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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7/121)

7화

이른 아침, 베니가 남작가에 도착했다. 그녀는 정식 절차를 거쳐서 시녀장으로서 그녀의 방에 왔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으나 엘리아나도, 베니도 둘 다 호들갑을 떨지 않고 예의를 지켰다.

예를 지키지 않은 사람은 도리어 그들 중 가장 직급이 낮은 르잔이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제, 제가 남작 부인의 제1 하녀입니다!”

르잔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분한 모양이었다. 베니는 그녀의 공격적인 말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엘리아나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엘리아나는 한쪽으로 곱게 내려온 머리칼을 매만지면서 태연히 말했다.)

“르잔, 베니는 내 시녀장이야. 네 상사이기도 하지. 예의를 갖춰.”

“하지만 시녀장은…….”

“샤르헨에게 가 있지.”

“…….”

르잔이 입술을 물었다.

“그래서 나는 시녀장을 뽑을 수 없나? 그렇진 않아. 왜냐하면 그녀는 내 시녀장이 아니니까. 카르만 헌터도 내 논리에 반발하지 않던걸.”

“부인, 하지만… 하지만 저는 부인에게 제일 처음 배정된 하녀입니다!”

“내 앞에서 목소리를 낮춰. 르잔은 아직 하녀의 봉급을 받고 있지 않나? 이제부턴 베니의 말에 따라야 해. 베니는 오늘부터 내 시녀장이야.”

엘리아나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말했다. 이미 다 짜 둔 각본처럼 베니는 차분했다. 초조해하던 르잔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리더니 황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전에 말씀하셨던 충성심, 지금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위병 조셰프가 돈을 받고 엘리아나 님의 정보를 팔고 있습니다. 부인과 나눈 대화들을 모두요.”

“저런…….”

엘리아나는 조금도 몰랐다는 듯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좀 안 좋은 소식이네.”

엘리아나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베니를 보았다. 베니는 그녀의 가짜 표정과 진짜 표정을 구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베니는 엘리아나가 주는 사인을 모두 확인하고선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제가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부인.”

“내가 말한 정보예요!”

“이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 르잔을 너무 가까이하지 마십시오, 부인. 위험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예의범절도 다시 교육받아야 할 것 같고요.”

“뭐라고요?”

르잔이 버럭버럭하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베니는 조금도 반응해 주지 않고서 싸늘하게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엘리아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아니야, 베니. 르잔은 지금 내게 충성을 증명하는 중인걸.”

“이런 정보는 얼마든지 주워들을 수 있습니다.”

“아니에요! 이런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저년이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알아보지도 않았으면서!”

르잔이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침을 튀기며 말했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년’이라는 비속어가 나오자, 엘리아나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어떤 년이 내 앞에서 년 년 거리지?”

“부, 부인 그것은…….”

“대체 누가 내가 직접 뽑은 시녀장에게 소리를 지르며 말대꾸를 하는 거지?”

엘리아나의 말은 토씨 하나 틀린 것이 없었다. 르잔은 지금 크나큰 죄를 짓고 있는 것이었다. 르잔은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분해서 입술을 짓씹고 있었지만, 힘겨루기에서는 완전히 진 모습이었다.

“부인,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이것보다 더한 정보를 가져와서 제 능력과 충성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시녀장님은 절대 찾을 수 없는 정보일 것입니다.”

르잔의 독기에 엘리아나는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르잔이 무슨 짓을 해도, 엘리아나는 르잔을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가져오는 정보들은 가치가 있었다. 아직 쓸 만하다는 것이었다.

엘리아나의 표정을 읽은 베니가 한술을 더 뜨듯이 말을 이었다.

“당장 내치십시오, 부인. 위험한 자입니다.”

“베니, 한 번만 용서해. 르잔은 베니가 오기 전까지 나를 보살펴 주었으니까.”

“부인.”

“르잔. 나뿐만 아니라 시녀장인 베니도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정보를 가져와. 그러면 넌 앞으로도 나의 제1 하녀가 될 거야. 베니와 함께 내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 되겠지.”

“명심하겠습니다.”

르잔은 무릎을 펴고 일어나서 두 사람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뒤에 빠르게 방을 나섰다. 엘리아나는 여전히 거짓된 표정을 지우지 않고 나른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베니. 내 머리를 좀 올려 줄 수 있겠어? 그동안 혼자 하느라 너무 힘들었거든.”

“네, 부인.”

“드레스 룸은 저쪽이야.”

엘리아나가 손짓하며 일어서자 베니가 엘리아나의 뒤를 따랐다. 아직 르잔이나 샤르헨의 하녀들이 문틈으로 지켜보거나 엿듣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엘리아나는 밀폐된 드레스 룸에 도착하자마자 가식을 집어던졌다.

“베니!”

“엘리!”

두 사람은 환호하면서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엘리아나와 베니는 단순한 귀족과 하녀의 관계가 아니었다. 그간의 고통을 함께 나눈 단 하나뿐인 친구 사이였다.

“편지를 받고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카르만 남작 미친 거 아니야? 너무 역겨워.”

“베니. 와 줘서 정말 고마워. 이곳은 전쟁터나 다름이 없어.”

“걱정하지 마. 너를 위해 싸우는 총과 칼이 되어 줄게.”

“베니, 나의 사랑스러운 베니. 너를 전쟁터로 불러서 정말 미안해.”

엘리아나는 진심으로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엘리아나는 베니가 필요했다. 동시에 베니에게도 이 자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다. 집안 형편이 조금 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베니의 급료를 넉넉히 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베니는 그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네가 내게 더 높은 급료를 주기 위해서 그런 걸 내가 모를까 봐?”

“아니야. 난 정말 베니 같은 내 편이 필요했어.”

사실, 엘리아나는 지쳐 가고 있었다. 모두를 속이고, 자기 자신만을 믿어야 하는 상황에 말이다.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베니가 있다면 이길 수 있었다. 그녀는 똑똑하고, 자비롭고, 눈치도 빨랐다.

“걱정 붙들어 매. 어려운 형편에도 길거리에 버려진 나를 하녀로 데려와 주신 순간부터, 나는 로즈 가문에 충성을 다하기로 마음먹었어. 지금도 변함이 없고.”

베니의 말에 엘리아나는 눈물을 살짝 보이며 그녀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러나 엘리아나는 눈물을 금세 거뒀다.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베니가 합류한 만큼, 계획은 더 빠르게 진행되어야 했으니 말이다.

***

엘리아나는 위병 교대 시간에 맞춰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녀는 보안이 필요한 입구에 베니를 두고, 조셰프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도서관 문이 닫히자마자 물었다.

“얼마를 받았지?”

“200디온를 받았습니다.”

“턱없이 모자라. 다음엔 두 배를 불러.”

“두 배요?”

위병 조셰프는 200디온을 받은 것만으로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는 듯이 말했다. 200디온은 조셰프의 보름치 급료와 맞먹는 돈이었다. 두 배를 받으면 한 달 치 급료를 받는 셈이었다. 그러나 엘리아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남작 부인의 총애를 받는 남자라면.”

“총…애요?”

“그렇게 포장해야지.”

엘리아나는 조셰프의 손을 잡고선 창가로 갔다. 그러고선 그의 단단한 체인 아머에 손을 올렸다.

“부인!”

“이 시각엔 남작이 산책을 하지.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주 잘 보일 거야. 하지만 너에게 뭐라고 할까? 그럴 수 없지. 왜냐하면 샤르헨이 있으니까. 그러나 궁금은 하겠지. 무슨 꿍꿍이인지 말이야.”

조셰프는 귀가 새빨개졌다. 엘리아나는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하는 것은 독사나 다름이 없었다. 모든 계획이 있는 것이었다.

“난 이미 난봉꾼이나 다름없는 추잡한 소문 속에 있어. 이런 나와 얽히는 것이 싫다면 지금 당장 나를 밀쳐.”

“그럴 순 없습니다…….”

“좋아, 마음에 들어.”

“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내가 다 말해 주어야 할까?”

엘리아나는 그의 뺨을 훑으면서 말했다. 조셰프의 뺨이 붉어졌다. 엘리아나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말을 이었다.

“질리언에 대해서 얼마나 알지?”

“설마 질리언 허트 말씀이십니까?”

엘리아나는 그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그러자 조셰프는 붉어진 고개를 돌리고 말을 이었다.

“이 저택 사람들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것 외엔 아는 정보가 없습니다. 주점에서 만나면 헌터 남작 가문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먹질을 당해야 하죠. 호방한 성격으로 다른 기사들에게는 인기가 많습니다.”

엘리아나가 알고 있던 것에서 그다지 나아진 게 없는 정보였다. 그러나 자신이 아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정도로도 만족이었다.

엘리아나는 그의 몸에서 손을 떼면서 몸을 창 쪽으로 돌렸다. 행복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면서 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질리언에 대해서 궁금해했다고 말해. 질리언에 대해서 아는 것을 제발 알려 달라고 했다고. 간절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그, 그 사람은 헬렌 허트의 오빠입니다.”

“그걸 내가 모를까?”

엘리아나는 우두커니 멈춰 서 있는 카르만 헌터와 눈을 마주쳤다. 그에게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환한 미소를 띤 채였다. 그녀는 눈을 마주치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그대로 짓다가 살짝 묵례하고선 뒤돌며 창을 닫아 버렸다.

조셰프는 그녀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듯이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엘리아나는 그런 그를 지나쳐서 걸었다.

“부인은…….”

“…….”

“무엇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엘리아나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이것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떠올렸다. 명쾌한 답이 있었다. 가난.

엘리아나는 가난이 싫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뒤돌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대와 이유가 같아.”

“네?”

“말했잖아. 나도 아픈 부모와 어린 동생들이 있어. 그들을 부양하는 건 평범한 삶으로는 힘들지. 가난은 벗어나기가 어려우니까. 그래서 이러는 거야. 살기 위해서.”

엘리아나가 반쯤 고개를 돌렸다. 조셰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게 좋겠지? 뭐,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엘리아나는 부드럽게 걸음을 옮겼다. 베니와 의논할 일이 있었다. 그녀가 문에 다다를 무렵,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셰프가 한쪽 무릎을 꿇고선 엘리아나를 향해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와 부인이…….”

“…….”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엘리아나는 그를 보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오랫동안 가난에 짓눌려 왔던 자들만이 아는 동질감이 있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끈끈한 연대였다. 엘리아나는 그의 머리꼭지를 보면서 이 남작가에 제 편이 생기기 시작했음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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