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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62/121)

61화

존의 서재를 막으라는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저택은 조금 더 분주해졌다. 병사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한차례 들리고 나서 누군가가 제데이아에게 다급히 보고했다.

“존 조르디언 단장의 서재에 침입자가 있다고 합니다! 도주 중입니다!”

“무조건 잡아라. 외교적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어서.”

엘리아나는 자신의 잔과 제데이아의 잔을 들어 냄새를 맡았다. 옅은 약초 냄새가 나지 않았다. 존 조르디언만을 죽이려고 한 것이었다.

“우리 찻잔엔 독을 타지 않았어요.”

“…누구의 짓일 것 같습니까?”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요. 하지만 타이밍이 기가 막히지 않아요? 이 일은 아마 잭슨 남작의 일과 무관하지 않을 거예요.”

“콘테르국의 후계자 싸움과 연관이 있다는 건가요?”

“그리고 조르디언 상단의 후계자 경쟁과도 연관이 있겠죠.”

제데이아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한 번 끄덕하고선 몸을 돌렸다.

“서재로 가 봅시다. 무엇이 없어졌는지는 파악해 봐야 하니까.”

“날 출입하게 해 주는 건가요?”

“어차피 당신은 중요 참고인이 될 겁니다. 그리고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도 하고. 내가 옆에 있으니 다른 짓은 할 수 없을 테고.”

“내가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곱게 말해 주면 안 되나요? 입은 삐뚤어져서는.”

“그, 말 좀 예쁘게 할 수 없습니까?”

“그거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죠? 제데이아 본인이나 잘하세요.”

“정말 예의라곤……!”

“이렇게 허무한 말다툼할 시간이 없어요. 얼른 존의 서재에 가 봐야 한다고요.”

엘리아나는 자신을 가르치려고 드는 제데이아에게 따끔하게 일침하곤 시종에게 길 안내를 부탁했다. 시종은 엘리아나에게 묻은 피에 기겁하는 것 같았다. 조금 전에 손수건으로 닦아 내긴 했지만, 옷에 묻은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피 냄새에 헛구역질이 날 것 같았지만, 엘리아나는 꾹 참았다. 그것보다는 존의 서재에서 무엇이 없어졌는지를 찾는 게 중요했다.

“제데이아는 오늘 존 단장과 무슨 얘기를 나눴죠?”

“날 신문하는 겁니까?”

“왜 나한테 날을 세우는 거예요? 난 수사관도 뭣도 아니에요. 단순 궁금증이에요.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요.”

엘리아나는 일부러 새침하게 말을 끊어 버렸다. 그러자 오히려 무안해진 쪽은 제데이아였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관세 조정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해결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생겼군요.”

“조르디언 상단에서 관세를 낮춰 달라고 했군요.”

“그렇습니다.”

“그동안은 동결해 왔었나요?”

“일부 항목에 있어서만 협의를 해 왔습니다.”

“이를테면 군수 물자 같은 것이요?”

“…….”

제데이아는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 부분을 어떻게 알고 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엘리아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잭슨 시무스 남작과 관련된 일도 의약품과 일부 군수 물자에 해당하는 건이었어요. 아마도 이게 양국의 문제가 될 것 같으니까 기회를 봐서 관세 혜택을 받으려고 했나 봐요. 양국 모두에게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명하지 못한 선택입니다.”

“글쎄요. 상인에게는 돈이 최우선이니까요.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죠. 조금만 인하하더라도 물량에 따라서 크게 이득을 보잖아요. 게다가 도미누스 왕자와 헨리우스 왕자의 사이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엘리아나는 그 점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평민들과 가난한 귀족들에게 전쟁은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참전해서 죽고, 비싸진 물가에 굶어 죽었다. 병들고 가난해진 영혼들만이 남는 게 전쟁이었다.

하지만 가진 자들에게는 달랐다. 존 조르디언이 곧 일어날 전쟁을 예상하여 군수 물자에 대한 관세를 낮춰서 이득을 보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존 조르디언의 서재는 온갖 비싼 물건들로 가득했다. 서재라는 말이 민망할 만큼 책은 없었고, 각국에서 가져온 값비싼 기념품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마치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가운데 있는 책상에만 그나마 서류들이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급하게 헤집은 것처럼 어질러져 있었다.

엘리아나와 제데이아는 곧장 함께 책상으로 다가갔다. 엘리아나는 서랍 안부터 꼼꼼히 살펴보았다.

첫 번째 서랍 안에는 지폐 다발이 통째로 들어있었다. 그러나 도둑의 목적은 아니었던 듯 손댄 흔적이 없었다.

두 번째 서랍에는 각종 도장과 실링 왁스, 거래 영수증 같은 것들이 정리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섞여 있었다. 엉겨 붙은 것들도 있었고, 찢어지거나 구겨진 것들도 있었다.

엘리아나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는데, 책상 위를 뒤지던 제데이아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엘리아나 당신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콘테르국과도 관세를 협의하고 있던 걸 보니.”

엘리아나는 굽히고 있던 몸을 펴고 제데이아가 내민 서류를 받아 들었다.

콘테르 국왕과 나눈 서신이었다. 콘테르국과는 관세 인하 폭까지 이미 논의를 마친 상태인 듯 보였다. 관세 관련 협약을 다시 맺을 날짜와 장소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쪽에서도 큰일이겠네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으니까.”

“후계자들이 알아서 잘 이어받겠죠. 이어받고 난 이후엔 첫 거래니까 더 욕심부리지 못하고 기존 안대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제데이아 생각에는 둘 중 누가 후계자가 될 것 같나요?”

“섣불리 판단하기엔 어려운 문제이지만, 아마도 장남인 트로이 조르디언이 받게 될 것 같습니다. 굵직한 사업은 모두 그가 맡고 있었기도 하고요.”

“디컨 조르디언은 그에 대한 이의가 없었나요?”

“조르디언 상단 내에서 존 단장의 결정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쉽사리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을 겁니다.”

엘리아나는 서류를 다시 넘겨주고선 세 번째 서랍을 열었다.

세 번째 서랍은 먼저 살폈던 두 개의 서랍보다 더 어지러웠다. 들어 있는 물건들도 위협적인 것들이었다. 위스키를 담아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힙 플라스크와 권총 한 자루, 그리고 총알들이 있었다.

엘리아나는 힙 플라스크의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러고선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찻잔에서 났던 독약의 냄새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존 단장을 죽인 독약이 여기 있어요!”

“뭐라고요? 확실합니까?”

“냄새가 똑같아요. 맡아 봐요.”

“청산가리 같은 독약인가……. 범인이 여기에 버리고 간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존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구해 놓은 것일 수도 있고요.”

제데이아는 자신의 실크 손수건을 꺼내서 뚜껑을 닫았다. 그러고선 손수건을 엘리아나에게 건넸다.

“손을 닦아요. 혹시 모르니.”

“내게도 손수건이 있어요.”

“피가 묻었잖습니까.”

“그럼 사양은 하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엘리아나는 자기 손에 묻었을지도 모르는 독약들을 닦아 내고선 권총을 들었다.

“조르디언 가문을 잘 조사해 보는 게 좋겠어요. 이런 총기가 수십 자루는 나올 것 같은데요.”

“조심하십시오.”

“쏠 줄도 모르는걸요.”

엘리아나가 총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창문이 부서지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엘리아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제데이아는 그녀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바로 상대를 겨눴다.

그러나 창문으로 들어온 누군가는 이미 의식을 잃은 듯했다. 창문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투리스, 제발 사람을 냅다 던지지 좀 마.”

“저 녀석이 쥐새끼처럼 뛰어다니잖아. 뛰는 건 질색이라고.”

“죽었으면 어떡하려고. 넌 정말.”

뚫린 창으로 투리스와 멜번이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제데이아가 곧장 둘에게 총을 겨누자, 엘리아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의 손을 잡아 내렸다.

“제 경호를 맡으신 기사분들이에요.”

“기사가 어째서 저런 방식으로 사람을…….”

“방식이 뭐가 어떻다는 겁니까. 도망치는 사람 잡으라고 한 건 당신 아니오? 잡았더니 말만 많네.”

투리스가 투덜거리자, 엘리아나는 조심스레 창문 앞에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 사람, 기절한 거 맞겠죠?”

“조심해요, 엘리아나. 의식이 있을지도 몰라요.”

제데이아가 총을 남자에게 겨누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투리스의 손에 맞고서 정신을 차린 놈을 본 적이 없으니, 안심하셔도 될 겁니다.”

멜번이 그렇게 말하자, 엘리아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복면을 쓴 상태였는데, 손에는 뭔가를 쥐고 있었다.

엘리아나는 그가 손에 쥔 문서부터 빼 들었다.

「유언장

나 존 조르디언이 사망할 시, 나의 재산에 관한 분배는 다음과 같다.

1. 조르디언 저택과 데미테우스 산맥 근처의 임야 일체는 아내 쥬드 조르디언이 소유한다. 동시에 현금 자산 중 1/3을 갖는다.

2. 조르디언 상단의 전체 책임자를 디컨 조르디언으로 임명한다. 디컨 조르디언은 상단의 모든 선박과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현금 자산 중 2/3을 갖는다.

3. 트로이 조르디언의 상단 내 모든 직책을 박탈한다. 대신 현금 1,000,000디온을 유산으로 상속한다. (이 돈은 디컨 조르디언의 상속 금액에서 제한다.)

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데에는 어떠한 협박이나 회유도 없었으며,

나 존 조르디언의 일생을 걸고, 나의 신념대로 작성하였음을 신께 맹세한다.

존 조르디언 (서명)」

엘리아나는 유언장을 다 읽고선 제데이아를 바라보았다.

“상속자가 트로이가 아니라 디컨이었어요.”

“…그렇다면 이 사람은.”

제데이아가 쓰러진 사내의 복면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고선 거칠게 벗겨냈다.

검은 복면이 사라진 자리에는 갈색 머리에 피부가 검게 그을린 사내가 있었다. 코가 뭉툭하고, 턱이 각져 있어서 뱃사람처럼 괄괄해 보이는 생김새였다.

제데이아는 한참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낮게 읊조렸다.

“트로이.”

“…….”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습니까?”

엘리아나는 제데이아가 내뱉은 말에 눈을 돌려 의식을 잃은 남자를 다시 보았다. 존 조르디언의 장남, 트로이 조르디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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