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달콤한 경고
2018.02.27.
탁탁.
문살을 두드리는 가벼운 소리가 울렸다.
“들어가도 돼?”
꿀물을 들고 온 이현이었다.
동물들이 짜증을 냈다.
[큰 인간이 왔나 봐. 백이 깨겠다.]
[하여간 못된 인간이 혹이 하나 더 난다더니! 어쩜 저렇게 하는 일마다 밉상이지?]
[기다려 보라냥. 내가 나가서 쫓아내고 오겠다냥.]
[아이고, 그건 좋지만 가능한 한 조심히 해주시게. 행여 미령하신 백님이 깨어나실까 걱정이네.]
쿵!
침대 헤드에 딱 배를 붙이고 앉아 백을 걱정하던 안드레아가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맡겨두라냥. 다시는 얼씬도 못 하게 얼굴을 박박 긁어주고 오겠다냥.]
그 말에 더는 자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백이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켰다.
“안 돼, 안드레아! 네, 들어오세요.”
[엉? 안 되는 거냥?]
안드레아가 멈칫하는 사이 문이 드르륵 열렸다.
“마실 것 좀 가져왔어.”
침대가로 온 이현이 협탁에 쟁반을 내려놓고는 그 옆에 앉았다.
“마실 수 있겠어?”
“아…… 어, 예?”
말 같지도 않은 말이 먼저 나왔다.
이현이 바닥에 앉은 바람에 처음으로 백의 눈높이가 그보다 높아졌다.
“어…….”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이현의 생김새가 퍽 달라 보였다.
평소에는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느라 코끝이 주로 보였다. 눈을 쳐다보기 위해서는 깡총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저 높은 곳에서 차가운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고 저를 쳐다보는 이현은 매섭고 심술 맞아 보였다.
생김새가 어떤지 들여다보고 있을 새도 없었다.
그런데 입장이 반대가 되니 얼굴이 전부 눈에 들어왔다.
자로 재서 깎아놓은 것 같은 이마와 대칭이 완벽한 눈썹, 날카로워 보이지만 그만큼 반듯한 눈매. 날이 잘 선 코와 강직한 광대뼈와 모양 좋은 뚜렷한 입술.
그리고 무엇보다 표정이 보였다.
이현이라고 해서 딱딱하고 무서운 표정만 짓는 게 아니었다.
미묘하게 풀어진 표정 속에 저를 향한 걱정이 느껴졌다.
“어, 어…….”
맥이 빨라졌다. 심장이 콩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몸이,”
몸이 닿지도 않았는데.
백이 당황하는 동안 이현의 손등이 이마에 닿았다.
“열이 있는 것 같은데.”
“엇!”
백이 그대로 굳었다.
“이것도 아파?”
“자, 잘 모르겠어요…….”
조심스러운 손길은 부드러웠고 열을 재려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 아플 리가 없었다.
그런데 꼭 아픈 것만 같았다.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 아프지 않으면서도 아팠다.
‘너무…… 너무 이상해.’
어쩌면 그저 강렬한 걸까.
그래서 통각인지 다른 감각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걸까.
“열은 높지 않은데. 그래도 아프면 약을 먹어두는 게 좋을 거야. 일단 이것부터 마시고 있어.”
이현이 따듯한 찻잔을 건넸다.
김이 모락 오르는 차에서는 향긋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백이 얼떨결에 찻잔을 손에 쥐려고 하자 이현이 한마디 보탰다.
“조심해. 뜨거워. 아니면 내가 잡고 있을까?”
“어, 아니, 괜찮……,”
이현이 계속 잔을 쥐고 있는 통에 손가락이 겹쳤다.
백은 움찔 놀란 기색이었지만 손을 떼거나 하진 않았다.
“괜찮아요. 많이 뜨겁진 않아요.”
“다행이네.”
처음 만났을 때는 억지로 붙들어야만 마주할 수 있던 시선이 지금은 서로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다르구나. 이 사람은.
높이가 달라지니까 이렇게나 달라 보이는구나.
쿵쿵.
다른 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이전까지는 다른 인간들과 다를 것도 없던 이현의 눈코입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그 혼자만 너무 달라서 다시는 이 생김새를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냐아앙.”
뜨겁지 않다는 잔을 두 사람이 함께 쥔 채 서로 쳐다보고만 있자 안드레아가 가늘게 울었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냥?]
도도가 몹시 못마땅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응. 아주 많이 이상해.]
[안 뜨겁다는데 왜 계속 저가 붙들고 있냥? 백님은 왜 저걸 가만히 놔두는 거냥?]
도래가 걱정스럽게 끼어들었다.
[혹시 큰 사내의 독기가 더 강해진 거 아닐까? 그래서 백이 꼼짝도 못 하는 거 아냐?]
도도가 양 주먹을 불끈 치켜들었다.
[뭐어? 그럼 우리가 떼어놔야지. 어이, 고양이 씨! 저리 가서 저 인간 좀 할퀴어 봐.]
도래가 다급히 손을 흔들었다.
[아냐! 그러다 뜨거운 걸 쏟으면 어떻게 하라고! 백이도 다칠 거야.]
[아, 그런가? 그럼 어떻게 하지?]
[일단 백이한테 손을 놓으라고 말을 해보자.]
바싹 긴장하는 동물들을 평창동 구 씨가 말렸다.
[구우우! 아닙니다, 아닙니다! 성급히들 굴지 마십시오!]
[응? 왜 그래, 구 씨?]
[왜 말리는 거냥. 백님이 위험하다냥.]
[아니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올시다. 아무리 봐도 저건 큰 현 씨 사내가 공손히 구니 백님이 너그러이 받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으응?]
[공손히 구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큰 사내가 들고 온 저것은 꿀물이 아닙니까. 인간들은 술을 마신 다음 날 저것을 마시는 습성이 있습니다.]
안드레아가 반발했다.
[그렇긴 해도 이상한 거 아니냥? 큰 놈은 나쁜 인간 아니냥. 갑자기 왜 공손하게 굴고 난리냥.]
도도도 동감이었다.
[킁킁. 저게 꿀물이라고? 냄새가 꿀하고 다른데? 꿀물이랍시고 다른 나쁜 거 가져온 거 아냐?]
[나쁜 게 뭐냥?]
[많지. 고비도 있고 바위취도 있고. 그런 건 달여서 마시면 보름 내내 설사를 하게 만든다고.]
[헉! 그럼 저거 완전 나쁜 인간 아니냥? 아니, 그럼 어떻게 하냥. 저거 말려야 하지 않겠냥.]
[구우구우! 아니, 잠시만 더 지켜보십시다. 제가 볼 때 저건 꿀물이 확실합니다.]
[아유, 아니라니까 그러네. 냄새가 다르다고. 지리산 웅 씨 가문에서 보내주던 꿀은 냄새가 말도 못하게 진했단 말이야. 저건 그냥 달달하기만 하다고.]
[맞아, 맞아. 도도 누나 코는 정확해.]
열심히 떠드는 동물들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이쪽은 둘만의 접촉에 흠뻑 젖어 있었다.
“따듯할 때 마시는 게 좋을 텐데.”
“왜 친절하세요?”
저에게 들러붙는 백의 시선을 알알이 느끼던 이현이 느리게 입을 여는 사이 백도 말을 꺼냈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이유는 왜 묻는지 모르겠는데.”
“현이현 씨는 안 친절하시잖아요.”
“그랬나?”
“네.”
새삼 따져 묻고 싶은 게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제부터 이현은 왠지 달랐다. 화를 내고 싫은 소리를 했는데 그게 알고 보니 걱정이었다.
미혹술도 쓰지 않았는데 미혹술에 걸렸을 때만 하던 키스를 했고 오늘은 사람이 바뀐 것처럼 친절했다.
“어제는 한사코 안 취했다더니 취한 모양인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기억이 안 나?”
“안 취했어요. 저는 거짓말하지 않아요.”
“그럼 왜 기억을 못 해?”
“뭐를요?”
“내가 좋아한다고 했잖아.”
“아…….”
그래,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기억났어?”
이현의 입술이 좌우로 벌어졌다. 소리는 작았지만 그것은 웃음이었다.
“아…….”
저렇게 웃는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어이가 없어서 비틀리는 웃음과는 딴판이었다. 그런 웃음은 마음을 상하게 했다. 지금은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런 거라면 말이 될 것 같네요.”
백이 아직 이불 속에 있는 다른 손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어디든 붙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크게 보면 미혹술도 결국 이쪽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 극단적으로 짧고, 효과는 극단적으로 강해서 다른 것처럼 여겨지기 쉬웠지만.
백이 잔을 놓았다. 대신 그 손은 자꾸만 쿵쾅대는 가슴께를 꼭 눌렀다.
그렇다는 건 미혹술이 성공했다는 뜻일 거야.
둘째 언니가 주신 책에서 그랬잖아. 차도남은 유혹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고.
그간 미혹술을 여러 번 썼으니까 그게 이제야 된 건지도 몰라.
드디어 성공했다고 생각하자 가슴속이 복닥복닥 시끄러워졌다.
백은 원래도 흰 손이 완전히 새하얗게 질리도록 가슴을 꼭 눌렀다.
“그럼…… 그럼 현이현 씨는 저한테 대모동 땅문서를 주실 건가요?”
“아니.”
“아……?”
뭐지, 이건.
성공한 거 아니었어?
백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현을 쳐다보았다.
이현이 씩 웃었다. 그렇게 웃으니 개구진 소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연달아 이어지는 새로운 표정은 돌멩이 같았다. 자꾸만 날아와 퐁당퐁당 빠지며 파문을 만들었다.
“네가 날 좋아하게 만들 거야.”
“……네?”
점점 더 어리둥절해지는 백의 표정이 사랑스러웠다.
이현은 꿀물이고 술병이고 집어치우고 백을 꽉 끌어안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너도 사람을 자판기 취급하는 일은 그만두겠지.”
농담 같았지만 그렇게 쉽고 가벼운 얘기도 아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나라는 인간을 조금쯤은 무서워해도 좋을 거란 말이야.”
현이현이 진심이 되면 어떨지. 그걸 나도 모르겠어. 그래서 나도 좀 겁이 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현의 진심은 절대 쉽고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무슨 의도로 하시는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르게 말해 줄게. 손 이리 줘.”
“……?”
백은 귀를 쫑긋하면서도 다른 말이 궁금했던지 얌전히 한 손을 내주었다.
이현은 그 손을 펴서 그 위에 딱 알맞게 식은 잔을 쥐어주었다.
“마셔.”
“……?”
백은 여전히 이해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손을 내밀었던 것처럼 얌전히 꿀물도 꿀꺽 삼켰다.
다음으로 이현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지금 8시 45분이야. 그 말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회사에 늦을 거라는 말이야. 이 집 식구들뿐 아니라 회사에서도 말이 많이 돌겠지. 그런데 나는 네가 아침을 먹고 나서 약도 먹는 걸 보고 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아. 이러면 알겠어?”
깜박. 깜박깜박.
백이 부지런히 속눈썹을 흔들었다.
“어……. 저한테 계속 잘 해주시겠다는 말인가요?”
“맞았어.”
“그런데 왜 그런 현이현 씨를 무서워해야 하나요?”
“네가 달아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니까.”
시작은 네가 했지만 끝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백은 여전히 알쏭달쏭 이해가 가지 않는 이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달아날 수 있어요. 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인간은 아주 드물 겁니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쫓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러니까 무서워하란 얘기였다. 한국에서 태보그룹 3세란 원하면 얼마든지 질 나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거 마시고 있어. 아침 준비해서 다시 올게.”
계속 이러고 있다간 출근을 아예 못 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현이 몸을 움직였다.
“못 할 텐데…….”
백이 남은 꿀물을 마저 삼키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큰 놈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 백아.]
[그러게. 얼마든지 쫓아갈 수 있다니. 인간 걸음이야 여우에 비하면 남생이하고 다를 게 없는데.]
[인간은 고양이보다 느리다냥!]
동물들도 이해가 안 가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게 말이야.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통 모르겠어.”
그러면서 백이 또 꿀물을 홀짝 마셨다.
레몬 조각을 동동 띄운 꿀물은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달짝지근하고 새콤한 향기가 나는 게 굉장히 맛있었다.
“이거…… 맛있다.”
사실은 조금 알 것도 같아.
왜 달아나지 못할 거라고 했는지.
앞으로도 계속 잘 해줄 거라고 했잖아.
이 맛있는 차 같은 것들이 하나둘씩 쌓이면 달아날 때도 조금 미안해지지 않을까.
[백아. 그럼 미혹술은 성공한 게 아닌 거지?]
[그런 거 아냐? 땅문서를 안 준다고 했잖아.]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은 도도와 도래가 물었다.
“그걸 나도 모르겠어. 어머니와 언니들께 여쭤봐야 될 것 같아.”
구 씨가 냉큼 튀어나와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그런 일이라면 마땅히 제가 나서야지요! 지체할 것 없이 지금 곧장 다녀오겠습니다.]
“고마워, 구 씨. 조심히 다녀와.”
[염려 마시지요!]
구 씨가 푸드덕 대모산을 향해 날아올랐다.
* * *
텅!
단아한 백색 자기 그릇에 담긴 꿀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걸 마시라고요?”
꿀물이 담긴 그릇을 거칠게 내려놓은 라현은 가뜩이나 깨질 것 같은 머리를 휙휙 휘둘렀다.
“쯧쯧……. 손 거친 건 여전하구나. 좀 조심하지 않고.”
“부회장님께서 일부러 가져오신 꿀물인데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라현이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숙취에 꿀물이 좋다는 건 상식이겠지만 아직도 속이 울렁대서 미칠 것 같은 사람한테 냉면 사발에 가득 담아 건네면 과연 걱정해서 하는 짓인지 의심이 가긴 했다.
“그럴 거면 이딴 데서 재우지나 말든가요. 새벽에 입 돌아가는 줄 알았네.”
어제처럼 술을 퍼마셨으면 해가 질 무렵 일어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 것을 맨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잤으니 억지로 잠이 깼다.
분명 자신이 바닥에서 자는 걸 알았을 윤 실장은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는 기색이 아니었다.
“본부장님이 지시하신 일입니다. 앞으로도 술 때문에 감당하지 못할 일이 있거든 그저 내버려두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진짜! 그런 개소리를 그냥 듣고 있었어요?”
라현이 성질을 못 이겨 버럭 소리를 지르자 현 여사가 나섰다.
“어디서 큰 소린 게야. 윤 실장 네 밑에서 일하는 사람 아니다.”
“그럼 현이현 밑에서는 일하고요?”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 네 형은 회사 소속이잖니.”
“윤 실장 월급 회사에서 내줍니까?”
현 여사가 입을 가리고 호호 웃었다.
“외부인인 너는 알 거 없다. 그런 일이야 기밀이지.”
“와, 진짜!”
라현은 털끝 같은 인내를 발휘해 이태리 무슨 가문에서 경매로 내놓은 걸 사들였다는 골동품 티 테이블을 걷어차고 싶은 것을 참았다.
대신 험악해지는 표정은 참지 못했다.
“왜 이러세요, 대고모님. 가뜩이나 숙취로 죽겠는데 일부러 납시고. 그래 놓고는 사람 약 올리세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현 여사의 표정도 라현과 맞춘 듯 싹 달라졌다.
“그래. 할 말 있어 왔다.”
“진작 그러셨어야죠. 솔직하게 나오시면 쌍방이 편한 거 아닙니까.”
“그럼 둘러 말 안 하마. 어제 안 좋은 꼴 보였다는 얘기 들었다.”
라현이 콧등을 실룩거렸다.
“안 좋은 꼴이라니, 뭐가요. 제가 술 좀 먹은 게 언제부터 그렇게 이상한 일이었다고요.”
“그게 고 선생한테 허튼 짓 하려다 그랬으니 문제지. 그런 짓 하려거든 이 길로 짐 챙겨서 나가렴. 집안 시끄러워지는 꼴 다신 보기 싫다.”
“하?”
라현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누가 허튼 짓을 했다고 이러세요. 손가락 하나 안 댄 사람한테. 그리고 제가 설령 그랬다 쳐도,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 집 식구는 접니다. 고 선생이 아니라. 아무리 사람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 그렇지, 너무 싸고도시잖아요.”
“고 선생 때문이 아니야.”
현 여사가 딱 잘라 말했다.
“네 형 때문이지.”
“형이 왜요?”
“꿀물 타다 바쳤다는 얘길 듣고 오는 길이다. 그것도 이 시간에.”
“……뭐라고요?”
숙취가 그림자처럼 들러붙어 있던 라현의 안색이 까매졌다.
“현이현이 뭘 어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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