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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필요하신가요? (106)화 (106/154)

제106화

축제 하면 역시 밤!

밤 하면 역시 축제!

별보다 더 환하게 빛나는 오색의 등불과 멀리서 들려오는 아코디언 소리,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와 활기찬 분위기까지.

“정말 너무 좋다. 너무 좋은데…….”

이 멋진 풍경 속에, 나만 혼자 동떨어진 패션인 것 같지 않나요?

“저 진짜 이거 입고 돌아다녀요?”

나는 내 몸뚱이를 한차례 휘감은 두꺼운 케이프를 가리켰다.

하얗고 두텁고 동그란 게, 멀리서 보면 완전 눈사람이겠는데.

“밤에는 쌀쌀하단다, 미에나.”

“요즘 부쩍 날이 추워졌어.”

부모님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나는 두 분의 얇은 옷차림을 일별했다가, 사람들의 복장을 바라봤다가, 다시 차갑게 식은 눈으로 내 케이프를 바라보았다.

“돌아다니기엔 너무 무거운 옷인데요. 걷다 보면 땀도 날 테고요.”

“나나 지크가 안고 다닐 테니 괜찮단다, 아가.”

“저만 이렇게 입고 있으니, 다들 절 이상하게 쳐다볼 거예요.”

“네 덕분에 추워도 얇은 옷만 입고 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이참에 유행의 선두주자가 되어 보는 건 어떻겠냐며, 지크프리트 씨가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 보였다.

저 간사한 웃음 좀 보게.

누가 봐도 놀려 먹으려고 작정했군.

“하지만 오늘은 조금 걷고 싶은 날이라서요. 괜히 더워서 더 고생하고 싶진 않으니, 조금 이따 추워지면 입을게요.”

나는 파묻히다시피 한 케이프 단추를 헤집어 풀어헤치고서 지크프리트 씨에게 건넸다.

그러자 아버지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대신 사람이 많으니 손을 꼭 붙잡고 다녀야 한단다, 알았지?”

“그럼요.”

나는 곧바로 활짝 미소 짓고서 고개를 돌렸다.

“잘 들으셨죠, 대공자님?”

“갑자기 절?”

동시에 유스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다니.’

하지만 나는 이 리틀 스노우맨 케이프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

“아무리 지크프리트 씨가 일당백이라 해도, 사람이 많을 때는 조심해야죠. 가뜩이나 부담되는 건 싫다면서 요즘 내내 호위도 안 데리고 오셨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잔말 말고 손잡아요.”

말을 마치고서 유스틴을 향해 손을 뻗자,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다 말고 느릿하게 팔을 움직였다.

손 하나 잡는데 뭐 이렇게 천천히 움직인담.

나는 그의 손을 냉큼 붙잡은 뒤, 다른 손으로 지크프리트 씨의 손을 붙잡고서 한데 모았다.

“좋아, 잘 잡고 다니세요.”

그 즉시 두 사람의 표정이 미묘하게 썩어 들어갔다.

“이게 무슨……,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이긴요.”

금이야 옥이야 소중한 대공자의 신변 보호를 위한 장치지.

물론 조금 어색하고 부끄럽고 소름 끼치겠지만, 알아서 감수하시고.

“너어는 진짜…….”

이어 지크프리트 씨가 반 박자 늦게 혀를 내둘렀다. 유스틴 역시 정신을 차리고서 그의 손을 재빨리 뿌리쳤다.

“됐습니다. 당신이나 조심하시죠. 가뜩이나 당신은 이곳에 제대로 와 본 적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녀석, 앙칼지긴.

웃긴 거 봤으니까 장단 맞춰 준다.

“그건 그렇죠.”

나는 슬쩍 눈동자를 굴려 다시 한번 주변을 바라보았다.

꿈속에서 몇 번 와 본 적 있는 곳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꿈에서 보는 거랑 실제로 보는 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꿈이 왜곡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없어야 할 골목길이 생긴다거나, 있어야 할 건물이 생략된다든가.

그런 걸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사람이 참 많아요.”

이런 광경은, 이런 활기참은 처음 느껴 보는 종류라.

나는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을 빠짐없이 눈에 담으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

“대공자님 말씀처럼, 이런 곳에 오는 건 거의 처음이거든요.”

전생에서도 몸이 좋지 않아서 놀이공원은 딱 한 번 가 본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전에 가야 했었다.

대학 축제는 당연히 경험해 본 적 없이 죽어 환생했고.

“역시 보러 오길 잘한 것 같아요.”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서 속눈썹을 몇 번 팔랑거렸다.

애석하게도 내 영혼은 어린아이가 아닌지라, 마냥 순수하게 이 순간을 즐길 수는 없는 게 아쉬웠다.

저 밝은 웃음 속에 온전히 낄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질투 나고…….

‘안 돼!’

이렇게 좋은 날에 부정적인 감정이 웬 말이냐!

생각을 마친 즉시, 나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서 다른 곳으로 집중을 돌렸다.

“지금 보니 등불 안에 마정석이 들어 있네요? 마정석을 일반 백성이 가지고 있을 리는 없고, 제국 차원에서 지원한 건가요?”

“건국제는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니까요. 여러모로 신경 쓸 수밖에 없죠.”

“저렇게 비싼 물건에 아무도 손을 안 대는 걸 봐선, 빛을 밝히는 마법 말고도 다른 마법이 걸려 있을 것 같은데. 맞나요?”

“훔치려 하는 자를 공격하는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오…….”

단순하고 확실하면서 과격하기 짝이 없는 마법이군.

‘그래 봤자 내가 건들면 공격 마법 쪽이 파훼되겠지.’

귀찮음을 무릅쓰고 뒤처리할 자신은 없으니, 건들 마음은 없지만.

“그러고 보면 곧 연극이 시작하겠군요. 매년 황궁에서 극단을 보내 건국제 관련 연극을 하니까요.”

잠깐 생각에 빠졌던 동안, 유스틴이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색색의 마정석 등불에서 시선을 떼고서 그의 말을 받았다.

“연극 좋네요. 조금 이따 다 같이 보러 가요.”

“그렇다면 미리 사람을 보내 자리를 따로 빼놓으라고 하겠습니다. 야외 공연이라―”

“에이, 됐어요. 이왕 온 거 제대로 섞여 들어야죠.”

“하지만…….”

“낭만을 즐겨야죠, 낭만을. 대공자님께서는 가끔 이렇게 안 놀아 본 티를 내신다니까요?”

“딱히 당신한테서 들을 말은 아닌 것 같군요.”

내 말에 유스틴이 어이없다는 듯 헛숨을 들이켰다.

나는 보란 듯 미소 지었다.

“저야 그래서 더 낭만을 즐기려는 거죠.”

이게 내 로망이다, 자식아.

“근데 너는 키가 작아서 안 보일 텐데?”

그사이 지크프리트 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여전히 부드럽게 입꼬리를 빼 당긴 채 그의 목과 어깨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래, 알면서 물은 내가 잘못이지.”

지크프리트 씨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서 두 손을 들었다.

나는 만족스레 눈꼬리를 휘고서 이번에는 부모님을 향해 말을 꺼냈다.

“연극을 당장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우선은 먹을거리 사서 축제 구경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 당연히 괜찮지.”

“말만 하려무나. 뭐가 먹고 싶니?”

앗, 길거리 음식을 이렇게 쉽게 허락해 줄 줄은 몰랐는데.

“어, 딱 짚어서 말하기는 조금…….”

“그래? 그럼 일단 내가 가서 맛있어 보이는 걸 사 오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신이 난 얼굴로 헐레벌떡 자리를 떴다.

“아니, 저이는 돈도 없으면서……. 기다리고 있으렴. 금방 다녀오마.”

심지어는 어머니마저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의 뒤를 쫓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나는 눈을 끔뻑이다 말고 지크프리트 씨의 옷깃을 끌어당겼다.

“저렇게 두 분만 보내도 되는 거예요? 위험하지 않아요?”

가뜩이나 우리 아빠는 사람이 선해 보여서 표적이 되기에 십상인데!

“별로, 괜찮을걸.”

내 걱정과는 달리, 정작 지크프리트 씨는 어깨를 으쓱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래 보여도 네 아버지랑 나는 같이 검술을 배우면서 알게 된 사이니까. 나랑 검술 대련도 몇 번 했고.”

“아버지가…….”

그러고 보면 옛날에 아빠가 애지중지하던 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가산이 거덜 나자마자 곧바로 팔아 버리셨지만.

‘내가 모르는 부모님의 모습이라.’

어쩐지 기분이 조금 이상한걸.

나는 내게서 멀어진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뺨을 긁적였다.

내가 떠난 후 부모님은 어떤 삶을 사실까?

‘많이 힘들어하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내가 아닌 다른 건강한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단 말이지.

내 친동생이어도 좋고, 가족이 필요한 누군가를 입양해도 좋으니.

그저 행복하게 본인들의 삶을 살아가셨으면…….

“갑자기 왜 그렇게 울상이야?”

바로 그 순간, 커다란 손이 내 시야를 가득 막아섰다.

나는 곧바로 상념을 지워 내고서 지크프리트 씨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한쪽 입꼬리를 장난스럽게 빼 당겼다.

“즐기려고 나온 거잖아. 잡생각 하지 말고 즐기기나 해.”

아무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여간, 너무 붙어 있었다니까.

“그러려면 일단 이 거대한 손부터 치워야…….”

지크프리트 씨를 따라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아 내리던 순간이었다.

“오?”

손을 내리자마자 보이는 어떤 사람의 모습에, 나는 작게 입술을 오므렸다.

저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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