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리쳐주세요-41화 (41/68)

#41. 비교할 수 없는 문제

2018.04.21.

“아프면 안 돼……. 응? 어서 낫는 거야. 할 수 있어.”

옆좌석에서 끊임없이 소곤대는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이 청설모들을 쓰다듬으며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 다정하고 끈질긴 속삭임은 마음을 따듯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웠다.

백이 청설모들을 어떤 마음으로 다독이고 있는지 그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럴수록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벌써 몇 번인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주고 싶었다.

“근처인 것 같은데.”

이현은 네비게이션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백이 고개를 들고 창밖을 살폈다.

어느 순간부터 불빛이 끊겨 있었다. 방금 전까지 강남대로 한복판을 달리던 차가 지금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있었다.

“여기가 맞아? 길을 잘못 든 건 아니고?”

“여기가 맞아요. 세워주세요.”

끼익!

이현이 차를 세웠다.

“문 열어줄게. 가만히 있어.”

그가 운전석의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하지만 그보다는 백이 더 빨랐다. 스스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백이 어둑한 숲길을 향해 달려갔다.

“기다려. 같이 가!”

이현이 소리쳤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숲길이었다. 백은 이곳이 자기 집이라고 했으나 집처럼 보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백이 잠깐 고개를 돌렸다.

“현이현 씨에게 허락된 곳은 여기까지예요. 더 이상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길을 어떻게 혼자 가겠다는 건데. 같이 가.”

“아니요. 저 혼자 가야 합니다. 현이현 씨는 그만 돌아가세요.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 기다릴 테니 볼일 마치고 와.”

사르륵, 이슬에 젖은 풀잎이 스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백은 그대로 사라졌다.

“……. 못 들었으려나.”

백이 사라진 자리에 이현의 혼잣말이 작게 내려앉았다.

백은 돌아가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걱정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도 그렇지만 너무 외지고 너무 어두운 곳이라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일단은.”

이현은 차에 기댔다.

까만 하늘에는 새하얀 달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유독 낮게, 그래서 유독 크게 보이는 달은 보고 있자면 오싹 소름이 돋을 만큼 생생했다.

이대로 계속 저 달을 보고 있자면 기분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별일 아니라면 좋겠는데.”

이현은 백이 사라진 길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기분 탓인지 그 너머에서는 끊임없이 누군가 두런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 *

“뭐? 백이가 왔다고?”

“어머나?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그럼 땅문서를 가져온 거래?”

백의 귀가 소식은 곧장 입에서 입을 통해 집에 전해졌다.

한밤중에 소식을 들은 모친과 언니들이 신도 챙겨 신지 않고 달려나왔다.

“얘, 백아!”

“어마, 진짜네. 진짜야.”

“어찌 된 일이야, 대체?”

백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마당에 청설모 남매를 내려놓았다.

“어머니, 언니들. 늦은 밤이라 놀라셨지요. 도도와 도래가 아파서 와야 했어요.”

“뭐어?”

가족들이 도도와 도래를 내려놓은 곳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제가 거들어야 할 것 같아요.”

백은 달이 환하게 내리쬐는 마당에 앉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올리자 백의 모습이 사르륵 사르륵 변하기 시작했다.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왜 우리하고는 저리 다른지.”

둘째 언니가 중얼거렸다.

백은 지금 둔갑술을 풀고 본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갑자기 털이 삐죽 솟아나오거나 하는 가족들과는 달리 백은 마치 흘러가듯 변화했다.

넋을 놓고 눈을 깜박이던 짧은 순간에 완연히 영수의 자태가 드러났다.

백여우로 돌아간 백이 달빛 아래 새하얗게 빛나는 앞발을 들어 도도와 도래를 가리켰다.

“내게 속한 자들은 부디 내 바람을 따라주렴. 땅의 기운을 받아들여 몸을 채우고 어서 눈을 뜨렴.”

스스르륵.

바람 같지 않은 바람이 불어 도도와 도래를 허공에 둥실 띄웠다.

보이지 않는 아주 부드러운 손길이 닿은 것처럼 도도와 도래가 살며시 흔들렸다.

[어, 응…… 백아?]

[백아. 여기가 어디야? 집에 돌아온 거야?]

다행히 도도와 도래가 눈을 떴다.

흰 털 한 올 한 올이 달빛처럼 반짝이는 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떴구나.”

[응.]

[응, 백아.]

큰언니가 불쑥 둘째 언니의 손을 꼭 잡았다.

“어우야, 나는 왜 이런 거 볼 때마다 눈물이 나니. 주책없이.”

“원래 그런 거 아니우. 백영수가 뭍생명을 돌보는데 가슴에 와 닿는 게 없으면 그게 어디 짐승이야. 인간만도 못한 게지.”

백이 도도와 도래에게 물었다.

“일어날 수 있겠니?”

[응!]

[이제 말짱해.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 다행이다.”

안도한 백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도도와 도래가 일어나 한결 밝아진 얼굴로 엉덩이를 씰룩였다.

[그런데 어떻게 대모산에 있는 거야?]

[이제 완전히 돌아온 거야? 큰놈이 땅문서를 준 거야?]

“그건 아직…….”

그건 아직 아니야. 백이 그렇게 말하려던 참이었다.

모친이 백의 손을 잡았다.

“아가, 그렇지 않아도 네게 기별을 넣으려던 참이었다. 엊그제 관악산 영감이 다녀갔단다.”

어쩜 이렇게도 탐스럽냐며 살며시 백의 꼬리를 쓸던 큰언니도, 그런 큰언니더러 주책이라며 혀를 차던 둘째 언니도 모친의 말에 표정을 달리했다.

“관악산 영감님이라면…….”

“그래, 잠이나 처자고 있을 거라던 그 양반 말이다. 그간 감쪽같이 인간 행세를 하고 지냈지 뭐니. 그 양반이 천기를 엿봤다고 하더구나.”

백은 저를 쳐다보는 시선들을 읽었다.

불안과 걱정과 혼란이 엉겨 있었다.

어느샌가 고 씨 영수들 주변에는 하나둘씩 대모산의 동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다들 도도와 도래처럼 오래도록 고 씨 일족과 더불어 지내온 대모산의 가족들이었다.

“무어라 하시던가요.”

불안감이 옮아왔는지 백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큰언니가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울컥 입을 열었다.

“있지, 백아. 조만간 대모산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했어. 이거 그 현 씨 사내 때문인 거지?”

둘째 언니가 화들짝 당황해 큰언니의 입을 막아보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둘째 언니는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백에게 난처한 듯 말했다.

“우리가 낸 수가 영 진척이 없는 것을 귀신같이 눈치챈 모양이야. 그러니 그런 말을 하는 거겠지. 얘, 백아. 평창동 비둘기 구 씨가 전하기를 뭐 좀 달라진 게 있다며. 현 씨 사내는 어쩌고 있니? 관악산 영감 말대로 영 안 될 것 같니, 응?”

“아…….”

백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백은 이현에게도 아직 답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 땅은 안 돼. 그건 쓸 데가 있어. 그거 빼곤 다 줄게. 그래도 안 되겠어?

-얘, 백아. 대모산이 없어지게 생겼단다. 어떻게 안 되겠니?

사실은 비교할 수 없는 문제여야 했다. 이현 하나와 대모산의 식구들 전체를 저울질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것만 빼곤 뭐든 다 줄 수 있다는 이현의 마음이 왜 자꾸 미처 보지 못했던 길가의 자그마한 돌처럼 걸음을 붙드는 걸까.

자그맣지만, 아주 깊숙이 단단하게 박혀 있는 돌처럼.

“얘, 백아?”

“백아. 말을 좀 해보아. 대체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백은 아주 어려운 얼굴로 식구들을 응시했다.

[백아…….]

[왜 그래, 백아. 힘든 일이라도 있는 거야?]

도도와 도래가 조심조심 백의 앞발을 붙들었다. 백은 자신이 이현과 첫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 인간 세상의 탁기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던 도도와 도래를 떠올렸다.

눈이 질끈 감겼다.

“그게…….”

비교할 수 없었다. 비교할 수 없는 일이어야 했다.

“그 땅문서는…….”

“응, 그래. 어서 말을 해보아.”

“어떻게 되고 있는데?”

그때였다.

저 멀리 산 아래서 어흥, 하는 범의 포효소리가 들려온 것은.

한 곳에 둥글게 모여 있던 동물들이 일제히 귀를 쫑긋 세웠다.

[침입자다.]

[인간인가?]

[문지기가 깨어났어.]

백의 얼굴이 달라졌다.

“아……. 산 아래는 현이현 씨가 있어.”

산을 올라올 때는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흘려 넘겼던, 기다리겠다는 말도 함께 떠올랐다.

“아직 거기 있는 거야.”

다른 생각은 떠올릴 틈이 없었다.

탓!

백이 뛰어올랐다.

까만 밤 아래 희고 흰 영수가 달을 대신하듯 반짝였다.

“에그머니! 얘, 백아! 어딜 가니!”

“무슨 일이야!”

타다닷!

백은 가족들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산 아래로 내달렸다.

* * *

어흐응!

호랑이 울음소리가 산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스스슷!

저를 뒤쫓는 소리가 등 뒤를 바싹 뒤쫓아왔다.

“미친…….”

이현은 이를 악물고 달리면서도 반쯤은 이 현실을 믿지 못했다.

부정하고 싶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이 크지 않은 산에서 호랑이에게 쫓기는 상황이라니.

어흐응!

환청이려니 싶다가도, 한두 번씩 지축을 뒤흔드는 저 거대한 울림을 듣노라면 도무지 거짓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츳!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 무언가가 팔뚝을 할퀴고 갔다.

화끈하다가 이어서 차가워졌다.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이다.]

[인간이야.]

[경계를 침범하다니. 감히 어떤 인간이?]

[냄새가 난다. 인간의 냄새가. 탐욕과 거짓의 악취가 나.]

온통 시커먼 어둠 속에서 새파란 불빛들이 번뜩였다. 한 쌍으로 이루어진 그것들은 꼭 저를 지켜보는 눈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미칠 노릇이었는데 여기저기서 더는 환청이랄 수도 없는 속삭임들이 들려왔다.

이현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었고, 사람이 하는 말 같지도 않았지만 거기서 전해지는 적의는 뚜렷했다.

[저건 현 씨 인간이야. 이 땅을 빼앗아 간.]

[잘됐군. 죽을 자리를 골라 찾아왔구나.]

[목을 물어뜯자. 뼈까지 오독오독 씹어 삼키면 아무도 못 찾아.]

[이 땅을 되찾아오는 거야.]

[그러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땅을 넘볼 인간은 없겠지.]

이현은 흘러내린 땀이 눈을 찌르는 것을 느끼며 계속 달렸다.

길을 잃은 것은 확실했지만 발을 멈출 수 없었다.

사사사삭!

뒤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계속 커지고 있었다. 호랑이든 뭐든 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 만한 집이 있다고?”

처음에는 백을 내려준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그가 예상한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어둠 안은 고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꾸만 바스락바스락 괴상한 소리가 났다.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과연 저 길을 무사히 갔을까 걱정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신해연이 줬다는 전화기가 생각났다. 망가트릴 작정이었지만 용케도 망가지지 않은 전화기를 백은 가방 안에 고이 챙겨 넣었다.

자신의 것이 아니니 돌려줘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런 인간도 쓸모 있을 때가 있다고 생각하며 라현을 닦달해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 번호로 전화를 했지만 백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이현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괴상한 연결음이 들려왔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백이 사라졌던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집이 근처라 했으니 길이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그게 침입이 되었다.

이현이 뛰어들면서 산을 깨우는 역할을 했다. 문지기가 두 눈을 뜨고 침입자를 벌하기 위해 움직였다.

호랑이 울음이 어둠을 뒤흔들며 시시각각으로 가까워오자 이현도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이현은 걱정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백은. 백은 어떻게 되었을까.

때와 장소가 한참은 어긋난 것 같은 저 미친 호랑이가 혹시 백을 먼저 마주친 게 아닐까.

인근에 동물원이 있었나. 그 정신 나간 곳에서 동물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지 못했나.

너는. 너는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디에 있는 거야.

제발 아무 일 없는 거라고 해. 너는 무사히 집에 있는 거라고, 괜찮다고 해.

제발 이게 다 거짓이라고……

“……윽!”

퍽!

뭔가가 날아와 등을 때렸다.

그게 호랑이 앞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몸이 휘청했다. 발밑이 훅 꺼지고 갑자기 균형을 잃은 몸이 인정사정없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제기랄!”

대체 이 산 어디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파른 비탈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퍽, 퍽!

그 와중에 몸이 여기저기 부딪쳤다.

마침내 바닥끝까지 굴러갔을 땐 온몸이 너덜거렸다. 뼈란 뼈는 죄다 어긋난 기분이었다.

“…….”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죽여.]

[여기서 없애는 거야.]

[여기라면 아무도 몰라.]

마침내 멈춰 선 그를 노려보는 저 살의였다.

이현은 사방이 그 새파란 안광들로 채워진 것을 보았다. 살의가 피부를 찔러왔다.

그리고 마침내,

어흐응!

가장 크고 위협적인 안광이 나타났다.

그저 새파랗기만 한 게 아니었다.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숨을 굳게 만드는 원초적인 공포가 느껴졌다.

스슷, 툭.

스슷, 툭.

거대한 육식동물이 걸어올 때처럼 발바닥 아래 마른 나뭇가지들이 속절없이 부서지는 소리마저 들려왔다.

“진짜…… 호랑이냐.”

이현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렇게나 어이없는 죽음도 없을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호랑이라니. 그것도 서울 한복판 강남 땅에서.

“안 되는데.”

이현이 억지로 어깨를 움직여 바닥을 짚었다. 축축한 흙이 한 무더기의 한기를 손바닥에 묻혔다.

“나는 아직…… 대답을 못…… 들었단 말이다.”

그거 빼고는 다 줄게. 그러니 내게 와. 너를 내게 줘.

백은 아직 그에게 답을 하지 않았다.

고작 한 걸음을 남겨놓고 여기서 끝이 날 수는 없었다.

이현은 다 일어나지도 못한 상태에서 조금씩 몸을 뒤로 옮겼다.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잡아먹힐 수도 없었다.

“오지 마. 나는 네 먹이가 아니야.”

[…….]

가장 새파란 안광이 그와 부딪쳤다. 그리고,

“어흥!”

소름이 끼칠 만큼 크고 생생한 호랑이의 고함이 고막을 찢었다.

타앗!

이현은 저를 덮쳐오는 육식 짐승의 존재감을 느꼈다.

“윽!”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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