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관계의 깊이
“……단, 카단.”
달콤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밤새 저를 욕정으로 몰아붙였던 목소리가 이제는 꿈속으로 찾아왔다. 이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얼마나 해 댔더라.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숲 입구인데도 나무 냄새보다 좆물 냄새가 요동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행위를 증명할 뿐. 몽정은 해 봤어도 딱히 자위는 하지 않았던 카단은 스스로의 변화에 혼란스러웠다.
“괜찮아요?”
또 한 번 들려오는 목소리. 눈을 뜨면 이 생생한 목소리는 사라지겠지. 카단은 눈을 감은 채로 바지에 손을 넣었다. 역시나 흥분한 물건은 가라앉을 기색이 없었다. 카단은 그대로 귀두에서부터 뿌리까지 물건을 천천히 훑었다.
“카, 카단?”
익숙한 목소리가 저를 부를수록 카단의 손짓은 점점 빨라졌다. 카단은 루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저를 올려다보면서 긴 속눈썹을 깜박이던 얼굴이 제 것으로 더럽혀지는 상상을 했다. 더 크게 부풀어 오른 성기가 쿠퍼액을 흘렸고 그것은 기둥과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어 쿨쩍쿨쩍 음란한 소리를 냈다.
“루나, 큿!”
절정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두툼한 복근이 뚜렷하게 팽창하면서 카단은 낮게 신음했다. 밤새 위로한 탓인지 배출한 정액은 많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적을 리도 없었다. 손과 옷 위로 튀었어야 할 액이 한 방울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카단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소복하게 눈이 쌓인 전나무 몇 그루였다. 높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아침 해가 눈이 부셔서 눈가를 찡그렸다. 어제 숲 입구에서 잠이 든 덕분에 맞이하는 광경이었다. 그는 지끈대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가 몸을 굳혔다.
한쪽 눈을 찡그린 루나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사 준 하얀 드레스를 입고서 제 허리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루나?”
루나의 얼굴엔 백탁액이 드문드문 묻어 있었다. 붉은 입술 위와 보드라운 뺨 위, 그리고 그녀가 감고 있던 눈꺼풀까지. 조금 전 상상했던 장면처럼 아름다운 얼굴은 제 것으로 온통 더러워진 상태였다.
카단은 그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다가 뒤늦게 두 손을 허둥거렸다. 오두막에 있어야 할 그녀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가. 카단은 급한 대로 그녀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아 냈다. 미끈거리는 감촉은 방금 사출한 정액이 확실했다.
“가, 감사합니다.”
루나는 붉어진 얼굴로 시선을 피하며 그가 닦아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대체 무엇에 대한 감사 인사인지 알지 못했던 카단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미안. 미안하다.”
그 와중에도 그는 근처에 있던 면포를 호다닥 집어 그녀의 얼굴을 한 번 더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그사이 루나는 카단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거 아세요? 제 이름 불러 주신 거, 처음이에요.”
루나는 카단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수줍게 미소 지었다. 루나의 얼굴을 닦아 내던 카단의 손이 멈칫거렸다. 그런가. 그녀의 이름을 한 번도 불러 준 적 없던가. 카단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다가 다시 손을 움직였다.
“사, 상황이 그렇긴 하지만…… 불러 주셔서 기분 좋았어요. 평소에도 불러 주세요.”
“……응.”
루나의 솔직한 감상에도 카단은 짧게 대답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울렁이는 그의 목울대가 지금의 감정을 드러냈다.
카단은 루나의 얼굴을 모두 닦은 뒤 들고 있던 면포를 등 뒤로 숨겼다. 면포를 볼 때마다 어제의 부끄러운 행위가 자꾸만 떠올랐다.
“어젠 왜 안 들어오셨어요?”
“…….”
“편히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사실 알고 있어요. 제 몸에 저주 같은 문신이 있어서 사람들은 예전부터 절 싫어했거든요. 카단이 절 불편해해도…… 이해해요.”
하지만 잠만큼은 집에서 자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루나는 입술이 잘 떨어지지 않아서 잠시 말을 멈췄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그만큼은 절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루나는 카단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그에게 저주받은 여자 따위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니다. 불편, 아니야.”
카단은 고개를 젓고 두 손을 붕붕 흔들었다. 온몸을 가로저으며 아니라고 주장했다. 불편하다니. 굳이 불편함을 따지자면 그녀를 볼 때마다 좆이 불편해지긴 했다. 이런 불순한 자신이 혹여 루나에게 실수를 저지를까 봐 자리를 비운 것인데 이걸 무슨 단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카단은 답답함을 호소하면서 이마를 문질렀다.
그런 그의 진심은 루나에게도 와닿았다. 루나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바짝 긴장했던 어깨를 내려놓았다. 카단에게 미움받았을까 봐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양쪽 어깨가 모두 뻐근했다.
루나는 자신의 어깨를 스스로 주물렀다. 그런 그녀의 발치로 작은 등불이 놓여 있었다. 카단은 그것을 지그시 살폈다.
“언제 나왔어.”
유리 상자 안에 든 초가 짧아진 것을 보니 어둑한 시간부터 이 근방을 헤맨 모양이었다. 하지만 루나는 새벽부터 카단을 찾아다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얼마 안 됐어요.”
“왜.”
“숲 근방은 마수가 나타나잖아요. 혹시 위험하실까 봐요.”
“난 강하다. 하지만 넌, 위험해.”
“네, 조심할게요. 하지만 당신도 조심하세요. 어떤 마수는 정말 강해서 병사들 수십이 달려들어도 잡지 못한대요.”
“더 강해, 내가.”
“알아요. 당신이 엄청 강한 남자인 거요. 하지만 카단, 방심하면 다칠 수 있어요.”
“난 안 다쳐. 건강하다.”
“그렇, 지요. 지금도 참 건강하시기는 한데…….”
루나는 붉어진 뺨을 손가락으로 살짝 긁으면서 시선을 내렸다. 그녀가 수줍어하는 모습에 카단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의 상체가 부풀어 오름과 동시에 짐승 같은 하반신에 또 힘이 들어갔다. 카단은 두 손으로 다리 사이를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먼저 가.”
“네?”
“너 가면. 나도 간다.”
“제가 오두막으로 가면 뒤따라올 거라는 말씀이시죠?”
루나의 물음에 카단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루나는 손가락을 꼼질거리다가 그가 가린 하반신을 힐끗거렸다.
“그런데, 그게 그러면 걷지 못한다던데요.”
“?”
“노예 상단에 있을 때 들었어요. 남자들은 그게 커지면…… 걷기 힘들다고요.”
루나가 한 손을 그의 허벅지 위에 살포시 올렸다. 작은 손이 허벅지에 닿자마자 잔뜩 힘이 들어갔던 그의 다리가 움찔 떨렸다.
카단은 애꿎은 전나무를 한 번, 눈이 소복한 평지를 한 번, 제가 사 준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루나를 한 번 힐끗거리다가 다시 전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단정히 땋아 내린 루나는 눈의 요정처럼 아름다워서 차마 길게 쳐다볼 수가 없었다.
“도와,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
“?”
“입으로요.”
루나는 살짝 벌어진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했던 카단은 대체 뭘 어떻게 도와준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루나는 창피함을 무릎 쓰고 설명을 덧붙였다.
“그, 저와 닿는 걸 싫어하지 않으셔서요. 그리고 이런 일, 익숙하거든요.”
탁월한 미모의 노예가 험한 일을 당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의 문신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를 꺼리지 않았던 것은 어린 시절 저를 돌보다가 요절한 유모와 노예 상단의 상단주 정도.
‘상단주도 부정 탈 것이 무서워 겨우 수음 정도를 강요했었지만.’
물론 수음만 시킨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그 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다 그의 얼굴에 홍조가 오르고 바지춤이 두툼해지면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입을 벌려야 했다.
하지만 그런 상단주와 카단은 달랐다. 카단은 저를 진심으로 존중했다. 저주받은 여자도, 천박한 노예도 아닌 그저 인간으로 말이다. 루나는 그런 그가 좋았다. 저를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두 팔을 붕붕 젓던 이 남자가 너무도 좋았다.
“입술 정도 닿는 것이면 부정 탈 일 없이 최대한 카단을 도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
애석하게도 여자 경험이 없던 카단은 루나의 설명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우선 해 보자.’
루나는 슬쩍 카단을 올려다본 뒤 땋아 내린 머리를 한쪽으로 넘겨 정리했다. 그리고 저를 가만 지켜보는 카단을 응시하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루나의 입술이 점차 벌어지더니 뭉툭한 귀두 대가리에 쪽 입을 맞췄다.
“읏!”
카단은 순간 신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바짝 힘이 들어갔던 허벅지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제 물건을 살살 핥는 입술을 얼른 떨어뜨려야 하는데 커다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온몸의 피가 다리 사이로 몰리는 바람에 머릿속이 새하얬다. 귀두 앞을 할짝거리던 루나는 할 수 있는 한 입을 크게 벌리더니 좆 대가리부터 천천히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너, 너무 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크기를 직감했지만 입에 머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윽, 선단만 겨우 머금었을 뿐인데 입가가 툭 터져 버렸다. 따끔한 통각과 비릿한 맛이 도는 걸 보니 입가가 찢겨 피가 난 모양이다.
‘버겁지만 더 삼키고 싶어.’
루나는 삼키지 못하고 남은 기둥을 두 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남은 부분을 위로하듯이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윽, 잠깐!”
카단이 천천히 움직이던 루나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갠 뒤 움직이지 못하도록 움켜쥐었다. 하지만 루나는 욕심껏 목구멍을 열어 카단의 성기를 더 깊이 삼켰다. 단단한 귀두가 예민한 입천장을 긁으면서 좁은 목구멍에 처박혔다.
“루, 루나.”
작고 붉은 입술은 버겁게 성기를 물고 있는 탓에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하게 벌어져 있었다. 그걸 본 카단은 짐승처럼 그르렁대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제 이름을 불러 주는 목소리에 루나가 눈물이 살짝 맺힌 눈동자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그사이 입술 점막은 기둥을 조였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큿!”
카단은 그녀의 목구멍 아래까지 성기를 깊숙이 쑤셔 박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핏줄이 툭 튀어나온 거친 손등이 겨우 평정을 유지하며 루나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루나의 턱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의 손이 워낙 큰 탓에 루나의 턱과 뺨의 아래까지 한 손에 다 잡혔다. 카단은 그녀를 밀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칠까 봐 손에 힘을 제대로 주지 않은 탓에 제대로 떨어뜨리지 못했다.
‘여기서 물러나기 싫어.’
루나는 지금의 행위가 좋았다. 낮고 갈라진 목소리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만 애액을 왈칵 흘려 버렸을 정도로. 허벅지를 바르작댈 때마다 축축하게 젖은 속옷이 야한 소리를 내면서 질척거렸다. 그저 그의 것을 빨고 있을 뿐인데 배 안쪽이 간지럽고 열이 올랐다. 루나는 차가운 바닥에 다리 사이를 비비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의 것을 게걸스럽게 삼키며 목구멍을 조였다.
“루, 나, 안 돼…… 큭!”
카단이 어금니를 꽉 물고서 허리를 물리려 했으나 루나는 놓아주지 않았다. 커다란 성기가 꿈틀대면서 정액을 목구멍으로 쏘아 댔다. 꿀꺽, 꿀꺽. 루나는 그대로 그의 것을 삼키려 했으나 그 양이 너무도 많았다. 차마 삼키지 못한 액체가 입가를 따라 부르르 거품을 만든 뒤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반쯤 풀어진 루나의 눈동자는 눈물이 고여 반짝거렸다. 짜릿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던 탓에 루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깜짝 놀란 카단은 재빨리 허리를 물렸다. 파정은 했으나 여전히 부풀어 있는 성기는 또 한 번의 쾌락을 갈망하고 있었다.
“더, 더럽다. 퉤 해.”
당황한 카단이 한 손으로 루나의 뺨을 받치고 남은 손으로 그녀의 입 안을 헤집었다. 구슬을 삼킨 아이를 보듯이 그의 눈빛엔 걱정이 가득했다. 거칠고 두꺼운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가자 작은 입 안은 금세 가득 차 버렸다.
카단은 이 작은 입이 어떻게 자신의 물건을 삼켰었는지 의아해하면서 여린 점막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루나의 말캉한 혀를 지그시 누르면서 입 안에 남아 있던 정액을 긁어냈다. 작은 입 안을 구석구석 긁어냈으나 묻어난 양은 적었다. 카단은 정액을 삼킨 루나를 걱정하면서 손가락을 천천히 빼냈다.
“퉤 해. 어서.”
그가 한 번 더 강조했으나 루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미처 다 빠져나가지 못한 손끝을 입술로 조이듯 머금어 한 번 더 그를 자극했다.
“?!”
카단이 바위처럼 굳어 버렸다. 손에 살짝만 힘을 주어도 당장 루나의 입 안을 빠져나갈 수 있었건만 그는 뻣뻣하게 굳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카단의 심장이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튀어 오르며 쿵쿵 소리를 냈다. 피가 몰린 얼굴은 토마토보다도 새빨갰다.
루나는 카단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에 머금고 있던 그의 손을 잡고 아래로 끌어 내렸다. 풍만한 가슴 사이를 지나 판판한 복부를 따라 내려간 그의 손은 루나의 다리 사이에 닿았다. 그가 사 준 새하얀 드레스 아래로 애액에 잔뜩 젖은 속옷의 감촉이 느껴졌다.
“여기가 간지러워요, 카단.”
루나는 수줍게 고백하면서도 카단을 똑바로 응시했다. 오히려 카단이 시선을 덜덜 떨면서 그녀를 마주하지 못했다.
“도와줘요, 카단.”
“방법, 모른다.”
그 말처럼 카단은 성 지식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번 분출했음에도 해소되지 않은 욕망의 근원도, 당장 그녀를 바닥에 눕히고 사냥하듯 씹어 삼키고 싶다는 파괴적인 감정의 이유도 몰랐다. 온통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모른다.”
카단은 크게 심호흡하면서 평정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녀를 향한 폭력적인 욕망이 까딱하면 그녀를 해칠 것 같아서 두 손을 꾹 마주 잡아야 했다.
“제가 알려 드릴게요, 카단.”
루나는 노예 상단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돈을 벌고자 밤일도 마다하지 않는 노예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음담패설을 떠들었고 저들끼리 배꼽을 맞대기도 했다. 그걸 곁에서 보고 들었던 루나는 카단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가르쳐 드릴 수 있어요.”
루나가 호언장담했으나 카단은 입술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카단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더럽고 거친 손이 이성을 잃고 통제를 벗어나게 된다면 루나를 다치게 할 것이 뻔했다. 루나는 너무도 작고 연약했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져 버리리라.
하지만 그런 카단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던 루나는 애가 단 나머지 드레스 자락을 스스로 들어 올렸다.
“카단 씨, 어서요. 흣.”
루나는 허벅지를 마주 비볐다. 잔뜩 젖어 버린 속옷 위로 통통하게 다물려 있는 루나의 음부가 살짝 비쳤다.
허억. 헉. 심호흡하던 카단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기 시작했다. 짐승처럼 포악해진 시선이 루나의 음부를 뚫어지라 살피다가 추위에 허벅지를 힐끗거렸다. 뽀얀 허벅지는 추운 날씨 때문에 벌겋게 부르터 있었다.
순간 루나의 시야가 뒤집혔다. 카단이 순식간에 루나를 아이처럼 들어 올린 것이다. 카단은 그대로 루나를 안고서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 * *
오두막 문이 다급히 열렸고 그에게 안겨 있던 루나의 몸은 폭신한 침대 위로 가라앉았다. 카단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화로 근처에 세워 둔 철 주전자를 기울여 양동이에 물을 받았다. 그리고 데워진 물에 약초 잎을 넣고 휘휘 저은 후 양동이를 들고서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루나에게 다가갔다.
카단은 루나의 다리 앞에 무릎을 꿇은 뒤 그녀의 치맛자락을 들어 허벅지 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따듯한 약초 물로 추위에 부르튼 다리를 닦아 주기 시작했다.
“카, 카단?”
“아파?”
“아뇨. 동상 걸린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괜찮아요. 오두막이 따듯해서 이젠 춥지도 않고요.”
“아프지 마.”
카단의 손은 루나의 작은 발을 닦은 뒤 선이 고운 종아리를 따라 점점 올라갔다. 담백하던 손길은 허벅지와 그 안쪽을 닦는 순간 머뭇거렸다. 루나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후 천천히 다리를 바깥으로 벌렸다.
“안쪽도 제대로 닦아 주세요.”
루나가 대범하게 그를 유혹했다. 그러면서도 차마 카단을 똑바로 보지 못해 새빨개진 얼굴을 옆으로 돌려 버린 모습은 묘한 가학심을 부추겼다.
카단의 시선이 젖은 속옷에 머물렀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은 루나의 부르튼 허벅지에 약초 물을 끼얹고 있었다.
원망이 그렁그렁 맺힌 루나의 눈동자가 카단을 힐끗거렸다. 루나는 제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은 카단의 어깨를 발로 툭 밀면서 서운함을 전했다. 그런데도 카단은 루나의 허벅지를 약초 물로 모두 닦아 낼 때까지 허튼짓하지 않았다. 그가 한 번씩 길게 뱉는 뜨거운 한숨이 젖은 속옷에 닿으며 루나를 감질나게 했다.
“카다안, 대체 언제까지, 읏!”
목표한 바를 마친 카단은 다급히 양동이를 치워 버리고서 루나의 다리 사이로 기어들었다. 성급하게 밀어 버린 양동이가 넘어져 한쪽 바닥이 물바다가 됐지만 평소 깔끔하던 카단의 시선은 오직 루나의 다리 사이에 박혀 있었다. 그의 넓은 어깨가 다리 사이를 파고들자 벌어져 있던 다리가 양옆으로 활짝 더 벌어졌다. 곧 그녀의 속옷 위로 뜨거운 입술이 닿았다.
“더, 더러워요, 카단!”
“안 더러워, 너.”
“하지만, 아응!”
루나는 신음을 흘리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루나의 속옷에 코를 묻은 카단이 크게 숨을 들이켠 후 음부를 가리던 속옷을 옆으로 치웠다. 선천적으로 털이 나지 않은 음부는 붉게 여물어 있었다. 카단은 양손으로 통통한 살을 벌렸다. 작고 귀여운 음핵이 발딱 서 있었고 그 아래 작은 구멍에서는 투명한 애액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좋아. 냄새.”
카단은 살짝 혀를 빼 붉고 여린 점막을 핥았다.
“흐앗, 하앙.”
처음 경험하는 자극은 낯설면서도 짜릿했다. 그가 혀를 놀릴 때마다 루나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카단은 그대로 시선을 올려 루나의 표정을 살폈다. 발그레한 두 뺨을 보니 싫은 느낌은 아닌 것 같았다. 카단은 혀의 두툼한 부분으로 그녀의 음부를 느릿하게 핥아 대다가 발딱 선 음핵을 입술로 물었다.
“흐잇!”
루나가 두 다리를 흠칫 떨면서 카단의 어깨를 조였다. 이거군. 짐승 같은 카단의 본능이 전에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는 음핵을 입에 머금은 뒤 혀로 살살 굴리며 츕츕 빨기 시작했다.
“아, 아읏, 하으, 아, 아아, 앗!”
루나의 신음이 점점 가빠질 때마다 작은 구멍은 애액을 왈칵 흘렸다. 카단의 입술이 질구와 음핵을 오가며 그녀가 흘리는 모든 체액을 빨아들였다. 달았다. 그녀의 살과 그녀가 흘리는 모든 것이 지독하게 달았다. 카단은 더 강하게 음핵을 흡입하다가 이빨로 살짝 깨물었다.
“아, 으아앙!”
루나가 다리를 바르르 떨면서 숨이 넘어갈 듯이 고개를 꺾었다. 왈칵, 왈칵. 사내를 모르는 작은 구멍이 뻐끔대면서 아까보다는 불투명한 애액을 토해 냈다.
음핵에서 입술을 뗀 카단은 엉덩이를 따라 흘러내리는 애액을 가만히 보다가 그것을 후르릅 빨아들였다.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로 달려드는 방랑자처럼 그의 행위는 몹시도 다급했다.
“카, 단. 흐읏, 좋아요. 안쪽이, 간지러워.”
루나가 작은 절정에 몸을 떨면서 수줍게 속삭였다. 손가락이라도 쑤셔 넣어서 긁어 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겨우 참았다. 스스로 다리를 벌린 주제에 더 음탕하게 굴었다가는 카단에게 미움받을지도 몰랐다.
그때 카단이 뻐끔거리던 구명에 혀끝을 쑤셔 넣었다.
“히잇, 카단? 이상한 게 들어왔어요. 지금도 저 몸이 찌릿찌릿했…… 하앙! 잠깐. 흐앗.”
물컹한 혀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왔다가 나가길 반복했다. 그러면서 카단의 손가락은 음핵을 살살 문질렀다. 이것을 자극하면 작은 구멍이 달콤한 애액을 뱉어 냈었다. 그러니 이대로 혀를 쑤셔 넣고 있으면 이 안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삼켜 버릴 수 있으리라.
그저 상상했을 뿐인데 발기했던 성기가 꿈틀대면서 크기를 부풀렸다. 카단은 그대로 바지를 내려 한 손으로 음경을 쥐었다. 그는 귀두부터 뿌리까지 자신의 성기를 크게 훑기 시작했다.
고개를 꺾어 신음하던 루나가 시선을 내려 수음하는 카단을 응시했다. 핏줄이 불뚝 튀어나온 사나운 성기를 빠르게 흔들면서 제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는 사내가 카단이라니. 그토록 성실하고 순진하던 사내의 타락한 모습은 너무도 색정적이었다.
“읏, 카단! 하응, 앗, 하아.”
작은 절정에 적응하기도 전에 더 거대한 감각의 파도가 루나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랫배에서 시작한 짜릿한 절정이 머리끝까지 터져 나가는 쾌락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을 일으킨 당사자가 카단이라면 더더욱.
루나는 허리를 펄떡거리면서 움찔대는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 사이에 있던 카단의 어깨가 워낙 넓었던 탓에 얼마 오므리지도 못하고 다시 바깥으로 벌어졌다.
뜨겁고 말캉한 혀가 후퇴하더니 이번엔 딱딱하고 굵은 것이 구멍 안으로 들어왔다. 카단의 검지가 두 마디 정도 들어와 그녀의 애액을 긁어내고 있었다.
“자, 잠깐 카단, 나, 나, 지금……흐으읏!”
너무도 강한 자극에 루나가 카단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카단의 반듯한 이마 아래로 선이 굵은 이목구비가 드러났다.
완전히 드러난 얼굴은 언젠가 보았던 신전 조각상처럼 완벽하고도 아름다웠다. 끝이 살짝 올라간 눈매 아래로 저를 응시하는 까만 눈동자가 보였다. 당장에라도 저를 삼켜 버리고 싶어 하는 포악한 눈빛을 보자마자 배 속이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구부러진 검지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안쪽을 조심스레 자극할 때마다 소변이 나올 것처럼 짜릿했다.
“흐으읏, 흐, 아읏, 하아앙!”
카단의 머리를 움켜쥔 루나가 신음을 삼키지 못하고 크게 내지르면서 허리를 벌벌 떨었다. 경련하는 두 다리가 카단의 어깨를 조이며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대로 끌려 온 카단의 얼굴이 루나의 음부로 더 깊숙이 박혔으나 카단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루나가 분출한 음액을 삼키느라 그곳에 코를 박고 있었으니까. 츄읍, 츄릅, 꿀꺽. 외설적인 소리가 다리 사이에서 끊이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은 루나의 조임을 만끽하면서 진퇴를 반복하다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러면서도 뜨거운 혀와 입술은 예민한 점막과 다리 안쪽 여린 살까지 쉬지 않고 빨아 댔다.
루나의 상체가 침대 위로 힘없이 털썩 쓰러졌다. 전신에 힘이 빠지고 피곤했다. 새벽부터 그를 찾아다녔던 데다 난생처음 맞는 절정을 두 번이나 겪어 버린 몸은 급격한 피로를 호소했다.
‘지금 쓰러지면 안 돼.’
루나는 힘겹게 눈꺼풀을 깜박거렸으나 시야가 점점 어두워졌다. 미안해요, 카단. 루나는 속으로 카단에게 사과하며 눈을 감았다. 작게 경련하던 사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츄으읍, 그녀의 음부에 정신없이 머리를 처박고 있던 카단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루나?”
루나. 카단이 한 번 더 그녀를 불렀으나 쓰러진 루나는 눈을 뜰 기색이 없었다.
후- 카단은 거친 숨을 천천히 고르면서 땀에 젖은 머리를 이마 위로 쓸어올렸다. 색욕에 젖은 잘생긴 이목구비가 잠든 루나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예뻐.”
예쁘다. 저도 모르게 그 말을 중얼거린 카단은 루나의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사람을 예쁘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걸 깨달을 여유는 없었다.
하얀 뺨을 쓸던 손가락이 루나의 콧등을 톡톡 두드리다가 통통한 입술에 머물렀다. 더는 커질 수 없을 것 같던 성기가 꿈틀거렸다. 번들대는 좆 대가리가 쿠퍼액을 꿀렁 내뿜으면서 어딘가를 쑤실 준비를 마쳤다.
여기서 그만둬야 한다. 카단이 작게 중얼거렸으나 짐승 같은 몸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폭력적이고도 무례한 상상이 그의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안 돼.”
참아. 카단은 스스로에게 경고하며 고개를 저었다. 가느다란 이성이 끊어질 듯 흔들거렸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방황하던 눈빛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카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루나가 쓰러진 침대로 올라갔다. 삐거덕- 낡은 침대 프레임이 비명을 질렀으나 그는 포식동물처럼 느릿하게 움직일 뿐 멈추지 않았다.
카단은 루나의 몸을 타고 무릎을 세웠다. 그의 무릎 사이에는 루나의 상체가 있었고 위로 치솟은 그의 좆 아래에는 루나의 입술이 있었다. 카단은 루나의 얼굴을 뚫어지라 응시하면서 좆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가 선택한 최대한의 타협이었다. 손짓이 빨라지자 루나의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고 거친 숨이 흘러나왔다.
“윽, 크읏.”
젖은 성기와 거친 손이 마찰하며 쿨쩍쿨쩍 소리를 냈다. 곧 굵고 단단한 살덩이가 구렁이처럼 꿈틀대더니 왈칵 정액을 토했다. 불투명한 정액이 루나의 이마와 콧등, 입술 위로 튀었다.
카단은 제 정액으로 엉망이 된 루나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손가락으로 정액을 쓰윽 문질렀다. 닦아 낸다기보다 펴 바른다는 표현에 가까운 손짓이었다.
카단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빛과 미소는 평소와 달리 다정하지 않고 흉포했다. 그의 음경은 다른 무언가를 더 원한다는 듯 한 번 더 부풀어 올랐지만 카단은 정신을 잃은 루나에게 더는 손댈 생각이 없었다. 그는 루나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따듯한 물을 준비해 더러워진 루나의 얼굴과 몸을 꼼꼼하게 닦기 시작했다.
* * *
‘지금 몇 시지?’
살짝 떠진 눈 사이로 주황 노을빛이 어른거렸다. 루나가 눈을 번쩍 뜨고 상체를 일으켰다. 아침에 잠이 들어 저녁에 일어난 모양이다. 그때 고소한 냄새가 코로 솔솔 들어왔다. 카단이 쟁반에 고기 스튜와 갓 구운 빵을 가져오고 있었다.
“안녕하…….”
부끄럽게도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루나는 손으로 입을 헙 가리면서 수줍어하다가 ‘안녕하세요, 카단 씨’ 하고 다시 인사했다. 안녕하냐고 묻기엔 늦은 시각이지만 왠지 모르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몸은.”
카단이 루나의 컨디션을 걱정하면서 그녀의 다리 위에 쟁반을 내려 두었다.
“괜찮아요. 식사는 테이블에서 같이 해요.”
루나가 몸을 일으키려다 옷을 살폈다. 아까는 분명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처음 보는 기다란 슈미즈를 걸치고 있었다. 유독 보드라운 옷감은 루나의 몸 선을 은근히 드러내며 흘러내렸다.
‘이 옷은 어디서 난 거지?’
게다가 전신이 끈적이는 것 없이 개운했다. 정신을 잃은 사이, 카단이 씻겨 준 후 새 옷으로 갈아입힌 모양이었다.
“이 옷은…….”
“봤다. 지나가다가.”
지나가다가 봤다고? 루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버린 걸 보고 주워 왔다는 뜻인가. 주워 왔다기엔 지나치게 고급지고 깔끔한데.
루나는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카단은 발갛게 달아오른 귀를 툴툴 털어 낼 뿐 별다른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는 침대에 털썩 앉은 뒤 스튜를 직접 떠서 루나에게 내밀었다.
“난 먹었다. 네 차례다.”
“주세요. 제가 먹을게요.”
“안 된다. 너 약해.”
카단이 들고 있던 스푼을 살짝 흔들어 어서 먹으라고 재촉했다.
‘내 체력이 약한 게 아니라 당신이 대단한 거라고요.’
루나는 슬쩍 그의 뒤편을 응시했다. 신선한 채소가 담긴 장바구니를 보니 마을에 가서 장을 본 모양이었다. 이 슈미즈 역시 마을에서 사 온 것일 테고.
‘여기서 마을까지 꽤 멀던데.’
오전에 그런 일을 치르고 나서 제 몸을 씻긴 후, 먼 마을까지 다녀와 장을 보고, 청소와 요리까지 완벽하게 마치는 것은 숙련된 노예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체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여야 할까.
루나는 카단의 체력에 감탄하며 그가 만든 스튜를 입에 넣었다. 잘 익은 고기가 질기지 않게 입 안을 돌아다니다가 진한 토마토 칠리소스와 함께 사르르 녹아들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이지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내였다.
배 속이 따듯하게 차오르자 카단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잠들기 전의 일을 떠올린 루나가 그의 하반신을 힐끗거렸다. 흉포하게 꿈틀거렸던 성기는 바지 속에 얌전히 수납된 상태였다.
‘어제, 스스로 해결했겠지?’
제가 먼저 유혹한 주제에 혼자만 절정에 올라 기절해 버린 것이 미안했다. 제 안을 쑤시던 그의 혀와 손가락의 감각이 떠오르자 안쪽이 또 저릿해졌다. 나만 느끼고 기절한 주제에 음탕한 생각에 또 휩싸이다니. 루나는 스스로가 이기적이라고 자책하면서 그에게 사과했다.
“아까는 갑자기 잠들어 버려서…… 죄송해요.”
“나 때문이다. 더 먹어. 기운 나게.”
“고마워요.”
루나는 자신이 먹겠다고 하면서 스푼을 가져온 후 얇게 썬 빵에 스튜 건더기를 올려 한 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빵과 고기 스튜의 조화는 환상적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금방 체력이 좋아질 것 같아요.”
노예 상단에서 변변치 못한 음식으로 하루를 연명하던 루나였다. 깡말랐던 그녀가 카단이 차려 준 식사를 며칠 먹으니 보기 좋게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얼른 체력을 기를게요. 삽입 전에 기절해서 카단이 당황하는 일도 없도록요.”
루나는 두 뺨을 붉히면서도 가슴속에 담아 둔 말을 가감 없이 내뱉었다. 카단은 잠깐 미간을 찡그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삽입?”
“아, 그게 뭐냐면, 그 손가락 대신에……. 그, 그러니까, 그런 게 있어요.”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거야! 막상 설명하려니 민망했던 루나는 고개를 푹 숙인 후 고기 스튜를 허겁지겁 입에 집어넣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벌어져 무언가를 삼킬 때마다 카단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반사적으로 떠올렸다. 난감했다. 또다시 하반신에 피가 몰리는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다.
카단은 벽에 걸어 두었던 검 두 자루를 꺼낸 뒤 허둥지둥 가죽 띠에 꽂았다. 갑자기 사냥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루나가 그런 카단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단? 어디 가요?”
“……사냥.”
“해가 지면 가는 거 아닌가요? 마수는 밤에 나온다면서요.”
“미리 간다. 저기 스튜 많다. 더 먹어.”
카단은 커다란 냄비를 가리킨 뒤 후다닥 오두막을 나섰다. 한 박자 늦게 닫힌 오두막 문은 쾅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삽입이 정확히 뭐냐고?”
마구간을 청소하던 루스가 기막힌 표정으로 카단을 올려다보았다. 루스 또한 덩치가 큰 편이었으나 카단 앞에선 그저 평범한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누군가를 올려다본다는 것은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기에 루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물으려고 이 시간에 마을까지 내려왔어?”
루스의 질문에 카단은 소리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루스는 상체를 기울여 마구간 바깥을 살폈다. 역시나 마을 주민들이 이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삽과 곡괭이 따위를 들고 카단을 경계 중이었다.
‘하긴 저놈이 위협적이긴 하지.’
루스는 카단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검 두 자루를 곁눈질했다. 저 새끼는 왜 저런 꼴로 온 거야? 보는 사람 무섭게. 루스는 속으로 구시렁대면서도 걸음을 뒤로 물렸다.
저 괴물은 집채만 한 마수를 순식간에 제압하는 사냥꾼이었다. 그런 놈의 칼끝이 사람을 향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딴 작은 마을은 한 시간도 안 되어 피바다가 될 것이 뻔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가 이 점을 짐작하리라. 그러니 저놈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멸시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들키기 싫어서.
‘하여간에 소심한 놈들. 이딴 작은 마을을 얼른 벗어나서 넓은 수도로 가야지. 여긴 나랑 안 맞아.’
루스는 카단을 이용하고자 그를 팔푼이 취급하면서도 동시에 무서워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단의 타고난 심성이 난폭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인 부분이랄까. 물론 저도 그를 이용 중이었으나 매번 적절한 대가를 쳐주니 저 비열한 치들과는 엄연히 다르다. 루스는 농기구 따위를 무기랍시고 쥐고 있는 저 소시민들을 위해 아주 큰 소리로 카단의 속내를 물었다.
“진짜 그게 궁금한 거야? 뜬금없이 검을 차고 온 게 수상한데.”
“물어보고 곧장 갈 거다, 사냥.”
“아, 그래. 다음부터 마을 올 때는 그런 거 차고 오지 마. 오해하니까.”
“오해?”
“앞으로 무기는 숲에서만 차란 말이다, 숲에서만.”
루스는 숨을 길게 내쉬면서 충고했다. 무거운 어깨가 스르르 풀리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긴장했던 모양이었다, 젠장.
“딴말 말고 대답해라. 아까 물었다.”
“뭘?”
“삽입. 너도 모르나?”
그런 루스를 내려다보던 카단은 애초에 기대도 안 한 사람처럼 한숨을 팩 쉬었다. 그에 발끈한 루스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소리를 꽥 질렀다.
“모르긴, 얀마! 그 분야 전문가가 나야!”
마을 최고의 미남을 뭐로 보고! 루스는 씩씩거리며 마구간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마침 발정 난 수말이 콧김을 푸르르 뿜고는 암말을 올라타려 애쓰고 있었다.
“딱 저런 거지. 이 거시기를 암컷의 다리 사이에 꽂는 거.”
루스는 허공에다 허리를 튕기는 시늉을 했다. 그 하찮은 허리 짓을 무표정하게 관람하던 카단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다.”
루나가 말했던 삽입이 저런 뜻일 리는 없었다. 애초에 불가능했다. 달콤한 꿀이 흐르던 루나의 구멍은 제 것을 넣기에는 너무나도 작았다. 그 안에 혀를 쑤셔 넣을 때마다 그것조차 버거운 듯이 조여들지 않았나.
구멍이 제 크기에 맞았다면 이렇게 루스를 찾아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삽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그 작은 구멍에 좆을 처박는 상상부터 했었으니까. 그 가녀린 여인을 상대로 대체 뭘 하는 것인지. 카단의 얼굴에 그늘이 지자 루스는 허리 짓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왜? 혹시 그때 본 그 여자가 너한테 삽입해 달래? 넣어 달래? 막 엉덩이를 흔들었어?”
“아니다!”
“맞고만, 뭘 정색이야. 너도 드디어 이걸 써먹는 거냐?”
루스가 카단의 가랑이 사이로 장난스럽게 손을 뻗었다가 얼굴을 굳혔다. 시발, 이거 사람 거 맞나? 루스는 입을 쩍 벌리고 카단의 가랑이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괴물 맞네. 역시 괴물이야.”
생김새도 이방인 같은 주제에 여기까지 다른 종족이라니. 루스의 감탄사에도 카단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는 파리를 쫓듯 루스의 손을 쳐 낸 뒤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저놈은 해답을 모르는 것 같았다. 루스가 손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으나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겨우 이 정도로 사람 손은 쉬이 망가지지 않는다. 물론 루나처럼 가녀린 존재는 예외고.
그렇게 카단이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루스가 질문을 던지며 그의 발목을 잡았다.
“넌 어떤데, 괴물?”
“뭐.”
“너는 어떻게 하고 싶냐고.”
하긴 너도 사정없이 흔들어 싸고 싶으니까 그 뜻을 정확하게 물으러 왔겠지. 루스가 자문자답을 하면서 코웃음을 쳤다. 카단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과 답변에 당황했다.
“푸하하! 얼굴이 벌게졌네, 왜? 정곡이었냐?”
“나는…….”
“소문 다 들었다, 짜샤. 저번엔 여자 외출복을 사 가더니 오늘은 잠옷을 달라 했다면서?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제일 좋은 거로 달라고 했다지.”
시골 촌구석에 딱 하나뿐인 양장점 마담은 성격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유독 카단에게는 유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피사체라느니 신이 빚은 몸이라느니 미친 소리만 떠들던 그녀는 카단이 양장점을 방문하자마자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네가 여자 잠옷을 사 갔다고 마담이 울고불고 난리였어. 틀림없이 애인이 생긴 게 분명하대.”
“애인?”
“좋아하는 여자란 뜻이야. 입도 맞추고 살도 맞대고, 네 말대로 삽입도 하고.”
루스가 한 번 더 허리를 튕기는 시늉을 하곤 짓궂게 웃었다.
좋아하는 여자. 카단은 루스의 설명을 다시 한번 곱씹으면서 바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다 그런 뜻이 있어서 사 준 거지? 신부 삼으려고?”
신부. 카단은 애인이란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크게 놀랐다. 신부란 단어는 익히 알고 있었다. 바로 평생의 반려라는 뜻이 아닌가. 어찌 감히 그런 아름다운 여인을 상대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결단코 그런 뜻으로 옷을 사 준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옷을 걸친 루나를 볼 때마다 아랫도리가 불편했고 그녀 또한 소매가 흘러내리는 옷이 불편하리라 생각했다. 그때 마침 양장점 앞을 지났고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 위로 루나의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그래서 샀다. 여러 벌 사면 그녀가 더 많은 집안일을 하려 들까 봐 한 벌만 겨우 골랐다. 별 뜻 없이 그저 그렇게 산 것뿐이다.
하지만 카단은 이 긴 과정을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커다란 손만 붕붕 휘저었다.
“아, 아니다. 그런 거.”
“아니긴 무슨. 너 그 여자 좋아하잖아.”
“아니!”
카단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면서 부정했다. 시뻘게진 얼굴로 커다란 손을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딱 첫사랑에 빠진 꼬락서니였다. 루스는 코웃음을 쳤다.
“덩칫값 좀 해라. 들키기 싫으면 티를 내지 말든가. 너 그래서 어떻게 여자 꼬실래?”
“꼬시는 거 아니다.”
“그럼 놓칠 거야? 다른 놈한테 줄 거냐고.”
“…….”
카단은 어금니를 꾹 물었다. 단단한 아래턱이 꿈틀거렸다.
루나를 놓친다, 만다 하는 표현은 엄연히 잘못되었다. 루나는 잡으면 잡히는 사냥감이 아니다. 상처를 회복하고 보금자리로 떠나는 게 예정된 여인이었다. 제 곁에 머물지 떠날지는 전적으로 루나가 결정할 문제였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자 그를 지켜보던 루스는 속이 터진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어휴, 답답아. 그렇게 순진해서 평생 결혼은 하겠냐? 그 여자 놓치고 양장점 마담 같은 여자한테 홀라당 잡아먹힐래?”
“난 강해. 먹히지 않는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너 그 여자 가만히 놓칠 거면 나 줘, 내가 쓰게.”
루스는 목욕통에 앉아 바들바들 떨던 루나를 떠올리면서 아랫입술을 싸악 핥았다. 고고한 금발과 하얀 살결이 인상적인 여자. 마른 체형에도 제법 볼륨감이 좋았던 것도, 얼굴이 반반한 것도, 마음에 쏙 들었다. 보나 마나 천박한 신분일 테지만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 분위기는 확 꺾어 버리고 싶은 정복욕을 자극했다. 저 괴물 놈의 여자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꼬셨을 텐데. 루스는 그 아쉬움을 가감 없이 표현했다.
“내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건 알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자든 딱 하루면 침대까지 데려갈 수 있거든. 아 맞다, 침대로 데려간단 말은 알아? 삽입 말이야, 삽입.”
루스가 자신의 치골뼈를 툭툭 두드리면서 성행위를 암시했다. 순간 얼굴이 굳힌 카단이 손을 뻗어 루스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들어 올렸다.
“죽인다.”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엔 살기가 그득했다. 루스는 케엑, 켁 기침을 하면서 카단의 손을 떼어 내려고 애썼다. 물론 그의 손가락 하나 떼어 내지 못했다.
“노, 농담이었어! 놔줘, 쿨럭!”
이 새끼는 지가 꼬시는 거 아니라고 해 놓고 왜 이 지랄인데! 루스는 억울해하면서 카단의 손을 탁탁 쳐 댔다.
“루나, 물건 아니다. 쓰는 거 아니다. 루나가 결정한다.”
카단은 낮은 목소리로 루스의 잘못된 표현을 고쳐 주었다. 그는 루스가 한 번씩 루나를 더럽게 취급할 때마다 저 간사한 혀를 잘라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무, 무슨 말이야, 컥. 숨이……. 살려 줘!”
“루나, 앞에, 얼쩡대지 마라.”
“알았어. 머리카락 한 톨 안 보일 테니까, 목 좀, 켁! 놔줘!”
카단은 루스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아래로 내동댕이쳐진 루스는 헉헉 소리를 내면서 숨을 쉬었다.
그깟 여자 때문에 눈 돌아간 새끼, 은혜는 모르는 새끼. 루스가 침이 흘러나온 입가를 소매로 쓰윽 문지르면서 카단을 노려보았다. 카단이 한쪽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루스의 삐딱한 시선을 똑바로 받아 냈다.
“원하나, 결투?”
“내, 내가 이누트 같은 야만족이야? 결투는 무슨!”
미친놈. 사람이 좀 노려봤다고 저 지랄이네. 루스는 입으론 욕을 중얼거리면서도 최선을 다해 착한 눈매를 만들었다. 루스의 살기가 사라지자 카단은 가만히 그를 응시하다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에서 루스는 조금 불안해졌다. 루스는 카단이 가져다주는 마수의 시체를 비싼 값에 팔며 이익을 남기는 중간 상인이었다. 그 액수가 꽤 짭짤했는데 카단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거래를 끊는다면 손해가 극심하리라.
“어이, 괴물! 잠깐만.”
루스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꾀를 냈다. 그에게 점수를 딸 적절한 방법이 떠올랐다. 걸음을 멈춘 카단이 말없이 고개를 돌려 루스를 응시했다.
“여하튼 같이 사는 그 여자 때문에 고민이 많지?”
“…….”
“표정 풀어. 이 몸이 아주 좋은 걸 챙겨 줄 테니까.”
루스는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환약 한 알을 꺼냈다. 정체 모를 식물의 잎과 뿌리를 말려 만든 환약은 알싸한 냄새를 풍겼다.
“자. 이거 그 여자한테 먹여 봐.”
“뭐야.”
“좋은 거야. 정-말 좋은 거.”
“싫다.”
카단은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루나에게 저딴 정체 모를 약을 함부로 먹이기가 싫었다.
“하, 이 답답한 새끼. 야,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알아? 큰 마을로 가서 어렵게 어렵게 구한 거라고. 귀족 나리들도 먹는 거래!”
루스는 ‘내 고객님이니까 고마워서 주는 거지 평소라면 이 비싼 건 턱도 없었다’라면서 카단의 손에 억지로 약을 쥐여 주었다.
“그거 먹으면 기분이 엄청 좋아져. 봄 고양이처럼 아주 열정적으로 네게 달려들걸? 기분 좋은 거 싫어하는 사람 없으니까 꼭 써 봐.”
효과 좋으면 앞으로 거래량 늘려 주기다? 루스는 실실 웃으면서 카단의 등을 떠밀었다. 카단이 쉬이 밀려날 덩치는 아니었지만, 환약을 뚫어지게 살피느라 순순히 미는 방향을 따라 움직여 주었다.
“그리고 돌아갈 땐 조용히 돌아가 줘. 네가 칼 차고 내려오면 마을 사람들이 경계하니까.”
카단의 등 뒤로 조언을 남긴 루스는 다시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카단은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빠져나가면서도 시선은 손바닥 위 동그란 환약에 두었다.
‘그거 먹으면 기분이 엄청 좋아져. 기분 좋은 거 싫어하는 사람 없으니까 꼭 써 봐.’
방금 루스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분이 좋아진다, 라. 그렇다면 루나도 이걸 좋아해 줄까. 아니, 그 전에 루스 놈이 준 이 수상한 약을 믿을 순 있을지. 혹시 모르니 그냥 버려야 할까.
카단은 오두막까지 가는 길 내내 손안에 든 환약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 * *
“카단, 카단! 정신 차려요!”
루나가 카단의 뺨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치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단은 눈에 힘을 주고 루나를 응시했다. 흐릿한 시야가 천천히 돌아오더니 제 앞에 쭈그려 앉은 루나가 보였다.
지금 카단은 오두막 벽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아 있었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에 열이 끓었다. 그저 본능만 남은 짐승처럼 루나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거세게 일었다.
카단은 손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제 손엔 반쪽 베어 물고 남은 환약이 남아 있었다. 루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어서 오두막으로 오는 길에 제가 먼저 한 입 베어 문 것이다. 뭐든 효능이 빠르게 나타나고 동시에 회복도 빠른 체질이었던 카단은 예상치 못한 약효에 이마를 부여잡았다.
“카단, 열이 나요. 어디 아파요?”
“들어가.”
카단이 저를 만지던 루나의 작은 손을 뿌리쳤다. 위험했다. 기분이 좋아지기는 빌어먹을. 이건 사람을 짐승으로 만드는 약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 자리에서 루나를 덮쳐 버릴 것이다.
“싫어요. 카단을 두고 혼자 안 들어가요.”
“위험해.”
“뭐가요?”
“내가.”
‘다 그런 뜻이 있어서 사 준 거지? 신부 삼으려고. 너 그 여자 좋아하잖아.’
혼잡한 머리에서 루스가 했던 말이 신기하리만큼 뚜렷하게 떠올랐다.
신부. 배 속에 씨물을 잔뜩 뿌려 수태시키고 싶은 여자.
하아. 하아. 거칠어진 숨과 함께 바닥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눈동자가 루나를 향했다. 그것이 카단의 마지막 경고였으나 루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카단이 왜 위험하다는…… 읍!”
루나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카단의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더니 그대로 끌어당겼다. 두 입술이 포개어졌다.
카단의 두툼한 혀가 루나의 입을 벌리며 들어와 여린 입천장을 쓸고 치열을 더듬었다. 그는 저 뒤로 빠져 있던 루나의 혀를 찾아내 뱀처럼 감아 쪽쪽 빨아들이자 혀뿌리에 통증이 일었다. 아흐, 루나가 신음을 흘리면서 강철 같은 가슴팍을 주먹으로 툭툭 두드렸으나 카단은 더 바짝 맞붙어 올 뿐이다. 루나의 상체가 점점 뒤로 기울었다. 입맞춤이라 부르기엔 너무도 짐승 같은 행위였다.
“응, 읍!”
루나는 숨을 쉬기 위해 겨우 입술을 떼어 냈으나 곧장 카단에게 붙잡혀 입 안을 도로 내주어야 했다. 서툰 혀의 움직임은 거칠었으나 그가 밀어붙일 때마다 루나는 허벅지를 움찔 떨었다. 배 안쪽이 부족한 듯 간질거리면서 다리 사이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루나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목덜미를 틀어쥔 손이 척추를 따라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 손은 풍만한 루나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윽!”
너무 센 악력에 루나가 어깨를 떨면서 신음했다. 동공이 풀려 있던 카단의 눈에 잠시 초점이 돌아왔다. 화들짝 놀란 카단은 루나에게 맞붙어 있는 입술과 손을 떼어 냈다.
“미, 미안.”
하아, 하아. 그는 뜨겁고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사과를 건넸다. 정신이 든 것은 잠시뿐이었다. 카단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 그는 모든 인내를 발휘하여 그녀를 놓아주고 있었다.
“제발, 들어가.”
카단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면서 신음했다. 제가 먼저 환약을 먹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까딱했으면 이 괴로운 약을 루나에게 줄 뻔하지 않았나. 이딴 약은 역시 버렸어야 했다. 바보 같은 놈이라고 중얼거린 카단은 숨을 길게 내쉬면서 최대한 열을 식히려고 노력했다.
그때 루나가 카단의 손바닥에서 떨어진 반쪽짜리 환약을 집어 들었다.
“카단, 이거 먹었어요?”
루나는 이 환약이 익숙했다. 노예 상단에 있을 때 상단주가 자신에게 몇 번씩이나 먹이려고 했던 약이었다. 이걸 먹으면 발정 난 동물처럼 본능에 휩싸여 쾌락을 추구한다고 했던가. 뒷골목에서는 제법 유명한 미약으로 부작용이 적어 귀족들도 자주 찾는다고 들었다.
‘이걸 어디서 구했을까.’
특히나 저 순진한 사내가 구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아마도 누군가 부추겼을 터. 이 오두막에 환약을 써먹을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루나는 뱀처럼 웃던 루스란 사내를 떠올렸다.
“집으로, 가.”
어금니를 꽉 문 카단은 루나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어서 가라며 손짓만 반복했다. 루나는 그런 카단의 이마를 천천히 쓸어 올려 얼굴을 가리던 머리칼을 정리했다. 어수선한 머리칼에 가려져 있던 잘생긴 이목구비가 고통을 참으며 찡그리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음욕을 억누르는 모습은 다친 짐승처럼 안쓰러우면서도 어두운 매력을 풍겼다. 루나는 카단의 뺨을 감싸면서 그의 두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국적이면서도 새까만 눈동자가 당장이라도 루나에게 달려들 듯 들끓고 있었다.
“이건…… 저만 볼 수 있는 당신의 얼굴인 거죠?”
루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와중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숲의 시냇물처럼 맑고 청초해서 카단은 죄책감을 느꼈다. 더러운 본능이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교성으로 뒤바뀌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며 종용했다. 카단은 루나를 잡아먹을 듯 응시하다가 가까스로 시선을 돌렸다. 한계였다.
“이제, 못, 참아. 제발.”
가, 어서. 카단은 혀를 깨물 기세로 인내심을 발휘하며 루나를 오두막 안으로 들여보내고자 애썼다.
하지만 루나는 카단의 말을 듣기는커녕 그의 허벅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덜덜 떨고 있는 그의 손을 맞잡아 가슴께에 달린 슈미즈 끈이 있는 곳으로 올려 두었다. 그가 가느다란 끈을 힘주어 잡아당긴다면, 어깨를 감싼 슈미즈의 네크라인이 벌어지면서 옷이 벗겨지리라.
제기랄. 그러나 카단은 손을 덜덜 떨면서도 끈을 잡아당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루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재촉했다.
“카단.”
“아, 안 된다.”
카단은 고개를 힘겹게 저었다. 그는 어떻게든 루나를 지켜 주려고 고군분투했다. 감히 밟지 못하는 새하얀 눈밭 같은 여인을, 건들면 바스러질 것처럼 연약한 여인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루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제가 싫어요?”
“아니!”
카단은 다급하게 대답하면서 고개를 더 크게 저었다. 그의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져 루나는 그만 작게 웃어 버렸다.
“그러면 절 너무 밀어내지 말아 줘요. 당신에게 거절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거절, 아니다.”
“그럼 안아 줘요, 카단. 당신에게 안기고 싶어요.”
루나는 끈을 쥔 카단의 손을 감싼 후 힘을 주었다. 슈미즈 매듭이 천천히 풀리고 어깨선이 크게 벌어지면서 슈미즈가 아래로 털썩 벗겨졌다.
카단은 숨을 삼켰다. 야한 몸이었다. 얼굴만큼이나 새하얀 속살과 그 위로 새겨진 붉은 룬 문신은 당장에라도 잇자국을 내고 싶을 만큼 색정적이었다.
피부 위로 와 닿는 차가운 공기에 루나가 어깨를 살짝 떨 때마다 풍만한 가슴이 보기 좋게 흔들렸다. 카단은 위로 솟은 분홍빛 유두를 응시하다가 루나를 올려다보았다. 허락을 요구하는 눈동자가 짐승처럼 형형했다.
“카단…… 흐읏!”
루나가 부르자마자 카단은 고개를 숙여 루나의 목덜미에 콧등을 비볐다. 후우, 크게 숨을 들이켜서 루나의 체취를 한가득 폐에 머금은 뒤에 천천히 내뱉었다.
그사이 그의 커다란 손은 루나의 봉긋한 가슴을 천천히 주무르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고통스러워할까 봐 최대한 힘을 빼고 부드럽게 쥐었다가 펴길 반복했다. 한 손에 알맞게 들어오는 보드라운 살덩이를 만지는 것만으로도 사정감이 치솟았다.
“하응, 카단.”
루나가 단단한 목에 매달려 신음했다. 상상보다도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들자 그의 인내심이 빠르게 바닥났다.
“루나. 루나.”
카단은 허겁지겁 루나의 목덜미와 어깨, 귀 옆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손가락으로 단단해진 유두를 살살 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가 자극을 줄 때마다 유두에서 시작된 찌릿한 쾌감은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 아랫배 안쪽으로 고여 들었다. 그 간지럽고 오묘한 감각을 참을 수 없었던 루나는 하반신을 카단의 하반신에 문지르면서 허리를 틀었다. 그럴 때마다 바지 위로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던 성기가 꿈틀거렸다. 루나는 그 뜨거운 기둥에 하반신을 더 세게 비볐다.
“윽!”
신음을 참지 못한 카단이 어금니를 꽉 물면서 몸을 떨었다. 그리고 루나의 이마에 얼굴을 맞대고 그녀를 뚫어지라 응시했다.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연노랑빛 눈동자가 저를 비추고 있었다.
카단은 그 자세 그대로 루나의 허리를 안은 뒤 다리를 세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춥고 위험한 야외에 루나를 방치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이었다.
“카단?”
그에게 매달린 루나가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으며 그를 불렀다. 카단은 대답 없이 빠르게 오두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젖은 속옷 위로 그의 뜨거운 성기가 스치는 감각이 아찔했다. 아파도 괜찮으니 이대로 허리를 내려 이 뜨겁고 커다란 살덩이에 꿰뚫리고 싶었다. 루나가 그의 아랫배에 하반신을 문지르면서 그에게 입을 맞췄다.
츄읍, 츄읍. 루나가 혀끝으로 닫혀 있던 그의 입술을 벌리고 그의 입술을 빨았다. 그러자 카단의 두툼한 혀가 루나를 반기며 그녀의 혀를 감아올렸다. 서툰 입맞춤은 맹렬했다. 루나의 입가로 투명한 타액이 주르륵 흘렀고 그것은 턱 아래에 맺혔다가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쿵! 등 뒤로 오두막 문이 세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루나의 몸이 뒤로 기울더니 폭신한 침대에 눕혀졌다.
카단은 포획한 사냥감을 물어뜯으려는 맹수처럼 침대에 누워 있는 루나를 올라타고 있었다. 아직 몸이 닿지도 않았건만 커다란 덩치가 풍기는 위압감에 눌려 루나는 숨을 멈췄다.
하으. 그리고 작게 숨을 터트리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순간.
그가 빠르게 달려들었다.
입술은 다시 포개어졌고 투박한 몸은 적당한 힘으로 루나를 내리누르며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흐읍, 흡.”
루나는 카단의 목을 감고 있던 손을 내려 그의 하반신을 더듬었다. 탄탄하게 올라붙은 엉덩이를 타고 내려가 바지 앞섶에 손을 올렸다. 허리끈을 풀고 바지를 살짝 내리자 감춰져 있던 커다란 성기가 퉁 튕겨 나오며 고개를 들이밀었다.
뜨겁고 단단한 살덩이가 루나의 배꼽 부근을 쿡쿡 찔렀다. 루나는 기둥을 쥐고 천천히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큭! 신음한 카단은 입술을 떼더니 허억허억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루나의 빗장뼈를 이빨로 살짝 깨문 뒤 더 아래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빳빳하게 선 루나의 유두를 아기처럼 쪽쪽 빨아 대기 시작했다.
“좋아요, 하으.”
그가 세게 흡입할 때마다 짜릿한 자극이 가슴을 타고 내려가 아랫배에 고였다. 그는 루나의 핑크빛 유륜을 혀의 두툼한 부분으로 싸악 핥다가 풍만한 살덩이를 빨아들여 붉은 자국을 남겼다.
카단은 자신이 남긴 자국을 반쯤 풀어진 동공으로 만족스럽게 응시했다. 루나는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칼을 위로 넘겨 주었다. 욕망에 젖은 카단의 얼굴은 자신이 알던 사내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 그런 그의 입에선 루나가 처음 들어 보는 외국어가 흘러나왔다.
『아름다워.』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할 것 같은 말투와 분위기는 일개 사냥꾼이 아니라 어디 왕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오만했다.
“카단, 읏, 방금 무슨 말을…… 흐잇!”
루나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두 다리를 파르르 떨었다. 그의 단단한 손가락이 루나의 음부를 열고 파고든 것이다. 손가락은 틈 없이 딱 맞물려 있던 입구를 천천히 벌리며 깊숙이 침투했다. 충분히 젖어 있던 안쪽은 그의 손가락을 어려움 없이 집어삼켰다. 미끄러지듯 들어온 그의 손가락은 질 안쪽 여린 점막을 지그시 누르며 루나를 자극했다.
“흣, 카단, 앙, 하앗!”
루나는 허리를 뒤틀면서 그의 손가락을 조였다가 풀었다. 그 조임에 어금니를 꽉 문 카단은 손가락을 쑥 빼냈다. 그것이 허전했을까. 루나가 카단을 올려다보며 눈썹 끝을 내렸다.
“왜, 왜 빼요? 더 해 줘요.”
“…….”
카단은 응석을 부리는 루나를 응시하면서 구멍에 쑤셨던 손가락을 길게 핥았다. 루나의 체취가 깃든 애액은 살짝 시큼하면서도 적당히 달아서 그 입맛에 꼭 맞았다.
그것을 남김없이 핥아 먹은 카단은 곧장 손가락을 하나 늘려 두 개를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그의 손짓은 처음보다 성급했다. 그는 가위질하듯 손가락을 쑤시며 루나의 구멍을 넓히는 데 열중했다. 어서 빨리 이 구멍에 좆을 쑤셔 넣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곧 손가락은 세 개가 되었고 축축하고 쫀득한 구멍은 오직 그를 위해 벌어졌다. 카단은 젖은 손을 빼낸 뒤 혀를 내어 손바닥까지 흐른 애액을 길게 핥으면서 다른 손으로 당장 터질 것 같은 성기를 쥐었다. 곧 뻐끔거리는 구멍 위에 뭉뚝한 귀두가 닿았다. 충분히 젖은 구멍 위로 귀두가 미끄러지듯이 침투했다.
“흐윽.”
루나가 침대 시트를 꽉 쥐면서 입술을 꽉 물었다. 최대한 신음을 참으려 했으나 당장에라도 아래가 찢어질 것 같아서 악 소리가 절로 났다.
추운 날씨에도 땀을 뚝뚝 흘리던 카단은 움직임을 멈추고 접합부를 노려보았다. 빠듯하게 벌어진 구멍은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구멍이 작아.』
카단이 한 번 더 외국어를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카단은 왕국인보다 생김새가 뚜렷하고 덩치도 유독 커다랬다. 대륙 공용어가 어눌한 것을 보면 외국인일지도 몰랐다. 루나는 카단의 말뜻을 대충 추측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멈추지, 읏, 말아 줘요.”
살점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루나는 몸에 힘을 풀고 벌벌 떨리던 허벅지를 더 넓게 벌렸다. 카단은 그런 루나를 기특하게 내려다보며 그녀의 붉은 입술을 쓸었다.
『네 구멍도 꼭 너 같다, 루나.』
저를 받아들이기 버거울 만큼 작은 주제에 매번 저를 위하여 한계까지 품을 벌리는 여자. 저를 무서워하긴커녕 매일 맑은 미소로 ‘안녕하세요, 카단’ 하고 인사를 건네는 신기한 여인.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그랬다. 며칠 전에는 몸집만큼이나 작은 입으로 겨우 성기를 삼키더니 지금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새하얀 허벅지를 벌리지 않나.
카단은 평소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을 생각과 행위를 거칠게 이어 가면서 그녀의 입술을 툭툭 두드렸다. 낯선 외국어 속에서 ‘루나’ 하고 불리는 이름만은 겨우 들었기에 루나는 울먹이면서도 그에게 대답하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주한 카단의 새까만 눈동자는 번들거렸다. 카단은 루나의 입술 안으로 엄지손가락을 집어넣은 뒤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참아.』
푹! 동시에 카단이 허리를 강하게 쳐올렸다.
“악!”
짧게 비명을 내지른 루나는 카단의 손가락을 피가 나도록 꽉 물었다. 크고 단단한 음경이 단박에 루나를 꿰뚫었다. 물론 뿌리까지 다 들어가려면 한참이 남았지만 루나는 그마저도 버거워했다. 꿰뚫린 안쪽은 너무도 비좁았다. 카단은 미간을 찌푸리고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무 조여. 숨 쉬고 힘 풀어.』
명령에 가까운 말투는 평소와 달랐으나 지금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는 너무도 잘 어울렸다. 루나는 저를 지배하고자 하는 사내의 기세가 너무도 좋았다. 다만 말뜻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읏, 카단,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알아들을 수 있게…… 흐윽.”
루나는 꽉 물고 있던 그의 손가락을 츄읍츄읍 핥으며 흐느꼈다.
그러자 카단이 그녀의 명치에 손을 올렸다. 쉬- 그가 토닥토닥 심장께를 두드려 주자 바짝 오므라들었던 팔다리가 천천히 이완되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카단의 성기가 천천히 밀려들었다.
거대한 물건이 배 속을 휘저을 때마다 몸 안의 장기가 위로 밀리는 것 같아 헛구역질이 났다. 동시에 그것은 루나의 예민한 질벽을 압박하면서 자극했다. 그때마다 소변이 마려운 것과 비슷한 감각이 배꼽 아래에서부터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루나는 고통과 쾌감을 번갈아 맞이하며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카단, 흐으, 몸이, 이상, 이상해요.”
이상하다는 루나의 말에 카단은 그녀의 표정을 뚫어지라 살폈다. 붉게 물든 눈가를 타고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녀가 아픈가 싶어 잠시 망설였지만, 그의 본능은 그녀가 느끼는 게 고통만이 아님을 간파했다. 카단은 천천히 허리를 물리다가도 박을 땐 거침없이 안을 들쑤셨다.
“아, 아픈데 좋아. 배 속이 타들어 같…… 흐으, 하앙!”
두꺼운 기둥이 쑤시고 빠지길 반복할 때마다 여린 살들이 안쪽으로 끌려갔다가 딸려 나왔고 그렇게 자극받은 음핵은 누가 만져 주지 않았음에도 한껏 부풀었다.
루나는 손톱을 세워 카단의 등을 긁었다. 그 손짓이 채찍질이라도 되는 양 그의 허리 짓은 더 거세졌다. 카단은 루나의 허리를 두 손에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가 뿌리 끝까지 삽입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던 중 삐걱거리던 침대에서 우지끈 소리가 들렸다.
“하앙, 핫, 읏, 카단, 침대가 부서져요, 부서…… 아으!”
루나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고개를 꺾었다. 또다시 찾아온 절정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녀의 허벅지가 카단의 허리를 조이며 파르르 떨렸고 경련하는 그녀의 내벽 또한 카단의 좆을 사정없이 빨아들이며 이완과 수축을 반복했다.
카단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애액과 거품이 흘러넘친 접합부는 엉망이었다.
『난 아직 아닌데. 노력해야지, 루나.』
카단은 좆을 꽂은 채로 쉼 없이 움찔대는 구멍을 감상하면서 축 처진 루나의 다리를 자신의 어깨 위로 올렸다. 절정 때문인지 그녀의 안쪽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카단의 귀두가 더 깊게 찔러 오면서 좁은 공간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 아! 아악! 카단, 잠깐, 흐윽, 깊어, 깊어요!”
절정 중에 더해진 쾌락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선명했다. 루나가 가녀린 팔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냈지만 두툼한 대흉근이 움찔거릴 뿐 거대한 몸이 밀리는 일은 없었다.
“힛, 히익!”
카단, 카다안! 루나의 허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위아래로 펄떡거렸다. 그녀의 손가락 발가락이 곱아들고 고개가 꺾였다. 팽팽하게 부푼 육벽이 카단의 것을 꽉 쥐며 놓아주지 않았다.
크윽! 카단은 이를 물고 루나를 꽉 안았다. 그의 성기가 불투명한 정액을 수차례 자궁으로 쏘아 댔다. 주름이 빳빳하게 펴진 루나의 점막은 당장이라도 임신할 것처럼 카단의 정액을 안으로 빨아들였다.
‘끝났나. 끝난 게 맞겠지?’
루나는 흐릿한 시선으로 카단을 응시했다. 반듯하던 눈썹이 일그러지고 세게 문 아래턱이 꿈틀댔다. 저를 향한 새카만 눈동자에는 지독한 소유욕이 일렁거렸다. 루나는 짐승처럼 그르릉대면서 절정을 만끽하는 카단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카단.”
기분 좋았나요? 당신이 나만큼 좋았으면 좋겠는데. 카단의 이름만 겨우 부른 루나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카단은 기절한 루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감긴 눈꺼풀 위로 자라난 기다란 속눈썹을 천천히 쓸어 보았으나 그녀는 눈을 뜨지 못했다.
흐음. 한 번의 사정으로 만족하지 못한 짐승은 천천히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절정의 애액과 그의 정액으로 범벅된 안쪽은 느른하게 풀어져 기분 좋았다.
사정을 마쳤던 그의 성기가 루나 안에서 다시 빳빳해졌다. 흐으, 잠든 루나의 입술 사이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루나. 루나. 카단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도톰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은 루나의 새하얀 피부 위에 박힌 룬 문신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그 문자를 알고 읽는 것처럼 낯선 발음으로 천천히 중얼거렸다.
카단의 목소리는 성서를 읽어 내리듯이 경건하였으나 허리 아래에서 들리는 음란한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애액이 쩌억, 쩍 갈라지는 소리와 그의 장골이 루나의 허벅다리 안쪽을 퍽퍽 박아 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커다란 손이 힘없이 흔들리는 루나의 몸을 지지하면서 거친 허리 짓을 이을 때.
콰지직!
삐걱거리던 침대 허리가 반으로 갈라지더니 폭삭 무너졌다. 민첩한 카단이 루나를 끌어안고 몸을 일으켰기에 다친 사람은 없었다. 카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너진 침대를 보다가 품 안에 갇힌 루나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사출하지 못한 음경이 여전히 그녀의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나 힘없이 처진 루나는 그저 평온하게 잠든 채였다.
카단은 초점이 풀린 눈동자로 루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저 보기만 했을 뿐인데 삽입한 좆이 제멋대로 꿈틀거리며 그녀의 안을 자극했다. 우으,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루나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녀의 안쪽이 좆을 꽈악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다른 자극은 없었다. 그런데 카단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그는 루나를 더 세게 끌어안고서 이를 꽉 물었다. 터질 듯 부풀어 올랐던 좆이 꿀럭꿀럭 정액을 사출했다.
그렇게 카단은 밤새 루나를 놓지 못했다.
* * *
‘이상한 기분이야.’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루나는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부유감을 느꼈다. 알싸한 풀 향이 코끝을 맴돌고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온몸이 저릿저릿 아프다가도 따듯한 온기가 뭉근하게 감싸자 통증이 서서히 가셨다.
루나는 오늘따라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카단이 자신을 목욕통에 집어넣고 씻기고 있었다.
“카, 단?”
목소리가 쇳소리처럼 갈라졌다. 루나는 큼큼 목을 가다듬으면서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하고 인사한 뒤 나무통에 기대었던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약초를 풀어 둔 목욕물은 옅은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미안. 미안하다.”
루나의 팔을 씻기던 카단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덥수룩한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그의 코끝과 눈가가 붉었다. 루나는 두 손을 뻗어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카단의 양 뺨을 잡고 들어 올렸다.
“뭐가 미안한가요?”
“안 난다. 기억이.”
“아.”
“내가 너를, 분명…….”
침대가, 시트에 피가, 내가 이상한 약을 먹어서. 카단은 횡설수설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덜덜 떨렸다. 아마도 울음을 삼키는 것이리라.
“카단, 이리 와요.”
루나가 그의 얼굴을 제 쪽으로 당겼다. 축 처진 그의 얼굴은 순순히 루나에게로 끌려왔다.
“좋았어요, 전.”
루나는 그의 머리칼을 이마 위로 넘긴 뒤 잘생긴 입술 위에 살짝 입을 맞췄다.
“제 선택이었어요. 당신이 기억 못 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루나.”
“네, 카단.”
“미안하다.”
“다른 말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루나는 키득거리면서 카단의 뺨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루나가 듣고 싶은 다른 말이 무엇일까. 그녀의 버드키스에 복숭아처럼 뺨을 물들인 카단은 생각에 잠겼다. 그 와중에도 축 늘어진 눈꼬리는 버림받은 사냥개 같았다. 남몰래 흘렸던 눈물의 흔적이 그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정말 제게 미안하다면 제 소원 하나 들어주는 거 어때요?”
“소원?”
“음, 카단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싶어요.”
소원을 말한 루나가 카단의 덥수룩한 정수리로 손을 올리려는데.
흠칫! 눈에 띄게 움찔거린 카단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뒤로 빼면서 루나의 손을 피했다. 예전부터 카단은 길들이지 않은 짐승처럼 머리를 만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내가 좀 무리한 부탁을 했구나.’
루나가 손가락을 안으로 말아 쥐면서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조금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무언가를 망설이던 카단이 루나를 향해 쭈뼛쭈뼛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루나의 손목을 잡고 끌어와 자신의 정수리에 올렸다. 그의 얼굴은 자신의 목숨이라도 바치듯 비장했다. 그가 루나에게 머리를 허락한 것이다.
“내 머리털, 네 마음대로 해.”
“정말요?”
루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정수리를 쓸어내렸다. 억센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사이 여린 살을 긁으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응. 그런데 씻는 거 먼저.”
카단은 커다란 손으로 루나의 얼굴을 닦아 내렸다. 뺨과 콧등을 닦을 때마다 비릿하고 미끈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루나는 그게 무엇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푸푸, 세수를 시키는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이던 루나는 어젯밤 카단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의아했던 한 가지를 질문했다.
“그런데 카단, 혹시 외국에서 왔나요?”
“외국?”
“다른 나라라는 뜻이에요. 어젯밤 카단이 다른 나라 말을 썼어요. 뭐라고 하더라, 크라읏스바…….”
루나가 외국어를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 스스로 웃음을 터트렸다. 루나의 말을 귀 기울여 듣던 카단은 처음 듣는 말인 것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모른다, 그런 말.”
“이상하네요. 억양이나 발음이 엄청 익숙해 보였거든요.”
“전혀. 기억이 없어.”
어제의 기억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기억 또한 없었다.
카단은 자신이 몇 살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북쪽 숲에 버려진 상태였다. 억척같이 숲을 빠져나온 카단은 우연히 빈 오두막을 발견했고 이곳을 거처로 삼아 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카단은 딱히 외롭거나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서 마수를 베었고 주변 마을에 그 시체를 팔아 생활을 이었다. 타고난 신체 조건과 언제 익혔는지 모를 검술 덕택에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모르겠어. 카단은 한 번 더 고개를 저으면서 루나의 목욕을 마무리 지었다.
‘실수로 그의 상처를 들쑤신 건 아니겠지?’
루나는 기억을 잃어버린 그를 딱하게 바라보다가 침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짱했던 침대가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루나가 묻기도 전에 먼저 대답한 것은 카단이었다.
“침대, 다시 만들 거다. 만세 해.”
루나의 몸을 꼼꼼하게 닦아 준 카단이 잠옷을 내밀었다. 루나가 두 팔을 위로 올리자 그대로 잠옷을 입히는 손길은 몇 번이나 해 본 것처럼 익숙했다.
“침대도 만들 수 있나요?”
“다 만든다.”
카단은 나무 목욕통과 선반, 도마 등을 가리켰다. 와아! 눈을 동그랗게 뜬 루나가 감탄을 흘리면서 그의 손끝을 따라갔다. 요리, 청소, 빨래, 심지어 장작까지 잘 패는 사내가 이런 재주까지 가지고 있다니.
“카단은 너무도 멋진 신랑감이에요!”
“신랑?”
“네. 결혼하고 싶은 남자요. 누구든 카단을 보면 그럴걸요?”
“너도?”
“당연하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 루나의 얼굴이 한 박자 늦게 화르륵 타올랐다. 카단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하얀 복숭아 같았다가 빨간 사과로 변한 루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제 말은 카단 씨가, 그만큼 좋은 남자라고…….”
노예로 전락한 주제에 감히 그를 욕심 내다니. 말을 줄인 루나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시선을 피했다.
“너도.”
“?”
“너도 좋은 여자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 뒷말을 작게 중얼거린 카단은 선반 위에 놓인 가위를 가지고 와서 루나에게 내밀었다.
루나는 눈을 빠르게 깜박거리면서 가위를 내려다보았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카단은 들고 있던 가위를 흔들었다.
“받아. 다듬는다며.”
“네?”
“내 머리. 네 맘대로 해.”
카단은 테이블 의자를 끌어와 루나에게 등을 보이며 털썩 앉았다. 어, 어? 루나가 어리둥절해하며 받아 든 가위와 카단을 번갈아 보는 사이, 카단은 ‘둘이 누워야 하니까’라고 중얼거리면서 말을 덧붙였다.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들 거다, 새 침대.”
등을 보인 자세 때문에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덥수룩한 머리칼 사이로 뾰족 튀어나온 귀 끝은 스노우베리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 * *
루나는 솜씨를 발휘해 카단의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었다. 수염을 깎는 것도 잊지 않았다. 루나의 솜씨는 훌륭했으나 카단의 이목구비가 워낙 잘생겼던 탓에 머리보다는 얼굴로 시선이 몰려 실력 따위는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인기가 많아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카단이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사람들은 그를 환대했고 마을 여자들은 경쟁하듯이 그를 유혹했다. 그는 루스를 제치고 마을 최고의 미남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괴물이 아니라 카단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카단은 그들이 환대하든 말든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루나는 달랐다. 이제는 마을 여자들이 이 먼 오두막까지 찾아와 음식 따위를 놓고 가는 일이 잦아졌다.
루나는 그때마다 숨을 죽이고 오두막 구석에 숨어 있어야 했다. 제물이었던 자신이 마을 사람들에게 들통난다면 못 볼 꼴을 당할 것이 뻔했으니까.
─카단 님 계세요? 이것 좀 드셔 보셔요.
오늘도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데이지라고 했던가. 루나가 제물로 바쳐질 때 울면서 화장을 해 주던 그 여인이었다.
땔감을 구하러 나간 카단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에 루나는 조용히 오두막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렇게 그를 찾는 여자들이 많아질수록 왠지 모를 씁쓸함이 루나의 가슴을 에었다.
‘그가 날 좋은 여자라고 했지만 마을엔 나보다 좋은 여자들이 많을 거야.’
쓸데없는 희망은 갖지 말자. 카단의 관심이 자연스레 멀어지면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깔끔하게 떠나 주는 거야. 루나는 그가 더 좋은 여인을 선택하면 축복해야 한다고 되뇌었으나 그럴 때마다 심장엔 얼음 가시가 하나씩 박혀 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욕심이 많아졌지?’
루나가 쓸쓸하게 무릎을 꼭 끌어안던 때. 오두막 밖에서 카단의 발소리가 들렸다.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는 바로 문 앞에서 우뚝 멈췄다. 오늘도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곳까지 찾아온 여인을 매몰차게 쫓아냈다.
─가라.
─잠깐만요, 카단 님. 요즘 마을에서 달콤한 음식을 찾으신다고 들었어요. 이거 손수 만든 딸기잼이에요.
카단이 달콤한 음식을 구입했던 것은 순전히 루나 때문이었으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딸기잼이라면 루나가 좋아하겠지. 카단은 무심하게 손을 내밀었다.
─주고 가, 그럼.
─그, 여기까지 오는데 힘들어서요. 오두막에서 물 한 잔만 마실 수 있게 들여보내 주시면…….
─가!
─아, 알겠어요. 갈게요. 무서운 표정 짓지 마셔요.
후다닥. 데이지의 발걸음이 오두막에서 멀어졌다. 카단은 데이지가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한 후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구석에서 숨어 있는 루나를 단번에 확인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자른 이 머리 때문이다. 귀찮아.”
딸기잼을 테이블 위에 대충 던져둔 카단이 루나 앞까지 성큼 다가와 쪼그려 앉은 그녀의 몸통을 잡고 번쩍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 모습이 정말 멋진걸요, 카단 씨.”
“…….”
카단은 불평을 늘어놓으려던 입을 꾹 다물었다. 루나의 칭찬을 들으니 가슴 안쪽이 간지러워서 벅벅 긁고 싶었다. 그때 저를 향하던 연노랑 눈동자가 테이블 위 딸기잼을 힐끗거린다.
딸기잼이 먹고 싶은 건가. 카단은 점식 메뉴로 잼을 바른 샌드위치를 준비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잼을 쳐다보는 루나의 눈빛이 어딘지 슬퍼 보였다. 남이 만든 음식은 싫다는 뜻일지도. 앞으로 이런 음식은 절대 얻어 오지 말아야지. 딸기잼 정도는 재료만 있다면 쉽게 만들 수 있으니 내일 만들면 되겠어. 카단은 내일 당장 장을 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받아.”
받아 줘, 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긴장한 나머지 그만 실수해 버렸다. 오는 길 내내 마음속으로 수십 번 연습한 말이기에 실수가 더더욱 아쉬웠다. 하지만 루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녀는 상자 뚜껑을 열고서 그 안에 놓인 얇은 실반지 하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이게 뭔가요?”
“선물.”
“제, 제 것이요?”
카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놀란 루나의 얼굴은 꽤나 재미있었다. 눈도 입도 반지를 흉내 내듯이 동그래졌다. 그런 귀여운 얼굴로 실반지와 저를 번갈아 응시하는 게 작은 토끼 같았다.
카단은 상자에서 꺼낸 반지를 입술로 세워 물었다. 그대로 루나의 왼쪽 약지를 입 안으로 삼키자 물고 있던 반지가 루나의 손가락에 딱 맞게 들어갔다. 루스가 알려 준 ‘여자들이 좋아하는 청혼법’ 중 하나였다. 그 모든 행위가 이루어질 동안 카단의 또렷한 눈동자는 한 번의 깜박임도 없었다. 그는 루나의 작은 표정 변화까지도 눈에 담았다.
루나의 손가락 아래로 축축한 혀가 은밀하게 닿았다 떨어졌다. 읏, 루나는 야릇한 숨을 흘리다가 민망해했다. 그녀가 살짝 허벅지를 비비면서 아랫입술을 핥았다. 그 반응을 지켜보던 카단은 루나가 제 것을 빨아 주었던 것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을 뱀처럼 감아 쭉 빨아들이길 반복하다가 입술을 떼었다.
예상대로 루나의 얼굴은 새빨갰다. 잘 익은 얼굴을 가만히 감상하니 달콤한 과실의 맛이 그리웠다. 카단은 루나의 몸을 그대로 돌려 테이블을 잡게 만든 뒤 몸을 낮췄다.
“카단? 꺅!”
루나의 치맛자락이 그대로 허리춤까지 올라갔고 얇은 속옷이 허벅지 아래로 끌려 내려왔다. 하얀 속옷 위로 루나의 투명한 애액이 길게 늘어져 있다.
카단은 루나의 엉덩이를 양쪽으로 잡아 벌린 다음 음부에 코를 박았다. 두툼한 혀가 루나의 음순을 가르면서 음핵까지 쭉 핥아 올렸다.
“히익, 읏, 카단, 더, 더러운데, 하앙!”
루나가 손을 뒤로 빼 엉덩이 아래에 놓인 카단의 이마를 밀어 냈지만 카단은 꼼짝을 안 했다.
“해도 돼?”
이미 혀로 구멍을 쑤시고 있었으면서 한 박자 늦게 허락을 구했다. 곧 카단의 손가락이 성급하게 작은 구멍을 헤집고 들어왔다. 손가락이 질 안쪽을 푹푹 찌를 때마다 루나의 상체가 테이블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
“카단, 여기서 말고…….”
눈물로 젖은 눈동자가 카단이 새로 만든 침대로 향했다. 카단이 말한 대로 성인 두 명이 누울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침대. 지금도 여전히 루나만 쓰고 있었지만, 그가 튼튼한 침대를 만든 이유는 이런 행위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카단은 손짓을 멈추지 않았다. 쫀득한 질구가 그의 손가락을 조였다 풀면서 놔주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음핵을 입술에 물고 살살 굴려 대면 꿀처럼 달콤한 애액이 흘러나와 츄읍, 츕 빨아 대기 바빴다.
하아, 아, 으, 하앗! 루나는 동그란 테이블에 뺨을 대고 신음했다. 흐릿한 시야로 빵이 올라간 작은 접시와 딸기잼이 보였다. 식탁에서 음란한 행위를 한다는 것이 수치스러우면서도 묘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찌릿찌릿 흘러내렸다.
어찌 보면 틀린 행위는 아니었다. 조금 전에는 루나가 이곳에서 스튜를 먹어 치웠다면 지금은 루나의 음부가 카단의 손가락 세 개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고 있었으니까. 탐욕스러운 음부는 더 달라는 듯이 유연하게 안을 확장했다가 그의 손가락을 잘라 먹을 듯 조이며 씹기를 반복했다.
카단은 좆질을 하듯이 손가락을 박아 대면서 배꼽 안쪽 도톰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자극했다.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을 때마다 카단이 이를 세워 그녀의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깨물었다. 희고 탐스러운 둔부 위로 붉은 잇자국이 처벌의 흔적이 되어 찍혀 있었다.
“읏, 카단, 손, 말고, 다른 거요. 흐으, 이거 말고.”
이 열기를 잠재우려면 더 뜨겁고 커다란 것이 필요했다. 지난 일을 상상한 루나가 엉덩이를 살살 돌리면서 그에게 박아 달라고 애원했다. 근육으로 툭툭하게 짜인 몸이나 짐승 같은 성기도 자극적이었지만 땀에 젖은 그가 자신을 짐승처럼 갈망하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배 속이 달아올랐다.
카단은 바지를 살짝 내리고 이미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성기를 꺼냈다. 뭉툭한 좆 대가리가 루나의 질구를 단번에 찾아 꾸욱 눌렀다.
“흐으읏!”
“아파?”
“저번, 보다는 참을 만한…… 힉!”
퍽! 루나의 상태를 확인한 카단은 곧장 허리에 힘을 주고 안을 쑤셔 버렸다. 지난번보다는 깊은 삽입. 하지만 아직 뿌리 부분은 조금 남겨 둔 채다.
“큿, 루나.”
카단은 허리 짓을 계속하지 못했다. 카단의 성기를 감싸던 점막 주름이 경련하면서 카단의 성기를 쭉쭉 빨아 댔다.
루나는 고작 삽입만으로 절정을 맞이해 버렸다. 삼키지 못한 침이 단정치 못하게 입가로 질질 새어 나와 테이블에 고였다.
“하아, 흐, 좋아, 이거, 좋아요, 카단.”
“이건.”
카단이 루나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개며 실반지를 낀 약지를 가리켰다. 신음하던 루나의 얼굴에 말간 미소가 피어났다.
“좋아요. 저에게, 이건, 흐읏, 과한 선물…… 잠깐, 카단, 흣, 아앙.”
얇은 실반지를 응시하는 루나의 눈이 크게 호선을 그렸다가 다시 쾌감으로 일그러졌다. 대답을 들을 여유조차 없는지 카단이 잠시도 허리를 멈춰 주지 않아서였다.
카단은 루나의 안쪽을 탐욕스럽게 만끽하면서 얇은 실반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큰 마을에 가면 더 좋은 반지가 수두룩하다는 루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모은 돈이 꽤 되니 그녀에게 가장 좋은 반지를 사 줄 수 있겠지. 반짝이는 반지를 끼고 기뻐할 루나의 모습을 떠올리자 아래가 더 달아올랐다. 그의 허리 짓이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네게 과한 건 없어. 더 좋은 걸 해 주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 이 숲을, 이 마을을, 이 세상을 모두 선사해 주고 싶었다.
“지금도, 충분히, 흐앙, 앗, 좋아요, 앙, 좋아아!”
이 짓을 하면 솔직해지는 루나의 반응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안쪽도 카단은 마음에 들었다. 겨우 사정을 참아 낸 카단은 곧장 허리를 쳐 대기 시작했다. 살집 있는 엉덩이에 카단의 허벅지가 퍽, 퍽 닿을 때마다 음액에 잔뜩 젖은 성기가 찌걱이는 소리가 음란하게 울렸다.
“아앗, 흣, 하으, 하앙, 카단, 아직, 움직이면, 하으, 하!”
발꿈치를 들고 몸을 지탱하던 루나의 하반신이 파르르 떨리면서 안으로 모였다.
그때 누군가 오두막 문을 똑똑 두드렸다.
─카단 님, 저 데이지예요.
다시 찾아온 데이지의 목소리. 우뚝.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까 그 딸기잼 다시 주실 수 있나 해서요. 꿀을 더 넣어 다시 만들어 오게요.
긴장한 루나는 손을 뒤로 뻗어 카단의 치골을 밀어 냈다. 그 손짓대로 순순히 좆을 빼내던 카단은 귀두만 걸친 상태에서 그대로 허리를 세게 박아 버렸다.
“앙! 하으, 읍!”
무자비한 삽입에 그만 소리를 입 밖으로 내어 버린 루나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카단 님? 안에…… 계시죠?
당황한 데이지가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루나는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리를 참았다. 카단이 손을 뻗어 입을 막고 있던 루나의 손을 치워 버렸다.
“막지 마, 입.”
카단이 허리를 길게 뒤로 뺐다가 단번에 박았다. 동시에 그의 고환이 철썩 소리를 내면서 루나의 음부를 때렸다. 핏줄이 벌떡 선 성기가 루나의 자궁구를 지나 그 뒤까지 밀어젖히며 길을 냈다.
뿌리까지 들어간 깊은 삽입. 그의 것을 완전히 삼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루나는 그만 정신을 놓고 소리를 내 버리고 말았다.
“아, 아으, 하앗!”
─카단 님? 안에 누구와 계신가요?
“잠깐, 카단, 학, 읏, 핫, 하앙, 앙!”
루나가 본능적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를 참지 못하면서도 카단을 만류했다. 하지만 카단은 데이지에게 루나의 목소리를 들려주려는 듯 루나가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도록 허리를 길게 내뺐다가 거칠게 박는 행위를 반복했다.
“히익, 제발, 앗, 흣, 하앙, 부끄러워, 아앗!”
데이지가 그 소리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대체 어떤 계집이 먼저 그를 차지한 걸까. 화가 난 나머지 눈물까지 글썽거린 데이지는 김이 뿌옇게 서린 창문을 소매로 문질러 작은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성에가 낀 유리 너머로 등을 보이고 서 있는 카단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가 거칠게 허리 짓을 반복할 때마다 꿈틀거리는 근육이 옷 위로 생생하게 드러났다. 거대한 몸 아래 깔린 작은 여자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질렀다.
‘대체 어떤 여자가…… 잠깐, 저 문신은!’
데이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문에 눈을 가까이 댔다. 하얀 피부 위로 새겨진 불길한 고대 문자. 일전에 숲에 제물로 바쳤던 그 노예가 틀림없었다.
‘분명 그 여자가 맞아. 그날 화장해 주면서 똑똑히 봤어.’
죽었어야 할 제물이 왜 카단의 오두막에 있는 거지? 데이지는 그 사실에 놀라면서도 둘의 행위에 눈을 떼지 못했다. 카단에게 간택받은 제물이 부럽고 질투나 고개를 돌려 버리고 싶었으나 짐승처럼 움직이는 카단의 모습이 너무도 매혹적이라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카단이 강한 허리 짓으로 여자에게 좆을 박을 때마다 마치 자신의 음부가 박히는 것처럼 젖어 들었다.
‘카단 님, 저 여자 말고 나한테, 나한테도 박아 줘요.’
스무 명이 넘는 사내를 만나 봤으나 저런 거대하고 단단한 물건은 보지 못했다. 저 커다란 살덩이가 뿌리까지 처박히면 어떤 기분일까. 안쪽을 모조리 자극하면서 배 속을 뜨겁게 들쑤신다면. 상상만 해도 바짝 선 유두가 찌르르 울렸다.
‘문을 두드리며 부르는데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행위에 열중한 거야. 그러니 내가 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 거겠지.’
그래, 아무도 모를 터였다. 데이지는 다급하게 치마를 들어 올려 다리를 벌린 뒤 손가락으로 음핵을 비비기 시작했다.
데이지가 흘린 뜨거운 음액이 쌓인 눈 위로 뚝 떨어져 동그란 자국을 만들었지만 부끄러울 건 없었다. 오히려 누군가의 행위를 몰래 지켜보면서 수음을 하는 행위에 비도덕적인 쾌감이 더해졌다.
데이지의 몸이 한껏 달아올랐다. 부족해. 부족하다고. 비비는 것만으로는 찌릿찌릿한 배 속을 달랠 수가 없었다. 데이지는 카단의 저 굵고 기다란 손가락이 제 구멍을 헤집는다고 상상하면서 자신의 손가락 세 개를 단번에 쑤셔 넣었다.
“흐아.”
그만 신음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당황한 데이지는 음부를 쑤시던 손가락을 미처 빼지 못하고 치마를 잡고 있던 반대편 손으로 입을 헙 막았다.
그때 카단이 격렬한 허리 짓을 멈췄다. 색욕에 젖은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았던 딸기잼 병을 잡고 창문으로 집어 던졌다. 쨍그랑! 잼 병이 유리창을 깨고 눈밭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했어!’
놀란 데이지가 깨진 창문을 응시하며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달아올랐던 몸은 순식간에 식어 버렸다.
“다신 오지 마.”
카단이 깨진 창문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그러면서도 루나에게 뿌리까지 박고 있던 성기를 빼지 않았다.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긴장했는지 루나의 안쪽이 그의 물건을 더 빠듯하게 조여 왔다. 지나친 자극에 미간을 찌푸린 카단은 괜찮다는 뜻으로 루나의 등을 천천히 토닥이면서도 바깥의 데이지를 경계했다.
‘내, 내가 보고 있던 걸 알고 있었나? 그럼 아까부터 내가 있는 걸 알고도 날 무시했던 거야?’
충격에 휩싸인 데이지는 힘이 풀린 두 다리를 추슬러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밭에 나동그라진 딸기잼을 주우려는데 자꾸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깨지고 이가 나간 잼 병이 꼭 지금 자신의 처지 같았다.
“못 들었나. 꺼지라고.”
아까보다도 살벌한 경고가 데이지의 등 뒤로 떨어졌다. 어떻게 내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데이지는 상처받은 얼굴로 오두막을 힐끗거리다가 살기가 형형한 카단의 눈을 마주쳤다. 히익! 기겁한 데이지는 달달 떨리는 다리를 최대한 빨리 움직여 마을로 돌아갔다.
‘너무해. 나를 이렇게 매몰차게 쫓아내다니. 이게 다 그 여자 때문이야!’
혼자 기대했다가 혼자 실망해 버린 관계건만. 돌아가는 데이지의 얼굴은 루나에게 한 방이라도 먹은 듯이 악에 받쳐 있었다.
루나는 테이블에 엎드려서 한 번, 침대 위에서 두 번 카단의 정을 받았다. 카단은 지친 루나를 목욕통에 넣고 씻겨 주다가 한 번 더 발정했고 루나는 카단의 것을 입에 물고서 사정을 도왔다. 아래가 너무 쓰려서 더 이상의 삽입은 어려웠다.
‘이러다가 정말 임신해 버리겠어.’
아래가 쑤셔질 때는 들지 않았던 생각이 목구멍으로 비릿한 액체를 삼킬 때 문뜩 떠올랐다. 예민한 입천장을 불룩 튀어나온 귀두가 자극할 때마다 아래를 움찔움찔 조였던 루나는 그의 것이 목구멍 아래에 꽂혔을 때 허벅지를 비비다가 절정에 올라 버렸다. 그래서 삼켜 버린 정액이 자궁에 고일 거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씨물은 그를 닮아 강하고 견고해서 어떻게든 제 몸을 임신시켜 버릴 것 같았다.
루나는 지친 몸을 목욕통에 기대고서 얇은 실반지를 응시했다.
‘카단은 이걸 무슨 뜻으로 줬을까.’
선물은 기뻤지만 두려움이 꼬리표처럼 따라왔다. 지금까지 제게 곁을 내주던 사람은 모두 죽었다. 유모도, 노예상도, 자주 마주치진 않았던 가족까지 모두가.
‘나 때문에 카단이 죽기라도 한다면.’
섬뜩한 가정이 뇌리를 스쳤다. 루나는 손에 낀 반지를 빙빙 돌리다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커다란 손이 비누 거품을 듬뿍 담아 루나의 작은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한 것이다.
허브 향 거품이 루나의 피부 위로 미끄러졌다. 그는 루나의 문신이 있는 곳을 유독 야릇하게 지분거렸다. 기다란 손가락은 룬문자를 덧그리듯 새하얀 피부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힘없이 목욕통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루나가 결국 울먹이고 말았다.
“읏, 카단, 저 더 이상은…… 못 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다.”
반은 맞았지만 카단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욕정에 들끓던 눈동자가 대놓고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기에 거짓말은 금방 들통났으나 아니라고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카단은 한 번씩 루나의 문신을 더듬거렸다. 루나가 흠칫흠칫 몸을 떨자 카단이 변명처럼 이유를 덧붙였다.
“오늘, 확인했다. 이 글자.”
“네?”
“네 몸 글자, 본 적 있어. 숲에서.”
“!”
힘없이 처져 있던 루나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저택 지하실에 갇혀 수많은 책을 읽어 댔어도 평생을 찾지 못했던 단서였다. 그걸 카단이 찾아냈다고?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일어날 리가. 하지만 카단은 거짓말을 할 사내가 아니었다. 루나는 카단의 손가락을 끌어다 봉긋한 가슴 위 문신을 가리켰다.
“이, 이걸 본 적 있다고요?”
“응. 숲 안쪽 마수 구멍이 있는 곳, 그 옆에 있다.”
카단은 루나의 풍만한 가슴 위에 닿았던 손가락을 천천히 거뒀다. 지금 당장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고 분홍빛 유두를 빨고 싶은 충동이 솟구쳐 위험했다. 그는 한 손으로 다리 사이를 가렸다. 바지 위로 발기한 성기의 실루엣이 뚜렷하게 잡혀 있는 걸 들키기 싫었다. 다행히 루나는 룬문자가 새겨져 있다는 바위에만 관심을 쏟았다.
“위치를 기억하시나요? 당장 확인하고 싶어요!”
루나가 카단의 셔츠 자락을 잡고서 간절하게 올려다보았다.
이 문신 때문에 평생을 손가락질받으며 살았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알고 싶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몰아넣은 저주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 곁에 있던 사람들이 죽어 나간 이유가 진정 자신의 저주 때문인지를.
“안 돼. 너…….”
끙. 카단이 말을 맺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마수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매우 위험한 장소로 가야 했다. 그런 곳에 루나를 데려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연약한 루나는 작은 마수의 습격에도 크게 다쳐 버리리라.
“역시, 안 되나요?”
하지만 안 된다는 한마디에 루나의 어깨가 아래로 축 처지고 말았다. 카단은 실망으로 가득한 루나를 힐끗거리다가 못내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조심히 따라와.”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루나의 표정이 다시 꽃처럼 환해지자 카단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심각한 얼굴로 주의하라고 해야 하는데 안면 근육은 이미 느슨하게 풀려 있었다.
“대신 나한테서 멀어지면 안 된다. 마수, 위험해.”
“걱정 마세요, 카단에게 꼭 붙어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