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정말로 무서운 건
2018.06.19.
“…….”
“…….”
고요했다. 숨 쉬는 소리마저 시끄러울까 봐 조심하는 두 사람과 한 마리 고양이 탓이었다.
‘뭐 좀 들리나요?’
정적이 한참 흐른 뒤에 현 여사가 속삭이며 물었다.
한쪽 귀를 굳게 닫힌 방문에 아예 대고 있던 윤 실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아직 아무것도 안 들립니다.’
‘아니, 왜 사람을 불러다 놓고 아무 말도 안 해? 응? 이현이 저 녀석은 뭐든 다 잘한다 했더니 정작 해야 될 걸 못 하고 있어.’
‘아이고, 부회장님. 흥분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들키겠습…… 어, 어어!’
갑자기 윤 실장의 눈이 커졌다.
‘왜요? 뭐라고 해요?’
‘이제 두 분이 얘기를 하시는 거 같습니다!’
‘이제서야!’
‘냐앙!’
현 여사가 눈을 부릅떴고 안드레아가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그러다 자칫 큰 소리가 나겠다 싶었던지 쉿, 하며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이현의 방문 밖은 다시 조용해졌고 안에서는 나직한 말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병원, 안 갔네요.”
한참 만에 나온 얘기가 고작 그거였다.
말을 한다는 게 이렇게나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는 모양이었다.
백은 이현의 눈가에서 불면의 흔적을 찾았다. 가늘게 핏줄이 선 눈도, 까칠해 보이는 피부도 장군이에게 물린 자국처럼 아프게 보였다.
거뭇한 시선으로 백을 쳐다보기만 하던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었어.”
“왜요?”
“당신이 언제 올지 몰라서.”
“…….”
그건 내내 저를 기다리느라 다른 것은 할 여유가 없었다는 뜻일까.
백이 무릎 위에 올려놓은 양 주먹을 꼭 쥐었다.
언제부턴가 백은 제 눈에 이현이 아파 보이는 건지, 아니면 이현을 보는 저가 아픈 건지 잘 구분을 하지 못했다.
조용히 아픔을 삼켜 넘기자 또 한동안 침묵이 흘러갔다.
침묵이 원래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입을 다물고 있을수록 저를 보는 이현의 시선은 계속 까매지는 것 같았다.
백이 입을 벌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그럼 왔으니 방법을, 말해주세요.”
“간단해. 방법이랄 것도 없어.”
이현이 굳었던 어깨를 폈다.
“나하고 만나.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공사 늦출게.”
“……네?”
백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표정을 보니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현은 자신이 더 비열하게 느껴졌다.
“집으로 들어오면 더 좋고. 여기서 지내는 시간도 포함시킬 테니. 먹고 자고 뚱보 고양이나 현라현을 상대하는 시간 전부.”
“그건…….”
백이 혼란스럽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한데요.”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아니요. 이상합니다. 많이 이상해요.”
“어떤 점이?”
“전부 다요. 제가 만일 아주 오래 머물겠다고 하면요? 그럼 현이현 씨는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데요.”
“그거 좋겠는데.”
“네?”
“내가 죽을 때까지 있어, 그럼.”
“죽을 때까지라면…… 그럼 현이현 씨는…….”
백이 말끝을 흐렸다.
이현이 하는 말은 그날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을 전부 내어줄 테니 백도 똑같이 하라는 말이었다.
신사옥 건설을 전부 엎을 각오를 한 것도 사실이었고, 뭐든 감수할 작정이라는 말도 진심이었다.
“저는 그렇게 오래 인간 세상에 있을 수 없어요.”
백의 목소리가 아주 작아졌다.
백이 머물 곳은 따로 있었다. 그곳은 이현이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백은 저가 속한 곳에서 할 일이 있었다.
이현의 진심은 그래서 들을 수 없었다.
“……이상한 말을 하네.”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게 사실이에요.”
“아니, 충분히 이상해.”
순간 백은 이현의 시선이 아주 뾰족해진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누구도 다른 사람이 사는 곳을 두고 인간 세상이라는 표현을 쓰진 않아. 그건 당신이,”
이현이 중간에 한 번 말을 끊었다. 계속 뾰족해지는 시선은 이제 백을 찌를 것만 같았다.
“인간이 아니라는 뜻이야?”
“……!”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면 앉은 자리에서 펄쩍 튀어올랐을 것이다.
백은 아무 소리나 흘러나올 것 같은 입을 양손으로 틀어막았다. 핏기가 빠져나간 손은 손톱 끝까지 하얗게 변했다.
“그…… 아니, 그건…… 그…… 그게…….”
당황한 백은 한동안 말을 더듬다 벌떡 일어섰다.
“저는 그, 그만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백이 빠른 만큼 이현도 빨랐다. 백이 도망칠 것을 예상했던지 그는 재빨리 일어서서 문을 가로막았다.
“……비켜주세요.”
백이 간신히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저를 억지로 가둬두실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맛이 가진 않았어.”
이현은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얼굴로 아직은, 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까먹은 것 같아서 알려주려는 거야. 당신이 이대로 가버리면 공사는 내일 시작해.”
백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공사를 시작하면…… 큰일이 벌어질 거예요. 현이현 씨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서운 일이요.”
커다란 홍수가 날 것이다.
아주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인간이 진작 잊어버린 신수의 힘은 다시는 잊고 싶지 않을 만큼 무서울 것이다.
“그러니까 하지 마세요. 그 땅은 그냥 놔두세요.”
“당신은 아직도 모르는군.”
이현은 그렇게 말했다.
“모른다니 무엇을요?”
“내가 그 땅으로 하려고 했던 일. 해야 하는 일. 그건 이미 달라졌어.”
백은 그가 한 말을 좀 더 귀 기울여 들었어야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대모동 땅마저 내어주겠다고 했을 때는 이미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말이었다.
이제 그의 마지막은 백이 되었다. 그 땅은 백을 붙들어두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 땅에 무슨 일이 일어나건, 이제 그건 내 관심 밖이야.”
그러니까 그 땅에서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나도 그것은 제 책임이 아니었다.
그걸 책임져야 하는 것은 백이었다.
“거기서 벌어질 일들을 말려야 하는 사람은 당신이야. 내가 아니라.”
“그건…….”
조금씩 굳어가는 표정은 백이 그가 한 말을 이해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간단해. 당신이 나를 벗어나면 그 무서운 일이 벌어지는 거야. 그게 뭔지는 몰라도.”
“…….”
무서운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사람의 마음도 얼마든지 무서워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백은 힘으로 이현을 밀치고 아주 재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무지 달아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홍수인 걸까, 아니면 인간의 마음인 걸까.
“인간이…… 왜 하늘 아래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인지 알 것 같습니다.”
백은 아주 무거워진 시선을 발 아래로 떨어트렸다.
“인간은 산을 옮기고 길을 없애고 심지어 물이 흐르는 방향도 바꾸어놓는다고 하지요. 그래서…….”
저희 산의 일족들이 닦아놓은 운명의 길도 그렇게나 사라졌나 봅니다.
백은 뒷말을 삼키고 이현을 쳐다보았다.
“……저는, 그럼 무얼 해야 하나요?”
“뭐든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이현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게 내 옆이기만 하면 돼.”
“…….”
하지만 결코 간단할 수 없는 문제였다.
“뭐가 하고 싶어?”
이현이 물었다.
답할 수 없는 질문을.
* * *
드르륵.
마침내 방문이 열렸다.
안에서 들려오는 얘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윤 실장과 현 여사와 안드레아는 재빨리 등을 돌리고는 억지로 딴 데를 보는 척했다.
속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백님, 백님. 시장하지 않으시어냥? 제가 간식을 나눠드릴까냥?]
개중 가장 눈치를 덜 보는 성격의 안드레아가 시침을 뚝 떼고 백에게 다가가 고르륵 이마를 비볐다.
그러자 윤 실장과 현 여사도 한마디씩 거들 수 있었다.
“고 선생님, 너무 오랜만이네. 나 그간 정말 섭섭했어요.”
“부회장님. 사실 그런 것치고는 어제도 동물병원서 뵈었습니다.”
“윤 실장, 사람은 낄 데 끼고 빠질 데 빠지랬어요. 어제 본 게 무슨 소용인 거죠? 우리 집에서 보는 게 오랜만인데.”
“아, 이런. 하긴 그렇군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부회장님.”
“알면 차 좀 내와요. 이현이하고 얘기가 끝났으면 나하고도 해야지. 고 선생님, 저녁 먹고 갈 거죠? 메뉴는 뭐가 좋겠어요? 뭐든 말만 해요.”
“요새 전복이 좋다지 않습니까? 헬기 띄우라고 할까요?”
“그건 윤 실장이 먹고 싶은 게 아닙니까. 아, 고 선생님 전복도 좋아해요? 그럼 그렇게 하자고요.”
[전복! 전복 맛있어냥! 저도 전복이 먹고 싶어냥!]
백을 에워싸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얘기들을 이현이 가로막았다.
“나중에요.”
“뭐? 나중에 언제?”
현 여사가 대뜸 눈살을 찌푸렸다.
“너만 혼자 독차지할 생각 마라. 우리도 내내 고 선생님 기다렸다.”
“맞습니다, 본부장님. 저녁 정도는 같이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데이트하고 와서요.”
“뭐?”
찌푸려진 눈살이 냉큼 쫙 펴졌다.
“그럼 화해한 거니? 다시 만나기로 한 거야? 그런 거예요, 고 선생님?”
“아이고, 너무 잘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두 분. 그럼 저녁 식사는 몇 시로 정해두면 되겠습니까?”
[뭐라고냥! 그럼 이제 백님하고 계속 같이 사는 거냥? 그런 거냥!]
안드레아가 흥분한 나머지 우다다 달리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정원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응? 아니냥?]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섬세하고 예민한 고양이의 촉이 움직인 탓이었다.
다시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는 사람들 표정이 참 어두웠다.
백은 이전처럼 환하게 웃지 않았고 이현은 눈빛으로 누구 하나 썽둥 잘라낼 것 같았다.
“그건 아직 아닙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냐앙……? 큰놈아, 그게 무슨 소리냥.]
이현은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과 고양이 틈을 비집고 길을 만들었다.
백이 입을 꾹 다물고 이현의 뒤를 따라갔다.
“고 선생님!”
현 여사가 백을 불렀다.
“예?”
백이 뒤를 돌아보자 현 여사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손을 저었으나 곧 한숨으로 대신했다.
“……아니에요. 다녀와요.”
“예. 그럼.”
백이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종종걸음을 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느리게 사라졌다. 현 여사가 안드레아를 안아들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것참 이상하네. 그렇지 않아요, 윤 실장?”
“그러게 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저 비슷한 장면을 기억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침을 먹으러 가겠다며 집을 나서던 두 사람의 뒷모습을.
그때 둘은 손을 꼭 잡고, 남들이 방해할까 봐 걱정이 된다며 아예 달려갔다.
그렇게나 행복해 보이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이현이 녀석이 협박이라도 한 거 아니에요?”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본부장님은 그럴 분이 아닙니다……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말릴 걸 그랬나.”
현 여사가 작게 걱정을 덧붙이자 윤 실장이 물었다.
“왜 안 말리셨습니까?”
“글쎄요…….”
모르는 척했지만 사실 이유는 명확했다.
현 여사도 싫었던 것이다. 백이 떠나버리는 게. 그래서 이현이 어떻게든 붙들어놓기를 바라는 중이었다.
“저녁은 뭐가 좋을까요?”
윤 실장은 현 여사가 말을 돌리려는 이유를 눈치챘다. 고백하자면 그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두 분 데이트가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부회장님. 본부장님이 알아서 잘 하시겠지요. 저녁은 전복으로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래요, 그럼. 실한 놈이면 구이로 하라고 해줘요. 오늘은 특별히 더 맛있게 해달라고 주방에 꼭 얘기 넣고요.”
“물론입니다, 부회장님.”
갑자기 분주해진 기분이었다.
윤 실장이 신이 난 얼굴로 주방을 향해 달려갔다.
* * *
“백이 씨이!”
백은 저 멀리에서 마치 안드레아처럼 자신을 향해 전력질주를 해오는 해연을 보며 걸음을 멈췄다.
“가지 마요! 잠깐, 잠깐만! 나도 좀 보고……!”
해연은 달려오면서도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쯧쯧……. 배우가 평소에 런닝도 안 하나.”
얼굴이 빨개지도록 달려오는 해연과는 딴판으로 느슨한 자세였지만 속도는 해연보다 빨랐던 라현이 핀잔을 주었다.
해연은 라현을 상대하는 대신 악착같이 달려가 기어코 백을 붙들었다.
“너무해!”
해연이 다짜고짜 백을 덥석 끌어안았다.
“너무해! 전화 한 통을 안 받고! 언제든 만나주겠다고 해놓고! 으이이잉!”
해연의 얼굴에 볼이 눌린 백이 난처한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전화가 온 줄 몰랐어요.”
“왜 몰라요! 내가 매일 매일 했는데! 문자도 매일 매일 보내고!”
뭘 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대모산에서는 휴대 전화 기지국의 신호가 잡힐 일이 없을 테니까.
“야, 백이 숨 막히겠다. 좀 살살해.”
라현이 등 뒤에서 해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해연이 버둥대며 저항했지만 결국 백을 놓아주었다.
“둘이 화해한 거야?”
라현이 백을 향해 웃는 얼굴로 물었다. 아직 웃음이 좀 어설프긴 했다.
“그럼 다시 같이 사는 건가? 봐서 알겠지만 우리 집 뚱 보 고양이 살 빠졌어. 밥을 안 먹는대. 고 선생이 와서 봐주면 좋을 거야.”
“백이 씨. 내가 주워온 개는요? 그 개도 다쳤는데. 다 나을 때까지 우리 집에 와서 봐주면 안 돼요? 내가 여기서 받던 월급 두 배 줄게요.”
그 개는 벌써 다 나았다.
라현이 인상을 쓰며 해연을 밀어냈다.
“천박하긴.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건 이 집 구석이겠지. 왜 나한테 뒤집어씌워?”
“네가 지금 말하는 게 그렇잖아. 그래도 고 선생, 혹시 돈 문제라면 나한테 말해. 나는 세 배 줄게.”
“와, 이 치사하고 더러운 재벌 3세. 말로는 아닌 척하더니.”
“재벌이 그렇지 뭐.”
“뻔뻔하다, 정말.”
라현과 해연이 옥신각신하는 동안 백이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돈은 필요하지 않아요. 두 분 다 마음은 감사합니다.”
해연이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돈 필요하면 참 좋을 텐데…….”
“이 여자가 아직도 포기 안 했네. 빚쟁이 되겠다는 심보. 그런데 두 사람 어디 가? 나가는 길이야?”
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데이트하러 가요.”
“아…….”
라현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래도 이전처럼 대뜸 화를 내거나 방해할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대신 그는 다른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데이트 맞아? 표정이 왜 그래? 어디 끌려가는 소 같잖아. 둘 다.”
이현이 나선 것은 그때였다.
“갔다 올게.”
“정말 가려고? 백이 별로 안 내켜하는 하는 거 아니야?”
“알아.”
“안다고?”
라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형이 남 싫다는 거 강요하고 그러는 사람이었어? 아닐 텐데. 형은 남한테 아예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잖아.”
“그렇게 됐어.”
사람은 변할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저도 모르고 있던 모습이 튀어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간다.”
이현과 백이 라현과 해연에게서 멀어졌다. 해연은 할 말이 잔뜩 있었지만 더 이상 끼어들지 못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곧 데이트를 할 거라는 두 사람이 퍽 위태로워 보여서.
“괜……찮겠지.”
해연이 작게 중얼대는 소리를 라현이 들었다. 그가 어설프게 해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겠지, 뭐. 현이현은 마음먹은 건 다 해치우는 인간이라고. 백이를 붙잡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것도 어떻게든 해낼 거야.”
“그게 뭐야. 막 집착하고 그러는 거 아냐? 아우, 너무 싫다. 현이현.”
말은 그렇게 했어도 해연은 조금쯤 이현을 응원하는 자신을 눈치챘다.
도무지 찾을 수 없도록 백이 꽁꽁 숨어버렸던 시간을 생각하면 저보다 몇 배는 더 간절해야 백을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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