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109)

15-3.

수궁도에 이르기를, 선총은 생사의 문제이니 결코 몸과 마음을 모두 열어서는 안 된다,

다만 삼 푼이라도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다. 열락에 빠지면 생기가 흘러나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 때문이다. 선인의 방중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탐하면 생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 때문에 음계를 어기게 되더라도 절대 혼을 놓지

말라는 경고가 방중술과 관련된 정도선인들의 경전에서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두 사람 중 누구도 그 경고를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고통과 위로,

흐느낌과 보듬기로 시작된 관계가 점차 애타는 전희로 이어졌다. 교접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나 그 때문에 더욱 위험해지고 있었다.

교접을 앞둔 전희는 여자의 음기를 일깨우기 위한 것으로 차를 마시기 전에 찻잔을

데우는 것과 같이 온도를 맞추는 정도가 가장 적당하며 그 이상이 되면 이른바

과유불급의 상태에 이른다. 불이 지나치게 뜨겁고 문은 지나치게 활짝 열리고 물은

지나치게 흘러넘친 상태.

가스라기는 반쯤 죽은 듯이 늘어져 가슴만 들먹거렸다. 천군은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찐득한 물을 빨아 마시고 있었다.

차 한 잔 마실 만큼의 시간 동안 머물러 있었으면서 아직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의 몸속에서 달궈진 간지러움과 열기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커져서 이제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갈수록 눈앞이 흐릿해지고 온몸의 구멍으로 무엇인가가 솔솔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첫 번째 선총을 받을 때는 두 몸의 결합이 이루어진 뒤에 비로소 생기가 빠져나갔는데,

이번에는 이른바 외음지벽을 통해 그 일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생과 사의 중간에 

위치한 구유의 바다를 떠도는 것처럼 의식은 몽롱해지고 맥박은 불규칙해지고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야 할 살아야겠다는 의지까지도 물에 풀린

소금처럼 자취가 없어진 상태.

꿰뚫리는 고통이 없는데도 지난번처럼 그런 상태에 빠져들어 쌔액쌔액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가스라기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날 자신을 죽음의

바닥에서 끌어올려준 호흡이었다.

그때‥‥‥ 그때도 이렇게 하니까‥‥‥ 죽지 않았어. 살았어. 이번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것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녀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가스라기가 모태에서 배우고 그 안에서 숨쉬었던, 태식호흡이었다. 숨쉬는

법을 바꾸자 신기하게도 조금씩 눈앞이 또렷해졌다. 들리지 않던 귀도 한 겹의 막을

걷어낸 것처럼 맑아졌다. 하늘님의 얼굴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으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응, 응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님의 손이 등 밑으로 들어왔다. 다리 사이에 뜨거운 것이 와 닿았다. 몸속의 

멍울이 좀 더 단단해지고 참을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올랐다. 가스라기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태식호흡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늘님의 몸이 파고 들어오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떠버렸다. 고통과 열락을 동시에

주는 그 무엇이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부풀어 오른 멍울은

이제 들끓기 시작했고 곧 폭발을 일으킬 것 같았다. 그녀는 정신없이 하늘님의 몸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죽어도 좋다고 했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살기

위해 가스라기는 숨을 쉬었다.

여덟 번의 긴 호흡과 두 번의 짧은 호흡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동안, 그녀의 몸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을 것 같던 고통이 점점 무뎌지더니

물에 녹은 듯이 사라지고, 몽롱하던 머리가 점차 맑아졌다.

가스라기는 눈을 떴다. 신기하게도 사물이 전보다 선명해 보였다. 하늘님의 이마를

촉촉이 적신 땀이 한 방울 한 방울 또렷이 보였다. 청각까지도 예민해진 것 같았다.

하늘님의 신음 소리는 물론이고, 그의 몸이 들어왔다 나가며 일으키는 질척한 

마찰음까지도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것처럼 또렷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 속에 들어온 그의 몸이 맥박 치는 것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힘을 주어 조이자 그 느낌은 더욱 확실해졌다. 펄펄 살아 뛰는 그 맥박을 통해서 

그녀에게도 어떤 생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그곳을 통해 들어온 생기가 온몸

구석구석까지 번져갔다. 마치 온몸의 무은 피를 다 뽑아낸 뒤 새 피로 채우는 

것처럼.

생기의 뒤를 따라서 또 다른 것이 번져 나갔다. 전에는 없던, 혹은 있었다고 해도

고통에 가려 알아차리지 못했던 쾌감이 둥근 파도처럼 일어났다. 그녀는 그 파도를

따라 몸을 꿈틀거렸다. 모든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몇 번이나 신음을 토하다가

손가락과 발가락이 으스러지도록 오므렸다. 그녀는 마침내 참을 수가 없어서 입을

열고 하늘님을 불렀다.

천군은 움직임을 멈추고 가스라기를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죽일 뻔한 건가 싶어 얼른 그녀의 수궁계를 확인했다. 그대로였다. 색이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그는 

고개를 몇 번 젓고 눈을 감았다 뜬 뒤, 가스라기를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아팠지? 이제 그만 그치자."

그런데 웬걸, 축 늘어질 줄 알았던 가스라기가 그의 목을 덥석 끌어안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나, 괜찮아."

천군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정말 죽을 셈이냐?"

"괜찮다니까‥‥‥. 봐."

그녀가 얼굴을 떼면서 말했다. 묘하게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목소리뿐 아니라 눈매도 전보다 반짝이고 붉게 부풀어 오른 입술에 윤기마저 돌았다.

안기 전의 그녀와는 뭔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 천군은 한참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손목을 잡아 맥을 짚었다. 맥박까지도 힘찼다. 어디를 보아도 생기가

빨려 죽어가는 몸은 아니었다.

"넌 도대체‥‥‥."

천군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벌써 몇 번이나 그를 놀라게 하고도 아직 가스라기의

기적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놀라운지 가스라기는

천진하게 웃었다. 하지만 천진한 웃음조차도 예전과는 달라 보였다. 촉촉한 입술과

땀에 젖은 목덜미가 염기를 내뿜으며 그를 유혹했다. 아직 그녀의 몸속에 들어 있던

그의 일부가 심하게 맥동하며 꿈틀거렸다. 안타깝고 결사적인 심정으로 나눈 지금까지의

정사와는 또 다른 갈망이 목을 조였다. 그래도 일만의 불안이 남아 그의 발목을

잡았다. 안 돼. 혹시라도 이것이 죽음 직전에 잠깐 생기가 돌아온 회광반조라면.

"벌써 새벽이야. 이제 그만‥‥‥."

가스라기를 눕히며 몸을 빼려는 순간, 그녀가 갑자기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아 당겼다.

"안 돼."

그녀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빤히 그를 올려다보던

가스라기가 입술만 움직여 소리 없이 말했다. 계속해.

처음에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던 천군의 표정이 조금씩 변했다.

심장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맞이한 필부의 그것처럼 뛰었다. 그는 허리를 세우고

앉으며 가스라기의 몸을 부둥켜안아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좋아."

한마디 말과 함께 그녀를 힘껏 당겨 안았다. 길고 긴 밤, 느리게 터오는 새벽 속에서

그는 가스라기가 반 짐승이나 한가지인 애처로운 존재에서 여자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했다. 사 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몸의 굴곡만이 아니라 눈빛과 마음,

그리고 욕망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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