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리쳐주세요-61화 (61/68)

#61. 홍수 (1)

2018.06.30.

“뭬야?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니, 그 양반은! 저만 철석같이 믿고 있으라 온갖 사탕발림은 다 해놓고! 대모산을 무너트리겠다니! 그럼 우리더러 다 죽으라는 소리야? 무슨 놈의 신수가 그 모양이야!”

큰언니가 분을 못 참고 험한 소리를 쏟아냈다.

대모산 식구들은 다들 너무 놀란 나머지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다들 큰언니 말에 동감이었다.

가슴 쪽이 떨어져 나간 듯싶었다.

대모산을 무너트리겠다니. 대체 왜.

“아니, 그 얘길 그리 앞뒤 뚝 자르고 하면 어쩌나.”

오금도사가 흥분하는 모친을 달랬다.

“그게 꼭 그런 말은 아닐세. 일단 진정하고 얘기를 좀 들어봐.”

한강물에 화풀이한다고, 모친이 오금도사에게 삿대질을 했다.

“진정하라니!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고! 멀쩡한 우리 집을 왜!”

“신수 양반이 생각하기에는 그게 답인 모양이라.”

오금도사가 눈을 찌를 듯한 삿대질을 용케 이리저리 피하며 수염을 쓸었다.

“내 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대모산의 명운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고. 누가 벽을 하나 세워놓은 것처럼 꽉 막혀 있다고 말일세. 그 벽을 세운 양반이 아무래도 신수님인 듯하네.”

그렇게 오금도사의 얘기가 시작되었다.

“에, 틀림없이 그리 말했습니다.”

백이 이현을 만나겠다고 간 다음, 달나라 동물병원에는 손님이 하나 더 늘었다.

인왕산 까마귀 떼에게서 뒤늦게 백이 개업한 소식을 듣게 된 평창동 구 씨였다.

백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날개가 부러지도록 날아온 구 씨는 달나라 동물병원에서 신수들을 먼저 맞닥뜨렸다.

그저 신수라도 오매불망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를 텐데, 새들에게는 임금이나 다름없는 삼족오마저 있었다.

이게 대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일이었다.

평창동 현 씨 일가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 궁금하다는 은여우의 말에 염탐을 자처한 것도 당연했다.

구 씨는 자신의 조생 중 가장 의미 있고 영광된 일을 하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저를 만나는 시간만큼 공사를 늦추겠다?”

구 씨가 보고 온 얘기를 전해들은 서휘의 서늘한 눈썹이 한껏 휘었다.

“건방진. 어디서 감히 그런 소리를.”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서휘가 별 말 없이 드러내는 분노는 아무리 둔한 인간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이곳에 모여 있는 이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전직 산신령에 영수였다.

움찔대다 깃털 하나를 떨어트린 삼족오가 말했다.

[방구석에 처박혀 화만 내다 애먼 신수 잡지 말고 가서 해코지라도 하고 오너라, 여우 놈아. 비까지 부를 게 뭐 있어. 가서 그냥 냅다 엉덩이를 걷어차 주든가.]

“마음에 안 들어.”

서휘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인간이 감히.”

[아, 그야 하계가 진작 개꼴이 난 걸 어쩌누. 상제도 두 손을 든 게 인간인데 이제 와 뭐 어쩌려고? 엉덩이나 걷어차 주는 게 제일이라니까.]

서휘가 진료실 안을 서성대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할 일이 없냐, 정신 사나우니 그만두시라 말을 하지 못한 건 걸음 소리가 몹시 살벌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하계에 영수는 너무 과분하다. 여기에 놔두고 싶지 않아.”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던 둘째 언니가 귀를 삐죽대며 물었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그럼 뭐 다른 걸 생각하는 중이셔요?”

“인간은 대가를 치러야 해. 영산이 어떤 것인지 몰라본 무지를 벌하겠다. 인간은 앞으로 그 어떤 영산도, 그 안에 사는 이로운 이들도 허락받지 못할 것이다.”

둘째 언니가 더 움츠러들었다.

“아니, 그럼…… 그럼 무얼 어쩌시겠다는…….”

“대모산은 내가 취하겠다.”

“네? ……끅!”

둘째 언니가 딸꾹질을 시작했다.

너무 놀라면 딸꾹질을 하는 것은 고 씨 집안 내력인 듯했다.

“그게 무, 끅! 무얼 하시려고, 끅!”

“대모산을 무너트릴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나와 함께 달로 가자꾸나.”

“예에? ……끅!”

다행히도 둘째 언니가 아예 숨이 막히기 전에 삼족오가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안 된다, 안 돼! 신수가 하계에 훈수 두는 건 이제 그만두라고 상제가 단단히 이르지 않았느냐? 이 간 큰 여우 놈이 이제 상제마저도 불러들일 셈이냐! 절대 안 돼! 안되고말고!]

“상제야 지금이면 다 늙어 죽었는지 죽다 못해 화석이 되었는지 모를 일 아니냐.”

[이놈이! 상제더러 그게 할 말이냐! 아주 그냥 달을 꿀꺽 집어삼켰다고 눈에 뵈는 게 없지!]

“영산은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터. 지금 용을 써 남겨놓는다고 해봤자 인간들은 기어코 마지막 영산도 망칠 것이다. 그 전에 내가 취하겠다는 것이다.”

간신히 딸꾹질을 다스린 둘째 언니가 앞발을 달달 떨며 물었다.

“하지만 그 많은 식구들을 어찌 다 달로 옮기시려고요? 아니, 그 전에요. 달에 가고 싶은지 아닌지 묻기라도 해야…….”

“달이 싫으냐?”

서휘가 정색을 하고 묻자 둘째 언니가 입에 꿀을 바른 듯 말을 멈췄다.

“내 장담하지. 하계보다 몇 배는 더 좋은 곳이다. 몸은 가뿐하고 기운은 맑다. 한번 거기서 살게 되면 하계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그야…… 달에 발을 디뎌본 일이 없는 저로서도 달이 좋다는 얘기는 진작 들었지만 말입니다.”

둘째 언니는 어렵사리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거기는 신수의 영역 아닙니까?”

아무리 좋다 해도 엄연히 이계였다.

하루아침에 살던 곳을 버리라는데 선뜻 얼씨구나 받아들이기란 무리였다.

“하계가 엉망이 되다 못해 다 망가져가는 지금, 상제가 백영수를 내려보냈지. 그게 무슨 뜻일 듯싶으냐?”

“글쎄요……. 제 짧은 식견으로 감히 어찌 상제의 뜻을 이렇다 저렇다 논하겠습니까.”

“나는 그 아이가 마음에 든다. 그리 선하고 고운 것은 달에서도 몹시 귀하지. 그 아이를 나의 반려로 맞는다면 너희들도 신수의 일족이 되니 걱정할 게 없다.”

“반…… 으억!”

둘째 언니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허. 신수가 하계의 것과 혼인을? 단단히 미쳤구먼.]

삼족오가 기가 찬지 연신 혀를 차댔다. 그만큼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해 있던 예전에도 서로 속한 곳이 다른 이들의 혼인은 엄격히 금해졌다.

상제는 하늘과 땅을 구분 짓는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고, 제 말을 어긴 이들을 반드시 벌했다.

천계에 속한 이가 하계의 이와 연을 맺으면 그는 하계로 적을 옮겨야 했다. 그리고 아주 고달프고 고통스러운 삶을 내려받았다.

“아무리…… 아무리 시간이 흘러 예전과 같지 않다 해도 상제께서 허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게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달은 내 땅이다. 상제도 뭐라 하지 못한다.”

“하지만 달도 뚝 떨어진 별세계가 아니라 천계에 속하지 않았습니까?”

“이리 되는 것이 상제의 뜻일 것 같다. 상제는 그간 인간에게 내린 것을 말끔히 거두고 싶은 것이다. 하필 마지막 남은 영산에서 태어난 백영수가 내 권속인 것도, 그리하여 내 관심을 끈 것도 그런 명운 속에 마련된 일일 것이다.”

“아…….”

삼족오가 코웃음을 쳤다.

[여우 놈이 제정신이 아니로군.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어찌 상제의 뜻을 그리 갖다 붙이느냐? 네가 무슨 상제의 장자라도 그건 안 될 말…… 억!]

삼족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는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어느샌가 다가온 서휘가 가슴 아래에 달린 세 번째 다리를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다른 손으로 부채를 차르륵 펼쳤다.

“말 많은 놈. 그러고 보니 네가 내 부채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본 적이 없구나, 아직.”

[으…… 무, 무슨 짓을 하려고…… 놔, 놔라.]

“감요도는 저리 가라 날카롭지. 이건 강물도 벨 수 있다. 하물며 구백 년이나 처자다 간신히 눈곱이나 떼고 있는 새 새끼 다리 한 짝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으…… 그…… 아, 알았어! 입 다물고 있을 테니 놓아줘! 내 아무에게도 이르지 않겠다! 놓아줘! 제발!]

삼족오가 목이 터져라 까악거렸다. 덕분에 유리창에 금이 갈 지경이었다.

“쯧.”

서휘가 삼족오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삼족오는 뒤뚱대다 뒤로 벌렁 자빠져버렸다.

“그럼 다들 동의한 줄 알겠다.”

서휘가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오금도사가 있었다. 아직은 천기를 읽는 재주를 한 자락 쥐고 있는 인물이.

“명운이라 하시었소이까.”

“그랬는데.”

서휘가 고개를 돌려 오금도사를 쳐다보았다.

자리에 앉은 채 서휘의 시선을 받아내는 오금도사는 수염을 천천히 쓸고 있어서 그런지 간만에 산신령답게 보였다.

“그리하면 이 몸이 읽은 명운은 어쩌시겠소.”

“……그런 게 있었나?”

“대모산이 사라진다 하셨지만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오. 하늘은 그것까지 이 몸에게 보여주지 않으셨소이다.”

“그럼 뭘 봤기에 나서는 겐가?”

“현 씨 인간의 명운은 보았지. 그는 명이 다할 때까지 대모산과 함께였소이다. 내가 그간 본 인간이 적지 않으나 그리도 질기고 대담한 사주는 처음 보았소이다. 그리고…….”

“그리고?”

오금도사는 잠깐 뜸을 들인 후 말을 마저 이었다.

“그 옆에는 백영수가 있었소이다. 마치 한 쌍처럼 명운이 이어진 채.”

“…….”

그 뒤로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스승의 옆에 딱 달라붙어 영문도 모른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제자는 저도 모르게 스승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스, 스승님. 어쩐지 여기 온도가 확 내려간 것 같은데…… 혹시 에어컨이라도 켜진 거겠습니까?”

그가 오금도사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에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모산에 명이 묶여 있다고. 그런 인간이라 이리도 골치 아프게 굴고 있는 것이겠지.”

마침내 서휘가 입을 열었다.

차르륵!

부채가 펼쳐졌다 다시 접혔다.

생각이 이어졌다 결론에 달해 멎은 것처럼.

“그렇다면 대모산과 함께 그자의 명도 끝나겠군.”

“예……?”

“그건 무슨 말씀이셔요?”

서휘가 부채 끝으로 삼족오를 가리켰다.

“네 날개가 필요하겠다. 대모산까지 가자꾸나.”

[허. 이놈이 이제 대놓고 부려먹…… 아, 알았다.]

오금도사가 벌떡 일어나 서휘를 말리려 들었다.

“그리 하실 게 아니외다! 적어도 왜 그런 사주를 타고난 겐지 살펴보기라도 한 번…… 으힉!”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바람이 휙 불어온다 싶자 서휘와 삼족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둘째 언니와 오금도사가 다급히 창에 붙어 밖을 쳐다보았다.

서휘를 태운 삼족오가 벌써 저 멀리 날아가는 중이었다.

“이거 아주 난리가 나겠네.”

오금도사의 말에 둘째 언니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에요. 아니, 저 양반은 신수라면서 왜 저리 막무가내실까. 상제가 그리 관대한 양반은 아닐 텐데…….”

“그야 신수니 그러지. 신수가 어디 하계 일에 눈이라도 끔벅하던가. 저들 좋으면 그만인 존재들이지.”

“그렇다고 상의도 없이 남의 집을 부수겠다니. 그리고 달에 가자니. 아니아니, 그야 달이라면 좋기야 좋겠지만 그래도 어디 제 집만 하려고요.”

“그런 걸 눈곱만큼도 신경을 안 쓰니 신수라는 게야. 어이, 제자야.”

“예, 스승님.”

주환은 저를 부를 것을 기대했던지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제자가 무얼 해야 합니까? 콜택시를 부르면 되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고 네 아우를 불러야겠다.”

“주원이를요?”

“그 집 둘째가 큰일 나게 생겼으니 대비하고 있으라 해.”

“예? 뭘 어떻게 대비하라는 말씀입니까?”

“이놈이? 내가 아예 밥상 차려서 떠먹여줘야겠느냐! 사람 지키는 일이라면 네 아우 전문 아니냐! 알아서 재주껏 하라 그래!”

“아이고,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콜택시부터 부르겠습니다.”

콜택시가 5분 만에 도착했다.

다급하게 둔갑술로 모습을 바꾸는 둘째 언니를 보고 주환이 잠깐 정신을 놓을 뻔한 것은 그만 아는 비밀이 되었다.

* * *

“아니, 그럼…….”

“다 같이 달로 가는 거야? 달이 그리 좋대니?”

큰언니가 눈을 반짝댔다. 그러다 모친한테 등짝을 두들겨 맞았다.

“아얏!”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너는 이 와중에 달 생각이나 하고 자빠진 게야!”

“아니, 그럼 무슨 생각을 하우. 신수님이 그리 마음을 자셨다면 그걸 누가 말려. 그냥 따르는 게지.”

둘째 언니가 저도 때려주고 싶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주 그 말 어디 백이한테도 해보지 그러우?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 말라죽어가던 애한테 다 같이 달에 가서 살고 싶으니 암말 말고 다른 놈 반려가 되라고!”

큰언니가 화들짝 뛰며 고개를 저어댔다.

“얘는. 아무리 그래도 신수님한테 다른 놈이 뭐니?”

“백이한테는 상제가 내려와도 다른 놈이지.”

“상제는 진작 혼인했잖아. 애가 몇인데?”

“아오, 진짜.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말이!”

“어마? 얘가 왜 나한테 성질이래? 나라고 뭐 난데없이 우리 집이 없어지게 생겼다는데 안 놀랐겠니?”

“그럼 그냥 놀라기나 해. 남의 집에 관심 두지 말고.”

“내가 놀라 자빠져야 얘가 나를 믿겠네. 이거 서러워서 정말…….”

모친이 뒤통수를 한 대씩 쥐어박는 걸로 두 언니들을 말렸다.

“이것들아. 지금이 어디 말씨름할 때야? 그래서, 지금 백이는 어디 있는 게냐.”

그건 도도와 도래가 알고 있었다.

[백이는 지금 현 씨 사내를 데려다주고 있어요.]

[백이는 현 씨 사내가 죽는 건 싫다고 했습니다, 당주님.]

“에효.”

한숨이 이어졌다.

모친은 앞발로 눈가를 찍었다.

“우리 백이가 그리 둥글둥글하니 천상 순둥이 같아도 그게 아니지. 한번 마음먹으면 대쪽이 되는 애가 아니냐. 저는 죽어도 그 꼴을 못 본다 할 텐데…… 이를 어찌해야 되는 게냐.”

둘째 언니가 벌떡 일어섰다.

“이럴 게 아니우. 되든 안 되든 다 같이 나가서 신수님을 좀 말려봅시다. 달에 가는 게 아무리 낫다 해도 우리 백이를 잡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우.”

“그래, 맞다.”

모친도 분연히 일어섰다.

“어미가 돼서 그 정도도 못 하는 건 말이 안 되지. 다들 나를 따라오너라.”

큰언니도, 오금도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수, 엄마.”

“내 미욱한 힘이나마 보태지. 어서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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