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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103/121)

102화

엘리아나는 콘테르 왕실이 직접 초대한 손님이자 콘티노국의 대표단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대표단에는 비비안 공주와 제데이아 테네브, 질리언 허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 초대 명단은 지난 전쟁과 관련된 사람들을 주축으로 꾸려졌고, 이외에는 무역 관련 인사들이 자리를 채웠다. 대표단의 단장은 제1 왕자인 보우턴이었다.

시무스 부부는 연회 자리에서부터 합류한다고 했다.

엘리아나는 A라인으로 폭이 좁게 퍼지는 드레스를 입었다. 매우 얌전해 보이는 스타일의 옷이었는데, 소매 끝단에 주름 장식으로 약간의 포인트를 주었다. 전체적으로 베이지색이 감도는 하늘하늘한 드레스였다. 대표단이 모두 베이지색으로 톤을 맞추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포인트를 주는 건 자유였다. 엘리아나의 경우는 허리 전체를 붉은 장미꽃 색의 원단으로 단단히 조였다. 그에 안에 입은 코르셋으로 이미 잘록해진 허리가 더 돋보였다.

엘리아나는 머리를 반으로 묶어서 내렸다. 풍성한 머리칼은 어깨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떨어졌다. 이렇게까지만 하면 청순한 모습이겠지만, 엘리아나는 그런 자기 모습을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았다.

그녀는 자신의 붉은 머리칼에 잘 어울리는, 루비로 장식된 레이스를 머리 위에 덮었다. 그 탓에 눈까지는 보이지 않았고, 붉게 칠한 입술만이 눈에 들어왔다.

일종의 베일이었다.

분명 평민들이 입을 법한 평범한 디자인의 드레스인데도 붉은색의 허리띠와 베일로 그녀의 포인트가 확 살아났다.

화려함과 순수함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다. 엘리아나는 거기에 딱 하나의 주얼리를 걸쳤다. 그것은 모든 것을 완벽히 마무리 짓는, 그리고 압도하는 주얼리였다.

마차에 오른 모두가 “엘리아나가 이겼군.”이라고 말하면서 즐거워했다. 엘리아나는 그런 말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승리의 여신은 지는 법을 모르죠.”

엘리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가 유난히 대조적으로 보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소리 내 웃었다.

엘리아나는 승리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알고 있었다. 멜번과 투리스가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자기들끼리 부르던 말이었는데, 어느새 소문이 나더니 이제는 귀족 사회에도 암암리에 퍼져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대신 ‘그 승리의 여신’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승리의 여신을 실은 마차가 콘티노의 국경 지역을 넘어갔다.

이제부터는 진짜 콘테르였다. 엘리아나는 난생처음 와 보는 콘테르의 풍경을 구경하였다. 경계를 넘기가 무섭게 바람은 매서워졌고, 기온은 뚝 떨어지고 있었다.

밖에서 말을 타고 있던 조셰프가 잠시 마차 옆으로 붙더니, 창 안으로 무언가를 넣었다. 엘리아나의 여우 털 숄이었다.

베니가 엘리아나를 위해 따로 챙겨서 조셰프에게 맡긴 것이었는데,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자 이를 떠올린 조셰프가 건넨 것이었다.

“콘테르 수도로 향하면 훨씬 추워질 것입니다.”

“고마워요, 조셰프.”

조셰프의 시선이 엘리아나의 목걸이로 향했다. 자연스러운 시선 이동이었다.

그곳에는 다름 아닌 ‘그것’이 있었다.

승리의 여신을 가장 빛내 주는 것.

콘테르의 왕위 계승 후보자에게만 주는 펜던트가 말이다.

***

콘테르의 성전은 그 어느 때보다 북적거렸다. 오른쪽에는 콘테르의 고위 귀족 가문 사람들이 있었고 왼쪽에는 외국에서 온 대표단이 있었다.

식장의 전체 구조는 가운데 로드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자리한 이들이 왕위 계승자를 축하하고 증인이 되어 주는 형태였다.

로드의 끝에는 콘테르 국왕과 왕비가 있었다. 로드는 왕위 후계자인 율리시스가 성기사들의 축복과 충성을 받으면서 등장할 예정이었다.

책봉식에는 초대장이 있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었다. 각 국가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초대받은 나라는 단연 콘티노였다. 주변국 귀족들 모두가 참석을 원했지만, 외교적으로 관계를 공고히 해야 하는 각국 후계자 부부나 후계자와 참모 등 한 명에서 두 명만이 초대장을 받았다.

“콘티노 왕국은 딱 맞춰서 도착할 모양이네요.”

“책봉식에서 사적인 접촉은 최소화하라는 왕명이 있었다는군요.”

“역시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네요.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오른쪽에 있잖습니까. 헐뜯기 좋아하는 콘테르의 귀족 가문들이.”

“하긴 그렇네요.”

외국 대표단들의 첫 번째 목표는 콘테르 왕실과의 친분, 그다음은 콘티노 왕실과 친분이었다. 이 두 나라는 서로 간의 파격적인 외교 행보로 거의 연합국이나 제국에 맞먹는 힘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었다.

콘테르의 귀족 가문에서도 콘티노 대표단을 기다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엘리아나 로즈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콘티노의 후계자보다 더 궁금한 여자였다. 율리시스가 콘티노 연회에서 매번 첫 춤을 청했다는 여자. 그의 강력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던 최고의 전략가였다.

아름다운 히아신스에 대한 칭찬은 잠시뿐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청초한 아름다움으로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번에 이끌었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녀는 아직은 헨리우스의 파혼녀에 불과할 뿐이었다. 히아신스는 정문을 노려보았다. 벌써 진 기분이 들었지만, 도착하면 분명 자신과 엘리아나를 비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달라지겠지.’

히아신스는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의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다 붉게 물들일 정도로 거세게 타오르는 야망이 있었으니 말이다.

“콘티노 왕국 대표단이 도착하셨습니다.”

마침, 문지기가 도착을 알렸다. 보우턴 왕자가 제일 먼저 들어왔다. 체구가 크고 각진 보우턴 왕자는 남부 지방 특유의 호방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활짝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로 아름다운 비비안 공주가 들어섰다. 그 뒤로 안경을 쓴 미남, 키가 훤칠한 미남, 미남, 미녀, 미남…….

“콘티노 왕국에서는 외모로 대표단을 꾸린 건가요?”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누군가가 수군거리는 소리를 낼 때, 그녀가 등장했다. 모든 사람이 가장 궁금해할 콘티노인. 엘리아나 로즈였다.

붉은 루비 베일로 눈을 가린 그녀는 오로지 입술만 보였다. 얼굴을 전부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자신에게 향할 관심을 알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드러난 코끝과 입술만으로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장미 그 자체였다. 전체적으로는 분명 얌전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나, 육감적인 몸매 때문에 드레스는 도드라져 보였다. 특히나 가는 허리와 풍만한 가슴은 숨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 있는 물건을 본 순간 모두가 말을 잃었다. 히아신스도 마찬가지였다. 차마 물을 수조차 없는 물건이었다.

율리시스 밀이 왕위 계승자 후보임을 나타내는 증거인 펜던트가 그녀의 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저 물건이 왜 대체 저기에?”

“우리가 잘못 봤거나… 따라 만든 물건이 아닐까요?”

“그런 불경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잖아요!”

사람들은 소리조차 줄이지 않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답을 해 주는 콘티노 대표단은 아무도 없었다. 엘리아나 역시 미소 짓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저 우아하게 걸어가 자신들의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누가 말을 붙일 겨를도 없었다.

곧 식이 시작될 시각이었기 때문이었다.

***

성기사들이 칼을 높이 들고 기도했다. 신의 기운을 받은 각 가문의 보검들이 로드 위에 열을 맞춰 올려졌다.

검을 모두 내려놓은 성기사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충성을 맹세했다. 율리시스 밀이 로드의 끝에 나타나자, 기사들은 바닥에 있던 검들을 거둬 내어 그의 길을 터 주었다.

콘테르의 가문들, 그리고 모든 성기사들이 신과 함께 그의 곁을 보좌하겠다는 맹세 의식이었다.

콘테르의 상징인 남색 정복을 입은 율리시스는 진중한 표정으로 로드를 걸었다. 그러다가 로드로 다가오는 단 한 명의 여인을 보았다.

서신에서 약속한 대로였다. 엘리아나 로즈는 자신에게 책봉식이 있기 바로 직전의 순간, 장미꽃 한 송이와 함께 펜던트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장미꽃은 엘리아나 로즈 그 자체였다. 율리시스는 로드 중간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향해서 잠시 무릎을 낮췄다. 베일을 쓴 그녀는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를 손쉽게 벗겨 내서는 율리시스의 목에 그것을 채워 주었다.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레이디.”

율리시스는 환하게 미소 짓고선 다시 로드를 걸어갔다. 콘테르의 국왕과 왕비에게도 이미 허락받은 바였지만, 이색적인 광경이긴 했다.

엘리아나 로즈는 대체 어떤 여자란 말인가?

어떤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일까? 차기 왕비는 바로 그녀가 아닐까?

물음표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마구 솟아났다. 엘리아나가 원하던 대로였다.

“히아신스.”

아테르 가문의 가주, 타란은 딸의 팔을 잡았다.

“표정.”

타란은 매우 단호했다. 히아신스는 그 말과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이다. 어두웠던 표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가면을 쓴 듯 순식간에 표정이 변하는 모습은 기괴하고 무서웠으나, 제대로 타란의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 그저 마음 넓고, 우아한 히아신스의 미소만을 기억할 뿐이었다.

히아신스가 손톱자국이 나도록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율리시스가 당당하게 왕의 앞에 섰을 때, 엘리아나 로즈와 히아신스의 시선이 마주쳤다.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알 수 있었다. 서로의 고개가 서로를 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히아신스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인사를 했으나, 엘리아나는 받아 주지 않았다. 그녀의 시선은 느리게 움직여서 다시 율리시스에게로 향할 뿐이었다.

“율리시스 밀 왕자를 콘테르국의 정식 계승자로 책봉한다.”

왕이 선언문을 낭독하고선 율리시스의 펜던트를 가져왔다. 그러고선 공식적인 왕위 계승자의 상징인 배지를 달아 주었다.

“이건 누구에게 주면 안 되는 것이다. 율리시스.”

“네, 명심할게요.”

율리시스와 왕의 얼굴에 같은 미소가 퍼졌을 때,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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