸을 굳힌 채 그녀의 의도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가 적당한 반응을 내놓기도 전에, 리비아가 자연스럽게 그를 에스코트하듯 제 팔을 남자의 허리에 둘러 품에 끌어안고 복도 중앙으로 끌어냈다.
“부, 부인?”
“왜 그러죠? 무엇이든 맞출 자신이 있다고 했던 것을 잊은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단정치 못한 꼴을 보여 드리려니 부끄러워서…….”
“개의치 말아요, 나는 발정한 금수들의 치태에 너그러운 사람이니까.”
리비아는 태연히 그의 매끄럽고 단단한 옆구리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라시니는 헛숨을 들이켜며 몸을 한껏 경직시켰다. 리비아의 가벼운 옷차림 탓에 몸이 맞닿자 그녀의 가슴이 제 몸에 눌려 부드럽게 뭉그러지는 감촉이 선연한 탓이었다. 밤새 헐떡이며 상상했던 감촉이 갑작스럽게 주어지자 마치 순결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지나치게 의식됐다.
그녀의 손은 경직된 남자의 옆구리에서 유연하게 기어올라 그의 가슴께에 닿았다. 라시니는 여자의 가느다란 팔에 안겨 마치 추행당하듯 한껏 달아오른 가슴을 손끝이 스치자 몸을 흠칫 떨었다.
“잠은 좀 잤나요? 그 고운 얼굴이 상할까 걱정이 되는군요.”
“흐, 읏…… 저는…… 괜, 찮습니다. 부인…….”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만만치 않았다. 그는 그런 상태로도 표정만큼은 제법 매끄럽게 가다듬어 웃고 있었다. 리비아는 드디어 회가 동해 가운 위로 그의 유륜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덧그리며 만져 주었다. 얼러 주듯 희롱하는 손길에 남자의 떨림이 좀 더 요란해지는 것은 지당한 수순이었다.
“젖을 이리도 빳빳하게 세워 두고도 괜찮게 잤단 말인가요? 역시 몸을 아끼지 않고 굴렸던 깜냥은 있군요.”
돌연 가운 앞섶이 확 벌어졌다. 리비아가 가운을 그러쥐고 확 잡아당긴 탓이었다. 한낮의 복도에서, 언제든 다른 사람이 올 수 있는 곳에서 잔뜩 달아오른 맨살을 내보이게 된 남자가 질겁을 하며 반사적으로 그녀의 품에서 벗어났다.
“왜 도망가죠?”
리비아는 부드럽게 눈을 접어 웃었다. 남자는 앞섶을 다시 여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팔로 제 가슴을 가린 채 식은땀을 흘렸다. 철갑 같던 그 검은 드레스를 벗어나도 그녀의 위압감은 여전했다. 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복도라는 것은 안심이 되기는커녕 배로 그를 긴장하게 했다.
“대답해야죠, 날 꾀기 위해 발칙한 몸뚱이를 들이댔던 지난밤과는 사뭇 다른 태도군요.”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에게 다가갔다. 라시니는 엉거주춤 물러나다 벽에 등이 닿아 더는 물러나지 못하고 그저 애써 예쁜 미소를 내걸 뿐이었다.
섬세한 손끝이 가운 사이로 드러난 그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쓸어 올렸다.
“응? 라시니 몬테필트로.”
“부인…….”
손가락이 천천히 위로 파고들었다. 남자는 숨을 헐떡이며 재차 부인, 하고 불렀으나 그녀는 멈춰 주지 않았다. 후끈후끈하게 열이 오른 사타구니 안쪽을 슬슬 문지르다가, 그의 고환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살살 굴려 주었다.
“라시니.”
“으, 흣…….”
밤새 그의 무용한 발악으로 한껏 달아오른 몸뚱이가 낯선 자극에 절조 없이 퍼득거렸다. 부드럽고 섬세한 손아귀에 갇혀 능숙하게 희롱당하는 감각에 애써 옆으로 밀어 두었던 성감이 덩치를 불렸다. 남자는 애교 있게 미소 지으며 애원했다.
“부, 부인, 차라리 제 방으로…… 안에서 봉사할 기회를 주신다면…… 흐윽!”
살짝 아플 만큼 힘을 주어 꾹꾹 주무르는 감촉에 남자의 입이 딱 다물린다.
리비아는 빙그레 웃으며 남은 한 손으로 그의 허리끈을 당겨 풀었다. 매가리 없이 맨몸이 전부 드러났다. 불긋한 색을 띠고 꼿꼿하게 달아오른 두 첨단과 미끌미끌하게 젖어 꺼떡대는 흉하게 생긴 커다란 성기. 리비아는 남자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며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일개 손님방 따위에 들어가기는 싫어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두려웠다. 그녀는 퍽 우아하게 그가 이 복도에서 유린당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그간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방식에 일순 아연했다.
여자는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던 손으로 부드럽게, 마치 겁먹은 짐승을 어르듯이 그의 뺨과 목줄기와 가슴팍을 살살 만져 주었다. 남자는 전혀 성적 함의가 없는 담백한 손길에 홀로 자극당해 경우 없는 종마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리비아는 그의 필사적인 미소가 당혹과 쾌락으로 우글우글 일그러지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의 유두에 입 맞추었다.
“흣……!”
“불쌍해라…….”
입술을 댄 채 살금살금 속삭이자 그녀의 숨과 입술이 스치며 끔찍할 정도로 애달픈 자극을 주었다. 라시니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며 천천히 그녀가 자신의 젖을 빠는 감촉을 받아들여야 했다.
“으, 웃…….”
부드러운 입술이 예민해진 유륜을 긁듯이 물고, 천천히 오물거리며 힘을 차근차근 더해 빨아 올린다. 남자는 턱에 힘이 풀릴 것만 같아 손으로 제 입을 우악스럽게 틀어쥐고 소리를 삼켰다.
할 수만 있다면 온갖 상스러운 욕을 다 지껄이며 그녀를 밀쳐 내고 싶었다. 해소되지 못한 쾌락으로 첨예해진 신경은 그만큼 민감했다.
그러나 동시에, 리비아 모브레이를 밀어 낸다면 그 누가 자신을 달래 주겠는가? 이미 지난밤 동안 온갖 굴욕적인 수음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가지 못한 몸이었다. 여자가 준 고통이었으니 그녀는 이것을 끝낼 방법을 알지 않겠는가. 무엇보다도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 하는 것보다는 남의 손과 입을 타는 편이 훨씬 기분 좋았다.
“흐, 아…….”
몸뚱이가 파르르 떨렸다. 가슴으로 딱히 느끼는 편도 아니었던 탓에 생소한 쾌락에 어쩔 줄을 몰랐다. 허리 언저리가 자꾸 들썩대는 낯선 성감, 이로 부드러운 유륜과 딱딱하게 도드라진 유두를 죽 긁어내릴 때마다 응, 응, 하고 답지 않게 귀여운 신음이 비어졌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혼곤한 정신으로 누군가가 이쪽 복도로 오지 않길 빌며 인기척을 살피는 것과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죽이는 것뿐이었다.
여자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동정조차 떼지 못한 이를 다루듯 상냥하고 느긋하게 혀로 유륜을 둥글리고, 입술로 뾰족하게 선 유두를 지분거리며 예뻐하다 혀끝으로 유두 중앙을 후벼 댔다.
“아, 부인……, 누가, 올, 지도…….”
라시니는 저도 모르게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그녀에게 앙탈을 부리듯 뇌까렸다. 한층 순순해진 태도를 칭찬하듯 고환을 어루만지던 손이 위로 기어올라 뿌리 부분을 꽉 감아쥐었다.
“힉……!”
“누가 오면……, 뭐, 보여 주세요, 어차피 당신의 목적이지 않나요.”
“목적, 이라니…… 흑!”
“나의 총애를 받는 연인으로 알려지고 싶은 것 아니었나요?”
“부인, 이런, 이런 건, 연인이라기엔……!”
남자는 자신의 체액으로 미끄럽게 젖은 좆대를 부드럽게 훑어 주는 것만으로도 말대답을 이어 가지 못하고 고개를 뒤채며 헐떡거렸다.
“부, 인…….”
“내 연인의 용도와 취급은 내가 정해요, 라시니.”
그녀는 아플 정도로 질근질근 그의 유두를 짓씹으며 성기를 주물럭거렸다. 남자는 거의 자지러지며 형편없이 벌벌 떨었다. 지나치게 느낀 나머지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그는 리비아의 말에 트집을 잡거나 아양을 떨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헐떡거리기에 바빴다. 여자의 손끝이 민감한 귀두 아래를 꾹 누를 때에도, 흥분과 다른 감각으로 따끔따끔해진 젖꼭지를 핥아 달랠 때도, 가운 앞섶을 붙잡아 밀쳐 어깨에 간신히 걸쳐져 있던 천이 팔뚝을 타고 흘러 진정 전라가 되었을 때도 무어라 하지 못했다.
“아프, 아픕……니다, 부인, 아파요…….”
“아픈 걸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요?”
“아픈 건 싫……, 흑!”
“이렇게 안달 난 몸으로 교태를 떠는 주제에?”
리비아는 손아귀에 쥐고 만져 주던 그의 흉한 살덩이를 내팽개치듯 놓아주고는 벽에 딱 붙어 후들후들 떨고 있는 남자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져 그의 꼴을 위아래로 샅샅이 훑어보았다. 수치심과 쾌락에 흐트러져 눈물과 땀 맺힌 낯으로 어떻게든 예쁘게 웃기 위해 힘쓰는 꼴로, 실오라기 하나 없는 맨살을 드러낸 미남자는 보기에는 꽤 흡족했다. 무엇보다 배에 바짝 올라붙어 꺼떡거리는 우둘투둘하고 검붉은 성기가 안달이 나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그는 자못 억울한 듯했다. 여태껏 자신을 이리 다룬 사람이 없었던 탓이겠지만 그 억울함마저 이쯤 되면 흥분을 부추기는 역할밖에 되지 못한다.
억울해하면서도, 분해하면서도, 이해되지 않아도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웃는 그의 현명하고도 비굴한 성미를 밑바닥까지 긁어내 굴종을 꾹꾹 새겨 넣고 싶다. 리비아는 라시니 몬테필트로의 그 유들유들한 미소가 걷히고 나서야 진정으로 그에게 욕정을 느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당신이 아는 방식으로 당신을 예뻐해 줄 수는 없어요.”
“제가……, 부인의 심기를, 어지럽혔습니까? 혹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릴 테니…….”
“아뇨, 당신의 문제가 아니에요.”
리비아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눈을 빛냈다. 섬뜩하고 위압적인 녹색 눈. 당장에라도 그를 통째로 삼킬 것만 같다.
여자의 손이 아주 천천히 그의 복부를 간지럽혔다. 음모가 시작되는 부분에서부터 보기 좋게 팬 복근의 또렷한 선을 천천히 타고 올라 명치에 다다라 손톱을 세운다.
“그러니, 그저 순응하는 것이 나을 거예요. 어차피 이유조차 없는 일을 뉘우치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어요?”
그는 여전히 억울해 보였다. 정확히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그녀가 괴상해 보였겠지. 그러나 더는 가르쳐 줄 생각이 없을뿐더러, 어차피 도구일 뿐인 사내가 많이 알아 보았자 속을 시끄럽게 만들 뿐이므로 리비아는 그의 불만을 다른 쪽으로 해소해 주는 친절을 발휘했다.
“흐읏……!”
하얀 손이 모로 미끄러지며 그의 가슴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예민해진 감각은 단순한 접촉에서마저 성감을 느꼈다. 손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고, 남자에게는 노골적인 희롱이 이어졌다. 차마 자신이 당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취급이었다. 아랫가슴을 손바닥으로 추켜올리며 뭉개듯 문지르는 방식이 느릿하게 반복되자 절로 안달이 났다. 부드러운 손에 유두가 이리저리 쓸리며 애가 타는 것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는 충족되지 못한 성감에 매몰되어 자신이 손님으로 방문한 백작저의 복도 한복판에서 헐벗은 몸으로 별다른 강제성도 띠지 않는 여자에게 가슴을 내맡기고 헐떡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렸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완전히 잊었을 텐데.
“손님방 정리 끝나면 별저던가?”
“응, 인원 결손이 생각보다 많다더라고.”
“아니, 우리 짬에 별저 치다꺼리도 해야 해?”
“어쩔 거야, 당장 기십 명씩 채용할 수도 없는 일인데…….”
철렁했다. 하녀로 추정되는 여성 두 명의 위기감 없는 목소리가 도란도란 들렸다. 라시니는 싸하게 얼어붙은 채 눈을 떨며 리비아 모브레이를 바라보았다. 사람이 오고 있는데 어떡할 셈인지 추궁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이런 변태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단들 귀부인들의 교본이라고 불리는 주제에 고용인들 앞에서 충분히 치부가 될 만한 이런 행각을 이어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상식적인 판단이 서기는 했지만, 본능적인 불안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부인, 사람이…….”
라시니는 애원하듯 그녀를 불렀다. 기어들어 가는 듯한 소리였지만 지척이니 듣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 그러나 리비아는 재깍 반응하지 않고 차분하게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무언가를 가늠하더니, 벽에 몰려 있던 탓에 창틀과 벽을 비스듬하게 짚고 있던 그의 손목 중 하나를 틀어쥐고 제 쪽으로 당겼다. 새삼스럽지만 대단한 힘이라, 남자는 어렵잖게 그녀에게 딸려 갔다. 동시에 안도했다. 아, 적어도 상식적인 선에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그는 제발 부인이 방 안으로 자신을 데리고 들어가거나, 하다못해 하녀들을 돌려보내기라도 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여자는 차분하게 그를 제 앞에 세우고 등 뒤에서 팔을 뻗쳐 라시니를 끌어안은 듯한 모양새로 그의 가슴과 성기를 틀어쥔 채 가운이 흘러내려 드러난 잘 다듬어진 등에 얼굴을 묻었다.
“부, 부인.”
남자는 거의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다.
리비아는 그를 계단 쪽과 마주 보도록 세운 채 손을 놀렸다. 라시니가 흠칫거리며 계단과 자신을 번갈아 보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의 유두를 꼬집어 당기며 손아귀에서 굴리고 기둥을 손으로 짧고 빠르게 훑어 주었다. 채 손에 쥐이지 못한 부분이 허공에서 덜렁거렸다.
“오, 오고 있습니다, 부인, 하녀들이…….”
“맞아요, 오고 있죠. 입이 꽤 싼 것 같네요.”
그녀는 마치 연인의 품을 대하는 듯 사뭇 다정하게 그의 등에 입 맞추며 속삭였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숨과 입술이 낱말을 만들 때마다 스치는 감각에 흠칫흠칫 떨면서도 자신의 꼬락서니를 내려다보았다. 얄따랗고 흰 손에 붙들린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희롱당한다. 이대로라면 누군지도 모를 여자들에게 이 꼴을 보이고야 말 것이다. 하물며 공작 부인은 자신의 몸뚱이를 방패 삼고 있으니 제대로 보이지도 않겠지. 상징처럼 여겨지던 검은 드레스 차림도 아니니 소문이 난다고 해도 라시니 몬테필트로가 묘령의 여인과 변태적인 성생활을 즐겼다는 정도일 것이다. 아니, 과연 그녀가 인지되긴 할까. 헐벗은 채 반쯤 녹아 흐느끼는 남자라는 충격적인 광경 앞에 여자의 흰 팔 따위가 얼마나 시선을 끌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하물며 이 백작저에서.
러스킨 백작 부인의 고압적인 적대감을 떠올린다. 이 일이 들키면 추문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숱하게 들어온 귀부인을 꼬드겨 잘살아 보려다 망했다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서늘한 매도와 경멸들, 립스틱과 담배를 문 여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흐윽, 흐으읏…….”
자신의 이 꼴.
공작 부인에게서 영지를 받는다고 해도 뭇사람들이 자신을 하찮고 천하게 볼 것이다. 온갖 여인들이 자신을 길바닥을 굴러다니는 발정 난 수캐처럼 흘겨보고, 손을 대고, 어쩌면 누군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이렇게 범해질지도 모르지.
혼미해진 뇌리에 난잡하게 떠오르는 파멸적인 상상들에 리비아가 내리는 쾌락이 뒤엉키자 머리가 녹아내릴 듯 저릿하게 오싹오싹한 흥분이 차올랐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저도 모르게 제 입 안에 밀어 넣은 자신의 손가락을 짓씹으며 성기를 틀어쥔 공작 부인의 손아귀에 허릿짓을 했다.
“청소 도구 들고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도 일이란 말이야.”
목소리가 한층 더 가까워졌다. 바로 아래의 층계참 언저리겠지.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아, 나는―
“리아, 마가렛! 하녀장님이 부르셔!”
“뭐? 지금?”
“빨리!”
남자는 하녀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밤 내내 묵혀 왔던 오르가즘이 한순간 해방되며 이성을 난자했기 때문이다. 그는 더없이 상스러운 몰골로 자신의 파멸을 망상하며 허공에 탁액을 싸질렀다. 타액과 생리적인 눈물이 흘러내리며 정액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한참 동안 쏟아 냈다. 공작 부인은 마치 그의 성기를 소의 젖 따위처럼 무심히 쥐어짜 사정을 도왔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곱아든 손발끝을 경직시킨 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힉, 하으…….”
끝났다, 완전히. 인간으로서는 끝났다.
그는 스르르 무너져 카펫 위로 무릎을 꿇었다가 차마 몸을 지탱할 힘조차 남지 않아서 모로 쓰러져 누웠다. 온몸의 근육이 바짝 긴장한 채 벌벌 떨렸다. 자신이 저지른 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현실감 없는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면서 저릿저릿한 희열에 몸서리쳤다.
벌건 카펫 위를 내지르는 정액을 보고 있노라니 리비아 모브레이가 말한 그저 순응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말이 본능적으로 이해되었지만 어차피 자신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미 하겠다고 한 일, 심지어는 무른다고 해서 자신을 강제할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 사람과 약속해 버렸다. 그런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오랜 특기였다.
여자가 그를 굽어본다.
“꽤나 기분 좋았던 모양이네요, 라시니 몬테필트로.”
어쩐지 눈물이 났다. 남자는 부옇게 흐려지는 시야 속 짐승처럼 또렷하게 빛나는 그녀의 녹색을 바라보았다.
“너무 오래 누워 있진 말아요, 땀이 식으면 생각보다 감기 걸리기 쉬우니까. 모쪼록 몸조리 잘하기 바라요. 아직 남았잖아요?”
그는 우글우글 일그러진 입매로 웃으며 속삭이듯 뇌까렸다.
“약속…….”
“맞아요.”
그녀는 손을 뻗어 라시니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주고는 사뿐하게 자리를 떠났다. 남자는 멀어져 가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며 재차 절조 없는 좆대가리를 세우고야 말았다.
* * *
땅거미가 내렸다. 들이켜는 숨에서 희미하게 비 냄새가 났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해가 벌겋던 오전 중에 겪은 수모를 되새기고 되새기며 몸부림쳤다. 이성을 좀먹던 성욕에서 해방되고 나니 자신이 한 짓이, 겪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수치스러워 죽고 싶었다.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쓰레기라고 매도해도 깊이가 없었고, 자신의 추태를 약의 탓으로 돌려 봐도 미지근했다. 남자는 슬슬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자신은 구제 불능의 상스러운 남자라고.
그는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멀끔하게 정리해 반쯤 넘긴 금색 머리칼, 매끄럽고 차분한 흰 얼굴, 온화한 곡선을 그리는 입술,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도 어쩐지 달랐다. 이 얼굴이 어색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생소한 기분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며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한없이 떨떠름했다. 자신의 성적 취향이 그 모양 그 꼴인 걸 자각해도 여전히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정직한 남자였다. 돈과 권력 앞에서는 얼마든지 신념과 자존심을 진정으로 기쁘게 팔아 치울 수 있는 인간이 라시니 몬테필트로다. 갖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떠올라도 그녀가 약속한 영지를 떠올리면 모든 것이 괜찮았다. 포웰 공작 부인이라는 뒷배경을 등에 업으면 제가 바랐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데에 생각이 닿자 잡념들은 온데간데없이 가라앉고 결심만이 남았다.
* * *
정원에는 사람이 없었다. 러스킨 백작 부인이 이블린 랭글런드와 살롱에서 시간을 보내러 찾아간 탓에 전날 별저에 묵었던 예술가들 대부분이 그대로 그 자리에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정원은 점차 조명이 줄어들다가 이윽고 거의 빛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만큼 컴컴해졌다. 남자는 기억을 더듬어 차근차근 어젯밤 그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그곳까지 가는 것이 마무리니까.
그 자리를 더듬어 찾으면 찾을수록 인적이 없다 못해 외따로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시니는 그녀와 엮이며 자신이 이미 두 차례 겪은 수모를 떠올렸다. 오한을 닮은 감각이 오싹 등골을 내달리는 와중, 또렷한 시선이 느껴졌다. 착각할 리 없는 공작 부인의 그것이다. 남자는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부인.”
달빛 아래 웃고 있는 남자는 마치 몰래 정인이라도 만나러 도망쳐 나온 소년처럼 순진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리비아는 그에게 여상스러운 미소를 지어 주며 까딱 제 앞을 턱짓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떨리기라도 하는지 자신의 가슴께를 꾹 누르고는 서둘러 제 앞에 섰다.
“그 뒤로 좀 쉬어 뒀나 보군요.”
“부인께서 그리 염려해 주신 뒤 떠나셨으니까요.”
그의 반응만 보아서는 그런 짓을 당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리비아는 그의 옆구리에 손을 둘러 제 쪽으로 바짝 당긴 뒤 턱선과 목덜미 언저리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느릿하게 숨을 들이켰다. 남자의 등줄기가 단단하게 굳어진다.
“왜 그러죠?”
“부인께서 가까이 다가와 주시니 몸 둘 바를 몰라서 저도 모르게…….”
그의 청록색 눈에 희미한 열락이 스쳤다. 리비아는 그를 사선으로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상기된 뺨, 갑작스레 어질러진 호흡, 힘이 들어간 하악과 희미하게 떨리는 몸. 남자는 몸소 자신이 얼마나 욕망에 투철한 사람인지 증명하듯 제 앞에 서 있다. 리비아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미련 없이 떨어져 나왔다.
“약속은 약속이죠, 축하해요. 라시니 몬테필트로. 당신은 앞으로 랭골드령의 영주가 될 거예요. 정식적인 절차는 사흘 뒤로 하죠. 당신 앞으로 위임장을 보낼 테니 그리 알고 있도록 해요.”
“감사합니다, 부인.”
남자는 환히 웃었다. 나름대로 제어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염원하던 것을 이룬 그의 낯은 상당히 화사해 보였다. 지나치게 탐욕스러워 외려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 수려한 얼굴.
“나 역시 드물게 괜찮은 여흥을 즐겼으니 되었어요, 난 이만 가 보도록 하죠. 당신도 적당히 시간을 두고 돌아가도록 해요.”
“아.”
리비아의 걸음이 떨어지자마자 반사적으로 그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설핏 돌아보자 라시니는 눈에 띄게 미적거리는 분위기로 입술을 달싹거리고만 있다.
“용건이 남았나요?”
그는 천천히 자신의 코트를 벗었다. 샅이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고, 얇은 드레스 셔츠 한 장뿐인 탓에 옷 위로 뾰족하게 도드라진 유두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코트를 벗은 직후부터 천천히 낯을 붉히더니 살짝 달뜬 목소리로 눈을 내리깐 채 그녀를 유혹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인.”
리비아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그의 몸뚱이를 훑어 내린다. 남자는 자신의 입술을 혀를 내 핥으며 야살스레 미소 지었다.
“제 명예로 영지를 샀으니, 제 몸으로 당신의 비호를 사고 싶습니다.”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면서도?”
“말씀드렸지 않나요.”
남자의 촘촘한 금빛 속눈썹이 팔랑거렸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을지 아주 잘 아는 사람 특유의 여유가 섞인 눈웃음.
“당신이 명하신다면 정오의 광장에서 발정한 길짐승 흉내라도 기꺼이 내겠다고요.”
여자가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사뿐하게 그에게 다가가 그의 허리에 팔을 둘러 당겼다. 손이 자연스럽게 그의 엉덩이를 움키자 희미하게 헛숨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흉내가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이 저를 굽어살피시는 한 지당한 말씀이시지요.”
“난 한번 배 붙인 수컷을 풀어 두는 성미가 아니에요.”
“그래도.”
고개를 떨군 남자의 얼굴은 수치와 흥분에 대한 기대로 기이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래도 좋아요.”
“그 가벼운 몸뚱이를 버릇대로 놀렸다간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죠.”
“예, 부인.”
그는 마른 입술을 재차 핥아 축이곤 달짝지근한 한숨과 함께 속삭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거둬 주시기를 비는 겁니다.”
“몸정 따위에 기대는 바람이 아니라니 마음에 드네요.”
길게 웃음 지은 입술이 덮쳐들었다.
“음…….”
희미한 신음보다 젖은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남자는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반쯤 주저앉아 고개를 빼 든 채 그녀의 키스를 받고 있었다. 앞서 관계했던 두 남자와는 달리 경험이 적지 않은 덕에 그녀로서도 꽤 즐길 만한 키스였다. 교태를 떨듯 부드럽게 분탕질을 치는 혀를 깨물어 세게 빨아 당기면 응, 하고 나직한 신음을 삼키듯 파르르 떠는 남자의 목줄기를 손끝으로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그의 사타구니를 무릎으로 누르며 뭉개듯 앉혔다.
남자가 벗었던 코트는 이미 곁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그는 한없이 무력해진 채 순응하면 쏟아져 들어오는 재물과 쾌락에 도취하여 굴욕감 따위는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그저 자신의 타액으로 촉촉하게 젖은 입술을 혀를 내어 핥으며 제 허벅지 위로 올라앉은 귀부인이 칭찬하듯 가슴팍을 어루만져 주는 것에 달짝지근한 한숨을 지을 뿐, 그 어떤 부정적 감상도 떠올리지 않았다.
리비아는 옷 위로 바짝 도드라진 그의 유두를 살살 둥글리듯 어루만졌다. 뻣뻣한 돌기가 손가락 아래에서 저항감 있게 뭉그러지는 감각에 희열이 오른다.
“아, 흣…….”
“상스러운 몸뚱이.”
“부인…….”
“아무리 미약을 쓰더라도 보통 하루 만에 이렇게나 안달을 내진 않아요.”
그녀는 똑바르게 라시니와 시선을 맞춘 채 고개를 내려 그의 돌기를 깨물었다.
“으응……!”
그는 아파하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정직하게 교성을 짓씹었다. 리비아는 부드럽게 혀로 핥아 주며 그의 옆으로 비켜 앉아 남자의 아랫배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나의 리지.”
“흐읏, 가슴, 에, 대고…… 말씀하시면.”
“하면?”
“느껴, 버립니다…….”
부끄러움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 정직한 대답이었다. 리비아는 짧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아랫배를 둥글게 문질렀다.
“괜찮아요, 내 앞에서는 얼마든지 상스럽게 굴어도 된답니다. 하나하나 신경 썼다간 당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전에 망가지고 말 거예요.”
여자는 쭙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그의 가슴팍을 빨아 올리며 하복부를 문지르던 손을 살짝 미끄러뜨려 장골 근방을 더듬었다.
“리지, 스스로 해 봐요.”
남자의 시선이 데구르륵 굴러 그녀에게로 향했다. 리비아는 그의 가슴에서 입을 떼고 라시니의 어깨에 턱을 괸 채 나른하게 웃었다.
“날 원망하며 수음했던 그날처럼요.”
그 말은 어떤 기폭제에 가까웠다. 한순간에 훅 열락이 치민 청록색 눈이 짙게 가라앉는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눈을 내리깐 채 한껏 교태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하나만,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내킨다면요.”
“당신께 봉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부인.”
그는 리비아가 턱을 괴지 않은 쪽의 손으로 제 셔츠 단추를 어렵잖게 끌어 내리며 퍽 애교 있게 속살거렸다.
“초야이지 않습니까.”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거창하고 달콤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구사했다. 리비아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까딱 턱짓했다.
“좋아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보란 듯이 자신의 유두를 만지작거리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체격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므로 거의 제 몸뚱이를 그녀의 품에 욱여넣는 꼴에 가까웠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그녀에게 재롱을 떠는 뉘앙스를 띠었다. 깊게 숨을 들이켜며 싸늘하고도 달짝지근한 그녀의 체향을 좇아 외려 리비아를 벽에 등을 기대게끔 하고서는 두 손으로 가슴팍과 제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리비아는 그저 귀여운 것을 바라보듯 살짝 턱끝을 치켜든 채 그가 하는 양을 가만 바라보았다. 라시니는 제게 깨물리지 않은 쪽의 가슴을 집요하게 자위하며 코끝으로 여자의 쇄골 어림을 꾹꾹 짓눌렀다. 파고드는 듯한 행동이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그의 성기가 옷가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양 떠는 몸짓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흉악하고 폭력적으로 생긴 성기가 잔뜩 벌겋게 독이 올라 있었다. 우둘투둘한 돌기 같은 것이 귀두 중심으로 뜨문뜨문 도드라져 있다. 필시 그를 귀여워하며 스쳐 지나간 귀부인 중 한 명의 취향이었으리라. 희미한 흥미가 일었다. 굳이 손을 댈 정도로 마땅한 쾌락을 주는 것이었을까, 하는.
“흐…….”
그의 잇새에서 비어진 더운 숨이 천 너머로 리비아의 살갗에 닿아 녹아내렸다. 라시니는 요도에 손끝을 세우며 귀두를 중심으로 싸쥐듯 좆을 움켜쥔 채 천천히 쓸어 댔다. 국부 특유의 색정적인 체향이 훅 끼쳤다. 마치 좁은 우리에 갇힌 짐승 한 쌍마냥.
라시니는 그녀의 목덜미에서 미끄러져 가슴에 얼굴을 묻고 헐떡였다. 말랑말랑한 감촉에 열이 훅 끼쳤다. 간밤 내내 욕망했던 것이지만 하루아침에 갈망의 성질이 뒤바뀌어 버린 자신의 욕구가 설핏 우스웠다. 그 자괴에서 오는 모멸감이 또한 쾌락이 된다.
그가 헛숨을 토하며 바닥을 짚자마자 축축한 풀이 손아귀에 엉겼다. 설핏 눈살을 찌푸린 남자는 뒤늦게 이곳이 바깥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쳐 주변에 나동그라졌던 제 코트를 끌어와 깔고 앉더니, 제 왼쪽 무릎 위에 리비아를 앉혔다. 그러고는 그녀의 가슴을 옷 위로 꾹 움켜쥐며 달뜬 숨을 터뜨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옷감과 살집의 감촉이 손아귀를 가득 채운다, 그는 입술로 리비아의 턱과 귀 언저리를 간지럽히며 제 성기를 거칠게 흔들기 시작했다.
리비아는 나른하게 한숨을 흘리며 천 위로 정확하게 자신의 유륜을 긁으며 가슴을 받치듯 주물러 대는 남자의 손길을 만끽했다. 희롱이라기보다는 절박한 애교에 가까운 몸짓. 그녀는 라시니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그의 수음을 관음했다.
또렷하게 느껴지는 그 위압적인 시선에 전율한 남자가 앓는 소리를 내며 그녀의 품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대고는 손을 급박하게 놀렸다. 갈 것 같았다. 그녀가 떠난 이후로 줄곧 가라앉지 않던 흥분이 해갈되는 순간이 코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그만.”
그의 손이 딱 멎었다.
“네에.”
그는 달뜬 숨을 가다듬으며 얌전히 손을 떼었다. 배 쪽으로 바짝 올라붙어 꺼떡거리는 두툼한 귀두 위에 선액이 번져 번들거렸다. 리비아는 자신의 앞섶 단추를 천천히 끌렀다. 남자의 열렬한 시선이 옷깃 사이로 드러난 하얀 살집에 꽂힌다.
“보고 싶은가요?”
“허락해 주신다면요.”
그동안 무수히 많은 부인과 영애들의 노리개 역할을 해냈다는 말이 헛말은 아니었는지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자신의 욕구를 죽이고 상대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처신하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다. 다른 두 수캐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설핏 웃음이 났다.
“허락하죠.”
그가 떨리는 입술로 가볍게 그녀의 뺨에 키스한 뒤 풀어진 단추 사이로 드러난 가슴골에 코를 박았다. 옷 위로 만지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감촉과 또렷한 체향에 취한 채 한숨을 뱉었다. 그는 양순한 애완견답게 입술과 코끝으로 그녀의 가슴팍을 간질이며 손을 대지 않고 앞섶을 열어젖혔다.
“핥고 싶어요.”
그는 이로 브래지어를 끌어 내려 그녀의 가슴을 드러내며 아양을 떨었다. 순진하고 애절해 보이는 표정과는 달리 욕망에 젖은 눈빛은 적나라했다. 브래지어로 받쳐져 완전히 벗긴 것보다 훨씬 도드라진 가슴의 윤곽을 어리광 부리듯 뺨을 대고 문질러 만끽한 남자는 더운 숨을 그녀의 유륜에 뱉으며 속살거렸다.
“허락해 주세요, 부인.”
산만 한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미동 같은 말투도 그 섬세한 얼굴로 뇌까리니 상당히 회가 동하는 구석이 있었다. 리비아는 빙그레 웃어 보이며 그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안 돼요.”
“어째서…….”
달게 우는소리를 내며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그는 앞에서 잠그고 푸는 프런트 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입술로 훅을 지분거리며 허락을 보챘다.
“부인……, 핥고 싶어요. 달짝지근한 냄새가 납니다…….”
얕게 짤각대는 소리가 나다가 금세 풀어진 속옷 탓에 리비아의 가슴이 흔들렸다. 상당히 풍만한 그녀의 젖에 얼굴을 묻은 채 바짝 끌어안은 라시니는 살갗에 입술이 스치게끔 대고 사근사근하게 속삭였다.
“멈추라고 하시면 얼마든지 그럴 테니까…… 한 번쯤은 허락해 주세요.”
“이렇게 흉한 좆대가리를 들이대며 지껄이면 신뢰감이 조금도 들지 않는걸요, 리지.”
남자는 열띤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면 부인.”
그의 곧은 손가락이 리비아의 복사뼈를 부드럽게 스치며 스커트 속으로 파고들었다. 종아리를 거쳐 무릎에 다다라 그녀의 동그마한 무릎을 문지르다 손아귀에 쥔 남자는 달게 한숨을 뱉었다.
“절 먼저 탐하시겠습니까?”
녹색 눈이 웃음을 머금고 가늘어진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으나 그것이 허락에 가까운 의사라는 것을 알아차린 라시니는 부드럽게 그녀를 유혹했다. 무릎을 만지던 손을 뒤로 넘겨 오금의 연한 살을 야살스레 만지면서, 그녀의 허벅지 뒤편으로 기어올라 도톰한 엉덩잇살이 손끝에 닿자 살짝 방향을 틀어 음부를 꾹 눌렀다. 태연한 표정과는 달리 손을 대기도 전부터 알아차릴 정도로 홧홧하게 열이 오른 음부는 이미 상당히 젖은 채라는 것을 깨닫자 흥분이 차올랐다.
라시니는 부드럽게 그녀의 속옷 위로 음열을 꾹꾹 눌렀다. 푹 젖은 속옷은 하나의 자극제에 지나지 않아서, 리비아의 등줄기가 잘게 떨리기까지 했다. 그는 산뜻하게 그녀의 가슴에 입 맞추며 팬티를 끌어 내렸다. 엉망으로 구겨진 속옷이 풀 바닥 위를 나뒹굴고, 남자가 그녀의 스커트를 완전히 걷어 올렸다. 피차 맨살인 채로 엉덩이와 허벅지가 맞닿았다. 리비아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를 칭찬하듯 머리카락에 입 맞추며 다리를 벌렸다. 털 한 올 없이 매끈매끈한 음부가 활짝 벌어지며 벌겋게 달아오른 속살을 내보인다. 빳빳하게 곤두선 클리토리스와 액을 왈칵 토해 내는 구멍. 남자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클리토리스를 부드럽게 뭉갰다.
“옳지…….”
그녀는 신음보다도 희미하게 달뜬 목소리로 그를 얼렀다. 남자는 다리를 벌린 여자에게 처음으로 압도당했다. 자신이 오히려 그동안 대해 왔던 첫 경험의 영애들처럼 긴장한 채 천천히 상대의 국부를 손에 익혔다. 뻣뻣한 클리토리스를 두어 번 문지르다 미끌미끌하게 한껏 배어나는 애액에 홀린 것마냥 그녀의 질구를 더듬었다. 뻐끔거리는 입구를 손끝으로 살살 둥글리며 파고들자 오돌토돌한 내벽이 손가락에 감겨든다.
“흐읏…….”
애무받는 것은 리비아다. 자신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은 자신의 성기가 외려 달아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에라도 처박고 싶은 기분을 꾹꾹 억누르며 그녀의 안을 풀어 주기 위해 손가락을 놀리려니, 리비아가 남자의 귓바퀴를 깨물며 속삭였다.
“그만.”
라시니는 손을 빼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추었다. 리비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걷어 올린 스커트를 한쪽 팔로 안더니 구둣발로 그의 배를 밀어 그대로 뉘었다. 풀 특유의 차가움이 닿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자에게 홀려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부인……?”
그의 목소리에서 희미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리비아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허리춤에 올라타 완전히 배에 달라붙은 그의 성기 위로 자신의 음부를 갖다 대고 천천히 우둘투둘한 그의 기둥 감촉을 가늠했다.
“부인.”
남자가 발갛게 뺨을 붉힌 채 제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몸을 떨었다. 잡아먹히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음탕한 낯짝을 핥듯이 바라본 리비아가 제 입술을 길게 핥으며 푹 젖은 자신의 구멍에 그의 귀두를 맞추었다. 남자가 예민하게 달아오른 첨단을 갉작거리는 감촉에 파르르 떨며 헛숨을 토하는 순간, 그대로 밀어 내듯 삼키는 허릿짓이 뱀처럼 유연했다.
“아……!”
단말마에 가까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라시니는 뻑뻑하고 뜨거운 육벽에 집어삼켜지는 그 우악스러운 쾌락에 몸서리치며 고개를 뒤챘다. 그간 느껴 본 적 없는 황홀함이었다.
“흑, 아으…….”
꽉 조이는 내벽의 감촉을 또렷하게 느끼면서도 미끄럽게 지나치는 탓에 갈증이 일었다. 리비아의 더운 숨이 헐벗은 상체 위로 쏟아지며 집어삼킨 성기를 뿌리 끝까지 짓누르기 위해 그녀가 천천히 좌우로 허리를 돌리며 뭉개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완전히 범해지는 기분. 저릿저릿한 쾌락이 전신을 휘감았다. 남자는 마음껏 손발끝을 우그러뜨리며 경직된 팔다리로 바닥을 더듬었다.
“자…….”
리비아 모브레이가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여자의 복부로.
“느껴지나요?”
살짝 볼록하게 윤곽을 띤 복부가 손바닥에 닿았다. 남자는 반쯤 풀린 눈을 깜빡이며 더듬더듬 어루만졌다. 소화되지 못한 먹이를 품은 듯한. 자신이 그녀에게 겁탈당하고 있는 상황을 여실히 증명하는 부피감. 형언할 수 없는 굴욕적 희열이 그를 휘감았다. 리비아는 그의 남은 손도 끌어 올려 단단히 깍지를 끼워 붙들었다. 마치 그를 이끄는 듯한 뉘앙스로 두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허리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아……!”
달큼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신음이 그의 입에서 재깍 터져 나왔다. 리비아는 달뜬 숨 섞인 웃음을 흘리며 쾌락을 탐했다. 남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건조하고 폭력적인 허릿짓이었다. 라시니 몬테필트로는 순전히 그녀의 쾌락을 위해 착취당하는 처지라고 증명하듯이.
불쾌감은 하등 없었다. 눈을 깜빡이면 가지가 우거진 컴컴한 밤하늘과 여자의 흔들리는 긴 머리카락만이 시야를 점하고,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끔 붙잡힌 손은 낙인 같은 첫 접촉을 떠올리게 했다. 자신을 완전히 제압한 채 유린하는 상대. 그렇게 탐욕스럽게 원했던 그녀의 하얀 젖이 출렁거리며 흔들리는 광경조차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다가왔다. 범해지는 쾌락, 아무렇게나 다뤄지는, 순전히 성감만으로 보상받는 취급이 주는 배덕적인 감각은 상상을 초월하는 자극이었다. 남자는 과한 쾌락이 부른 눈물을 머금은 채 눈을 질끈 감고 헐떡였다. 쥐어짜듯 꾹 죄며 둥글게 허리를 돌리다 그대로 반쯤 일어서 뱉어 낸 것을 다시 체중으로 한 번에 집어삼키는 일련의 과정마다 극심한 사정감이 치솟았지만 그때마다 손마디를 죄며 얽매인 손가락을 상기하면 참을 수밖에 없었다.
“리지, 눈…… 떠야죠.”
“응, 흣…… 부인, 갈, 것…… 같아요…….”
“안 돼.”
리비아는 내벽을 기분 좋게 긁어내리는 돌기의 감촉을 만끽하며 짙게 미소 지었다. 여실한 포식자의 낯짝은 늘 어두운 곳에서만 고개를 들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명령에 눈을 떴던 라시니는 그 얼굴을 보고는 울 것처럼 미소 지었다.
“너무, 해……앳.”
그의 목덜미에 퍼렇게 핏대가 섰다. 그는 무언가를 힘겹게 삼키듯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얕게 허리를 추켜올리며 그녀의 쾌락을 돋웠다.
“갈 것, 같다더니?”
“부인이, 읏…… 함께…….”
“귀엽기도 하지.”
리비아는 그의 발칙한 정성을 치하하듯 깍지 낀 손가락에 입을 맞춰 주고는 한층 더 난폭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하, 흑……!”
그의 추삽질에 힘이 더해졌다. 젖은 살을 치는 소리가 적막한 정원을 한껏 울렸다. 저 멀리 시야 끝에서 저택 복도를 가로지르던 불빛이 한 자리에 멈춘 채 일렁이는 것을 본 라시니가 애달프게 신음했다.
“아흑……, 부, 부인, 봐요, 저, 쪽에서, 보고, 있……!”
리비아가 거진 뿌리 끝까지 뱉어 냈던 성기를 내리찍듯 삼키며 그의 귓전에 속삭였다.
“괜찮아요, 소리만 들릴 테니까. 우리인 줄은 모를 거예요.”
“그치만, 들, 어 버리는, 것……도……!”
“기분 좋죠?”
남자의 몸뚱이가 흠칫 떨렸다. 리비아가 잔혹하게 미소 지으며 깍지를 꼈던 손을 놓고 그의 머리를 제 품에 안았다. 그녀의 유두가 젖은 남자의 입술을 짓눌렀다.
“상스러운 소리, 들려줘요. 리지.”
라시니는 결국 그녀의 꾐에 넘어가 여자의 유두를 힘껏 빨며 힘껏 허리를 쳐올렸다.
“흑…….”
리비아의 입에서도 기어코 신음이 비어진다. 남자는 무아지경으로 허리를 흔들며 그녀의 젖을 게걸스럽게 빨아 댔다. 아무려면 좋았다. 아무려면. 그녀가 예뻐해 준다면. 돈도, 권력도, 쾌락도, 전부 주어진다.
젖은 점막이 잦은 마찰로 쩍쩍 들러붙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는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날카로운 신음을 짓씹으며 리비아의 가슴을 핥아 삼키듯 혀를 내어 문지르다 크게 베어 물고 빨았다. 마치 구명줄처럼, 그녀가 느껴 준다면 자신도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처럼 여기며.
“아……!”
그녀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낮은 신음과 함께 완전히 삼켜진 채로 파정했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끔찍한 쾌락에 남아나지 않는 이성은 그저 황홀함밖에 느끼지 못했다.
* * *
‘곧 부르죠. 얌전히 기다리고 있도록 해요.’
리비아는 달랑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수풀 뒤에 남자를 내버려 두고 몸을 추슬러 돌아갔다. 어차피 랭골드령은 그녀에게 있어서 대단한 덩어리도 아니었고, 우선 영지를 받은 이후부터는 라시니 몬테필트로가 자발적인 세력을 단단히 구축하기 전까지 그녀의 비호를 위해 복종해야 했으므로 지금부터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좋은 타이밍은 사흘 뒤, 절차를 밟기 위해 그를 불러들인 날쯤일까.
날은 여전히 화창했다. 리비아는 베일 끝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이블린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인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해 드린 게 아닐까 염려되네요.”
러스킨 백작 부인은 의뭉을 떨며 말했다. 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맞느냐고. 리비아는 그저 빙그레 웃으며 부채를 펼쳤다.
“그럴 리가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일이에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리비아의 고혹적인 미소를 본 백작 부인은 살짝 떨떠름한 낯으로 마주 웃었다.
대화가 끝날 무렵, 저 멀리서 재게 발을 놀려 다가오는 이블린 랭글런드의 화사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 늦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레이디의 치장에는 늘 시간이 걸리죠. 어찌 제가 그것 하나 이해하지 못할까요.”
“그래도요, 다망하신데 괜히 저 때문에 지체되신 것 같아서…….”
“나는 헛말을 하지 않아요, 영애. 자, 심려하지 말고 내게 웃어 줘요.”
“부인…….”
그녀는 제 우상을 따라 하듯 베일이 달린 머리 장식을 달고 나와 안도한 듯 웃어 보였다. 색만큼은 흑백으로 확연히 달랐으나 나란히 서 있으니 그녀가 누구를 따라 했는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리비아는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다정하게 넘겨 주었다.
“저택을 오래 비울 수 없는 날 용서해요, 이블린.”
“아니에요, 이렇게 시간을 내주셨는걸요. 전 부인께서 건강하신 모습을 제 눈으로 본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쁘답니다.”
“후후, 정말 늘 순수한 동경이군요. 두 분의 사이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에요.”
“정말이지 두 분 덕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백작 부인, 이번 초대 대단히 고마웠어요. 기분 전환에 지대한 도움을 받았어요. 이블린 영애도 날 환대해 줘서 고마워요. 사냥철이라 이런저런 일정들이 만만치 않을 텐데 급하게 시간을 내서 찾아왔다고 들었답니다.”
그녀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라진 남자 한 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서로에게만 집중하여 화기애애하게 떠들었다. 리비아는 백작가 기사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 오르며 이블린에게 눈짓했다.
“다음에 또 뵙게 되면 모쪼록 저를 반겨 주세요.”
“그럼요, 부인! 살펴 가세요!”
후작 영애는 뛸 듯이 기뻐하며 뺨을 발갛게 물들였다. 두 부인은 그저 말없이 시선을 한 번 주고받았고, 곧 마차의 문이 닫혔다.
* * *
그녀가 자리를 비운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았건만 공작저로 접어드는 길목에서부터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마부와 미슐레의 대행으로 마중을 나온 기사의 낯도 퍽 창백했고, 문지기들은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더라면 주인의 기분이 썩 좋지 않은가 보다 싶었겠지만 리비아로서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이토록 온 집 안을 긴장하게 할 위인이 있다는 것이 마뜩잖았다.
“다녀오셨습니까, 부인.”
별저에 다다르자 마중을 나와 있던 수석 시녀 쉐리가 피로를 감추지 못한 낯으로 인사했다. 리비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늦지 않게 표정을 펴며 사뿐하게 턱끝을 당겨 인사를 받아 주었다.
“보고해요.”
“……두 분께서 긴장 상태에 계십니다.”
시녀가 문을 열고, 리비아가 홀을 가로질러 당장에 계단을 오르며 묻자 뒤를 따르던 그녀가 재깍 대답했다. 산전수전도 그녀에게 들이대기엔 모자랄 만큼 잔뼈가 굵은 그녀마저도 대답 앞에 공백을 둘 정도라니, 긴장 상태라고 곱게 포장할 만한 꼬락서니는 아닌 듯했다.
“미셸에게 맡겨 두었는데.”
“그…… 귀빈께서 상당한 서슬이셔서……, 저희가 모실 적에는 그저 언짢은 낯으로 받으실 뿐이십니다만. 호엔베르크 경과 독대하실 때면 복도까지 언성이 쟁쟁하여…….”
“아하…….”
리비아는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3층 구석의 제 방문 근처에 다다르자 희미하게 쩔그럭거리는 사슬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었다. 그 대단한 방음을 뚫고도 저런 소리가 날 정도라니, 아주 발작을 하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만 가 봐도 좋아요, 쉐리. 내가 부를 때까지 아무도 3층에 발 들이지 못하게 하도록.”
“예, 부인.”
“쉿.”
리비아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문을 열어젖히며 짧게 경고를 뱉었다. 사슬을 손아귀에 틀어쥐고 벌게진 눈으로 핏대를 세우던 요한도, 그를 냉막한 눈으로 노려보던 미슐레도 일순 침묵했다.
그녀는 태연하게 방 안을 주욱 훑어보았다. 터진 베갯잇과 그 사이에서 비어진 깃털들이 사방에 굴러다녔고, 요한의 왼쪽 발목을 붙들어 매 두었던 침대 기둥 한쪽이 반쯤 박살 나 있었다. 그 외에야 시녀들이 바삐 정돈했을 테니 크게 망가진 것은 없었지만 바닥에 깔려 있던 카펫이 못 보던 색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했다.
“돌아오셨습니까, 부인.”
“그럼요, 얌전히 기다렸나요. 나의 미셸?”
“예.”
남자는 언제 윗사람을 잡아 죽일 듯 노려보았느냐는 듯 양순하게 그녀에게 묵례하며 부드럽게 풀어진 낯을 했다. 리비아는 그에게 웃어 주며 베일을 뒤로 젖힌 뒤 다가가 뺨을 붙잡고 제 쪽으로 당겨 입술을 맞대었다.
“부인……?”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하였으나 몸을 경직시킬 뿐 뒤로 물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얌전히, 그녀의 뜻에 따르겠다는 양 입술을 완전히 다물지도 열지도 않은 채 눈치를 살피고만 있을 뿐.
이 영양가 없고 충직한 반응에 회가 동하지 않는 여자가 있을까. 희미하게 웃음을 터뜨린 리비아가 고개를 틀어 맞댄 입술을 무게로 비집어 열고 그의 입 안에 혀를 밀어 넣었다.
“읍…….”
숨이 부드럽게 서로의 뺨 위에서 흩어진다. 리비아는 순전히 개의 충정을 치하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의 입 안을 간질였다. 연약한 점막과 뻣뻣해진 혓바닥을 더듬다가, 민망함을 견디지 못한 그가 눈을 감자 제 입술을 좀 더 벌려 그의 두툼한 혓바닥을 받아들인 뒤 눈을 굴려 얼어붙은 요한과 시선을 맞춘 채 목을 울려 신음했다.
“으응…….”
두 남자의 어깨가 움칠 떨렸다. 리비아는 미슐레의 뺨을 쥐었던 손을 그의 어깨에 두르고, 다른 손으로 그의 눈을 덮어 가리며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못 박힌 요한과 시선을 진득하게 섞으며 마치 제 입에 품은 것이 누군가의 성기라도 되는 양 집요하고, 느리고, 진득하게 빨아 삼켰다. 남자의 목젖이 더디게 울렁거리며 짐승이 우는 듯 낮고 긁는 것 같은 신음이 났다. 미슐레는 기교가 없는 대신, 그녀의 타액 한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양 꼼꼼하고 절박하게 매달려 빨았다. 제 혀 위에 그녀의 입술이 얹혀 있다는 것이 못내 황홀했는지 가빠진 숨을 흘리면서.
요한은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로에게 엉겨 붙은 남녀를 바라보며 얼굴을 확 붉혔다. 아랫배 언저리가 홧홧하게 지끈거리는 감각에 질색하면서도 자신을 꿰뚫듯 바라보는 녹안에 사로잡혀 감히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보란 듯이 자신과 눈을 맞춘 채 입술을 벌리고, 혀를 얽고, 다시 고쳐 입술을 맞대며 지긋하게 희롱했다. 눈빛만으로 이렇게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다니 우스운 꼴이 아닐 수 없지만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 만에 입술이 떨어지고, 짧게 은사가 늘어지다 리비아가 제 입술을 손끝으로 문질러 닦으며 뚝 끊어졌다.
“부인…….”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퍽 애절하게 리비아 모브레이를 불렀다. 요한은 기가 찼다. 제게는 검날까지 들이댔던 주제에 저렇게 안달 난 새끼 개처럼 끙끙거리는 꼴을 보노라니 말도 나오질 않는다.
멀쩡한 사람을 감금해 두고는 제멋대로 바깥을 활보하다 외박까지 하고 들어온 여자는 태연자약하게 충견의 뺨을 톡톡 두드리며 얼러 준 뒤 몸을 돌려 요한 구르디예프를 바라보았다.
“소란하던걸요. 기력이 쇠하지는 않은 것 같아 안심했어요. 요한.”
“기력이 쇠하질 않았다니, 이 꼴로 묶인 사람을 보고 하실 말씀이십니까?”
“어차피 못 먹고 못 자며 묶여 있던 건 아니지 않나요? 남의 침대까지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혀 두고는 못 하는 말이 없군요.”
리비아는 미련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미슐레를 등지고 요한에게 다가가 깃털을 털어 내지도 않고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엉망으로 헝클어진 요한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정리해 주었다. 남자는 두피를 스치고 지나가는 곧은 손가락의 감촉에 흠칫 몸을 떨었다. 교육을 빙자해 범해졌던 그날, 쾌락에 절어 혼곤했던 이성 사이사이로 느껴졌던 머리채를 움키는 그 감촉이 몸에 밴 탓이었다.
“떨지 말아요, 요한.”
“……떨지 않았습니다, 싫었을 뿐이지요. 차라리 시녀를 불러 주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 부인?”
그녀는 밉살맞게 이죽거리는 요한의 얼굴 위에 늘상 자리를 잡고 있던 단안경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시녀들 앞에서 언성이라도 높여 볼 셈인가요? 부질없는 일일 텐데요.”
“압니다.”
“이미 해 봤으니까?”
요한의 눈초리가 매섭게 치켜 올라갔다. 그녀는 붉은 속눈썹을 드리운 그의 맑은 녹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조금 전까지 다른 남자와 진득하게 엉겼던 부드러운 입술을 그의 눈꼬리에 내렸다. 낯부끄러울 정도로 다정하게 쪽 하는 소리가 울리자, 요한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수치심과 분노로.
“치우십시오!”
“그렇게 아락바락 덤벼 봤자 못 풀어 줘요.”
“부인!”
그녀는 태연하게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요한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대단한 즐거움이나 웃음 따위도 없었다. 그저 사실을 고지하는 말간 낯일 뿐이다.
“정말이에요. 당신이 허튼수작이라도 부리면 곤란해지거든요. 가엾고 사랑스러운 요한. 당신은 늘 그 자리를 약탈당할 고민 따위는 해 본 적 없어 모르겠지만 지금의 포웰은 위험해요. 당신과 대거리할 수 없을 만큼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젊고 아름다운 과부, 그녀에게 남겨진 대귀족의 모든 유산, 권력, 화제성, 그 와중에 도드라지는 집안 내의 불화……, 그리고 지나치게 마뜩잖은 가주의 죽음.”
그녀의 흰 손이 요한의 턱선을 따라 미끄러진다.
“지금이야 내 스캔들로 소란해 이목이 가려져 있다지만 당신과 나 사이의 불화가 공공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면 더욱 난장이 될 거예요. 내가 조르주를 죽였다는 이야기가 돌아도 이상하지 않겠죠.”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리 리비아가 요한의 생각대로 미친 계집이어도 이런 공적인 영역에서 허튼소리를 지껄일 위인은 아니었다. 그녀는 귀하게만 자란 사람이었지만, 그 덕분에 귀한 자리를 유지하는 데에는 아주 기민한 사람이었다. 리비아는 적막이 내려앉은 방 안에서 홀로 낮게 웃으며 딱딱하게 굳은 요한의 입술에 제 입술을 내렸다.
“선택해요, 요한. 모브레이를 위해 그 한 몸 희생할 것인지, 나와 함께 불타오르는 모브레이를 지켜볼 것인지.”
물론, 그녀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살 정도는 깎아 먹을 수 있는 인간임을 몰라 속는 것은 남자의 탓이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요한은 어리석고 가여운 결정을 하고야 말리라.
흘러내리는 날
요한은 떨리는 눈으로 리비아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가문의 위협을 들먹인다고 해도 그녀를 향한 불신은 한순간에 타파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무시할 수도 없었지만.
그녀는 차분하게 요한의 뺨을 그러쥐었다.
“믿기 힘든가요?”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무엇보다 그런 것이 위협이 되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군요.”
“그럼 약속을 하죠. 나와 한 달의 계약을 해요.”
“고작?”
“한 달 동안 당신은 내 허락 없이 마법을 쓰거나 외부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조항으로 유예 기간을 두자는 이야기예요. 만약 한 달 동안 내가 말한 일의 전조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면 그대로 이야기는 끝나는 거죠. 당신이 내게 보복을 하건, 날 실각시키건, 그건 그 후의 일로 둬요. 만약 내가 말한 것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그때 당신은 선택해야 할 거예요. 모브레이의 존속과 나에 대한 분풀이 둘 중 하나를.”
합리적인 이야기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볼모로 잡히는 셈이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운신조차 막힌 채 갓난아이마냥 시녀들의 수발 없이는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꼴보다는 나으리라. 요한의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자, 리비아는 짤막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조금 정정하죠. 당신의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내게 복종하는 걸로.”
“미쳤습니까?”
“그 정도는 되어야 저도 안심하고 당신을 풀어 두지 않겠어요?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이 작정하고 달려들어 내 목이라도 조른다면 난 그대로 꺾여 죽을 텐데.”
“호엔베르크 경은 장식입니까?”
“미셸을 싫어하지 않는 모양이네요? 당신과 24시간 붙여 두고 부려도 되나요?”
“부인께서 말씀하신 조항대로 합시다.”
24시간을 붙여 둔다는 이야기에 두 남자가 동시에 질색했다. 리비아는 픽 웃으며 미셸에게 손짓했다.
“쉐리에게 가서 약을 받아 와요.”
“예, 부인.”
미슐레는 재깍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방 밖으로 나섰다. 짙은 푸른 눈이 사슬을 훑고 지나기는 했지만 상당히 유한 대처였다. 요한은 주인의 앞에서 내숭을 부리는 개를 노려보다가, 문이 닫힌 뒤에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약을 가져오라고 하신 겁니까?”
“물론 이완제죠, 아주 조치 없이 사슬을 풀어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녀는 생각보다 마법에 대한 조예가 깊은 듯 보였다. 아무리 잘난 마법사라도 지금처럼 무력화된 상태에서 약물에 당하게 되면 헝클어진 마력을 가다듬고 순환시켜 술식을 정리해 해독 마법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 정도의 틈만 벌어 둔다면 자신이 설령 그녀를 죽이려 든다고 해도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요한은 마뜩잖은 기색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감고 있다가, 퍽 무거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헛말은 아니시겠지요, 부인.”
“어떤 것을 말하나요? 당신이 불신하는 게 하도 많아 당장 짚이는 바가 없군요.”
“조르주의 죽음에 관한 잡음 말입니다.”
“그럼요. 아무리 나라도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는 않아요.”
실제로도, 공작의 죽음은 석연찮은 구석이 많았다. 선대 내외를 한순간에 여의었다고는 해도 그 이후로 병을 얻어 줄곧 시름시름 앓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 무른 심성으로 어찌 포웰의 후계자가 되었겠는가? 요한이 그런 점을 간과한 것은, 첫째로는 마법의 잔재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와 왕래가 있었던 이들은 모조리 친척이었다. 쇠약한 공작이란 언제 피습당할지 모를 몸이었으니까.
혈족 간의 아귀다툼을 아주 모르는 까닭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지나치게 모브레이라는 이름에 집착해서, 마치 눈먼 부모가 그러하듯 내 아이들이 그랬을 리 없다 철석같이 자기 세뇌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같잖고 가여운 집착을 향해 약간의 동정을 베풀어 리비아는 그의 입술에 달래듯 가벼운 버드키스를 남겼다.
“입술, 치우십시오. 이 상황에 살갗 치댈 마음이 듭니까?”
“키스예요.”
“그러니까 그 키스를 왜 제게 하십니까?”
“위로였는데.”
“위로라니!”
그는 아주 경기를 일으킬 듯 질색을 했다. 그녀로서는 퍽 즐거운 구경거리였지만 요한은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처음인 것처럼 구는군요.”
“리비아 모브레이!”
자신을 겁탈한 여자가 지껄일 말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요한은 아주 혈압이 올라 뒷목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으나, 희미하게 누그러지는 그녀의 눈매를 보자 얼굴이 벌게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날 밤을 잊기에는 아직 시간이 모자랐던 탓이다.
“걱정하지 말아요, 요한. 나도 그리 불한당은 아니니까. 당신이 내게 아락바락 대들지만 않는다면 무엇 하러 당신에게 손을 대겠어요? 당신만 잘하면 앞으론 그런 일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부인을 어떻게 믿는단 말입니까? 제가 본 사람 중 제일가는 후안무치인데 말입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는 좋지만 진심이랍니다. 당신보다 훨씬 아름답고 온순한 수컷들이 온 지천에 널려 있는걸요. 응징의 의미가 아니라면 굳이 당신과 살을 섞을 일은 없어요.”
리비아는 여상스럽게 그의 의심에 대해 대답했다. 요한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지만 그녀의 말은 지나치게 설득력 있게 들렸고, 실제로도 그녀에게 엉기는 남자들로 줄을 세운다면 수도를 한 바퀴 내돌릴 수도 있을 것이었으므로 마땅한 반박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남을 겁탈해 순결을 앗아 놓고도 당신 같은 건 줘도 안 먹겠다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그녀가 지나치게 얄미울 따름이었다.
“당장 아까만 해도 그렇지 않나요? 대뜸 붙잡아 당겨도 순순히 딸려 와 입을 벌리는 미셸 같은 충견이 있는데 굳이 당신을 곁에 들일 이유가 없잖아요.”
“징벌 역시 그런 천박한 방식이 아니어도 되었을 텐데요.”
“당신이 가장 치욕스럽게 여기는 것이어야 마땅한 징벌이 될 것 아닌가요. 채찍으로 당신의 등가죽이 죄 찢어질 때까지 후려친단들 당신이 굴욕스러워했을까요? 미친 계집의 히스테리쯤으로 보지 않았겠어요? 물론, 그리했다면 당신의 평판을 깎아 먹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가문의 고문을 그렇게 막 다루고 싶지 않답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 내돌리는 건 정말 최후의 방법일 뿐이에요.”
그녀는 여전히 가까이 들이민 얼굴을 거두지 않고 사뭇 다정하게 속삭였다.
“나는 정말, 당신을 꽤 아끼고 있답니다. 설령 당신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철렁했다.
남자는 뻣뻣해진 혓바닥을 어떻게 두어야 할지도 까맣게 잊은 채 힘겹게 마른침을 삼켰다. 거짓말일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재깍 알아차렸다. 현혹하기 위한 달아 빠진 말은 귀족이라는 인간들이 가장 잘하는 허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리비아 모브레이의 저 진득한 녹색 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예리한 의심도 까맣게 사그라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어떤 말이든 그저 믿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미 응한 일이니 그리 띄우지 않으셔도 할 겁니다. 비키십시오, 부인.”
“띄우는 말도 아니에요.”
그녀는 요한의 새빨간 머리카락을 손끝에 감아 빙글빙글 돌리며 속삭였다.
“이런 걸로 당신의 기분을 띄울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정보네요, 고마워요. 요한. 필요하게 되면 충분히 활용할게요.”
“안 속을 겁니다.”
“글쎄요?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모브레이에 약하니까 장담하지는 말아요. 당신도 시간을 두면 차차 이해하게 될 거예요. 남아 있는 모브레이는 이 리비아 하나뿐, 내가 죽으면 사라지는 모브레이, 함께 사장될 당신의 세월…….”
“…….”
천이 스치는 소리가 나며 여자가 느릿하게 기어 요한의 몸뚱이 위로 올라왔다. 마치 덮치는 것처럼. 당장에라도 그녀가 힘을 빼고 제 몸뚱이 위로 무게를 실으면 어떤 감촉과 온도가 쏟아질지 이미 알고 있다.
여자는 나른하게 요한의 턱선에 점점이 입을 맞추며 기어올라 귓전에 다다르자 천천히 속삭였다.
“그런 와중에 지금처럼 내가 당신에게 엉겨들어서 사근사근하게 달콤한 말들을 늘어놓으면 당신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정녕 장담하나요? 아닐 거예요. 내가 눈물이라도 흘리면서, 당신의 목에 팔을 감고, 당신의 뺨에 젖은 눈꺼풀을 비비며 ‘요한, 이젠 당신과 나밖에 없어요. 오롯이 나와 당신밖에…… 모브레이에는…….’ 하고, 속삭이면.”
요한 구르디예프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정녕 그 순간이 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말에 흘려 들어가서.
“이것 봐, 꼼짝도 못 하죠.”
리비아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뇌까리며 어린아이를 대하듯 제 뺨에 입술을 쪽 하고 내릴 때까지.
“…….”
“그렇게 넋 나간 얼굴도 꽤 귀엽지만, 아직은 안 돼요.”
그녀는 짧게 웃음을 터뜨리며 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는 마치 꽃다발에 얼굴을 묻고 향을 들이켜는 것처럼 베개 위로 흐트러진 그의 붉은 머리카락에 입술을 댔다.
“내가 있는 한, 그 누구도 모브레이를 능멸하지 못할 테니까.”
“…….”
“그런 파멸적인 상황에 취하지는 말아요.”
그녀는 별다른 미련 없이 요한의 몸에서 내려와 다시 가장자리로 돌아갔다. 남자는 홀린 듯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제 것 같지 않은 입술을 억지로 몇 번 달싹이다 혼란한 눈을 했다.
“미셸.”
“기다리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부인. 말씀하신 약을 가져왔습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머리를 거치지 않은 어벙한 말 한두 마디쯤 주워섬겼을 테지.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감사했다. 요한은 철렁했던 가슴과 혼란함을 추스르곤 리비아가 약병을 받아 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천천히 마셔요.”
“졸렬하게 이완제 따위나 먹이시는 주제에 퍽 자상하시군요.”
다행스럽게도 평소 같은 야멸찬 말은 쉽사리 튀어나왔다. 그는 불쾌할 정도로 달짝지근한 향을 풍기는 입구를 노려보다가 순순히 입을 댔다. 여자가 병을 기울이고, 끈적한 액체가 입 안으로 흘러든다. 천천히 삼킨다. 병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그리 크지도 않은 병이었으므로 바닥이 드러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리비아는 휑뎅그렁해진 협탁 위에 병을 올려 두고는, 미슐레에게 손짓했다. 꽤나 묵직한 사슬들이 수갑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리비아는 제 엄지손가락을 사정없이 씹어 뜯었다.
“부인!”
“괜찮아요.”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 손가락이 다가온다, 요한은 저도 모르게 긴장한 채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아랫입술을 따라 심장 어귀까지 길게 선을 긋는다.
“서약을, 요한.”
“……요한 바이뎀 구르디예프가 심장을 걸고 맹세컨대, 지금 이 순간부터 삼십 일간 목숨을 위협하는 일을 제한 모든 복종을 리비아 마르셸 모브레이에게 바친다. 이는 하늘을 증인으로, 우리의 피를 담보로, 서로의 영혼 앞에 바치는 정결한 서약이다.”
리비아가 제 피가 묻은 입술로, 같은 피를 두른 남자의 입술에 키스했다.
“이는 그 누구도.”
“멸하지 못하리라.”
입술을 맞댄 채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속삭이자 푸르스름한 빛이 그녀가 그은 선 위에서 한들거리다가 갈퀴처럼 매섭게 살을 파고 좀 먹듯 사그라들었다. 세 명은 마치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것마냥 말없이 요한의 가슴팍을 바라보고 있다가, 리비아가 길게 숨을 들이켜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신을 차렸다.
“이런 낯 뜨거운 구절을 결혼 이후로 내뱉게 될 줄은 몰랐어요.”
“이건 낯이 뜨거운 게 아니라 엄숙한 겁니다. 허구한 날 입발림 소리를 주고받는 귀족이 서약을 민망해하다니.”
“발끈하지 말아요, 요한. 손부터 보여 줘야죠.”
리비아는 즐겁게 요한의 구속을 풀어 주었다. 불긋하게 손발목에 죄였던 흔적이 남은 것을 바라보며 ‘멍이 들겠네요’ 하고 지껄인 탓에 요한의 눈초리가 매서워졌으나 이미 서약을 마친 그는 겁낼 상대가 아니었다. 모브레이의 존속을 목줄 삼아 주저앉힌 요한은 앞으로 쏠쏠한 즐거움을 줄 테지.
그녀는 설렁줄을 당겨 시녀를 불러들였다.
“구르디예프 경의 시중을 들어 드리렴. 경께서 지낼 방도 하나 별저 내에 마련하도록 하고.”
“네, 부인.”
“가 봐도 좋아요, 경. 미셸, 당신은 남아요. 할 일이 있으니까.”
여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푸른 눈을 향해 야살스레 미소 지었다. 함의를 유추하기엔 충분한 얼굴이었다.
“명하실 것이 있으십니까?”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다른 사람들이 나간 뒤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에게로 몸을 틀며 물었다. 묘하게 눅눅한 음울함이 그의 얼굴 위로 일렁였지만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리비아는 제 몸뚱이보다 훨씬 커다란 소파에 앉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 외의 질문거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미셸.”
그가 잠깐 멈칫했다가 묘하게 기가 죽은 듯한 얼굴로 입을 열려는 찰나, 여자가 팔걸이를 툭, 하고 치며 발언을 가로막고 고개를 살풋 모로 기울여 그를 올려다보았다.
“내 앞에서 거짓말은 하지 말아요. 어떤 종류의 무엇이 되었건.”
“……예.”
남자의 입이 다물렸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말에 대답할 수는 있어도, 그는 이 추잡한 속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서 내놓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애시당초 일목요연한 욕망을 아닌 척하며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축소하려는 것이 그의 행동 양식이었으므로 필연적으로 침묵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퍽 자비롭게도 그의 답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바르게 앉아 등을 기댄 뒤 눈을 감고 기다려 주었다. 마치 각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듯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그는 주인을 흘긋흘긋 훔쳐보다가, 입 안 살을 지긋하게 깨물며 자신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그런데도 희미하게 그녀에게 맴도는 명백한 타인의 잔향에 신경이 쏠려 산만해지는 것은 그의 본의가 아니리라.
그는 누구보다 리비아 모브레이의 사생활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시녀들에 견줄 만큼 아는 자는 저 홀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그런 만큼 리비아가 자신을 먼저 돌려보낸 뒤 백작저에서 보낸 하루 동안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감히 제 주제에 고루한 독점욕을 내세울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녀가 이름 모를 그자에게는 어떻게 쾌락을 주셨을지, 어느 곳을 만지게 하셨을지, 혹 그의 정까지 품으셨을지.
미슐레의 샅이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남자는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상념에 잠겨 있었다. 아랫도리가 지끈거리는 감각보다도 가슴께에서 따끔따끔 번지는 정체 모를 통증이 더욱 신경이 쓰였던 까닭이다.
왜 하필 자신만을 돌려보내셨을까. 그냥 돌아오셨더라도 아무도 그녀에게 무어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워낙 상황이 그러하니 얼굴만 비추고 돌아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분은 아니심을 알았다. 그는 꽤나 억측에 가까운 불경한 생각임을 알면서도 다른 남자를 맛보기 위해 자신을 돌려보내셨을 거라는 확신을 했다. 자신이 아닌, 혹은 구르디예프 경만큼 압도적인 쓸모가 있는 사람도 아닌, 어떤 미미한 장점이나 외양밖에 없는 남자를 품에 안고, 탐하고, 어여삐 여기시는 것을 상상했다.
왜 자신이 아니었을까. 벌써 호기심이 동나신 것일까. 명령만 내려 주셨더라도 미욱한 몸뚱이로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해 드렸을 텐데.
다른 남자를 집어삼키는 그녀의 몸뚱이를 상상했다. 유연하게 허리를 흔들고, 풍만한 가슴을 애무시키면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매도하셨을 것이다. 미슐레는 한없이 괴로워졌다. 가장 괴로운 것은, 제게는 자신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또렷한 결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그녀에게 아쉬움을 토로할 자격이 없었다. 그저 칼이, 꽃이, 향수가, 베일이 쓰임을 다하듯 미슐레 호엔베르크의 자잘한 쓸모 중 밤시중이 포함되어 있었을 뿐. 남자는 연인도 무엇도 아니었다. 감히 꽃이 주인께 왜 나를 베었느냐 골을 내겠는가? 어떤 향수가 자신을 묵히느냐고 짜증을 내겠는가? 어떤 칼이 자신을 휘두르지 않는다고 염증을 내겠는가?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그녀가 욕망하여 찾아 주지 않는다면 그저 전처럼 홀로 꿈속 그녀의 발이나 핥으며 밤을 지새야 하는 별 볼 일 없는 사내에 불과했다.
“미셸.”
그의 자학적인 상념을 찢고 리비아의 부름이 내려앉는다. 미슐레는 퍼뜩 고개를 들며 대답했다.
“예, 부인.”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그……것이.”
“말해요.”
그녀의 눈빛은 미지근한 정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가학심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어떤’ 것을 말하라는 것인지 가리키는 용도로는 충분했다. 미슐레는 잠깐 입술을 짓씹다가 시건방진 자신의 방종을 수치스러워하며 낯을 붉힌 채 엄숙하게 답했다.
“부인께서……, 백작저에 머무시는 동안, 다른 남자를…… 취하지는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히 건방진 생각을 하여 죄송합니다.”
“어떻게 취했을 것 같았나요?”
리비아가 나른하게 물으며 몸을 틀어 그를 바라보고 앉아 바지 위로 뚜렷한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남자의 성기를 어루만졌다.
“어떤 생각을 했길래 이렇게 염치없는 좆대가리를 세우는지 알고 싶군요.”
“죄송합니다, 이건…….”
“사죄는 복종으로 하도록 해요.”
남자의 눈이 짧게 흔들렸지만 그는 언제고 그랬듯 그녀의 말에 가장 납죽 엎드릴 수 있는 사람인 만큼 금방 답을 내놓았다.
“부인께서 다른 남자의…… 정을 품으셨을지, 올라타신 채 허리를 흔드는……, 삼키실 때의 모습을 상상, 흣……!”
리비아는 노골적으로 입맛을 다시며 그의 성기를 꽉 틀어쥐었다가 놓아주고는 그에게 까딱 손짓했다. 미슐레는 신음을 뱉은 것이 민망했는지 귀 끝을 벌겋게 붉힌 채 절도 있게 그녀의 앞에 섰다.
“그대로 두면 가여우니 봐줄게요.”
“……예?”
“수음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문득 당신이 어떤 식으로 해소하는지 궁금해졌거든요.”
“부, 부인, 그러나…….”
“미셸, 사죄는 복종으로 하라고 했어요.”
“아…….”
그는 낮은 탄식을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리비아는 허리를 펴고 반듯하게 앉아 그의 행동을 기다릴 뿐이었으므로, 미슐레는 주인을 오래 기다리게 할 수 없어 수치를 감내해야만 했다.
커다랗고 투박한 손가락이 재킷 단추를 풀어 헤치고 벨트를, 버클을, 지퍼를 찬찬히 헤집었다. 둔해 빠진 생김새와는 달리 숙달된 손짓이었다. 리비아의 느른하고도 우아한 탈의와는 전혀 궤가 다른, 군더더기 없는 단정함이 묻어났다. 다만 그의 성기가 주인의 단정함을 닮지 못해서 속옷 위로도 흉흉한 부피를 자랑하고 나섰을 뿐. 미슐레 역시 그것만큼은 벗기가 민망했는지 리비아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녀는 그저 그가 제 앞에 없는 사람인 양 굴고만 있었다.
결국 속옷까지 아래로 끌려 내려가고, 일전에 본 적이 있던 그의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완전히 발기한 그것이 느리게 꺼떡거리며 귀두 끝에 맺힌 선액을 흘리고 있었다. 리비아는 말 그대로 자신의 코앞에서 서성이는 성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진득하게 감상했다. 핏줄이 우둘투둘하게 도드라진 검붉은 살덩이에서 홧홧한 온도가 느껴졌다. 그녀는 재차 입맛을 다시며 얌전히 기다렸다.
미슐레의 시선이 그녀의 온몸을 샅샅이 훑으며 지나간다. 속눈썹 한 올마저 눈에 담을 기세였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회가 동하는지 그는 머뭇거리던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귀두에서 뿌리까지 엉성하게 훑어 내린 뒤, 숨을 크게 들이켜며 천천히 위아래로 마찰시키기 시작했다. 음부처럼 절로 젖을 수 있는 것이 아닌 탓에 그의 수음은 다소 불편해 보이기까지 하였으므로 리비아는 그의 반대쪽 손을 붙잡고 두꺼운 손가락 하나를 입에 물었다.
“부인?!”
“쉿…….”
그녀는 단단한 손끝을 이로 잘근거리다가 천천히 입 안에 밀어 넣고 유연하게 혀를 놀려 손가락을 핥아 주었다. 체격 차 탓에 그의 검지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입 끝에 닿아 삼키기가 버거워 보였지만 리비아는 개의치 않고 그의 손가락을 핥다가, 충분히 젖자 입술로 조이며 끄집어낸 뒤 다음 손가락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벌어졌다가 오므라들며 미슐레 호엔베르크의 손가락을 뱉어 내는 광경은 충격적일 정도로 색정적이었다.
남자는 저도 모르게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성기를 훑던 손으로 제 요도를 후비듯 문질렀다. 얼른, 액을 내야, 아니, 그 전에 거칠게 흔들었다간 그녀의 고개가 불편할 테다. 그는 망부석처럼 굳은 채 그녀에게 손을 범해졌다. 부드럽고 미끌미끌한 입 안의 점막과 제 것과 같은 입술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연한 감촉이, 훨씬 조그마한 혓바닥이 손끝과 불거진 마디를 훑을 때면 제 손에 박인 굳은살이 한없이 원망스러워졌다. 제 손이 좀 더 곱상했더라면 그녀의 감촉을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리비아는 네 손가락을 핥아 적신 뒤 그의 손샅을 혀끝으로 간질이다가 손바닥까지 내려가 적셔 주었다. 미슐레는 진심으로 지금껏 살며 자신의 인내심을 부족하다고 여겨 본 적이 없었다는 일을 깡그리 잊었다. 진심으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입 안 살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짓씹어야 했다.
“자, 이제 좀 더 수월하겠죠.”
얕게 가빠진 숨을 가다듬지도 않고 나긋나긋하게 뱉은 말만으로도 등골이 저릿저릿해졌다. 그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홀린 듯 그녀가 핥아서 적셔 준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틀어쥐고 거칠게 흔들기 시작했다. 윤활제 역할을 해 주는 무언가가 있으니 훨씬 수월했지만 그의 정신은 훨씬 강퍅해졌다. 리비아의 숨이 성기 끄트머리에 닿을 때마다 이를 악물며 오갈 곳 없는 다른 손을 허공에 둔 채 제 손으로도 채 다 감쌀 수 없는 기둥을 거칠게 훑어 내리며 개처럼 헐떡였다.
리비아 모브레이의 눈앞에서 홀로 발정해 추잡한 모습을 보이는 스스로가 끔찍스럽게 못난 놈으로 느껴졌지만 동시에 참을 수 없는 흥분이 치솟았다. 주인께서 보고 계신다. 나를, 이런 모습까지 궁금하게 여겨 주시면서. 그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숙인 채 낮은 신음을 씹어 뱉었다.
“크…… 읏, 부인, 부인…….”
듣는 이의 입 안이 마를 정도로 사뭇 애절하고도 눅진한 부름이다. 리비아는 그에게 대답을 돌려주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다가 나직하게 신음을 뱉었다.
“으응…….”
“……!”
작위적인 신음이다. 달콤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정말로 관계 중에 뱉는 신음을 아는 그는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그것이었다. 그러나 리비아 모브레이가 자신의 성감을 돋우기 위해 그런 수고를 한다는 사실이 그를 견딜 수 없게 했다. 그녀는 미슐레의 턱이 단단하게 굳고 목에 퍼렇게 핏대가 서는 것을 보며 자신의 얼굴에 꽂힌 그의 시선을 만끽하면서 천천히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의 성기 바로 아래에, 숨이 닿을 거리에 그녀의 입이 벌어진 채 무언가를 기다렸다.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지는 고민할 것도 없었다. 떨리는 푸른 눈을 향해 빙긋 웃어 보이는 그 녹색 눈이 네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다고 짚어 주고 있었으니까.
“흐윽……!”
결국, 미슐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그의 끈적한 탁액이 리비아의 얼굴과 가슴팍을, 이어 치맛자락을 마구잡이로 더럽히며 늘어졌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헉헉 몰아쉬다가, 홀린 듯 천천히 고개를 들고 그 광경을 맞닥뜨렸다. 불투명한 점액이 그녀의 속눈썹에 이슬처럼 어룽져 있었다. 뺨과, 벌어졌던 입술과, 지당 내밀었던 혀 위에도.
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초점을 맞추는 능력조차 잃은 듯 그저 맹목적으로. 리비아는 그를 향해 짓궂게 미소 짓고는 내밀었던 혀로 자신의 입술을 핥아 묻은 정액을 입으로 가져간 뒤.
“읍…….”
미슐레의 멱살을 잡아 제 쪽으로 당기며 키스해 넘겨주었다. 남자는 자신의 정액을 삼킬 상황에 처해서도 그녀가 먼저 입을 맞춰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삼켰다. 리비아는 마치 마킹하는 것처럼 천천히, 구석구석 그의 입 안에서 농탕질을 쳐 댔다. 미슐레는 그저 음, 읏, 하고 둔한 신음을 흘리며 불편한 자세로 어정쩡하게 굳어 있다가, 결국 떨리는 무릎을 바닥에 딛고 그녀의 치마폭에 두 손을 맡긴 채 희롱당했다. 수음보다 그것이 더 쾌락적이라는 양 황홀하게 풀린 눈으로.
“하아…….”
진득하게 얽혔던 혀가 얼얼했다. 남자는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상기된 뺨, 더럽혀진 얼굴, 그런데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오연하다. 그는 리비아 모브레이의 이런 단단함이 좋았다. 상투적으로 일컬어지는 남자다움으로 귀결되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강도가 달랐다. 어떤 풍파나 모욕이 있더라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상흔도 남기지 못할 것만 같은 점이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발밑에 절로 기어들어 가고 싶은 황홀한 패배감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을 만큼.
미슐레 호엔베르크가 얼마나 강력하든, 어떤 동경의 존재이든 간에 주인의 앞에서는 그저 일개 수컷에 불과함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순간이 희열이 되곤 했다.
“부인…….”
그는 애끓는 한숨을 터뜨리며 그녀의 치마폭에 얼굴을 묻듯 도드라진 무릎에 키스했다. 이어서 촛대뼈에, 발목에, 구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저 충만한 감정으로.
리비아는 미슐레가 하는 양을 가만 바라만 보았다. 그는 매끄러운 구두코를 마치 신처럼 두 손으로 받들어 모시며 입을 맞추고, 핥고, 얕게 뺨을 비비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일순 의문이 든다. 그는 어째서 이토록 충성스러운가?
사랑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어느 날 불쑥 전조조차 없이 들이치는 소낙비와 같다지만 어찌 이리도 열렬할 수가 있을까 싶은 것은 어쩔 도리 없는 생각이다. 무릇 인간이라면 지당 이해와 권력 앞에서 꿇는 무릎조차도 값비싸게 구는 종이건만 그는 마치 이런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배를 까뒤집고 헐떡거린다. 인간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처럼.
앞서 해치웠던 두 수컷을 떠올린다. 그들의 앞에서 미슐레를 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었다. 너희도 이래야만 한다고. 이렇게 될 때까지 내 손아귀에서 망가질 것이라고 일깨워 줄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
그녀는 조금쯤 즐거워져 구둣발로 미슐레의 턱을 받쳐 들었다.
“미셸.”
“예, 부인.”
그는 몽롱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얌전히 고개를 빼 들었다. 정말 개처럼. 하의를 거진 벗은 채 두 무릎을 벌리고 얌전히 꿇어앉아 바닥을 두 손으로 짚은 거구의 남자는 흥분을 부추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구두가 천천히 아래로 타고 내려간다. 남자는 그저 순응하며 고개를 빼 들고 그녀를 핥듯이 바라볼 뿐 만류하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연인처럼 애지중지했던 구두가 빗장뼈를 지나 가슴으로, 이어 딱딱한 밑창으로 유륜을 짓밟는데도 그저 파르르 몸을 떨며 성감을 느낄 뿐 언짢은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요한을 이용할 거예요.”
“예.”
그는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이미 일은 충분히 벌어졌고, 요한을 협박하기 위해 꺼냈던 말도 곁에서 들은 까닭이었다. 리비아는 그의 유륜을 꾹꾹 짓밟으며 말을 이었다.
“백작저에서 이용할 이를 하나 가져왔답니다. 사흘 안에 그것을 저택으로 불러들일 거예요.”
“그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을는지요.”
흥분이 섞여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적나라하다. 반쯤 수그러들었던 그의 성기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침을 질질 흘렸다.
“네, 그는 백작 부인과의 거래에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럴 일은 없으리라고 여기지만, 만에 하나 도망치려고 할지도 모르니…… 영구적인 손상이 남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면 얼마든지 제압해도 좋아요.”
“흣…….”
으깨듯 발을 떼지 않고 그대로 허벅지까지 쭉 미끄러뜨리자 그가 흠칫 상체를 수그리며 몸을 떨었다. 리비아는 그의 단단한 허벅지 안쪽으로 발을 밀어 넣고 염치없는 성기를 성의 없이 문질렀다.
“부인께서 바라신다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쓰임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들 앞에서 당신을 범하더라도?”
리비아는 나른하게 미소 지으며 턱을 괴었다.
“요한은 자존심이 세죠.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내가 아무리 강제적으로 그를 취한들 ‘내 의지가 아니었다’라는 빌미로 영영 도망칠 거예요. 그래서…… 그를 방치하고, 그가 스스로 무너질 때까지 지척에서 줄곧 외면할 수 없게끔 자극을 가할 거예요. 당신을 철저하게 범해서 무너지는 얼굴을, 그 추잡함을 그에게 전시하면…….”
“아흑……, 아, 부인…….”
“결국은 어디에서도 충족되지 못한, 이미 깨달아 버린 자신의 피학성에 굶주려 해갈되지 못한 욕구를 붙들고 내 앞에 쓰러지지 않겠어요? 인간이란 대단한 지성 속에 사는 것 같지만 결국 원초적 욕구 앞에 한없이 나약한 것들이니까.”
“허윽…….”
가볍게 그의 성기를 두드리듯 한번 걷어찬 뒤 발을 내리자 억지로 사정감을 참는 듯 그의 등이 둥글게 말렸다. 마치 금방에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짐승에 가까운 형체를 핥듯이 바라본 리비아는 소파에 완전히 몸을 묻었다. 반쯤 드러누운 것마냥.
“그러니 미셸, 당신은 참지 말아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반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정녕 맹수처럼 흉흉했다. 그늘이 드리운 선 굵은 얼굴에 새파란 눈빛만이 번득거렸다.
“하지만…….”
“물론 내가 명령한다면 그래야 하겠지만, 당신의 욕구를 참지 말라는 말이에요. 내 발밑에 기어도 좋고, 발정해도 좋아요. 그들에게 올바른 수컷의 모범을 보여 줘요.”
미슐레는 그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주억거리는 데에서는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빌고 싶을 때 빌고, 그녀의 말에 따르고, 욕망하면 된다. 활용은 그녀가 할 테지. 언제고 자신은 그녀의 기사였으므로 많은 것을 사고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필요한 것은 충성과 복종.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리비아의 발목을 어루만졌다. 그녀는 여전히 몸을 일으키지 않고, 나른하게 뇌까렸다.
“이리 와요, 미셸.”
그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튀어 오르듯 그녀에게 달려들어 옷 위로 목덜미를 핥고 입술로 문지르며 골반께를 부여잡았다.
“응…….”
그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성에 차도록 길게 핥아 올렸다. 이대로 물어뜯으면 그대로 그녀를 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얇은 목. 그러나 그는 자신의 쓰임에 만족했고, 지금의 일은 그녀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리비아 모브레이는 자신을 포상으로 준 것이 아니라 순전히 수컷의 봉사를 받고 싶을 뿐이라는 것을 남자는 잘 알았다. 그녀가 허용해 준 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덤벼도 좋은 애완견. 그는 자신의 목에 채워진 줄이 어떤 것인지 새삼스레 깨달으며 흥분했다.
“부인……, 부인, 하아…….”
조급한 손이 그녀의 목 끝까지 올라온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렸다. 그는 흥분으로 반쯤 뇌가 녹은 듯한 상황에서도 결코 무례하게 굴지 않았다. 리비아의 허락을 구하듯 그녀의 눈이 닿게끔 불러서, 손을 뻗고, 제지받지 않고서야 행했다. 배 언저리까지 이어지는 단추를 모조리 푼 다음, 앞에 달린 브래지어의 훅을 풀고, 그녀의 가녀린 등을 안아 받친 채 반쯤 벗겨 냈다. 드레스가 아니라 숄 따위를 걸친 수준에 지나지 않을 만큼 헐벗고도 리비아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띠지 않았다. 그저 다가오는 남자의 머리통을 조금쯤 귀엽고도 우습게 보았을 뿐.
“아아…….”
그는 혀를 내어 그녀의 아랫가슴에서부터 윗가슴까지 유륜을 지나 길게 핥아 올렸다. 말 그대로 집어삼킬 듯한 입질, 제 혀가 지나는 대로 부드럽게 파이는 부드러운 살집의 감각에 전율하며 가슴을 크게 베어 물고 빨아 올린다. 파이다
“흣…….”
흥분으로 달아오른 유두에 살짝 따끔따끔할 정도의 자극이 주어지자 리비아의 허리가 살짝 들썩였다. 미슐레는 때를 놓치지 않고 두 손을 그녀의 치마 안으로 밀어 넣고 속옷밖에 걸치지 않은 얄따란 허리를 부드럽게 쥐었다.
“부인…….”
가냘픈 몸뚱이다. 조각가들이 빚은 신의 육체처럼 탄력적이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그리 커다랗지만도 못한.
그는 그런 주인의 몸뚱이에 발정하면서도 감히 자신이 해를 입히게 될까 봐 뻣뻣해진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골반께를 쥔 채 안절부절못하다가, 용서를 구하는 개처럼 그녀의 가슴골에 뺨을 비비다 달짝지근한 체향에 홀려 가슴 사이의 연한 살을 살짝 깨물고, 빨고, 핥으면서 치댔다. 천천히 열이 오른 머리 탓에 걱정이 누그러지자 정욕 어린 손가락이 그녀의 여린 가터벨트를 실수로 끊어 먹은 줄도 모른 채 허겁지겁 속옷을 끌어 내렸다.
리비아는 거의 커다란 소파에 파묻힌 채 그에게 잡아먹히는 듯한 형상이 되었다. 엉덩이 위까지 걷힌 치맛자락, 양쪽 팔걸이에 오금을 걸친 채 활짝 벌린 두 다리 같은 것.
미슐레는 말 그대로 개처럼 그녀의 몸을 집어삼켰다. 온갖 곳을 진득하게 핥는가 하면 성에 차지 않아 앓는 소리를 내며 깨물었다가, 아프지도 않을 정도의 입질 따위에 스스로 놀라 용서를 구하듯 혀로 핥아 달랬다. 리비아는 주도권을 쥐고서도 더없이 순종적으로 구는 남자를 퍽 기꺼워하며 머리를 느릿느릿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요, 미셸.”
“부인…….”
“여전히 가소롭군요.”
“…….”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자 그는 리비아의 배에 점점이 입을 맞추며 손으로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남자의 입술이 닿은 배에 바짝 힘이 들어가는 것은 지당한 수순이었으므로, 미슐레는 그녀의 허벅지를 붙들고 주무르며 음부에 코를 처박고 흘러내리는 즙을 빨았다.
“아……, 흣.”
나지막한 신음, 그의 흥분을 돋우기 위해 뱉었던 작위적인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억누르는 듯한 느낌이 강한 소리를 부추기기 위해 혀에 힘을 실어 클리토리스를 뭉개듯 둥글려 핥으며 벌어진 옷 사이로 손을 밀어 넣고 등줄기를 어루만졌다. 도드라진 척추 선과 날렵한 견갑골, 탄탄한 근육이 기반 된 매끄러운 몸뚱이. 날것 그대로의 주인께 닿는 감각은 그야말로 커다란 포상이다. 그는 오래지 않아 클리토리스를 살짝 깨물며 쭙 빨아 올렸다.
“미, 셸…….”
흡족한 듯 평소의 가다듬은 태가 희미하게 누그러진 목소리에 꼬리라도 칠 듯 기뻐한 남자가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입술을 비비며 대답했다.
“예, 부인.”
“넣어요.”
그녀는 고개를 편히 늘어뜨린 채 왼손 검지와 중지로 제 음부를 벌렸다. 미슐레는 리비아의 명령에 전율하며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성기를 느릿하게 손으로 쓸었다. 그녀를 품에 가두듯 다가가며 천천히 입구에 끄트머리를 맞댄다. 거슬릴 정도로 심박이 크게 울리는 듯한 착각에 멈칫거리자, 그녀가 한쪽 다리로 그의 오금을 후려치며 멱살을 잡아당겼다.
“흐윽……!”
여전히 난폭한 질벽이 성기를 우악스레 죄었다. 남자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터뜨리고, 리비아는 배 속을 채우는 감각에 인상을 살풋 찡그렸다가 낮게 한숨을 흘렸다. 미슐레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다 어깨와 목덜미에 키스하면서 체중을 실어 좀 더 깊게 삽입했다.
“응…….”
미슐레의 체중으로 삽입되자 그녀가 올라탔던 전보다 좀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녀는 살짝 버거워하며 의식적으로 힘을 풀기 위해 신경 썼다. 그저 무식할 정도로 커다란 성기가 꾸역꾸역 안을 넓히며 파고드는 감촉이 놀라우리만치 선연하게 느껴졌다. 식욕을 닮은 듯 탐욕스러운 흥분감이 서서히 차올랐다. 버거운 것을 먹어 치울 때 느끼는 쾌락만큼 그녀를 만족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리비아는 두 손을 뻗어 남자의 뒤통수와 등에 손톱을 세워 붙잡았다. 미슐레는 그녀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순응하며 스스로 먹히길 자처하듯이 좀 더 그녀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몸뚱이를 제 품에 안고, 제 머리를 그녀의 품에 묻고, 마치 하나로 엉기는 것처럼.
희미한 타인의 잔향에 머리가 어지럽다.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어느덧 그녀의 체향까지 구별하고 있는 스스로가 우스우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자신을 받아 주지 않았는가. 굶주린 개를 풀어놓으면 무엇이 되었든 게걸스럽게 욱여넣게 되는 법이다.
남자는 일그러진 리비아의 미간에 입 맞추며 허리를 살짝 뒤로 물렸다. 단순한 동작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죄는 탓에 헛숨이 절로 터졌다.
“부인……, 힘을, 조금만…….”
“우는소리 하지 말아요…….”
앓는 소리 섞인 목소리가 좋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다 결국 다시 체중을 실어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미끌미끌하게 젖어 수월한 삽입과는 별개로 마치 초지를 비집어 여는 것처럼 저항감이 드는 감각에 귀 끝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리비아는 그의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을 찡그린 눈으로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그의 성기는 별반 특이점이 없는 대신 정말이지, 무식하게 컸다. 경험이 적은 것도 아닌데 버겁게 느껴질 만큼. 그래서 일부러라도 힘을 주며 그를 괴롭혔다. 오도 가도 못한 채 쾌락과 당혹감에 낯짝을 일그러뜨리는 것이 우습고 귀여워서.
“부인…….”
애절하게 부르며 가는 허리를 두 팔로 붙들어 안은 채 가슴팍에 입술을 묻고 혀를 놀리는 그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찔러 넣고 배려 없이 그러쥐었으나 남자는 아픈 내색조차 없이 허리를 완전히 내려 뿌리까지 삽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 윽…….”
리비아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고, 미슐레는 차마 그녀를 바로 볼 수도 없는지 민망해하면서도 손을 내려 접합부를 더듬었다. 이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여자는 옷 위로 팔뚝을 더듬었다. 단단한 근육들이 긴장에 젖은 감촉이 기꺼웠다.
“미셸.”
“예, 부인…….”
“움직여요.”
“그렇, 지만…….”
“움직여.”
미슐레는 자세나 불편감 따위를 걱정하는 듯했지만 리비아는 재차 명령하며 권태로운 낯으로 눈을 반쯤 내리감을 뿐이었다. 남자는 결국 천천히 허리를 추어올리며 그녀의 안색을 살폈으나 고통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른한 쾌락에 젖어 조금쯤 풀어졌을 뿐. 마치 머리 아픈 일을 앞두고 독한 술이라도 들이켠 사람처럼.
그제야 남자 역시 안심했다. 그는 리비아의 엉덩이 밑에 제 손을 밀어 넣고 그녀를 받치듯 단단히 붙든 채 성기를 끄집어냈다가 빠르게 짓쳐 박았다. 읏, 하고 그녀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오자 걱정으로 물러졌던 정욕에 불이 붙어 허릿짓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뒤로 물릴 때마다 질벽이 딸려 나올 듯 한껏 문질러졌다가 한순간에 콱 들이박히는 순간에 쾌락이 튀었다. 리비아는 미슐레의 머리카락을 놓아주고 팔걸이에 손톱을 세워 붙잡은 채 그의 거친 움직임을 받아 냈다.
“읏, 아…….”
그녀의 입술을 절박하게 삼킨 미슐레가 퍽 유연하게 추삽질을 이어 갔다. 그녀는 반쯤 떴던 눈을 깜빡이며 그의 혼탁해진 눈을 들여다보았다. 적나라한 감정들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새파란 눈을. 여즉 뻣뻣한 혀와는 달리 한 번 경험했던 탓인지 허리 놀림이 매끄러웠다. 그의 헐벗은 몸 위로 울렁이는 근육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언젠가는 그를 좀 더 관음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
뱃속 깊숙이 그의 것이 처박혔다. 리비아의 다리가 허공에서 파르르 떨렸다. 미슐레는 짐승처럼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벌어진 그녀의 아랫입술을 물고 늘어지듯 빨며 팔걸이 아래로 내려왔던 다리를 위로 걸쳐 주었다.
“죄송합니다.”
“미, 셸…….”
조금 전까지의 매끄러운 움직임은 마치 장난이었던 것처럼, 맹렬하게 달려드는 쾌락에 온몸이 벌벌 떨렸다. 완전히 몸을 묻기엔 부적합한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기엔 자비가 없었다. 뱃속 깊숙한 곳까지, 좀처럼 자극할 일 없는 안까지 파고들었다가 빠져나가지 않고 그저 체중을 싣는 힘으로 더 욱여넣을 듯 쳐 대는 움직임에 잡념이 하얗게 비워졌다. 리비아는 제 입술을 지분대는 그와 눈을 맞추고 혀를 내밀었다.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알아들은 미슐레가 그녀의 혀를 빨며 팔걸이에 손을 짚고 살을 쳤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적막한 방을 요란하게 채우고, 더운 숨에 갑갑해진 숨통에서 억눌린 신음이 비어진다.
남자는 그녀의 몸에 희미하게 밴 타인의 체향을 좇았다. 손으로 문지르고, 키스가 끝나면 입술과 혀로 핥아 그 향을 닦아 내기라도 하려는 듯 집요하게 애무했다. 점점 더 자제심을 잃고 무아지경으로 그녀에게 봉사하면서도 그것만큼은 잊지 않으려는 양 구는 꼴이 흥분을 부추긴다. 리비아는 남자의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흐려진 눈으로 바라보다 늘어뜨렸던 팔다리를 그에게 감았다.
“아, 부인, 잠…….”
“안 돼요.”
미슐레가 허리를 내리는 것에 맞춰 허리를 놀리자 순전히 그녀에게 봉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남자가 파르르 떨며 애원을 뱉었다. 아아, 으, 하고 마치 겁먹은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쾌락에 몸서리치는 그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손톱을 세워 붙잡고 말 그대로 쥐어짜듯 허리를 흔들었다.
“아, 부인, 제발, 아흐…….”
“왜, 그러죠? 방금까지는, 꽤…… 귀엽게, 굴더니.”
“갈, 갈 것, 같, 습니다. 부인, 제발…….”
남자는 저보다 훨씬 난잡한 그녀의 움직임에 휘어잡혀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추삽질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쓰임은 그녀의 쾌락을 위하는 것이므로.
“괜찮아요, 가도 돼요.”
살짝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의 귓바퀴를 핥아 올린 리비아는 가쁜 숨을 터뜨리며 잔뜩 힘주어 그의 것을 조였다. 오르가즘이 목젖까지 치달은 순간에.
“흐윽…….”
미슐레가 무너지듯 찍어 내리며 그녀의 안에 파정했다. 리비아 역시 그의 몸뚱이를 으스러뜨릴 듯이 죄며 절정에 몸을 떨었다.
* * *
관계 후 미슐레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급하게 옷을 추스르더니 쉐리를 불러 닦을 것과 목욕 준비를 부탁하며 수선을 떨었다. 정작 리비아는 오토만에 발을 올린 채 흐트러진 차림 그대로 늘어져 나른함을 만끽하고 있었는데도.
“부인, 저…….”
“죄송할 것 없어요, 꽤 흡족했으니까.”
미슐레는 그녀의 다리 사이를 닦아 내며 눈치를 살피다가 그녀가 괜찮았다는 말을 뱉고서야 안심한 듯 잦아들었다. 그녀는 닦아 낸 수건을 갈무리하는 미슐레에게 제 무릎께를 톡톡 쳤다. 그는 민망해하면서도 어색하게나마 그녀의 무릎에 개처럼 턱을 괬다.
“저는……, 부인께 어떤 방식으로든지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겁니다.”
그는 새삼스럽게, 마치 자신에게 다짐하듯 뇌까렸다. 리비아는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언제나처럼 옅게 미소 지었다.
“정말 그 어떤 것이라도?”
“예.”
“난 당신이 생각하는 보편적인 취향의 소유자가 아니에요.”
그녀는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야살스럽게 속삭이며 진득하게 그의 몸뚱이를 훑어보았다.
“이를테면 당신의 성기를 괴롭히고 싶어 할 수도 있는 법이고, 당신의 처녀를 원할 수도 있어요.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붙여 놓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좋아요?”
미슐레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당혹해했다. 셋 중 어떤 것에 당혹하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리비아는 그를 달래 주지 않고 자신이 핥았던 남자의 귓바퀴를 살살 문질러 주며 속삭였다.
“내 앞에서 빈말은 지양하는 게 좋아요, 미셸. 정말 시험에 들지도 모르니까. 나는 적어도 아직 당신을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답니다.”
“…….”
남자는 얌전히 그녀의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깔며 좀 더 자연스럽게 턱을 기댄 채 생각했다. 아직이라면 언젠가는 그런 마음을 가지실 수도 있다는 말이겠지. 각오한 바이기는 했지만 조금쯤 서글펐다. 흉통을 짓누르는 것처럼 갑갑한 통증이 그를 쥐어짰다.
“그러니 당신은 내게 따르기만 하면 돼요. 지금처럼 아무 의심 없이, 그저 양순하게. 그것만으로도 다른 수컷들과는 구분 짓기에 충분하니까.”
“……예, 부인.”
그녀는 미슐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나른한 몸을 일으켰다.
“씻고 싶군요, 따라와요.”
“……? 예…….”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그녀를 따라 욕실로 향했다. 첫 경험 때 그녀의 배려로 사용한 적이 있던 욕실이라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짐을 느낀 그는 기다리고 있던 시녀가 리비아의 옷가지를 벗겨 내는 것을 멀거니 보고만 있다가, 뒤늦게 놀라 눈을 내리깔았다.
“당신도 벗어요.”
“예?”
“싫은가요?”
“아, 아닙니다.”
미슐레는 자신에게 흘긋 닿았던 시녀의 시선에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도 재빠르게 옷가지를 벗어 내렸다. 급하게 추스른 탓에 조금 전까지 그가 무엇을 했을지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은 몰골이었다. 이런 나체를 드러내는 것은 두 번째라고 해서 괜찮지도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괜찮지 않을 것이었다. 남자는 얼어붙은 듯 선 채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그녀가 손짓하자 삐걱거리며 욕실 안으로 따라 들어섰다.
리비아는 이미 준비를 마친 욕조에 스스럼없이 몸을 담그며 명령했다.
“나가 봐도 좋아요, 쉐리.”
“예, 부인.”
시녀는 정말로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재깍 자리를 비켰다. 의례적으로라도 시중을 한 번쯤 권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녀는 늘 그랬듯 망설임이라고는 없이, 오롯이 리비아가 명령한 바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미슐레는 덩그러니 남아 제게 등을 돌린 채 욕조 속에 앉아 있는 리비아의 하얀 어깨를 바라보았다.
“뭐 해요? 들어오지 않고?”
“그, 부인께서 씻으시는데 제가 함께할 수는…….”
“그건 내가 정해요. 들어와요.”
“……예.”
미슐레는 바닥에 눈을 둔 채 조심스레 다가가 그녀의 반대편에 앉았다. 욕조가 넓은 탓에 다행스럽게도 맞은편에 각자 등을 대고 앉으면 닿을 일조차 없었지만 그녀의 나신을 눈에 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리비아는 고개를 숙인 채 수면만 바라보고 앉은 그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거진 눈으로 범하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농밀한 희롱이었다. 욕조 가장자리에 팔 한쪽을 걸친 채 턱을 괴고서, 잔뜩 위축된 주제에도 커다란 체격과, 조금 전까지 맞닿았던 몸뚱이를.
“미셸.”
“예, 부인.”
“고개를 들어요.”
“……예.”
“날 봐요.”
고개를 들고도 감히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어 욕조 너머의 문 따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미슐레의 요령을 조금도 용납지 않은 리비아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명령했다.
풀어 헤친 검은 머리, 동그마한 어깨와 날렵하게 도드라진 쇄골, 그 아래, 조금 전까지 자신이 지분거린 탓에 울긋불긋한 자국이 남은 가슴이 있다. 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만족스레 미소 지은 리비아가 가볍게 눈짓했다.
“가까이 앉아요.”
“……예.”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저도 모르게 사양의 말을 지껄일 뻔하다가, 시녀의 태도와 조금 전 리비아가 했던 그저 따르라는 말을 떠올리고는 제 입 안 살을 짓씹으며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그녀의 다리가 제 무릎에 닿을 거리까지 와 앉았다. 리비아는 바짝 긴장한 그와 눈을 맞춘 채 발끝으로 그의 몸뚱이를 느릿느릿 더듬었다. 단단한 무릎과 허벅지를, 어쩔 줄 몰라 하며 반듯하게 다리 위에 얹은 주먹을.
그리고 퍽 유쾌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관계 후에 함께 씻자는 이야기를 원론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요. 아직 모자란다는 뜻이니까.”
남자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가 꽉 다물렸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수면 아래 여자의 발이 그의 허벅지 위로 내려앉는다.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제 허벅지 위로 내려앉는 부드러운 발의 감촉에 놀라 흠칫 몸을 떨었다. 그는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주먹 쥔 손마디에 그녀의 발이 닿자 조금쯤 놀랐다. 굳은살이 꽤 박여 있던 탓이었다.
“부인.”
“왜 그러죠?”
“괜찮으시다면 발을…… 만져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는 덜컥 생각난 말을 뱉은 뒤 후회했다. 혹여나 그녀가 불쾌하게 여기면 어쩌나 싶어서.
그러나 리비아는 별다른 감흥 없는 일인지 그러라고 고개를 까딱 끄덕일 뿐이었다.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며 조심스럽게 물속의 희미한 부유감을 느끼며 그녀의 발을 만져 보았다. 처음 닿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 저에 비하면 말랑하다고 여겼던 것 외에 황홀감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녀의 발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여기저기 티눈이 박였던 자리가 있었고, 발가락은 조금쯤 휘어 있었다. 그는 늘 리비아가 구두를 신고 다녔던 것을 떠올렸다. 무용수의 발처럼 레이디의 발은 언제나 갇힌 모양을 띤다는 것을 최초로 깨달은 그는 형언키 어려운 감정에 휩싸였다.
“……아…….”
그는 말주변이 없는 자신을 원망했다. 미슐레는 얕은 탄성을 흘렸다. 주인의 발이라는 것만으로도 그저 너무나도 황홀했다. 눈먼 자가 정인의 낯을 어루만져 그 감각을 새기는 것처럼 아주 느리고 섬세하게 만지작거렸다.
미슐레는 여전히 그녀가 적으로 여기는, 혹은 끌어내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요한에게 가혹하게 구는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납득하고야 말았다. 이런 발을 가질 만큼 혹독한 모습을 견뎌 내신 분을 향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천치 같은 자라 매도했으니.
그는 무심코 그녀의 발을 주물러 주었다. 아무런 제지가 없자 발목과 종아리까지도 타고 올라가 근육을 꾹꾹 누르면서 저도 모르게 제 발이 저려 변명처럼 설명을 뱉었다.
“그, 훈련을 받을 때면 종종 근육이 뭉치곤 합니다만 이렇게 주물러 두면 훨씬 개운합니다. 아프거나 무리했다는 까닭으로 그대로 두면 후에 오히려 통증이 커지는 경우가 많아서…….”
“아하……, 기사들은 보통 이렇게 하나요?”
“예, 그렇습니다.”
“내가 받던 것과는 좀 다르네요.”
“그렇습니까?”
리비아는 물속에 편히 몸을 뉘며 대답했다.
“원리야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보통은 좀 더 가벼운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지압이라기보다는 문지른다는 것에 가까워요.”
“혹 아프십니까?”
“아뇨, 괜찮아요.”
그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리비아의 반대쪽 다리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장례식 이후로 그녀와 이렇듯 평범한 일상적 대화를 나누는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자각하자 어쩐지 밀어보다 훨씬 더 달큼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황송한 눈치로 제 근육을 풀어 주는 남자를 바라보다가, 욕조 벽을 짚고 다가가 그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부, 인…….”
“얌전히 있어요.”
“……예.”
그녀는 미슐레의 두 뺨을 붙잡고 가만히 면면을 살피다가 두꺼운 목과 단단한 어깨를 더듬어 만졌다. 잠깐 눈이 가늘어지다가 겨드랑이 아래로 내려가 옆구리를 가늠하듯 훑던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흐음, 하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었다.
“혹…… 눈에 차지 않으십니까?”
“아뇨, 당신 셔츠가 조금 작은 것 같았거든요. 어쩐지 처음 만져 봤을 때보다 근육이 더 붙은 것 같은걸.”
“그…….”
“역시 만져 주면 커진다는 낭설은 남자에게도 해당 사항이 있는 것 같군요.”
“……마, 마음에…….”
미슐레가 눈을 살짝 내리깐 채 용기를 내어 더듬더듬 말했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 그, 훈련을…….”
“……아하.”
“……예.”
리비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얼굴을 붉힌 채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일부러 흉부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단련했다는 소리를 듣자 노곤해지며 가라앉았던 성욕이 움튼 까닭이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의 윗가슴골을 꾹 눌렀다.
“요컨대 내게 예쁨 받고 싶어서 신경을 썼다는 말이군요?”
“…….”
미슐레는 지나치게 정곡을 찌르는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굳어 있다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한 박자 늦게 말했다.
“예.”
“귀여워라.”
리비아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아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처음 그와 관계했을 때와 꼭 같은 자세였다. 미슐레는 행여나 그녀가 뒤로 미끄러져 물이라도 먹을까 걱정하며 부드럽게 허리께에 손을 받쳐 지탱해 주었다.
그녀는 지당 그래야 하는 일을 받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미슐레의 가슴을 꾹꾹 쥐고 주무르다가, 고개를 숙여 그의 유륜을 입에 머금었다. 온통 단단하고 궂은 그의 몸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운 살갗의 감촉을 만끽하듯 혀로 넓게 핥아 주었다.
“읏…….”
남자의 신음이 터져 나오자 살짝 빨아 올렸다. 숨을 멈춘 것인지 뻣뻣해진 몸뚱이를 달래듯 빨던 것을 멈추고 가슴팍에 가볍게 입술을 비볐다가 다시 빨아 올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음, 하고 그녀의 입에서 뭉개진 소리가 났다. 천천히 혀끝을 세워 유두를 찔러 대다가 부드럽게 풀려 있던 유두가 빳빳하게 곤두서자 다정하게 어르듯 핥다가 불시에 소리가 적나라할 만큼 적극적으로 빨아 애무했다. 미슐레는 그녀의 맨가슴이 제 몸뚱이에 빈틈없이 밀착해 치대는 것에 신경을 쓰다가 유륜이 깨물릴 때면 흠칫거리며 허리를 들썩거렸다. 리비아의 손가락이 그의 등허리를 더듬어 내려간다. 그녀는 아플 정도로 미슐레의 가슴을 질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달짝지근한 목소리.
미슐레의 허리를 더듬는 농밀한 손짓.
리비아는 남은 한쪽 유두를 손끝으로 긁듯이 뭉개 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홀로 있을 적에 가슴은 만져 봤나요?”
“아니, 요……, 아직은……!”
“이렇게나 민감한데.”
남자는 파들파들 떨며 신음을 삭이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리비아는 그런 그를 놀리듯 유두를 꼬집은 채 손가락으로 비비며 제 아랫배에 와 닿는 그의 성기를 자극하기 위해 허리를 놀리는 시늉을 했다. 얕게 맞닿았다가 떨어지는 것뿐이었지만 허벅지 위에서 맨살을 대고 그런 접촉을 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자극적이었던 탓에 미슐레의 턱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말랑말랑한 살집이 제 다리에 치대지는 감촉은 외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자극적이어서 입이 자꾸만 바짝바짝 말랐다. 그러나 리비아는 떨어져 줄 생각일랑 조금도 없는지 태연하게 그에게 개발을 지시할 뿐이었다.
“틈틈이 만져서 길들여 두도록 해요, 미셸. 아래는 안 돼. 가슴만 허락해 주는 거예요.”
“예……, 알, 알겠……습니다.”
“착해라. 앞으로도 내가 쓸 때 외엔 결코 아랫도리는 놀리지 말도록.”
그녀는 가볍게 미슐레의 뺨을 톡톡 두드려 주고는 가슴팍에서 입술을 떼고 꺼떡대는 성기를 틀어쥐고 느릿느릿 문질러 주었다.
“좀 더 뒤로 가 봐요.”
미슐레는 엉겁결에 그녀를 끌고 자신이 원래 앉았듯 욕조 벽에 등을 댈 때까지 물러났다. 리비아는 마치 구석에 그를 몰아넣은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옅게 미소 짓더니 몸을 틀어 그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 둔덕 사이에 성기를 끼우고 느리게 문질렀다. 물이 아닌 다른 감촉으로 젖은 것이 느껴졌다. 남자는 스스로가 그런 것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워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다가 그녀가 살짝 엉덩이를 들자 바짝 긴장했다.
“흐, 읏…….”
예상한 대로, 리비아는 귀두 끄트머리를 입구에 대고 천천히 주저앉았다. 물 때문에 체중이 분산된 까닭인지 무게감이 영 아쉬웠다.
미슐레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그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손으로 더듬어 파악했던 것보다 훨씬 날렵하고 가냘픈 견갑골이 도드라진 모양을 따라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는 떨리는 손을 내밀어 리비아의 아랫배에 팔을 두르고는 혀를 내어 천천히 그녀의 척추 선을 허리께에서부터 뒷목 언저리까지 길게 핥아 올렸다.
“응…….”
간지럼을 타는 것인지 성감을 느끼기 때문인지 모를 모호한 소리가 비어졌다. 미슐레는 그녀의 살갗을 어르듯이 핥아 애무하며 손끝으로 리비아의 아랫배를 더듬었다. 자신의 것을 삼킨 만큼 희미하게 부풀어 오른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는 여전히 깊게 넣을 생각이 없는지 반쯤 삽입한 채 허리를 얕게 들썩이며 애를 태웠다. 정말 이 정도로 만족을 하는지는 등을 돌린 지금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그는 조금 전 뿌리까지 그녀의 뱃속에 삼켜졌던 감각을 잊을 수가 없었다. 완전한 쾌락, 먹히고 있으면서도 외려 포만감이 들던 그것. 미슐레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에 입을 맞추며 살짝 끌어안듯 그녀를 내리눌렀다. 조금쯤 삽입이 깊어지자 질벽이 성기를 좀 더 조이기 시작했다.
“부인…….”
“안 돼요.”
리비아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불허하며 제멋대로 가볍게 엉덩이를 올렸다 주저앉길 반복했다.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가 얕게 울리고, 미슐레가 끙끙 앓는 소리가 뒤를 따랐다. 그는 반쯤 고문당하는 기분으로 그녀가 자신을 희롱하는 것을 가만 지켜보아야 했다. 분명 처음엔 이 정도로도 만족했던 것 같건만 그때의 만족감은 씻은 듯 사라지고 없었다. 미슐레는 더운 숨을 뱉으며 리비아의 가슴을 받치듯 싸쥐었다. 그녀가 제게 해 주었던 것처럼.
다행히도 만류는 없었고, 그는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가슴을 움켜쥔 채 두어 번 주물러 보다가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비비며 리비아의 성감을 돋울 뿐이었다.
“미셸.”
“예, 부인.”
“더 깊이 넣고 싶어요?”
“……예.”
“귀여워라……, 읏…….”
미슐레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가 맥이 뛰는 선을 따라 점점이 입을 맞추었다. 리비아는 짧게 신음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늘어뜨렸다.
“해 봐요.”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미슐레는 그녀를 제 품에 꽉 끌어안듯 내리눌러 깊게 처박았다.
“흑……!”
물속이라 부유감이 있기는 했지만 그의 힘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므로, 리비아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쳐올리는 힘에 못 견뎌 짧게 신음을 터뜨렸다. 뱃속을 짓뭉개듯 파고드는 쾌락에 몸서리를 치며 그의 팔뚝을 붙들자 마치 커다란 개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에 뺨을 비비며 낮게 목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몽롱하게 흔들리는 다리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주어지는 쾌락, 감촉을 만끽하기에 모자람 없는 근육과 애틋해 어쩔 줄을 모르는 모든 것들이 값비싼 여흥이 된다.
“아……!”
여자가 허리를 내릴 때와는 전혀 다르게 사납게 물 치는 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미슐레는 그녀의 목을 연신 지분거리며 부인, 부인, 하고 애처롭게 리비아를 불러 댔다. 그 낮고 절박한 목소리가 귓전을 긁어내릴 때마다 전율이 일었다.
“응…….”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혀 입술을 벌리자마자 곧장 맞물어 오는 입술을 빨며 오싹오싹한 희열에 살풋 인상을 찡그렸다. 좀 더 망가뜨리고 싶은 마음과 천천히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교차하며 온갖 망상을 일으켰다. 마치 식욕처럼 허기를 달래도 끝없이 욕망이 피어오른다. 리비아는 결국 상념을 잊기 위해 미슐레를 자극했다. 오늘은 조금쯤 더 쉬어도 괜찮을 것이다.
* * *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일찍이 공작저에서 자랐다. 어떤 경위로 그가 공작가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는 현재 살아 있는 사람 중 아는 이라고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어느 날 선 공작이 데려와 하녀들에게 던져 주었을 뿐.
공작저는 몹시 넓었고, 지당 고용인들이 많았으며, 그들이 데리고 온, 혹은 공작저에서 낳아 기르게 된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자그마한 보육원이 따로 딸려 있을 만큼.
미슐레는 그 틈바구니에서 자랐다. 부모가 없다는 것쯤은 새삼스러운 환경도 아니었으므로 유년기는 어렵지도 다복하지도 않게 지나갔지만 그가 마력을 무효화하는 체질이라는 사실이 요한 구르디예프에 의해 밝혀진 이후 삶은 정반대로 뒤집히고야 말았다.
기실 요한 구르디예프도 대단한 악감정이 있어서 작은 소년의 체질을 들춰 버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결계를 손보던 중 유독 마력이 쇠하여 약해지는 부분이 일정함을 알아차렸을 뿐이고, 그 문제점을 찾기 위해 저택 외곽에 다다랐을 때 우연히 바깥에서 또래들과 공을 차던 미슐레를 발견해 버린 것뿐이다.
마력을 무효화한다는 것은 실로 위험하고 대단한 재능이었으므로 그의 재능이 공작의 귀에 들어가자마자 미슐레를 최대로 활용할 방법을 내기 위해 어찌 취급해야 할지 회의가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기사의 종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정말이지 대단한 특혜였다. 천애 고아인 그가 길바닥에서 굶어 죽거나 소매치기나 앵벌이가 되지 않고 오히려 공작가에서 멀끔하게 자라 남들은 훈련과 인맥을 동원해도 못한다는 공작가의 기사단에 종자로 들어가게 되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운이란 말인가? 순조롭게 자란다면 기사가 될 것이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훈련 교관 따위의 멀끔한 직업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공작저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고 해도 길바닥에서 밥을 빌어먹게 될 일은 영영 없을 테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년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어린 시절의 미슐레는 유독 하얗고 자그마한 소년이었으므로 남자들만 가득한 데다 폐쇄적인 특권 집단 속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검은 고수머리와 푸른 눈이 아름다운 소년은 나름대로 이름 있는 귀족 집안의 아들들과 같이 기사들의 종자 노릇을 하며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 있어서 소년의 재능은 그저 굴러들어 오기 위한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시간이 지나 그가 십 대가 되었을 무렵에는 더러운 일도 적지 않았다. 기사도와 공작가의 명예와 평판을 위해 바깥에서야 워낙 고결한 척 굴어야 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내부에서 욕구를 풀고자 하는 인간들이 득시글거렸기 때문이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아주 좋은 먹잇감이었다.
미슐레는 다행히도 검에 재능을 보였고, 그 밖에도 궁술, 체술, 창술 등 몸을 쓰는 게 필요한 일이라면 대체로 곧잘 해냈다. 기사다운 일이 아닌 것들도 그러했다. 암살이나 범죄적 영역의 무력을 쓰는 일들,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두각을 드러낸 것은 재능을 십분 사용해 오러 사용자나 마법사들을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체질상 자신도 오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순수한 체술에 매진했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그 능력을 주로 하여 살아 나간다는 점을 이용해 그 틈새를 잘 비집고 들어갔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근접전에서 미슐레 호엔베르크를 이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일 지경이었다.
요한 구르디예프가 그를 직접 평가한 바가 그러했으니 공작이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귀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삶에 마법의 극치인 요한에 이어 무력의 극치인 기사를 얻게 될 텐데.
그러니 미슐레는 높은 분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덕분에 완전히 나락에 떨어질 일은 없었지만 딱 그 기대만큼의 질시를 산 탓에 삶이 대단히 고단했다. 견딜 만한 지옥이라는 말이 적합한 삶.
자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름깨나 있다는 집안 출신인 수컷들투성이인 곳에서 소년이 배운 것이라고는 남자들을 향한 환멸과 욕망에 대한 경멸뿐이었다. 그는 정말로 욕망이라는 것이 싫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 역시 자신의 복수심이라는 욕망이 기반 된 일이었지만 소년은 미친 듯이 일에 매진했다. 어떻게든 더는 저런 자들이 제게 손을 대지 못할 위치가 가지고 싶었다.
기사단과도, 동기들과도, 어렸던 시절의 또래 친구들과도 멀어져 그저 훈련뿐인 나날의 어느 여름이었다. 그는 연무장에서 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지붕 아래에 서 있던 참이었다. 벽에 기대어 욱신거리는 발을 쉬고 있을 무렵에 만난 아름다운 사람.
리비아 모브레이였다.
물론 그때의 리비아는 스물 남짓의 어린 영애였으므로 리비아 마르셸 뤼드베리라고 불렸다. 로덴바흐 백작의 맏딸이라 기사단 사람들이 입을 모아 갖가지 더러운 이야기들을, 주로 욕망에 절어 버린 이야기를 떠들 때 주워들은 기억이 있어 알아보았다.
하나로 묶어 늘어뜨린 긴 흑발, 선명한 녹색 눈, 또래 영애들답지 않은 정숙한 드레스와 적당한 귀금속들.
공작저에서 평생을 산 소년에게는 지나치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 저택에 출입하는 외부인들이란 대개 그러했으므로.
그러나 자신이 기댄 벽 안쪽, 그러니까 실내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여자는 어딘가 정처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눈치조차 채지 못한 듯 멀거니 지면을 두드리는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도무지 산 사람 같지 않은 흐린 분위기를 띠었다.
빗물로 얼룩진 유리창 너머의 그녀는 소년의 눈에 녹아내리는 초상화 속 여인처럼 보였다.
어쩌면 이미 그때쯤 그녀에게 반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리비아가 자리를 떠나고, 비가 그치고, 해가 질 무렵까지 그저 유리창을 바라보며 굳은 채 서 있었으니까.
소년은 오래도록 그것이 사랑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것을 보아 여운이 오래가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다.
단순한 여운일 뿐인데 왜 그토록 오래 갔느냐고 묻는다면 리비아 뤼드베리가 공작가에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라고 답하리라. 그녀는 그맘때부터 이미 차기 공작인 조르주 모브레이의 배필로 점찍혀 공작가의 안살림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미슐레는 먼발치에서 그녀를 볼 때면 그 치맛자락이 시야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저 빤히 바라만 보고 있다가 묘하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훈련에 매진하곤 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리비아는 조르주 모브레이와 결혼했다. 곧이어 공작 부부가 죽고, 조르주 모브레이가 공작이 되며 미슐레는 그녀의 호위로 발탁되었다. 그가 대단한 공적이 있거나 이름을 날린 기사는 아니지만 그만큼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니 단점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그의 체질과 성실함을 종합해 높이 산 결과였다.
돌이켜 보면 조르주 모브레이는 이미 그 무렵에 자신의 이른 죽음을 직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작위를 승계받은 뒤의 모든 것이 리비아 모브레이를 위해 돌아갔으니까.
그는 그저 움직이는 초상화 정도로만 여겨 왔던 리비아 모브레이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었을 때도 그다지 감흥을 갖지 않았었다. 일찍이 인간에 대한 불신과 환멸로 가득 찬 채 자라 사춘기를 맞이한 십 대의 비뚜른 마음이야 뻔하지 않은가.
“반가워요, 호엔베르크 경. 오늘부터 나와 함께하게 되었군요.”
그러나 아무리 비뚠 소년이라도 낭랑하고 우아한 목소리와 다정하고 정중한 어투에는 당혹하고야 말았다. 리비아는 저보다 열 살 남짓 어린 작달막한 소년 기사에게도 예의를 갖춰 대하며, 무엇보다 상냥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미슐레 호엔베르크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타인의 정중함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그녀의 예의는 눈과 태도에서부터 드러났다. 소년의 얼굴을 빤히 보는 일도, 위아래로 훑는 일도, 얕잡거나 조롱하는 언행도 없었다. 소년에게 있어서 자신을 더러운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그저 자신의 능력만을 보아 주는 사람은 리비아 모브레이가 처음이었다.
리비아는 그 이후로도 미슐레를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자신의 수족이 된 사람이기에 당연하다는 투로 그의 처우를, 평판을, 병이나 부상 따위의 사소한 것들도, 자신도 몰랐던 생일까지도.
그는 마치 오랫동안 말라 있던 싹이 비를 맞기라도 한 것처럼 급속도로 자랐다. 늘 자그마하고 예쁘장했던 소년은 십 대 후반이 될 무렵에는 갓 성년이 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도 없을 만큼 장성하여 기사단 내에서도 거구로 손꼽히는 사내가 되었다. 자신을 수없이 괴롭혔던 동기나 선임들도 함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할 만큼 을씨년스럽고 위압적인 인간이 되었음에도 리비아는 늘 처음처럼 대해 주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미셸이라는 낯간지럽고 귀여운 애칭으로 자신을 부르기 시작했던 것쯤일까.
- 공금 by Jira
남자는 그녀의 뒤를 따르며 어느덧 그녀의 주변이나 등보다도 가녀린 목을, 언뜻 드러나곤 하는 장갑과 소매 사이의 흰 손목과 치맛자락이 흔들릴 때면 이따금 드러나곤 하는 도드라진 복사뼈 따위를 바라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느 날 밤에는 기어이 그녀가 나오는 꿈을 꾸고 최초로 몽정을 했다.
그날, 미슐레는 자신이 기어코 자신이 경멸하던 더러운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 되었음을 통감하며 죄책감에 절어 소리 죽여 울었다.
그렇게 자신을 탓하고 억누르며 살아온 그가 수년 후 조르주 모브레이의 장례식 날 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홀리지 않을 방법을 가지고 있었겠는가. 그저 속절없이 뒤흔들려 늘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리비아의 애인들은 언제고 그녀에게 인간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었다. 억눌리고, 짓밟히고, 철저히 통제당하며 욕망 속에 녹아내렸다. 미슐레가 그들의 정사를 훔쳐보게 되었던 것은 정말 우연이었지만 그는 그 순간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그녀의 개가 되면 차라리 해를 끼칠 일이라곤 없겠구나, 더럽고 추잡한 욕망을 발산하더라도 그녀가 얼마든지 휘두를 수 있는 인간 이하의 것이 되면 되는 거였구나.
리비아는 언제나 냉철하게 쾌락과 정사를 통제했으므로.
그러니 미슐레는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얄팍한 상상력으로는 꿈꿔 본 적도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었으니까.
“미친놈, 그 계집의 미친 짓거리를 보고도 좋다고 꼬리나 치고 있을 셈이냐?”
나름대로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 구르디예프가 가운 한 장만 걸치고 그녀의 침대 위에 사슬로 묶인 채 충격과 경멸로 점철된 낯을 하고 자신을 매도하더라도 남자는 진실로 단 한 점의 수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을 욕하는 것보다도 리비아 모브레이를 감히 계집이니 미친 짓거리니 하며 모욕하는 것에 더욱 분노했다.
“구르디예프 경, 그분은 포웰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말씀을 삼가십시오.”
“그래서? 그러면 날 이따위로 취급해도 된단 말이냐? 그것이 모브레이에 굴러들어 온 세월의 스무 배는 더 산 내가 이런 취급을 받는데 화조차 내지 말라?”
“당신이 화를 내시는 것은 지당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분을 모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일 뿐.”
그는 이 순간에도 요한의 눈에서 리비아의 색을 찾고 있었다. 조금 더 짙고 또렷한, 그늘 속의 잎사귀처럼 정적인 그분의 눈을.
“끼리끼리 미쳐 돌아가는군.”
요한이 씹어 뱉듯 뇌까리는 소리를 듣고도 미슐레가 화가 난 것은, 어찌 그분이 이렇게까지 하시는데 거부할 수 있을까 싶은 점이었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신도, 다른 수컷들도 그녀의 손짓 한 번이면 기꺼이 무릎을 꿇었는데. 왜 그분께서는 이런 뻣뻣한 남자를 사로잡길 원하시는가?
그러나 자신의 이해가 필요한 일이 아님을 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해도, 납득하지 못해도, 미슐레 호엔베르크는 리비아 모브레이가 바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따를 요량이었다. 그것이 비 오는 날 한 여자가 그저 존재만으로도 어떤 소년을 이끌었던 은혜에 대한 유일한 값이 될 테니까.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