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이륙 준비도 없이 날아서?
아니다.
최소한의 안전 장비도 없어서?
역시 아니었다.
내가 깜짝 놀라고 지크프리트 씨의 입에서 쌍욕이 나오게 된 이유는 바로.
“날아오를 때 천둥 번개만 안 치면 딱 좋은데 말이야.”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지크프리트 씨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바로 이거였다.
와이번이 날아오를 때 와이번의 몸 위로 벼락이 내려친다는 점.
왜 ‘이착륙 시 천둥 번개’를 비행 자동 탑재 기능으로 넣어 놓냐고. 물론 번개 때문에 와이번이 오르내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어르신의 결계 아니었으면 아마 이륙과 동시에 죽었겠지.’
이런 식으로 어르신의 결계를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나는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결계 저편의 허공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 보면 이 정도로 높게 올라왔는데도 딱히 숨이 막힌 기색도,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이쯤 올라오면 얼어 죽거나 숨 막혀 죽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심지어 이렇게 빨리 나는데도 그저 머리카락만 조금 휘날릴 뿐이고.
“이것도 결계 덕분이려나.”
“응?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말에 지크프리트 씨는 싱겁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이더니, 다시 풍경 감상에 푹 빠졌다.
나는 그를 내버려 둔 채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 나갔다.
단순한 결계 마법이면 산소량이나 기온 조절까지는 못 할 텐데.
‘대체 무슨 마법이지.’
이런 복잡한 마법을 쓸 수 있는 거면, 그 마법으로 나도…….
“정신 차려, 미에나 시두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침과 동시에, 나는 두 손을 들어 올려 양 뺨을 세게 내려쳤다.
기대하지 않기로 했잖아.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르신도 내가 살 방법으로 ‘자기 심장을 먹는다’를 언급했을 정도라고.
‘웬만한 마법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면 뭐겠어?’
그런데 또 어르신은 내가 죽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지…….
“허튼 생각!”
나는 또 한 번 찰싹 뺨을 때렸다.
기대하지 마. 나를 거쳐 갔던 치료 마법사들도 처음엔 다 나을 거라고 했었잖아.
기대하지 마.
“뭐야, 왜 그래?”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사이, 지크프리트 씨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내 양팔을 붙잡았다.
리처드 8세 역시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연신 힐끔거리고 있었다.
이런, 제가 당신들의 즐거운 비행을 망쳐 버렸군요.
“무서워서 그래? 아니면 어디 아파? 고통으로 고통을 잊으려는 건 아니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설마 이런 걸 무서워하겠어요? 러셀 경 쇠스랑에도 맞선 사람인데.”
그러니 걱정 안 하고 계속 즐기시면 됩니다.
Enjoy your flight, Wyvern Air.
“이런 말 하는 거 보면 괜찮아 보이긴 하는데…….”
지크프리트 씨가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에게 붙들린 팔을 조심스레 빼내며 활짝 미소 지었다.
“생각이 좀 많아져서 그런 것뿐이에요. 그리고 리처드 8세 넌 앞을 봐야지.”
“끄륵…….”
“저거 하임 산맥 맞죠? 거의 다 온 것 같네요. 진짜 빠르네.”
그러고서 손가락을 뻗으며 냉큼 화제까지 돌리니, 결국 지크프리트 씨와 리처드 8세의 시선도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나는 그들 몰래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지금은 레어에 가는 데에만 집중하자.
나의 러블리 스윗 어도러블 금은보화들이여.
언니, 아니, 자손이 간다!
* * *
“이건 내려오는 게 진짜였네…….”
지크프리트 씨가 나를 들어 안아 지면에 내려 주며 멍하니 속삭였다.
그의 눈 밑은 잠깐 사이에 퀭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확실히, 안전장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기는 했지. 거기에 번개라는 특수 효과는 덤이고.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걸요. 앞으로 몇 번 더 와야 할 텐데.”
“듣던 중 끔찍한 소리인데.”
“그래도 막상 또 타면 좋아하실 거면서.”
아까 보니까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던데.
수고했다는 의미로 리처드 8세의 턱 아래를 몇 번 쓰다듬어 준 후,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그마한 오솔길이라도 존재했던 숙소 근처 숲과는 달리, 이곳은 그 어떤 사람의 흔적도 없어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시선을 올려 홀로 우뚝하게 선 고성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곧이어 지크프리트 씨 역시 눈앞의 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하임 산맥 안이에요.”
“하임 산맥에 이런 성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 보네. 이 정도 크기의 성이면 세상에 안 알려졌을 리가 없을 텐데.”
“이 일대 전체에 결계가 둘려 있으니까요. 한낱 인간은 여기까지 올 수 없어요.”
라고 어르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확실히 뭔가 좀 무겁긴 해. 여긴 마법사가 오면 숨 막혀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나는 덩달아 팔다리를 휙휙 돌려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모르겠는데. 이것도 어르신과의 계약 덕분인가?
아무튼, 지크프리트 씨 말대로라면 마법사를 호위로 안 골라서 천만다행이야.
“살다 살다 이런 곳까지 오다니. 나중에 니케한테 해 줄 얘기가 많겠는데.”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기는 하죠.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니까요.”
하지만 나는 끝내주는 인연으로 프리패스권을 얻어 냈지.
대세는 역시 학연, 지연, 혈연도 아닌 몽연이다.
곧이어 나는 고성 안으로 발을 들이며 지크프리트 씨에게 경고했다.
“확실하게 안전을 보장받은 건 저뿐이라,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꼭 제 곁에 꼭 붙어 계셔야 해요.”
그러자 지크프리트 씨가 내 뒤에 딱 달라붙으며 답했다.
“너는 이런 위험한 곳에 용케 나를 데려올 생각을 다 했구나.”
“믿고 있으니까요.”
와이번한테도 맞설 수 있는 그 무력과 어린아이를 혼자 두고 도망가지 않을 그 인성을.
이제는 둘 다 필요 없어졌지만.
“나 두고 가면 안 돼. 네 옆에서 안 떨어질 거야.”
“네, 네.”
나는 지크프리트 씨의 말을 가볍게 넘기고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고성 내부는 상당히 깔끔한 축이었다. 분명 관리인이 따로 없을 텐데도, 꿈에서 봤던 것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거미줄도 없네. 하긴, 드래곤이 사는 곳에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고 살겠어. 간 쫄려서 못 살지.
‘애초에 리처드 8세도 여기까진 들어오질 않는데.’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을 때, 와이번은 우리를 내려 줬던 곳에 자리를 잡고 몸을 둥글게 말아 하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이곳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으스스한데…….”
지크프리트 씨가 오른손으로 허리춤에 찬 검집을 꽉 쥐며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걸어 나가며 연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꿈에서 봤던 그대로이긴 하는데.
‘정작 중요한 약도를 못 얻었잖아.’
꽤 넓어 보이는데, 직접 돌아다녀 보는 수밖에는 없나.
아니면 지금은 창고 위치만 확인하고 나중에 제대로 준비해서 챙기는 것도 괜찮겠다.
리처드 8세 타고 다니면 금방이니까.
“어디로 가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대충은요……?”
이 길로 쭉 가면 어르신과 대화했던 응접실이 나오지.
물론 거기까지밖에 모르지만, 일단 아는 장소라도 들르는 게 좋지 않을까?
“아, 저거 꿈에서 봤던 거다. 저 보물 다 주워 주세요, 러셀 경. 저기도요!”
복도 가장자리에 널린 보물을 가리키며 외치자, 지크프리트 씨가 영 못마땅한 기색으로 슬금슬금 보물을 주워 왔다.
“이걸 이렇게 막 주워 가도 돼?”
“당연하죠. 여기 있는 거 다 제게 준다고 하셨는걸요.”
“다? 그 사람도 너한테 뭐 은혜라도 입었대?”
음, 사람이 아니긴 하지만 은혜를 입을 예정이기는 하죠.
솔직히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아,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넓은 방에 도착했다.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응접실이었다.
이제는 퍽 익숙하기까지 한 테이블과 벽 장식, 그리고 의자까지.
하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테이블 위에 꿈에서 본 적 없는 종이가 올려져 있다는 거였다.
“음?”
나는 곧장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 놓여 있던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이건…….
“지도네.”
뒤이어 내 옆에 따라붙은 지크프리트 씨가 대신 답했다.
그의 말대로, 이 종이는 창고의 위치, 출입구 등을 적어 놓은 제법 정교한 지도였다.
약도를 요구했는데 지도를 주시네.
‘어르신 짱!’
나는 허공을 향해 엄지를 한 번 치켜세운 후, 다시 시선을 내려 지도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제국어로 쓰여 있어서 창고가 어디 있는지 곧바로 알 수 있기는 한데.
여기 있는 이 빨간 점은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