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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필요하신가요? (132)화 (132/154)

제132화

“어르신이 데려온 거예요?”

눈동자를 굴려 어르신에게 말을 걸자, 그가 빙긋 웃어 보였다.

저 언뜻 자애로운 듯 심기가 거슬리면서도 어쩐지 흥미가 동한 눈썹 각도를 보니…….

‘어르신이 아니군.’

나는 판단을 마치고 슬쩍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담력이 좋은 새인 걸까요?”

결계 내부에서 살고 있던 동물이라면, 어쩌면 한 번쯤은 이곳이 궁금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네가 직접 살펴보는 게 좋겠구나.”

곧이어 어르신 또한 창가로 느릿하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이미 저 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챈 듯싶었다.

그런데도 일부러 나한테 직접 살펴보는 게 좋다고 하는 걸 보면, 최소한 위험한 건 아닌 것 같군.

“안녕, 아가야.”

나는 곧장 창문을 열어 자그마한 새에게 말을 걸었다.

레어 주변에서는 리처드 8세 같은 거대한 아이들밖에 찾아볼 수 없었는데, 정말 작고 귀엽구나.

하얗고 보드랍게 생긴 게, 어쩐지 기억나지 않는 무언가가 떠오를락 말락…….

― 아, 미에나?

“악, 깜짝아!”

바로 그때, 작은 새의 입에서 성인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이 목소리는…….

“폐하?”

― 제 목소리를 기억해 주시는 건가요? 기뻐요…….

이윽고 작게 중얼거리자, 또 한 번 새가 이상하게 지저귀었다.

나는 내 앞에서 귀엽게 고갯짓하는 새를 유심히 관찰하고서 옅게 탄식을 내뱉었다.

‘이제 보니 진짜 새가 아니구나.’

정교하게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엄밀히 말하자면 마력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었다.

잠깐, 그렇다면 더더욱 이야기가 이상해지는데.

진짜 동물도 아닌 게, 그것도 타인의 마력이 어르신의 결계를 통과할 수 있다고?

“확실히 웃긴 녀석이구나.”

이어 내 곁에 멈춰 선 어르신이 손가락을 뻗어 새를 톡 치며 중얼거렸다.

“힘을 거의 온전히 물려받았어. 분명 그 찌꺼기가 이리될 줄 알고 미리 안배한 거겠지.”

“어르신만 아는 이야기는 좀 자제해 주세요.”

맨날 의미심장한 얘기만 늘어놓고, 정작 나한텐 아무 설명도 안 해 주지.

내 말에 어르신이 나를 놀리려는 것처럼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나는 그를 무시하고서 황제의 전령새를 다시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폐하. 제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딱 알고 연락하셨네요.”

― 절대 뒤를 밟은 건 아니에요! 미에나의 마력을 기억했다가 추적한 거라……, 아니, 추적이 아니고…….

건너편에서 허둥지둥하는 목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전령새 역시 자그마한 날개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나는 손가락만 한 머리통을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웃음을 내뱉었다.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어떻게 연락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생각해 보니까 급하게 시두스 저택으로 향하느라 연락 수단을 안 정해 놨지 뭐야.

그렇다고 갑자기 황궁으로 찾아가는 건 또 민폐일 테고.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 그렇게 말해 주시니 정말 다행이에요.

뒤이어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심으로 안도한 목소리라, 나는 다시금 옅게 웃음을 흘렸다.

제대로 본 건 오늘이 처음인데도 어쩐지 표정이 상상된단 말이야.

특히 유순하게 웃는 표정이…….

“그건 뭡니까?”

바로 그때, 등 뒤로 날카로운 음성이 꽂혔다. 나는 괜히 어깨를 한 번 들썩이고서 재빨리 뒤를 돌았다.

어느새 다가온 플라멘이 고개를 빼들고 전령새를 바라보고 있었다.

“깜짝이야……. 어르신이나 플라멘이나 올 때 기척 좀 내면 안 돼요?”

“이쯤 되면 익숙해질 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나저나, 그건 대체 어떻게 결계 안으로 들어온 겁니까?”

“처음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게다. 내 동족은 막지 않았으니까.”

“동족이요? 이게요? 그렇다기엔 인간 냄새가 더 진한…….”

“악, 악!”

이 인외들이 지금 사람 앞에 두고 못 하는 말이 없어!

나는 황급히 그들의 말을 끊고서 손바닥 위에 전령새를 올려놨다.

여기는 방해꾼이 너무 많으니, 방으로 가야겠어.

“저녁 먹다 말고 어디 갑니까?”

이내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피하려니, 플라멘이 집요하게 물어 왔다.

“다 먹었어요. 잘 먹었습니다.”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는데요? 언제는 양이 적다고 두 접시는 먹어야 배가 찬다고 하던 인간이?”

“내가 언제!”

이게 손님 앞에 두고 못 하는 말이 없어!

나는 황급히 전령새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며 눈을 부라렸다.

내가 지금 누구랑 얘기하고 있는지 알아? 무려 솜니움의 황제란 말이다!

‘이렇게 말해도 전혀 신경 안 쓸 걸 알아서 더 분하다.’

왜 항상 부끄러움은 내 몫이란 말인가.

“죄송해요, 폐하.”

이윽고 내 침실로 돌아와 문까지 꼭꼭 잠근 후, 나는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자 내내 조용하던 전령새 너머로 듣기 좋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 괜찮아요, 미에나. 오히려 듣기 좋았는걸요.

“이게요……?”

플라멘의 실시간 잔소리를 ‘듣기 좋다’고 평하는 사람이 있다니.

나는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입술을 오므렸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 큼큼 기침을 내뱉었다.

이상하게 자꾸 편한 느낌이 들어서 망각할 뻔했지만, 어쨌든 그는 황제가 아니던가.

‘분명 내게 무언가 지시할 게 있거나, 전달할 게 있는 거겠지.’

혹은 보고받고 싶은 사항이 있다든가…….

“그래서, 혹시 무슨 일로 이렇게 연락 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귀하고 바쁘신 분을 괜히 붙잡고 있는 게 아닌가 저어됩니다만.

나는 뒤이어 전령새를 침대에 올려놓고 바닥에 앉아 공손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전령새가 몇 번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다 말고 또 한 번 부리를 열었다.

― 에버딘 공작에게 들었어요. 시두스 저택에 다녀와 사업 현황을 대략적으로 인계받았다고.

“인계받았다기보다는 규모 파악만 조금 한 정도예요. 유스틴……, 공작님께서 조사에 도움이 될 후원자 명단을 추려 주신다고 했으니, 앞으로 더 살펴봐야죠.”

― 대외적으로 밝히는 건 아니라고 해도 어찌 됐든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건데, 괜히 불편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기도 했고…….”

오늘 하루 들킨 것만 해도 벌써 몇 명째인걸.

밝혀지면 제국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릴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내가 1면에 실릴 정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주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폐하.”

하지만 황제의 ‘어떻게든 해 본다’는 발언은 역시 조금 두렵네요.

“더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찾아뵙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혹 언제쯤 다시 만나 뵐 수 있을까요?”

― 미에나가 원하면 언제든지요. 사실 지금 당장도 괜찮아요.

“아하하, 그건 좀.”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 나가려고,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담.

나는 괜스레 손을 설설 내저은 후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제가 괜히 폐하께 심려를 끼친 것 같아요. 저는 정말로 괜찮고, 또 끝없는 밤의 병 조사에도 성실히 임할 테니 걱정 마세요.”

― 심려라니요, 전혀요.

“하지만 이렇게 직접 연락까지 하게 만들고…….”

내가 뭐라고, 귀한 분의 마력을 쓰게 만들지 않았는가.

그것도 이 귀한 저녁 시간에.

― 아니에요! 실은…….

하지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가 깜짝 놀라 소리를 높이더니 곧 자그맣게 실토했다.

― 앞의 이야기는 모두 핑계고, 실은 그냥 미에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에요.

“…….”

― 이제야 다시 마주하게 되었잖아요.

뒤이어 흘러나온 목소리는 소년처럼 순수하고 처연했다.

― 늘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랐어요.

내 앞의 작은 새보다도 더 부드러워 보이는 듯한 미성이 귓속을 마구 간질였다.

―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나는 어느새 손끝에 다가와 머리를 비비는 전령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폐하의 꿈에 찾아갔었군요.”

― 늘 미에나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곧이어 또 한 번 마음을 간질이는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를 단번에 알아본 사람.

늘 나를 그려 왔다는, 늘 내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사람.

나를 찾기 위해 전단을 뿌리고, 내 앞에 스스럼없이 무릎을 꿇은 기묘한 황제.

“폐하, 외람된 질문이지만.”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천천히 입을 열어 질문했다.

“혹시 저희, 무슨 사이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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