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마지막 선물
2018.04.24.
어흐응!
쩍 벌린 입이, 저 칼날 같은 송곳니가 곧 목을 물어뜯으리라 생각했다.
“안 돼! 그만둬!”
하지만 멈췄다.
이현은 꼭 백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
백이 아니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희고 깨끗한 털을 지닌 여우였다.
아니, 사실 여우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게 뭐가 됐든 도무지 이 세상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예쁜 짐승이었다.
예쁘다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신비로웠다. 찬란하고 눈이 부셨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요동을 쳤다.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으라면 반드시 눈앞의 광경이 될 것이다.
“건드리지 마. 물러서.”
이현은 저를 에워싸고 있던 짐승의 안광들이 하나둘씩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호랑이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장 새파랗던 안광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래야 합니까?]
이현은 듣지 못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의 산을 해치려는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들은 경계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아무도 모르게 죽이는 것으로 이 땅을 지켜왔습니다. 어째서 그리하면 안 되는 겁니까?]
백이 다가와 이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현의 눈에는 그게 꼭 달빛을 타고 흘러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야. 그러지 않았어. 대모동 고 씨 일족은 인간들에게 받은 공물로 터를 가꿔왔어.”
[인간을 벌하는 일족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사라졌잖아.”
[이곳도 마찬가지가 될 겁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우리는 해치는 존재가 아냐. 가꾸고 지키는 존재야.”
탄식이 흘렀다.
[진작 사라졌어야 할 제 목숨을 이 땅에 붙여두신 것도 대모산 백영수시니 한갓 문지기가 무슨 힘으로 명을 거절하겠습니까마는…… 해하는 것밖에 모르는 인간들을 아무리 가꾸고 지키려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흥.
호랑이 소리가 멀어져갔다.
크고 작은 안광들이 마침내 전부 사라졌다.
이 어둠 속에 남은 것은 정체 모를 하얀 짐승과 그, 단둘뿐이었다.
이현은 하얀 짐승을 향해 말을 건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도와줘서 고마워. 날 도우려고 했던 게 맞지?”
“…….”
물론 사람의 말이 들려온 건 아니었다. 이현도 그런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정말로 고맙다고 생각했다.
말간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어여쁜 짐승이 한없이 선하리라고 생각했다.
“너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내가 아는 어떤 동물도 이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
백은 말없이 영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것을 보면 인간은 정말로 영수와 다른 존재였다.
아무리 마음을 다해 좋아한다 한들 인간은 영수에게 닿을 수 없었다. 속해 있는 세계가 다른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백이를 닮았어. 믿을 수 없을 만큼 예쁘고 착한 게.”
이현이 불쑥 이런 말을 보태자 백이 흠칫 놀랐다.
설마 알아본 건가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안심이야. 백이가 만일 이런 일을 겪었다면 그때도 네가 도와줬겠지. 백은 무사할 거야.”
말을 하고 보니 정말로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되었다.
백은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여기저기 다쳐서 욱신대는 몸도 움직일 만해졌다.
“아…… 아닌가.”
땅을 짚고 일어서려던 이현이 갑자기 비틀거렸다. 발목을 다친 모양이었다.
도로 주저앉는 그의 곁으로 백이 다가갔다.
“가만 계세요.”
“나한테 뭐라고 한 거야?”
이현은 신기하게도 백의 말에 반응했다. 백은 고개를 숙여 부어오른 이현의 발목에 가만히 이마를 댔다.
스스스스…….
몸에 닿지 않는 비가 오는 기분이었다. 시원하고 맑은 무언가가 기분 좋게 온몸을 스쳐갔다.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몸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아……?”
이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백을 바라보았다.
백은 그를 향해 아주 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드리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이제 걸을 수 있을 테니 저를 따라오세요. 경계를 벗어나도록 길을 안내해드릴게요.”
이현은 하얀 짐승이 몸을 돌려 한 걸음 앞서가는 것을 보았다.
따라오라는 소리 같았다.
“……이상한데.”
사박사박, 그렇게 작은 걸음 소리가 이어졌다.
불빛 하나 없는 산길은 이제 조금도 어둡지 않았다. 이름 모를 하얀 짐승은 아예 몸에 달빛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이현은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신비로운 감각에 감싸여 산길을 걸었다.
하나둘씩 별이 뜨기 시작했다. 달빛이 너무 환해 가려져있던 것뿐이었다.
다른 것은 무엇도 없는 산의 별들은 수다스러웠고 들리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노래를 계속 불러주는 듯했다.
신비로운 밤이었다.
이현은 자신이 인간 세상을 벗어나 전혀 다른 곳으로 떨어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는 형의 무덤이 아닌, 이 산에 더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너는 여기서 사는 건가.”
이현이 물었다.
백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네. 여기가 제 집입니다. 현이현 씨는 형이 가진 땅이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번지수가 적힌 문서 하나로 땅의 주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땅에 직접 거하며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고 풀 하나 나무 하나를 기억하며 살아온 것은 인간이 아닌 우리들입니다. 인간들은 이 땅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이현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백은 이 말을 꼭 해야 했다.
“현이현 씨는 이걸 이해하지 못하겠지요. 형을 대신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도 않겠지요. 그리고 저는…… 그런 현이현 씨를, 제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각.
백이 걸음을 멈췄다.
아주 커다랗게 마음을 채우고 있던 것이 스스륵 녹아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백은 아주 예전에 읽었던 인간의 글을 떠올렸다.
인간의 사랑은 무덤을 지어 올리는 것이라 했다.
사랑이 자랄수록 그 사랑은 다른 것을 집어 삼켜 제 무덤으로 끌고 갔다.
미움도 원망도 아집도 이해도 노력도, 사랑 앞에서는 마냥 하찮다 끝내 죽어 무덤을 짓는다 했다.
그게 꼭 제 마음 같았다.
다른 것들은 힘을 잃었다. 힘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들도 그렇게 부질없이 사라졌다.
도도와 도래가 큰일 날 뻔한 것을 알면서도 하나만은 남기겠다는 이현의 마음을 도무지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다.
“저는 어쩌면, 인간을 좋아하면서 더는 이 땅의 영수가 될 자격을 잃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은 혀를 꾹 물어 눈물을 참았다.
“그러니 현이현 씨를 좋아한다는 이 마음은, 여기서 그만 잘라내겠습니다. 그건 더 이상 제게 없는 마음으로 여기겠습니다.”
백이 몸을 돌렸다.
영수의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을 이현은, 그러나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돌아가야 할 때라는 소린가.”
“…….”
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현은 어쩐지 아쉽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흘려보냈다.
아쉬우면 뭘 어쩔 건데. 평생 여기서 살 것도 아니고. 그리고 백이 괜찮은지도 확인해야지.
무사히 도착한 건지, 언제 돌아온 건지.
언제 답을 해줄 건지.
“정말 고마웠어.”
이현이 몸을 맞춰 하얀 짐승의 미간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는 순간 오르르 어깨를 떠는 모습이 꼭 백을 연상시키는 탓에 이현이 잠시 웃었다.
“그럼, 안녕.”
“예……. 안녕히 가세요.”
이현은 이 안녕이 어떤 안녕인지 알고 있을까.
백은 뿌옇게 흐려지는 눈으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하나만 빼고 전부 다 좋아해.
그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그랬어요. 하나만 빼고 전부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 하나가 너무 큰 문제였다.
“이제 그만 가세요.”
백은 제 몸으로 이현을 힘껏 밀었다.
“엇,”
퍽!
이현이 뒤로 넘어졌다.
“무슨…….”
빠아아앙!
저 멀리서 다른 차가 달리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이현은 그 이상하고 아름다운 또 다른 세상에서 자신이 원래 속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제 차를 주차시켜 놓은 곳이었다.
처음 왔을 때처럼 여전히 어둡고 인적조차 없었지만 아주 멀리서는 강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소리들이 번져왔다.
잠시 그대로 있던 이현이 몸을 일으켜 옷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옷이 찢긴 부분에서는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곳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상처로 인한 통증은 조금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현실감이 찾아드는 순간 이현은 방금 겪었던 일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더 말도 안 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게 사실이었다는 것이었다.
이현은 재킷을 벗어 피가 번져 있는 셔츠를 당겼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상처는 없었다.
이현이 입술을 물었다.
불쑥 머릿속으로 현 여사의 음성이 새어들어왔다.
-그 땅은 보통 땅이 아니야. 회장님 생전에도 신주단지 모시듯 하던 곳이었어.
그게 그저 돈 때문이었다면 그랬겠니? 거기보다 더 비싼 땅이 없는 것도 아니고.
현성태 회장도 무언가 그와 비슷한 것을 보았다는 소리였을까.
-그 땅은 손대지 마라.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길 거라고 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것.
인간이 아닌 것. 그렇기에 인간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가 없는 것.
“알아봐야겠어.”
이현이 다급히 차에 올랐다.
부우웅!
그를 실은 차가 저 멀리서 번져오는 인간들의 소음과 똑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다 이내 사라졌다.
* * *
“뭐라고?”
둘째 언니가 입을 딱 벌렸다.
큰언니와 모친도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비슷했다.
“뭘 써달라고? 응?”
백은 차분히 고개를 들어올리며 답했다.
“사직서, 요. 둘째 언니.”
“지금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
갑자기 뛰쳐나갔던 백이 돌아왔다.
꼬리가 축 늘어져서 힘없이 땅을 보고 걷는 게 어째 겉모습은 똑같으면서도 영 매일 보던 백이 아닌 듯했다.
어째 무슨 일이 있느냐 물었더니 사직서를 써달라고 했다.
평창동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큰언니는 사직서가 대체 무슨 말인지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백의 표정이 하도 심상치 않아 억지로 참았다.
“뭐가 어찌 됐는데 그 집을 나오겠다는 거야? 그럼 땅문서는 어쩌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게요, 둘째 언니. 하지만 그 집에 계속 있으면 더 안 좋아질 거예요.”
“왜? 쟤들 때문에 그러니? 쟤들이야 다시 안 보내면 되는 일이잖아.”
오늘 이 사달을 만들었던 쟤들, 도도와 도래가 대청마루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조용히 두 손을 들었다.
이렇게 될까 봐 가지 말라고 했던 것을 굳이 몰래 숨어서 따라갔더니 얻은 병이었다.
“그래서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
백이 간신히 들어올렸던 고개를 저편으로 돌렸다. 아주 먼 곳을 바라보듯이.
“더 있으면 제가…… 안 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니?”
“제가 자꾸…….”
“네가 자꾸?”
무덤이 생겨나요, 언니.
눈이 먼 무덤이요. 제게 중요한 것들을 자꾸만 그 속으로 끌고 들어가요. 그래서 하나만 중요하다고 해요.
한 사람만 중요하다고 해요.
“마음이 약해져요. 정이 쌓여서…… 자꾸 쌓여서…… 그 사람이 꼭 쓸 데가 있다고 하는 땅을 달라고 못 하겠어요.”
“어머나.”
“어머나, 세상에!”
둘째 언니와 큰언니가 입을 딱 벌렸다.
제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을 저질렀는지 그 표정이 모두 말해주었다. 백은 피가 나도록 입 속에서 혀를 물어 눈물을 참았다.
울면 안 돼. 무슨 자격으로.
나는 대모산의 백영수야.
“그러니 현이현 씨 말고 다른……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게요. 그건 도무지…… 도무지 안 되겠어요.”
“이것아.”
모친이 두 팔을 벌려 백을 안았다.
백은 따듯하고 복슬대는 모친의 품 안에서 꾹 숨을 참았다.
“내가 너무 어린 것을 보냈나 보다. 어찌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 인간에게 정이 들었니.”
“…….”
죄송해요, 라는 말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
백은 저 하나를 믿고 기다렸던 대모산 식구들에게 죽을 만큼 미안했고, 딱 하나만 빼고 다 줄 수 있다는 이현에게도 미안했다.
모두가 제 잘못이었다.
“네가 어리고 마음이 너무 고와 능히 인간 같은 하찮고 어리석은 것들에게도 정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내 미처 생각 못했다. 이를 어쩌면 좋으냐…….”
모친이 백을 안고 다독였다.
아니요, 어머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모두가 제 탓입니다. 제가 너무 부족했어요. 제가 너무 몰랐어요.
인간의 독기라는 게 어떤 건지요.
그건 그저 독하고 고약한 게 아니라 뜨겁고 진하고 때로는 마음이 아프기도 해서…… 그래서 쉬이 옮아온다는 것을 몰랐어요.
이렇게나 떨구기 힘든 것인지 몰랐어요…….
“백아, 나쁜 생각 마라. 네 잘못이 아니야.”
“그래. 이 어린 게 낯선 세상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겨웠으면 인간한테 정을 붙였겠어. 우리가 나빴어. 나는 왜 백영수가 아니라서.”
둘째 언니와 큰언니가 차례로 백을 안아주었다.
그럴수록 백은 제 잘못이 큰 것 같아 더욱더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모친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관악산 영감이 아무래도 이걸 보았나 보다. 그토록 세월이 무정히 흘렀으니 이제 우리도 사라질 때가 되었다는 것을.”
둘째 언니가 모친의 꼬리털을 잡아당겼다.
“엄마, 애 듣는 데서 무슨 말을 그리하우. 현 씨 사내가 안 될 것 같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아주 애를 잡으려고 작심을 하신 거유?”
모친은 비슷한 말로 받아치지 않았다.
모친은 이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영수였다. 그만큼 하늘에 더 가까웠다.
“백영수가 안 된다면 우리에게 대체 무슨 방법이 있겠니. 하늘도 어찌 못 하는 것이 세월인가 보다. 세월이 인간의 편에 서겠다면 그도 받아들이는 것이 도리일지 모르겠구나.”
“…….”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모친의 말이 나직하게 이어졌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 그 많은 영수 일족이 전부 사라지고 우리만 겨우 남았겠니. 우리도 언젠가는 가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겠느냐.”
어흥!
그 말에 대한 대답처럼 아직껏 다시 잠들지 못하는 문지기의 고함이 대모산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꼭 사라져야만 하는 운명을 앞에 둔 통곡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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