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꼬리쳐주세요-3화 (3/68)

#03. 키스 다음에는

2017.12.09.

“백아. 아가. 너 왜 그러니. 어디 아픈 게냐?”

얼굴이 빨개진 채 말을 잇지 못하는 백을 본 모친이 걱정스레 물었다.

“어…… 아니에요, 어머니. 저는 괜찮습니다.”

백은 행여나 가족들을 걱정하게 만들까 봐 거짓말을 했다.

“정말이야? 볼이 너무 빨간데? 열이라도 나는 거 아냐?”

둘째 언니가 이마를 짚었다.

백은 고개를 저으며 언니의 손을 물렸다.

“정말 괜찮아요, 둘째 언니.”

“음…… 머리는 안 뜨겁네. 그럼 왜 얼굴이 빨…… 아, 이젠 다시 가라앉네.”

큰언니가 끼어들었다.

“인간 세상에 다녀와서 고단한 거 아냐? 백이는 처음이었잖아.”

“하긴.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럼 얼른 얘기 끝내고 쉬게 해줘야지. 백아, 마저 얘기해 봐. 그 현 씨 놈이 어찌 굴었다고?”

대답에 앞서 백은 입 안이 깔깔하게 마르는 것을 느꼈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미혹술에 걸린 인간은 영수에게 더없이 공손해진다 하셨잖아요? 그런데 현 씨 사내는 그 반대로 몹시 불손하게 굴었습니다.”

자애롭고 근엄한 모친이 당장 자리를 박찰 기세로 목에 핏대를 세웠다.

“뭐라고? 불손해? 아니 그런 쳐 죽일 놈을 보았나! 한낱 인간 주제에 감히 영수에게! 내 당장 가서 그놈 모가지를 물어뜯을 테다!”

깜짝 놀란 큰언니가 모친을 만류했다.

“엄마, 엄마. 진정해요. 막내 놀랄라.”

둘째 언니도 같은 생각이었다.

“엄마 성질은 어째 막내가 이만치 자랄 동안 나이도 안 드우. 얘기는 마저 들어야지. 불손하다면 어찌 불손하게 굴었는데? 여우는 동물원이나 가라 그러디?”

동물원이라는 말에 큰언니와 모친이 진저리를 쳤다.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천박하며 끔찍한 말을 들었다는 식이었다.

“아니요.”

“그럼 뭐라 했는데?”

백이 곤란한 듯 입술을 살짝 물었다. 그러다 그 입술에 남은 이현의 감촉을 떠올리고는 화들짝 제 풀에 놀랐다.

“말로 한 게 아니고…… 불손한 행동을 해서…….”

“불손한 행동? 올가미를 꺼내들디? 아니면 덫?”

조금 진정됐다 싶은 모친이 또다시 쿵, 대청마루를 뒷발로 걷어차며 일어섰다.

“무에야, 올가미? 덫? 이런 쳐 죽일 인간이!”

큰언니가 앓는 소리를 내며 모친을 붙드는 동안 백이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제가 여우인 걸 알아챈 것은 아닌데…… 그런데 너무 세게 붙들어서요.”

“붙들었다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뭘 어쩌디?”

“턱도 잡고…… 그리고 음…… 입을…… 어, 그러니까 자기 입으로……,”

과연 그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백이 망설이는 사이 둘째 언니가 갑자기 박장대소했다.

“아이고, 이것아!”

가족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쳐다보는 사이 가족들 중에서 인간 문물에 가장 박식한 둘째 언니는 백의 등짝을 찰싹 내리쳤다.

“아이고, 얘! 그러다 백이 잡겠다! 이게 무슨 짓이야?”

“그리고 왜 혼자 처웃는 게야? 말이나 좀 하고 웃든가.”

큰언니가 화들짝 놀라 백을 감싸 안는 동안 모친이 정색을 하고 둘째 언니를 채근했다.

그래도 둘째 언니는 쉽사리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니, 다들 이게 안 웃겨? 얘가 지금 무슨 소리 하는 줄 모르겠어?”

“너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고만 웃고 똑바로 얘기를 해봐.”

둘째 언니가 혀를 끌끌 찼다.

“나 참. 다들 나이를 그렇게 드시고도 어째 이리 순진할까그래. 지금 현 씨 사내가 접문했다지 않아! 미혹술이 아주 잘 먹힌 모양이네.”

순진하다는 말에 내가 방년 몇 살인 줄 아냐며 발끈하려던 모친과 큰언니가 표정을 바꿔 반색을 했다.

“으응? 그게 그 소리야?”

“가만. 듣고 보니 그러네. 오라, 그러면 미혹술이 성공한 게 맞구나.”

백이 발개진 얼굴로 혼자만 모르겠다는 태를 냈다.

“접문이라니…… 그게 뭔가요, 둘째 언니?”

둘째 언니가 또다시 혀를 찼고, 이번에는 큰언니와 모친도 합세했다.

“쯧쯧.”

“쯧쯧. 아무리 어리다지만 그래도 여우로 태어나 어째 인간 생리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을꼬.”

둘째 언니가 두 여우에게 핀잔을 주었다.

“에그. 그거야 엄마부터 시작해서 다들 막내라고 내내 싸고돌아 그런 게지.”

모친이 입을 비죽거렸다.

“아, 그야 우리 막내가 하산할 일이 생길 줄 알았겠느냐.”

“뭐 그건 그렇다 칩시다.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니.”

백이 손을 뻗어 둘째 언니의 앞발을 쥐었다.

“저, 둘째 언니. 얘기를 좀 더 해주세요. 미혹술이 잘 먹혔다는 것은 성공했다는 말인가요?”

“그래. 사내라는 게 원래 눈이 돌아가면 그런 짓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런 짓이라면 어떤 걸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요?”

“뭐 간단히 말하면 현 씨 사내가 하는 그런 짓이지. 거야 내 암만 말해줘도 모른다. 다 자연스레 벌어지는 일이니.”

백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공손히 굴지도 않고 공물을 바치겠다는 말도 없었는데요.”

“그게 세월이 흘러 그래. 인간 세상이 열두 번도 더 바뀌었잖니. 공물이 뭔지도 모르는 상것들이 넘쳐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큰언니가 헤죽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미혹술이 성공했다면 이제 다 된 거 아냐? 그럼 이제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는 거야?”

모친은 그새 지엄한 평소의 자태를 회복했다.

“아서라. 현 씨 인간이 공물을 바칠 때까지는 마음 놓아서는 아니 된다.”

둘째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지. 백이가 한 번 더 산을 내려가야지.”

백은 아직도 붉은 뺨을 손등으로 식히며 걱정을 드러냈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혹술이 성공했다 하시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고요.”

둘째 언니가 백을 다독였다.

“얘, 그런 건 걱정 마라. 이 언니가 그간 인간 문물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겠니. 이제 생각해 보니 막내가 이리 순진한 줄 몰랐던 우리들 잘못이지 뭐야. 이번에는 확실히 성공하도록 계획을 좀 세워보자. 기다려 보아.”

말을 마친 둘째 언니가 총총 제 방으로 달려가 이윽고 뭔가를 입에 물고 나왔다.

둘째 언니가 바지런히 읽고 공부하는 인간의 문물이 담긴 책들이었다.

겉장이 알록달록하니 그림이 많고 뭔지 모를 글자들도 종종 보이는 그것은 지난 호 코스모폴리탄이었다.

“마침 좋은 게 있지 뭐야.”

때마침 [모태솔로인 당신이 차갑고 도도한 그 남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법]이라는 특집 기사의 타이틀이 겉표지에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모태솔로가 뭐니? 어느 시대 사자성어야, 그게?”

큰언니가 묻자 파라락 페이지를 넘기던 둘째 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자성어가 아니라 외래 문자유. 우리 백이처럼 순진하디순진한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이지. 그러게 언니도 책 좀 읽어. 만날 백화점 카탈로그만 보지 말고. 그런데 어디…… 아, 여기. 찾았다.”

특집 기사가 실린 페이지를 펼친 둘째 언니가 낭랑한 목소리로 인간들의 문자를 읽기 시작했다.

“[차갑고 도도한 도시남자일수록 마음을 여는 데 전략이 필요한 법. 에디터가 연애고수들에게 물었다. 모태솔로 당신이 차도남을 사로잡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열 가지.]”

큰언니가 이번에는 에디터가 뭐냐고 물으려다가 관두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열 가지나 된다고? 그걸 다 해야 해?”

“아니. 그럴 만한 시간이 없잖수. 그러니까 가장 효과가 강한 걸 하나 써야지.”

둘째 언니가 특집 기사의 가장 아래를 손톱으로 짚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

백이 언니들의 어깨 너머로 뻐끔 고개를 내밀어 둘째 언니가 가리키는 인간들의 문자를 읽었다.

거기에 쓰여 있는 글은 다음과 같았다.

[상기 아홉 가지 방법이 다 소용없었다면: 그렇다면 인정하자. 이제 당신에게 남은 것은 모태솔로의 수줍음을 버리고 과감히 나서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한밤중에 그를 초대해 보라. 여기서 포인트는 당신의 목적을 솔직히 드러내는 의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에디터의 취향은 단연코 순백의 가운. 물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 * *

“으흠, 크음.”

뒷좌석에 앉은 보안팀 박 과장이 연신 헛기침을 흘렸다.

푹신하고 매끈한 가죽 시트는 분명 제 값을 하고도 남았지만 박 과장은 집에서 회사까지 가는 길 내내 차라리 트렁크에 실려갔으면 더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앞좌석에 앉아 운전을 하는 사람이 경영기획팀 본부장 현이현이었으므로.

“크흠, 큼. 에에…… 이거 참.”

창업주 현성태 회장의 둘째 손자. 듣기로는 조부에게서 가장 큼직한 몫의 알짜배기 재산을 물려받은 차기 실세라고 했다.

유별난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몇 년 안에 사장 직함을, 그 뒤로는 부회장을 거쳐 그룹 총수가 될 가능성이 차고도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스토커가 생겼다.

그래서 개인 경호가 필요해진 것도, 출퇴근길은 물론 그 외 어디라도 24시간 밀착 동행해야 하는 일까지 모두 괜찮았다.

괜찮지 않은 것은 이런 상황이었다.

“보, 본부장님이 굳이 운전을…… 이거 참. 제가 당장이라도 차 세우고 운전대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허허, 시트에 압정이라도 뿌려두셨나. 왜 이렇게 엉덩이가 따끔따끔한지. 이거 참.”

게다가 박 과장에게 현이현이라는 인물 자체가 껄끄럽기 짝이 없었다.

부친 때부터 박 과장은 태보그룹 오너 일가의 전담 경호팀을 맡고 있었는데, 머리가 굵어진 둘째 손자가 집안 대소사에 입김을 낼 수 있게 되자 경호팀을 아예 싹 다 없애버렸다.

그나마 박 과장은 오너 일가와의 오랜 인연으로 날백수가 되는 대신 본사 보안팀에 한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말이 좋아 보안팀이지 말단 직원 하나 없는 생색내기 부서였다.

보안팀장 박 과장이 하는 일이라고는 봐도 봐도 똑같은 CCTV 돌려보기, 새로 입사했다는 택배 기사들과 안면트기, 가끔 고참 경비원들과 음료수 내기 사다리 타기 정도였다.

그런고로 이름만 들어도 왠지 속이 불편해지는 인물이 현이현이었는데, 졸지에 잠자는 시간 빼고는 내내 붙어 다니게 생긴 것이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그것까지도 괜찮았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부분은 현이현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남이 운전하는 차 안 좋아합니다. 그리고 압정은 안 깔아뒀습니다.”

저런 말을 들었다고 해서 기합이 바짝 들어간 엉덩이가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박 과장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말을 보탰다.

“혹시 모르고 계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저 운전 매우 잘 합니다, 본부장님.”

리어 뷰 미러로 힐긋 시선이 날아왔다.

“그래서요?”

“예? 아니, 그게…… 그야 물론 저희 본부장님께서도 참 운전 잘하시고 거참 이 세상에 못 할 게 대체 뭐가 있냐 싶지만 말입…… 아, 아닙니다.”

박 과장이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 별다른 말없이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이렇게 말문을 콱 틀어막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운전하시느라 고생 많으신데 더는 방해 안 하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이제 시선이 떨어지나 싶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불편은 이제 시작이었다.

“스토커 신원파악은 하셨습니까?”

“예……? 아, 아니 설마 그게 그리 쉽겠습니까?”

불시에 약점을 찔린 박 과장이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서울 인구가 얼마나 하는 줄 알고는 계십니까? 자그마치 천만이 넘습니다, 천만이! 그중 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젊은 여성만 추려낸다 해도 얼추 이백만은 될 텐데! 그걸 이름 하나 가지고 하루 만에 알아내라니요!”

“CCTV 확인한 뒤 방문자 명단과 대조하는 일이 하루로 부족합니까?”

박 과장은 새삼 현이현이 어떤 인간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내를 떠도는 평은 뭐 하나 잘못된 게 없었다.

칼 같은 원칙주의자면서 철저한 실리주의자. 머리 회전은 빠르고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죄다 직구. 무시무시한 워커홀릭에 철저한 자기관리형 인간.

그래서 외모며 학력이며 재력이며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인간이지만 정작 인간 같지는 않은 인간.

그게 현이현이었다.

“그, 그게…… 하는 중입니다. 정말입니다, 본부장님. 다만 눈알 빠져라 밤새 쳐다봐도 말씀하신 인상착의와 일치하는 사람이 없어서…… 아, 진짭니다. 진짜.”

이현은 아직 변명까지 가지도 못한 말을 툭 잘랐다.

“빨리 하십시오. 기다리는 것도 안 좋아합니다.”

“그럼 대체 좋아하는 게 있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 아, 아닙니다. 예, 빨리 하겠습니다.”

가능한 대로 말입니다. 가능한 대로.

박 과장이 이어지는 혼잣말을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 시내에서 이름 하나로 사람을 찾아내라는 것은 저를 괴롭히기 위한 고문 같았다.

더군다나 스토커를.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조금 수상한 게 정말 스토커가 있는지도 따져봐야 할 것 같았다.

스토커라면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감당 못 할 수준의 문자 메시지라든지, 협박성 편지라든지 한 발짝 더 나아가 불법 주거침입이라든지 하는.

하지만 그간 현이현의 주변에서 저런 일이 있었다는 얘기는 맹세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박 과장이 입술을 실룩이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스토커가 확실하다면 신고를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아침저녁으로 본부장님 차 좀 얻어 탄다고 해서 스토킹을 그만둘 리도 없고요. 스토커라는 족속이 워낙 악질이지 않습니까. 질기기라면 개껌보다 더 하고요. 그건 저 같은 보통 사람이 해결할 게 아니라 공권력이 개입해야지요. 물론 진짜 스토킹이 있다면 말입니다.”

힐긋, 또 그렇게 시선이 넘어왔다.

박 과장은 자꾸만 앞으로 튀어나가던 입술을 황급히 밀어넣었다.

“아이고, 물론 진짜 있겠지요. 제가 감히 본부장님 말씀하신 걸 막 의심하고 그러는 건 절대 아닙니다. 암만요.”

“신고는 안 할 겁니다.”

박 과장의 입장에서는 신고를 해서 깔끔히 끝내는 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길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그게…… 하시는 게 좋을 텐데요. 물론 제가 이 한 몸 바쳐 성심성의껏 본부장님을 지켜드릴 테니 걱정하실 게 하나도 없지만 말…… 윽,”

갑자기 차가 홱 꺾이는 바람에 박 과장은 혀끝을 깨물었다.

“그것 참 운전이 거치십…… 아니아니, 말이 잘못 나갔습니다. 운전 참 잘하십니다, 본부장님. 특히 코너링이 환상적이지 뭡니까.”

혀 좀 씹다보니 어느덧 지하 주차장의 진입로였다.

지상의 임원전용 주차장도 현이현이 없앤 것 중 하나였다.

“박 과장님이 하실 일은 두 가지입니다. 스토커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과 스토커가 나타났을 때 붙잡아 두는 것.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음? 직접 경찰에 넘기시려고요?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요?”

“경찰도 필요 없습니다.”

철컥.

그사이 주차를 마친 이현이 차문을 열고 먼저 내렸다.

박 과장이 화들짝 엉덩이를 떼었다.

“아이고, 본부장님. 문이라도 제가 열게 놔두시지 않고서요. 동작은 또 왜 그리 빠르셔서.”

이미 늦은 얘기였다. 이현은 벌써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다.

박 과장이 후다닥 달려가 간신히 이현을 따라잡았다.

“후아, 후……. 설마 직접 손봐주시려고 하는 겁니까? 그 뭐냐, 그런 다음에 매값 좀 건네고요? 에이, 아무리 스토커가 악질이고 본부장님은 돈이 많으시다지만 영화를 너무 보신 거 아닙,”

“아닙니다.”

이현은 들어봤자 절반은 쓸데없는 박 과장의 말을 빠르게 잘랐다.

박 과장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부루퉁한 얼굴을 했다.

“아니라니…… 예, 그것 참 퍽 다행인 일입니다만 그렇다면 대체 신원확인은 왜 하라고 하십니까? 이도저도 안 하실 거라면서요.”

지잉.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이현이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 과장은 엘리베이터가 이현에게 무슨 장면을 연상시키는지 죽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글쎄요.”

사실 이현도 알지 못했다.

스토커를 붙들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싶은 건지.

“일단 붙잡는 게 우선입니다.”

붙잡으면 그 다음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과 그 스토커 사이에 놓인 팽팽한 무언가의 실체를.

하지만 스토커는 사흘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이현은 몰랐지만 그동안 백은 그를 한층 더 팽팽하게 잡아당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Privat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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