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화 (104/109)

26-3.

삼라의 하늘은 땅에서 보면 맑고 고요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하늘에 서본 자는 안다.

그 하늘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그 하늘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 겉보기로는 가장 

아름다운 곳, 은하의 한복판에서 천군과 지한은 육신이 흩어진 채 의념만으로 서로를

향해 보패를 부딪쳤다.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은하를 흐르는 만상의 욕망이 함께 흔들린다. 삼라의 젖줄이

출렁인다. 무량과 무극이 일렁인다.

ㅡ아직도 몰라?

지한이 묻는다. 천군의 보패가 움찔 뒤로 물러난다.

ㅡ아직도! 아직도?

가까스로 버티면서 천군이 되물었다.

ㅡ뭘 말하고 싶은 거야!

ㅡ단 한마디면 돼. 정말로, 정말로 내가 듣고 싶었던 말 한마디면 돼. 난 이미 약속했다.

이길 생각 없어. 그러니까, 쉽게 갈 수 있게 나를 보내줘. 누구든, 나에게 한마디만 해줘!

모든 것을 결심해놓고도 지한은 아직 한 가닥 남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누군가가 내게 말해다오. 죽어도 미련이 남지 않도록 제발 말해다오.

ㅡ뭘 원해!

천군은 여전히 중극 직전에서 멈칫거리고 있다.

그때, 은하를 흐르는 만상의 소리를 넘어,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수안니와 염마라견이

뒤엉키는 아찔한 소리를 뚫고 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죽지 마, 라고.

은하의 격류가 순식간에 그 소리의 여운을 휘몰아 멀리 데려가 버린다. 그러나 들었다.

그래서 지한은 웃는다.

들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소리다. 누구든 내게 말해주기를 원했던 소리를.

죽지 말라고. 죽지 말고 살아달라고.

그리하여 지한은 미련을 버린다.

그리고 천군은, 그 순간에 중극을 넘는다.

이곳은, 까마득한 천공의 하늘강 속, 휘몰아치는 은하의 격류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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