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그렇게 지크프리트 씨와 클레어가 응접실을 빠져나가고.
“무슨 조언을 듣고 싶기에 대공가의 사람들을 모두 물린 건지, 저도 조금 궁금해지는군요.”
마담 아페르타가 우아하게 웃으며 운을 뗐다.
나는 더없이 천진한 아이처럼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어, 사실 제가 그동안 많이 아팠잖아요오. 하마터면 저희 가문이 저 때문에 망할 뻔했고요오.”
“레이디는……, 정말 솔직하시군요.”
“헤헤, 칭찬 감사해요. 아무튼, 그런 상황에서 저를 선뜻 후원해 주신 대공자님이 정말 멋져 보였거든요.”
선시비를 턴 나를 찾아와 거래를 요청하는 그 기개! 그거 하나만큼은 나도 인정하지. 멋지다, 유스틴.
“그래서 저도 작게나마 후원 사업? 후원? 같은 걸 해 보고 싶어서요오.”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줍게 말하니, 마담 아페르타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되물었다.
“그런 거라면 에버딘 대공가에 직접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나는 발가락까지 같이 꿈질거리며 대답했다.
“그으, 제가 생각하는 후원은 에버딘 대공가의 방식과는 쪼금 차이가 있어서요. 아시다시피 그쪽은 절차와 조건이 많이 엄격하잖아요오. 그거랑은 달리 제가 후원하고 싶은 건…….”
이게 맞나? 제대로 먹힐까?
순간 온갖 걱정과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잠식했으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지금은 내 직감을 믿을 수밖에.
“저와 같은 처지의 어린아이들이거든요…….”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요? 환아를 돕고 싶다는 말씀이신가요?”
“사실 제 병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어, 그런데 이거 정말 비밀인데……. 말하면 안 된다구 했는데…….”
이쯤에서 한 번 멈춰 줘야지.
일부러 순진한 척 뜸을 들이자, 마담 아페르타가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부드럽게 나를 다독였다.
“괜찮으니 말해 보세요, 레이디. 이곳엔 저희 둘밖에 없으니까요. 비밀이 새어 나갈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헤헤, 이거 정말 비밀이에요오.”
이 정도면 저 사람 머릿속에서 대충 내 이미지가 정리됐겠지.
나는 몇 번 입을 어물거리고서 천천히, 아주 은밀한 비밀을 말하는 듯 입을 열었다.
“사실 제 병은 가진 마력을 몸이 다 수용하지 못해서 생기는, 따지고 보면 체질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옮기지도 않구…….”
후원에 관한 조언은 거들 뿐.
진정한 목적은 마담 아페르타의 목적을 유추해 그 관심을 내게 돌리는 데에 있었다.
‘아이들을 가두고 할 만한 일이 과연 몇 종류나 될까.’
단순히 노예 시장에 납치한 아이들을 파는 거면 굳이 저택에 가둘 필요도 없었을 터.
직접 아이들을 관리하고 그믐마다 한 명을 골라 어떠한 의식을 행한다면, 그건 필시 마법과 관련된 일일 터.
‘마정석이 아닌 굳이 산 사람을 이용하는 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요컨대 사람이 가진 고유한 마력에 관한 실험이라든가.
여기까지가 내가 유추한 내용.
이에 맞춰 나는 미끼를 뿌렸으며.
“그런…….”
그녀의 반응이 내 모든 가설을 증명해 주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를 바라보던 마담 아페르타의 두 눈동자가 순간 매섭게 빛났다.
그야말로 먹잇감을 찾은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좋아, 넘어왔군.’
그것도 아주 월척으로.
“시두스 가문이 가산을 다 탕진할 정도로 차도가 없는 병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런 이유라면 이해가 되는군요.”
곧이어 그녀가 짧은 찰나 흥분으로 물들었던 눈빛을 정돈하고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러나 목소리에 담긴 호기심과 갈망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제 딴엔 완벽하다 싶겠지만.’
애석하게도 이쪽은 대공자와 성황을 넘어 드래곤까지 마주한 사람이라.
“그렇다면 지금은 그 체질이 완전히 고쳐진 걸까요?”
내가 쓸모있는 패인지 쓸모없는 패인지 확인하고 싶은가 보군.
그렇다면 답은 하나지.
“우음, 사실 완전히 고친 건 아니라고 했어요. 마력을 억제? 하고 있다구 그랬는데……. 그래서 많이 돌아다녀서도 안 된다구…….”
“저런,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녀가 퍽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내게 말을 건넸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속아 넘어갔을 법한, 그야말로 완벽한 위로였다.
이 사람, 연기 좀 하는데? 이번 연기대상은 경쟁이 치열하겠어.
“레이디의 마음은 잘 알았습니다.”
곧이어 그녀가 사르르 눈꼬리를 휘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는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돕는 것뿐이라, 저 역시도 레이디가 원하는 후원 방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앗, 역시 힘드신 걸까요…….”
“이렇게 절 찾아와 주셨는데 박대할 수는 없지요. 제가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도와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마담 아페르타는 이어 테이블 옆에 놓인 협탁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제 초대장입니다. 대공자님의 추천서를 받아 오실 필요 없이, 이걸 건네시면 설령 제가 없더라도 사용인들이 성심껏 레이디를 모실 거예요. 그러니 언제든 오고 싶으실 때 찾아오세요.”
“헉, 제가 정말로 이걸 받아도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요. 대공자님께 다시 추천서를 받기에는, 레이디께서 저와의 만남을 숨기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요.”
“에헤헤, 들켰네요……. 사실 이번에 추천서를 받는 데도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요오.”
내가 무려 아침 댓바람부터 유스틴한테 편지를 써서 날렸단다.
그리고 진상을 알게 된 순간 미주알고주알 모두 일러바칠 생각이지.
“다른 이에게는 이 초대장의 내용이 보이지 않으니 혹 들키더라도 괜찮을 거예요.”
“우와아, 마법이군요! 대단해요!”
“별것 아닌걸요. 자, 그럼 밖에 모셨던 손님들을 다시 모셔 올까요?”
이윽고 마담 아페르타가 자리에서 살짝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곧바로 잡념을 지우고서 그녀를 따라 엉거주춤 엉덩이를 일으켰다.
알아서 잘 살펴보겠지 싶은 마음에 일단 밖으로 내보내기는 했는데, 설마 사고 쳐 놓은 상태는 아니겠지.
여기선 아무 소리도 안 들리기는 했는데.
“저도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으니 같이 나가요, 헤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곧이어 굳게 닫혀 있던 응접실의 문이 열리자.
“……기다리다 지치는 줄 알았네.”
벽에 기대서 있던 지크프리트 씨가 한숨을 내쉬며 자세를 바로 했다.
클레어 에카르트 역시 그의 곁에 선 채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다.
나는 긴장했던 숨을 천천히 풀어내며 마담 아페르타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감사했어요, 부인. 그럼 다음에 또 뵈어요!”
* * *
“저택에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돌아다니는 게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더라.”
곧이어 저택을 완전히 빠져나온 후, 우리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크프리트 씨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러셀 경이 아니었을 텐데요.”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고 좀 살펴보긴 했지. 그런데 네가 원하는 정도인지는 잘…….”
지크프리트 씨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가던 찰나였다.
“레이디께서 어떤 이유로 이곳에 관심을 두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만두세요.”
클레어 에카르트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레이디?”
“특히나 레이디는 몸도 약하신데,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계신단 말이에요. 저 사람의 눈에 들면 안 돼요!”
어제오늘 봤던 소심했던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한 기색이었다.
저 긴 문장을 말하는데도 한 번도 안 더듬거렸네. 의견 피력은 이렇게 해야지. 좋은 자세야.
루스도 보고 배워야 하는데.
“저, 레이디. 마땅한 설명이나 이유 없이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데요…….”
나는 짐짓 당황한 척 그녀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자 클레어 에카르트는 몇 번이나 침을 꿀꺽 삼켰다가,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 나지막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정말로 위험해요.”
“그러니까, 이유가…….”
“전생의 제가 바로 저 사람의 실험에 동원당해 죽은, 마력 추출 실험의 피해자니까요.”
와, 이건 너무 돌직구인데.
“실험의 부작용인지, 아니면 충격이 너무 깊었던 탓에 차마 전생을 잊지 못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저는 그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게다가 그 여파인지 모르겠지만, 타인이 지닌 마력이나 힘의 크기도 파악할 수 있어서…….”
“그래서 저번에 제게 다가오신 거군요.”
그녀가 본 게 어르신의 마력이든, 내 본연의 능력이든.
보통 인간은 지닐 수 없는 강대한 힘이었을 테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을 지니고 계시니, 혹시 레이디께서도 저처럼 전생의 기억을 지니신 걸까 궁금해서…….”
“이해해요.”
홀로 동떨어진 세상에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반가우니까.
내 말에 클레어 에카르트는 순간 감동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다시금 결연히 눈매를 굳히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레이디는 이 일에 더 관여하시면 안 돼요. 분명 좋지 못한 일을 당할 거예요. 저 사람은 한 번 점찍은 사냥감은 무슨 짓을 해서든 손에 넣고 만단 말이에요……!”
그 눈동자에 담긴 것은 분명 공포였고 절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손을 놓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나를 울타리 밖으로 밀어냈다.
클레어 에카르트는 미련할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괜찮아요, 레이디. 저는 물러설 생각 없어요.”
나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마주 잡고서 미소 지었다.
“게다가 저 사람은 이미 저한테 푹 빠졌으니까요. 음, 그러니 어찌 보면 잘된 일이네요.”
“그게 어떻게 잘된 일이에요!”
“가만히 듣자니까, 나도 이건 못 참겠다. 그게 뭐가 잘된 일이야?”
내 말에 클레어는 물론이요 급기야는 지크프리트 씨마저 발끈하며 말을 보탰다.
아니, 그거야 당연하지.
나는 눈꼬리를 배시시 휘며 말을 이었다.
“그야 현행범으로 잡혀야 빼도 박도 못하게 혐의를 인정할 수 있으니까요.”
“…….”
“그렇다고 냅다 저택에 침입하는 건 도리어 이쪽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건데, 이왕이면 깨끗하게 잡아야 잡음이 없죠.”
“말이 길어지는 게 불안한데…….”
지크프리트 씨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고, 클레어가 거의 기절할 것 같은 낯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상황 속에서.
나는 더없이 맑은 미소로 말했다.
“여러분, 저 한 번만 믿어 주시죠.”
나한테 다 생각이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