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리쳐주세요-68화 (68/68)

#68. 별을 따는 밤

2018.07.24.

“…….”

깜박.

“…….”

깜박.

“…….”

깜박, 깜박.

“후.”

이현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정말이지 못 견디겠다. 저 얼굴은.

“벌써 다 드셨어요?”

백이 속이 새빨간 등심 한 점을 오물대며 물었다.

고기는 잘 구워진 게 좋아요, 라고 했으면서 레어 스테이크를 잘도 먹었다.

“못 먹겠어.”

“음? 왜요?”

그거야 당신이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몸살 날 것처럼 유혹적인 차림새를 하고서.

“왜 자꾸 눈을 깜박이는 거야?”

“아, 이거요?”

그러다 백이 또 한쪽 눈을 깜박였다.

“메이크업이란 것 때문에 눈이 무거워요. 이쪽 눈이 조금 더.”

“아, 하.”

그래, 그게 식욕을 잃게 만드는 이유였다.

본인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보는 이쪽은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는 것.

생각해보면 처음에도 그랬다.

유혹당해 달라는 게 누구였는데 키스를 했더니 치한 취급을 하질 않나.

그때 눈물까지 그렁그렁 고여서 저를 쳐다보던 표정이 생생했다.

상황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치한 취급을 하는 여자가 너무 예뻐 보여서 그것도 어이가 없었다.

그날 진작 알았어야 했다. 자신이 벌써 맛이 갔다는 사실을. 그것도 아주 많이.

이현은 물잔을 들어 단숨에 비워냈다.

“당신은. 입에 맞아?”

“네. 맛있어요. 더 안 드실 거면 남은 거 제가 먹어도 될까요?”

“하나 더 시켜줄게.”

“그럴 필요는 없고요. 현이현 씨는 거의 손도 안 댔잖아요.”

왜냐면 음식이 나오기 훨씬 전부터 당신이 눈을 깜박대고 있었잖아.

“그럼 그렇게 해.”

이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제 스테이크 접시와 깔끔하게 빈 백의 접시를 바꿔주었다.

백은 이제 능숙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썼다. 한 입 크기로 고기를 자르면서 백이 그런 말을 했다.

“인간들은 음식을 안 나눠 먹나요?”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현이현 씨가 싫어하는 건가요?”

“딱히. 한번 손을 댄 거라 당신이 싫어할까 봐.”

백이 입술을 한참 오물대다 말했다. 오늘따라 붉고, 사람 하나 돌아버리기 딱 좋을 만큼 매혹적인 입술을.

“산의 일족은 가족들끼리 음식을 나눠 먹거든요. 그러니까 음식을 양보한다는 건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에요.”

“그래?”

“네.”

백이 포크를 쥔 채 배시시 웃었다.

“저는 현이현 씨와 제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아요.”

“끙.”

젠장, 더는 못 참겠다.

이현이 손을 들어 얼굴을 쓸었다.

당신은 오늘 작정을 한 것 같아.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요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당신은 모르지.

매일 당신 집에서 만나는 건 나도 불만이 없어.

그야 나만 인간이고, 그래서 곤혹스러울 때가 가끔…… 아니, 꽤나 자주 있지만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이니 그건 괜찮다고.

문제는 인간보다 몇 배는 엄한 당신 가족들이지.

말끝마다 우리 막내는 어려서, 우리 막내는 아무것도 몰라서, 얘는 접문이 뭔지도 몰랐다니까, 등등.

9시만 땡 치면 모친부터 시작해서 다들 헛기침을 시작했다.

산은 밤이 이르지,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내려가 보게나, 백이는 애라서 9시면 자야 해, 자네 때문에 요새 계속 밤잠이 늦어진다니까? 등등.

이현이 백과 단둘이 있게 되는 시간은 그나마 백이 그를 차가 있는 곳까지 바래다주는 10여 분의 시간이었다.

그때도 온전히 둘이 있는 게 아니었다.

주변 수풀에서는 끝도 없이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쩌다 걸음이라도 멈추면 어김없이 시퍼런 호랑이 안광이 저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아주 잠깐, 유치원생이나 할 법한 1초짜리 도둑키스를 하는데도 간이 철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가족처럼 가깝다니.

망할.

성이 다른 남녀가 가족이라면 부부밖에 더 있어?

우리는 절대 부부 같지 않아. 멀고도 멀었다고. 그리고 나는 과연 우리가 정말로 가까워지는 그런 날이 오기나 할지 회의가 들 지경이야.

내가 요새 그랬다고.

당신은 모르지…….

“현이현 씨? 어디 아프세요?”

이현은 그들이 이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두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백을 쳐다보며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늘 백은 지나치게 눈에 띄었다.

의상이나 화장이 달라진 게 문제였겠지만 쳐다보고 있자니 그건 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자꾸만 무방비하게 웃는 백이 더 문제였다.

방금 한 가족처럼 친한 사이라는 저 말처럼.

서버가 이거 저쪽에 계신 손님이 보내셨습니다, 라면서 시키지도 않은 음식이나 와인을 보내기도 했다.

평소라면 그 모든 일에 일일이 신경이 곤두섰을 텐데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딱할 뿐이었다.

저 인간들도 괴롭겠지. 쳐다만 보고 있다는 게.

그래도 나에 비하면 새 발의 피겠지만.

“……그럼 우리 집에 갈래?”

“네?”

어쩌다 말이 훅 튀어나갔다. 이현은 자신이 힘껏 움켜쥔 포크를 구부리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친한 사이라면 서로 집 정도는 가봐야지.”

말을 하면서도 참 말도 안 되는 저렴한 핑계 같아 얼굴이 화끈댔다.

“나는 매일 갔잖아.”

“음…… 그럼 그럴까요?”

툭.

이현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눈치채는 사람이야 없었겠지만 등을 타고 식은땀이 한 줄 흐르는 중이었다.

“평창동 집을 말하는 게 아닌데.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왔어.”

사실은 쫓겨났지만.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 이현은 현 여사에게 아주 짙은 가족애를 느끼는 중이었다.

쫓아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고모님.

“어마, 그러셨어요? 그럼 이사하신 거예요?”

“응.”

백이 고기 한 점을 아주 맛있게 꿀꺽 삼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사는 무척 번거로운 일이었을 텐데. 미리 알려주지 그랬어요. 그럼 제가 가서 거들었을 텐데요. 저는 힘이 세니까 도움이 됐을 거예요.”

“사람 시켜서 했어. 괜찮아.”

뭐, 그가 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랬을 것이다.

“그럼…… 정말 가도 괜찮은 거야?”

“네. 현이현 씨도 매일 산을 오르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현이현 씨는 체력도 약하잖아요.”

“그건 절대 아니라고 보는…… 아니, 이건 나중에 얘기해. 다 먹었어? 그럼 가자.”

백이 마지막 조각을 포크로 찍으며 또 사람 속 타는 웃음을 배시시 지었다.

“그런데 이거 너무 맛있어요. 저 하나 더 먹고 싶어요.”

이현은 처음으로 백의 식사 습관에 참견을 하고 싶어졌다.

뭘 그렇게 많이 먹어. 소고기를 그렇게 먹는 건 동맥경화의 지름길이야.

이 시간에 많이 먹는 건 소화에도 안 좋다고.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들어봤어? 그게 만성이 되면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알아? 좀 참아.

“……그렇게 해.”

하지만 그가 먹는 백을 말리는 일은 평생 없을 것이다.

“이래서 데이트를 하면 행복한가 봐요. 맛있는 걸 매번 먹을 수 있으니까.”

백이 못 견디게 사랑스러운 얼굴로 저런 말을 하는 이상.

“틀렸어.”

이현도 백을 따라 웃으며 말했다.

“맛있는 걸 매번 같이 먹어서 행복한 거야.”

매우 고맙게도 백은 딱 한 접시만 더 먹은 뒤 식사를 마쳤다.

이제 집으로 갈 시간이었다.

* * *

완벽했다.

대모산에 연락도 넣었다.

레스토랑을 나온 백은 길 가던 비둘기에게 “혹시 평창동 구 씨를 아니? 말 좀 전해줄래?”라는 걸로 서울시의 비둘기 네트워크가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한지 보여주었다.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말이 과연 거짓은 아니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현이 혹시 다른 여자를 만나거나 하는 일이 있다면 백이 그 사실을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낮에 사람이 다녀간 이현의 집은 아주 말끔했다.

현 여사는 언제라도 백이 편히 다녀갈 수 있도록 평창동에 남아 있던 백의 짐도 함께 보내놓았다.

썰렁하다 싶을 정도로 기본 가구만 놓인 거실을 가득 채운 것은 전면의 통유리 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서울의 야경이었다.

“불을 안 켜도 되겠네요. 예뻐요.”

백은 소파 팔걸이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패물함을 엎어놓은 것 같아요. 죄다 반짝반짝하는 게.”

등이 파인 드레스를 강조하기 위해 J미용실의 진 선생은 업스타일을 선택했다. 우아하게 틀어 올린 머리는 목과 어깨선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아니, 그래서 유감인가.

이현은 [이거 백이가 좋아하는 거야. 나중에 돈으로 갚아.]라는 라현의 메모와 함께 평창동에서 온 독일산 아이스와인을 잔에 담아 들고 왔다.

백이 생긋 웃으며 잔을 받았다. 그사이 손가락이 스쳤고 그러자 “안주 필요해?”라고 물으려던 생각이 깨끗이 지워졌다.

“가끔, 좀 억울해.”

“……응? 뭐가요?”

“당신은 내 눈에 당신이 어떻게 보이는 줄 전혀 모른다는 게.”

이현은 잔을 쥐지 않은 손으로 백의 손끝을 쥐었다. 흠 하나 없는 하얀 손등에 그가 입술을 댔다.

“어떻게…… 보이는데요?”

딱 한 모금 마신 와인 탓일까.

백의 볼에 홍조가 스쳐갔다.

“별처럼 보여. 밤하늘에 딱 하나 떠 있는 별. 그런데 손을 내밀면 닿을 것 같아. 따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따고 싶어. 돌아버릴 만큼.”

“…….”

백은 이현의 얘기를 천천히 곱씹었다.

“현이현 씨 얘기는 가끔 어려워요. 말 속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요.”

“감추는 거야.”

정작 그러는 이현의 시선은 감추는 게 없어서 곤란했다. 찌를 것처럼 진한 시선은 몸을 꽁꽁 묶어놓는 것 같았다.

“너무 솔직하게 말하면 당신이 귀를 막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백이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목이 타는 사람처럼.

이현은 모르고 있었지만 매일 두세 시간 정도의 만남은 달콤한 만큼 백에게도 아쉬웠다.

단 걸 자꾸 먹으면 목이 마르잖아요. 그런 거 같아요. 데이트란 건.

“그래도…… 저는 솔직한 게 좋은데요.”

이현이 짧게 웃었다.

웃음도 시선 같았다. 짙고, 진하고…… 왠지 몸이 꽁꽁 묶인 것만 같고.

“당신이 약속해주면 솔직해질게.”

“무슨 약속이요?”

“그래도 달아나지 않겠다고.”

백이 실내화를 신은 발끝을 꼬물꼬물 움직였다.

이현은 모를 것이다.

요새 백은 둘째 언니의 서적들을 아주 열심히 읽고 있었다. 백은 뭐든지 열심히 배우는 타입이었다.

인간과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으니 인간 식대로 연애를 하는 방법을 저도 빠짐없이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 낮에는 [드디어 그가 집에 놀러오라는 말을 했다. 이럴 때 센스 있는 당신의 준비물은?]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연애 중인 남녀 사이에서 집에 놀러오라는 말은 매우 몹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백은 그간 매일 대모산 집으로 왔던 이현을 떠올리며 자신이 인간식의 연애에 아주 많이 무지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더랬다.

꿀꺽.

백이 한입에 잔을 비웠다. 빈 잔을 아무 데나 내려놓은 백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요. 안 달아날게요.”

“…….”

그러자 이현도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말을 하는 대신 백의 허리를 안아 소파에서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는 줄 알았는데 그대로 안아서 들어 올렸다.

두 발이 달랑 들린 백은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게 되었다.

이현은 백의 귀에 입술을 누르듯 붙인 다음 속삭였다.

“같이 자고 싶어.”

“…….”

백이 눈을 꼭 감았다.

역시.

책이 맞았어. 그래서 준비물이 필요하다고 한 거였어.

“당신은?”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귀에다 입술을 누른 채 얘기하는 것은 반칙이었다.

그건 이현이 지금 얼마나 뜨거운지, 얼마나 두근대고 있는지 고스란히 느껴지게 했다.

그러니까 헷갈리잖아.

현이현 씨가 그러는 건지 아니면 나도 그러는 건지. 뒤섞여서 잘 모르겠단 말이야.

하지만 하나는 알고 있었다.

연애란 같이 있어서 행복한 거라는 사실을.

그와 같이 하는 일은 행복할 것이다.

“저도요.”

나비 날개 소리처럼 아주 작은 음성이었지만 이현에게는 충분했다. 지금 그의 모든 감각은 백을 향해 있었으니까.

“그럼 가자.”

“어디로요?”

“별 따러.”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아침이 올 때까지.

* * *

“…….”

“……어,”

“왜…….”

이현은 빌라 단지를 나서서 길모퉁이에 있는 빵집에 도착할 때까지 사람들이 저를 힐긋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야 세수도 안 한 얼굴로 머리는 뻗쳐 있는 데다 헐렁한 홈웨어에 슬리퍼를 신은 몰골로 전력질주를 하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빵집에 들어와서 진열대에 남아 있는 빵을 깨끗이 쓸어가는 동안에도 수군대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허우대가 아깝다. 저 꼴인데도 멋있어.

자기도 잘생긴 거 알지 않을까. 그러니까 저러고 다니지. 얼굴 믿고.

그런데 어디서 본 사람 같지 않아? 연예인인가?

글쎄……. 아무튼 잘생겼어.

빵은 왜 저렇게 많이 사가는 거야?

식구가 많은가 보지.

부양가족이 많아도 잘생겼어.

사실 동네 빵집이라 이현처럼 허술한 차림새를 하고 오는 손님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이현이 잘생겼다지만 연예인도 종종 사는 동네니 단지 그 이유만으로 쳐다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저런 얼굴로, 저런 차림새로, 끝도 없이 웃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문하신 커피와 빵 포장 나왔습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백이 제 품 안에서 눈을 떴다.

혹시 깰까 봐 팔이 저리도록 꼼짝도 않고 지켜보던 중에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심장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는데 백이 잠결에 울상을 지었다.

배고파요, 라고.

잠깐만, 이라고 한 뒤 주방으로 달려 나와 냉장고를 열었지만 생활습관 상 생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뒤로 지갑만 든 채 정신없이 달려 나왔다.

“영수증 드릴까요?”

오늘따라 카드 결제가 오래 걸리는 듯했다.

“괜찮습니다.”

이현은 한 손으로 커피 두 잔을, 한 손으로는 카드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입으로는 빵 봉투를 문 채 등으로 문을 열었다.

그 신속한 동작 탓에 이현은 바람처럼 빵집에서 사라질 수 있었다.

그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나 이상형을 바꿀래.”

“뭐라고?”

“빵 봉투를 입에 물어도 잘생긴 남자로.”

“……괜찮다, 그거.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지만.”

빵집을 나온 이현은 전속력으로 집을 향해 달려갔다.

아예 오늘 하루 휴가를 낼까 싶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평창동 본가까지 오늘 일이 전해질 테고, 그 뒤로 날짜를 언제 잡아야겠냐는 전화가 귀찮게 올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뭐든 다 어떠랴 싶었다.

인간이 아닌 여자와 결혼이라니, 대체 그 과정은 어떨지 결혼하고 나서는 어떻게 될지 그것도 생각할 게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지금은 뭐든 다 좋았다.

그들의 연애는 이제 시작이었으므로.

몇 년 뒤 TB의 신사옥은 대모동이 아닌 반포동에 세워지고, 그 일로 평택을 고집했던 라현의 모친과 한동안 이래저래 말썽을 겪게 되고, 여차저차 라현이 낙하산 입사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여러 사람이 골치 아프게 되는 일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상관없었다.

신사옥이 완공되는 그 해 이현은 대모산 입구에 집을 지었다. 백과 함께 살기 위한 집이었다.

대모동의 그 집은 대모산 전체를 부지 안에 포함시켰다.

이현이 원래 생각했던 대로 그 집을 백의 명의로 두는 일은 불가능했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언젠가 태어날 두 사람의 아이가 물려받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같은 해 대모동 이현과 백의 집 앞에는 달나라 동물병원이라는 수상쩍은 동물병원이 생겼다.

달이 떠오르는 밤, 동물들이 인간 보호자 없이 제 발로 걸어와 진료를 받고 가는 그런 병원이었다.

그건 당연히 매우 커다란 문제가 될 일이었지만 지금의 이현은 몰랐다.

그러니 상관없었다. 뭐든 좋았다.

오늘부터는 늘 함께 있을 테니까. 앞으로도 항상.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