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야생마와 밝히는 남자.
“아으……으으……”
“차은돈, 낯빛이 왜 그래? 영 구리구리한데?”
in 주방.
부주의 물음에 은돈이 꽉 막힌 가슴을 연신 문질렀다.
“저 아무래도 체한 것 같아요 부주……아까 점심 먹은 게 잘못 됐나……”
“쯧쯧. 지독현이랑 단둘이 밥이라니, 얹히고도 남지. 그러게 내가 뭐랬어!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접시에 코를 박으라니까!”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말끝을 흐리는 은돈의 눈앞으로 독현의 사악한 얼굴이 둥실, 떠올랐다.
‘내 맨션으로 와.’
귓가에 아른대는 그의 야릇한 목소리.
‘그렇군. 굳이 방이 여러 개일 필욘 없겠어.’
‘……하나면 충분하잖아?’
‘하나면 충분하잖아?’
‘하나면,’
“아냐! 아니라고!”
“어우 놀래라! 왜 갑자기 소린 질러!?”
은돈의 난데없는 고성에 부주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멘붕에 빠진 은돈이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그래 침착하자……수도관 동파로 하루아침에 거처를 잃은 애인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거야, 사장님은. 그래서 며칠 거둬주겠다는 것뿐이고……
몹쓸 19금 망상 따윈 해선 안 돼. 설마 우리가 정말로 한 방을 쓰는 일은……
“있을 거야……절대 있을 거라구.”
은돈이 꼴깍 침을 삼켰다. 극도로 긴장한 탓일까. 명치가 다시 콕콕 쑤셔왔다. 그녀가 으윽, 신음하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
“올~ 차은돈, 드디어 오늘 지독현 사마랑 금단의 국경선을 넘는 건가?”
다원정 후문 앞. 퇴근 준비를 마친 은돈이 제 앞에 선 미자를 보며 화끈 얼굴을 붉혔다.
금단의 국경선이라니……
“옷이나 내놔, 이 배신자.”
그녀가 미자에게서 홱 캐리어를 빼앗아 들었다.
“옷이랑 생필품이랑 다 챙겨 온 거지?”
“생필품?”
미자가 가소롭다는 듯 훗 웃었다.
“차은돈. 내가 너랑 지독현 사마를 위해 뭘 챙겨왔는지 알면, 그 배신자 소리 쏙 들어갈 거다.”
“? 무슨 소리야?”
“쿡……너 혹시 ‘혼미주’라고 들어봤냐?”
“혼미주?”
은돈이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미자가 대답대신 그녀의 캐리어를 낚아채 지퍼를 열었다.
그러자 혼미주라는 정체불명의 술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중국서 건너온 건데……”
미자가 급격히 목소리를 낮췄다.
“아껴 먹어. 귀하디 귀한 호랑이 거시기로 담은 술이야.”
“호랭이 거시기?!”
화들짝 놀란 은돈을 향해 미자가 쉿!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
그리곤 약장수마냥 은밀하게 말을 이었다.
“혼.미.주……먹고 취하면 엄마 아빠도 몰라볼 만큼 육체와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술. 취기에 몸이 흠뻑 달아올라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적 페로몬을 마구 발산하게 된다는 바로 그 술!”
“성적……페로몬?”
“지독현 사마랑 본격 러브러브에 돌입하기 한 시간 전에 이걸 마셔. 그럼 넌 오직 쾌락을 추구하는 한 마리의 야생마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여.”
확신에 찬 미자를 보며, 은돈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물었다.
“너……이거 야매 술이지. 부업으로 동대문에서 잔뜩 떼다 파는 거 아냐?”
“이, 이런 흥인지문 같은 년! 에이 퉤! 드럽다 드러워! 기껏 생각해서 갖구 왔더니. 싫음 말어!”
“말겠다는 건 아니고!”
초조해진 은돈이 얼른 캐리어를 끌어당겼다. 미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콧방귀를 끼었다.
“반 강제적인 플라토닉 연애는 이제 집어 쳐. 스님이나 고자가 아니고서야 하늘 아래 남잔 다 똑같아. 잠자리 없는 12세 관람가 연애질은 조만간 지독현 사마를 지치게 할 거라고.”
“지친다구……?”
헙. 은돈이 혼란의 카오스에 빠진 얼굴로 지난 일들을 회상했다. 그러고 보니……요 며칠 독현이 몹시 꾸준하게 자신에게 섹스어필을 해오지 않았는가.
‘알지? 지금 내 말에 순수한 의도는 단 영 점 일프로도 섞이지 않았다는 거.’
‘자고 가란 소리야. 내 집에서.’
“……하.”
은돈이 붉어진 얼굴로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빵빵! 크락션 소리가 들려왔다.
“자기야 지금 가! 차은돈 낼 연락해.”
미자가 후다닥, 애인의 차를 향해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던 은돈이 곧 시선을 내려 가방안의 혼미주를 바라봤다.
이것만 있음……정말로 한 마리의 야생마로 거듭 날 수 있을까……?
“무슨 생각해요?”
“아 놀래라!”
은돈이 황급히 캐리어 지퍼를 닫으며 뒤를 돌아봤다. 다음 순간 롱코트 차림으로 백팩을 멘 지세와 눈이 마주쳤다.
“아……퇴근 하려고? 나도.”
은돈이 어색 뻘줌하게 웃어 보였다.
지세가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다 캐리어로 시선을 내렸다.
“아, 이거? 별 거 아니야. 옷이랑 치약 칫솔 같은 거……”
마치 혼미주의 정체를 들키기라도 한 양, 은돈이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았다.
“참, 너도 들었지? 우리 빌라 지금 물난리 난 거……”
지세가 말없이 그녀를 내려다 보다 대꾸했다.
“그래서 오늘 본가로 들어가려구요.”
“아, 그래?”
“누난 어디로 가요?”
“나?!”
젠장. 목소리가 너무 컸어. 마치 엄한 곳에 가려다 들킨 사람처럼.
“……미자 누나랑 따로 지내는 거에요?”
“응……그렇게 됐어.”
시선을 피하며 대답하는 은돈을 보며 지세가 살짝 입을 다물었다.
“혹시 사장님 집에 들어가요?”
“뭐!? 아냐, 절대 아,”
“맞아.”
그때였다. 지세의 말을 LTE속도로 인정하며 독현이 후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마치 지세에게 과시라도 하려는 듯 은돈의 등 뒤에서 그녀의 목을 한 팔로 감싸 안았다.
“사, 사장님……이건 뭐죠? 헤드락입니까?”
헤드락이라니, 독현이 어이없는 눈길로 여친의 정수리를 내려다 봤다.
“이건 일종의 애정표현이야.”
“애정표현이요?”
“새삼스럽게 왜 놀라지? 늘 해왔던 거잖아. 애정표현.”
뭐야 이 인간. 대화는 나랑 하면서 눈은 지세를 보고 있다. 지세를 노려보고 있다.
“아우, 숨 막혀요!”
은돈이 독현의 손길을 확- 매정히 뿌리쳤다.
그에 상처받은 듯, 독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러나 그는 곧장 포커페이스를 되찾았고, 지세를 향해 오만한 한마디를 내던졌다.
“갈 데 없으면 내 맨션으로 와. 넌 ‘내 애인’의 ‘친동생’ 같은 존재니까 특별히 호의를 베풀어 주지.”
내 애인.
친동생.
독현이 고의로 악센트를 실어 말한 몇몇 부분이 지세의 귀에 가시처럼 걸렸다.
그가 곧 고개를 들고 무던한 음성으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먼저 가볼게요, 누나.”
“응. 내일 보자!”
은돈이 돌아서는 지세의 등에 대고 번쩍 손을 흔들어주었다.
독현이 그런 그녀의 손을 고집스레 끌어내려 손깍지를 꼈다.
“사장님……지금 상당히 유치한 거 알죠?”
“모르겠는데.”
그가 마른 시선으로 지세를 바라보며 은돈의 손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무렵, 운전석에 털썩 몸을 앉힌 지세가 핸들에 툭, 고개를 파묻었다.
복잡했다.
그는 분명 화가 나 있었다. 스스럼없이 독현의 집에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은돈에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감정은 은돈에게 폐가 될 뿐이었다.
……가지 마. 그 옆에서 그렇게 웃지 마.
고개를 끌어올린 지세가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은돈과 독현을 아릿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뭐해? 들어 와.”
맨션.
먼저 안으로 들어선 독현을 보며, 현관 밖에 서 있던 은돈이 주춤 거렸다.
내가 정말로 여길 따라 올 줄이야. 물론 갈 데도 없긴 했지만.
그보다는 왠지 사장님의 이 ‘호의’를 가장한 ‘유혹’을 거절해선 안 될 것 같았다고.
“저……그럼 실례 할게요……”
은돈이 크흠! 콧김을 내뿜으며 안으로 터벅터벅 들어섰다.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랬(?)다고. 평소처럼 하는 거야, 평소처럼.
“사장님. 저부터 씻을까요?”
젠장. 이건 평소처럼이 아니잖아. 마치 사장님을 유혹하는 듯한 말투였다고.
은돈이 대리석 기둥에 퉁, 제 머리를 찍었다.
“욕실은 저쪽이야.”
잔뜩 긴장한 그녀와는 달리, 독현이 태연하게 욕실을 가리켰다.
“방은 욕실 맞은편에 보이는 방을 써.”
“네?”
은돈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아. 같은 방을 쓰는 게 아니었구나. 그래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나 진짜 바본가?
“왜 그런 눈으로 보지?”
독현이 의아한 듯 묻자 은돈이 얼른 양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 갈아입을 옷은,”
“챙겨왔어요! 일주일치……!”
은돈이 재빨리 캐리어를 내밀었다. 독현이 그녀의 어색한 썩소를 보며 말을 이었다.
“더 있다 가도 돼. 네가 있고 싶은 만큼.”
“아뇨! 딱 일주일이면 돼요! 그 안에 보수공사도 끝날 거고, 미자도 일주일이면 충분하대고……”
“그래 그럼.”
독현이 짧게 대꾸했다. 어딘가 심드렁 해보이는 그의 모습에 은돈이 살짝 꽁기꽁기한 감정을 느끼며 입을 다물었다.
뭐지. 저 돌부처 st의 태연자약한 모습은? 괜히 나만 야시시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잖아.
“이 집에 있는 건 뭐가 됐든 맘대로 입고 써도 돼.”
“아……네……”
“배고프면 아무거나 꺼내 먹어. 어차피 네가 만든 것들뿐이지만.”
“네……”
멍하니 대답하는 은돈을 향해 독현이 와인 셀러를 가리켰다.
“저것도. 마음대로 꺼내 마시면,”
“저기! 저……먹고 마시러 온 거 아닌데……”
“……?”
무슨 뜻이냐는 듯 독현이 비스듬히 고개를 젖혔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은돈이 찔끔하며 욕실로 돌아섰다.
“이, 일단 저 좀 씻어야겠네요. 욕실이 이쪽이랬죠!”
“……거긴 내 방이야.”
어억.
“저기, 저 지금 절대로 의도한 거 아니거든요!? 아우 피곤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피곤하죠? 빨리 자야겠네요. 우선 머리부터 좀 빨고!”
이런 제길……머리를 빨아?
허둥대던 은돈이 귀까진 빨개져선 후다닥! 욕실을 향해 사라졌다.
***
“사장님. 그……이젠 뭘 할까요?”
현재 시각 PM 11:05.
이태리제 소파위에 앉은 은돈이 옆자리에서 업무 서류를 넘기는 독현을 향해 불쑥 물었다.
“지금 좀 바쁜데. 피곤하면 먼저 자도 돼.”
“아……괜찮아요.”
아니 대체 왜 저렇게 태연하냐구. 태연 팬이야?
은돈이 아직 물기가 촉촉이 남아있는 독현의 머리칼을 응시했다.
애초에 방은 하나면 충분하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사람을 긴장시킬 땐 언제고……
아니, 그보다 난 왜 내심 서운해 하고 있는 거지? 꼭 밝히는 여자가 된 것 같잖아.
“호, 홈시어터네요! 이걸로 영화 보면 완전 실감나겠다. 좀 봐도 되요?”
은돈이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테이블 위의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전원 버튼을 ON함과 동시에- 심야 드라마의 진한 키스신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무……무한도전 안하나?”
급당황한 은돈이 재빨리 리모컨 버튼을 조작해 화면을 바꿨다.
“아~아아~아아아……”
다음 순간, 은돈이 화면 가득 펼쳐진 남녀의 정사 장면에 영혼이 빠져나갈 것만 같은 표정을 해보였다. 그녀의 귓전을 마구 후려치는 여배우의 아찔한 신음소리.
그즈음, 서류에 몰두해있던 독현이 시선을 치켜 올렸다.
“이, 이게 왜 안 꺼지죠?”
멘붕에 빠진 은돈이 버튼이 먹히지 않는 리모컨을 사정없이 난타했다.
“그거……볼륨 업 버튼이야.”
“네? 어……어쩐지! 점점 소리가 커지더라니……!”
은돈이 온통 살색뿐인 화면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그 와중에도 여배우의 신음소리가 맨션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아, 자기 조금만 더~ 오우~좋았어!”
제발 좀 꺼져라 꺼져. 제발!
은돈이 거의 울 듯 한 얼굴로 리모컨을 미친 듯 눌러 제꼈다.
팟-! 머잖아 화면이 꺼지며,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비로소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후우……하하……하하하……”
은돈이 허망한 웃음을 터뜨리며 독현을 돌아봤다.
“역시 입체 서라운드 스피커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소리가 아주 선명하니……이래서 다들 홈시어터, 홈시어터 하나봐요!? 핫핫핫!”
“……차은돈.”
“네, 네?!”
“……”
독현이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는 은돈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으르렁 으르렁대~으르렁 으르렁~”
“어 여보세요! 미자니! 지금 어디니!”
은돈이 제깍 핸드폰을 받아들며 반갑게 외쳤다.
고맙다 친구야. 이 숨 막히게 뻘쭘한 상황에 전화를 걸어주는 센스라니……
-야 차은돈! 너 했어!? 지독현이랑 했지!?
“어억……!”
깜짝 놀란 은돈이 재빨리 통화종료 버튼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러나 의도치 않은 검지 손가락의 경련으로 인하여 그녀가 누른 것은 스.피.커.폰 버튼이었고……
-차은돈! 너 지독현 사마랑 잔 거 맞아?! 혼미주 어때? 가져간 보람 있지? 역시 호랑이 거시기가 들어가서 효과가 아주 기냥 죽여주지!?
저주받을 스피커폰 기능을 통해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하나뿐인 벗의 음성……
은돈이 허탈한 미소를 머금었다.
난 끝났어……사장님 눈에 난 이제 밝히는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돼 버린 거야……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통화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호랑이 거시기……내가 잘못들은 건가?”
“아뇨. 맞아요 호랑이 거시기.”
은돈의 말에, 독현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겠는 듯 잠시 침묵하다 재차 입을 열었다.
“거시기 주를 왜 내 집에 들고 온 거지?”
“왜냐구요……정말 몰라서 물어요?”
은돈이 체념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어떤 각오로 이 집에 발을 들여놨을 거 같아요? 진짜 몰라서 그러는 거에요 사장님?”
“모르겠는데.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독현이 한쪽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왠지 여유 만만한 그의 태도에 슬그머니 오기가 발동한 은돈이 소리쳤다.
“다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 내 반응을 보면서 즐기는 거죠!?”
“아닌데.”
“아니라구요! 아니라구!? 그럼 뭔데요?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게 아니면, 어떻게 이 야밤에 애인이랑 단둘이 남겨졌는데 그렇게 담담하고 태연할 수 있어요?”
“차은돈,”
“내가 여자로서 그렇게 매력이 없어요?”
일순 은돈의 물음에 멈칫한 독현이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런 거 아냐.”
“……그런 게 아니면.”
은돈이 잠시 텀을 두곤, 패기로 똘똘 뭉친 다음 말을 내뱉었다.
“그런 게 아니면, 어디 날 유혹해 봐요.”
“뭐……?”
믿기 지 않는다는 듯 되묻는 독현의 목에, 은돈이 과감히 양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자신이 생각한 가장 야하고 도발적인 한마디를 내던졌다.
“나……오늘은 속옷 짝짝이 아니거든요?”
“……”
“이거……무슨 뜻인지 알죠?”
“……”
“사장님……? 뭐라고 말 좀 해봐요.”
“……”
……푸.
순간, 기다란 손으로 미간을 쓸어내리며 독현이 푸,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날 비웃는……거?”
“아냐 그런 거.”
한 번 더, 독현의 입가에 유려한 미소가 스쳤다.
은돈이 이 집에 들어선 후로 쭉 얼어 있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자신을 의식하며 수차례 얼굴을 붉혔다는 것도.
알면서도 일부러 더 내색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자신의 유혹을 거절한 것에 대한 가벼운 복수랄까. 독현은 은근한 새디스트 기질이 있었다.
야릇하고 농밀한 상황에서 길 잃은 아기 새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은돈을 보는 게 재미있었다.
어쩐지 울 것 같은 그녀의 얼굴에 묘하게 자극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차은돈.”
“왜요. 여자가 먼저 밝히니까 이상해요?”
은돈이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독현의 목에 두른 팔을 좀 더 강하게 조였다.
“미안. 지금부터 밝히는 건 내가 할께.”
말을 마친 독현이 오른손으로 은돈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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