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뜻밖의 동거(1)
2017.12.23.
“이쪽입니다. 들어오시지요.”
윤 실장은 막 택시에서 내린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고풍스럽고 고즈넉한 안뜰을 지나 사랑채를 건너 가족들이 사는 안채로 가는 길 내내 괜히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이유를 대자면
“실례합니다. 대모동 고 씨 가문 32대손 백이라고 합니다.”
라고 예의바르게 인사를 마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너무 예상외의 인물이기 때문일까.
처음에는 당연히 사기꾼이겠거니 했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니. 영어로 하면 그럴듯하게 들릴지 몰라도 해석하면 동물과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도 안 믿을 얘기였다.
그야 안드레아 걱정으로 날마다 속이 바작바작 타들어간다는 부회장을 보다 못해 속는 셈치고 한번 보자 했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면 언제라도 냉큼 내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부러 눈을 매섭게 세우며 대문을 열었다. 그랬는데 아뿔싸.
속된 말로 선녀가 서 있었다.
택시 타고 왔어요, 라는 말이 왜 구름마차를 타고 내려왔지요, 라고 들리는 걸까.
쳐다보고 있으면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공손하고 예의바른 말투는 듣기만 해도 흐뭇하면서 한편으로는 애간장을 녹였다.
한 가지 뜬금없는 것을 꼽자면 어깨에 웬 비둘기 한 마리가 조심스레 앉아 있다는 것이었는데, 워낙 자태가 곱고 단정한 탓에 그마저도 썩 어울리는 듯했다.
“그 비둘기는 웬…….”
“아, 도움을 많이 받은 고마운 친구라 함께 왔어요. 안까지 동행해도 될까요?”
“비둘기는 비위생적인 동물이고 그렇다 보니 집 안까지는 데리고 오는 것은 안…… 되지는 않고 될 겁니다. 청소를 더 신경 쓰면 되겠지요. 어서 들어오십시오.”
자기가 해놓고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하여간 윤 실장은 자꾸만 나오는 헛기침을 삼키며 고풍스럽고 고즈넉한 안뜰을 지나 사랑채를 건너 현 씨 가족들이 사는 안채로 왔다.
고백이라는 이름의 어여쁜 아가씨가 “참 좋은 곳이네요. 인간 세상의 탁기가 적어요. 집을 지을 때 터를 아주 정성스럽게 다진 모양입니다.”라고 칭찬을 했을 때는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사기꾼 어쩌고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싹 다 지워질 뻔했다.
윤 실장은 잠시만 정신을 놓으면 느슨하게 풀리는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느라 연신 헛기침을 해야 했다.
“부회장님.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윤 실장이 안채의 거실로 이어진 장지문을 열었다.
한옥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살려둔 사랑채와는 달리, 실제 생활을 하는 안채는 편의성을 살려 입식 위주로 개축이 되었다.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는 한옥의 그것이었지만 서까래가 드러나는 널찍한 거실에는 보료 대신 앤티크 소파를 놓은 식이었다.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고백이라고 합니다.”
백이 단아하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자 현정숙 여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마. 이런 예쁜 선생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안 그래요, 윤 실장?”
잘하면 입도 헤 벌리겠다 싶은 얼굴로 백을 쳐다보던 윤 실장이 목을 가다듬었다.
아까 전부터 백을 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훈훈해지고 말랑말랑해지는 것이 엄격한 표정을 유지하느라 아주 죽을 맛이었다.
“험험. 그렇습니다, 부회장님.”
“그런데 그 비둘기는 웬 거지요? 길 안내라도 받은 건가.”
현정숙 여사가 농담처럼 한 말에 백의 옆에 앉아 있던 비둘기가 자랑스레 가슴 털을 부풀렸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얘기이지만 종로구 터줏대감으로 지내온 세월이 벌써 십오 년째.
그 세월만으로도 무게감이 넘치는 조생이었는데 최근에는 하늘이 큰 길을 열어주셨다.
무려 서울 땅 유일한 영수 일족인 저 고귀하디고귀한 대모산 백여우를 보좌하는 일이었다.
어찌 가슴이 부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호호. 그냥 해본 말인데 선생님을 보면 어쩐지 말이 되는 것도 같네.”
윤 실장은 혹시라도 현 여사가 비둘기의 위생 부분은 염려할까 봐 재빨리 끼어들었다.
“부회장님. 지금 다과를 준비해 올릴까요?”
“아니요. 손님대접을 해야겠지만 내가 지금 좀 마음이 급해서. 일단 안드레아부터 보고 얘기를 하도록 하죠. 그래도 괜찮으세요, 고 선생님?”
백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기다리느라 많이 힘들었을 텐데요. 저도 어서 보고 싶어요.”
현정숙 여사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드레아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뒤부터 버릇이 되다시피 한 일이었다.
“그제까지는 그래도 종종 내 곁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기운도 없는지 제 방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안 해요. 안드레아 방은 2층인데 지금 같이 올라가 보겠어요?”
“예.”
윤 실장이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이쪽으로,”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냐아아아아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서 안드레아가 달려오고 있었다. 어찌나 날쌔게 달려오는지 꼬리털이 휘날릴 정도였다.
[이제 오시는 겁니까냥! 그간 제가 얼마나 배가 고팠는데냥!]
다시 한번 말하자면 안드레아는 도도하고 포악하기 이루 말할 데 없는 고양이였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윤 실장도 한번 쓰다듬기가 어려웠고, 몇 년씩이나 출장을 오는 팻 미용사도 발톱 한번 깎으려면 반나절은 족히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안드레아가.
현 여사 외의 인간이라면 늘 콧등으로 내려다보던 저 거만하고 까칠한 고양이가.
“냐아!”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안겼다.
안겼다기보다는 전력으로 달려와 온몸을 내던지는 것 같았다.
“냐아, 냐아.”
그것도 모자라 이마를 여기저기 부비며 온갖 반가운 표시를 냈다.
[제가 말이다냥 일주일을 굶지 않았겠어냥. 아주 그냥 머리는 어지럽고 뱃속은 간지럽고 죽는 줄 알았어냥. 왜 이제 오신 걸까냥. 말로만 듣던 백여우를 뵙게 되어 영광이올시다냥. 어쩜 이리 냄새도 좋을 걸까냥.]
배고픔과 반가움에 반쯤 눈이 먼 안드레아가 호들갑을 떨자 평창동 구 씨가 점잖게 주의를 주었다.
“구우, 구우!”
[이보게나. 대모산 백여우를 뵙고 그 신령하고 영험한 자태에 넋이 나간 건 이해 못 할 바가 아니지만 자네 지금 환자 노릇 중 아닌가. 자제하시게.]
[앗, 맞다냥. 나 우울증 걸린 중이다냥. 기운 없어야 한다냥.]
[행여나 들키지 않게 조심 해주시게. 내 그간 이웃집 고양이 사료며 간식이며 틈틈이 물어다주지 않았나.]
[아유, 그걸 누구 코에 붙이냥. 아무튼 이제는 먹어도 되는 거 아니냥?]
[아닐세, 아직 아니야. 얼굴 한번 뵈었다고 냉큼 싹 나아버리면 이 집에 계속 머무실 수가 없지 않은가?]
[흐어어엉. 내가 진짜 대모산 백여우님 일이니까 발 벗고 나선다냥. 그러니까 저 좀 많이 귀여워해주시라냥.]
냐앙냐앙, 괴성을 지르던 안드레아가 이제는 눈물을 글썽대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저런, 저런. 울지 마. 그래, 그간 배가 많이 고팠구나. 이제 내가 왔으니까 다시 밥 많이 먹자.”
백이 상냥하게 안드레아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고양이와 비둘기가 서로 난리가 났다.
“냥냥!”
“구우 구우!”
그 모습을 본 한낱 인간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인가 봅니다, 부회장님.”
“그런 것 같죠?”
현 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일단은 좀 두고 봅시다. 집에 들일 사람 그리 덥석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물론입니다, 부회장님.”
* * *
“오늘 저녁은 게를 준비하라 했어요. 우리 안드레아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라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백이 도착한 지 다섯 시간 만의 일이었다.
현정숙 여사는 백의 입주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예. 잘 먹겠습니다.”
백은 곱게 나이가 든 현정숙 여사를 마주하며 생긋 웃어 보였다.
인자하고 선량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름이 있는 미간을 보면 고집과 강단이 있는 성격인 듯했지만 바탕은 넉넉했다.
‘그 사람의 고모할머니라고 했지. 인간은 한 핏줄이라고 해도 참 다르게 생겼구나. 그리고 성격도 많이 다르고.’
자연스럽게 생각은 이현을 향해 이어졌다.
무릇 인간이라면 이처럼 영수를 환대하는 것이라 들었는데 어째서 이현만 다른 건지, 그런 생각을 잇는 동안 마음 한 구석이 따끔해졌다.
-이젠 다신 볼 일 없겠네.
그리고 선뜻 돌아서 버린 등.
한 번도 뒤돌아보는 일 없이 성큼 떠나버리던 등을 생각하면 지금도 누군가 마음을 꾹 밟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쩐지 눈물이 고일 것 같아 백은 식탁 아래 손을 꼭 쥐었다.
‘아냐, 이러면 안 돼. 어떻게 하면 이 집으로 불러들일 수 있을지 생각해야지.’
백은 이현을 생각하면 오르는 열을 가만히 참았다.
“그런데 이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아, 뭐 꼬투리 잡자는 건 아니고. 흔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궁금해서 그래요.”
식탁을 사이에 두고 현 여사는 백을 요모조모 뜯어보며 계속 말을 건넸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동물이 하는 말은 언제부터 알아들었고?”
“그건 태어날 때부터요.”
“그걸 어찌 알았나요? 어떤 계기로?”
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계기라니. 영수가 짐승 말을 알아듣는 당연한 일인데.
“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인간에게 태어나서 어떤 계기로 말을 익히게 되었냐고 물어보시는 것과 같은 질문일 것 같습니다.”
“저런.”
무슨 생각에선지 현 여사가 어깨를 으쓱댔다.
“그리 말하는 걸 보면 통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다 믿자니 참 어렵네. 내가 사람을 대해본 경험이 많아 그런가. 사람 말이 속내하고는 다른 경우가 더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미간에 가는 주름이 돋았다.
본인 말대로 이 커다란 회사를 오래도록 꾸려온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 고집과 강단에는 백이 겪어보지 못한 의심과 불신도 함께 있을 터였다.
“이런 얘기 불쾌해요?”
백이 눈을 깜박였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물으시는 것은 제가 정말로 안드레아와 얘기를 할 수 있는지 믿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요. 마냥 순하고 고운 줄만 알았는데 영리하기도 하네. 맞아요. 나는 고 선생님을 믿고 싶어요. 무엇보다 우리 안드레아가 그렇게나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니.”
“냐아.”
제 이름이 나오자 안드레아가 건너편 의자에서 폴짝 뛰어와 백의 손등을 톡톡 쳤다.
[신경 쓰지 말라요냥. 원래 인간은 쓸데없이 의심병이 많다요냥.]
“아냐, 안드레아. 둘째 언니도 그럴 수 있다고 했어. 그럼 네가 좀 도와줄래?”
[냐앙? 말씀만 하시라냥.]
“음…… 네가 얘기를 해주면 좋을 것 같아. 이 집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런 얘기.”
[아유. 그게 뭐가 어렵겠어냥. 제가 이 집에 온 게 생후 칠 주때 되는 해였는데냥 ……래서 이랬고냥 ……에는 저랬고냥…….]
백이 안드레아와 눈을 맞추고 뭔가 진지하게 얘기를 주고받자 사람들이 일제히 식탁을 주목했다.
현정숙 여사와 윤 실장뿐 아니라 식사를 차려주고 있던 주방 도우미들도 마찬가지였다.
안드레아가 한참 냥냥대며 수다를 떨고 나자 백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안드레아가 생후 칠 주째 여기로 왔는데 그때 처음 썼던 침대가 별로였대요. 뼈다귀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요. 고양이는 뼈다귀를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 것도 모르는 교양 없는 집에 오게 된 줄 알고 밥맛도 잃고 종일 우울했대요.”
“어머나, 어쩜!”
커다란 접시에 갓 삶은 뜨끈뜨끈한 게를 담던 화성댁이 입을 딱 벌렸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그 침대를 준비한 것은 그녀였다. 근처 팻샵에 있던 것 중 가장 푹신하고 비싼 놈으로 골라왔다.
설마하니 고양이에게 그런 심오한 종적 정체성과 미적 취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미안해서 어쩌지. 나는 그런 것도 몰랐네.”
어쩔 줄 몰라 하는 화성댁을 두고 현 여사가 백을 채근했다.
“그래서. 더 해봐요.”
“그런데 하루 종일 밥을 안 먹었더니 그 다음날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게 식사로 나왔대요. 그게 게였나 봐요. 그 뒤로 게만 나오면 입맛이 돈대요.”
“어쩜.”
화성댁에 이어 제천댁도 입을 딱 벌렸다.
고양이란 모름지기 비린 걸 좋아하기 마련이라며 마침 그날 올라온 제철 대게를 간식으로 내주었던 게 그녀였다.
“제일 맛있는 건 몸통이래요. 살도 좋지만 몸통을 삭삭 핥아먹는 게 맛있으니까 다음부터는 그것도 함께 달라네요.”
짝, 짝, 짝.
윤 실장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잘 발라서 소복이 쌓아올린 게살을 놔두고 몸통을 너무 핥아대는 바람에 장난감으로 여기나 싶어 그 다음부터는 살만 주라고 지시했던 게 윤 실장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모두 맞습니다.”
안드레아가 뭐라고 냥냥거렸다.
그러자 백이 윤 실장을 향해 조금 난처하게 웃었다.
“게 몸통에 밥 비벼먹는 걸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윤 실장님이라면서 자기한테는 일부러 살만 주는 게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대요.”
“헙…… 무,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
현 여사가 한마디 보탰다.
“윤 실장이 게 껍질 좋아하는 거야 나도 잘 알지. 그나저나 우리 안드레아 정말 똑똑한 고양이였구나.”
“냐아아.”
안드레아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쩜. 고 선생님이 있으니 안드레아가 내 말도 알아듣는 것 같네.”
현정숙 여사가 식탁에서 일어나 백의 옆자리로 다가왔다.
주름진 고운 손이 백의 손을 꼬옥 잡았다.
“고 선생님. 일단 식사를 마치고 얘기하자 하고 싶은데 내가 이런 일에는 성격이 급해놔서. 그럼 우리 연봉 얘기 좀 해볼까요?”
그때였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백에게도 익숙한, 사실 너무 생각이 나서 곤란한 목소리가 식당을 가로질러 날아든 것은.
“어차피 사기꾼입니다.”
언제 왔는지 이현이 팔짱을 낀 채 현 여사 너머 백을 쳐다보고 있었다.
매섭고 날카로운 시선이 백에게 화살처럼 꽂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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