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당신이 본 사람들은 제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처리해 온, 저의 적이에요.”
저기요, 적이요?
어느 정도는 예상했으면서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 발언에, 나는 멍하니 두 눈을 깜빡였다.
“어린아이와 노파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사람을 해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사람을 외관으로 판단하면 안 되기는 하지만.
“검은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아이는.”
내 생각을 읽은 건지, 성황이 옅게 웃는 낯으로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제가 신전에 몸을 담기 전에 의탁했던 보육원의 동기예요.”
“그렇군요…….”
“그 친구는 신전에 가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닌 자신이라고 우기며 제가 탄 마차 앞에 달려들었다가 그대로 말에 치여 죽었죠.”
“…….”
“왼쪽 뺨에 흉터가 있는 노인은 제가 수습 사제였던 시절 머물렀던 신전의 요리사였어요. 제가 자기 대신 일반 사제로 뽑혀 대신전에 들어갈 것을 우려한 이의 사주를 받아 제 음식에 독을 풀었었죠.”
입가에 맺힌 미소는 언제나처럼 온화했고, 내뱉어지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했다.
그는 계속해서 그들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천천히 읊어 나갔다.
“별로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죠.”
이윽고 말을 마친 성황이 또 한 번 말끔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가 했던 말을 하나씩 되짚어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업보를 그대로 되돌려받은 사람도 있었고, 직접 죄를 지었다기에는 애매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모두 그가 성황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크든 작든 걸림돌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이 사람도 만만찮게 힘들게 살았네.’
영웅의 팔자는 원래도 기구한 법이지만, 특히 심한 편인걸.
“제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오를수록, 견제와 위협은 심해졌어요. 가장 심했던 시기는 역시 대신관 자리에 오르기 직전, 수석 신관이던 시절이었죠.”
“…….”
“스스로 이런 말을 하려니 조금 부끄럽지만, 가진 능력이 워낙 뛰어나야 말이죠. 그래서 저는 늘 최연소라는 말머리를 달고 있었어요.”
대신관 자리에 오르기 전에도 이미 차기 성황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였다며, 그가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연고도 없는 고아 출신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게 못마땅했을 거예요. 특히나 대대로 성황을 배출했던 가문이면 더더욱 제가 거슬렸겠죠.”
곧이어 그가 푸른 수국 같은 눈동자를 내게 고정하며 말했다.
“비단 정적뿐만 아니라, 제 곁에 있던 죄 없는 목숨 역시 많이 스러졌습니다.”
“…….”
“제 손을 직접 더럽힌 적도, 그렇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저는 이 모든 걸 저의 죄로 여기고 있어요.”
자신이 성황의 길을 걷지만 않았더라면 잃지 않았을 생명들. 덧없이 사라진 동료, 친구, 그리고…….
“레이디가 마지막으로 말한, 그 중년의 남성은.”
내내 차분함을 유지하던 성황의 표정이 일순 무너져 내렸다.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몇 번이나 유려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웃고 있으나 웃지 않는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 같은 단어가 흘러나왔다.
“제 스승이셨습니다.”
뒤이어 그의 입가에 달린 것은 희미한 웃음이었다.
꿈결을 더듬는 듯, 아스라하게.
“언제나 인자하고 다정한 분이셨죠.”
나는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존경심과 애정이 듬뿍 담긴, 사랑하는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녀의 눈빛.
“성하께는 스승님이 곧 부모셨겠군요.”
“맞아요. 제 어버이셨죠.”
그러나 그 눈빛에 비친 애정은, 입가에 맺힌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이 역시도 알고 있었다.
짙은 후회와 죄책감으로 뭉친, 절망 그 자체.
“스승님께서는 저를 구하려다 돌아가셨어요.”
이윽고 그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제가 막 수석 신관으로 부임했을 즈음, 인간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사술을 행하는 악마 숭배 집단을 처단하라는 임무를 받았죠.”
이전보다 확연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전달받은 사전 보고에 의하면 비교적 규모가 작은 집단이었고, 저는 그에 맞춰 동행을 꾸렸어요. 지금껏 해 왔던 것들과 비교하면 그다지 어려운 임무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제 스승과 자신을 제외하고 일반 전투 사제 몇 명, 그리고 실전을 익히게 할 목적으로 수습 사제 몇 명을 더 데려갔다고 했다.
나는 그 뒤에 나올 말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보고가 잘못되었어요.”
누군가 일부러 잘못된 보고를 올렸다.
“전달받았던 것의 몇 배나 되는 인원이 제 동료와 후배를 죽이고 저와 스승님을 쫓아왔을 때.”
“…….”
“점점 거리가 좁혀지니 결국 스승님이 저를 절벽 아래로 밀치고 눈먼 칼에 찔리셨을 때.”
성황의 시선은 더는 이곳에 머물고 있지 않았다.
그보다 더 먼,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한 그날의 악몽에 갇힌 채로.
“……높은 절벽이 아니었던 탓에, 저는 낭떠러지 아래에 몸을 숨긴 채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제 시체를 찾기 위해서든, 악마 숭배자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든 후발대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젊은 수석 신관이 힘겹게 고해했다.
“높은 절벽이 아니었던 탓에. 저는 그 모든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어요. 스승님께서는 작은 신음 하나 흘리지 않으셨지만, 병장기가 몸을 꿰뚫는 소리까지 막지는 못했죠.”
“……성하.”
“그래요, 제가 그간 무슨 악몽을 꿔 왔던 건지 저도 이제 대충 감이 잡히는군요.”
이내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 본래의 표정을 되찾으며 말했다. 입가에 띤 미소 역시 여느 때처럼 나긋하기 그지없었다.
“어린아이가 듣기에는 썩 좋지 못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도리어 저는 실마리를 얻게 되었으니 기분이 이상하네요.”
“이를 통해 성하의 근심이 조금 풀리셨다면 다행이에요.”
나는 그를 따라 옅게 미소 지었다.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성하. 나 역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실마리를 얻게 되었으니까.
* * *
[진짜 늦게 주무시네.]
그날 밤, 다른 사람의 꿈으로 향하는 통로.
나는 새까만 공간 아래 앉아 자그맣게 구시렁거렸다.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꿈이 열리면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계속 기다리는 중 되시겠다.
[여기가 맞는데.]
꿈 통로에 들어온 순간부터 북동쪽으로 5693걸음.
내 기억력이 잘못되었을 리는 없으니, 성황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게 분명했다.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책상다리를 한 무릎에 팔을 올린 후, 그대로 턱을 괴고서 생각에 잠겼다.
성황은 실제로 자신이 겪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그간 자신이 작든 크든 죄책감을 느껴 왔던 대상을 대입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단연 스승의 죽음일 테고.
‘그러니 내가 그 스승이 된다.’
스승의 모습을 빌려 성황의 죄책감을 덜어 주는 게 이번 목표였다.
솔직히 이번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악몽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 성황도 이 꿈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아, 열렸다.]
곧이어 내 앞에 밝은 빛을 뽐내는 문이 나타났다. 나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그의 꿈은 어제와 달라진 것 없이 같았다.
현실에서 잠깐 이야기 나눈 것만으로는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지.
‘좋아, 해 보자고.’
나는 성황과 그 스승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망령 사이에 몸을 숨겨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꿈을 바꿀 때가 아니다.
‘조금만 더…….’
이내 어제처럼 그의 스승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당하려는 찰나.
‘지금.’
나는 꿈을 살짝 비틀어 스승의 존재를 지워 버린 후.
[라그나르.]
그의 모습을 뒤집어쓰고서 천천히 무리 밖으로 빠져나왔다.
동시에 절망에 휩싸였던 옅은 물빛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가득 물들었다.
[스승님……?]
나는 부러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마 이쪽으로 다가오지는 못하고 길게 울부짖는 망령들.
그리고 그 앞에 선 스승.
[지독한 죄책감이구나.]
[스승님, 전…….]
[이리 과거의 후회만을 되짚으며 스스로 몸을 던지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맴돌게 되지 않으냐.]
그제야 나는 성황을 온전히 마주 바라보며 느릿하게 그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내가 그의 앞에 멈춰서자, 성황은 기다렸다는 듯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스승님, 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뒤이어 그가 두서없이 말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너무 많은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제가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관입니다. 내가, 제가 없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 스승님, 스승님도…….]
[…….]
[모두 저의, 제 잘못입니다. 저만 아니었어도, 스승님이…….]
이내 그의 해묵은 진심이, 오랜 죄책감이 언어의 형태로 빚어진 순간.
[라그나르, 나를 보거라.]
나는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아채며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