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1권) (1/14)

 프롤로그

4교시는 지루하기로 유명한 한문 수업이었다. 따듯한 햇살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몇몇 아이들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필기하던 하준은 콧등으로 내려간 동그란 은테 안경을 올리고 잠시 창밖을 내다봤다. 

봄이다. 열린 창으로 기분 좋은 바람이 들어온다. 교문 입구에는 굉장히 오래된 벚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눈처럼 흩날렸다. 계속 쌓이는 꽃잎을 치우느라 경비 아저씨는 종일 비질을 해 댔다.

이곳에 온 게 벌써 2년이다. 그때도 봄이었고, 수술 직후라 몸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몸이 나아지면서 아버지는 서울에서 지내길 원했으나, 하준은 고집을 부려 이곳에 남는 것을 원했다. 1년 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쉬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밖을 보던 하준은 가방의 앞부분을 열어 손바닥만 한 상자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미소 지었다. 마침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한문 선생이 책을 덮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로 앞에 있던 영우 또한 뒤를 돌아봤다. 

“하준아, 가자.”

영우 역시 이곳에 와 사귄 친구 중 하나였다. 그와 함께 뒷문으로 빠져나오는데 복도 왼편에서 달려오던 남학생 하나가 그들을 밀치고 지나간다. 아, 씨발. 영우가 나자빠지며 욕을 했고 남학생이 뒤를 돌아봤다.

넘어져 있던 영우는 움찔했고, 하준도 긴장한 얼굴로 쳐다봤다. 얼굴에 불량기가 가득한 남학생은 얼마 전 정학을 당했다가 오늘부터 학교에 나오기 시작한 박성연이었다. 머리를 거의 삭발한 그가 험악하게 째려보더니 돌아서서 가 버린다. 영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섰다.

“저 새끼는 벌써 나왔네.”

“그러게….”

“정인이한테 조심하라고 말해 줘야겠다.”

정작 류정인은 어디냐는 물음에 1시간이 넘도록 대답이 없다. 아침에 분명 등교한 걸 봤는데. 하준은 걱정이 되어 재차 메시지를 보냈다. 

급식실에 도착하니 아이들은 입구까지 줄을 길게 늘어섰다. 하준과 영우는 기다렸다가 식판에 밥을 받은 뒤 창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에 앉은 하준은 눈으로 급식실 안을 훑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영우와 이야기를 하면서도 눈으로는 자꾸만 누군가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다 엉뚱하게도 아까 복도에서 부딪쳤던 박성연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위험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피했으나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저벅저벅 박성연이 식판을 들고 다가왔고, 그 뒤로 그와 어울리는 무리가 따랐다.

“너 김하준이지?”

하준은 고개를 들어 박성연을 올려다봤다. 뱀처럼 찢어진 그의 눈 위로 흉터가 선명하다. 그게 누구의 짓인지 잘 알고 있다. 박성연은 혀로 입 안을 긁더니 비릿하게 웃었다.

“너희 집이 그렇게 부자야?”

웅성거리던 급식실 안이 조용해지고 아이들의 시선이 모인다. 하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수저와 식판을 챙겨 일어섰다. 그러자 박성연이 어깨를 잡아서 누른다. 

“앉아, 씹새끼야. 형이 말하는데 벌떡벌떡 일어나면 안 되지.”

살기 가득한 목소리에 심장이 오그라든다. 아이들은 흥미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면서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질 못했다. 박성연은 한번 찍히면 상대가 두 손 두 발 다 들 때까지 괴롭히는 거로 유명했다. 그래서 전학 간 아이도 여러 명이었다. 게다가 녀석의 아버지는 지역에서 꽤 알아주는 유지였다.

“경찰서에서 류정인 빼 준 거 너라며.”

하준이 대꾸하지 않자 박성연이 몸을 낮추고 하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담배 냄새가 지독하게 풍겨 온다. 수저를 쥔 하준의 손에 긴장으로 힘이 들어갔다. 쫄지 마. 싸움은 기선 제압이야. 상대가 강할수록 넌 더 세게 나가야 해. 정인이 한 말을 떠올렸으나, 행동으로 옮기는 건 무리다.

눈을 아래로 내리깔자 박성연이 피식 웃으며 하준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류정인한테 가서 전해. 오늘 끝날 때까지 교실로 오지 않으면 내가 찾아가서 씹창내버린다고.”

이를 가는 소리가 소름 끼쳤다. 팔이 떨어져 나가고 박성연이 자리를 뜨려는 순간 하준이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정인이… 괴롭히지 마.”

긴장한 탓에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맞은편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영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돌아서는 박성연의 눈빛이 조금 전과 다르게 서슬 퍼렇다. 박성연은 가까이 다가와 하준을 빤히 내려다봤다.

“뭐라고 했냐.”

하준이 입을 꾹 다물고 노려보자 박성연이 하준의 뺨을 툭 건드렸다. 말해 봐. 방금 뭐라고 했냐고. 급식실 안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정인이 괴롭히지 말,”

툭, 이번엔 뺨을 친다.

“다시 말해 봐.”

하준은 이를 꽉 깨물었다.

“한 번 더 괴롭히면 내가,”

짝! 소리와 함께 쓰고 있던 안경이 저 멀리 날아갔다. 

“괴롭히면 어쩔 건데.”

하준이 벌게진 얼굴로 박성연을 노려봤다. 또 건들면 내가 너 죽여 버릴 거야. 그 말이 목구멍까지 밀고 올라왔으나 막상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어쩔 건데. 응?”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얼굴을 후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몸이 옆으로 넘어갔고 지켜보던 영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순간 급식실 입구에서 몽둥이를 든 체육선생이 나타났다. 

“박성연, 이 새끼! 너 뭐 하는 거야!”

모여 있던 아이들이 잽싸게 흩어졌고, 박성연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하준에게 눈으로 경고를 보냈다. 또 보자, 김하준. 그러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급식실을 빠져나갔다.

하준은 정인의 가방과 운동화를 챙겨 서둘러 양호실로 향했다. 급식실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는 사이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양호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 아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커튼이 아른아른 흔들리며 은은한 향이 코끝으로 스며든다. 봄 냄새와 비슷했으나 그것은 류정인의 향이었다. 오메가의 냄새. 아이들의 몸에서 나는 냄새는 가지각색이었으나 정인에게 나는 향기는 유독 좋았다. 

하준은 조용히 걸어가 정인의 어깨를 잡고 살짝 흔들었다. 정인아. 류정인. 

“으음.”

돌아눕던 정인이 얼굴을 찌푸리며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머리카락만큼이나 까맣고 커다란 눈동자가 하준을 응시했다. 기다란 속눈썹은 나비처럼 나풀댔고, 하얀 뺨은 복숭아 같았으며 살짝 올라간 입꼬리는 가만히 있어도 묘하게 야했다. 

정인이 양팔을 뻗었다. 하준은 안아 주는 대신 침대에 앉아 정인을 일으켰다.

“얼른 가자. 너 여기 있으면 안 돼.”

“왜.”

잠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묻더니 곧바로 하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 온다. 하준은 그를 똑바로 앉힌 뒤 침대 아래 하얀색 운동화를 챙겨 앞에 놓아 줬다.

“박성연이 돌아다니면서 찾고 있어.”

정인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웃었다. 데리고 오지 그랬어. 존나 패 주면 되는데.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리게 한 뒤 하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정인의 운동화를 신겼다. 

그런 하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던 정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늘 쓰고 다니던 안경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왼쪽 뺨이 빨갛다. 선명한 손자국. 알아주는 모범생인 김하준이 사고를 쳐서 선생한테 맞았을 리는 없을 테고.

앞뒤 정황을 따져 보니 어떤 새끼가 그랬는지 단번에 짐작이 된다. 하준의 턱을 쥐고 고개를 들게 했다. 안경이 없으니 더 잘생기긴 했는데, 뺨을 보니 속이 훅 끓는다.

“박성연이 그랬어?”

하준은 대답하지 않고 정인의 손을 이끌고 양호실 밖으로 나왔다. 마침 저 멀리 박성연의 패거리가 보인다. 열받은 정인이 가만 안 두겠다며 그리로 뛰어가는 걸 하준은 겨우 어르고 달래 학교 밖으로 끌고 나왔다.

정인은 앞서 걷는 하준의 뒤통수와 붙잡힌 자신의 손을 보고 웃음이 났다. 샌님 같은 게 학교에선 손도 못 잡게 하면서 어지간히 급했나 보다. 혹여 놓자고 할까 봐 일부러 더 꽉 잡았다. 

학교 근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 하준은 정인을 앉혀 놓고 음료수를 사러 갔다. 정인이 좋아하는 포도 맛 음료수를 사서 가지고 오더니 이마를 짚는다. 며칠째 영문 모를 미열이 나고 있었기에 걱정이 됐다.

“아직도 열이 나네.”

정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전 병원에 가 검사까지 했는데 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했다. 괜히 애꿎은 피만 뽑았다며 투덜댔다. 한편으로는 히트 사이클이 오기 전 증세와 흡사하다고, 혹시 모르니 약을 준비해 두라는 간호사의 조언을 듣고 내심 기대 중이었다.

히트 사이클이 온다면 그때는 김하준이 꼭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첫 히트 사이클이라니. 생각만 해도 머리에서 불꽃이 튄다. 혼자 상상을 하며 실실 웃는데 하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괜찮으냐고 묻는다.

정인은 제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음험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하준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허벅지가 가까이 붙자 하준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슬그머니 옆으로 떨어진다. 정인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소심한 새끼.

“바로 집에 가. 아프다고 하고 며칠만 쉬어.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

“내가 왜? 박성연 그 새끼가 뭐가 무섭다고. 두고 봐. 내일 존나 패 버릴 테니까.”

음료수를 입에 댄 채 이야기하다 셔츠로 흘렀다. 에이 씨, 손등으로 대충 훔치니 하준이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닦아 준다. 상냥하기도 하지. 정인이 주위를 살피고 나서 입술을 들이밀었다. 사람들 없는데 우리 뽀뽀할래?

“아니!”

하준이 당황해서 펄쩍 뛰자 정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거 고자 새끼 아니야. 우리가 사귄 게 벌써 1년인데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지. 맨날 내가 먼저 들이대고. 서운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하준의 귀와 뺨이 빨개진다.

“너 날 좋아하는 거 맞아?”

하준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정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씨발! 근데 왜 아무 짓도 안 해?”

하준이 침을 꿀꺽 삼키고 애써 웃었다. 손만 잡아도 심장이 쿵쾅거렸는데,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냔 말인가. 마음을 몰라주니 살짝 서럽다.

정인이 하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눈코입 어디 한군데 못난 구석이 없이 잘생겼다. 안경을 벗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독 더 얼굴에서 빛이 난다. 짙은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주자 하준의 귀가 다시 빨개진다. 맞아서 부은 뺨을 만지고 나서 속상한 얼굴로 손을 뗐다. 그래 윽박지르지 말고 잘 달래 줘야지.

“너 나하고 계곡에서 한 약속 잊지 않았지?”

하준이 고민할 것도 없이 끄덕였다. 작년 여름 계곡에 놀러 갔다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고, 둘은 성인이 되면 바로 결혼하자고 약속했다. 남들이 알면 미쳤냐고 하겠지만, 그렇게라도 정인을 잡아 두고 싶었다. 공부야 결혼하고 나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거고. 정인을 닮은 예쁜 아이도 생기면 좋겠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멋쩍게 웃는데 정인이 무심코 한마디를 뱉는다.

“두고 봐. 결혼하면 존나, 매일, 흐흐흐.”

말을 끝맺지 않고 음흉하게 웃는 정인을 보며 하준은 귀가 빨개져서 하지 말라고 말렸다. 정인은 그런 하준의 반응이 너무 귀여웠다. 역시 김하준은 순진해서 놀리는 재미가 있다.

둘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동안 저 멀리 버스가 들어온다. 정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기습적으로 하준의 뺨에 쪽 키스를 날리고 서둘러 버스에 올라탔다. 자리를 잡고 창밖을 내다보니 하준이 쑥스러워하며 손을 흔든다. 

버스가 출발하고 정인이 뒤를 돌아봤다. 하준은 여전히 그 자세다. 장담하건대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저러고 있을 것이다. 정인은 애끓는 소리를 내며 창에 머리를 쿵 찧었다. 등신. 저렇게 순진해서 나중에 애는 어떻게 만들어.

한숨을 내쉬는데 주머니 속에 넣어 둔 휴대전화가 울린다. 모르는 번호라 외면하려 했으나 전화는 쉽게 끊어질 기세가 아니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건 상대는 다름 아닌 이틀 전 갔던 병원의 간호사였다. 그녀는 사무적인 말투로 검사의 결과를 설명했다. 피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 뒤 그녀는 조금 뜸을 들였다.

[혹시 전에 페로몬 검사 따로 하신 적 있으세요?]

정인은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 보통 태어나면 병원에서 검사하는데 그 뒤로 따로 한 적은 없었다. 혹시 나 알판가…. 가끔 자라며 형질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긴장해서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휴,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그게 아니라….]

조곤조곤 설명하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정인의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죄송한데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뭐라고요?”

버스가 멈추고 몇 명 남아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멈춰 선 정류장에서 한 부부가 아이를 안고 서 있다. 저런 모습을 상상한 적 있다. 김하준과 결혼을 하고, 둘을 닮은 아이를 낳는 상상. 외모는 몰라도 성질머리는 꼭 김하준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검사 결과 류정인 학생 오메가가 아니라 베타로 판정됐습니다. 재검사 원하시면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병원으로 방문 부탁드립니다.]

“…….”

[들으셨나요?]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빠져 무릎으로 떨어졌다. 미처 끊지 못한 전화기에서 간호사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정인은 한 대 맞은 표정으로 창밖만 쳐다봤다. 조금 전 봤던 아이와 부모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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