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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121)

3화

아직 나서지도 않은 사교계에 이 소문을 퍼뜨려서 자신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지난 남작 부인들도 이렇게 당했을까. 아니. 그런 방법은 아니었으리라. 그들은 대부분 자존심에 못 이겨 나가 버린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것은 자신이 평민이나 다름없기에 부리는 값싼 술수였다. 샤르헨이 드레스를 털고 일어나 그대로 당당하게 방을 나서려고 하자, 엘리아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뭐예요?! 악!”

엘리아나는 그녀의 뺨을 때렸다. 샤르헨이 스스로 내리쳤던 그 뺨이었다.

“지, 지금… 나를 쳤어?!”

“소문은 어설프게 내면 안 된답니다, 샤르헨. 르잔, 가서 제대로 퍼뜨리고 입 빠른 애들에게 말해. 제대로 된 계모가 나타났다고. 그리고 내 식사 좀 챙겨다 줘. 진짜 배고프거든.”

르잔은 두 사람 눈치를 보다가 재빠르게 방을 빠져나갔다. 엘리아나는 그제야 샤르헨의 팔을 내던지듯이 놓고선 책들이 어지러워져 있는 침대로 향했다.

“카르만 님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내가 널 죽이라고 할 거야!”

“딸을 괴롭혔다가 죽어 버린 계모라……. 나중에 네가 남작 부인이 되면 참 재밌는 소문 거리로 나돌겠어.”

자신이 만든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는 엘리아나에 샤르헨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너, 절대 내가 봐주지 않을 거야.”

“샤르헨.”

“샤르헨 님이라고 불러! 난 이 저택의 안주인이야!”

“샤르헨.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나가. 카르만 남작님께 가서 네 부은 뺨을 보여 주라고.”

샤르헨은 화가 잔뜩 난 채로 발을 굴렀다.

“도서관에서 그와 무슨 얘기를 했어? 왜 그를 거기까지 끌어들였지?”

엘리아나는 아하, 하는 소리를 삼키며 샤르헨을 보았다. 그녀가 여기에 온 이유가 있었다. 엘리아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사랑하는 남작님께 물어보세요.”

“…….”

“아, 여기는 수선 담당하는 하녀가 누군지 아나? 내 속치마가 찢어졌거든. 아주 거칠게.”

엘리아나가 드레스 자락을 들어 보이자, 샤르헨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그녀는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엘리아나의 방을 나섰다.

엘리아나는 샤르헨이 나간 문을 응시했다. 카르만의 반응에 따라 샤르헨은 아주 어려운 상대가 될 수도 있고, 아주 쉬운 상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카르만의 방문을 기다리며 책장을 열었다.

***

“엘리아나!”

엘리아나의 방문이 활짝 열렸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서 콘티노국의 주요 귀족 가문들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었다. 엘리아나는 책을 덮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잠옷 차림이었다.

“빨리 오셨네요. 내일 아침에나 볼 줄 알았는데.”

“나의 샤르헨에게 감히 손찌검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소?”

“제가 설마 샤르헨을 때렸겠어요? 그 샤르헨 님을?”

“샤르헨이 펑펑 울면서 내게 왔소. 뺨은 퉁퉁 부어있었고, 당신의 하녀도 증언하였소. 발뺌할 생각 마시오.”

카르만은 화가 난 듯 빠른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엘리아나는 어쩌겠냐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스스로 뺨을 치더니, 저한테 수양딸의 뺨을 왜 치냐고 묻더군요. 난 아무것도 안 했어요. 내 하녀는 소문을 내러 뛰쳐나갔고, 나는 여기서 샤르헨과 함께 있었죠.”

“당신이 나에 대한 더러운 거짓말도 함께 했잖소!”

“남작님과 제게 어떤 일이 있었길래요? 저는 속치마가 찢어졌으니 담당 하녀를 데려다 달라고 했을 뿐이에요.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집요하게 물었던 건 그녀고요. 나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 남작님께 물으라고 했죠.”

“나는 엘리아나 당신의 말을 믿지 않소. 당신은 나와 샤르헨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교활한 여자일 뿐이오.”

엘리아나는 폭풍처럼 화를 내는 그를 쳐다보았다. 가여운 남자. 여자 하나에 눈이 완전히 멀어 이성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당신이 가주인 이 헌터 가문의 미래는 좋지 않겠어. 엘리아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안 믿어도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전 내일부터 사교계에서 악랄한 계모로 소문날 테죠.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니까요. 당신의 샤르헨 님께서.”

“그녀를 더럽히는 헛소리는 집어치우시오.”

“지켜보세요. 내가 말한 대로 될 거예요.”

확신하는 엘리아나의 말에 카르만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엘리아나는 영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당신이 저지른 짓 때문에 응당 받아야 할 몫이겠지.”

“교활한 내가 왜요? 최대한 가늘고 길게 여기서 살아남아 뒷주머니를 채워서 가난한 내 식구들 배나 불려 주려는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당신을 본 순간 사랑에라도 빠졌을 거라 생각하진 않겠죠?”

“정말 한 마디도 지지 않는군. 당신 때문에 머리가 돌 지경이야!”

카르만은 화가 나서 발을 구르더니 몸을 돌렸다. 엘리아나는 그 순간 목소리 톤을 낮추고선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 샤르헨은 내 방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어요. 원래라면 그럴 수 없죠. 하지만 내 하녀라는 그 여자아이는 그녀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선 나를 맞이하더군요.”

카르만이 고개를 돌려서 엘리아나를 보았다.

“난 나쁜 계모가 되고 싶지 않아요. 샤르헨과 맞서고 싶지 않고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승부를 걸 만큼 멍청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녀는 이미 남작 부인의 방을 쓰는 이 집의 안주인 아닌가요?”

“남작 부인의 방은 여기요.”

“원래는 아니었죠.”

카르만의 눈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사실이었다. 샤르헨은 카르만의 약혼 소식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앓아누웠었다. 카르만은 그때 영원한 사랑의 약속으로 그 방을 내주었다.

네 자리는 남작 부인일 거라고, 이 집안의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와 결혼했던 여인들은 모두 자신이 남작 부인의 방조차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저 자신이 샤르헨보다 낮은 지위라는 사실에 학을 떼면서 모두 이혼을 요구했을 뿐이었다. 카르만의 눈이 가늘어졌다.

“도서관에 간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소?”

“하……. 내 방에서조차 나는 편할 수 없어요. 어디를 가든 시선이 따라붙어서 식사조차 하러 가지 않았죠. 그리고 길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엘리아나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여운 사람은 자신이라는 듯이 말이다. 엘리아나는 눈썹을 내리고선 한숨을 쉬었다.

“잘못해서 내가 당신의 집무실이나, 샤르헨의 방을 열고 들어간다고 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요. 그래서 길을 좀 외운 것뿐이에요. 그러다가 그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된 거고요.”

“…두 번 다신 샤르헨을 만나지 마시오. 샤르헨의 근처에도 가지 말고, 그녀에 대해서 입에 올리지도 마시오. 그러지 않으면 당신에게 남은 건 파혼뿐이니까.”

카르만은 엘리아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말 대신 샤르헨과의 접촉을 금했다. 엘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였으니 말이다.

“근데, 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씩 웃으면서 말투를 바꾸었다. 마치 가면을 여러 개 쓴 사람처럼 말이다. 카르만의 미간이 더 좁아졌다.

“또 무슨 말이지?”

“네 번째 이혼이요.”

“…….”

“사교계에선 또 파문이 일겠죠. 카르만 헌터가 고자는 아닐까? 그 완벽한 카르만 헌터가 왜 그렇게 악독한 여자랑 결혼하였을까?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해.”

“닥쳐!”

“이런 소문이 돌고, 이번엔 가주께서 직접 이곳에 행차하시겠죠.”

“정말 질릴 정도로 마녀 같은 여자로군.”

“똑똑하고, 셈이 빠르죠. 충분히 혼내셨으니 돌아가세요. 샤르헨을 제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주시고요. 또 그 쇼를 보고 싶지는 않아요.”

엘리아나는 피곤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몸을 돌렸다. 카르만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탄성을 내뱉었다.

“나는 당신을 믿지 않아. 샤르헨을 믿어.”

엘리아나는 그 말이 카르만이 스스로에게 거는 암시라고 생각했다. 카르만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었다. 자신의 오래된 연인이 교활할 리 없다고, 질투할 리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케케묵은 과거에서부터 그녀의 이런 점들은 드러났을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무시해 왔을 뿐…….

엘리아나는 침대에 털썩 앉아 책을 다시 들면서 말을 이었다. 카르만이 가든, 가지 않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겠죠. 난 아무도 믿지 않아. 샤르헨을 믿어.”

“…….”

“그게 자신을 망치는 일인 줄도 모르고.”

카르만이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엘리아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었고, 그의 손은 자신이 차고 있는 검으로 향했다.

“죽이려고요? 이 집안은 정말 엉망이네요. 수양딸은 와서 자해하지 않나, 남편은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나.”

“제발, 그 입 좀 다무시오. 혀를 잘라 버려야 말을 멈추겠소?”

“알겠어요. 멈출게요.”

엘리아나는 입을 딱 다물었다. 카르만은 약이 올라 미칠 것 같다는 듯이 발을 구르고선 그대로 방을 빠져나갔다. 엘리아나는 쾅 하고 닫힌 문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쩌면 샤르헨이라는 존재만 사라진다면 그의 총기는 다시 돌아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존재는 너무 오래되었고, 단단했다. 이만큼 그를 흔들어도,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발만 굴러댔으니 말이다.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어.”

이 남자는 자신의 길을 밝혀 줄 사람이 아니었다. 엘리아나는 파혼을 선언하는 쪽이 그가 아니라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벗어나야 했다. 이 엉망인 집안에서 말이다.

그녀는 수많은 가문 중에 하나가 적힌 페이지를 집요하게 눈에 담았다. 그녀의 1차 목표인 가문이었다.

카르만의 전 부인 중에 아직 재가하지 못한 유일한 여인, 헬렌이 있는 가문이었다. 헬렌은 카르만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전해졌다. 그 외에 다른 이들의 청혼을 모두 거절할 만큼 말이다.

실제로 이혼한 이후에도 숱한 프러포즈가 쏟아졌지만,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집안에 꽁꽁 숨어, 사교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헬렌 허트.

엘리아나는 그 이름을 가만히 만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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