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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 필요하신가요? (5)화 (5/154)

제5화

그는 톡 건드리면 깨질 얇디얇은 유리를 대하는 것처럼, 엄지로 조심스레 내 손을 쓰다듬으며 느릿하게 말문을 열었다.

“어쩌다 너같이 착한 아이가 우리에게 왔을까.”

“…….”

“너는 그 어린 나이에도 투정 한 번 부린 적이 없었지.”

앗, 그건 인생 2회 차여서.

이 나이 먹고 반찬 투정 같은 걸 하면 체면이 좀 그렇잖아.

“마치 다 큰 아이를 키우는 것만 같았단다.”

“……아하하.”

나름대로 열심히 연기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부족했나 보군.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렸다.

아버지는 그걸 무뚝뚝한 딸의 어색함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지금도 그렇잖니. 이제 겨우 열두 살이 되었을 뿐인데.”

고작 열둘이 되었을 뿐인데.

그가 마지막 말을 되뇌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등 뒤에서도 티나의 옅은 울음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미치겠네. 이런 분위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돈 같은 거 빌리지 말라고 떼를 쓸 걸 그랬나? 괜히 의젓한 딸 행세 좀 하려다가 그만.

“아버지…….”

일단은 상황 수습이 우선이다.

황급히 분위기를 전환하려 아무 말이나 하려던 찰나였다.

“네가 내게 무언가를 바라고 말한 게 이번이 처음인 거 알고 있니?”

그보다 한발 앞서, 아버지가 미세하게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어떻게……, 이 아비가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니.”

“…….”

“그래, 네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그렇게, 그렇게.”

그러고서 그는 말을 잇는 것조차도 고통스러운 듯 몇 번이나 입술을 어물거리다가.

“행복하게 준비하자꾸나.”

내 앞에서 내가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포기를 선언했다.

나는 순간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의 덩어리를 씹어 삼키고서 해맑게 미소 지어 보였다.

“고마워요, 아빠.”

이걸로 앞으로 또 고리대금업에 손을 대면 어쩔까 하는 시름은 조금 덜었네. 그 과정에서 하마터면 예상에 없던 눈물 콧물까지 쏙 뺄 뻔했지만.

나는 애틋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티나와 아버지를 차례로 응시했다.

……하여간 정말 좋은 사람들이야.

제가 또 어떤 세상에서 눈을 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러분이 행복하기를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그래서, 미아.”

곧이어 아버지가 드디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억지로 눈매를 찡그려 웃으며 내게 물었다.

“어디 가고 싶은 곳 있니? 내 어떻게 해서든 그곳으로 데려다주마.”

오,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탈레스 폐광산이요.”

“탈레스 폐광산?”

“탈레스 폐광산.”

“……왜 하필?”

내내 촉촉하게 젖어 있던 그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조금 전까지 공기를 눅진하게 만들었던 특유의 훈훈한 공기 역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경관도 좋지 않은 폐광산에 가고 싶다고 하니, 어이가 없긴 하겠지.

나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를 유지한 채 깔끔하게 답했다.

“그냥, 가고 싶어서요.”

진짜로 별 이유는 없다.

그곳에 내 비자금……, 아니, 주인 잃은 보물이 숨겨져 있거든.

……응? 이런 비자금이 있었으면 왜 처음부터 꺼내지 않았느냐고?

그야 그 돈으로 다시 나 살리겠다고 난리 치실 게 뻔한데,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부어 봤자 뭐하랴.

‘지금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내 치료를 포기한 바로 이 순간!

갈 땐 가더라도, 나 때문에 탕진한 가산과 빚은 해결해 주고 떠나야 하지 않겠어?

* * *

세상을 누비는 보물 사냥꾼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가업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던 한 상인이 있었다.

가진 능력이 뛰어난 덕에 손대는 사업마다 막대한 돈을 벌었으나, 어린 시절의 꿈을 잊지 못한 거상은 보물 사냥꾼을 위한 ‘제공자’라도 되기로 결심하였고,

‘오, 개꿀.’

그걸 때마침 꿈 투어 하던 내가 목격하게 되었다는 우연이 기가 막힌 이야기.

[이 로레인 존슨이 보물 숨길 장소조차 찾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니!]

그가 몇 번이나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는 사이, 꿈의 배경이 다섯 번은 더 바뀌었다.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부터 무역항, 숲속, 심지어는 바다 한가운데까지.

[어디에, 어디에 숨겨야…….]

이번에는 저택 정원으로 바뀐 배경 속에서, 그는 내가 꿈에 들어왔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보물을 숨길 장소만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상황을 파악한 즉시 작은 돌멩이로 모습을 바꾸고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보물을 숨길 곳이라. 이런 건 또 그냥 못 넘어가지.

‘기다려 주세요, 로레인 씨. 보물 숨기기에 완벽한 곳을 떠올려 볼 테니까. ……가만, 거기라면?’

그러고 보니 우리 가문 소유지 중에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곳이 있었지. 누가 무언가를 숨겨도 아무도 모를, 로레인 씨에게도 나에게도 제격인 장소가.

생각을 마친 즉시, 나는 곧바로 로레인 씨의 꿈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직 병을 앓기 전, 그리고 광산이 아직 문을 닫기 전, 아버지께서 데려가 주셨던 탈레스 폐광산의 정경으로.

‘음, 뭔가 좀 부족한데.’

안개도 좀 뿌려 넣고, 무지개도 좀 심어 주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도 선사해 주고!

이것만 봐서는 어딘지 모를 테니 탈레스 광산이라는 글자도 박아 넣어 주자!

[이게 갑자기 무슨……?]

별안간 뒤바뀐 풍경에 로레인 씨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나는 창공을 보드 판, 그리고 구름을 마커 삼아 멋지게 글씨를 적어 주기 시작했다.

<강→탈레스 폐광산←추>

사람이 없어 보물 숨기기 적합해요!

보물 같은 게 묻혀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장소라 이중으로 숨기기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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