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0)

당신의 모브레이

눈앞이 가물가물했다. 불시에 벌어진 일인 탓에 정신이 들고도 갈피를 잡지 못해 멍하니 늘어져 있던 남자는, 희미하게 뜨인 눈에 비친 풍경이 사뭇 낯설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쳤다.

“무…….”

무슨 일이지.

상상조차 못 해 본 꼬락서니였다. 두 손은 하나로 묶여 머리 위로 들린 채 고정되어 있었고, 양 발목은 각각 침대 모서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등 뒤에 푹신한 베개가 받쳐져 앉아 있기 힘들지는 않았지만,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꼴이 되어 있었다. 요한 구르디예프는 제 몸 상태를 깨닫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이곳이 어딘지 확인하고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내가 왜 여기에…… 아니, 이 미친 여자……!’

처음부터 자신을 이런 식으로 다룰 셈으로 함정을 팠던 게 틀림없었다. 분기가 치밀어 참지 않고 당장에 마력을 운용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몸 안에서만 그의 기분을 대변하듯 사납게 뱅뱅 돌 뿐 술식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게…….”

등 뒤가 서늘해지는 처참한 기분,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들어 자신의 손을 매단 것을 살펴본 요한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아주 먼 옛날에 레이븐과 그의 혈통을 향한 제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 제 손으로 만들었던 마력 구속구였다.

“아, 깨어나셨나요. 구르디예프 경?”

“너!”

리비아는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꾹꾹 눌러 말리며 가운 차림으로 걸어 나왔다. 등 뒤로 이름 모를 시녀 하나가 따라 나와 그녀에게 새 수건을 쥐여 주는 것을 본 요한이 야차처럼 낯짝을 일그러뜨렸다. 대단히 험악하고 처절해 보이는 얼굴.

“시녀! 너! 빨리 이걸 치워! 네 주인이 실성한 짓을 하고 있으면 말릴 것이지!”

“멋진 얼굴을 하네요, 구르디예프 경.”

“리비아 모브레이!”

“이젠 허울뿐인 존칭도 내다 버리실 정도로 화가 나셨나요? 저런……, 쉐리. 넌 나가 있으렴.”

“네, 부인.”

“내 말 안 들려!”

아주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시녀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정중하게 문을 닫고 돌아 나갔고, 요한은 분노와 황망함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수습조차 하지 못하고 망연히 방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리비아는 그 짜릿한 표정을 감상하며 오싹오싹한 희열에 몸서리쳤다.

“귀여운 분, 이제 아시겠나요? 당신과 나 중 어느 쪽이 우선되는지.”

“이…… 미친 게……, 당신, 날 이따위로 다루고도 살아서 떵떵거릴 수 있는 줄 알아? 빌어먹을, 이게 왜……!”

그는 몸부림을 치며 횡설수설 으르렁거리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스스로가 만들었으니 알 것이다. 그 구속구를 찬 채 반항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리비아는 그의 표정에 스미는 불안을 달게 감상하며 나긋나긋하게 다가와 몸부림을 치느라고 비뚤어진 베개를 고쳐 주고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당신이 직접 레이븐 공께 주신 것이잖아요? 당연히 후대로 물려지는 공작가의 패물, 안주인인 제가 손대지 못할 리 없죠. 쓰라고 만들어 주시고서는 박정한 말씀 마시어요.”

“……!”

살벌하게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비아는 그의 표정을 감상하며 협탁 위에 올려 두었던 가위를 집어 들고 상냥하게 그를 달래며 차분하게 옷을 잘라 내기 시작했다.

“미쳤어? 어딜 가위를……!”

“진정하시어요, 제가 경께 위해를 가할 리 없지 않나요? 미슐레라면 모를까.”

“뭐?”

“그가 있는데 왜 제가 손을 더럽히겠어요?”

대단히 여상스러운 답이었다. 그러나 그 뻔뻔함보다도 먼저 그를 제거하는 방편도 고려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대답이 한층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모브레이가. 요한 구르디예프를.

그것은 자식이 부모의 손을 내치는 것처럼 청천벽력 같은 부정이었다. 요한은 자신이 그 충격적인 대답을 천천히 이해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피가 빠져나가는 끔찍한 감각을 맛보며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기가 맺힌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가운 한 장 걸친 몸으로도 조금의 수치 없이 당연한 일을 하는 양 옷을 한 겹 한 겹 정성스레 잘라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손길은 오히려 다정하기까지 했다.

“날?”

삽시간에 황망해진 남자는 제 입으로 무슨 소리를 뱉었는지도 모른 채 치를 떨었다. 다른 누가 자신을 배척하더라도 모브레이는 그래선 안 되는 게 아닌가. 자신이 이 가문에 바쳐 온 세월이 몇 년인데.

“경의 안색만 보면 제가 꼭 당신을 고문이라도 할 것처럼 보이네요.”

“……아니면?”

“저는 그저 즐길 뿐이에요.”

리비아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이제는 그의 하의를 조각조각 잘라 냈다.

“천지 분간도 못 하는 우둔한 수컷이 더럽혀져 현실을 깨닫는 것을요.”

“뭐?”

“후후,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이런 방면으로는 무르시군요. 백지처럼……, 모르고 살아도 됐단 말이겠죠. 알고는 있었지만 과연, 직접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워요.”

“알아듣게 말해.”

그녀는 뒤흔들린 주제에 태연한 척하는 그의 파리한 안색에 회가 동해 잠시간 파르르 떨었다. 벌써 하복부 언저리가 뭉근하게 달아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공연히 심술부리듯 갉작거리던 가위질을 관두고 호쾌하게 남은 부분을 잘라 천 조각이 된 잔해와 가위를 바닥으로 쓸어 내 버리고는 그의 허리 위에 올라타 제 허리끈을 당겼다.

“좋아요, 구르디예프 경. 아, 이젠 요한이라고 불러야겠군요.”

가운의 앞섶이 벌어지며 풍만한 여체가 드러났다. 남자는 상상도 못 했던 광경을 그저 현실감 없이 바라보다가, 그녀가 천천히 상체를 숙여 저를 덮치듯 가슴팍을 짚고 고개를 가까이 하자 숨을 멈추었다.

“당신은 지금부터 내게 유린당할 거예요.”

“……유린? 내가?”

“네에, 꽤 귀여운 반응이시네요. 문란이 어쩌고 방탕이 어쩌고 꽤나 신랄하게 말씀하시기에 혹 경험이 적어 까무러치지는 않으실까 하였는데 제 기우였던 모양이에요.”

마치 여체에서 도망치듯 멀어질 구석도 없는 곳에서 힘껏 상체를 뒤로 젖히려 애쓰자 여자의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그의 머리채를 힘껏 틀어쥐었다.

“악!”

“당신의 몸 구석구석 제 혀와 손으로 어루만지고, 천천히 녹여서, 아무 생각도 못 하실 때까지 진탕 범한 다음 버릇을 가르쳐 드릴 생각이랍니다. 아무리 당신이 대현자라 한들 수컷인 이상 한계란 건 명확하고…….”

뚝, 하고 차가운 물방울이 그의 뺨과 목줄기에 떨어져 내렸다. 덩굴처럼 검고 굽이치는 머리카락이 뺨 위로 흘러내리는 감각이 마치 뿌리를 내리는 양 선뜩했고.

“당신은 몇 번 만에 제게 굴복하게 될까요? 가엾고 우스운 나의 요한.”

늪처럼 어둡게 가라앉은 여자의 눈을 알아차렸을 때는 자신의 성기 위로 무언가 축축하고 매끄러운 것이 스치고 있었다. 남자는 비로소 그때에야 고장 났던 머리통을 굴려 가까스로 상황을 이해했다.

“미쳤나?”

그의 목소리도 입술도 형편없이 떨렸다.

“아뇨, 전 항상 이러하였는걸요. 아시지 않나요?”

“난, 내가, 날, 누군지 알면서……!”

“그럼요, 요한 바이뎀 구르디예프. 우리 모브레이의 소중한 고문.”

“넌 내키면 부모 자식 간에도 간음할 셈인가? 난 네 조상뻘, 윽!”

그는 점점 언성을 높이다 돌연 신음과 함께 뚝 말을 멈추었다. 가슴팍에 파고드는 손톱 때문이 아니라, 마치 무저갱처럼 진득하고 잔혹하게 말라붙은 여자의 얼굴을 마주한 까닭이었다.

“입, 다물어요.”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요한은 일찍이 이런 위압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제 눈에는 한참이나 얄팍한 욕망과 저속한 목표를 위해 남들을 거꾸러뜨리며 위악을 떨던 것들만이 가득했으므로 이런 깊은 수렁을 목도한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은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어 무력한 상황이니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마법도 검도 쓸 줄 모르는 고상한 귀부인이지 않은가. 자신이 공포 따위를 느낄 여지는 어디에도 없건만 섬뜩했다. 입술이 천천히 얼어붙은 듯 떨어지질 않았다.

“고작 나잇살로 부모 자식을 들먹이지 말아요, 요한.”

여자는 그의 입이 다물리자 천천히 평정을 찾은 듯 차분하게 속삭이며 손톱에서 힘을 뺐다.

“저는 전부터 당신이 마치 제 아버지라도 되는 양 그 알량한 세월로 제 머리 위에서 고개를 들먹일 때마다 언제나 당신을 욕보이고 싶었답니다. 갑자기가 아니에요, 직감하셨다면 다행이고, 아니라면 지금부터 알아 두세요. 쭉 그랬답니다. 당신의 그 나만이 불행하고 진정한 경험을 했다는 듯 도취한 꼬락서니를 볼 때마다 진정한 굴욕이라는 걸, 결벽하신 당신이 결코 외면하지 못할 방식으로 욱여넣어 드리고 싶었거든요.”

손끝에 묻어난 피를 흘긋 본 리비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의 피 맺힌 가슴팍에 입을 맞췄다.

“저런, 상처 입힐 생각은 아니었답니다. 양해해 주세요.”

“……내가.”

리비아는 그의 배를 간지럽히듯 어루만지며, 희롱하듯 노골적으로 그의 가슴팍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췄다. 남자는 화를 내지도 못한 채 더듬더듬 말했다.

“내게 불만이 있다면 말로 해, 난 당신 평판을 걱정해서…….”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 걱정이 알량하고 밉살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랍니다. 요한.”

그녀는 입매를 비틀며 그의 등 뒤에 괴어 두었던 베개들을 매섭게 바닥으로 내치고는 손목을 묶어 둔 사슬을 당겨 길이를 늘여서는 남자를 처박듯 눕혔다.

“당신의 강박에서 기인한 얄팍한 걱정 따윈 내게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알아듣질 못하시니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된 것 아니겠어요? 이제야 대화라니, 말 같지도 않은 수고를 자꾸만 시키려 드시는군요.”

“리비아 모브레이.”

“네에, 당신의 모브레이랍니다.”

요한은 그녀의 숨이 지척에서 느껴지자 몸을 움칠 떨었다. 그녀가 더는 무서운 표정을 짓지 않았지만 반항할 수가 없었다. 오랜 세월 조건 없이 귀애했던 네 글자의 이름이 그를 단단히 옭아맸다.

리비아는 남자의 입술을 핥는 것처럼 사뿐하게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당신이 경멸하는 리비아와 당신이 사랑하는 모브레이가 여기에 있어요.”

“읍……!”

말이 끝나자마자 무게가 실린 입술이 남자의 입술을 뭉개듯 비집어 벌리곤 혓바닥이 쏟아지듯 파고들었다. 그는 소름 끼치게 차가운 머리칼과 대비되는 뜨뜻한 살덩이가 엉겨드는 모순적 감각에 사로잡혀 눈을 홉뜬 채 이유 모르게 고인 눈물로 시야를 부옇게 흐렸다.

생에 첫 키스는 부드러웠다. 이대로 집어삼켜질 것만 같아 두려울 정도로. 그러나 이미 압도당한 주제라 유의미한 반항이 마땅치 않아서, 그는 혀를 밀어 내며 어떻게든 말하는 것으로 그녀를 말려 보려 했다.

“부인, 좀…… 진정, 난……!”

“원하지 않는다고요?”

“당연하잖아……!”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을 맞닥뜨린 양 기이한 표정을 짓더니, 제 음부에 맞닿은 것을 인지시키려는 듯 아래에 체중을 실어 느릿하게 문질렀다.

“이렇게 세우고서요?”

완전히 발기한 요한 구르디예프의 성기를.

“……아……?”

“포기해요, 요한.”

그녀가 삽입할 듯 점막으로 찬찬히 그의 선단을 문지르다 배 쪽으로 올려붙인 채 깔고 앉아 천천히 음부로 짓누르고 허리를 흔들었다.

“이렇게 온몸으로 범해지고 싶어 하면서 입만 놀려 봤자 오히려 회가 동할 뿐이니까.”

“난, 아니…… 아니야…….”

질겁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 남자의 몰골이 얼마나 우스운가. 그는 아마 제 낯짝이 어떤 꼴인지 모르니 이런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리라.

리비아는 희미하게 조소하며 달아오른 그의 뺨을 길게 핥아 올렸다. 자신이 가슴팍을 할퀼 때부터 사랑에 빠진 듯 멍하고 황홀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봤던 요한이 우스워 화도 나질 않았다. 그저 식은 분노의 잔재와 딱 그만큼 부피를 더한 배덕한 흥분만이 남아 아래를 적실 뿐.

공황 상태에 빠진 요한이 넋을 빼고 있자 리비아는 천천히 그의 귓바퀴를 핥아 올리며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제 살갗보다 훨씬 부드럽고 서늘한 살집이 꾹 눌리자 소스라치게 놀란 요한이 뭍으로 내팽개쳐진 물고기처럼 퍼득거렸으나 리비아가 서늘한 얼굴로 깔아 보자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그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가파르게 뛰는 제 심장이 너무도 낯설어 망연해했다.

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제 둔덕 사이에 끼워진 요한의 성기에 마치 영역 표시라도 하는 것처럼 애액으로 충분히 치대며 나른하게 그의 젖을 매만졌다.

“생각보단 만질 게 좀 있군요. 미셸만큼은 아니지만.”

손끝이 유두를 꾹 짓누르며 뭉개듯 후볐다. 알싸한 통증과 함께 열이 몰리는 감각에 파르르 떤 요한은 눈앞에 펼쳐진 색정적인 광경에 눈을 두지 못하고 두서없이 방구석이나 제 머리맡을 살피며 허둥거렸다.

그의 성기는 미슐레보다 조금 더 굵고 조금 휜 모양새였다. 핏줄이 도드라진 편은 아니라서 매끄러운 감각이 도드라졌다. 리비아는 그의 유륜을 핥다 그 자리에 사뿐한 버드키스를 퍼부었다.

“그, 그만…….”

희미한 만류에 흥분이 섞여 있다. 저도 깨닫지 못한 교태겠지.

여자는 차분하게 제 애액으로 범벅이 된 그의 성기를 손아귀에 꽉 틀어쥐며 몸을 일으켰다.

“아, 흑……! 그마, 그만, 손 좀……!”

“왜요? 가고 싶은가요?”

“미쳤어! 아프단, 하악!”

“이건 기분 좋다고 하는 거랍니다.”

손도 대지 않은 귀두 끄트머리에서 투명한 액체가 찔끔찔끔 맺혀 있는 꼴을 보란 듯이 성기를 쥐고 성의 없이 흔든 리비아가 제 입술을 혀로 핥으며 그의 좆대를 우악스럽게 위아래로 문질렀다.

“벌써 우는소리를 하면 어떡해요, 요한. 이대로 순결이라도 잃었다간 겁탈당한 양 훌쩍거리며 책임져 달라고 할 것 같은걸.”

“미, 아니, 겁탈이 아니고서야 뭐란 말이야?”

“교육이라니까. 물론 당신이 그리 받아들이고 싶다면 따라 드리죠.”

여자는 픽 웃으며 가운을 벗어 던지고는 그의 턱을 틀어쥐고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막았다.

“잘 봐, 요한 구르디예프. 당신은 지금부터 모브레이에게 겁탈당하는 거야.”

“시, 싫…….”

“당신이 사랑한 모브레이가 아니라 가장 밀어내고 싶어 했던, 경멸스러운 모브레이에게…….”

그녀가 남은 손의 검지와 중지로 스스로 제 둔덕을 벌리고 그의 귀두와 맞붙였다. 딱딱한 클리토리스와 부드러운 귀두가 맞닿았다가, 천천히 미끄러운 액체를 따라 이동하며 벌름거리는 질구에 닿았다. 요한은 본능적으로 몸서리를 쳤다. 뻐끔거리는 무언가가 제 은밀한 살갗을 갉작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까마득한 감각을 선사했다.

“집어삼켜지는 거지.”

단숨에 뿌리까지 처박는다. 리비아는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어 내리며 아예 뭉개듯 그의 성기를 뱃속 깊이 쑤셔 넣었다.

“히, 힉……!”

요한은 허리를 띄운 채 작살에라도 꿰인 양 벌벌 떨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감촉과 열락이 척수를 두들기고 파고드는 감각, 피할 수도 없이 사로잡혀 포식자의 얼굴을 마주한 채 찌걱거리는 소리로 깨달은 상황, 여자의 창백하던 얼굴에 희미하게 번지는 핏기와 떨림 같은 것들이.

“흑…….”

회피할 수도 없게 확고하게 자신의 처지를 인지시킨다. 동공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어때요?”

조금 엉덩이를 띄웠다가 성의 없이 툭 내려앉으며 여자가 속삭였다.

“그렇게 울 만큼 좋아하다니 기뻐요, 요한.”

설핏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

눈앞에 둔 포식자의 것보다 좀 더 밝고 옅은 색의 녹안이 눈물로 부옇게 물들었다.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리비아에게 욕정을 느낀 자신이, 모브레이에 짓눌린 지금이 지나치게 수치스러웠다. 구속구만 없었더라도 당장에 뒤엎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오히려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참으려고 애쓸 때마다 꾸역꾸역 눈물이 범람했다. 남자는 생애 최초로, 어쩌면 아주 오랜만에 지나치게 감정이 격앙되면 울음이 터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는 더없는 황홀함에 몸서리치며 그를 채근하고는 허리를 짧게 튕기기 시작했다.

“요한, 대답해야죠. 내가 묻고 있지 않나요.”

“흑, 우……”

“가엾고 우스운 나의 요한.”

그녀는 마치 노래하듯 가볍고 부드러운 톤으로 조잘거리며 그의 뺨을 감싸 쥐고 엄지로 눈물을 훔쳐 냈다.

“멍청한 수컷 새끼들에게 오냐오냐 감싸여 지내느라고 계략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런 얄팍한 짓거리에 엮여 이렇게나 가여운 꼬락서니가 되다니, 정말이지 귀엽지만…….”

리비아는 남자의 눈물이 묻은 손으로 흘러내린 제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젖혔다.

“조금 실망인걸.”

인위적으로 꾸민 표정이 걷히자 마른 캔버스처럼 서늘하고 메마른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요한은 광원 모를 희미한 빛을 머금은 그 낯에 철렁했다. 자신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한, 어떤 무형의 무언가를 노리는 눈.

“웃…….”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신음과 다른 맥락에서 입이 자꾸만 달싹거렸다. 아주 예전에, 이제는 희미해진 시절에 공들이던 연구가 가까스로 성공했을 때에나 느껴 봤던 기쁨. 법열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감각.

“부, 인.”

“네에, 요한.”

“이제……, 놔, 놔줘…….”

그는 홀린 듯 입을 열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입꼬리로 애써 웃으려 노력하는 순간 제 폐부에서 무언가 산산이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여만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리는 뜨끈한 감촉에 피가 달아올랐다.

“이제 됐잖아…….”

이대로는 안 된다. 돌이킬 수 없게 될 테니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존심으로 뭉친 삶이라 빌어 본 적도 없는 주제였으나 그는 진정 살고 싶었다. 자꾸만 발밑이 꺼지는 까마득한 기분에 사로잡혀 휘청거렸다. 이대로는, 저 미친 계집에게서 놓여나지 못하면 영영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료하지만 평화로운 일상. 당연히 자신이 가장 우선이 되고, 자신의 말을 전적으로 신봉하는 것들을 거느린 그런 삶. 점점 감각이 무뎌지는 그런 퇴색적인 일상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그녀가 주는 자극은 찬란했다. 마치 아주 예전에 좋아했던 것을 덜컥 다시 만난 듯한 감상이 들 정도로.

그러나 리비아 모브레이는 괴물이었다. 저 여자는 자존심과는 다른 것이 있다. 굶주린 독사처럼 꺼멓게 눌어붙은 악. 절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 절대…….

“흐음.”

이길 수 없는 것.

비뚤어진 조소를 덧씌운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사지가 벌벌 떨릴 정도로. 그녀는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이성으로도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그의 필사적이고 비굴한 웃음에 희미한 오르가즘을 느꼈다.

“맞아, 이거예요.”

“부인……, 흣!”

그녀의 내벽이 울컥 조여들었다. 먹이를 통째로 욱여넣는 뱀의 식사처럼 악착같은 조임에 헛숨을 들이켠 요한이 황망하게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리비아는 그의 불안감에 부응하기 위해 그를 품에 끌어안으며 몸을 바짝 붙이고는 멈췄던 허릿짓에 차근차근 속도를 붙였다.

“놔, 놔……, 줘, 아, 아……!”

“이전까지 맛본 적 없는 쾌락을 두려워하는 그런…… 비굴한 얼굴.”

뜨끈한 살덩이가 가슴을 길게 핥아 올린다. 피부와는 또 다른 부드러움과 눅눅한 열기가 남자의 유륜을 뭉개고 지나가자 첨단이 조금씩 뭉치기 시작했다. 요한은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몸을 뒤틀어 봤자 추삽질을 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저 스스로 움직이고도 성감에 놀라 움찔움찔 몸을 굳혔다.

“보채는 건가요?”

“그런 거일 리가……!”

“없죠.”

“흐읏!”

리비아가 반쯤 성기를 뽑아냈다가 털퍽 주저앉았다. 조임 강한 내벽이 성기를 쥐어짜면서 밀려났다가, 다시 그것을 헤치며 삼켜진다. 남자는 벌벌 떨며 고개를 뒤챘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랍니다.”

여자의 허릿짓이 본격적으로 돌변했다. 유연하게 둥글리듯 허리를 빠르게 흔들며 보란 듯이 요분질을 쳤다. 찌걱거리며 질펀하게 젖은 살이 난잡하게 들러붙는 소리가 울렸다.

“그만, 그, 아학, 아!”

“민감, 하네요…… 흐응……!”

“아, 제발, 리비, 리비아……!”

패닉에 빠진 요한이 울음을 왈칵 터뜨리며 제 손목을 묶은 사슬을 손끝으로 할퀴며 흐느꼈다. 살짝 끄트머리가 휘어 그저 넣기만 해도 그녀의 포르치오를 적확하게 찔러 들어오는 주제에 그 오만한 입으로 이름을 부르며 빌다니, 그녀는 제 가슴을 스스로 쥐어짜듯 애무하며 허릿짓했다.

“쉬이, 울지 말아요, 읏, 들썩거리고 있, 으면서…….”

“그치, 만, 아, 조이지, 아, 흐으윽!”

그는 생에 처음 느끼는 쾌락에 겁을 집어먹은 채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몸뚱이로 쾌락을 갈구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틀다가 조여 오는 내벽의 감촉에 놀라 얼어붙고, 본능적으로 허리를 들썩이다 리비아의 피스톤질과 맞아떨어지면 파르르 떨어 댔다. 이런 반응을 보이면서 놓아 달라니,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요한, 응, 허리를…… 올려요, 흣……!”

“이거, 싫, 아, 아……!”

그는 넋이 나간 채 리비아의 말에 따라 반사적으로 허리를 올렸다가, 타이밍을 맞춰 내리찧으며 꽉 조여 무는 것에 질겁해 고개를 내저었다. 눈물이 터진 순간부터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리비아에게 삼켜진다, 모브레이에 삼켜진다. 이지가 흐려지면서 남은 것은 원초적인 쾌락과 패배감뿐이었다. 결국 저 여자에게 졌다.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찍어 누르려고 했는데, 눌리는 것은 자신이 됐다. 꼭 제 낯짝만큼이나 자존심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맞닿은 부분이 녹을 듯 뜨거웠고 요의를 닮은 기이한 감각이 아랫도리를 에워쌌다. 온몸 구석구석 열이 올라 혼곤했다.

남자는 자각조차 없이 완전한 쾌락에 둘러싸여 허덕였다. 절대적인 위압감, 뭉개진 자존심, 반항의 여지조차 없는 패배가 뒤엉켜 뇌를 녹였다. 스스로는 평생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던 종속 욕구에 불이 붙어 부연 시야에 자신을 집어삼키는 여자가 언뜻 보일 때마다 척수까지 저릿저릿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굴종시키기에 완벽한 주인.

“흐으윽!”

“허리를, 쳐, 요한.”

억센 손길로 목을 그러쥔 여자의 달뜬 목소리에 서린 위엄에 얕은 오르가즘이 느껴졌다. 남자는 사슬을 구원처럼 움켜쥐며 아랫도리의 통제를 놓았다.

“옳, 지…….”

완전한 혼란 상태에 빠진 요한은 자신이 원했던 쾌락에 정직해져서는 묶인 몸으로도 리비아의 안쪽을 갈구하듯 거칠게 추삽질을 시작했다. 제법 만질 만할 만큼 근육이 붙어 있던 것은 관상용이 아닌지 쳐올리는 힘이 제법 대단했다. 그녀의 체중으로 찍어 내리는 것보다 훨씬 깊이 단숨에 파고들었다가 깊숙이 포르치오를 짓누르다 할퀴듯 밀려났다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쑤셔 박힌다. 리비아는 제 유두를 꼬집으며 허리를 휘었다.

“흐윽, 흐윽, 리비, 리비아, 나는, 아으, 이런 거엇……!”

그는 자신이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른 채 중언부언하면서 순종에 따라온 쾌락에 심취했다. 그녀의 지시대로 허리를 놀리자 참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무의식의 잔재로 참고 있던 짓을 저질러 버리니 놀랍도록 짜릿했다. 머릿속에 불똥이 튀듯 산발적으로 감각에 대한 단어들이 떠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마치 무언가를 빠는 것처럼 들릴 만큼 점막이 들러붙고 두들겨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 노골적인 소리에 귀를 범해지는 것만 같다. 여자의 숨소리, 자신의 상스러운 울음과 그 사이사이 살집 있는 부분이 근육으로 단단한 허벅지에 맞부딪히며 퍽퍽거리는 소리와 감촉이 신경을 파고든다.

“하, 으읏, 응, 으……!”

남자는 흐느껴 울다가 딸꾹질처럼 신음을 터뜨리곤 제 입술이 원망스러워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몰라볼 수가 없는 감각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처럼.

“제, 발, 비켜…… 놔, 줘엇……!”

“왜요? 갈 것 같아서?”

리비아는 거칠게 허리를 흔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갈 것 같으냐는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요한의 낯짝은 퍽 귀염성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가 깨무느라 살짝 안으로 말려 들어간 입술을 혀로 핥으며 보란 듯이 요분질을 쳐 댔다.

“그냥 가면 되잖아요?”

“싫, 제정, 시, 인……!”

홉뜨인 눈가에 다시금 범람하는 눈물을 핥은 여자가 꾹 죄면서 성기를 귀두 언저리까지 뽑아내고는 선단만 겨우 안쪽에 품은 채 허리를 둥글리며 애를 태웠다.

“정말 이대로 그만둘까요?”

“하아, 하…….”

“요한, 대답.”

“안, 에…… 안에다, 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머, 공손해졌군요. 머리가 좀 식었나요?”

“화를 내면 낼수록 당신이 안하무인처럼 구니까……!”

“안 내도 그럴 거지만.”

“히익……!”

아래에 바짝 힘을 준 채 주저앉자 요한이 허리를 휘며 날카롭게 떨었다. 그러고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한껏 경직된 채 간헐적으로 허리를 떨었다. 리비아는 느릿하게 제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빙그레 웃었다.

“가 버렸네요, 축하해요. 첫 정사치곤 퍽 호화롭지 않나요?”

“웃, 우윽…….”

그는 자신이 리비아 모브레이와 배를 붙이고, 심지어는 그녀의 안에 정을 토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듯 서러워했다. 고개를 느리게 내저으면서 희미하게 아니야, 아냐, 따위의 말을 지껄이면서.

리비아는 그저 그의 꼴사나운 모양새를 지켜보다가 천천히 일어나 그의 성기를 뽑아냈다. 푹 젖은 검붉은 기둥이 툭 바깥으로 튕겨 나오자마자 희멀겋고 끈적한 체액이 주르륵 그 위로 흘러내렸다. 마치 범해진 것은 그인 양 반쯤 가라앉은 성기와 사타구니 언저리에 흰 점액이 뚝뚝 번졌다.

“기분 좋았어요. 요한.”

리비아는 소리 죽여 웃으며 그의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지분거렸다.

“왜 그렇게 멍하게 바라보나요? 미련이 남았어요?”

“하, 하지 마.”

“공손하게 말해야죠.”

남자의 눈에 독기가 차올랐다.

“공손하게 군다고 해서 안 할 것처럼 말하는, 윽!”

리비아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의 붉은 머리칼을 힘껏 움켜쥐었다.

“아파……!”

“아픈 게 싫었다면 건방을 떨질 말았어야죠. 내가 이대로 당신을 안뜰에 집어 던지고 온 집 안의 식솔들을 불러 모아 내보일지도 모르는데 어찌 이리 뻣뻣하게 구는 건가요?”

“……뭐?”

“구속구를 찬 당신은 평범한 수컷에 지나지 않아요. 대마법사 구르디예프 경은 이걸 단 이상 세상 어디에도 없죠. 안 그런가요? 그런 당신을 제 뜻대로 굴복시키는 건 대단히 쉬운 일이랍니다. 당신의 머리는 유용하니 약은 아니 되더라도 힘줄 정도는 뭐……, 그렇죠?”

“……미친……, 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매끄러운 협박에 기가 질린 남자가 더듬더듬 욕설을 뇌까렸다. 저 여자는 진심이다. 그는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비상한 머리통을 원망해야 했다. 조금만 더 감정적이거나 조금만 더 멍청했더라도 눈이 뒤집혀 저런 협박의 현실성을 계산하지는 못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 순간에도 그녀의 말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못해 지금 당장이라도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 버렸다.

“당신이 정물 취급을 하며 거들떠도 본 적 없던 식솔들 앞에서 지금처럼 내게 범해져 보는 건 어떤가요? 가냘픈 짐승처럼 울부짖으면서 ‘그만, 제발, 아히익’ 같은 상스러운 소리나 내면서 수치도 모른 채 좆대가리를 세우고 과부의 뱃속에 정을 싸지르는 극악무도하고 수치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는 거예요.”

“안…….”

“다들 당신을 매도하겠죠. ‘그럴 줄은 몰랐는데’로 시작하는 온 세상의 모든 구설수를 뒤집어써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일 거예요. 적어도 이백육십 년이 넘도록 당신이 겪어 보지 못한 일일 거라는 점에 대해서는 그래요……, 내 결혼반지를 걸어도 좋아요.”

“……시, 싫어…….”

“정말 싫은가요? 걸레짝처럼 나달나달하게 늘어져 수백 명의 시선을 받으면서 반나절쯤 널브러져 있어 보면 그런 소린 절대 나오지 않을 텐데.”

“나, 나는, ……난……, 난, 아무 죄도 없어! 당신이 갑자기 날!”

“애당초 웃전의 사적인 생활에 하나하나 간섭하며 이기죽거린 게 죄가 아니라니 웃기지도 않는군요.”

“틀린 말도 아니었잖아!”

리비아는 힘껏 자신을 노려보는 요한의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그의 뺨을 감싸 쥐고 엄지로 그의 입매를 덧그리듯 어루만졌다.

“그렇게 싫은 척 앙칼진 소리를 지를 거라면…….”

흐물흐물하게 일그러진 희열의 미소가 그녀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이 같잖을 정도로 정직한 안면 근육부터 어떻게 해 봐요, 요한.”

그녀는 정말 드물게 즐거웠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그 고명하신 대현자께서 이렇게나 또렷하게 피학적 성향을 지니고 계실 줄 누가 알았겠는가? 기실, 알았다고 해도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지나치게 강력했으니까. 자신마저도 요한이 호의로 만들어 선공작께 주었던 구속구가 없었더라면 이런 일은 불가능했을 테다.

하지만 거꾸러진 이상 그는 자신에게 강경하게 굴 수 없다. 진정 독랄한 짓을 할 만한 인간이라는 것도 충분히 배웠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렇듯 완전히 깔아뭉개지는 쾌락을 알아 버린 그는 앞으로 제 낯짝만 봐도 오늘 이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굴욕과 쾌락을 배운 지금을.

“설마하니 당신이 이런 굴욕에 발정할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요?”

“발, 발정이라니……! 그런 적 없어! 내 표정이 어떻다고……!”

“어떻긴요, 금방이라도 바닥에 이마를 처박고 교태를 부리며 엉덩이를 흔들 것 같은 얼굴이지.”

그는 골이 울릴 정도의 충격에 입을 헤벌리고야 말았다. 이런 노골적인 모욕은 그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겁간에 이어 이런 모욕이라니 절로 온몸이 떨렸다.

적어도 그는 그리 생각했다. 입매가 우글우글 일그러져 황홀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울먹이고 있는 그 낯짝을 직접 보질 못하니까.

리비아는 거울이라도 가져와 이 우스운 얼굴을 보여 줄까 하다가, 이후의 즐거움을 생각하며 참아 두기로 마음먹고 다리 사이로 손을 내려 그의 성기를 움켜쥐었다.

“아파……!”

“그 정도가 좋은 거잖아요? 아니더라도 그렇게 적응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난 수컷을 도무지 다정하게 대해 주는 재주가 없어서.”

“적응이라니, 내가 미쳤다고 당신이랑 또 붙어먹겠습니까!”

“아, 다시 말투가 멀끔해졌군요. 무서워요?”

“……소모적이기 짝이 없군요, 그만……, 놓아주십시오.”

리비아는 그의 성기를 살짝 아플 정도로 꼭 틀어쥐고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손아귀를 따라 성기가 꺼떡거렸다. 요한은 이를 악물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느끼지 않으려 애썼다.

“당신 말본새를 보니 풀어 주는 건 좀 더 기를 죽여 놓은 뒤에나 생각해 볼 만하겠어요.”

“무슨……!”

“자기 정액을 뒤집어쓰고 전라로 귀부인의 침대에 묶여 있는 미남자라, 꽤 퇴폐적이고 즐거운 이야기겠죠?”

“리비아 모브레이!”

“네에, 당신의 순결을 거둬 준 여자의 이름은 잘 외우고 계시네요, 다행이에요.”

“……당신, 정말……, 이 일은 내 불문에 부칠 테니 그만 놔주십시오.”

“아직도 기가 덜 죽어선…….”

“흐윽!”

리비아는 한숨을 쉬며 아예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 손으로 성기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요도구를 손끝으로 살짝 아릿할 만큼 후볐다가 간질이길 반복하며 다른 손으로 있는 힘껏 속도를 올려 그의 성기를 흔들어 댔다. 요한의 허리가 얕게 비틀린다.

“당신은 평생 그 구속을 못 풀어요.”

“응, 흐읏……!”

“모브레이는 나뿐이고.”

“아, 으응……!”

“다른 혈족들을 찾아서 그 구속을 풀어 달라고 하기엔……, 글쎄요. 그들의 입이 나보다 무거울 거라고 생각되진 않는데 말이에요. 누가 당신에게 이걸 씌웠는지, 당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온갖 억측이 난무하다가 결국 사실에 가까운 소문이 정론처럼 퍼질지도 모르고.”

“아으……!”

요한이 쾌락을 못 견뎌 몸을 비틀며 고개를 뒤챘다.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희미하게 빛날 만큼 덕지덕지 그의 체액으로 더럽혀진 채 절정을 강요하듯 움직였다. 그저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당하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일었다. 혼미해진 탓에 무방비한 정신에 직접 낙인이라도 파 넣는 것처럼 리비아 모브레이가 내린 굴욕과 쾌락에 무너져 내리는 감각이, 그녀의 협박이, 여실히 온몸에 뿌리내렸다.

“아니면 그들의 노예 신세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어찌 다뤄질는지……, 물론…… 뭐, 다른 마법사들 손에 넘어간다면 어떤 꼴이 될까요?”

“힉, 웃……, 극, 그건, 시, 싫……!”

절정을 직감한 순간, 화끈한 통증이 해방을 가로막았다. 리비아가 그의 고통을 참작하지 않고 힘껏 뿌리를 틀어쥔 채 손을 멈춘 탓이었다.

“왜, 아흑…… 아, 아파…….”

“그런 꼴이 되고 싶나요, 요한?”

“싫, 시, 싫다고, 마, 말…… 으응……!”

“내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알잖아요?”

“흐윽…….”

여자는 뿌리를 틀어쥔 채 자신의 부드러운 손바닥으로 귀두를 둥글리듯 살살 어루만지며 재촉했다.

“응? 요한.”

입이 벌어졌다 닫힌다. 리비아는 그의 입술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퍽 자상하게 그의 귀두를 애무해 주었다. 손아귀에 감싸 쥐었다가, 문질렀다가, 으깰 듯 만지작거리다 갓 언저리가 예민한 것을 깨닫곤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질렀다.

“힉, 아……!”

“요한.”

그의 다리가 볼품없이 덜덜 떨렸다. 한계까지 몰린 절정감 위로 차곡차곡 쾌락이 쌓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저릿저릿하게 등허리가 떨리는데도 놓여나지 못하는 감각이 짜릿했지만 동시에 왈칵 울음이 났다. 그는 이런 식으로 조롱당하는 것이 서러우면서도 결국 굽히고 싶은 자신의 마음이 수치스러워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으응? 울지 말아요. 금방 기분 좋게 해 줄 테니까…….”

헐떡거리며 흐느끼는 소리를 넘어 리비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냥하고 부드러운 속삭임이 파고들었다. 유린당한 직후가 아니더라도 능히 꾀어낼 만큼 달콤한 목소리.

결국 굴복한 것은 제 직감대로 자기 자신이었다.

“가게…….”

“응?”

“가게, 해…… 주십, 시오…… 흐윽, 부, 부인…….”

“사죄는?”

“죄송……합니다, 제가, 흣……, 부, 부인께…… 결례를 저질, 저질러서…….”

“네에.”

요한은 이대로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리고 싶었다. 이런 굴종을 하는 것 자체도 몸서리쳐지게 싫었으나 그것이 리비아라니, 심지어 이런 거로 오르가즘만큼이나 황홀하게 뇌를 저미는 쾌락이 느껴지다니. 이 모든 것이 그저 저속한 저주로 인한 악몽일 것이라 믿고 싶었다. 어쩌면 이미 한구석으로는 그리 믿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렇듯 자연스레 입이 열리다니,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할 테니까.

“감히, 부인께…… 아, 악다구니를, 써서…… 기분을, 상하게…… 해, 해…… 드리, 고…… 허락, 도…… 하윽……!”

“듣고 있어요.”

“아, 제발…… 더, 느은, 모, 못 참겠……!”

“사과는 해야죠.”

“흐, 우윽…… 죄송, 하, 합니, 다, 아……!”

그의 입에서 죄송하단 말이 나온 즉시 뿌리를 죄었던 손을 풀며 거칠게 위로 쓸어 올리자 그 전에 한 발 뺐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세 좋게 정액이 솟구쳤다.

“하악……!”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벌벌 떨면서 요란하게 사정했다. 제 상체는 물론 턱 언저리와 시트까지 난잡하게 튀길 정도로 많은 양을 싸지르며 몽롱해진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힉힉 숨을 몰아쉰다. 리비아는 그의 성기를 몇 번이고 뿌리에서부터 귀두 근처까지 꾹꾹 쥐어짜 올리며 사정을 도왔다. 마지막 한 방울이 성기 기둥을 타고 흘러내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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