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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리숙한 초보 상인 (2/28)

2. 어리숙한 초보 상인

“자, 잠깐만. 저 사람들 이상한 옷 입고 있잖아.”

[평범한 갑옷과 로브를 입고 있다.]

“평범한 갑옷 아니잖아. 저 불그스름한 건 금속도 아니고 가죽도 아닌 거 같은데? 게다가 저 로브에 주렁주렁 걸려 있는 거 죄다 뼈 아니야? 그것도 반쯤 썩은 뼈?”

[인면철을 가공해 만든 평범한 갑옷과, 마력 증폭을 위해 희생한 제물의 뼈로 장식한 평범한 로브를 입고 있다.]

“인면철은 뭐고 제물은 뭐야?”

[인면철은 자아를 가진 금속이다. 살아 있는 생물과 강철을 동 비율로 섞어 마법적인 처리를 한 결과물이다. 마력 증폭의 사술을 위해서는 대형화된 쥐와 인간화에 실패한 원숭이와 특별한 처리를 마친 변형 염소의 사체를 각각 10마리씩 제물로…….]

“저 그냥 도망치면 안 될까요? 도망치게 해 주세요, 인형님. 살려 줘.”

[나는 이미 언데드 상태라 살아 있지 않고, 그러므로 인형이 따로 나를 살려 줄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체가 부패하고 있다. 깨끗한 영혼으로 몸을 정화시키지 않으면 온몸이 흐물흐물 썩어서 녹아내릴 거다.]

이제 와서 도망치겠다니 겁쟁이냐고 놀려도 좋다. 아직 말 한 번 섞지도 않은 사람들을 상대로 너무 과민 반응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한대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좀 아니다. 내가 생각했던 무난한 용사 파티의 모습과는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는 무리들이 방 안으로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머리카락 색이며 눈동자 색이며, 어지간해선 보기 힘들 만큼 화려한 작자들이었지만 솔직히 그런 문제는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판타지 세계에선 어떤 색의 머리카락을 보더라도 놀라기 힘든 법이니까.

하다못해 저 녀석들이, 그러니까, 평범한 옷이라도 입고 있었으면 내가 이 정도로 기겁하지는 않았을 거다.

‘대체, 대체 저게 뭐야. 갑옷은 묘하게 꿈틀거리고, 로브에 매달린 뼈에는 아직도 살점이 좀 남아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 칠갑을 한 건 둘째 치더라도, 저 녀석들은 마치 지금까지 보았던 사념을 죽여서 그걸 가지고 만든 듯한 괴상망측한 옷을 입고 있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만났더라면 용사의 동료는커녕 평범한 살인마라고 생각했을 거다. 아니, 그런 류의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냅다 튀었겠지. 대체 왜 용사 파티란 게 저 모양이야?!

[예전에 나는 인형에게 말했다. 바깥 세계는 대부분 오염되어 있어서 가 봤자 좋지도 않을 거라고. 사실 그것은 올바른 추측이다. 오염된 세계의 인간들은 오염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나름의 수단을 마련했다.]

한순간, 머릿속에서 영화의 일부 같은 이미지가 파팟 떠올랐다. 물 대신 피처럼 불그스름한 녹물이 흐르는 강, 사람도 가축도 아닌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산 채로 갈고리에 걸려 몸부림치는 모습, ‘악’에 오염되어 비정상적인 형태로 태어난 기형아들.

세상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국가는 붕괴했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생명만을 중시한다. 한때 세계를 탐구하던 마법사들은 자기들만의 영역에 숨어들어 변태적인 실험에 몰두하고, 신전은 비탄에 빠진 사람들을 외면한 채 성서 쪼가리의 해석에만 집착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무엇에도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하늘은 구름에 덮여 새까맣고 대지는 피처럼 붉은 안개에 뒤덮였다. 모든 것이 짓물러져 악취가 흐르는 세계. 인형이 내 머릿속에 주입해 준 건 그런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쯤 되면 디스토피아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였다.

이 세계, 과연 오염에서 해방될 수 있긴 한 걸까? 이미지에 압도된 내가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을 때쯤, 태평하게 좌판에 드러누운 인형이 내게 다른 정보를 주입해 주었다.

[내가 방금 받아들인 정보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 인간들이 나를 발견했다. 새로운 형태의 사념이 아닌가 싶어 경계하고 있다.]

“잠깐, 설마 이게 다 시간 끌기였냐? 이 솜뭉치 새끼가!”

이래서야 도망치기는 글러 먹었다. 지금 도망쳐 봤자 저 인간들에게 붙잡혀 끔찍하게 난도질당할 것 같아 더 꺼림칙했다. 거적때기와 뼈 가면 아래의 내 모습은 영락없는 언데드니까 같은 인간으로서의 정에 호소할 수도 없겠지. 결국 답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여기에서 용사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상인인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좌판도 벌여 놓았으니 크게 어색해 보이지는 않을 거다.]

“너 은근히 계획적이다. 이러려고 좌판 폈지?”

내가 인형과 속닥거리는 동안, 용사 일행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은 광장 저편에서 내 쪽으로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일행은 총 세 명이었다. 처음에는 두 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한 명이 조금 뒤처져 있어서 잘 안 보였던 것뿐이다.

맨 앞에서 걸어오는 갑옷 입은 남자는 피가 잔뜩 묻은 쇠톱을 들고 있었다. 하다못해 전형적인 기사의 이미지에 맞게 검 같은 거라도 들어 줬으면 좋겠는데. 하긴, 사람의 형태를 하지도 않은 살점 덩어리를 썰어 내려면 저런 거라도 동원해야 썰 맛이 날지도 모르겠다. 제발 저걸로 내 팔다리를 썰진 않았으면 좋겠다. 굳이 썰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너덜너덜하니까.

옷차림이며 무기는 제법 살벌했지만 생김새는 의외로 멀쩡하게 생겼다. 멀쩡한 걸 넘어서 빤빤하게 잘생긴 면상이고, 잘 다듬어진 붉은 머리카락과 또렷한 녹색 눈동자는 제법 근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기생오라비라든지 곱상하다든지 하는 소리를 제법 자주 들었을 것 같은 인상이다. 심지어 제법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기까지 하고.

반면 그 옆에서 걸어오는 로브 뒤집어쓴 남자는 웃음은커녕 아예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아마 저 사람이 마법사인 것 같은데, 까무잡잡한 피부에 대비되는 밝은 은발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갑옷 입은 남자처럼 웃기라도 하면 꽤 괜찮은 인상일 것 같지만 지금은 워낙 표정이 구겨져 있어서 무서워 보일 뿐이었다. 원래 세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금빛 눈동자도, 신기하다기보단 무슨 뱀 눈 같다는 인상이었다.

멀리서 볼 때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무슨 링거대 비슷한 막대를 들고 있었다. 붉고 푸른 액체가 가득 담긴 투명한 주머니가 거기에 잔뜩 매달려 있다. 저 액체는 대체 뭘까. 설마 저 붉은 액체가 피는 아니겠지.

“뭐야, 이건? 새로운 사념인가?”

“이제까지의 사념과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생긴 것도 덜 징그럽고, 무엇보다도 공격해 오지를 않는걸요.”

“그런데 이 물건들은 뭐지? 설마 상품이라도 되는 걸까?”

내심 쫄아서 덜덜 떨고 있는데 두 사람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 화제는 아무래도 나인 것 같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동안 저 멀리에서 세 번째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뭐야, 저쪽은 좀 멀쩡한데?’

보는 것만으로도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로 흉악하게 차려입은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맨 뒤의 사람은 그야말로 판타지에 등장하는 성기사 같은 인상이었다. 새하얀 갑옷과 푸른 망토, 피 한 방울 안 묻은 근사한 롱 소드, 거기에 금발 벽안의 단정한 생김새까지. 그야말로 전형적인…….

“용사님, 이리로 좀 와 보시겠습니까?”

그래, 용사. 아무래도 내 추측이 정확했던 모양이다. 갑옷 입은 남자가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용사를 불렀고, 용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거래를 할 거면 저 용사와 이야기하는 쪽이 낫겠다. 어쩐지 위험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저쪽은 대화가 좀 통할 것처럼 생겼으니까…….

“보세요, 이 녀석. 혹시 상인이라도 되는 걸까요?”

“상인? 그게 뭔가요?”

“거래를 해서 물건을 얻을 수 있는 상대예요. 이런 미궁에 상점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용사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사실 진짜 의아한 건 내 쪽이었다. ‘상인이 뭔가요’라니, 설마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녀석인가? 아무리 그래도 좀 이상하다. 저 용사는 별로 지능이 모자라 보이지도 않고, 나이가 그다지 어려 보이지도 않은데…….

“거래?”

“네, 거래.”

“정화의 다른 표현인가 보군요. 알겠습니다. 사명을 다하지요.”

다음 순간, 용사는 망설임 없이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그 새하얀 검으로.

챙, 금속이 맞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렸다.

“우, 우와악?!”

내가 듣기에도 꼴사나운 비명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저도 모르게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떠 보니, 반투명한 푸른색 보호막이 내 머리 위를 보호하듯 감싸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보호막이 방금 그 공격에서 나를 보호해 준 모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슬쩍 인형을 쳐다보니, 인형은 마치 으스대기라도 하듯 허리에 양손을 얹고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어막을 만들어 준 게 누구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뻔했다.

구해 준 건 고맙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애초에 이 솜뭉치 자식이 거래니 뭐니 하는 제안을 안 했더라면 내가 저런 이상한 녀석들에게 공격당할 일도 없었잖아!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이상해요. 저게 제 공격을 막았어요.”

“기본적인 방어 능력은 있단 소리군. 뭐, 그러니까 이런 미궁에 들어와서 좌판을 벌여 놓은 거겠지만……. 그나저나 너 말이야. 검은 왜 휘둘렀어?”

“정화하면 물건을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사념이 아니었나요?”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대체 신전에서는 어쩌자고 이런 기본도 안 된 걸 용사랍시고 보낸 거야?”

“저기, 마법사님. 아무리 그래도 용사님한테 멍청하다니 너무하잖습니까.”

한편 용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어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격이 막혀서 불쾌하다기보다는, 대체 이게 뭔가 하는 호기심이 어린 눈빛이었다. 그 악의라고는 한 점도 보이지 않는 태도에 조금 부아가 치밀어서 나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니,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갑자기 칼을 휘둘러요? 무슨 용사가 이렇게 폭력적이야!”

“폭력적……?”

“내가 소리를 지르며 위협하기를 했어, 함정을 파 놓길 했어? 그냥 여기 앉아 있었을 뿐인데 다짜고짜 와서 검을 휘두르다니, 여기 사람들은 원래 다 이렇게 성격이 이상해요?”

용사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더 부아가 치밀었다. 인형이 만들어 준 방어막을 믿고 막 나가는 심정이 절반, 지금까지 이상한 환경과 상황적 요건 때문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스트레스가 나머지 절반이었다.

화풀이라는 자각쯤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화풀이 좀 하면 어떠냐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 보는 상대에게 칼을 맞을 뻔했으면 화풀이 좀 해도 되는 거 아니야? 씩씩거리며 용사를 노려보자,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적발의 사내가 용사의 앞으로 나섰다.

“갑자기 소리는 왜 지릅니까? 우리 용사님 놀라시게. 사람이 살다 보면 남 좀 찌르고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남의 일이라고 말 너무 막 하는 거 아니에요? 막말로 내가 가만히 있다가 그쪽 용사님 찔렀으면 나더러 씹새끼라고 했을 거면서!”

“그야 당연하죠, 어디 찌를 데가 없어서 구세의 용사님을 찌릅니까?”

적발의 사내는 자연스럽게 용사를 감쌌고, 용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사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용사와 동료의 관계라기보다는 아이와 보모의 관계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혹시 내 착각인가?

잘 살펴보면 적발의 사내뿐만이 아니라 은발의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멍청하다느니 구박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은근히 용사를 신경 쓰는 듯한 태도였다. 내 고함에 놀란 용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한숨을 푹 쉬며 용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까지 할 정도였다.

저 용사인지 뭔지 하는 작자, 의외로 멍청한 녀석 아니야? 내심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하던 도중, 나는 조금 묘한 사실을 눈치챘다. 굳이 인형이 알려 주지 않더라도 금방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러니까, 저 쇠톱을 든 사내의 왼팔이…….

“구세의 용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구세니 뭐니 하는 거야 당신네들 사정이고요.”

“제법 배짱이 있군요. 하지만 말입니다, 같잖은 방어막 하나 믿고 너무 건방지게 구는 거 아니에요. 상인 씨.”

“물건 안 살 거면 꺼져요, 며칠 안 있어 외팔이 신세로 전락할 아저씨.”

사실 아저씨라고 부르기에는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 보였지만 괜히 신경을 긁고 싶어서 그렇게 불러 보았다. 적발의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웃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외팔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저 사람, 망토로 한쪽 팔을 가리고 있어서 안 보였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왼팔에 꽤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의학에 대한 지식이 아예 없는 내가 보기에도 꽤나 심한 상처인 데다가 꽤 많이 곪아 있기까지 해서, 잘못하면 한쪽 팔을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까 얼핏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저 마법사는 상처에 독을 주입할 수는 있어도 상처를 치료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만약 치료할 수 있다면 팔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시간을 끄는 대신 진작 치료했겠지. 사내는 여전히 담담하게 웃고 있었으나 그 시선은 분명 약초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 이 약초가 필요한 게 맞겠지? 어쩌면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릴지도 몰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툴툴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쫄아 있었다. 얼굴을 가리는 뼈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작 표정을 들켜서 얕잡아 보였을지도 모른다.

인형이 방어막을 쳐 줘서 당장 신변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 녀석들이 물건을 안 사면 곤란한 건 사실 내 쪽이다. 나 지금 몸이 썩고 있다고. 정화된 영혼인지 뭔지가 필요하단 말이야.

게다가 나는 장사인지 뭔지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장사꾼으로 따지자면 초보도 못 되는 애송이 장사꾼이다. 수능 선택 과목으로 경제를 고른 것 정도가 내 인생 최대의 장사 지식이란 말씀이다. 그나마도 수능 끝나고 몇 주 지나서 마법처럼 까먹었지만.

그러니까,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든지 가격 탄력성이라든지 뭐 그런 것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기억이 나는데……. 그런 것들은 세상에 수많은 소비자와 공급자가 있을 때나 성립되는 이야기다. 장사꾼도 한 명, 고객도 사실상 한 명뿐인(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건 용사뿐이니까) 상황을 고려한 지식은 아닐 거다.

“제법 건방진 상인이군요. 팔이야 뭐,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쓸모가 생기겠지만…….”

“허세 부리지 마, 케르츠. 네놈에게 의수 만들어 줄 재료 따위는 없어.”

“진짜입니까? 의외로 무능하시군요. 절단된 팔을 녹여서 의수라도 만들어 주시려나 했더니.”

“내가 무능하다면 너는 멍청한 거냐? 재료가 있어야 의수를 만들지! 아니면 네놈 갑옷이라도 녹일 작정이야? 그 징그러운 갑옷은 녹이고 싶어도 녹지를 않는데?”

적발의 남자, 케르츠는 자기 팔인데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지만 마법사 쪽은 팔의 상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마법사는 툴툴거리면서도 품 안을 뒤지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의 로브 안쪽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가 나왔고, 그는 주머니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더니 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자, 소독초 한 묶음과 회복초 한 묶음에 금화 세 개면 괜찮은 거래지? 어서 내놔.”

마법사는 꽤 초조한 낯으로 말을 내뱉었다. 자기 딴에는 제법 관대한 처사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지만 내 입장에서 따지면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일단 나는 이 세계의 화폐 단위에 대해서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의 시세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다. 게다가…….

“돈 같은 건 필요 없는데요.”

“뭐? 야, 잠깐만. 너 장사꾼 아니야? 장사꾼이 돈이 필요 없다면 대체 뭐가 필요한데?”

이건 허세가 아니라 정말이다. 어차피 내가 이 꼬락서니로 미궁 바깥으로 나갈 것도 아니고, 지금의 내게 있어 돈이란 그저 예쁘장한 쓰레기에 불과하다.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쪽의 용사님.”

“저 말인가요?”

“그럼 달리 누굴 말하겠어요? 용사님, 정화된 영혼을 가지고 있지요?”

용사는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걸 원하냐는 듯 당혹감이 어린 표정이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지금으로써는 저 녀석이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으므로.

그는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병 안에는 반짝이는 돌멩이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정화된 영혼이라고 해서 보석이나 크리스털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했는데 생각보다는 수수했다. 마치 어린애가 해변을 거닐며 모아 놓은 예쁘장한 돌멩이를 구경하는 느낌이랄까.

“그 영혼을 제게 주세요.”

“이걸요?”

“네. 설마 이런 미궁에서 일반적인 화폐가 쓰인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저분의 팔을 치료하고 싶다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세요. 그러면 소독초든 회복초든 원하는 대로 드릴 테니까.”

이쯤이면 조금은 프로페셔널한 상인으로 보였으려나? 일단은 게임 속 NPC 흉내라도 내면서 거들먹거려 보았는데, 사실 이게 제대로 먹혀들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얼굴과 케르츠의 팔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던 용사는, 조금 머뭇거리는 듯한 태도로 유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더니.

“그럼 줄게요, 영혼.”

용사는 해맑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내 머리 위에 유리병을 부었다. 와르르, 돌이 방어막을 두드리며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소리가 제법 요란했다. 나는 저 용사가 나를 놀리는 건지, 아니면 제 딴에는 제법 진지한 건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용사님, 그렇게 협상도 안 하고 전부 줘 버리시면 안 됩니다. 나중에 부족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제 판단이 미흡했나요?”

“조금은요. 원래 이럴 때는 흥정을 시도하며 가격을 조율하는 게 중요한 전략입니다.”

“저기요, 최소한의 양심이란 게 있으면 흥정을 가르칠 시간에 그쪽 용사님 인성 교육이나 시키시는 게……?”

용사가 케르츠에게 붙잡혀 잔소리를 듣는 동안, 인형은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돌멩이들을 주워 유리병에 집어넣고 있었다. 다만 순수하게 돌멩이를 주우려는 의도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녀석은 남들이 안 보는 사이에 자기 주머니에 돌멩이를 집어넣어 숨기려다가 마법사에게 발각되어 엉덩이를 얻어맞았다.

얼핏 보기에는 매우 얄미운 행동이었지만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어쨌든 저 녀석이 영혼을 훔쳐 가져오면 나에게는 이득이 되는 셈이니까. 다만, 저 녀석이 엉덩이를 걷어차이고 데굴데굴 구르는 꼴을 보니 묘하게 통쾌했다. 과연 어째서일까.

“남이 열심히 모은 걸 함부로 가져가지 마, 이 좀도둑놈아!”

“아니, 우리 인형이 갖고 싶은 게 있어서 좀 챙길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렇게 무안을 줘요?”

“너 지금 보복하는 거지. 이 쥐새끼 같은 장사꾼 놈이.”

“그러게 누가 냅다 칼부터 휘두르고 보랬어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도 있어요.”

“세상에 그런 말이 어딨어? 썩은 내 나는 언데드 주제에 아무 말이나 지어내기는!”

어엿한 실제 속담인데, 하고 주장하려던 나는 여기가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어쩌면 이 세계에는 그런 류의 속담이 없나 보지. 용사라는 작자부터가 대화 없이 칼부터 휘두를 정도로 상황이 막장으로 돌아가는 걸 보니, 어쩌면 이 세계에서는 가는 말이 고와도 오는 말이 고우리라는 보장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저 마법사는 내가 언데드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챈 모양이었다. 어쩐지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물론 내 몸이 썩어 가고 있는 건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나는 언데드라고 할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언데드라고 부를 수 있어? 기분 나쁘게!

“어쨌든, 정화된 영혼 20개는 주셔야 해요. 약초 한 묶음당 10개씩 해서.”

“너무 비싸.”

“이봐요, 찧어서 바르면 몇 십 분 안에 사람 팔이 자라나는 물건인데 이 정도 가격은 해야지요. 그리고 당신이 여기 화폐 구조에 대해 뭘 안다고 싸다 비싸다를 운운해요?”

“이런 미궁에 화폐 구조라 할 만한 것도 있나? 그리고 애초에 네놈이 받는 화폐는 정화된 영혼이잖아. 정화된 영혼을 만들 수 있는 건 우리 용사밖에 없고. 희소성의 문제로 생각해 보면, 바깥에 넘쳐 나는 그 풀떼기보다 정화된 영혼 쪽이 훨씬 더 귀할 텐데?”

“그, 그러면 어디 미궁 밖으로 나가서 풀떼기 구해 보시든가요! 저 사람 팔에 달아 줄 의수 재료도 없다면서!”

그나저나 흥정이란 게 도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영혼을 많이 받아 보려고 흥정을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워낙 상대가 깐깐하게 굴어서 흥정이 쉽지가 않았다. 등에 진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느낌이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용사 쪽과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은발의 마법사는 용사 일행 중에서 그나마 상식인으로 보였으나, 역으로 상식적인 타입이라서 오히려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대화 중 갑자기 검을 휘두르거나 할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안심이 되긴 했지만, 이대로 계속 대화를 하다간 논리에서 밀려 본전도 못 찾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애초에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린 건 아닐까? 처음이니까 한 10개 정도만 부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병 안에 정화된 영혼이 50개쯤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불러 본 건데…….

“적어도 10개. 그 이상은 못 줘.”

“후려치는 것도 정도껏 후려쳐야지 무슨 절반씩이나 후려쳐요? 게다가, 방금 저 용사가 날 죽이려고 한 거 잊었어요? 이건 단순히 약초값이 아니라 내 목숨값도 포함되어 있다고요!”

“……그럼, 15개.”

마법사는 혀를 차면서 협상안을 제시했다. 뭐, 아무리 막 나가는 세계라고는 해도 목숨은 언제나 소중한 가치니까. 용사가 느닷없이 칼을 휘둘렀다는 사실도 이용해 먹으려면 어찌어찌 이용할 수는 있었다. 어차피 미궁 내부의 시세를 잘 모르는 건 저쪽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고.

나는 조금 더 협상을 시도해 볼까 마음먹었다가 곧 그만두었다. 여기서 협상 같은 걸 더 했다간 밑천이 드러난다. 아무런 말이나 해 대면서 노련한 척 구는 짓도 슬슬 한계라고.

“좋아요. 15개라면 뭐.”

거들먹거리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내 모습을 지켜보던 인형이 유리병에서 돌을 주섬주섬 꺼내 운반해 오기 시작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주인과 충직한 부하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습이라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물론 실제로는 바지사장과 부하인 척하는 실세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너 같은 언데드에게 이게 무슨 쓸모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져가. 치사한 녀석.”

“어차피 용사님 거 주시면서 엄청 생색내시네요.”

“저 녀석은 머리가 나빠. 애초에 화폐의 가치 따위 알지도 못한다고.”

대체 저 무리들 사이에서 용사란 어떤 존재일까? 나는 내심 궁금해졌으나 눈치 없게 굳이 물어보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약초를 얻어 낸 마법사는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자기 무리에 돌아갔다. 용사는 나와 마법사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기쁨이 담긴 낯으로 마법사를 맞이할 뿐이었다.

“고마워요, 하넨.”

“네가 냅다 검을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일이 훨씬 쉬웠을 거야.”

“용사님 구박은 나중에 하고요, 마법사님. 이 팔부터 어떻게 해 주실 수 없습니까?”

“아까 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으면서 엄살은. 어쨌든 팔 대, 케르츠. 치료해 줄 테니까.”

저 마법사의 이름이 하넨이구나. 하넨이 막자사발을 꺼내 회복용 약초를 짓이기는 동안, 인형은 바쁘게 움직이며 좌판 위의 물건을 정리했다. 싹싹하고 부지런한 모습이 이제 보니 제법 귀여웠다.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인형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었다.

[조금 목소리가 떨리고 멍청하고 어수룩해 보이긴 했지만 첫 교환은 성공적이었다. 한적한 장소로 가서 정화된 영혼의 사용 방법을 알아보는 것도 좋겠다.]

귀엽다는 말은 취소. 나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가락을 팡 튕겨서 인형의 머리를 때렸다. 솜뭉치답게 가벼운 인형은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 * *

용사 일행은 케르츠의 왼팔을 치료하자마자 자리를 떴다. 케르츠는 멀쩡해진 왼팔을 흔들며 또 보자고 인사를 했고, 하넨은 더 이상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휙 몸을 돌려 복도로 걸어가 버렸다.

그리고 용사는 케르츠와 하넨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만 꾸벅 숙이고는 떠났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뚱한 표정이었는데, 아까 다른 동료들의 태도를 감안하면 의외로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저 작자들과 계속 부대끼며 지내야겠지. 그나저나, 이제 이 ‘정화된 영혼’이란 게 있으면 내 몸을 원래대로 복원시킬 수 있는 것 같은데…….

[정화된 영혼을 사용할 시의 유의 사항. 첫째, 한 조각당 유효 기간은 여섯 시간이다.]

“유효 기간?”

[유효 기간이 지나면 몸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그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몸이 썩는다.]

하긴, 그런 게 있다고 예전에 설명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정화된 영혼을 꾸준히 흡수해 주어야 한다던가? 그런데 한 조각당 여섯 시간이면 지나치게 짧은 게 아닌가 싶었다. 다시 말해, 지금 내가 약초 두 묶음을 팔아 얻은 조각으로는 나흘도 채 못 버틴단 소리잖아.

이래서 거래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말했던 거군. 나는 적당히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인형의 다음 말에 다시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둘째, 한꺼번에 영혼을 많이 흡수할수록 보다 인간에 가까워진다. 한 조각을 흡수하면 몸의 상처가 치유되고, 두 조각을 섭취하면 무뎌진 감각이 예민해지고, 세 조각을 섭취하면 공허하던 심장에 감정이 되돌아온다.]

“잠깐만. 앞의 두 개는 그렇다 치고 마지막은 뭐야? 공허하던 심장이라니?”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지만 나는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 함께하던 가족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들에 대해 생각하지조차 않았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두려움은 이미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뭐, 그, 그게 무슨.”

나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아니,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도 두려움 정도는 있다고. 방금 용사에게 칼을 맞을 뻔했을 때도 조금은 무서웠고, 화도 났고……. 그것도 따지고 보면 감정이라고.

하지만 나는 문득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원래의 나는 생각보다 더 겁이 많고 감정적인 성격이었다는 사실을. 원래 내 성격대로였다면, 나는 이 미궁에 들어온 시점에서 겁에 질리고 패닉에 빠져 몇 시간 동안은 비명을 지르며 날뛰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겨우 떠올려 냈다. 잡몹이니 NPC니 하는 비유나 떠올리며 이죽거리기에 나는 지나치게 새가슴이었으니까. 인형은 나의 그런 생각에 쐐기라도 박듯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지금 나의 감정은 극히 최소한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촉각은 느껴지지만 통각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 있지 않은 존재다운 고요함이 내 마음에 내려앉아 있다. 나는 그저 지금 이 상황을 대처하기 위한 단편적이고 즉각적인 감정밖에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마카 펜으로 적당히 그린 듯한 까만 눈이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단순함이 지나치게 비인간적이어서 어쩐지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짜로 섬뜩한 건 이런 상황인데 화조차 나지 않는 내 감정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저 녀석은 지금 내 감정을 빼앗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내버려 두었더라면 죽었을 나를 괴상한 형태로 되살려서 제멋대로 이용해 먹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화도 나지 않고 비참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떨떠름하고 기분이 가라앉았을 뿐.

감정을 아예 못 느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극단적인 수준의 감정은 거세되어 있다. 그건 정말이지, 뭐랄까. 이상하고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원래의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알고 싶다면, 세 개의 영혼 조각을 흡수하면 될 것 같다.]

“됐어. 어쩐지 자살 시도라도 할 거 같은 기분이라서……. 그런데 네 개를 먹으면 어떻게 돼? 세 개를 먹었을 때와 비교해서 확연한 차이라도 생겨?”

[유효 기간이 18시간에서 24시간으로 늘어난다.]

“그것뿐이야?”

[그것뿐이다. 유의 사항 셋째, 세 개 이상의 영혼 조각을 흡수할 경우 식욕과 수면욕과 성욕 또한 되살아난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기 때문에 인간의 욕구가 작동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세 개 이상 먹으면 손해라는 말이네. 음식은 내가 먹는 것보다 용사 일행에게 파는 게 이득이고, 잠을 자는 동안에는 못 움직이니까 시간 낭비인 셈이고……. 욕구를 풀 대상도 없는데 성욕만 불끈거리면 그것대로 비참한 일이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정화된 영혼 조각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흡수하는지는 인형이 가르쳐 줘서 알고 있다. 그냥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으면,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과 함께 몸의 독기가 정화된다. 알기 쉬운 방법이었다.

“일단 하나만 흡수해 봐야지. 어쨌든 이 꼴을 하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나는 코끝에 정화된 영혼 조각을 대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숨을 들이쉬었다. 몸의 독기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전신이 서늘해지고, 서늘함이 사라진 자리에 은은한 온기가 감돌았다. 상처가 꿈틀거리며 아무는 이상한 감각을 느끼며 나는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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