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결론적으로 마담 아페르타의 사건 자체는 해가 중천에 뜬 대낮에 일어난 일이라기에는 믿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게 수습되었다.
저택에 자체적인 소리 차단 마법이 걸려 있던 까닭에,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그 어떤 비명도 듣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도 에버딘 가문의 사병이 쳐들어간 것 때문에 눈길이 좀 쏠리기는 했지.’
앞으로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거기에 내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 한바탕 소동이 일겠지.
나는 응접실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유유히 홍차를 들이켰다.
그러는 동안 내 앞에 앉아 있던 유스틴이 냉정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브리핑을 늘어놓았다.
“당신 말대로 러셀 경께서 사용인들의 목숨은 모두 제대로 붙여 놓았더군요. 혹시라도 일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 조사를 진행해 본 결과, 모두 공범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그 부분은 클레어한테 이미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나는 미간을 좁히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역해서.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단 한 명도 마담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이 역겨웠다.
살인을 정당화하는 뻔뻔함이, 그러면서도 인간의 탈을 쓴 꼴이, 저들 모두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어르신은 인간이기에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거라고 말하겠지.’
인간이라 그런 짓을 저지르는 거다. 인간만큼 제 동족을 잔학하게 학살하는 종족은 없다.
나도 알고는 있지만…….
“잭이라는 자를 제외하고는 사용인 모두 세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정신으로 그런 짓에 동참했다는 소리네요.”
“다만 심증이 확실한 것과 별개로, 그들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그렇게 교육받은 거겠죠.”
곧이어 유스틴이 여전히 눈매를 굳힌 채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품속에서 자그마한 마정석을 꺼내 테이블 앞에 내려놓았다.
“녹음 기능이 있는 아티팩트예요.”
이럴 줄 알고 준비했습죠.
“지하 복도에서 마담이 했던 말이 담겨 있어요. 저랑 대화 나눈 부분은 아니고, 정확히는 잭한테 세뇌를 건 시점부터 녹음되어 있기는 한데 아마 그걸로도 충분할 거예요.”
잭한테 심리적 지배를 한답시고 모든 죄를 술술 불었으니, 그들도 더는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혹시나 해서 챙겼는데 다행이네요. 저 없었으면 조사하기 참 힘들었겠다, 그죠?”
어르신 창고에 별의별 아티팩트가 다 있길래 모조리 챙겨 봤는데, 이렇게 쓸모를 다하니 제법 뿌듯하군.
파랗고 동그란 캐릭터의 주머니 같은 드래곤 레어를 떠올리며 손가락으로 코 아래를 쓱 훑었다.
그러자 유스틴의 표정이 서늘하다 못해 오뉴월의 서리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맞다, 유스틴 지금 나한테 화 단단히 난 상태였지.
“헤, 헤헤…….”
나는 괜히 멋쩍은 마음에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나름대로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한 농담이었는데.
‘일단 화부터 풀어 줘야겠는데.’
저 일 중독 자식한테 가장 알맞은 방법이라면 역시 업적 어필이지.
“그으래도 이번엔 제 나름대로 일 처리 굉장히 확실하게 했다고 생각하는데요오.”
저번처럼 무턱대고 들이박은 것도 아니고, 몇 번 간도 보고 도발도 하면서 계획적으로 접근했잖아.
“당신이 그곳에 있었잖습니까.”
유스틴이 내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듯 미간까지 좁히며 반박했다.
아하, 내가 그 일에 대놓고 연루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구나.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어쨌든 저는 전적으로 피해자 신분으로 거기 가 있던 거니까요. 운이 좋지 않아 마담의 꾐에 빠질 뻔한 거지, 어떠한 꿍꿍이도 없었다는 게 저의 공식 입장입니다.”
“…….”
“혹시라도 저희가 짜고 친 거라는 의심을 받을까 봐 제보 편지도 일부러 왼손으로 써서 보냈는데요. 제 글씨체 아닌 것 같지 않나요?”
안 굴러가는 머리를 최대한 굴려 본 건데, 별로였나?
일부러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으니, 유스틴이 나를 빤히 바라보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습니까.”
그러고서 그는 피곤에 찌든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복용하는 약의 성분이 더 독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앗.”
갑자기 그 화제를 끌고 오다니.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이 방법이 아니었구나.
“일부러 개발새발 글씨를 써서 보낸 것도, 당신이 일부러 나와의 접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는 것도 모두 내 알 바 아닙니다.”
“…….”
“중요한 건 당신이 그런 몸으로, 그런 곳에 단신으로 쳐들어갔다는 거죠.”
“아니…….”
단신이라기에는 제 옆에 지크프리트 씨도, 클레어도 있었는데요.
‘이렇게 반박하면 당장 닥치라는 눈빛이 날아들겠지.’
나에게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기에, 나는 굳이 말꼬리를 붙잡는 대신 나름의 변명을 내뱉었다.
“그, 제가 최근에 좀 좋은 인연이 닿아서 제 한 몸은 건사할 수 있는 방어막을 얻게 됐거든요. 대공자님이 제게 주신 아티팩트보다 성능이 좋아요. 횟수 제한도 없고…….”
“그거보다 성능이 좋다고요?”
아무래도 리처드 8세를 선물해 주신 분의 작품이라…….
나는 어르신의 권태로운 얼굴을 떠올리며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실험해 볼 생각은 하지 말고. 괜한 사람 다치는 건 싫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유스틴이 은빛 눈동자를 내게 고정한 채 천천히 말을 건넸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었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무모하게 뛰어든 겁니까? 편지를 받고 당황했을 제 심정은 고려하지도 않고.”
“무모하다고 판단하지 않아서 그런 거예요. 사전에 세 번이나 만나면서 상대 전력 파악도 충분히 했고, 저택 내부도 최대한 알아내 그에 맞춰 계획도 세웠고, 능력 점검이나 준비물도 모두 챙겼고.”
거기에 추후 수습해야 하는 것들이나 증거, 증인 수집까지 모두 마쳤는걸.
마담 아페르타의 죽음은 계획에 없는 거였으나, 어찌 됐든 이만하면 모두 생각대로 된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공자님께 지원도 요청했잖아요.”
이건 사실 목격자의 수를 늘려 발뺌할 수 없게 만들려는 목적에 가깝긴 했지만.
내 말에 유스틴이 두 손가락으로 미간을 문지르며 쏘아붙였다.
“상대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고요.”
“대신 그쪽은 변수 계산을 제대로 못 했죠.”
“그래서, 당신은 잘했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은 조금 없어지는데.
나는 괜스레 찔리는 마음에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거기서 드래곤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거 말고는 정말 완벽했는데.
‘아마 유스틴도 그 말이 하고 싶던 거겠지.’
천재가 아닌 이상 개인이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는 없다.
그런 와중에 나처럼 연약한 사람이 대뜸 ‘가 보자고!’ 하면서 나쁜 놈 잡으러 갈 거니 지원 부탁한다는 편지만 남겨 놓고 떠나니…….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선사고 후보고가 일상이 되어서, 그만 다른 사람의 기분은 헤아리지 못했네.
깔끔하게 인정하며 고개를 숙이자, 유스틴이 다시금 길게 숨을 내쉬며 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러셀 경이 이런 계획에 동참해 줄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겁니까?”
나는 숙였던 고개를 퍼뜩 들고서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아, 그……, 사실 러셀 경이랑도 이번 일 관련으로 거래해서…….”
“거래요?”
“이번 일이 끝나면 부모님께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하기로 했거든요.”
내 능력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해 왔는지, 뭐 그런 것들.
그러지 않으면 날 붙잡고 절대로 마담 아페르타 저택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길래, 하는 수 없이 받아들였더란다.
‘언젠가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일이 이 지경까지 됐는데 부모님만 모르는 건 이상하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일도 없을 거예요.”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었어.
“……그래요.”
내 말에 유스틴이 그제야 만족한 듯 내내 좁혔던 미간을 풀었다.
그러고서 그는 몇 번 속눈썹을 팔랑이며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곧 다시 한번 질문을 꺼냈다.
“그런데 마담이 이런 실험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결국 올 것이 왔군.
“우연히 레이디 에카르트의 꿈에 들어갔다가, 꿈이 뭔가 수상해서 좀 더 파 보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당신은 꿈에서 수상함을 느낀 것만으로 바로 행동에 나설 사람은 아닌 걸로 아는데요.”
“아무래도 저희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것 같아요.”
날 너무 잘 알고 있잖아.
나는 하는 수 없이 한숨을 내쉬고서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개인적으로 찾고 있는 아이가 있는데, 꿈속의 상황이 그 아이가 겪은 상황과 비슷했거든요. 게다가 레이디의 꿈이 상당히 생생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는 유스틴이 바쁘다는 이유로 혼자 찾아왔지만, 이제는 혼자서 찾아내겠다는 고집을 버릴 필요가 있었다.
이러다간 영영 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대공자님께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정보가 한정되어 있어서 찾을 수 있을까 싶지만…….”
내 말에 유스틴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인상착의를 알려 주면 저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나는 그의 호의를 사양하지 않고 냉큼 말을 이었다.
“여덟 살에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예요. 눈매는 이렇게 내려가서 순하게 생겼고요. 창문이 없는 방에 갇혀 지내는데, 샹들리에에 마정석이 박혀 있는 걸 보면 부유한 가문인 것 같았어요.”
“머리 색이나 눈동자 색은요?”
“머리카락은 새하얘요. 은색도 아니고, 진짜 눈처럼 새하얀 느낌? 눈동자 색은 저보다 훨씬 짙은 파랑이에요. 어쩌면 지크프리트 씨보다 더……. 아, 그리고 무지하게 예쁘게 생겼어요.”
유스틴과 더불어 장래가 기대되는 외모였지.
루스의 아기 천사 같은 미모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유스틴이 잠시 침묵하다 말고 입술을 달싹였다.
“……정말로 그 특징이 맞습니까?”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유스틴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내게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때보다 훨씬 더 차갑게 굳어 있었다.
뭐야, 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