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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필요하신가요? (81)화 (81/154)

제81화

쓸데없이 너무 높이 올라온 감이 있지만, 오늘은 첫 차시 수업이니 우선은 전체적인 풍경을 익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번 단원은 바로 이거랍니다.

‘우리 주변의 공공기관 알아보기.’

겸사겸사 루스가 지내는 곳도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미에나 집은 어디예요?]

그사이 루스가 나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나는 곧바로 손가락을 뻗어 어느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쩌어기.]

아, 이렇게 하면 잘 안 보이겠네.

[저기, 저 빛나는 곳 보여?]

주변은 조금 흐리게 조정한 채 시두스 저택 위로는 밝은 빛을 뿌리자, 마치 하늘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것만 같은 상황이 완성되었다.

더 명확한 구별을 위해 특별히 저택에 은총을 내려 보았습니다.

[네에, 보여요!]

[저기가 우리 집이야. 혹시라도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저기로 간 다음에, 나랑 제일 친한 친구라고 우겨.]

우기지 않아도 우리 부모님이라면 어떻게든 너를 찾아 돌볼 테지만.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내 능력에 대해 말하면서 루스를 찾고 있다는 사실도 같이 털어놓을 생각이기는 한데.

[제일 친한 친구…….]

괜히 착잡해지는 마음에 한숨을 내뱉는 사이, 곁에서 자그마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루스는 연신 방실방실 웃으며 내가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제일이요, 미에나. 제일.]

곧이어 그가 헤헤 웃음을 터뜨리며 자랑하듯 내게 말을 건넸다.

나는 새하얗고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쑤석거리며 따라 말했다.

[그래, 제일.]

너랑 나랑 제일 친한 친구니까, 이제 슬슬 너의 가장 깊은 비밀을 알아도 되지 않을까?

다른 거 안 하고 가려진 얼굴들만 확인할게. 그거 알면 너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단 말이야.

‘안 된다고 하겠지.’

깊은 친구 사이라고 한들 비밀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루스는 그 얼굴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것 같았다.

괜히 아픈 부분을 찔러 아이가 숨게 만드느니, 내가 좀 더 노력하는 수밖에.

[나중에, 네가 그곳에서 나오면.]

나는 시두스 저택에 집중적으로 쏘아 보냈던 빛을 거둔 후, 황도의 전체적인 풍경을 눈에 담으며 입을 열었다.

[아주아주 맑은 날에 높은 전망대에 가서 이 풍경을 직접 봐 봐. 속이 뻥 뚫릴 거야.]

그렇다고 지금처럼 구름 위로 올라오려고 하지 말고.

가볍게 농담까지 덧붙이자, 루스가 잠시 말없이 짙푸른 눈동자를 끔뻑거리다가.

[미에나랑 같이 볼래요.]

두 눈매를 반달처럼 휘어 웃으며 말했다. 누구보다 순수한 어린아이의 미소였다.

나는 그 해맑은 미소에 차마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꿀꺽 침을 삼켰다.

‘동심을 지켜 주고 싶은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부로 할 수는 없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자, 일단 지금은 공부 시간이지요? 사사로운 이야기는 수업이 끝나면 하도록 합시다.]

나는 조금 전의 스포트라이트를 다른 건물에 쏴 대며 상냥하게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기 보이는 빨간 벽돌의 건물은 소방대 건물이에요. 불이 나면 대원들이 가서 불을 꺼 준답니다.]

구색은 갖춰져 있지만, 아직 완전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는 않지.

그래서 조만간 유스틴을 들들 볶아 좀 더 보강할 생각이다.

물론 돈은 내가 대고.

[저기는 의료원이에요. 루스가 몸이 아프면 저기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의원이 별로 없는 데다 치료비도 비싸 일반 백성이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단점이 있지.

그래서 이것도 조만간 에버딘 가문의 대공자를 슬쩍 볶을 예정이다.

돈은 당연히 내가 내고.

‘당장은 돈이 조금 빠듯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니, 다른 곳에서 이윤을 봐 끌어다 쓸 수밖에.

‘창고에 있던 책 중에 꽤 쓸 만한 게 몇 개 있었으니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계속해서 황도 내 관공서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다음에는 이곳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여 줘야지.

[그리고…….]

그렇게 한참 이야기하던 도중, 나는 불현듯 어느 한곳에 시선을 두고서 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아직 아무런 건물도 들어서지 않은 황량한 부지.

빈민가 근처에 있어 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잘 매각되지 않은 곳이지만…….

[저기에는 곧 아동 후원 재단이 들어설 거야.]

이전처럼 엄격한 재능 심사를 거치는 후원이 아닌, 아이라면 누구든 지원받을 수 있는 후원 재단.

첫 시작은 마담 아페르타의 저택에서 구출한 아이들이 될 것이다.

‘여건만 된다면 나중에 전국적으로 지부를 세우고 싶은데.’

이런 건 사실 예산 때문에라도 국가적인 사업으로 진행하는 게 맞지만, 제국에 바라기에는 너무 이른 복지 정책이라서.

그렇다고 복지 수준이 향상되기를 손가락만 빨고 기다릴 수도 없으니.

‘파이팅, 유스틴!’

어차피 나 혼자서는 평생 낭비해도 못 쓰고 죽을 돈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자!’

내가 죽기 전에 멋진 사업 아이디어 몇 개 더 짜내 볼게!

[모두 너를 도와줄 곳들이야.]

한창 자고 있을 유스틴을 향해 텔레파시를 보낸 후, 나는 루스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너와 함께 이곳에 오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네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해 줄게.

너는 그걸 밟고 올라와.

[그러니 밖이 무서워서 나오기 싫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에…….]

내 말에 루스가 잘 와닿지 않는 얼굴로 자그맣게 대답했다.

나는 옅게 미소 지으며 루스의 발아래 놓인 전경을 바라보았다.

언제가 되었든, 설령 내가 이 세상을 떠나도, 어떻게든 내가 너를 찾아낼 테니.

너도 그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은 해 주기를.

지금의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지니기를.

‘그래도 역시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하긴 할 텐데.’

유스틴한테만 맡기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윈프리드 거리 근처에 사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티파티를 꾸려 볼까.

라고 생각했는데…….

* * *

“당분간 티파티는 열지 않는 게 어떻겠니?”

“앗.”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나는 초대장을 보낼 명단을 적은 종이를 등 뒤로 숨기며 입술을 오므렸다.

유스틴도 아니고 부모님이 반대할 줄이야.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막는 게 내키지는 않지만, 저번 일도 있고 하니 걱정이 되는구나.”

“그래, 미아. 괜히 저번에 그릇된 소문을 믿고 외출했다가 봉변당할 뻔했잖니. 게다가 우리에겐 말도 하지 않고.”

이에 질세라 어머니마저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덧붙여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마담 아페르타의 저택으로 가게 된 계기가 티파티에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두 분은 내가 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니, 티파티에서 정보를 들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네 몸을 더 살펴야 할 때야.”

“지크프리트가 항상 네 곁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렇게 마주 보고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한동안 경각심을 갖고 조심해야 해.”

아니, 저 사람은 따지고 보면 공범인데요? 조건을 걸기는 했지만 내 계획에 동참했는데?

난데없이 소환된 이름에 화들짝 놀라 지크프리트 씨를 바라보자, 그가 씨익 입꼬리를 빼 당겼다.

저, 저, 얄미운 미소 좀 보소.

“그보다 이번에는 우리끼리 여행을 가는 게 어떻겠니?”

그사이 부모님이 나를 달래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제안했다.

“아니, 그…….”

물론 좋지만, 너무 좋지만.

나는 아직 찾아야 할 사람이 있는데요? 이렇게 놀 수는 없는데?

“혹시 우리랑 놀러 가는 게 싫은 거니?”

“아뇨, 그럴 리가요! 그건 아닌데, 아직 해야 할 일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대던 순간이었다.

“미아, 네가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단다.”

그보다 한발 앞서, 어머니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식이 부모한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그전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

“그 비밀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게 되는 건 조금 슬프구나.”

말을 마친 어머니가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씁쓸한 미소를 띠었다.

나는 그 웃음을 마주하고선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에게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부모님 역시 나를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당연한 사실 하나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혼자 우선순위를 세우고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뒷전으로 보냈으니.

‘어차피 말해야 하는 일이었어.’

지크프리트 씨와의 거래가 아니더라도, 이전부터 계속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으니.

차라리 모두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자.

“그래서 말인데,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생각을 마친 즉시, 나는 부모님을 차례로 바라보며 결연히 입을 열었다.

“전 사실 돈 냄새를 맡는 능력을 지닌 게 아니에요.”

“…….”

“제 능력은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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