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 밥해주기-74화 (74/93)

74화. 지명준 회장의 과오.

창밖의 한강 뷰가 돋보이는 최고급 프렌치 레스토랑.

엄연히 자신과 소라의 상견례 자리였지만, 독현은 한시간전부터 마치 방관자처럼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의 태도가 몹시 불쾌했던지, 소라의 친부인 문회장이 노골적으로 언짢은 기색을 내비췄다.

“이 자리의 주인공께서 어째 억지로 끌려온 기색이 다분한 얼굴이군.”

“제 자의로 참석한 자린 아니죠.”

두 사람의 날 선 대화에 지회장과 소라가 멈칫하며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홀 안을 감도는 숨 막히는 침묵.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다름 아닌 지회장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아이들이니, 결혼이야 이미 예정된 수순 아니겠습니까? 소라같이 영특한 아이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어준다면 그보다 든든한 일이 어디 있겠소.”

말을 마친 지회장이 와인 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표정이 풀어진 문회장이 그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는 모습을 보곤 독현이 다시 운을 뗐다.

“신기하군요. 이런 거북한 자리에서도 내가 뭔가를 먹고 마실 수 있게 됐다는 게.”

“……오늘 같은 날 꼭 그렇게 꼬아서 말해야겠어?”

“오늘 같은 날?”

독현이 소라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

“내가 굳이 이 자리에 나온 이유……넌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알지. 이 결혼 못 한다. 안 한다. 애처럼 또 어깃장 피우려는 거잖아, 너.”

자신을 향해 잔뜩 발톱을 세우는 소라. 그녀를 보며 독현이 유유히 물 잔을 들이켰고,

이내 탁-! 그가 크리스탈 잔을 다시 내려놓는 소리가 모두의 귓전을 울렸다.

“소라와 결혼. 안 합니다.”

지회장과 문회장이 이미 예상했다는 듯 독현의 얼굴을 직시했다.

“고작 그런 말이나 하자고, 식사 내내 고분고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거냐?”

“적어도 두 분, 식사는 맘 편히 끝내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독현이 냉랭한 어조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제 결혼이 급하신 거면. 원하는 일정에 맞춰 해드리죠. 마침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있거든요.”

“뭐야?!”

“잘 아시잖아요. 제 전담 요리사에 대해.”

“너 지금……기어이 그 애를 못 놓겠다 이 말이냐? 정말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게야?”

“글쎄요. 나보단 그 여자 의사가 중요하겠죠.”

독현의 오만한 대답에, 참다못한 소라가 경직된 고성을 내질렀다.

“지독현 너 제정신 아니야! 차은돈이 너한테 뭐야?! 그딴 여자가 뭐길래 네가 이런 희생을 감수하냔 말이야!”

“……희생?”

아직도 나를 모르는군. 독현이 굳어진 시선으로 소라를 마주봤다.

“내가 그렇게 희생정신이 투철했다면……아마도 너랑 결혼했겠지.”

“뭐?”

소라가 붉어진 눈으로 되물었다. 비참했고, 비참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지독현을 죽이고 싶을 만큼.

“그래서 정말……차은돈이랑 결혼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못할 것도 없잖아.”

더 없이 냉정하기만한 독현의 눈빛. 그 눈빛이 소라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녀가 젖어든 시선을 치켜세웠다.

“피하고 싶겠지만 넌 그럴 수 없어. 결국은 나랑 결혼하게 될 거야.”

니가 날 사랑하지 않겠다면……적어도 날 두려워하게 만들겠어.

“마음대로 해 봐. 결과는 뻔하지만.”

독현이 서늘하게 내뱉은 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앉아라. 다시 앉지 못해?!”

지회장의 서슬에, 그가 표정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말했다.

“두 번 다시 이런 불쾌한 자리 만들지 마세요. 매번 못이는 척 장단 맞춰드리는 것도 이젠 끝이니까.”

독현이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지명준 회장을 똑바로 주시했다.

대체 차은돈이라는 여자가 너에게 어떤 의미기에……

“설마……정말로 사랑하는 거냐?”

“……”

지회장의 물음에 독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을 마주한 지회장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그리고 깊이 그 여자를 사랑하는 모양이었다.

지회장이 뭔가를 말하려다, 메마른 시선으로 다시 입을 다물었다.

“지독현! 잠깐 얘기 좀 해!”

독현의 눈빛에서 정말 끝이라는 무언의 암시를 느낀 걸까. 소라가 여느 때보다 초조한 기색으로 사라지는 독현의 뒤를 쫓아 나갔다.

한순간 폭풍이 휘몰아치고 간 것처럼, 드넓은 홀 안이 정적에 휩싸였다.

“……회장님께 마지막 경고를 하려고 이 자리에 나왔나보군요.”

소라의 친부인 문회장이 잔 위로 콸콸- 넘치게 와인을 따르며 말했다.

“사실……애들 결혼을 서두르실 때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습니다. 지독현 사장에게 여자가 있으리라는 것.”

“흐흠!”

지회장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앞에 놓인 냅킨을 집어 들어 입을 닦았다.

문회장이 그를 보며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회장님도 알다시피, 이건 단순히 애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번 결혼, 사실 비즈니스 아닙니까? 회장님의 대성명가와 우리 KM식품의 M&A(기업 인수 합병)이 걸린……”

“음. 조금 기다려보지. 애들한테도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군.”

지회장이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 문 회장을 향해 투박하게 대꾸했다.

“시간. 시간이라……”

문회장이 위태롭게 출렁이는 와인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웃었다.

“굳이 시간을 더 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지독현 사장에게 달라붙은 날파리 한 마리 때문에 골치를 썩으시는 모양인데……대체 뭘 망설이시는 겁니까? 다시 옛날처럼 쫓아버리시면 되잖습니까?”

“……옛날처럼?”

“사고사로 사망한 회장님의 친아들. 지독현 사장의 친아버지. 사실 그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쯤은, 이미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때 회장님이 아들 대신 누굴 처리하고자 했었는지도.”

문회장의 말에 일순 지회장의 눈빛이 얼어붙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지독현 사장의 친모를 처리하려했던 것처럼……차은돈인가 하는 날파리를 쳐내세요. 이번엔 애꿎은 사람이 대신 희생당하는 불상사가 없도록…… 좀 더 신중하게 처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은밀한 목소리로 자신을 회유하는 문회장을 보며 지회장이 딱딱하게 말을 이었다.

“자네가 내 과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런 걸로 나를 협박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협박이라니요. 내 협박에 나가떨어질 회장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지독현 사장이 자신의 친부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지 알게 됐을 때의 파장은 생각보다 크겠지만.”

“자네 지금……!”

지회장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털썩. 무너지듯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회장이 눈빛을 번득였다.

“저는 단지 우리 딸아이와 지독현 사장의 결혼에 방해되는 방해물은 알아서 치워 주십사 하는 마음에 얘기 드린 것뿐입니다. 차은돈, 그 아이를 어떤 식으로 제거하면 되는지 회장님께 방법을 제시해 드리는 거지요.”

“하!……그래. 그렇단 말이군……”

지명준 회장이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와인 잔을 집어 들었다.

“건배하지.”

“좋지요.”

쨍. 한 번 더 가볍게 두 회장의 잔이 부딪혔다.

차은돈 그 아이를 제거해 달란 말이지. 다시 옛날처럼……

지명준 회장이 곧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와인을 들이켰다.

***

“지독현! 멈춰! 멈추란 말이야!”

끼이익!

페라리안의 독현이 난데없이 눈앞으로 뛰어든 소라를 보며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문소라.”

잠시 후. 도로 한가운데 주저앉은 소라를 향해 다가선 독현의 모습이 보였다.

“일어나.”

“싫어.”

“……”

“싫다구! 나한테 명령하지 마!”

소라가 목소리를 높이며 독현을 올려다봤다.

“자그마치 십년이 넘어. 내가 널 갖고 싶어 몸부림친 시간이. 알아? 아냐구!”

“……내가 너한테 단 한 번이라도 여지를 남긴 적 이 있던가?”

“지독현. 지독현. 지독현!”

악에 바친 듯 소라가 소리쳤다.

“내가 이제껏 무슨 마음으로 니 옆을 지켰는 줄 알아? 그래, 넌 어차피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니까. 기다리면 언젠가는 날 선택해주겠지. 날 봐주겠지! 빈껍데기일지라도 결국은 내 손아귀에 넣게 되겠지!”

“……정신 차려, 문소라.”

독현이 제 발치에 주저앉은 소라를 감정없는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사랑해.”

“……”

“사랑한다구 지독현……”

그러니까 제발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마.

“한번이라도……단 한번만이라도, 차은돈을 대할 때처럼 날 대해줘. 제발 날 봐줘……”

“……”

애원하듯 말하며, 그녀가 툭 눈물을 떨궜다. 일순 독현의 동공이 일렁였다.

한때는 자신의 편한 친구였던 문소라……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소라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본 게 언제지?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들었다면 이건 위선일까.

“문소라.”

나지막이, 독현의 입이 열렸다.

“니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줄게. 널 사랑해달라는 것만 빼고.”

“그래……? 그럼 나랑 결혼해줄래? 날 사랑하지 않아도 돼.”

“……”

“못 하겠니?”

“……미안하다.”

“뭐?”

“널 이렇게 만든 거.”

믿기지 않는 한마디에 소라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지금 뭐라고 했어……? 미안해?”

비참해 죽을 것만 같은 얼굴로 그녀가 피식 웃었다.

“차은돈을 사랑하게 되고 보니까, 이제서야 내가 불쌍해졌니? 돌아보지 않을 사람을 사랑하는 내가?”

툭-

그때, 소라의 가녀린 어깨 위로 독현의 자켓이 떨어졌다.

“더 이상의 호의는 없을 거야, 너한테.”

“……”

“이제 그만하자 문소라.”

“그만하자구? 하……누굴 위해서? 그 여잘 위해서?! 차은돈을 위해!? 난 그렇게 못해.”

소라가 자신의 어깨를 감싼 독현의 자켓을 확 벗어들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독현의 한마디가 그녀의 귓가를 감쌌다.

“널 위해서야.”

“……”

“널 위해서 그만 하자는 거야.”

“……”

소라가 자신의 양 어깨를 붙드는 독현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 위로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올랐다.

오랜만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독현의 눈빛에서 경멸이 묻어나지 않는 것.

“이제 그만해. 제발.”

“……”

“내가 알던 문소라로 돌아와.”

오래 전, 누구에게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던, 당차고 당돌했던 그 모습으로.

“……지독현. 넌 우리가 친구였던 그 시절이 꽤나 그리운 모양인데……이제와서 십 년 전 으로 돌아가기엔……난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어.”

소라가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독현을 올려다봤다.

미안해. 하지만 난 반드시 너와 내 끝을 봐야겠어.

“우리 결혼식. 니 의지완 상관없이 결국 진행될 거야. 바쁘더라도 가끔 시간 내. 드레스는 꼭, 니 맘에 드는 걸로 고르고 싶으니까.”

말을 마친 소라가 독현을 남겨둔 채 휙 몸을 돌렸다.

또각또각,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던 독현이 곧 기다란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

도곡동 맨션.

퀭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있던 은돈이 현관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사장님, 왔어요?”

“……차은돈?”

독현이 대리석 복도를 가로질러 한달음에 자신에게 다가서는 은돈을 보며 놀란 듯 물었다.

“이 시간까지 안자고 뭐한 거야?”

“네? 그야, 사장님 기다렸죠……”

“날?”

졸음이 가득한 은돈의 눈꺼풀을, 독현이 잠자코 내려다 봤다.

그의 시선을 의식한 은돈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문.소.라.씨랑 식사는 잘 했어요?”

이런 제기랄. 문소라라는 이름에 너무 악센트를 줬어. 누가 봐도 질투심에 눈이 먼 얼굴이었다고.

그녀가 재빨리 표정을 느슨하게 풀며 독현을 향해 뻘쭘히 웃어보였다.

“사장님 저 생각보다 쿨 한 여자거든요? 그니까 전 신경 쓰지 말고 언제든 문.소.라.씨랑 같이……”

포옥-

독현이 말을 잇던 은돈을 끌어다 자신의 품안에 넣었다.

“사장님……?”

은돈이 휘둥그레한 눈으로 독현을 올려다봤다.

“잠시만. 이대로 있어.”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그냥 니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기분 좋아서 그래. 꼭 강아지 같잖아.”

“……뒷말은 좀 빼 주죠……”

은돈이 홍조 띤 얼굴로 독현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어쨌든 이러구 있으니까 좋다……그쵸.”

좋냐고.

“살 것 같아.”

독현이 그렇게 말하며 은돈을 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몇 초쯤 흘렀을까.

“사장님. 무슨 생각해요?”

“……이대로 쭉 너랑 같이 지내도 괜찮겠다는 생각.”

“……”

독현의 말에 은돈이 고개를 살짝 들어올렸다.

사장님의 표정이 내내 좋지 않았던 건, 내가 19금의 순간마다 분위기를 망쳤었기 때문이 아니라……뭔가 다른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사장님. 솔직히 말 해 봐요. 오늘 무슨 일 있었죠?”

“글쎄. 별일 없었어.”

“거짓말. 연인끼린 속고 속이기 없는 거예요. 말해 봐요. 무슨 일이에요? 네? 네?”

“……니가 알게 하고 싶지 않아.”

독현이 고집스레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말했다.

그러자 익숙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내 샴푸 썼어?”

“샤, 샴푸에 니거 내거가 있나요. 왜요? 나갈 때 하나 새로 사드려요?”

은돈의 말에 독현이 피식 웃었다.

“됐어. 이 집에 있는 건 어차피 다 니 거야.”

치……

은돈이 괜스레 입을 삐죽였다. 독현이 그런 그녀의 표정을 내리훑었다.

“그러는 넌.”

“네?”

“넌 오늘 별일 없었나 해서.”

“별일요……?”

자신에게 우산을 건네주고 차갑게 돌아서던 지세가 떠올랐다.

은돈이 가만히 고개를 수그렸다.

“아뇨. 저도 별일 없었어요……”

“네 표정은 반대로 얘기하고 있는데.”

“아니거든요.”

사장님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

은돈이 포옥, 독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독현이 그녀를 내려다보다 다정히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

다음날 아침.

“대체……왜 자꾸 요리를 하시는 거죠?”

은돈이 제 앞에 산처럼 쌓여있는 샌드위치 더미를 보며 묻자, 독현이 팔짱을 낀 채 태연하게 대꾸했다.

“요리사들은 집에서 팬 잡는 걸 가장 싫어한다더군.”

“그러니까……저에 대한 배려라는 거죠? 이 정체불명 토스트가?”

“토스트가 아니라 샌드위치야. 쑥갓을 넣은.”

“뭘 넣어요? 쑥갓?!”

하아. 은돈이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전 집에서도 팬 잡는 거 몹시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요린 제가 맡을게요. 사장님은 그냥,”

“맛 없어보여서 그래?”

큭. 정곡을 찔렸도다.

“아니. 실은 아침부터 먹은 것도 없이 배가 좀 불러서……”

“……그렇군.”

독현이 어쩐지 실망한 듯 샌드위치 ‘더미’를 바라보았다. 은돈이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식탁 위 녹즙을 집어 들었다.

“와우, 녹즙이네요. 사장님이 만든 거죠? 이거라도 잘 먹을……”

순간 녹즙을 입가로 가져가던 은돈이 미심쩍은 시선으로 독현을 노려봤다.

“이거, 뭐 간 거예요?”

“……쑥갓이 냉장고에 차고 넘치더군. 그래서,”

“오케이 거기까지! 말하지 마요! 듣고 싶지 않아요!”

젠장. 매생이 북엇국에 이어, 쑥갓 샌드위치에 이어, 쑥갓 생즙이라니.

“싫으면 굳이 먹지 않아도 돼.”

“네?”

“겨우 내 인생의 세 시간을 허비 했을 뿐이야. 너한테 거절당할 요리를 만들기 위해.”

“세……세 시간……?”

이 인간. 대체 몇 시에 일어난 거지?

말문이 막힌 은돈이 쭈뼛대며 샌드위치와 녹즙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머잖아 체념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 먹을게요 사장님.”

“응.”

독현이 후들후들 샌드위치를 집어 드는 은돈을 보며 사악한 미소를 머금었다.

설마 진짜로 쑥갓을 넣었을 리가.

역시나 놀리는 맛이 있는 여자였다, 차은돈은.

그가 영혼 없는 리액션을 준비하는 은돈을 짓궂은 표정으로 관찰했다.

그런데 그때. 묵직한 현관 도어 벨소리가 두 사람의 귓전을 울렸고, 기다렸다는 듯 은돈이 발딱 몸을 일으켰다.

“아이구 이런! 때마침 누가 왔나 봐요! 누굴까나! 제가 나가 볼게요!”

어떻게든 지독현표 샌드위치를 피해보려, 은돈이 후다닥 대리석 복도를 달렸다.

그리고 잠시 후.

“누구세요-”

그녀가 경쾌하게 현관문을 젖혀 열었을 때, 보이는 사람은.

“역시 같이 있었던 게로군.”

“회……장님……”

은돈이 갑작스러운 지명준 회장의 등장에, 자리에 붙박인 듯 굳어 섰다.

“누구야?”

그때, 은돈의 등 뒤로 나타난 독현이 곧 자신의 친조부를 발견하곤 마찬가지로 자리에 멈춰섰다.

“윤비서가 그러더군. 너희가 함께 지내는 것 같다고.”

“……비서를 통해 날 감시한 겁니까?”

“네놈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으려면 그 수밖에 없지 않니?”

놀랍도록 차분한 소리로 지회장이 뇌까렸다.

곧이어 그의 날렵한 시선이 눈앞의 은돈을 향했다.

자신에게 고정 된 그 숨 막히는 시선에, 잠시 망설이던 은돈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회장님, 사실은,”

다음 순간, 눈앞으로 불이 번쩍하며 짜악-!하는 마찰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심을 잃고 휘청한 은돈이 지회장에게 맞은 뺨을 붙들었고.

저만치의 독현이 커다래진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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