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이건…….]
동굴 안에 갇힌 듯 눅눅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와 새까만 어둠.
처음 어르신의 꿈에 들어왔을 때 마주했던, 바로 그 공간이었다.
다만 그때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무너지고 있잖아.’
어느 부분은 산산이 조각나고 있고, 또 다른 부분은 낙진처럼 흩날리고 있고.
[이거 맞아도 되는 건가.]
꿈 조각 하나 맞는다고 당장 꿈에서 깨지는 않겠지만, 어르신의 꿈이니만큼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떨어지는 꿈의 파편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찰나였다.
[누굴 그리 찾느냐?]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가 한차례 흘러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가 곧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완전히 몸을 돌렸다.
[깜짝 놀랐잖아요, 어르신!]
예나 지금이나 사람 놀라게 하는 데에 재주 있다니까!
[내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딱 이런 꼴이었지.]
곧이어 어르신이 내 쪽으로 슬쩍 상체를 굽히며 눈꼬리를 휘었다.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하찮기 그지없구나.]
[반대로 어르신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시고요.]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살기를 폴폴 흘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살기는커녕 다정함을 숨길 생각도 안 하고 있잖아.
우리 어르신이 달라졌어요!
[나도 가끔 신기하단다. 네 무엇이 그리 어여뻐 내 이렇게까지 변한 건지.]
어쩌면 내 조각을 네게 심어 그런 걸지도 모른다며, 어르신이 장난스럽게 덧붙여 말했다.
나는 완벽하게 호선을 그려 올린 그의 입매를 바라보다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그보다 어르신, 이 상황은……?]
[너도 보고 있으니 알지 않으냐.]
동시에 어르신이 이번에는 눈꼬리를 매혹적으로 휘어 웃으며 답했다.
[이 지난한 꿈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가 된 거지.]
[완전히……, 영혼체만 잠깐 깨어나는 게 아니고, 본체가요.]
[그래, 본체가.]
[드디어…….]
난 그저 유언과 감사 인사를 전하러 온 거였는데, 갑자기 이 소식을 듣게 될 줄이야.
[그, 그러면 언제쯤……?]
나는 형편없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정돈하며 질문했다.
지금이라도 유언 다 취소해야 하나? 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좋으려나?
만약 어르신이 당장 이쪽으로 올 수만 있다면…….
[글쎄, 이 추세라면 며칠 내에 깨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
어르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그맣게 피어오르던 마음속 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며칠.’
나는 그 며칠조차 버틸 수 없다.
아마, 곧…….
[이상하구나.]
그 순간, 어르신이 내 쪽으로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며 느릿하게 속눈썹을 팔랑였다.
[내 곧 너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데도, 표정이 영 좋지 않으니.]
[헤헤.]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어르신은 다시금 상체를 바로 하고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래.]
이어 그가 느른하게 고개를 꺾으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내 의식이 반쯤은 이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 잘 보이지는 않지만, 네게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건 알겠구나.]
[아무래도 그렇죠……?]
[영혼이 네 힘을 이기지 못해 이리저리 찢기기 시작했으니.]
‘그 녀석’이 한 말대로군.
곧이어 어르신이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덧붙였다.
그 녀석이라면, 나를 살피러 왔던 정령을 이야기하는 거겠지.
‘그나저나 영혼이 찢기기 시작했다니.’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어차피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없지만.
[그래, 네 내게 무슨 말을 전하러 왔는지 확실히 알겠구나.]
이윽고 어르신이 턱을 치키며 오만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나는 이번에도 허허롭게 웃음을 터뜨리고서 도르륵 눈동자를 굴렸다.
내 주변인들은 다들 하나같이 눈치가 빨라서 좋다니까.
어르신은 주변‘인’이 아니긴 하지만.
[저희는 아무래도 타이밍이 별로 맞지 않는 것 같죠?]
나는 몇 마디 부연을 늘어놓는 대신, 한탄 섞인 말을 툭 내어놓았다.
[평소 같았으면 며칠만 더 버티면 되겠다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네요. 며칠은 고사하고 당장 몇 시간 뒤의 일일 것 같아서.]
[…….]
[그래서 조금 전까지 유언을 남기고 있었어요. 제 능력이 이런 데서는 꽤 도움이 되더라고요.]
물론 시간이 부족한 까닭에 모두에게 유언을 남길 수는 없었지만.
[너 말이다.]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고 있던 와중, 잠자코 내 말을 듣고 있던 어르신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포기한 게냐?]
[이게 포기하고 말고의 문제인가요?]
나는 순간 울컥 치밀어오르는 마음에 날카롭게 대꾸했다.
[버틸 수 없어요. 이건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에요.]
내 의사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단 말이야.
그게 바로 죽음이니까.
그게 바로 내가 겪은, 내가 겪을 마지막이니까.
[……죄송해요. 화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기껏 인사를 나누러 온 사람한테 화를 내서 무엇하랴.
[저는 그냥 어르신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리고……, 사과도 같이요.]
나는 곧 길게 숨을 들이쉬고서 이전처럼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절 위해서 최선을 다해 주셔서 감사해요. 보물도, 방어 결계도 그렇고. 정령을 보내 주신 것도요. 저번에도 말했지만, 덕분에 생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어요.]
[…….]
[과분할 정도로 많은 걸 제게 주셨는데, 저는 결국 세계수도 찾지 못해서……. 받아먹기만 하고 제대로 한 게 없어서 정말 죄송해요.]
세계수 찾는 게 어디 쉽겠냐마는, 받아먹은 게 너무 많다 보니.
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애초에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 사과도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게 보내 주셨던 보물 일부는 다시 돌려드릴게요. 또 사업 수익 일부분은 계속 레어로 보낼 수 있도록 어떻게든 조치를 할 테니―]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내 침묵을 유지하던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
[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 봤자 너는 결단코 믿지를 않으니, 그건 넘어가도록 하고.]
[…….]
[내 네게 준 것들을 갚을 필요는 없단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내내 바닥에 고정했던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가 황금빛 눈동자를 내게 고정한 채 다정히 말을 건넸다.
[모두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몇 번이고 입술을 어물거렸다.
하긴, 어르신이 마음만 먹으면 이런 보물쯤이야 금방 다시 모을 수 있겠지. 정령의 눈물도 어르신한테는 그렇게 소중한 게 아닐 테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르신은 제가 만난 존재 중에 가장 착하고 선한 것 같아요.]
아무리 그의 기준이 인간과 다르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퍼 주는 건 역시 정상이 아니잖아.
고작 나를 위해, 원하는 걸 들어주지도 못한 나를 위해서.
[내 살다 살다 이런 말을 듣기는 또 처음이구나.]
내 말에 어르신이 비뚜름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를 따라 맑게 웃어 보인 후, 무너져 내리는 꿈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만약 내게 조금의 시간이 더 있었다면, 그래서 어르신의 도움을 제때 받을 수 있었다면.
아니, 그보다도.
[그때, 제가 남을 돕지 않았다면.]
[…….]
[정말로 나을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만 되었다면 어르신을 계속 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루스와 작별 인사를 나눌 필요도 없고,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일도 없고.
[이제 슬슬 후회하느냐?]
내 말에 어르신이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물었다.
나는 입술을 잠시 말아 넣고서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게요, 이제야 조금 억울한 느낌이 없잖아 있는데.]
[흐음.]
[그래도 결국엔 엎질러진 물이니까요. 억울해도 어쩌겠어요.]
그 사람들이 내가 도운 몫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나는 명쾌하게 정리된 해답을 떠올리며 옅게 미소 지었다.
‘그거면 됐어.’
내가 그들을 살림으로써, 그들이 또 다른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생의 고리가 이어진다면.
[……역시 후회는 안 해요.]
짧은 순간, 주변의 풍경이 뿌옇게 흐려졌다가 선명해졌다.
그러자 어르신이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려는 것처럼 손을 뻗으며 말을 건넸다.
[여전히 재밌는 대답이구나.]
[제가 좀 재밌는 사람이긴 하죠.]
[그래서 내 너를 아낀단다.]
눈물은 닦이지 않았지만, 그 마음만큼은 여실히 전해져 들어와서.
나는 눈앞의 드래곤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어르신.]
말을 마치고 슬쩍 고개를 숙이니, 손가락이 옅게 투명해진 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의식이 선명해지려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했어.’
나는 꿈에서 멀어지는 의식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서서히 흐려지는 정신 너머로, 어르신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궁금하구나.]
끝내 마지막 말은 듣지 못했지만.
[……에도,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