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폐부로 들어차는 공기가 쓰리다.
희미하게 맥동하는 심장은 그마저도 버겁다는 듯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이곳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증거.
사력을 다해 숨을 들이쉬며 느릿하게 속눈썹을 들어 올렸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언제나 그렇듯 부모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 행이다.”
마지막으로 의식을 되찾을 수 있어서, 두 분을 보고 갈 수 있어서.
지크프리트 씨에게는 확신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정신이 드니, 아가?”
곧이어 두 분이 나와 시선을 맞추며 다정히 물었다.
새벽 어스름이 아직 다 가시지 않았는데도, 밤을 지새운 건지 두 사람의 눈동자에서는 잠기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에 들어찬 것은 바래지 않는 사랑.
그 밑으로는 몇 번이고 반복된 눈물로 짓무른 길이 스며 있었다.
‘내가 응석을 부려서.’
눈을 떴을 때 언제나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후로, 부모님은 정말로 내가 눈을 뜰 때마다 내 곁에 머무르고 계셨다.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은 적 없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내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리며.
내가 눈을 뜰 때마다 눈물 자국 가득한 뺨을 당겨 미소 지으며 나를 반기셨지.
‘이기적이어서 죄송해요.’
그래도 이번만 봐주세요. 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단 말이야.
“……엄마, 아, 빠.”
깊게 잠긴 목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진 채 허공을 부유한다.
심지어는 거칠어진 숨소리가 한데 뒤엉킨 탓에,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였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테니까.
“항상……, 감사, 했어요.”
나는 차례로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를, 포기하지, 않아 주, 셔서…….”
실은 미안한 마음 한편으로 무척 기뻤어. 그래서 더 죄송했지만.
“두 분이, 제 부모님, 이셔서…….”
아무리 한 아이의 부모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하는 건 어렵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세상엔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으니까. 주어진 책임을 떠맡기고 도망가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아 주었고.
그래서 나는.
“함께, 이번 생을……, 보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우리도 그렇단다, 아가.”
내 말에 잠시 말라 있던 두 분의 눈가가 다시 촉촉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자꾸만 감기려는 속눈썹을 억지로 붙들어 두며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울지, 마세요…….”
마지막 얼굴을 이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아.
내가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없잖아.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 주고 싶지만, 내게는 이제 그럴 힘마저 남아 있지 않아서.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이제 저 눈물을 닦아 줄 수 없겠지.
‘그러니까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저는, 행복했으니까.”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많이 사랑받았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다만 하나 걱정되는 게 있다면.
“제가, 떠나면…….”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서 다시금 천천히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저를, 마지막, 으로……, 두지 마세요.”
“미에나.”
“그렇대도, 그, 아이를……, 저 대신으로, 여기지 말아 주세요.”
마지막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정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말해야 했다.
“그 애한테도, 온전한, 사랑을……, 애정을……, 주세요.”
내가 아닌 그 아이 자체를 사랑해 주기를. 나의 그늘이 아닌, 두 사람의 따스한 사랑 속에 키워 나가길.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두 분은 어련히 알아서 잘하실 테지만.
“그게 무슨 말이냐, 미아.”
내 말에 부모님이 고통에 찬 표정으로 터지듯 말을 토해 냈다.
“네가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니! 왜, 끝까지 그리 무정하게 말하는 것이냐. 다른 아이라니, 나는, 우리는…….”
나는 부스스 미소 지으며 그들의 말을 일축했다.
“살아야, 하니까요.”
나는 이렇게 떠나지만, 두 사람에게는 두 사람의 생이 남아 있다.
가문의 존속, 가주의 의무.
이것들도 이유가 될 수는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슬픔에 매몰되어 있지 않기를 바라.’
내 존재를 완전히 잊지는 못하겠지만, 아물지 못한 상처가 아닌 들여다볼 수 있는 상흔이 되길 바라.
나를 기억하고 추모하되, 내게 얽매여 있지 않기를 바라.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다른 아이를 만나 사랑을 주고 사랑받으면서.
‘이전과 같이 행복하기를.’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어.
“제발…….”
점점 머리가 둔해지는 게 느껴진다.
이성이 흐려지고, 깨어났을 때부터 온몸을 휩쌌던 고통이 점점 무뎌지고, 대신에 깊은 수마가 발끝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다.
겪어 본 적 있는, 그렇지만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의 시간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감기는 두 눈을 억지로 뜨며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많이……, 못 놀러 가서…….”
“…….”
“오랫, 동안……, 비밀을……, 숨겨서…….”
많은 추억을 쌓고 싶었는데, 내 욕심만 앞서 그럴 수 없었던 게.
“죄, 송해요…….”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뺨 위로 따뜻하고 다정한 열기가 닿았다.
“아니다, 미에나.”
혹여나 닿으면 깨질까, 아버지가 내 볼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고개를 내저었다.
“네가 우리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단다.”
“…….”
“네 탓이 아니야.”
동시에 나는 긴 숨을 토해 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이둔 3세에게 해 주었던 말.
클레어가 사무엘에게 해 줬던 말.
어쩌면 내가 두 분에게서 제일 듣고 싶었을, 나의 마지막 죄책감 덩어리.
그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덜어 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고통스럽게 공기를 들이마신 후, 다시 맥없이 숨을 풀어놓으며 마지막 유언을 중얼거렸다.
“사랑, 해요…….”
많이 사랑했어요.
“그래, 나도 사랑한단다.”
곧이어 어머니가 내 손을 부드럽게 그러쥔 채 귓가에 속삭였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그제야 수마를 몰아내려는 모든 노력을 접고서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두 분은 끊임없이 내 귓가에 저마다의 말을 속삭여 주었다.
“사랑한다, 아가. 잘……, 자렴.”
모두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말려무나, 아가.
사랑한단다.
사랑한단다.
형체 없는 커다란 감정이 감미로운 자장가가 되어 길을 밝혔다.
마지막까지 이다지도 사랑을 잔뜩 받고 가다니, 이보다 좋은 삶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난 역시.’
생의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점멸하는 의식 너머로.
그래도 난 역시, 더 살고 싶어.
끝내 이어지지 못한 문장이 저 멀리, 저 아래로 깊이 잠겨 들었다.
삶의 종식이었다.
* * *
미에나 시두스의 장례식은 생전 그녀의 요청에 따라 황도 근처 베르단디 신전에서 간소하고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조각 신문에도 실리지 않은, 작은 어린아이의 죽음.
역설적으로 그 자그마한 아이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고 거대해서.
‘모두가 당신의 죽음을 떠들더군요. 아마 앞으로 한동안 그러겠죠.’
‘직전에야 마지막 인사라니, 이 꼬맹이는 끝까지 아주 제멋대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