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3/121)

52화

“잭슨!”

“올리버!”

총을 맞은 사람은 두 사람이었다. 잭슨은 허벅지에, 율리시스는 어깨에 총을 맞은 듯했다. 조셰프는 빠르게 다가가서 그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율리시스는 곧장 시무스 부인에게 잭슨을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상이나 혹시 모르니 지금 당장 부인들과 이곳을 떠나게.”

“…올리버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범인이 아직 이 저택 안에 있어요. 잡아야 해요.”

“올리버도 지금 다쳤다고요!”

“괜찮아요. 내 친구가 먼저 따라붙었어요. 빨리 시무스 부인과 함께 떠나요. 그들은 한 명이 아니에요.”

올리버는 피 묻은 손으로 엘리아나의 뺨을 만지더니 말을 이었다.

“역시 당신의 아름다움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군요.”

엘리아나의 수수한 화장과 복장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엘리아나는 피를 철철 흘리면서 가려고 하는 율리시스의 어깨를 꽉 잡았다.

“윽!”

“바보 아니에요?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엘리아나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머릿수건을 벗어서 피가 나오고 있는 부위에 둘둘 감았다. 자세히 보니 총을 맞은 곳은 어깨가 아니라 팔뚝 쪽에 가까웠다.

지혈이라기엔 애매했지만, 그래도 그대로 가는 것보단 나을 듯했다. 엘리아나는 수건을 다 묶자마자 툭, 그를 쳤다.

“어느 방향으로 갈 거예요?”

“뒤쪽 정원으로 나갔으니, 나도 그쪽으로.”

“꼭 범인을 잡아요. 더 이상 다치지 말고요. 곧 지원군을 보낼게요.”

엘리아나는 두 손을 적신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분명 두려울 것임에도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는 엘리아나를 보면서 율리시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선 빠르게 걸음을 뗐다.

“잭슨! 잭슨! 눈을 떠 봐요? 괜찮아요?”

“으어… 아파, 여보. 아파. 아파…….”

“아파? 아프겠지! 아유, 왜 사고를 치고 다녀!”

시무스 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잭슨의 가슴팍을 쳤다. 엘리아나는 조셰프에게 턱짓하면서 말했다.

“조셰프, 부축해 줘. 부인, 우리도 도와요. 아직 그들이 저택 안에 있다는 걸 보니까 잭슨 남작님이 제일 위험해요.”

“네!”

“아야, 아야. 살살… 살살……. 데이지, 나 이대로 죽는 건 아니겠지? 내가 죽으면 말이야… 그, 아버지 초상화 뒤에 있는 비상금을 꼭 찾아서 써…….”

“조용히 해요! 창피해 죽겠어. 정말!”

이런 걸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걸 시무스 부인도 알 수 있는 정도의 부상이었다. 그러나 잭슨은 곧 죽을 것같이 애절하게 말했다. 그만큼 아픈 모양이었다.

네 사람이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열몇 명의 군인과 함께 질리언이 나타났다.

“질리언, 뒤쪽 정원으로 갔대요! 범인이 아직 탈출하지 못한 모양이에요. 부상자가 쫓아갔어요, 올리버 공작이요!”

“알았소. 의무병은 잭슨 남작을 안전히 모셔라. 나머지는 부인을 엄호하고 정예대는 나를 따라오도록!”

“네!”

우렁찬 대답 소리와 함께 흰 제복을 입은 한 무리의 군인들이 움직였다. 엘리아나는 잭슨을 의무병들에게 넘겨주고 나서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대리석에 스며 있는 핏방울을 봤을 때는 정말 잠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조셰프는 자신의 손수건으로 엘리아나의 손을 닦아 주었다.

“부인, 괜찮으십니까?”

“조, 조셰프. 이렇게 위험한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해. 조셰프가 없었다면 한 걸음도 더 내딛지 못했을 거야.”

“아닙니다. 부인은 해내셨을 겁니다.”

엘리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탕. 탕. 탕. 몇 방의 총소리가 더 들리자, 조셰프는 엘리아나를 부축하여 별장 밖으로 나섰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엘리아나는 빗물에 손을 마저 씻어 버리고선 뒤를 돌아보았다. 흰 제복에 피가 묻은 질리언이 달려오고 있었다.

“엘리아나! 어딜 다친 것이요? 왜 피가 묻어 있소?”

“올리버의 상처를 지혈하다가 묻은 거예요. 난 아무렇지도 않아요. 범인은요?”

“막다른 길에 몰리자 한 명은 자결했고, 두 명은 생포했소. 아직 건물 안에 남아 있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아 수색을 계속해야 하오.”

“그렇군요. 올리버 공작은요?”

“괜찮소. 같이 있는 기사들이 매우 훌륭했소. 한 사람은 맨손으로 한 명을 때려잡았고, 한 명은 검술에 매우 능하더군.”

엘리아나는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옆에 있던 조셰프가 그녀를 단단히 잡아 주었다.

“부인, 남작가로 모시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맞소, 엘리아나. 이곳은 위험하오. 얼른 피하시오. 지원군이 더 올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알겠어요. 소식, 전해 줘요.”

질리언이 고개만 끄덕이자, 엘리아나는 몸을 돌렸다. 시무스 가문의 마차는 이미 떠났고, 또 다른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엘리아나는 그곳에 몸을 싣고선 남작가로 향했다.

그녀는 피비린내가 나는 몸으로 방에 들어가선 먼저 몸을 씻어 냈다.

씻어 내고, 또 씻어 내도 옅은 피비린내가 사라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엘리아나가 젖은 머리로 침실에 나오자, 베니가 뛰어 들어왔다.

“엘리! 어디 다친 곳은 없는 거야?”

“응, 나는 괜찮아. 잭슨 남작과 올리버 공작이 총에 맞았어.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

“세상에… 총을 들고 있었다고? 전쟁에서만 사용이 허가된 물건인데,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었던 거야? 정말 위험했잖아! 정말 괜찮은 거야?”

“모르겠어. 무슨 정신으로 그곳에 있었는지…….”

엘리아나가 홀린 듯이 말하자, 베니는 그녀를 앉히고선 머리를 천천히 말려 주었다.

“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놀라지 않은 척 모든 걸 정리하려고 했지? 너 그거 정말 나쁜 습관이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 끝나고 나니까 팔다리가 떨리더라고……. 무서웠어.”

엘리아나는 베니 앞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무서웠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총성이, 피를 흘리고 있는 율리시스의 모습과 자기 손에 묻은 피가 말이다. 모두 두렵고 무서운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 엘리아나는 꼭 냉철해지곤 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죽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엘리아나는 저녁을 거르고선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엘리아나, 더 이상 이 일에 개입하지 말자.”

“응. 잘 정리됐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는 우리 일해야지. 남작가를 너무 자주 비워선 안 돼. 그들은 우리 꼬투리를 잡아서 어떻게든 내쫓을 생각만 하고 있을 거야.”

엘리아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베니의 말이 맞았다. 오델리 가문, 시무스 가문, 허트 가문 모두와 관계를 잘 유지해도 헌터 가문에서 생각보다 일찍 쫓겨나면 모두 허사였다. 아직 페페에게서 돈도 회수하지 못했기에 빈털터리로 쫓겨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은 문서를 볼 정신은 없겠어. 좀 자야겠어. 베니, 곁에 있어 줄래?”

“당연하지. 잠이 들고 나서도 떠나지 않을게. 제발 좀 쉬어. 너 요즘 너무 무리했어.”

엘리아나는 고개만 끄덕이고선 침대로 향했다. 푹신한 침구는 생각보다 금세 적응이 되었다. 몸 전체를 감싸 오는 따뜻함. 엘리아나는 자기 뺨을 만지던 율리시스를 떠올렸다. 약간은 헛헛한 웃음을 지어 보이던 그의 얼굴. 그는 왜인지 전쟁터에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걸까? 시무스 남작은 괜찮겠지? 앞으로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엘리아나는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생각의 덩어리들을 밀어내고선 눈을 꼭 감았다. 그런데도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

멜번은 죽은 남자의 복면을 벗겨 냈다. 수세에 몰리자 자살한 남자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못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입에 총을 넣고 머리통을 날려 버렸지만, 반쪽의 얼굴은 남아 있었다.

멜번은 눈을 감고 기도했다. 죽은 이는 함께 기사단에서 일했던 이였다. 도미누스 밀의 가장 빠른 발이 되기도 했던 녀석이었다.

“아는 자인가?”

질리언이 물었다. 그러자 멜번은 고개를 젓고선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복장을 봐선 우리 콘테르국 사람인 것 같지만, 안면이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총기를 가지고 있다는 건 왕실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가?”

“조르디언 상단 소속일 가능성도 있죠. 무조건 왕실이라고 규정하긴 어렵습니다. 질리언 경도 아시다시피 왕족의 군대일수록 총기 관리는 더 엄격하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재빠르게 반박했다. 질리언은 맞는 말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생포한 자들의 심문은 콘티노국에서 진행할 것이오. 올리버 노튼 공작께서 콘테르국에 현재 상황을 잘 전달해 주실 수 있겠소? 나는 이 문제가 너무 큰 외교 문제로 번지진 않았으면 좋겠소.”

“그렇게 하죠. 총 몇 명의 콘테르인을 잡으신 겁니까?”

“생포한 자들은 총 다섯이오. 그중 두 명만 콘테르인이고, 세 명은 콘티노국 사람이오. 탈영한 근위 병사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소.”

“콘티노국에서도 가볍지 않은 문제로 다뤄지겠군요.”

“그렇소.”

율리시스는 올리버 노튼의 흉내를 제법 잘 냈다. 그러나 팔의 통증이 올라와 더 머물긴 힘들 것 같았다. 너무 큰 부상은 안 된다. 곧 더 큰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율리시스는 빠르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콘테르인이 적지 않은 만큼 공동 심문 요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원만히 협력할 수 있도록 먼저 조처해 두겠소. 팔을 다치신 모양인데, 먼저 우리 의료진에게 치료받는 게 어떻겠소?”

“아닙니다. 공작저에 의원이 있으니 그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질리언은 한 번 더 권유했지만, 율리시스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의료진에게 팔을 보여 주려면 옷을 벗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목 뒤의 문양이 노출되고 말 것이었다.

“지금은 이것이면 충분합니다.”

율리시스가 자기 피로 젖은 머릿수건을 가리켰다.

질리언은 괜스레 저것을 뜯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길을 비켜 주었다.

율리시스 일행이 별장을 떠났다. 쏟아지는 비에도 피비린내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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